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년, 격동 80년]이승만 대통령 영구 집권을 위한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발췌개헌 이후 치러진 1952년 8월 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고 국회권력까지 장악하게 된 이승만 대통령은 내친김에 대통령을 계속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하지만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은 중임까지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 규정을 바꿔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 라는 이상한 문구를 넣어 1954년 헌법을 다시한번 개정을 시도하게 된다. ◆3선 연임, 이승만 집권 연장의 꿈 이뤄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에 앞서 1954년 5월 20일에 있었던 제3대 총선의 결과가 매우 중요했다. 이 선거에서는 각 정당에서 한 선거구에 한 후보를 공천하는 정당 공천제가 처음으로 실시됐다. 4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 입후보자들에게 "개헌 조건부로 입후보케 하라"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즉 개헌 지지의 다짐을 받고 자유당 후보로 입후보하도록 한 것이다. 5월 20일 총선에서 자유당은 국회 203석 가운데 114석을 차지했으며, 제1야당은 겨우 15석에 불과했다. 이에 자유당은 개헌안 통과를 위해 무소속 의원들을 회유 또는 협박하는 방식으로 136명을 확보했다. 그리고 9월 6일 136명 의원들의 찬성 서명으로 개헌안은 국회의 공식 절차를 밟게 됐다. 정부는 이 개헌안을 이틀 후 공고했으며, 11월 1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공고 기간 동안에는 야당인 민국당과 무소속 동지회는 개헌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대운동을 치열하게 펼쳤다. 개헌안 표결은 우여곡절 끝에 11월 27일 비밀투표에 붙여졌고, 재석 202인 중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가 나왔다.이날 국회 사회자였던 최순주 국회부의장은 1표차로 개헌안의 부결을 선포했다.개헌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203명의 3분의 2 이상, 즉 135.333… 명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136표 이상이어야 하는데, 135.333… 명에서 0.5 미만의 끝다리를 떼고 135표 이상이면 가결이라는 논리를 궤변을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여권 인사들은 '저명한 수학자까지 동원해 203의 3분의 2를 물었고, 원하는 답(135명)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8일 정부와 자유당은 수학 용어인 '사사오입(四捨五入)'을 근거로 개헌안 통과를 주장했고, 29일 최순주 국회부의장이 개헌안 부결은 '계산상 착오'로 취소한 후 가결 통과를 선포했다. 이때 이철승 의원이 의장석에 등단하여 최순주를 멱살을 잡아끌면서 "내려와"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야당 의원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개헌안 '부결 번복 가결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온 국민의 눈을 가리는 기가 막히는 셈법이 동원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사오입 개헌(四捨五入 改憲)이다. 자유당은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해,개헌안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 이 사사오입 개헌은 자유당 몰락의 신호탄이 됐다. ◆대통령 하야 후 망명 "욕심이 화 불러" 사사오입 개헌의 최대 수혜자는 당연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초대 대통령(1948~52년, 간선제)에 이어 2대(1952~56년, 직선제), 3대(1956~60년, 직선제)까지 국가 수반의 자리를 차지한 것. 국무총리제는 폐지되었으며, 대통령 궐위시 부통령이 승계한다는 것도 명시했다. 개헌안 중 경제 체제의 중점을 국유·국영의 원칙으로부터 사유·사영의 원칙으로 이전한 것은 국민을 위한 진일보(進一步)한 내용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 무리한 개헌안 통과에 이은 3선 연임은 또다른 비극을 낳는 씨앗이 됐다. 당시 개헌안에 반대했던 세력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 야당 의원들은 범야당 연합전선을 형성했으며, 11월 30일 '호헌동지회'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결성했다. 또,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민주당)의 장면 부통령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사사오입' 개헌으로 4년 더 대통령직을 유지했지만, 한국 정치사에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선명하게 새겼다. 헌법에 명시된 '1차에 한해 중임 가능' 조항을 초대 대통령만은 예외로 한다는 헌법 개정 시도 자체가 비극의 단초가 됐다. 3선 대통령이 된 후에 4선 도전도 무투표로 당선됐다. 국민은 이 대통령을 용서하지 않았다.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인해 4·19 민주혁명이 발발했으며, 이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했다. 경무대(현 청와대)를 떠나 자택인 이화장에 잠시 머물다,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했다. 5년이 더 흐른 1965년 7월 19일 호놀룰루 요양원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2026-02-26 12:30:00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4>'의성을 빛내라' 성광성냥공장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겨울이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동화가 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이다. 성냥은 20세기에 일상 속의 소중한 도구로 늘 곁에 존재했다. 부엌이나 장터에서 불을 피우기 위한 수단으로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시골 마루에도 할아버지가 앉은 자리 옆에는 담뱃불을 붙이기 위한 큰 성냥통이 자리잡고 있었다. 〈strong〉◆의성 젊은이들의 소중한 일터〈/strong〉 경북 의성(義城)에 가면 1960년에서 1970년대까지 의성경제를 책임지다시피 한 엄청난 규모의 성냥공장이 있었다.성광(城光)성냥공장이다.의성 성광성냥공장은 1954년 6.25때 월남한 실향민 양태훈씨와 김하성씨가 설립됐다.당시로서는 자동화 생산 설비를 갖춘 혁신적인 공장이었다. 그리고 '의성을 빛내라'라는 의미를 담아 '성광(城光)이라는 회사이름을 지었다. 의성군 도심 한켠에 자리잡은 산업유산 성광(城光) 성냥공장은 1960년대 당시 의성군 관내 220명여 명의 젊은이들이 성광성냥에서 근무하거나 성광성냥과 관련된 일을 할 정도로 지역경제에도 기여할 정도로 소중한 일터였다.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과정은 사람이 일일이 하는 수작업에 가까웠다. 성냥 생산량이 늘면서, 성냥갑을 납품하는 하도급업체까지 두었다. 의성읍 사람치고 성광성냥 제조에 취업이든 부업이든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성냥공장에서 33년간 근무한 김한숙 씨는 회고록에서 "성냥공장가서 월급 타가지고 다달이 농협에 갖다 넣으면 1년만 되면 100만원 씩 이래 되거든요.(중략),적금 넣고 그거가지고 또 모두고 이래.그때만 해도 1억 가 있으면 평생 먹고 산다 캣거든요..."말했다. 〈성광성냥〉이 다른 성냥과 달리 쉽게 눅눅해지지 않는 두약(頭藥) 덕분에 경북은 물론 부산 경남지역과 습기가 많은 바닷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당시 이사를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성냥불처럼 재산이 확 일어나라"란 축복의 의미로 성냥이나 커다란 통성냥을 들고 찾아갔다. 전성기 이곳에서 생산된 하루 20만 보루의 성냥은 전국으로 유통됐다. 하지만 1980년대 가스라이터에 밀려 성냥산업도 차츰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국내 성냥공장들도 중국산의 저가 공세에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성광성냥도 2013년 결국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strong〉근현대 예비문화유산으로 재탄생〈/strong〉 성광성냥은 13년 전 가동을 중단했지만, 폐업당시 성냥을 생산하고 포장하던 모든 기계설비들이 근현대 예비문화유산으로 잘 보존돼 있다.의성군은 이 공장부지를 2년 전 18억원에 사들여, 올해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내년도 하반기에 산업유산 전시관으로 재탄생시킬 계획을 세웠다. 공장에 들어서면 원목을 잘라 성냥개비 크기로 절단하는 절단기와 성냥봉에 '두약'을 바르던 '윤전기'를 비롯해 성냥을 생산하던 모든 과정들이 온전히 남아 당시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윤전기는 지난해 말 국가유산청이 새로 도입한 근현대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성냥 제조 윤전기로서 역사적 희소성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산업유산은 문화로 꽃피울 채비를 하고 있으며, 추억의 성냥은 시대에 맞도록 변신중이다. 이에 발맞춰, 의성군도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을 진행 중이다.전면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 성냥공장 박물관과 전시체험관, 복합커뮤니티센터, 주민 활동공간 등을 차례로 조성할 방침이다. 현재 의성군이 확보한 사업비만 18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올해 1월 10일까지는 의성 성광성냥 공장부지에서 작가 김진우 기획전 '진화의 불씨'도 진행했다. 1954년부터 2012년까지 가동됐던 국내 마지막 성냥공장으로 산업화 시대의 기억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아냈다. 작가는 과거의 기계와 공간이 새로운 예술 창작의 에너지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구체적인 로드맵도 나왔다. 의성군은 1960~80년대 의성의 삶과 노동 그리고 지역 경제 활동지수 등에 대한 기초 조사 및 아카이브 구축을 하고 있다. 더불어 성냥 제조 과정을 체험 프로그램, 지역 청년 창업 연계, 관광 활성화, 성광 성냥 브랜드화(상품 개발) 등을 추진중이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성냥공장을 통해 의성의 근현대 산업사를 재조명할 수 있을 뿐더러 미래 문화유산으로서의 잠재적 가치가 높다"며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 거리 등 공장 주변까지 연계해 문화 관광의 거점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2026-02-26 12:00:00
