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금리+불황' 엎친 데 덮친 기업들…회사 굴릴수록 가파른 '빚의 절벽'

성서산단 곳곳에 '공장 급매' 전단지 "버티기 돌입한 상황"
금리 6% 넘는 기업 대출 수두룩…신용등급 낮은 영세업체 타격 커
대구경북 어음부도액 1천500억원…1년 새 2.7배↑

대구성서산단의 한 폐공장. 매물로 나온 이 공장은 아직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해 방치돼 있다. 박상구 기자
대구성서산단의 한 폐공장. 매물로 나온 이 공장은 아직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해 방치돼 있다. 박상구 기자
대구 성서산업단지. 매일신문DB
대구 성서산업단지. 매일신문DB

고금리와 경기침체의 여파가 지역 기업들을 덮치고 있다. 수주물량이 줄어든 가운데 이자 등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극심한 경영난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져 금리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며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공장 팝니다"…곳곳에서 신음

1일 오후 1시쯤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빛바랜 붉은 벽돌로 된 담벼락이 이어진 골목길은 쥐 죽은 듯 적막했다. 길을 따라 공장 25곳을 둘러봤지만, 공장 문이 열린 곳은 14곳뿐이었다. 공장 내부에 전등을 켜지만, 작업 소리는 들리지 않은 곳이 상당수였다. 전봇대와 담벼락에는 '공장 급매', '공장 임대'라고 쓴 현수막과 종이가 붙어있었다.

달서구 갈산동의 한 기계 제조업체의 철골조 건물은 텅 비어 있었다. 사무실 입구 앞에는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 10여 개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생산 현장'이라고 적힌 문을 열자, 700㎡ 남짓한 공장 내부가 드러났다. 사람은 없었고, 바닥에는 기계가 있던 자국과 기름때뿐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나무 자재 몇 개와 쓰레기를 담은 포대가 놓여 있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줄어든 생산량에 비해 공장이 커 매물로 내놨다. 차라리 돈을 아끼자는 생각에 임대료가 저렴한 공장으로 옮겼다"며 "업계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고 했다.

성서산단 내 동림공인중개사무소 손예린 공인중개사는 "경기가 호황일 때는 성서산단 공장을 팔아 저렴한 부지로 옮겼지만, 지금 나오는 매물들은 사업을 정리하거나 대출금을 갚기 위한 경우가 많다"며 "공장을 팔겠다고 내놓은 뒤 주변에 다시 임대로 들어가 '버티기'에 돌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서산단 내 한 공인중개사는 "보통 공장 매물이 5, 6곳 정도 있는데 지금은 14곳이나 된다. 특히 1, 2차 단지가 많은데 워낙 시설이 낙후된 데다 30년 이상 이어온 소규모 금형 공장 대표들이 사업체를 정리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불황의 먹구름은 산업단지 전체를 뒤덮었다. 성서산단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성서산단 가동률은 68.4%에 그쳤다. 전년 동기 70.8%보다 2.4%포인트(p) 낮아졌다. 같은 기간 입주업체 중 18곳(3천292→3천274곳)이 문을 닫았고, 근로자도 683명(4만8천726→2만8천43명)이 줄었다.

기업들은 불황에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한계 상황에 몰렸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말 성서산단관리공단이 입주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기업 경영 애로사항으로 '수주물량 감소'를 꼽은 곳이 36.3%로 가장 많았다. 인건비 증가(15.5%)와 대출금리 등 운영자금(14.8%)이 뒤를 이었다.

직원 20여 명을 둔 대구의 한 섬유제조업체 대표는 "고정비 지출이 늘면서 지난해 영업이익이 3억원을 기록했다. 5년 전 10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임금이 올랐고 고금리 영향도 크다"며 "수주물량이 줄면서 잔업을 줄였다. 기계의 가동과 멈춤을 반복하면서 효율이 낮아지고 고장도 잦다"고 말했다.

노동자들도 불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산업용 기계를 만드는 업체 관계자는 "일감이 줄었다는 게 체감이 된다. 5년 전과 비교하면 30% 정도 수주물량이 감소했다"며 "월급을 210만원 정도 받고 있는데 일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고 하소연했다.

대구성서산단의 한 담벼락에 공장 매매를 알리는 전단지가 붙어있다. 박상구 기자
대구성서산단의 한 담벼락에 공장 매매를 알리는 전단지가 붙어있다. 박상구 기자

◆늘어난 기업 대출, 이자 부담은 '눈덩이'

불황을 맞은 기업 상당수는 대출을 받아 운영자금에 보태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고금리로 인해 금융비용 부담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구경북 기업자금 대출금은 99조5천91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말 90조1천53억원, 2022년 말 95조3천421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대출 규모가 커지면서 고금리 여파가 지역 기업들에 직격탄이 됐다. 전국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중소기업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6.75%로, 2021년 2월(4.31%)과 2022년 2월(4.69%)과 비교해 큰 폭으로 높아졌다.

문제는 지역 중소기업 상당수가 신용등급이 낮아 상대적으로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신용등급이 1~3등급일 경우 금리(대구은행 기준)가 4.43%지만, 6등급에 적용되는 금리는 6.73%로 더 높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지역 중소기업 중 신용등급이 높은 곳이 많지 않다. 대부분 5등급이 넘어가 대출금리가 연 6%를 넘는 실정이다. 보증서를 담보로 하더라도 금리는 5%를 웃돈다"며 "중소기업은 정책자금을 이용하려고 해도 업종이나 기술력 등 제한에 걸리는 경우가 적잖다. 규모가 큰 기업들은 현금 보유를 늘리면서 견디지만, 중소기업은 고금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 10여 명의 지역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지난해 매출액 40억원 중 이자와 하청업체 지급분,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2억원 정도가 남았다. 3년 전 수익 8억원 보다 크게 줄어든 액수다"며 "대출을 미리 받아 공사를 진행하는 사업이 많아 금리 부담이 정말 크다. 현재 7억원의 대출이 있는데,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이자 비용만 해마다 수천만원이 더 나가는 구조"라고 했다.

진주완 삼익THK 대표는 "신규 투자와 비즈니스모델 전환 과정에서 부채 비율이 꽤 올라간 상태다"라며 "금리가 3%대였을 때는 투자에 집중했지만, 지금은 기조를 바꿔 이익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중견 상장사인 삼익THK의 경우 지난해 부채가 2천700억원으로 2021년 1천800억원 보다 1.5배 늘었다.

나아가 대출을 받은 기업이 이자를 연체하면, 통상 3% 수준의 연체이자율까지 더해져 10%에 육박하는 이자율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채를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내는 기업도 적지 않다. 한국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대구경북 어음부도액은 1천491억3천만원으로, 전년 동기 544억8천만원에 비해 2.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부도 업체 수는 16곳에서 20곳으로 늘었다.

이하경 성서산단관리공단 기업팀장은 "기업 애로사항을 드는 행사를 하면 이자 비용이 너무 높다고 호소하는 업체들이 많다. 현금자산이 많지 않은 영세업체들은 고금리에도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는데, 매출이 부진해 연체하면 금리가 더 올라간다는 것"이라며 "고금리에 연체이자까지 포함하면 영세 기업에선 부담을 견디기 어렵다. 특수한 상황인 만큼 정부나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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