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한규 칼럼]'사국지'로 본 삼한일통의 교훈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첫째, 나라의 일은 모두 사람이 하니 인재를 잘 골라 쓰시되 나랏일의 안팎은 거칠부가 믿음직하니 믿고 맡겨도 될 만합니다. 아울러 노리부와 같이 가야에서 온 신하도 충성스럽고 사람됨이 견실하니 중용하시기 바랍니다. 새로 신라 땅으로 만든 지역의 사람을 서라벌 사람 못지 않게 후대하여, 그들이 신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해야 하옵니다." <삼국지2/이사부·2 중원의 쟁투(爭鬪), 302쪽>

신라 장군 이사부가 81세 때 진흥왕에게 다섯 가지 국가정책 중 첫째를 엎드려 간곡히 건의하는 대목이다. 나머지 건의들도 이어진다. 둘째, 화랑은 인재를 길러내는 큰 그릇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한수와 동해를 지켜야 한다. 넷째, 부지런히 신라의 강역을 순수(巡狩.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해야 한다. 다섯째, 불법(佛法)을 더 융성하게 하여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고 부처의 왕이 되어야 한다.

대구출신 문학평론가 하응백의 신간 '사국지'에서 이런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사국지'는 고구려·백제·신라, 그리고 가야를 포함한 '사국(四國)'의 쟁투와 융합을 다룬 전5권의 대하 역사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역사서나 다름없다. 철저한 고증과 절제된 상상력이 돋보인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명제의 역사가에 딱 부합한 작가가 바로 하응백이다.

500여 권의 역사서와 1,000편이 넘는 논문을 섭렵하고, 삼국시대 격전지를 수십 차례 답사하면서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하응백이 "사실 이 소설은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일종의 교양 성장 소설"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하응백은 소설가로서 역사가이다.

'사국지'에서 오늘의 영남에 소환돼야 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일독한 소감으로는 '포용'이다. '사국지4/문무대왕·2개국(開國)' 308-309쪽에 나온다. 김춘추의 아들로 백제와 고구려를 합치고 당나라군을 물리친 신라 왕 법민(문무왕)이 죽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공이 있으면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상을 주었고 벼슬을 나누었다. 백성에게는 세금을 줄이고 부역을 덜어 집집마다 넉넉하게 살게 하였다. 백성은 평안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었다. 곳간에는 곡식이 산처럼 가득 찼고, 감옥에는 사람이 없어 잡초가 무성했다."

실제로 하응백은 조용호 KPI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폐쇄적인 골품제 국가였던 신라가 가야계를 받아들이고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흡수하여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이루었다"면서 "이 과정이야말로 인구 소멸과 다문화 시대를 맞이한 21세기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역설했다. "신라가 가야를 포용해 삼국통일을 이루었듯이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포용적인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16장에서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지상용 용내공 공내왕)"이라고 말했다. "늘 그러한 이치를 알면 포용하게 되고, 포용력이 있으면 공평하게 되고, 공평하게 되면 왕 노릇하게 된다"라는 뜻이다. 이는 '포용은 곧 공평·공정이며, 이는 곧 시민성(Citizenship)을 지향한다'는 의미와 같다.

'포용'은 힘이 있는 강자가 힘이 없는 약자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양보나 타협의 산물도 아니다. 조직과 예산을 기여도·성과에 따라 한쪽에 치우치지 않되 비례적으로 고르게 배분하는 것이다. 과정이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균(均)'이다.

'포용'은 삼국통일후 신라가 문화시대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됐다. 하응백은 이렇게 '후기(後記)에서 이렇게 밝혔다.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표현되는 화평원융(和平圓融)의 세계가, 처용이 노래하는 향가(鄕歌)의 세계가, 원효의 사상으로 구현되는 화엄(華嚴)의 세계가 활짝 열렸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에서도 '포용'이 키워드다. 대구가 경북을 포용하고 경북이 포용하면 완전한 행정통합이 이뤄진다. 포용이 이뤄지면 '민주적 시민성'은 저절로 굳건해지고 성장과 번영을 이룬다. 대구·경북 모든 시민들이 '왕 노릇'을 하게 된다.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대구경북(TK) 행정통합 논의가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이철우 도지사는 3연임에 도전하고 있...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 확산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한국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 4일 코스피는 12.06% 급락하며 사상 최대 하락...
무소속 강선우 의원이 지방선거 공천 대가로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그의 자택에 현금 보관 정황이 드러났다. 강 의원은 이 사...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후계자로 선출되었으며, 이란 정부는 강경 보수 정책..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