[정치야설 '5분전']뿌리치기 힘든 유혹 '대통령의 선거개입'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 초청 회견 등 여러 공식 석상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후 대통령의 선거중립 위반으로 인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이어졌다.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법을 어긴 것은 맞으나 민주적 기본 질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할 정도의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탄핵안을 기각해 그 법적 기준을 더욱 구체화했다. 대통령은 헌법 제7조(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와 공직선거법 제9조에 근거해 선거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중에 소속 정당(집권당)을 어떤 방식으로든 도우려는 마음에 선거중립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李 대통령, 전재수 SNS 글 공유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 선거판이 뜨겁다. 국민의 힘 박형준 현 시장에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국회의원의 맞대결 양상인데, 이재명 대통령이 부산도 파란색으로 도배됐으면 하는 마음에 전 의원의 SNS(페이스북) 글을 공유했다. 정부 차원에서 부산 발전을 위해 전폭 지원할 것(해수부 이전, 해사법원, 동남권 투자공사 등)이라고 약속했다. 국민의힘 부산시당은 지난 20일 논평을 통해 "사실상 지방선거 힘 싣기이자 선거 개입"이라며 "부산의 품격에 먹칠하는 행위며, 대통령의 한없이 가벼운 처사에 유감을 표한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민주당 측은 "기소 여부도 확정되지 않은 사안을 근거로 정치활동과 표현을 통제하겠다는 것은 무죄추정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크게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文 대통령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청와대가 직접 나서 특정 후보(송철호 전 울산시장)의 당선을 돕기 위해 공권력을 이용했다는 의혹으로 현재까지도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오랜 친구인 송철호 후보를 위해 상대 후보였던 김기현 울산시장에 대해 하명 수사를 지시하고, 공약 수립까지 도우려 한 것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진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청와대 관계자들이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대통령 본인의 직접적 지시 여부는 법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 만큼이나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으로 인한 거센 비판에 직면한 사건이다. ◆朴 대통령, 공천 개입 논란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 개입 논란은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논란이다. 대통령이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국가기관과 조직을 동원해 여당의 공천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5년 11월 국무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한 발언에서 시작됐다. 이 발언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는 '진박 감별사' 논란마저 일었다. 친박계 의원들이 나서서 누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진실한 사람'인지 판별하고, 비박계 후보들을 밀어내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이 공천 개입 논란은 당시 새누리당 내 극심한 계파 갈등을 초래했으며, 김무성 당 대표가 공천 직인 날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옥새 들고 나르샤'(옥새 런)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尹 대통령, 민생토론회 논란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총선을 앞두고 1월부터 3월까지 전국을 돌며 24차례나 민생토론회를 연 것이 발단이 됐다. 논란의 핵심은 민생 행보로 볼 것인지, 관권 선거인지 여부였다. 야권 및 시민단체는 사실상의 선거 지원이며,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및 여권은 '정당한 국정 수행'이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부처 업무보고를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일 뿐"라며 "선거와 무관하게 민생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대통령의 고유 통치행위"라고 맞섰다. 2024년 10월, 서울 경찰청은 윤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사건에 대해 최종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검찰로 불송치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 토론회 개최 논란은 향후 선거 국면에서 대통령의 정책 홍보가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026-02-26 11:30:00
[커브스토리] 신뢰와 협력의 메시지 담은 '세기의 악수'
악수는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인사 방식 가운데 하나다. 단순한 예절을 넘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신뢰와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근·현대에는 신뢰와 협력의 메시지를 담는 상징적 행위로 인식된다. 특히 정치와 외교 현장에서는 악수 장면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갈등의 종식, 화해의 시작, 국제 질서의 변화를 상징하는 순간으로 기록돼 왔다. 역사 속에서는 한 번의 악수가 전쟁과 대립을 평화와 협상으로 전환하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악수의 기원은 고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낯선 이를 만날 때 상대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서로 오른손을 내밀어 잡는 행위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표시로 해석됐다. 곧,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음을 알리는 비언어적 신호였다. ◆근현대사의 '세기의 악수들' #1. '美 닉슨과 中 주은래' 적과의 화해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방중은 '전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라 불리며, 현대사 최고의 반전 드라마로 기억된다. 냉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미국과 중국이 20년 넘게 이어오던 적대 관계를 깨고 손을 맞잡다. 닉슨은 '악수'를 소통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1954년 제네바 회담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주은래의 악수를 거부했던 사건은 중국에 큰 굴욕이었다. 이를 의식한 닉슨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주은래에게 손을 내밀었다. #2. 동·서독 정상 악수 '핏줄의 재결합'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동독과 서독 지도자가 나눈 악수는 '분단의 시대가 끝나고 통일 독일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이정표였다. 이후 통일 독일은 단일 민족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유럽 강대국의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당시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와 동독의 신임 총리 한스 모드로(Hans Modrow)의 만남은 이웃나라 정상 간의 회동이 아니라 한 민족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거대한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두 정상의 악수는 '핏줄의 재결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3. 美 트럼프-北 김정은 첫 만남 '13초'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파격적인 형식과 장소 덕분에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두 정상은 성조기와 인공기가 교차 배치된 복도에서 걸어 나와, 정중앙에서 만나 약 13초 동안 악수를 했다. 트럼프는 상대의 팔을 가볍게 두드려 주도권을 쥐려 했고, 김정은도 이에 맞서 굳건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이는 "우리는 대등한 대화 파트너"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시각적으로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4. '南-北 만남' DJ와 김정일 두손 맞잡아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한반도 분단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55년 분단의 벽을 허물고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장면이 TV로 생중계되자, 전 국민은 '공존과 화해', '한반도 냉전의 해체'를 기대했다. 이후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만남 그리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 이은 판문점 회동에서도 남북 정상간 악수는 양국간 화해 물결의 알리는 장면으로 각인됐다. 2000년대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 중 3번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실질적 핵폐기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악수가 외교적 '신호'로서의 의미는 컸지만, 실질적 정책 변화를 담보하지는 못했다. 정상 간의 악수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몇몇 괴팍한 정상들은 악수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기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 국가간 외교에서는 따뜻한 손길로 신뢰의 물꼬를 트는 반가움을 담아 서로 손을 내민다. 단순한 인사를 넘어 외교 수단으로 활용되는 악수, 정상들의 맞잡은 두 손에 세계의 평화와 미래가 달려 있기도 하다.
