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유럽까지 가는 항로가 10일 이상 빨라진다면 국제 상업 질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이 항로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2030년 여름철이면 얼음 없는 북극해에 수많은 상선이 오가는 광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반도에 자리 잡은 한국은 북극항로 만큼은 능동적 개척자로 나설 기회를 맞았다.
◆물류 혁신의 지름길
주로 러시아쪽 북쪽 연안을 따라가는 이 항로는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운송 거리와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화물을 실어 나른다고 가정하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전통 항로를 거칠 때는 2만2천km를 항해해야 하지만 북극해를 통과하면 1만5천km로 거리가 줄어 들어 약 32%나 감축된다. 그만큼 운항 일수도 10일가량 짧아져 한 달 남짓 걸리던 유럽행 선박이 약 20일대에 완주할 수 있고 연료비와 인건비 등 물류비용 절감 효과도 크게 나타난다. 실제 러시아 측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수송 거리를 40% 절약하고 시간,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북극항로는 거리, 시간면에서 물류 혁신의 지름길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21년 수에즈 운하가 대형 선박 좌초로 일시 마비되거나 최근 홍해 지역 분쟁으로 운항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체 항로로서 북극항로의 가치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러시아 쇄빙선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 등 제약이 있지만 기후변화로 얼음이 줄면서 이러한 제약은 점차 완화되는 추세다. 한국의 해양수산부도 2030년쯤에는 북극항로의 연중 일반 항해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북극항로는 경제적, 지정학적 새로운 기회로 평가된다. 우선 물류, 무역 측면에서 아시아-유럽 간 운송 거리가 단축됨에 따라 해운 물류비 경쟁력이 크게 향상된다. 이는 곧 유럽 수출입 화물의 운송비 절감에 도움을 주어 한국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수에즈 운하 및 말라카 해협 등 기존 해상 교통로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완화하고 국제 분쟁이나 운하 사고에 대한 물류 리스크 분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조선업과 해운업 분야에서도 북극항로는 새로운 활로로 꼽힌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쇄빙선과 내빙선 등 특수 선반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야말(Yamal) 프로젝트 등에 투입된 쇄빙 LNG 운반선 15척 중 대부분을 한국 조선소(당시 대우조선해양 등)가 수주하는 등 북극항로 관련 선박 수요의 상당 부분을 한국이 담당해왔다.
◆새로운 국제 질서
북극항로의 부상은 곧 국제적 패권 경쟁의 새로운 무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러시아, 중국, 미국 등 3대 강국이 각각의 전략과 이해관계에 따라 북극항로를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항로의 실질적 관리자로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자국 연안을 지나는 북동항로 대부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며 전략 자산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중국은 북극과 지리적으로 멀지만 근(近) 북극국가를 자처하며 발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에너지 확보와 물류망 다변화 두 측면으로 요약된다. 러시아의 북극 LNG 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고 자국의 수출품도 북극항로로 유럽에 신속하게 보내겠다는 계산이다.
알래스카를 보유한 미국은 한동안 상업적 북극항로에 소극적이었으나 최근 견제에 나서는 양상이다. 상업적 이득보다는 군사·안보적 고려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캐나다와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5개국도 북극 해역 당사자국으로서 각각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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