매일신문

[그립습니다] "밥 챙겨주고 옷 찾아주고…아내의 고마움 이제야 알것 같아요"

  세진시스콤㈜ 대표이사 박수환 씨의 아내 고(故) 한숙희 씨

아내와 등산할 때 모습. 오른쪽이 남편 박수환 씨, 왼쪽이 아내 고(故) 한숙희(왼쪽) 씨. 박수환 씨 제공
아내와 등산할 때 모습. 오른쪽이 남편 박수환 씨, 왼쪽이 아내 고(故) 한숙희(왼쪽) 씨. 박수환 씨 제공

3년 전 저세상으로 떠나간 아내가 대단히 그립습니다. 반평생을 동반자로서 서로 보듬고 사랑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녀의 영혼에 접하면 내 마음은 항상 자부심이 생겼지요. 우리들의 만남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의지(依支)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굳센 의지와 인내심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때때로 아내와 함께 지냈던 날들이 눈앞에 아른거려 너무나 괴롭습니다. 내 삶의 유일한 기쁨을 잃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자기 파괴의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잔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집은 평온하기까지, 아니 적막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더 신경질과 짜증이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부터 하염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기 일쑤입니다. 배는 고프지만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는지 몰라 누룽지를 삶아서 반찬과 대충 끼니를 때우고 출근합니다. 점심은 주로 영양가 있는 식사를 골라 합니다. 그래도 매일 외식한다는 것은 무언가 인간의 훈기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기만 합니다. 아내의 손길이 얼마나 세심했었는지 새삼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결혼식을 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양복을 찾는 데까지는 무리가 없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넥타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옷 하나 찾아 입는 데 옷장을 헤집어 놓은 바람에 안방은 벌써 난장판이었습니다. 새삼 아내가 많은 일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항상 당신이 뒷좌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는데, 뒤돌아보니 당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뜨거운 눈물이 맺혀 돌이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저 파란 하늘의 파도 소리를 듣기 위해 속초에 왔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바다에서 혹시나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요.

항상 그렇게 산같이 크게 보이던 당신이 떠나던 날, 한 되 박도 안 되는 당신을 가슴에 안고 있을 때 소낙비처럼 눈물이 흘러 내 얼굴을 적시었습니다.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옵니다.

내가 먼저 저 멀리 떠나면 아내는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남들에게 멸시나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신이 먼저 떠났는가.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서….

꽃은 아름다울 때 자신의 추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시든 꽃을 일찍 떨구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대단히 자존심이 강하고 야망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동백꽃처럼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기 싫은 그 고집은 동백꽃과 닮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을 보내고 오늘 처음 당신과 같이 다녔던 산책길을 걷는데 흰나비가 따라왔습니다. 나는 그 나비가 당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는 거야. 걱정 마. 이승의 일은 잊어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 잘 살아요. 늙지 않은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게.

지난 여름 당신이 사는 한탄강 영평천 지류 지현리 앞산에 당신이 좋아하는 흰 장미를 고이고이 심고 왔습니다. 내년 보름달이 뜨면 당신의 생일 날 흰 장미를 볼 수 있겠지요. 임진강과 한탄강 두물머리에 석양의 핏빛이 이울다 새벽 밤이슬 맞으며 홀로 외로이 접동새 슬피 웁니다. 저 멀리 들리는 바람 소리에도 나뭇잎이 슬피 웁니다. 멀리 떠나갈 때 날 두고 가신 길을 슬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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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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