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인간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창비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좋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다. 동화라서가 아니라 읽어야 할 책들이 산더미다 보니 장바구니에 장기간 머문 책 중 하나였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출간 된 건 1973년이다. 한국어판이 처음 나온 게 1983년이고 개정 3판까지 나왔으니 과연 명성만큼이나 그 역사가 찬란하다. 책은 아이들 동화인 동시에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 적합한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우애 좋은 형제, 요나탄과 스코르판이 낭기열라에서 독재자 텡일에 맞서 싸우는 동안 모험과 열정, 두려움과 용기, 억압과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책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두 개의 지점. 먼저, 스코르판은 '틀림없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틀림없이 그랬습니다."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왜, 형과 달리 동생은 틀림없다고 말할까? 라는 의문을 품었는데, 요나탄이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텡일이 살아 있는 한 틀림없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209쪽) 즉, 텡일이라는 거대 악이 득세하는 세상에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일 터. 80년대 군부독재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과 형제의 사투는 틀림없는 일과 예측 가능한 삶을 위해 텡일을 없애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친 성전에 다름 아니었다.

다른 맥락이지만 부연하자면, 내가 글쓰기 수업에서 신중하게 써야한다고 강조하는 것 역시 '틀림없다.'라는 표현이다. 가능하면 '분명하다'라고 쓰기를 권한다. 틀림없다고 쓰는 순간 단어의 강력함에 갇혀 확장 가능성이 사라지므로.

다음, "비겁한 베르크를 왜 살려줬어? 그게 잘한 일이었"냐는 동생 물음에 요나탄은 "어쨌든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인데, 만일 그걸 하지 않으면 쓰레기처럼 하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230쪽) 라고 답하며 동생을 감화시키는 대목이다. 이 말을 증명하듯 요나탄은 비록 적일지라도 "목숨을 빼앗는 것만은 못하겠"다며 신념을 굽히지 않는데, "사람들이 모두 자네 같다면 죄악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동지들이 말하자, 동생 스코르반은 "반대로 모든 사람이 요나탄 형 같다면 죄악 따위는 아예 생기지도 않았을 거라고" 대변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80년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훗날 정치판에 뛰어든 이들이 간과한 것,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이 지점이었다. 니체의 말대로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부단하게 경계했어야 했다. 반면 요나탄은 이 엄중한 상황에서도 상대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면서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지킨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인간이란 이런 것이 라고 말하는 『사자왕 형제의 모험』. 비극적 결말에도, 그래서 더 빛나는 이유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책 추천 글을(단상에 가까운 꽤 긴) 무려! 한강이 썼다. 내용은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80년 1월 서울로 올라온 한강에게, 광주의 아픔을 남의 이야기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던 기억을 가진 작가에게, 이 책이 남다를 거란 건 자명한 노릇. 감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추천사에 사족을 붙이거나 항거할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온라인서점에 '초등학생 명작 동화'로 분류된 책 위에 얹힌 글이라기엔 어떤 확고한 신념과 의도가 드러난다. 이 생각마저 감추기는 힘들다.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6·3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추경호 의원이 선출되었지만, 대구 의원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있어 민주당의 김부겸 후보가 전례 없...
대호에이엘은 작년 감사보고서 의견 거절로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된 후 내년 4월 14일까지 개선기간을 부여받았으며, 경영권 분쟁 대응을...
삼성전자 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하며 불참 직원을 압박하는 입장문을 발표했으나, 이를 작성한 최승호 위원장이 총파업 임박 시점에 동남아로 장기 ...
ABC 방송의 '지미 키멜 라이브' 진행자 지미 키멜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여사를 겨냥한 농담을 하며 논란이 일어난 가운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