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06>선면화에 딱 제격인 호쾌한 시의도(詩意圖)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파도치는 강가, 호쾌한 풍경…훨훨 부치는 여름 부채에 제격

정선(1676-1759),
정선(1676-1759), '송지문 시의도(宋之問詩意圖)', 종이에 담채, 25.1×69㎝, 개인 소장

넓은 물결 위로 저 멀리 붉은 해가 떠올랐고 오른쪽으로는 웅장한 바위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전각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바다를 향한 제일 앞쪽의 누대에 일출을 바라보는 한 인물이 앉아 있다. 그 뒤로 높은 탑이 보여 전망 좋은 이곳은 사찰이다.

얼핏 바닷가 풍경인 것 같지만 물결 건너편의 이어진 산줄기, 그 아래 숲과 지붕들은 이 절벽이 강가에 있음을 알려준다. 선면의 오른쪽 끝에 써넣은 제화에 이 선면화의 주제가 드러나 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송지문(宋之問)의 시 '영은사(靈隱寺)'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누관창해일(樓觀滄海日) 문대절강조(門對浙江潮) 겸재(謙齋)

누각에서 푸른 바다의 해를 보고, 문에서 절강의 파도를 대하네 겸재(정선)

절벽 위 누각에서는 바다가 보이지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바로 절강의 강가라는 이 시구에서 멀리 일출의 바다와 건너편 마을이 보이는 강이 함께 그려진 이 그림이 나왔다. 절강은 항주 전당강의 옛 이름이다. 문제는 '절강조(浙江潮)'다. 전당강에 웬 조수(潮水)?

강물을 자세히 보면 물결 가운데 한 줄로 길게 띠를 이룬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안으로 밀려오는 부분이 있다. 강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파도치는 장면이다. 이 파도는 관조해(觀潮海), 전당관조(錢塘觀潮), 회두대조回頭大潮), 전당강대조(錢塘江大潮) 등으로 부르는 전당강으로 역류해 올라오는 바닷물을 그린 것이다.

전당강의 유명한 자연 현상으로 특히 일 년 중 바다의 수위가 가장 높은 대조기(大潮期)인 음력 8월 18일 무렵 만조 때면 마치 해일이 이는 듯 어마어마한 파도가 전당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대역류 현상이 일어난다. 이 지역의 특이한 지형 때문이다.

전당강은 항주 남쪽을 돌아 항주만에서 동중국해로 들어가는데 항주 근처에서는 약 2킬로미터에 불과했던 강의 너비가 항주만에 이르면 약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나팔 모양이 되기 때문에 만조 때면 병목현상으로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이다. 이 광경을 보려고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 지금도 항주시에서 관조절(觀潮節) 축제를 연다.

송지문은 이 광경을 시로 표현했고, 정선은 이 시구에 의거해 상상의 강남을 그림으로 그렸다. 회심의 주제였던 듯 정선은 이웃사촌인 문인화가 관아재 조영석에게 '절강추도(浙江秋濤)'를 그려준 일이 있고, 그림에 안목이 높은 소론계 명사 조귀명(1693-1737)은 정선의 '절강관조도(浙江觀潮圖)'에 발문을 남겼다. 강남 갔던 제비가 흥부에게 보은의 박씨를 물고 왔듯 중국 강남을 멀다고 여기지 않았다.

훨훨 부치는 여름 부채에 딱 제격인 호쾌한 시의도(詩意圖)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최근 '김남국 인사청탁 논란'과 관련해 도청 우려를 강조하며 모든 통화와 메시지가 감시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스코그룹은 2026년도 조직 개편 및 임원 인사를 통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해외 투자 사업을 가속화하기 위해 여러 조직...
과거 범죄 이력이 드러난 배우 조진웅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은퇴를 선언하며 사과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강제 전학 및 범죄 연루 사실이 밝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