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포스텍)연구팀이 수백 년간 풀리지 않던 물의 특성을 세계 최초로 실험으로 규명하며 학계의 오랜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김경환 포항공대 화학과 부교수 연구팀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앤더스 닐슨 교수팀과 공동으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영하 60℃(도) 부근에서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지에 이날 게재됐다.
◆30년 논쟁에 마침표…"불가능한 영역"에 10년간 도전
물은 다른 액체와 달리 4℃에서 가장 무겁고, 그보다 차가워지면 오히려 가벼워지는 독특한 성질을 가진다. 이 때문에 겨울에도 강이나 호수는 표면만 얼고 바닥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남아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왜 물이 이런 특별한 성질을 갖는지는 과학계의 오랜 난제였다.
과학자들은 약 30년 전 이에 대한 해답으로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을 제시했다. 물이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이라는 두 종류의 액체상으로 공존하며, 특정 온도인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구분이 사라져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물이 된다는 이론이다. 학계에서는 이 임계점이 영하 40℃에서 영하 70℃ 사이의 극저온 영역에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물은 영하 40℃ 이하에서 매우 빠르게 얼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도 실험으로 임계점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고, 논쟁은 30년간 이어졌다.
연구팀은 이 '불가능한 영역'에 10년간 도전해왔다. 높은 압력에서 만든 비정질 얼음을 두 종류의 적외선 레이저로 동시에 가열해 영하 70℃에서 영하 60℃까지 얼지 않은 상태의 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물이 100만분의 1초 안에 얼어붙는다는 점이었다. 연구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PAL-XFEL)를 활용했다.
김 교수는 이 시설에 대해 "태양보다 수십억 배 밝은 빛을 내고, 이 빛을 통해서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거대 현미경 같은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온도가 낮을 때는 두 종류의 액체 물이 구분되어 존재하다가 영하 60℃ 이상에서는 두 종류의 물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30년간 가설로만 존재했던 '액체-액체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미 2017년 영하 43℃까지 얼지 않은 물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고, 2020년에는 관측 범위를 영하 70℃까지 넓혀 두 차례 사이언스지에 성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임계점 관측은 그로부터 6년에 걸친 추가 연구 끝에 이뤄낸 결실이다.
◆포항 가속기가 열어준 길
이번 연구의 핵심 장비인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2017년 6월 가동을 시작한 X선 자유전자레이저 시설이다. 4천298억원을 투입해 포항에 구축한 이 시설은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건설된 것으로, 유럽보다도 앞선 성과였다. 김 교수는 이 시설의 첫 번째 실험자로 선정돼 연구를 시작한 인연이 있다.
그는 "X선 자유전자레이저의 등장이 기존에 불가능했던 문제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기회를 줬다"며 "이런 환경을 갖춰 주신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아서 연구를 할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물의 특별한 성질과 액체-액체 임계점을 둘러싼 오랜 학계 논쟁이 마침내 매듭짓게 됐다"며 "이번 발견은 생명 현상을 비롯해 다양한 자연 현상에서 물이 갖는 필수적인 역할을 규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논문 제1저자인 유선주 포항공대 석·박사통합과정생은 "아무도 해내지 않은 일을 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다"며 "교과서에 실릴 만한 발견을 이뤄낼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1차관은 "김 교수는 2019년부터 과기정통부 우수신진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물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입증해 온 연구자"라며 "앞으로도 신진 연구자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구에 몰입해 세계적 석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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