2026-02-19 12:30:00
20일부터 기초단체장을 비롯한 광역의원,기초의원 출마자들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다.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는 순간부터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인 선거운동이 가능해진다. 대구·경북(TK) 지역 특성상 보수 성향의 특정 정당(현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해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곳이다. 정당 내 후보를 뽑는 경선이 훨씬 더 치열하고 실질적인 승부처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본선 투표보다 "누가 공천을 받느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비후보자들의 시계는 이미 뜨거운 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선거 현장에서는 "눈은 마음을 보고, 손은 표심을 잡는다"는 말이 있다. 현장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손을 잡으며 건네는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 그 지역의 민심과 후보자에 대한 기대치 아니면 불신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주간매일 취재팀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출마했던 후보자들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뜨거웠던 선거운동 현장을 재구성한다. ◆대구 서구 북비산네거리 인력시장 어스름한 새벽, 불을 밝힌 인력시장 앞으로 한 기초의원에 출마한 예비후보가 나타났다. 두툼한 장갑을 벗어 던지고 맨손을 내미는 그의 손끝이 금세 벌겋게 달아오른다. 후보자: "안녕하십니까, 서구의 일꾼 OOO입니다!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늘 꼭 좋은 일자리 잡으시길 제가 응원합니다" 유권자: 한 중년 남성은 투박한 손으로 후보자와 악수하며 되물었다. "허~ 허~, 후보님 손은 참 따뜻하네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 일자리 걱정 안하게 마음도 좀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소?" 짧은 악수였지만, 그 안에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민심이 실려 있었다.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 한 표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는 좋은 악수의 사례로 보인다. ◆대구 중구 서문시장 대구 민심의 바로미터이자, 사람들이 모여서 활기가 넘치는 서문시장. 이곳의 악수는 유독 길다. 상인들은 후보자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채,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후보자: "어머니, 저 예비후보자 OOO입니다! 요즘 장사는 좀 어떠십니까? 물가가 너무 올라 걱정입니다." 유권자(옷가게 운영): "아이고, 내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인데. 선거 때는 이렇게 손도 잘 잡아주면서, 당선되면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 아니야? 이번엔 진짜 믿어도 되는 거야?" 후보자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한 표를 얻기까지 악수도 쉽지 않다. 요구하는 것이 많을수록 악수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말이 많으면, 초점도 흐려지기 마련. 적당히 잘 치고 빠지는 것도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대구 수성구 범어역 지하철 입구 출근 인파가 쏟아지는 이곳에서의 악수는 '속도전'이다. 수성구 시의원에 출마한 한 예비후보자가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명함을 건네고, 찰나의 악수를 건넨다. 후보자: "좋은 아침입니다. 기호 0번 OOO, 젊은 대구를 만들겠습니다. 오늘도 힘내십시오!" 유권자(30대 직장인): "(명함을 받으며) 나중에 읽어볼게요. 출근길이라 좀 바빠서요." 이곳의 후보자들은 무관심이라는 벽과 싸운다. 수백 번의 거절 끝에 얻어낸 한 번의 악수가 후보자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다. 악수를 받아주는 유권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한번씩은 지인들이 와서 역으로 악수를 청할 때는 힘이 절로 난다. ◆대구 동구 신암동 평화시장 골목 동구 기초의원 예비후보자가 지나는 유권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후보자: "어르신 잘 지내십니까?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 OOO입니다. 머슴처럼 부려 주십시오.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유권자: "악수만 하지 말고, 저기 골목길 가로등 꺼진 것부터 좀 봐줘요. 무서워 죽겠어요." 후보자는 유권자가 '동네의 일꾼'임을 체감하며, 꼭 당선되면 바꿔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악수는 단순히 표를 구걸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유권자에게는 '나를 잊지 말라'는 당부이며, 후보자에게는 '책임지고, 잘 하겠다'는 서약이다. 선거철의 뜨거웠던 악수가 당선 후의 차가운 외면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그 짧은 악수의 감촉을 기억하며 지켜보고 있다.
2026-02-19 12:30:00
"잡는 순간, 감이 옵니다." 6·3 지방선거가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2022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 지방선거에서는 주먹 인사로 대체되었던 후보자들의 악수가 다시 선거판의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후보자들은 악수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한다. 이달 3일 지방선거에 출마할 시·도지사 예비후보들의 등록이 시작되면서 본격 선거레이스가 시작됐다. 예비 후보자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거리와 시장, 경로당 등에서 유권자들의 손을 잡고 허리를 굽히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풀뿌리 민주주의 꽃인 지방선거는 여전히 발로 뛰는 선거라 악수를 잘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짧은 접촉이지만, 그 손길에는 후보자의 메시지, 선거 전략이 고스란히 담긴다.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책 공약이나 연설보다 유권자와의 가장 직접적인 '스킨십'이자, 짧은 찰나에 진심을 전달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악수에 대해 "가장 원초적인 정치 행위"라고 말한다. 눈을 마주치며 손을 맞잡는 행위는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존중한다는 신호다. 하지만 악수 정치에도 한계가 있다. 형식적으로 반복될 경우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비판을 받으며, 실제 득표와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2026-02-19 11:30:00
국가간 외교에서 악수는 우호와 존중을 드러내기 위한 만남의 시발점 역할을 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힘의 우위를 드러내기 위한 '무례함'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고약한 악수법으로 전 세계에 정평이 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악수한 손에 힘을 꽉 주거나, 상대의 손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손을 약 19초 동안 꽉 움켜쥐어, 당시 CNN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어색한 악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례한 악수에 대해 반격(유럽의 자존심)에 나서기도 해 화제성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2017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똑같은 방법으로 악수를 하며 기선 제압을 하려 한 것. 현장에 있었던 한 기자는 이 장면을 "손가락 관절 부위가 하얗게 변했고, 둘 다 이를 악물었으며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고 상세하게 알려줬다. 고약한 악수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빠질 수가 없다. 푸틴 대통령은 악수 직전까지 오른손을 가만히 있다, 갑자기 짧고 강하게 내미는 동작을 해 상대에게 예기치 못한 긴장감을 주는 스타일이다. 이는 과거 KGB 요원 출신으로 언제든 품 속의 권총을 바로 꺼내기 위해 익혔던 습관으로 알려져 있다.
