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하늘 향해 쭉 뻗은 ‘큰 절 호위 무사’ 전나무

전북 부안군 내소사 전나무 길은 강원도 오대산 전나무 숲길과 경기도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과 더불어 국내 3대 전나무 숲길로 손꼽히는 명소다.
전북 부안군 내소사 전나무 길은 강원도 오대산 전나무 숲길과 경기도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과 더불어 국내 3대 전나무 숲길로 손꼽히는 명소다.

#1. 서쪽 끝으로 석봉이 가파르게 솟아 있고 그 위에는 수 십 명이 앉을 만했다. 소나무와 전나무, 철쭉이 우거져 뒤덮고 있어 유람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稍西 有石峯峭聳 其上可坐數十人 松杉躑躅 羅生掩翳 遊人未嘗至也)<『퇴계선생문집』 권41>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에 소백산을 유람하고 적은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에 나오는 풍경이다. 환희봉을 오르고 옛 석성 터를 둘러보면서 주위의 경치와 나무를 묘사한 구절에 전나무[杉]가 소나무, 철쭉과 함께 나온다.

#2. 인원과 함께 용수사에 묵었다. 용수사는 고려 왕조의 큰절로 전나무와 잣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與仁遠投宿龍壽寺 寺乃 前朝巨刹 檜柏參天)<『무릉잡고』 권70>

조선 전기 우리나라 최초로 서원을 건립한 학자 주세붕이 지금의 봉화군에 있는 청량산을 구경하고 적은 『유청량산록』의 한 구절이다. 고려 때 지은 용주사 주위 풍광에도 울창한 전나무[檜]가 시선을 붙잡는다.

선현들의 유산록(遊山錄)에는 전나무를 나타내는 한자가 다르다. 한자로 삼(杉), 회(檜), 삼목(杉木), 송삼(松杉)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한자 삼(杉)은 일본이나 우리나라 제주도나 남부 해안지역에 자라는 일본 원산의 삼나무도 같은 한자를 쓴다. 일본의 삼나무를 국내에 심은 시기는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다. 그 이전의 우리 옛 문헌에 나오는 삼(杉)은 전나무나 잎갈나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구급방언해』나 『물명고』, 『명물기략』에는 젓나무 혹은 전나무로 풀이돼 있다.

그래서 일까. 전나무의 표준어도 두 가지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전나무와 젓나무 모두 수록돼 있다. 그러나 국립수목원의 국가식물표준목록에는 전나무를 공식 명칭으로 쓴다.

어기영차 남쪽 대들보 올리세

兒郞偉抛樑南·아랑위포량남

가까이서 정자각 바라보니 소나무 전나무가 둘러싸고 있구나

近瞻丁閣繞松杉·근첨정각요송삼

만년토록 상서로운 기운에 붉은 구름 일렁이고

萬年佳氣紅雲盪·만년가기홍운탕

줄지어 둘러싼 봉우리들 푸른 옥비녀를 닮았네

列峀仍環碧玉篸·열수잉환벽옥잠

<『일성록』 정조 20년 병진 9월 10일>

규장각 제학 심환지(沈煥之)가 지어 올린 수원 화성행궁 낙남헌(落南軒)의 대들보를 올리는 날 축복을 기원하는 상량문의 일부다. 시에 등장하는 정자각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능인 현륭원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있는 건물이다. 하늘에서 본 지붕이 농기구 고무래처럼 생긴 정자각 주위에 소나무와 전나무가 호위하듯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왕실의 위엄을 찬사했다.

◆추위에 잘 견디는 상록침엽수

전나무는 추위에 강한 나무여서 높은 산에서 잘 자란다. 곧은 줄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은 무리를 볼 때 위엄과 경건함을 느낀다. 겨울철 내리는 눈을 푹 뒤집어쓰고 가지가 축 처진 풍경은 장엄함 그 자체다.

