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수도권의 응모자들이 압도적인 가운데 놀랄 정도로 많은 작품이 응모됐다. 수준 높고 개성이 두드러진 작품들도 적잖아 우열을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고심하게 한 시는 '자화상', '점의 불면증', '근황', '우물이 깊어진 마당에', '나비' 등이며,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정한의 정서를 곡진한 감성으로 그린 '어머니의 장독'도 유보하기 아까웠다.
'자화상'은 햇빛에 녹아내리는 눈사람과 화자의 내면을 대비하며 자성적 자기 성찰을 희화화해 떠올린 시다. 환골탈태한 듯한 눈사람이 자신 안으로 들어온다든가 "일란성쌍둥이이듯/ 눈사람이 도리어 나를 해체하고 있다"는 등 욕망의 덧없음을 극대화하는 표현들이 범상하지 않다. '점의 불면증'은 점과 잠과 불면증, 새와 별과 화자의 함수관계를 개성적인 시각으로 분방한 상상력에 녹여 드러낸다. 점이었던 새, 잠 못 드는 푸른 점인 별, 허공의 점을 바라보는 화자(당신)를 들여다보거나 바라보면서 불면증과 잠에 대해 다각적으로 천착하고 있다.

길지 않고 밀도가 높은 산문시인 '근황'은 시각적인 이미지와 청각적인 이미지를 교차시키거나 중첩하면서 비애와 공포에 자유롭지 못한 내면 의식을 형상화한다. 화염 덩어리, 모든 게 창밖으로 사라진 캄캄한 밤, 오타 난 시간은 그런 근황 인식의 돋보이는 은유들이다. '우물이 깊어진 마당에'는 고향의 막다른 골목집에 사는 노모를 찾아갔을 때의 심경을 애틋한 회상과 연민의 시선으로 그려 보인다. 노쇠해서 지체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의 모습에 "만근 고요의 무게"나 "강물이 잠시 휘돌다 고르는 숨결", 시곗바늘의 초침이 분침을 향해 좁혀가는 간극, 천천히 식어가는 둥지라고 에둘러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자리가 따뜻하고 아름답다.

반닫이에 붙어 있는 나비 형상의 경첩이 나비와 봄을 소환해 아름다운 환상의 날개를 달게 해준 듯한 시 '나비'는 발상과 상상력이 발랄하며, 비약과 전이의 이미지들이 시적 묘미를 돋워 준다. 나비 한 쌍 날개 모양의 경첩이 열릴 때마다 반닫이 안의 꽃무늬 치마저고리들이 봄의 꽃밭 같아 보인다든지 나비를 '봄의 경첩'으로 비약하며 바라보는 시적 감각이 돋보인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큰주홍부전나비같이 미닫이문을 열었다가 닫듯 왔다가 가는 봄을 괭이밥풀꽃이 본다는 전이적 발상 역시 그렇다. '나비'가 가장 윗자리에 오른 건 그런 시적 묘미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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