2026-02-19 11:30:00
정치권에서 '악수'가 소통과 약속의 언어라면, '붕대 감은 손'은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보내는 강력한 시각적 훈장이다. 한국정치사에서 '붕대 악수'를 하나의 상징으로 만든 인물은 단연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2000년대 중반, 각종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섰던 박 대통령은 하루에도 수천 명의 유권자와 악수를 나눴다. 손이 붓고 염증이 생겨 피가 날 정도가 되자, 오른손에 하얀 붕대를 감고 유세현장에 나타났다. 이 붕대 악수는 보수 지지층의 결집을 끌어내는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이달 8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는 자민당의 압승을 이끈 다카이치 총리가 선거 기간 내내 오른손에 하얀 붕대와 보호대를 감고 나타나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 유권자들, 특히 2030 세대에게는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 다카이치 총리의 선거 동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억뷰를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집권 자민당은 다카이치의 인기에 힘입어, 전후(1945년) 중의원 선거 최초로 단일 정당이 개헌 가능 의석(310석)을 넘겨 316석이나 얻었다.
2026-02-19 11:30:00
[커브스토리]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 정치판 악수 논쟁
정치는 그야말로 '악수의 연속'이다. 정치인 간 사이가 좋든 나쁘든 늘 오가는 의례 행위다 보니, 매우 중요한 정치적 행위로 통한다. 하지만 정치인이 눈빛을 마주치지 않거나, 악수를 거부하는 순간은 '무례'가 아니라 분명한 의도가 담겨 있는 정치적 언어로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악수 거부는 2025년 하반기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상징적인 사건이다. 당 대표로 선출된 정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대해 "불법계엄 내란 세력의 진솔한 사과 없이는 악수하지 않겠다. 악수도 사람하고 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발언을 쏟아냈다. 정 대표는 지난해 광복절 기념식에서도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과 나란히 앉았지만 행사 내내 쳐다보지도 않았고, 손을 내미는 행위조차 거부했다. 이에 송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나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하고만 대화한다"고 되받아쳤으며, 둘의 감정 싸움은 '인격 비하'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에앞서 2022년에는 이준석 전 당 대표와 배현진 전 최고위원 사이의 이른바 '악수 패스'와 '어깨 찰싹' 사건은 공적인 자리에서 서로 감정적 갈등이 여과없이 드러난 대표적인 장면으로 두고 두고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젊은 지도부의 극심한 주도권 다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악수 거부와 악스 패스 등을 보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싸워도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과 "오죽했으면 저러겠느냐"는 옹호론이 팽팽하게 맞서기도 한다. 정치평론가들은 "정치권에서의 악수는 상대와의 현재적 관계성에 따라 표정과 행태가 달라지는 고도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2026-02-19 11:30:00
[털보기자의 '그 사람']윤 회장이 전하는 삶의 지혜와 격언
윤 회장은 늘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고 살아왔다. 85년 성공적인 삶을 이끈 지혜와 깨달음 등을 엮어 자신만의 인생 조언 및 격언들을 들려줬다. 먼저 하루를 즐겁게 사는 10가지 방법이다. 1. 자신의 장점을 바라보고, 스스로 확신하라. 2. 남과 비교하지 말라. 3.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하라. 4. 자신에 대한 불행감이나 허무감을 버려라. 5.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과 교제하라. 6. 지나친 죄의식은 갖지 마라. 7. 모든 일에 머리를 쓰라. 8.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라. 9. 어린 아이처럼 하루를 시작하라. 10. 당신을 구속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생각이다. 더불어 '공짜로 기억력을 키우는 습관'도 공개했다. ▷햇볕은 뇌 발전기(햇빛은 비타민 D 합성) ▷신선한 공기는 뇌 활성화(하루에 제일 많이 먹는 것이 공기) ▷칭찬은 뇌를 빛나게 한다 ▷웃음은 평생 건강(웃을 때 온몸 200여개의 근육 진동) ▷양손 쓰기로 쌍방향 통합 뇌 쓰기 장려 ▷냉수로 뇌를 식히자(뇌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열) ▷잠 빚은 카드빚보다 무섭다(뇌의 피로를 풀고, 에너지를 아껴야). 여행의 소중함도 강조했다. 틈만 나면 무거한 배낭을 메고, 해외로 떠난다. 손주와 함께 가기도 하고, 아내를 대동해 며느리와 함께 훌쩍 떠나기도 한다. 자신의 여행 배낭을 예찬하기까지 했다. "나의 양쪽 어깨에 매고 있는 배낭은 내 삶의 흔적입니다. 목표는 정상이지만 잠시 내리막길은 자신을 돌아보는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그는 "내 인생의 잠든 것 외 휴일은 없다"며 "영원한 휴일(죽음)은 따로 기다리고 있다"고 터털웃음을 지었다.
2026-02-12 12:30:00
[털보기자의 '그 사람']"앗! 나의 실수, 달성군수 출마"
원도 한도 없이 살아온 윤 회장이 단 한가지 실수로 달성군수 출마를 꼽았다. 이 나라의 지방자치가 시작되던 1996년 논공 출신인 그는 무소속으로 단기필마 달성군수에 도전했지만 2천여 표 차이로 낙선을 고배를 마셨다. 인생의 첫 쓰라린 맛이었다. 당시 동향인 하영태 후보와 표가 갈리면서, 다사 출신 양시영 후보가 당선됐다. 이후 출마는 하지 않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달성군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물신양면으로 도왔다. 그 댓가로 이후 군수 공천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고사했다. 이유는 정치에 맞지 않는 아내의 성격도 한 몫했다. 그는 "온 가족이 고생하는 것은 1번으로 족하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지난 군수 출마의 아픈 기억을 회고했다.
