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피아노는 가구가 아닙니다!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과거에는 학년 초가 되면 가정환경조사를 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 등과 더불어 가정에서 소유한 내구재 조사도 포함됐는데, 예를 들면 자동차, TV, 냉장고, 피아노 등이었다. 아마도 이런 내구재는 가격도 비싸고 쉽게 살 수 없는 물품들이라 이의 소유 여부가 가정 형편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 것이 아닐까? 이 중에서 피아노는 우리 삶에 있어서 편의성이나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물품이지만, 1970년 대와 1980년 대 중산층에게 있어서는 계층을 상징하는 필수품이었다. 요즘에는 거주 형태가 아파트로 바뀌고 해서 있는 피아노도 처분해 버려 일반 가정에서 실물 피아노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잘 없지만, 그 당시에 좀 산다는 집의 응접실(과거에는 거실을 이렇게 불렀다) 한쪽 벽에는 가구처럼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다. 근데 이런 광경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 영국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피아노는 1709년 이탈리아인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에 의해 발명됐다. 피아노는 새로운 실험적 악기였으며, 오직 상류층만이 가질 수 있었다. 18세기만 하더라도 피아노는 전문 음악가들을 위한 악기로서, 프로 연주자와 아마추어 연주자의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는 악기였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궁정이나 저택에서 음악회를 열었던 영국 귀족들이 인기가 있는 스타 연주자들의 출연료를 감당할 수 없게 돼, 사적으로 열렸던 살롱 음악회는 쇠퇴하고 중산층 청중들을 대상으로 더 넓은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연주회가 열렸다.

이런 변화에서 피아노 제조사들은 새로운 관객층으로 부상한 중상층을 대상으로 피아노의 판매를 늘리려고 노력했는데, 피아노는 전문가만을 위한 악기가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혼자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더불어 작곡가들에게 아마추어들이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간단한 독주곡의 작곡도 의뢰됐다. 또 작곡가들도 소득을 높이는 데에 이런 쉬운 음악의 작곡이 필요하다고 인식했기에, 전문 음악가들을 위한 '그랜드 소나타'와는 구별된 아마추어를 위한 '소나타'를 만들었다.

피아노 판매를 늘림에 있어서 또 다른 긍정적인 측면은 중산층 가정에 있어서 피아노의 유형적 존재는 물질의 소유에 집착하는 그들의 소비주의를 만족시켰으며, 동시에 피아노 연주는 음악은 무형적인 것으로 고매한 정신적 활동에 대한 그들의 동경심을 채워 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값비싼 악기였던 피아노의 소유는 속세에서의 성공을 의미했으며 번쩍이는 마호가니나 자단으로 만들어진 피아노는 집에 두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구였었다. 기록에 의하면 1871년에 호이스라는 목사는 피아노 관리에 관해 조언하면서 피아노의 상단을 책꽂이로 만들거나, 특히 업라이트 피아노의 하단 부분을 와인이나 디저트를 보관하는 찬장으로 개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마도 당시에 피아노를 가구로 보았던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피아노를 팔려는 노력은 일종의 할부 구매인 대여 구매 제도까지 만들어, 19세기 말에는 노동계급의 가정에도 피아노가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6페니(요즘 가치로 6천250원 정도)짜리 레슨도 생겼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