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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27>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불륜의 도화선이 된 시(詩)

이경규 계명대 교수

괴테. 네이버 캡처
괴테. 네이버 캡처

'베르테르의 슬픔'은 러브스토리의 고전이지만 결국 불륜 이야기다. 베르테르는 처음부터 롯데가 약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롯데는 결혼한 뒤에도 베르테르의 접근을 막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초여름에 시작하여 이듬해 겨울에 끝난다. 그동안 이들의 육체적인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을까? 몇 차례 손을 잡은 바 있고 키스를 한 번 한 게 전부다. 18세기 후반의 일이니 별것 아니지는 않다. 이 소설의 요체가 이런 주제는 아니지만 하찮은 문제는 아니다.

베르테르와 롯데가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된 동기와 처음으로 키스를 하게 된 경위는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그런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랬으므로 뭔가 불가항력의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가령 술에 취해 이성을 잃었다거나 홍수에 길이 막혀 동굴에서 잤다거나 하는 변수 말이다. 물론 괴테가 그런 통속한 설정을 재탕할 리는 없다. 두 사람의 이성과 윤리의식을 순간적으로 마비시키고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 것은 바로 문학적 공감능력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된 데는 한 편의 서정시가, 껴안고 키스를 하게 된 데는 한 편의 서사시가 도화선이 된다. 전자는 클롭슈톡의 '봄의 축제'이고 후자는 오시안의 시다.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베르테르와 롯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춤도 추고 게임도 하며 통상적인 사교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소나기가 쏟아지고 두 사람은 창가로 가 밖을 내다본다. 봄비에 젖은 땅에서 향기로운 흙냄새가 솟아오른다.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밖을 보던 롯데가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베르테르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클롭슈톡!" 이어지는 베르테르의 반응은 이렇다.

나는 즉각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저 장엄한 송가의 마법에 빠져들었네. 나는 몸을 굽히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네.

장엄한 송가란 당시에 글 좀 한다는 사람이면 읊조리고 다니던 클롭슈톡의 시 '봄의 축제'를 말한다. 이 시의 하이라이트가 쏟아지는 소나기에 산천초목이 감격하여 진동하는 장면이다. 처음 만난 두 남녀가 비를 보며 같은 시를 떠올리고 그것을 확인한 감동이 너무 강해 자기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면 운명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그래도 두 사람은 선을 넘지 않고 잘 버틴다. 그 선을 뭉개버리는 것이 오시안의 서사시다. 오시안은 고대 켈트족을 배경으로 한 영웅들의 사랑과 죽음을 노래한 아일랜드의 음유시인이다. 어느 날 베르테르가 그의 시를 롯데에게 낭독해주는데, 여주인공이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다 아파하는 장면에서 롯데는 눈물을 쏟아내며 베르테르에게로 쓰러진다. 이어지는 사태는 이렇다.

불같은 두 볼이 마주치고 그들에게 세상은 사라져 버렸다. 베르테르는 두 팔로 그녀를 안고 가슴을 누르며 떨리는 입술에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화자는 두 사람의 초자아를 무너뜨린 저 시어의 힘을 "전폭적인 폭력"(die ganze Gewalt)이라 부른다. 이성과 윤리의식을 전폭적으로 해체해 버린 힘이다. 며칠 뒤 베르테르는 다 이루었다는 듯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주검 옆에는 또 한 권의 책이 펼쳐져 있다. 레싱의 비극 '에밀리아 갈로티'다. 이렇게 '베르테르의 슬픔'은 문학 밖의 문학이고 문학을 위한 문학이다. 18세기 후반에 이 소설에 빠진 젊은이들이 주인공을 모방하며 난리가 났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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