2026-02-12 12:30:00
[털보기자의 '그 사람']윤석준 대구 유림회장 "85년, 화려한 흔적들"
"85년 동안 할 거, 못할 거 다 했습니다." 윤석준 대구 유림회장(성균관 33대 수석 부관장)은 설 연휴 아래 이 코너의 적임자라는 판단으로 지난 2일 (주)벽산기업 대표실에서 4시간 동안 만났다. 때마침 지난 85년 세월의 흔적을 담아낸 [나와 함께 한 백년지(百年誌] 마무리 집필 중이었다. 백과사전과 같은 사진첩을 보며 '어떻게 이 많은 일들과 직책을 다 맡을 수 있었을까?' 놀라울 따름이었다. 1941년에 비슬산 줄기가 낙동강 하류로 연결되는 파평 윤씨 가문(달성군 논공읍 하리)에서 태어난 그는 온 몸으로 부딪치며, 한세기 가까이 파란만장 광폭 행보를 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잘한 것은 만 21세가 되던 1962년에 '내조의 끝판왕' 구월점 여사를 인생 파트너로 맞은 것이다. 그의 인생철학을 통해 설 덕담을 들어본다. "친한 사람일수록 본인의 단점은 물론 남의 단점도 말하지 말거라. 그분의 입은 천개, 만개가 되고, 너의 실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SKY 대학원 섭렵, 美 웨스턴대 경영학 박사 윤 회장의 학력은 가히 상상 초월이다. 대한민국에 이런 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주경야독으로 18세에 달성군 논공면 지방 공무원이 되었으며, 이후 영남대 상경대학을 졸업했다. 화려한 스펙은 대학 졸업 이후 시작된다. 연세대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시작으로 서울대 경영 및 행정대학원을 거쳐 미국으로 넘어간다. 웨스턴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고위 정책과정까지 수료했다. 공무원을 그만 둔 이후에는 사업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대구 성서공단에 벽산기업과 매일식품을 창업해 중견기업으로 우뚝 섰다. 미국 유학에서 배웠던 경험들과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과 인맥들을 활용해 각종 사회활동도 다채롭게 병행했다. 1970년 경북 관광협회장에 이어 1971년 서울신문 대구경북 지사장까지 맡았다. 1979년 366지구(현 3700지구) 새대구클럽 창립회원으로 시작해 총재 특별대표까지 역임했다. 1989년에는 현풍학교 향림회 초대회장을 시작으로 ▷2015년 성균관 달성 유도회장 ▷2018년 성균관 부관장 ▷2019년 성균관 수석 부관장 ▷2021년 대구 유림회장까지 맡았다. 1996년에는 세계프로레슬링(G.W.F) 대회장까지 맡기도 했다. 그는 "배움은 나의 영원한 재산"이라며 "지혜로운 욕심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조언했다. ◆"58 개띠, 나이를 모르고 살았노라" 윤 회장은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58년 개띠"라고 한다. 58년생이 아니라 85년 인생을 나이를 잊고 살아왔다. 백세시대에 딱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 지방 공무원으로 시작해 기업가로 변신해 전 세계를 누비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1분1초를 아끼며 살았다. 85년을 되돌아보니, 화려한 업적들과 함께 작은 행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윤 회장의 집안에는 늘 좋은 일들이 끊이질 않았다. 3대에 걸쳐 효부상을 수상했다. 김경상 할머니에 이어 채수금 어머니 그리고 아내인 구월점 여사가 대를 이어 파평 윤씨 종친회가 공식 인증하는 효부가 됐다. 그는 "할머니, 어머니도 그 시절에 온 동네가 인정하는 효부였지만, 여지껏 한번도 집안 일에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아내의 어진 마음에 존경을 표한다"고 밝혔다. 자녀는 아들만 셋이다. 영대·창대·정대 씨로 며느리 셋을 맞이해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장남 영대 씨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장군(준장)으로 전역해 현재 대구시 군사시설이전본부장을 맡고 있다. 차남 창대 씨는 뇌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손자 성현 씨는 군 복무 중 아이티 파병단에 이름을 올렸다. 늘 배움을 강조하는 집안 분위기 탓에 첫째 며느리 신성임 씨도 경북대 농학박사 학위를 땄다. ◆문화예술인 그리고 골프를 사랑한 남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윤 회장은 (주)벽산기업을 본격 궤도에 올려놓은 이후 본격적으로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그 세월이 어언 30여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명 예술인 등과 주고 받은 그림 또는 서예 연하장들만 모아 10폭, 12폭 병풍을 4틀이나 만들 정도다.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81년 대구 대명동 자택을 직접 방문해 거실에서 직접 그린 작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 지역 예술인들을 도와주는 문화 메세나 활동도 이어갔다. 골프 사랑도 남다르다. 그는 "지천명(50세)이 훌쩍 넘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는데, 지구 상에서 최고의 신사 운동"이라며 "제 성격과 적성에 딱 맞았다. 인의예지((仁禮義智)를 겸비한 매너운동"이라고 극찬했다. 늦깍이 골퍼였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배웠다. 입문 15개월 만에 '싱글'(79타 이하)을 쳤으며, 이븐파(72) 기록도 갖고 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 친선 골프대회 때 롱기스트( 268m) 트로피도 갖고 있으며, KPGTA 티칭 프로에 합격도 했다. 장학사업과 종친회 활동에도 전력을 다했다. 자수성가한 만큼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돌보는 일에도 늘 관심을 쏟았다. 모교인 현풍중·고교에 총동창회장을 맡아, 10년 넘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현풍향교에는 초대회장을 맡아, 향림장학회를 설립했다. 또, 기업 차원에서도 벽산장학회를 통해 매년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전달했다. 1994년에는 경북 향교 회장과 중앙회 부회장을 맡아, 한국 도덕성 회복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정말 후회없이 살았노라"고 갈무리 멘트로 인터뷰를 마쳤다.
2026-02-12 12:00:00
[정치야설 '5분전']'뻘밭 윷놀이판'에 빗댄 현 정치판
"한동훈 말 낙(落), 장동혁 도, 전준철 특검 카드는 뒷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합당은 말 합치기 실패 등"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윷놀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치열한 전략과 운, 그리고 반전이 숨어 있다. 이는 변화무쌍한 현재의 정치 상황과도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설 연휴를 맞아 윷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정치판을 윷놀이판에 빗대어 짚어본다. 정치판도 윷놀이처럼 윷이나 모가 나오면 제일 좋지만 현실에선 개나 걸도 잘 나오지 않는 게걸음을 하고 있다. 양당 모두 극한 갈등과 내분에 휩싸여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윷판에서는 4개의 말이 나야 하는데, 모→걸→윷이 나오면 최상의 지름길이다. 2,3개를 합쳐서 빠져나오게 되면 더 없이 좋다. 하지만 다른 팀에서 잡아버릴 경우 원점에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현 정치판은 여야가 극한 대치를 하며,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진흙밭이다. 밤을 새도 윷놀이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집권여당 민주당 "뒷도" or "말 합치기 실패"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집권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청 간의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봉합될 여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극본적인 원인은 친명 세력이 정청래 당 대표 체제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이 꺼내든 2차 종합특검 후보 전준철 변호사 카드는 확실히 '뒷도'가 나왔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건태 민주당 의원은 8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며, 명백한 반역"이라고 맹공을 퍼부었으며, 박홍근 의원은 SNS를 통해 "이재명 죽이기에 동조했던 검찰 출신 법조인"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이성윤 민주당 최고위원은 9일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발 물러났다. 