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라인 사태와 데이터 주권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한국의 모바일 메신저 앱 '카카오톡'에 대비되는 일본의 '라인'. 라인야후가 운용하는 라인은 전체 일본인(1억2천만 명)의 80%(9천600만 명)가 이용하는 국민 메신저다. 동남아 등 전 세계 1억9천만 명의 이용자 수를 자랑하는 글로벌 모바일 플랫폼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하지만, 이 플랫폼은 2011년 한국 기업 네이버가 기획하고 한국인이 개발한 한국산(産) 서비스다. 개발자는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로,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라인야후의 최대주주인 'A홀딩스'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해 공동 경영을 하고 있다.

이 공동 경영에 이상기류가 생긴 것은 지난 3월과 4월 일본 총무성이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라인야후에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구하는 행정지도를 내리면서다. 자본 관계 재검토란 지분 매각을 통한 '경영권 이전'과 다를 바 없다. 라인야후는 정부의 행정지도 이후 신중호 CPO의 사내이사직을 박탈했다.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의 라인야후 경영권 탈취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일본 정부의 방식은 무도(無道)하고, 우리 정부의 대응은 무력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라인 고객 51만 명의 정보가 유출된 점을 문제 삼았지만, 2021년 페이스북 해킹으로 5억 명의 정보가 유출됐을 때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일본 통신업체 NTT니시일본의 928만 명 정보 유출에 대해선 '위탁 업체 관리 감독' 등 재발 방지책을 수용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인정보가 100만 건 이상 유출된 사례가 8건에 이르는데도 유독 51만 건 유출된 라인야후에 대해서만 행정지도를 한 배경은 무엇일까. 민간기업의 경영권에 일본 정부가 왜 직접 뛰어들었을까. 표면적으로는 개인정보 유출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아닌 것 같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빅데이터를 자국이 직접 관리하겠다는 '데이터 주권 확보'를 본질적인 이유로 꼽는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산업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등 양질의 데이터가 다량 필요하고, 이를 자국이 확보해 관리하려는 보호무역주의의 일환인 셈이다.

일본과 함께 각국의 데이터 주권 강화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중국 플랫폼 틱톡을 강제 매각하도록 하는 '틱톡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은 '디지털시장법' '디지털서비스법'에 이어 AI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AI법을 올해 통과시켰다. 중국도 인터넷에서 개인정보 등 데이터 처리를 규제하는 '네트워크안전법' 등 데이터 3법을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행정지도'라는 모호한 성격의 행정적 처분을 통해 외국 플랫폼을 퇴출시키려는 일본의 방식은 정상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주권 확보란 측면에서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일본 정부의 대응을 수긍하는 데서 나아가 환호할 만하다. 반면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 만에야 유감을 표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안일하고 무기력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가)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요구는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발언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일 간 우호 증진은 동등한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데이터 주권 확보와 보호는 상대국이 어디냐, 어떤 기업이냐를 떠나 국익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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