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서시(序詩)'를 알지만, '서시'가 실린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를 처음에는 10권만 제본(1948년 2월 16일 윤 시인의 3주기 추도식에 헌정하기 위해 급히 제작)했다가 한 달쯤 뒤 초판본 1천 권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구문학관은 이 최초본 10권 중 1권을 깨끗한 상태로 소장하고 있다. 대구문학관 '열린 수장고'(관람객이 유리창 너머로 관람할 수 있는 수장고)를 통해 윤 시인의 창작 활동과 작품 출간에 얽힌 사연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대구문학관 소장 책은 2만여 권이다. 이 중 문학 사료적(史料的) 가치가 높은 책은 정지용의 백록담, 이육사 시집, 청록집 등 3천여 권이다. 이 중에는 조선동요연구회 발간 「조선동요집」(1927년), 김억의 「오뇌의 무도」(1923년), 현진건 번역 소설 「재활」(1928년) 등 발간 100년 안팎인 책이 10여 권 있다. 이 책들 역시 대구문학관의 '보이는 수장고'에 전시되어 있다.
대구문학관은 전국 공공 문학관 중에서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럼에도 희귀본 수집과 그 가치 발굴에 힘을 쏟는 것은 대구문학관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알다시피 대구 북성로와 향촌동은 근대 한국 문학의 중심지였고, 그 장소에 자리 잡은 대구문학관은 한국 근대문학, 6·25 피란 문학을 가꾸고 키우고 시민들에게 전할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대구문학관 주요 프로그램들 역시 '희귀본 수집'과 같은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역 문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문학방송-소요행간', 지역 신간 낭독회, 노벨 문학상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곱씹는 '포스트 노벨' 등 지역과 세계를 넘나드는 프로그램들이다. 여기에 북성로와 향촌동 등 근대문학 골목을 누비는 '대구문학로드', 다양한 '문학 강연 프로그램'이 연중 진행된다.
문학관이든, 기업이든, 정당(政黨)이든 자기만의 특색을 가꾸고 장점을 극대화하면 덩치가 작아도 얼마든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전국의 문학관과 문학 단체들이 대구문학관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온다는 사실, 대구문학관이 2025년 대구시 산하 위탁사업소 운영 성과 최우수군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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