전나무를 쉽게 만나려면 큰 절에 가면된다. 경북 예천군 명봉사, 청도군 운문사, 경남 합천군 해인사 주변엔 아름드리 전나무가 있다. 속세와 멀리 떨어져 곧게 자라는 품새가 아름다워 경외심을 들게 한다. 특히 강원도 오대산 전나무 숲과 전북 부안군 내소사 전나무 숲, 경기도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은 국내 3대 전나무 숲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전나무는 소나뭇과의 잎이 바늘 같이 생긴 상록수로 곁가지가 굵지 않고 줄기가 매끈하고 곧다. 깊은 산에 자생하는 나무로 추위를 잘 견디는 반면 고온 건조한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다른 나무 그늘 아래서도 생육이 좋은 음수(陰樹)다. 싹트고 7~8년은 성장이 더디지만 이후엔 자람이 빨라져 키가 30m, 줄기 둘레가 장정의 두세 아름에 이를 정도로 우람하게 자란다.

전나무는 한 나무가 자리 잡으면 동료들이 잇따라 이웃에 들어서 군락을 이룬다. 전나무 아래엔 다른 식물들이 살기 어렵다. 키가 쑥쑥 자라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햇볕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전나무끼리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다보면 줄기가 굽거나 비뚜로 나갈 틈도 없다. 전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모양새다.

전나무의 수명은 250~300년으로 추정되지만 국내에 500년 이상 된 노거수도 있다.

경북 예천군 명봉사(鳴鳳寺) 입구에 있는 예천군 보호수 전나무는 키가 무려 33.5m, 가슴높이 둘레 4.3m에 이르고 수령은 약 300년이다.
경북 예천군 명봉사(鳴鳳寺) 입구에 있는 예천군 보호수 전나무는 키가 무려 33.5m, 가슴높이 둘레 4.3m에 이르고 수령은 약 300년이다.

◆경북 높은 산에 자리 잡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명봉리 명봉사(鳴鳳寺) 입구 주차장 맞은편에 키가 무려 33.5m, 가슴높이 둘레 4.3m에 이르는 전나무가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지킨다. 수령 약 300년의 노거수로 2003년 예천군의 보호수로 지정됐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절 주변 산에는 느티나무 같은 고목 사이로 푸른 전나무가 삐죽삐죽 솟아 있다. 명봉사 뒷산에는 조선시대 문종과 사도세자의 태실이 있다.

경북 봉화군 각화사 전나무는 봉화군이 지정한 보호수다. 봉화군 제공
경북 봉화군 각화사 전나무는 봉화군이 지정한 보호수다. 봉화군 제공

봉화군 각화사의 전나무도 봉화군의 보호수다. 높이 17m, 가슴높이 직경 1.6m 줄기 둘레 5m 이상인 거목이다. 절 부근 산비탈에 위치한 풍치목이다.

김천시 수도산, 청도군 운문사 계곡 부근에도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간 몇 아름되는 전나무가 도열하듯 서있는 풍경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25~30m의 나무 아래 서면 사찰로 향하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큰 절 근처에 전나무가 왜 많을까? 건축자재가 귀하던 옛날 길고 큰 목재로 사찰 대들보나 기둥을 보수할 때 쓰려고 많이 심고 가꾸었기 때문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보관 건물인 수다라장, 양산 통도사, 강진 무위사 기둥의 일부가 전나무로 밝혀졌다. 전나무의 보시인 셈이다.

전북 진안군 운장산 기슭의 천황사에는 국내 하나 뿐인 천연기념물 전나무가 있다. 천황사 '남암(南庵)' 비탈에서 홀로 400여 년을 수도승처럼 서있다. 높이 35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5.7m로 국내 전나무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나무다.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앞마당의 전나무 두 그루는 1926년 당시 스웨덴의 왕세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 부처가 서봉총 발굴에 참여한 기념으로 심은 것이다.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앞마당의 전나무 두 그루는 1926년 당시 스웨덴의 왕세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 부처가 서봉총 발굴에 참여한 기념으로 심은 것이다.

