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나비효과와 기후플레이션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바람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 '지구온난화로 물가가 치솟는다?' 어떤 게 더 현실적일까. '통장수'는 어떤 일이 생기면 그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일본 속담이다. 바람 불면 흙먼지가 날려 눈병에 걸리기 쉽고 따라서 맹인이 늘어난다. 맹인은 먹고살기 위해 '샤미센'(일본 현악기)을 많이 사고 샤미센 제작에 필요한 가죽 때문에 고양이들이 죽고 쥐가 늘면서 쥐들이 통을 많이 갉아 먹는 바람에 통장수가 돈을 번다는 얘기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처럼 서로 무관한 상황이 실제로는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나비효과'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기후플레이션'은 통장수 속담이나 나비효과와 달리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되고 있다.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기후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농작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물가가 치솟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해 영국 BBC가 기후변화로 인한 고물가를 기획물로 다루면서 처음 사용한 신조어다. 기후플레이션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도 직격하고 있다. 봄철 개화 시기 이상저온, 여름철 집중호우, 병충해 등 기후변화에 따른 현상으로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전년 대비 30%나 줄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전국 김 생산의 77%를 차지하는 전남 지역의 지난해 김 생산량도 전년 대비 11% 감소, 올해 조미김과 김가루 등 관련 제품 가격이 10~20% 이상 올랐다. 일조량 부족 등 기후변화에 따른 올해 경북 지역 피해는 사과를 비롯해 참외, 수박, 딸기, 부추 등을 망라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 직후 "기후변화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곤혹스러운 점"이라고 말했다. 정부 재정이나 통화정책으로 국내 물가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그러면서 "농산물 수입을 통한 근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 유통 구조 개선, 국내 농가를 위축시키는 수입 등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신품종 개발, 스마트팜 등 새로운 생산 기반 구축, 저탄소 농업 기술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 등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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