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양복보다 작업복" 직장 그만두는 MZ, 어디로 갔을까

Z세대 응답자의 63%가 블루칼라에 '긍정적' 인식
타일기능사·도배기능사·지게차 운전기능사 등 자격증 인기
2030 MZ세대 전통적 직업관 탈피…취업 후 1년 이내 퇴사자 증가
늦깎이 유학, 유튜브 전향, 프리랜서 도전 등 다양한 행보

2030세대
2030세대 '블루칼라 청년들' AI 생성 이미지. ChatGPT

"떳떳하게 양복 입고 대기업 들어가야지.", "안정적인 공무원 돼서 정년퇴직까지 다녀야지.", "지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 학창 시절부터 취준생까지 어른들한테 지겹게 들은 잔소리들. 이 말을 듣고 자란 지금 2030세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술 배우는 Z세대, 자격증 열풍

지난 3월 28일 채용 플랫폼 캐치가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 1천603명을 대상으로 '연봉 7천 교대근무 블루칼라 vs 연봉 3천 야근 없는 화이트칼라'를 주제로 진행한 조사 결과가 주목을 끌었다.

'블루칼라'를 선택한 비중이 58%로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화이트칼라'를 선택한 비중은 42%였다. 더욱이 응답자의 63%가 블루칼라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Z세대의 블루칼라에 대한 인식. 진학사 캐치
Z세대의 블루칼라에 대한 인식. 진학사 캐치

이토록 블루칼라를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1위는 '연봉이 높아서'(67%)였다. 이어 ▷기술 보유로 해고 위험 낮음(13%) ▷야근·승진 스트레스 없음(10%) ▷빠른 취업 가능(4%) ▷AI 대체 가능성 낮음(3%) 등 현실적인 근거들이 나열됐다.

Z세대가 관심 있는 기술직 분야로는 IT·배터리·반도체(29%), 자동차·조선·항공(29%)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전기·전자(16%), 미용·요리·제과제빵(15%), 건설·인테리어(8%)가 뒤를 이었다.

실제로 지금 청년들은 자격증 따기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타일기능사 자격 취득자 3명 중 1명(35.2%)은 2030이었다. 현장직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여성 취득자의 비율도 10%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특히 도배기능사의 경우 2030 취득자가 38.7%였고 여성 취득자도 39.8%에 달했다. 중·장년층에게 인기 있는 자격증으로 알려진 지게차 운전기능사 역시 2030 취득자가 절반에 가까운 48.2% 수준이었다.

연령대별 초임임금 Top 10 종목(취업자수가 30인 이상인 종목 중에서 중위임금이 높은 순). 고용노동부
연령대별 초임임금 Top 10 종목(취업자수가 30인 이상인 종목 중에서 중위임금이 높은 순). 고용노동부

◆현장에서 만나 본 '블루칼라 MZ'

고학력자 블루칼라 종사자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 현장 기술직은 공부를 포기한 이들의 '대안'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이제는 일찌감치 기술을 배우거나 육체노동의 길을 선택하는 대졸자도 증가하고 있다.

이효윤(28) 씨는 계명대학교 화학과를 다니다 용접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현장직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효윤(28) 씨는 계명대학교 화학과를 다니다 용접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현장직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효윤(28) 씨는 계명대학교 화학과를 다니다 3학년 때 중퇴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대구직업전문학교에서 용접산업기사 취득 과정을 수료했다. 수료와 동시에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지난해 말부터 경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이 현장직이 힘들지 않겠냐고 조금 걱정하셨다"며 "처음에는 물론 힘들었지만 적응하니 할만하다"고 웃어 보였다.

그가 일하는 직장은 2030세대의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된다. 그는 용접이 필요한 곳이 많아 수요가 지속적으로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이 배울 의향이 있으면 도전해봄직하다고 했다. 그는 "다른 직종을 선택했다면 지금보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을 것 같다. 적성에 꽤 맞는 일을 잘 찾은 것 같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신진호(31) 씨 역시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택배 업무에 뛰어들었다. 한때 경찰공무원을 꿈꾸기도 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신의 직업을 찾았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택배 업무가 적성에 잘 맞아 벌써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신 씨는 "택배 업무의 매력은 하는 만큼 가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노동에 대가가 명확하다"며 현장직의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를 말했다. 활동적인 자신의 성향도 사무직보다는 현장직이 더욱 잘 맞았다고 했다.