정청래 대표도 "대통령께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내에서 터져나온 김병기-강선우-김 경으로 이어지는 공천헌금 파문 역시 악재로 '뒷도' 정도의 윷놀이 악재로 보인다. 향후 또 어떤 악재도 터질 지도 모른다. 3월 이후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터지는 '뒷도' 한방이 다 이긴 게임(지방선거)을 엎을 수도 있을 만큼, 되돌릴수 없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설 연휴 전 합당 카드는 '말 합치기' 전략 실패로 보여진다. 4개의 말이 각자 도생으로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당내 계파 분열로 가속화되고 있다. 친명 세력은 집권 초기 대통령의 강한 그립을 바탕으로 견제 세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친청계(친정청래)와 친문(친문재인) 계파는 대안 세력으로 차기 권력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며 맞불작전을 놓고 있다. ◆제1야당 국민의힘 "낙"(落) 또는 "도" 107석(개헌 저지선 100석 겨우 넘김)을 보유한 국민의힘도 윷놀이판에서 지리멸렬한 건 매한가지다. 중요한 길목에서 던졌는데, 윳놀이 막대기가 판 밖으로 뛰어나가 무효가 되거나 매번 한칸 전진하는 "도"만 던지고 있다. 같은 팀(당원과 보수성향 지지층)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누구하나 개나 걸만 던져줘도, 박수치며 환호해 줄 판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제명은 일종의 '낙'이다. 그리고 본인은 윷놀이 팀에서 다른 놀이판으로 뛰쳐 나갔다. 친한파로 분류되는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마지막으로 함 던졌는데, 결국 '낙'(9일 제명 결정)이다. 하지만 둘은 '낙'이 아니라며, 북콘서트를 여는 등 다시 원래 판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당내 강경파는 "고름"이라며 짜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부르짖고, 중도 소장파들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이라고 지도부를 공격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당 지지율 답보 상태의 "도"(1칸 전진)만 계속 던지고 있다. 하지만 향후 윷놀이판의 전략은 선명해 보인다. '낙'을 계속해서 던지는 일명 내부 총질러들을 한 팀에서 방출한 후에 개나 걸, 윷이나 모를 던질 수 있는 여당 저격수를 투입해 6.3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양당은 6.3 지선이라는 거대한 윷판 앞에 서 있다. 물론 판단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어떤 정당이 좋은 지략과 함께 윷을 잘 던지는지 설날을 맞아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아직은 양당 모두 출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 하나도 결승전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선거 전문가들은 "양 팀 모두 초반에는 깽판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며 "선거가 다가올수록 각 당의 승리 전략에 필요한 윷 던지기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데, 엉망진창 무효판이 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2026-02-12 11:30:00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3>문경 쌍용양회 시멘트 공장 '근대화 초석'
"한국경제 재건과 경제발전의 초석". 경북 문경에 세워진 현대식 시멘트 공장은 우리 손으로 집을 짓고 길을 닦는 데 필요한 시멘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 재건과 발전을 위한 든든한 초석이 되고 있습니다.".1960년대 사회생활 5-1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다. 문경시청에서 10여분 거리에 6만여 평에 이르는 거대한 공장이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온다. 그 자체가 산업유산임을 알 수 있고, 공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근대로의 시간여행을 온 것 같다. 바로 문경시 신기동(점촌 4동)에 자리하고 있는 쌍용양회 문경 시멘트 공장이다. 해방 이후 최초의 이 시멘트 공장은 현재 원형의 80% 이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957년에 이 공장을 지었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전쟁 이후 경제재건에 나선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과 정부 관계자들의 발빠른 대처가 돋보인다. 1953년에 이미 공장부지를 선정했으며, 1954년 덴마크의 스미스사와 10만톤 규모의 습식 시멘트 공장 건설을 계약했다. ◆유엔한국재건단(UNKRA) 주도 공장 건설 전쟁 중인 1951년 7월에 유엔한국재건단 부산사무소는 문을 열고, 문경 시멘트 공장을 비롯해 인천 판유리, 충주 비료공장, 국립중앙의료원 등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설정했다. 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인 공장 건설에 돌입했다. 문경시 신기동 일대 야산에는 향후 40년 동안 사용할 석회석이 매장돼 있었다. 덴마크 스미스사의 기술자들은 2년 동안 현장에 파견돼, 시멘트 공장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마침내 1957년 9월 26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양회'라는 이름의 연간 24만톤 생산 규모의 공장이 준공됐다. 도로, 항만, 관개수로, 주택 등 시멘트 수요량이 폭증하면서 제3킬른(1961, 재료를 고온으로 올리는데 사용되는 파이로 프로세싱 장치)과 제4킬른(1968)을 추가로 설치했다. 1965년에는 국내 최초 레미콘 공장을 지었으며, 시멘트로 근대화의 초석을 다지는 주역이 됐다. 1970년대에는 2번이나 운영권이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1971년 대한양회는 원풍산업으로, 1974년에 다시 쌍용양회가 인수해 2018년 공장 가동 중단 때까지 경영했다. 현재 쌍용양회는 강원도 영월과 동해 공장에서 우리나라 전체의 3분의 1에 가까운 시멘트를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 문경시는 2020년 5월에 125억원을 들여, 문경 시멘트 공장을 인수해 산업유산으로 지정했다. 현재는 어떻게 관광산업으로 활용할 지 고민중이다. 임정환 문경팩토리아팀장은 "향후 이 시설을 어떻게 문화관광산업으로 활용가치를 높일 지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50년 역사의 산증인 고재화 관리인 주간매일 취재팀이 도착하자마자 반갑게 맞아준 고재화(70) 관리인은 이 공장과 올해로 50년을 함께 해온 산증인이다. 고 관리인은 1976년에 입사해 주로 품질관리과에서 일하며, 2018년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퇴사했다. 하지만 또 문경시에서 가동을 멈춘 공장 관리인으로 계약을 맺어, 아직도 이곳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때는 이곳 시멘트 공장으로 인해 문경 전체가 활력이 넘쳤다. 시내 술집에는 새벽까지 근로자들로 북적여서며 거리에는 개가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경기가 활황을 누렸다. 개봉 극장도 따로 있을 정도였다. 공장 직원이 1천200여 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 지금은 좀 쓸쓸하다. 20만명이 넘던 문경시 인구도 이제는 6만여 명으로 반에 반토막이 났다." 그는 취재팀을 곳곳으로 안내하며, 공장부지 내 시설 곳곳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석회암 덩어리를 채취해 10도 경사진 대형 쇠파이프를 따라 4곳의 킬른(일종의 고로)을 통해 6천 톤에 이르는 시멘트를 담아두는 탱크(자이로 믹서)에서 레미콘 트럭에 싣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쌍용양회가 경영할 당시 쓰던 사무실은 리모델링 후 현재 문화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장 설립 때부터 현장 일터, 야유회, 각종 행사 등의 옛 사진들이 잘 보관되어 있으며, 전문 사진작가들이 현 시점에 찍은 멋진 풍광 사진들도 만나볼 수 있다. 2024년에는 메타버스 디지털미디어 혁신허브 구축 사업장에 선정됐으며, 버추얼 스튜디오(사업비 150억원)도 운영중이다. 한편, 문경시는 쌍용양회 일대에 도심재생형 수소연료전지발전사업(사업비 약 1천억원 규모)도 1단계가 완료됐다.
