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직 전공의 인터뷰…"졸속 증원 대신 정부·의료계 논의의 장 만들어야"

의료 공백 사태 한 달…
증원땐 의대 수업·실습 질 ↓…필수의료 종사자 고강도 근무
해당 분야 유인책·개선 우선…“정책 냉정하게 뜯어봐주시길”
"필수·지역의료 살리려면 그에 맞는 환경 만들어야"

정부가 내년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 2천명을 늘리는 방안을 확정 발표한 20일 대구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의사와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정부가 내년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 2천명을 늘리는 방안을 확정 발표한 20일 대구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의사와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병원에 있어야 할 의사가 병원을 떠나있는 데 대해 죄송하고 면목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펴는 데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거라는 게 저희 전공의들의 생각이고 판단이었습니다."

21일 대구 지역 한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다 지난 달 사직서를 낸 두 전공의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며 매일신문의 문을 두드렸다. 익명을 요청한 이들은 현재 정부의 의대 2천명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속 의료개혁 정책들에 문제점이 많음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매일신문과 전공의들의 질문과 답변이다.

- 의료 사태가 한 달째를 맞고 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 착잡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 정신없이 일만 하다가 처음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의사라는 직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까지 하고 있다.

- 전공의 사직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상당하다. 비판적 반응을 접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전공의 사직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다. "이때껏 환자를 제대로 보긴 했느냐"는 말이나 '의새'(온라인상에서 의사를 비하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단어)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내 마음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가장 많은 반응이 "어떻게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하시는 마음이 어떤지 알지만 그 전에 지금 생긴 의료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한 번 찬찬히 봐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21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연합뉴스
21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연합뉴스

- 전공의 입장에서 정부의 의대 2천명 증원이 왜 문제인지 설명해달라.

▶당장 1년 안에 늘어난 정원을 받아서 교육할 시설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모교 후배에게 "우리 대학 강의실에 총 몇 명이 들어가느냐"고 물어봤더니 "86명 들어가면 꽉 찬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지금 120명, 200명으로 늘어나면 도대체 86명 넘어가는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서 수업을 들어야 할 것인가.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본과 3, 4학년이 되면 병원에서 실습을 하게 되는데 만약 수술 참관을 해야 할 경우 수술실에 들어갈 인원은 한정돼 있다. 지금도 수술 참관을 위해 의자나 받침대에 올라가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TV드라마처럼 위에서 지켜볼 수 있는 수술실을 가진 병원은 거의 없다. 결국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들어오는 후배들은 왜 질 낮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1년 안에 정말 시설이나 기자재를 다 확보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 늘어난 의대생들이 인턴, 레지던트가 되면 각 지역 수련병원들이 다 수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전공의들이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의료에서 가장 고쳐야 할 부분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 개혁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큰 문제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필수·지역의료 부족을 거론하는데, 필수의료 문제는 결국 해당 진료과를 전공의들이 선택해서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 상급종합병원의 필수의료 분야들이 대부분 전공의, 전임의, 교수들의 워라밸은 고사하고 평범한 삶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환경인데 이를 개선하는 게 먼저라고 본다. 지금 정부의 정책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소위 '돈 버는' 진료과를 나쁘게 만드는데, 그 방법은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지역의료는 지방소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사들도 지역의료를 맡을 것이라 본다.

의대의 정원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처럼 의료인력의 증감을 결정하는 기구를 만들어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의대 정원 확대도 처음부터 기구를 만들어 논의했어야 했다.

- 의료공백 상황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국민들이 많이 실망하셨을거라 생각한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도 국민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 졸속으로 진행되는 정책을 막지 못하면 미래에는 국민들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국민들께서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을 뜯어 봐 주셨으면 한다. 정부도 '타협없는 정책은 오만과 독선'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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