◆경주문화원 전나무

경주시 구도심에 있는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앞마당의 전나무 두 그루는 수문장처럼 늠름하다. 한 세기 동안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이 나무에 제국주의와 인도주의적 사연이 함께 간직돼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10월 스웨덴의 왕세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현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의 할아버지)와 루이즈 태자비가 서봉총(瑞鳳塚·노서동 129호분) 발굴에 참여한 뒤 당시 박물관에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아돌프 공작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제의 권유를 받고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을 손수 수습했다. 금관에는 세 마리의 봉황이 장식돼 있었다. 일제는 스웨덴을 뜻하는 한자 서전(瑞典)의 '서(瑞)'자와 봉황의 '봉(鳳)'자를 따와서 고분의 이름을 붙였다.

제국주의 시대 열강들은 외국의 유적이나 유물을 발굴, 수집하는 일에도 경쟁했다. 일제도 경주 고분의 학술 조사나 연구 목적보다는 전시나 수집에 더 열을 올렸다.

한편 구스타프 6세 스웨덴 국왕은 재임 때 한국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자 경주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야전병원단을 파견했다.

전북 진안군 천황사의 남암에 있는 천연기념물 전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키가 가장 높다. 진안군 제공
전북 진안군 천황사의 남암에 있는 천연기념물 전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키가 가장 높다. 진안군 제공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까닭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듯이 서양에서 전나무를 성탄절의 장식물인 크리스마스트리로 쓴다. 유독 전나무를 사용한 까닭은 뭘까? 켈트족이 상록수를 신성하게 여기는 풍습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여기에는 동화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북유럽의 어느 숲 속에 사는 나무꾼에게 딸이 한 명 있었다. 딸은 숲의 나무를 사랑했고 숲의 요정과 잘 어울렸다. 추운 겨울 밖에 나갈 수 없는 소녀는 문 앞에 있는 전나무에 작은 촛불을 걸어두어 요정을 위로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나무꾼인 아버지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는데 마침 멀리 전나무에 빨간 불이 켜있어 가보니 그냥 나무였다.

다시 사방을 살펴보니 불이 켜진 나무가 멀리 있어 찾아갔다.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딸의 촛불이 켜진 전나무가 있는 집 앞에 이르렀다. 나무꾼이 무사히 귀가하도록 요정들이 인도한 것이다.

다른 얘기로는 독일의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숲을 산책하다가 눈이 소복 쌓인 전나무 위로 반짝이는 별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고 집에 돌아와 트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크리스마스트리의 유래와 관련 여러 가지 설(說)이 있지만 전나무는 성탄절 전날 밤을 장식하는 전통적 트리로 쓰여 꿈과 희망을 주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오대산 전나무 숲길
오대산 전나무 숲길

◆대구시목 왜 전나무인가

전나무는 대구시의 시목(市木)이다. '대구 시민의 강직성과 영원성, 그리고 곧게 뻗어가는 기상을 대표하는 나무'라는 취지로 1972년에 지정됐다. 전나무는 대구와 연관성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정된 지 50년이 넘었지만 대다수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한다.

설령 시목을 알고 있는 시민들도 왜 전나무를 시목으로 지정했느냐고 궁금해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대구에서는 전나무를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먹고 대구수목원에 가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간혹 시내 아파트단지에 구상나무, 주목과와 함께 조경수로 심어진 어린 전나무가 보이나 시민들이 자주 찾는 큰 공원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기온이 30도 이상 올라가는 날이 많은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의 기후에 한대수종인 전나무의 생육환경이 녹록치 않는데 온난화가 진행되면 더 나빠질 것이다.

대구시목을 다른 나무로 바꾸는 게 어떨까? '천연기념물'인 동구 도동 측백수림을 비롯해 동구 내곡동의 모감주나무, 달성군 옥포읍에 군락이 형성된 이팝나무 등 깃대종이나 시민들이 공감할만한 나무로 시목을 다시 지정하면 대구 이미지 홍보에도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칼럼니스트 chunghaman@korea.com

▶미니박스

전나무=소나무과. 학명=아비에즈 홀로필라 막심 (Abies holophylla Maxim.)의 속명 Abies는 전나무 종류를 가리키는 고대 라틴어 abed에서 나왔으며 '높다' 혹은 '올라간다'는 뜻, 종소명 holophylla는 '잎이 갈라지지 않는다'는 뜻. 영어명:Needle Fir 중국이름:枞树, 일본 이름:樅(もみ)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