그는 "사무직보다 사람과 마주할 일이 적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적고,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다"며 택배 업무의 장점을 설명했다.

남대구 기아 오토큐 종합정비업체에서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는 김기훈(30) 씨가 작업하고 있다.
남대구 기아 오토큐 종합정비업체에서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는 김기훈(30) 씨가 작업하고 있다.

사무직에서 현장직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남대구 기아 오토큐 종합정비업체에서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는 김기훈(30) 씨는 계명문화대학교 세무회계정보과를 졸업한 뒤 컴퓨터학원 강사로 일하다, 비전이 없는 것 같아 일을 그만뒀다. 가족 중 자동차 관련 직종 종사자가 많아 자연스럽게 접해왔고, 어릴 적부터 분해·조립하는걸 좋아했기에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근무 중인 업체에 2030세대는 6~7명 정도. 전체의 30%다. 그는 젊은 층이 예전에는 화이트칼라를 선호하다 최근 블루칼라로 향하는 추세를 너무나도 실감한다고 했다.

김 씨는 "그래도 전국에서 모이는 회사 교육에 참여하면, 젊은 층이 생각보다 많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다.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이들 모두 30대인 걸 보면, 자기가 진짜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거구나 하고 느껴진다. 예전에는 힘들다고 여겨지던 직종이지만 요즘 친구들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게 와닿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른 일을 하다가 넘어왔지만, 이 일에 상당히 만족한다. 특히 자동차 정비는 직접 사람 손으로 부품을 분해하고 교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기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만큼 직업의 지속가능성도 높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떠나는 MZ…직업관 변하고 있다

"퇴사할 거야. 누가 뭐라든, 내가 제일 중요해"

'직장인 3대 허언' 밈(meme) 중 하나가 바로 '진짜 퇴사하고 만다'다. 늘 퇴사를 갈망하지만, 이후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2030에게 이 말은 더 이상 빈말이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23년 100인 이상 기업 500곳 중, 신입 사원을 채용한 기업 중 81.7%는 입사한 지 1년이 안 돼 퇴사한 직원이 있다고 한다.

직장을 떠난 이들의 행선지는 다양했다. 비슷한 직종의 다른 회사로 옮기기보다 전업 유튜버로 전직해 월급 이상의 수익을 인증하거나, 30대에 훌쩍 떠나는 '늦깎이 유학', '워킹홀리데이' 등 색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투자 성공으로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 족'이나 홀로 일하는 '프리랜서' 전향자도 늘고 있다. 그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회사를 다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후 직업관이 바뀐 A(28) 씨.
회사를 다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후 직업관이 바뀐 A(28) 씨.

직장 생활을 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A(28) 씨. 그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다 호주에 온 지 반년째 접어들었다.

A씨는 "어려움도 있지만 호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최저 임금이 높고 온화한 날씨,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의 속도와 기준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라고 깨달았다"며 "다들 한 직장, 하나의 커리어만 정해놓지 않고 삶의 방향성을 다양하게 생각하는 걸 보면서 나 또한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일이 무엇일지 찾아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직한 B(27) 씨 역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직장을 다닐 필요가 있나 싶다. 다른 선택지도 많다고 생각하면서 다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C(29) 씨는 2년간 다닌 회사를 떠난 이유에 대해 "전 직장은 업무 강도 대비 월급과 연봉 상승률이 낮았다. 당연시되는 야근, 수직적인 조직 문화, 성과를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 등 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요즘은 전문직도 타 직종으로 이직하더라. 평생직장의 개념은 현대사회에서 희미해졌다고 생각한다. 고용시장이 불안정하기도 하지만 유망한 직업도 그만큼 빠르게 바뀌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 비해 이직이 자유로운 2030세대 AI 생성 이미지 . ChatGPT
과거에 비해 이직이 자유로운 2030세대 AI 생성 이미지 . ChatGPT

결국 MZ세대들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는 '안정적인 직장', '대기업 선호' 등으로 여겨져 온 전통적인 가치관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에 따라 직업을 쫓는다. 누군가에게는 그 기준이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이고, 누군가에게는 '돈'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분위기 보다 자신의 기준을 스스로 만드는 셈. 앞으로 이들이 선택할 직업의 세계에는 정말로 '귀천'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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