2026-02-12 11:30:00
김준형 한국예절아카데미 이사장, "설은 7세기 신라시대부터 국가 최대 명절"
김준형 한국예절아카데미 이사장은 설 유래에 대해 "우리나라의 설과 차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경 신라시대로 매년 정월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이 모여 일월신에게 배례한다(중국 역사서 수서, 당서 기록)"고 설명했다. 신라-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국가 최대 명절로 자리를 잡게 된다. 동국세시기(조선 헌종 15년)에는 "설날이 오면 집안 사당에 배알하고 차례를 지내며, 설빔으로 단장하고 집안 어른을 찾아뵙는 세배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 이사장은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 날로서 민족 최대의 명절로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정조(正朝)라고도 한다"며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달의 첫날임을 의미하고 신일(愼日)·달도(怛忉)라 하여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고도 해설했다. 또, 새해 첫날이 그냥 '낯설다'라는 의미에서 '설' 어원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덧붙였다. 또한 설날에는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수 있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의하면 상고시대 이래 새해 차례상에 올리고 난 후 먹던 음복 유식이라고 했다. 하얀 가래떡은 정갈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뜻을 담고 있다. 세배는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낸 다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새해 인사드리는 것으로 남녀 모두 공수한 상태에서 남자는 큰 절인 계수배를 여성은 큰 절인 숙배를 하게 된다. 여기에는 조상과 어른을 공경하고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설 명절은 조상 숭배, 웃어른 공경, 효와 예의 실천, 가족 공동체의 결속, 건강, 장수, 송액, 영복 등을 기원할 뿐 아니라 민족 정체성을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이라며 "설을 통해 한국적인 멋과 아름다움을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6-02-10 11:00:20
[설 연휴 이곳!]군위 사라온과 함께 하는 '사랑 설날'
대구 군위군(군수 김진열)은 설 연휴 문화 프로그램으로 16일부터 18일까지 오전 10시30분터 오후 4시30분까지 사라온 이야기마을에서 '사랑 설날' 행사를 연다. 1일차에는 ▷관객 장기자랑 및 전통놀이 ▷삑삑이 공연 ▷빅벌룬쇼, 2일차에는 ▷로로 바이올린 공연 ▷버스킹 한마당 레인어클락 공연, 3일차에는 ▷퓨전국악 ▷인칸토 솔리스트 앙상블 ▷애플 트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 설 연휴 프로그램 기획을 맡은 디자인보다 김지원 대표는 "군위군이 대구에 포함된 만큼 많은 대구시민들이 많이 와서 직접 즐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며 "사라온 이야기마을 풍경도 함께 감상할 것"을 당부했다. 김진열 군수는 "설날 가족 단위로 놀러와서, 행복 가득한 하루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02-09 16:27:56
[커버 스토리]역대 막강 실세들 '3허', '3철', '홍3', '문고리 3' 등
역대 정부에도 빠짐없이 막강 실세들이 존재했다. 권위주의식 통치를 했던 군사정권 때부터 민주정부까지 대통령 권력 아래 파워 게임은 피할 수 없는 정치사의 한 단면으로 남아있다. 실세들은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업무 및 인사, 정책 등의 중요도를 판단해 어떤 사안을 언제, 어떻게 보고할 지를 결정했다. 이 때문에 국무위원들(각 부처 장관 등)조차 대통령과 독대하려면, 이들을 통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세들이 자칫 대통령에게 악의적 보고를 할 경우 낭패를 보는 수도 있다. ◆군사 정권 2인자들, 황태자 군사 정권의 2인자들과 황태자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막강 권력을 휘둘렀다. 박정희 정권 때는 5.16 군사 쿠데타(혁명)의 설계자이자 영원한 2인자로 불렸던 김종필(JP) 전 총리가 대통령의 무한 신뢰 속에 실세 총리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이후 청와대 내에는 차지철 경호실장이 과도한 충성으로 2인자 자리를 꿰차려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는 사태(10·26)가 벌어지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장세동 국가안기부장(경호실장도 역임)이 '충복형(절대 복종) 실세'로 측근 권력을 제대로 누렸다. "각하의 안녕이 곧 국가의 안녕"이라는 역대 최고의 아부성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장 실세는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최측근으로 보좌하며, 의리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12·12 사태의 주역 '3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도 정권 내내 핵심 실세로 활약했다.노태우 정권 때는 김옥숙 여사의 고종 사촌(탁구 선수 현정화의 사촌 형부)으로 '6공의 황태자'라 불렸던 박철언 정무 제1장관이 북방외교를 비롯해 내치 전반에 개입하며, 권력 내부에서도 눈총을 받을 정도였다. ◆민주 정부 "혈연과 가신 그룹" 군사 정권이 종식된 이후 민주 정부에서는 혈연과 가신 그룹들이 주요 실세로 떠올랐다. 김영삼 정부에는 차남 김현철이 '소통령'이라 불리며, 인사와 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김대중 정부 역시 '홍삼'(홍일·홍업·홍걸) 형제와 동교동계 가신 그룹들이 실세로 통했다. 혈연 실세들의 국민들의 지탄 속에 영향력이 급속도로 쇠퇴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좌희정 우광재'가 핵심 참모로 국정 운영의 핵심 동력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386 세대 중 인재 둘을 측근에 두며, 미래 권력자 반열로 키워주려 한 측면도 강하다. 노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는 세무 공무원으로 있다 퇴직 후 '봉하대군' 행세를 하다, 결국은 국정에 큰 부담만 안겨줬다. 이명박 정부 때는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실세로 행세하며, '만사형통'(萬事兄通, 모든 일이 형을 통해야 함)이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경북 칠곡 출신으로 이 대통령과 이 부의장을 다 모셨던 박영준 국무조정실 국무차장은 당시 '왕차관'으로 불리며, 대통령 인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문고리 권력과 'VO'(영부인)의 등장 박근혜 정부 때는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씨가 춘향이를 모시는 향단이처럼, 비선 실세로 맹위를 떨쳤다. 박 대통령의 사생활 관련 스케줄은 최순실의 몫이었으며, 정무적 판단(미르재단, K-스포츠 등)에도 개입할 정도로 공사를 넘나들었을 정도다. 또다른 실세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했던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비서관)으로 당시 유승민 전 의원으로부터 "청와대 얼라들"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3철'이 실세로 각광받았다. 이름 끝자에 '철'이 들어간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과 전해철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호철 민정수석이다. 이들 셋은 부산경남(PK)을 기반으로 대통령과 두터운 신뢰를 쌓아온 든든한 아우이자 동지들이었다. 임종석 초대 비서실장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등도 '청와대의 야전 사령관'으로 공식적인 실세로 활동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서울대 법대 79학번과 충암파(출신 고교)들이 득세했다. 비상 계엄의 주축이 됐던 김용현 국방부장관과 이상민 행안부장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이 충암고 선후배 관계였다. 법조계에서는 대학시절 막역했던 이종석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을 비롯해 함께 일했던 '특수통' 검사들이 요직에 차지하며, '검찰 편중 인사' 논란마저 일게 했다. 김건희 여사도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실세였다. 오죽했으면 'V1'(대통령)보다 위에 있는 'VO'(영부인)라는 신조어를 양산했을까.
2026-02-05 11:30:00
[커버 스토리]실세의 씁쓸한 말로 "정권 나락, 본인 구속"
"독버섯을 먹고 자라는 비선 실세, 말로는 비참!" 비선 실세의 폐혜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2가지 공통점이 나타났다. 정권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본인은 구속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실세들이 정권의 독버섯이 된 이유는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는 대통령 곁에서 이권세력과 결탁해 실세로 권력의 단맛을 보려한 개인적 욕심 때문이다. 박정희 군사 정권 때 공식 실세들(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권력자와 함께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 때의 '6공 황태자'라 불렸던 김옥숙 영부인의 고종사촌 박철언 전 장관도 슬롯머신 사업에 연루되어, 수표 5억원이 든 가방을 받은 혐의로 482일 동안 구속됐다. 역대 정부의 구속된 실세들은 정권 신뢰도 하락에 결정타가 되었다. '소통령'이라 불렸던 YS의 차남 김현철 씨는 한보 사태로 구속되며, 김영삼 정권 후반기에 지지율 폭락의 계기가 됐다. 이어 탄생한 김대중 정부 때도 홍삼 형제(세 아들)가 문제를 일으켰다. 홍일·홍업·홍걸 중에 둘째와 셋째가 이권 결탁에 연루되면서 구속됐다. 이후 DJ 정부의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노무현 정부 때 '봉하대군'이라는 별칭이 붙은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가 세종증권 매각 관련 수뢰로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때 '만사형통'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역시 결국은 저축은행 비리 등으로 징역 1년 2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는 대통령의 개인 측근으로 오랜 시간 사생활 영역을 담당했던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씨가 국정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탄핵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비서관)도 구속을 면치 못했다.
