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아깝습니다. 사과받고 싶습니다."
대구시립희망원 강제수용으로 24년만에 세상에 나온 60대 남성이 국가를 향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 단체는 당시 수용 시설 관리에 책임이 있는 국가가 피해자들의 인권 유린에 관해 공식 사과하고, 진상규명을 통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0일 오후대구지방법원 앞에서 대구시립희망원 강제수용 피해자 전봉수 씨가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봉수 씨는 "천안역에서 어떤 스님이 국밥 사준 데서 갔다. 눈 떠보니 희망원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독방에 갇히고 나오지 못했다. 20년 동안 가족 못 만났다. 희망원에서 때린 것도 많다. 죽는 것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전봉수 씨는 1964년 8월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지적장애가 있는 전 씨는 초등학교 2학년 학교를 그만뒀고, 큰누나와 충남 연기군에서 지냈다. 하지만 1998년 11월, 천안역을 방문했던 봉수 씨는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국밥을 사주겠다'고 해 따라갔다가 강제로 승합차에 태워졌다. 이후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대구시립희망원에 입소당했다.
봉수 씨는 희망원 안에서 7~8명과 한 방에서 생활했고, 주로 종이가방 만드는 일을 했다. 도망가다 붙잡히면 2~3일간 독방에서 생활하는 벌을 받았다. 2017년 봉수 씨는 희망원에서 도망쳐 천안에 사는 형 집을 찾아간 적도 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고, 다음 날 희망원에 자진 복귀했다.
그동안 가족들은 실종된 봉수 씨를 찾으려고 사회복지시설을 수소문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가족들은 "봉수를 봤다"는 동네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재차 실종 신고했지만, 그때도 찾을 수 없었다. 봉수 씨의 주민등록은 희망원 입소 후 1958년 1월 1일로 새로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경찰도 봉수 씨의 정확한 소재지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봉수 씨는 마침내 희망원을 퇴소해 대구지역 장애인단체가 운영하는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입주했다. 같은 해 11월 자립주택 담당자는 봉수 씨가 입소 전 고향마을, 부모와 형제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봉수 씨의 본래 제적등본을 발급받아 대구동부경찰서에 가족찾기를 문의했다. 경찰은 전산조회를 통해 실종신고 내역을 파악했고, 바로 다음 날 봉수 씨의 누나를 찾았다. 24년만에 봉수 씨는 그토록 그리웠던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난 9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대구시립희망원 등 부랑자 시설 4곳에 대해 경찰·공무원 등에 의한 강제수용, 본인 의사에 반하는 '회전문 입소', 폭행 및 가혹행위, 독방감금, 강제노역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가가 특별법 제정 등 종합적 피해 회복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조민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충청도에서 멀쩡히 잘 살던 청년이 중년이 돼서야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며 "국가와 지자체가 운영한 수용시설 때문에 한 사람 인생이 송두리째 뺏기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는 단순히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시설 수용 정책을 유지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국가로부터 반드시 사과와 그 보상을 받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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