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금지."
우리 세대 기억 속 초등학교는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운동장으로 튀어나가던 곳이다. 공 하나에 수십 명이 매달려 뛰고, 넘어지면 무릎의 흙을 털고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서는 운동장에 잔디가 깔리고 골대가 서 있어도 공을 차는 순간 민원과 책임 공방이 따라붙는다. "다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질문 앞에서 축구공은 창고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교실로 되돌아간다.
학교가 이렇게 움츠러든 데는 이유가 있다. 학교안전공제중앙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학교 안전사고는 21만1천650건으로 집계됐다. 숫자가 커진 만큼 책임을 둘러싼 압박도 커졌다. 특히 자유놀이 시간에 사고가 몰리면 학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해법은 '금지'다. 그 결과는 씁쓸하다. 쉬는 시간은 움직임이 아니라 정지가 되고 복도는 이동이 아니라 통제의 공간이 된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 외 이동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나온다는 말까지 들린다.
수학여행도 같은 길을 걷는다.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를 따지기 시작하고 보험·민원·감사 걱정이 꼬리를 물면 학교는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는 결론으로 기운다. 1박 2일이 당일치기로 바뀌고 설렘 대신 빡빡한 일정표만 남는다. 사춘기 시절 조금 불편한 친구와도 한 이불을 덮고 밤새 속내를 나누며 관계를 배우던 시간은 아이들 인생에서 통째로 빠져나간다. 부모 세대가 '그때 그 여행'을 인생의 장면으로 간직하듯 지금 아이들에게도 그런 장면을 남겨줘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흐른다.
여기서 더 아이러니한 건 지금 학부모가 바로 운동장을 누볐던 그 세대라는 점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흔히 들었고 '체력이 국력'이라는 구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긁혀 오면 학교부터 찾는다. 우리는 추억으로는 '뛰놀던 학교'를 사랑하면서 현실에서는 '안 다치는 학교'를 요구한다. 그 사이에서 교사와 학교는 책임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고 결국 '금지'는 제도처럼 굳어진다.
그런데 몸을 쓰는 활동이 단지 안전과 충돌하는 선택지만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5~17세 아동·청소년에게 하루 60분 이상의 중·고강도 신체 활동을 권고한다. 움직임은 성장의 기본값이라는 뜻이다.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이어진다. 신체 활동이 인지 기능과 학업 수행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메타분석 결과도 보고돼 있다. 운동장이 사라지면 단지 추억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몸을 다루고 위험을 조절하며 관계를 배우는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에서는 새 교육감을 뽑는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까지 맞물리며 이번 선거는 TK를 대표할 통합교육감 선거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후보라면 이런 공약을 내걸지 모른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시키겠습니다." 너무도 당연해서 웃기지만, 그래서 더 슬픈 공약이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게 하겠다는 말이 공약이 되는 시대, 교육이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금지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학교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을 이유로 경험을 통째로 봉인하는 건 교육이 아니라 면피다. 아이들이 넘어지면 흙을 털고 다시 뛰는 법을 배우도록 학교가 "뛰어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축구를 금지하는 학교, 수학여행을 접는 학교가 늘어나는 현실 앞에서 묻고 싶다. 우리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두려움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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