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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조 첨단산업 투자, 수도권 블랙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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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투자·정부 예산까지 90% 집중…전력·RE100·산업안보 리스크 증폭
방산·SMR 등 전략산업 분산 배치 요구 커져

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반도체·바이오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에 투입하기로 한 예산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효율 논리가 국가 균형성장과 산업안보를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민간투자와 정부 예산까지 수도권으로 쏠린 구조 속에서 전력난, RE100(재생에너지 100%) 대응 실패, 유사시 산업 마비 가능성이 현실적 위험으로 부상했다.

◆투자는 수도권으로…비용과 위험은 지방으로

8일 김종민 무소속 국회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2023년 7월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통해 첨단산업과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에 총 6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562조원이 경기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에 집중됐다. 반도체 분야 투자액의 98% 이상이 경기 남부에 몰린 셈이다. 2024년 6월 지정된 바이오 특화단지도 전체 36조원 중 25조7천억원이 인천 송도에 배정됐다.

민간투자도 다르지 않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가첨단전략산업 관련 민간투자 718조원 가운데 약 90%인 648조원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2047년까지 예정된 반도체 투자는 경기 용인·평택에만 622조원이 몰렸고, 바이오 분야도 인천과 경기 시흥에 26조원 이상이 배치됐다.

지난 3년간 정부가 특화단지에 투입한 예산 3천594억원 중 73% 역시 수도권으로 향했다.

정부와 산업계는 효율성을 앞세운다. 첨단산업은 대규모 설비와 고급 인력이 필수여서 기존 인프라가 갖춰진 수도권이 최적지라는 논리다. 기업의 입지 선택은 시장의 결과라는 주장도 반복된다. 실제로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론이 불거지자 산업계는 '국가 경쟁력 훼손'을 방패 삼아 이전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 같은 효율 논리 자체가 과연 성립하는지에 대한 반문이 제기된다. 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송전 손실, 송전망 건설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단기 효율이 맞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이미 국가적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첨단전략산업 투자가 수도권에만 몰리는 것은 이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권과 전문가들도 단기 효율이 장기 국가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경고한다. 김 의원은 "국가 1년 예산에 맞먹는 620조원의 90%가 수도권에 쏠리면 지역 소멸을 가속하고 국가 기반 자체를 흔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전력·안보 한계 드러난 집중 전략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전력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본격 가동되면 필요한 전력은 10GW 이상으로 추산된다. 수도권 전체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달한다. 이미 전력 과부하 상태인 수도권은 자체 공급이 불가능해 동해안 원전과 화력발전소, 호남권 재생에너지 전력을 송전선로로 끌어와야 한다. 그러나 송전망 건설은 주민 반대와 비용 문제로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RE100이라는 글로벌 규범은 이 모순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태양광과 풍력이 풍부한 호남과 영남에서는 송전망 부족으로 발전 출력을 줄이는 일이 반복된다. 반면 수도권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해 발을 구른다. 전력은 남는데 쓸 곳이 없고, 공장은 몰리는데 전기는 없는 구조다. 지역 산업계에서는 "공장을 짓고 전기를 끌어오는 시대는 끝났고 전기가 있는 곳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번지고 있다.

산업안보 측면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대만 TSMC는 생산 기지를 북부(신주), 중부(타이중), 남부(타이난·가오슝)로 분산 배치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한다. 반면 한국은 휴전선과 가까운 수도권에 국가 핵심 산업 시설을 집중시키고 있다. 유사시 단 한 번의 충격으로 국가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첨단산업 분산 전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김 의원은 수도권·영남·호남을 잇는 'K-반도체 트라이앵글'을 제시하며 연구개발은 수도권에 두되 태양광 인프라를 갖춘 호남과 풍력·해양 자원이 풍부한 영남으로 생산 기반을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 의원도 "이대로라면 지방은 후방 생산기지로만 남게 된다"며 "국가산업 균형이 무너지면 균형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방위산업과 소형모듈원전(SMR) 같은 전략산업을 지역에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2028년까지 한국형 독자 SMR 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2030년 본격 건설을 목표로 한다. 허 의원은 "SMR은 인공지능(AI)과 방산, 기계 산업이 결합된 미래 산업"이라며 경북 경주와 울산, 경남 창원을 잇는 'SMR 파운드리 벨트' 구축을 제안했다.

김현덕 경북대 첨단정보통신융합산업기술원장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수도권 집중을 고착화하면 첨단산업은 성장 동력이 아니라 국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투자 논리를 단기 효율에서 장기 생존과 안보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략산업이야말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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