2026-02-05 11:30:00
[커버 스토리]"그림자 실세", 현지 누나의 막강 파워
"대통령 권력의 틈새는 실세가 채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다. 막강한 권한이 대통령에 집중돼 있다. 말 한마디에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정부 고위직 인사가 임명된다. 대통령의 막강 권한을 혼자 휘두를 수 있을까? 모든 권력에는 틈새가 있게 마련이고, 그 공간을 파고드는 비선이 바로 '정권 실세'다. '그림자 권력'이라 불리며, 주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힘든 곳에서 조정자 역할을 자처한다. 돈줄이나 인사 청탁은 주로 정권 실세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정·관계 출세지향적 인물들은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실세 파악에 신경이 곧두선다. 어느 방에 노크를 해야 직통으로 먹힐 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 불나방들이 귀신처럼 찾는 사람이 바로 '실세'인 것이다. 이 실세들에게 잘못 보이면, 대통령에게 잘 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지 누나"로 불리는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현 정권의 실세로 떠오르며, 폭발적인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김 실장은 28년 동안 한번도 이재명 대통령 곁을 떠난 적이 없이 대통령의 충복으로 함께하고 있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정치권 논란 청와대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둘러싼 논란이 지난해 하반기 정치권을 달궜다.총무비서관에서 제1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시점이 국정감사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야당은 "국정감사 출석을 피하려는 보호성 인사"라고 비판했고, 대통령실은 "업무 효율화를 위한 정상적 인사"라며 선을 그었다. 김 실장의 자리 이동이 본질이 아니라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림자 권력'은 형태만 달리해 반복돼 왔다. 대통령의 가족, 측근, 혹은 오랜 참모가 공식 제도 밖에서 정책이나 인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쌓이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 프레임이 됐다. 김현지라는 이름이 주목받는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그가 실제로 '실세'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김현지 실장의 논란으로 정권의 주변부가 정치의 화두로 떠오르며 한국 정치사에 반복해 온 '비공식 권력'의 문법속으로 들어왔다. 일명 '현지 누나'로 불리는 김 실장이 정권 실세라는데 아무도 이견(異見)이 없다. 김용, 정진상, 김남준과 함께 친명계 핵심으로 꼽히는 성남·경기 라인 4인방이며, 그중에서도 최측근이다. 1975년생으로 출생지는 공식적으로 알려진바는 없지만 전남 담양으로 알려져 있다. ◆28년 동안 '환상의 짝궁' 김실장은 30년 동안 한번도 이재명 대통령 곁을 떠난 적이 없으며, 중요한 사건 때마다 그림자 보좌를 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돈줄과 인사 그리고 정치적 고비 때 매번 등장해, 이 대통령의 뜻을 결행했다. 이 대통령과 김 실장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설립한 '성남시민모임'에 김 실장이 간사로 활동하며, 두터한 신뢰관계를 쌓기 시작한다. 김 실장을 추천해 준 사람은 박원석 전 국회의원(정의당)이다. 이후 둘은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을 상대로 한 소송(업무추진비 공개)과 성남시립병원 건립에 의기투합해 성과를 거뒀다. 2010년에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에 당선되고, 김 실장은 인수위원회 간사직을 맡는다. 2011년엔 비영리단체인 '성남의제21 실천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시장실 바로 맞은편에 사무실이 있을 정도로 측근 보좌를 지속했다.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 후에는 경기도청 비서실 비서관 자리를 꿰찼다. 2021년엔 이재명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 합류했지만, 낙선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22년 인천 계양구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국회의원 보좌관이 됐다. 당시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는 문자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대북 불법 송금 재판 때는 주군에게 불똥이 튀려하자, 변호인 교체를 단행했다. 대선 캠프에서도 자금 관리를 했다는 통화 녹취록도 공개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이재명 정권이 탄생하자, 최측근으로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총무비서관 자리에 있다, 국회 출석이 부담되자 제1부속실장 자리로 이동했다. 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야당의 집요한 공격에도 김 실장 보호에 사력을 다했고, 아직도 현지 누나는 '베일 속 그림자 실세'로 활약하고 있다. 친여권 성향의 정치 평론가들은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파격적 정책들이 추진력을 얻는 배경에는 김 실장의 꼼꼼한 실무관리에 있다고 평가한다. ◆"비주류" 검정고시와 중앙대 인맥 이 대통령의 인적 네트워크는 소위 정통 엘리트 코스와는 상반된 행보를 보여준다. 소년공 출신으로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했다. 한국 정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교 학벌' 병폐에서 자유롭다. 대신 유일한 학연인 중앙대(법대 82학번)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문진석(정외 82), 김영진(경영 86) 의원은 원조 친명으로 중앙대 라인의 핵심으로 분류되고 있다. 경북 안동 출신인 것도 이례적이다. 전통적으로 호남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진보 정권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경상도 출신 대통령을 3명이나 배출했다. PK(부산경남)가 2명, TK(대구경북)가 1명이다. 하지만 정치적 고향은 성남시와 경기도다. 변호사 활동과 시장, 도시사를 역임하면서 실질적인 지지 기반을 다졌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과 정무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주요 라인들은 성남·경기에서 쌓은 전략적 실무형 인맥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출신 배경이 말해주듯 지역 주도 성장과 전국 다극화 체제로의 변화를 꿰하고 있다. 비주류 '아웃사이더'로 이 나라의 기득권 카르텔 타파에 나서고 있으며, 정통 엘리트 인맥에서 벗어나 실용주의적 인재 등용을 천명하고 있다. 실무 중심의 측근 라인들은 폐쇄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책 추진력 면에서 강점도 갖고 있다.
2026-02-05 11:30:00
[커버스토리]실세 폐혜 막으려면 "제왕적 대통령 환상 깨야"
대한민국헌정회와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는 4년 전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혜를 바로 잡는 분권형 개헌을 대선 후 곧바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헌법을 개정해 정치제도를 바꾸면 국회도 바뀌고 정치인도 바뀐다"며 "사람을 잘 뽑는 것 못지 않게 제도를 제대로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개헌은 현실 정치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대통령학 전문가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군사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이 '왕'인 시절이었다. 하지만 민주 정부 들어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제왕적 대통령'은 신화 같은 것에 대한 착각인데,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실세들이 대리권력을 행사하고, 이권에 개입하려다 큰 화를 입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성득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이사장은 우리 정치의 목표를 제왕적 대통령을 끝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함 이사장은 비선 실세의 폐혜를 없애기 위해서는 "앞으로 대통령은 개방형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며 "성공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마지널(Marginal), 즉 제한된 대통령이 책임 총리나 장관들에게 일부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7헌법 체제는 현 시점에서 수명을 다했다"며 "현재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교착 상태의 극한 대립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루 빨리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의 폐혜를 줄일 수 있는 정치 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2026-02-05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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