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한동훈의 단절 전략, 국힘의 회복탄력성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국민의힘이 총선을 위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구원 투수로 차출했다.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 한동훈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수락하면서 지금 국민의힘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후회 없이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조선 제일의 검'이라 불릴 정도로 잘나가는 특수부 검사였다고 하지만, 정치에서는 초보자인 사람의 일성으로는 제법 내공이 있어 보였다.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라고 할 마키아벨리는 용기, 결단과 같은 덕목이 정치인의 자질로 대단히 중요하다고 했고 여기에서 용기, 결단이란 51대 49 상황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과감함이라고 했는데 한동훈의 첫마디는 그런 덕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허언을 빌리자면, '정치인 수사를 많이 해 봐서' 정치도 잘 안다는 건 아닐 텐데, 어쨌든 조금 뜻밖이라고 할 만큼 괜찮은 출발이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놓인 건 꽃길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두말할 필요 없이 '정권 심판' 선거이고 심판의 대상인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지지율은 자업자득이다. 그는 내전과 같은 선거를 치르며 0.73%포인트 차이로 겨우 승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후 지지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려 왔다. 그를 당선시켰던 정치 연합은 거의 해체됐다.

경쟁 세력, 반대 세력을 껴안기 전략으로 품은 게 아니라 갈라치기 전략으로 내쳐 버렸다. 민생이 어려운데 소모적 이념 논쟁에 앞장섰다. 뉴라이트에 포획된 것으로 보이는 그의 말과 행동은 균형을 잃었다. 국민의힘을 손에 넣기 위해 거칠게 내부 단속을 하였고 그 결과 윤석열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사람들조차 등을 돌렸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점점 떨어졌다.

한동훈이 이것을 반전시킬 방법은 뭘까? 그것은 한마디로 '단절 전략'(delinking strategy)이다. 이명박이 위기에 있을 때 등판하여 위기관리를 성공적으로 했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랬고, 문재인이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해결사로 나타났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랬다. 둘 다 기존 정국 흐름을 차단하고 물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음으로써 조직의 위기관리에 성공했다.

박근혜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이명박과 계속 맞서며 여당 내부의 야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등장하자마자 이명박이 잘못한 일의 책임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단절 전략이 먹혔다. 김종인은 비대위원장이 되면서 문재인의 기득권 일부를 청산하는 단절 전략을 썼다. 문재인의 측근 몇 명을 배제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반대 세력의 탈당 흐름을 막았다.

한동훈이 윤석열의 오류나 실수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단절 전략을 하지 않고는 국민의힘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만들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글쎄다. 현재로서는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다. 한동훈이 가지고 있는 젊고 발랄한 말과 행동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인다.

윤석열의 허술하고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덮어 버리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크게 기대하지 말라는 충고도 있다. 우선 한동훈은 검사 시절부터 윤석열과 분리할 수 없는 사회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오래 함께 일해 왔고 공적, 개인적 신뢰를 형성해 왔다. 사람들이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윤석열이 만들어 놓은 정국의 흐름을 한동훈이 거스르거나 방향을 바꾸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 부인 특검 이슈나 당과 대통령의 수직적 관계 문제를 한동훈이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한동훈이 '당의 문제는 자기가 결정한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지만, 그것을 '허세'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동훈에 대한 믿음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충분치 않다.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으로서 더불어민주당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각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단절 전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선택지가 두 개만 있다면 민주당에 대한 공격이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으나 지금은 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꼽기도 힘든 숫자의 제3 정치세력들이 등장하여 거대 정당을 찍기 싫은 지지자들을 담아내고 있는 터라 한동훈의 민주당 공격이 국민의힘의 회복탄력성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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