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 세계지도자협의회(이사장 김명찬)는 18일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육군 제15사단을 방문해 임외택 사단장을 비롯해 부사단장과 정훈실장 등을 만나, 호국보훈의 달인 6월 말쯤 부대 내에서 위문공연을 하기로 했다. 세계지도자협의회는 김명찬 이사장과 이원철 사무총장을 비롯해 박정이 전 1군 사령관, 위문 공연 기획자 그레이스 조 단장이 함께 부대를 방문했으며, 김 이사장은 "10월에 장병들을 위로할 멋진 공연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세계지도자협의회는 매년 전방 사단 장병 위문공연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7사단에서 위문 공연을 했으며, 내년에는 제12사단을 찾을 계획이다.
2026-03-20 18:41:06
"나눔과 봉사는 제 기쁨입니다." 이 대표는 기업이 큰 이윤을 내기 시작하면서, 각종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사)대구광역시 여성단체협의회 제22대 회장에 취임했다. '신나는 봉사대'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지역의 여성 지도자들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 후 이를 잘 실천하고 있다. 취임식 때는 화환 대신 받은 쌀을 해인장애인 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수성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6 대구 여성 신년교례회서는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여건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지혜와 강인함이 대구의 미래를 밝히는 든든한 힘이 될 것"이라고 여성의 섬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3년 전에는 동구 이시아폴리스 산단협의회장 자리도 맡아, 입주 기업의 애로사항 해결 및 산단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나눔의 DNA는 몸 속에 늘 흐르고 있다. 류병선 (주)영도벨벳 회장이 운영하는 보광명 장학재단에 3천만원을 쾌척했으며, 지역 사회에 불우 이웃을 위한 각종 행사에서는 (주)젠텍스에서 생산한 항균이불 세트를 기부하고 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많이 주변과 함께 나누고자 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며 "각종 단체에 많은 분들이 추천하면, 마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2026-03-19 12:00:00
[털보기자의 '그사람']'부드러운 카리스마' 이종선 (주)젠텍스 대표
"부드러운 카리스마, 섬유 기업가, 고래 화가, 파크골프 전도사, 나눔 천사" 이종선 (주)젠텍스 대표를 이야기할때 떠오르는 다섯 가지 키워드다.섬유 제조업은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산업 구조가 강한 분야였다. 그 속에서 여성 기업인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경영을 이끌며 생산·영업·무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스스로 경험을 축적해 오고 있다. 또한 이 대표는 지난해 제 22대 대구여성단체협의회 회장에 취임해 지역의 여성 권익증진과 지위 향상, 양성평등 사회 구현에 앞장서 오고 있다.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은 지난 인터뷰에서 "여성 리더로 이만한 인물이 없다. 여걸(女傑)"이라며 이 대표를 추천했다. (주)젠텍스 공장과 봉무갤러리(전시실 및 개인 작업 공간)이 있는 대구 동구 봉무동에서 12일 이종선 회장을 만났다. ◆"산전수전" 삼오무역→(주)젠텍스 현재 젠텍스로 이어지는 기업의 뿌리는 과거 '삼오무역'이라는 이름의 무역회사였다. 이 회사는 섬유제품과 생활용 섬유를 중심으로 국내외 거래를 하던 업체였지만, 한국 섬유 산업의 급격한 구조 변화로 한때 큰 경영 위기를 겪으며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 대표에게 큰 힘이 된 인물이 공무원 출신인 남편이었다. 조직에서 쌓아온 행정과 조직 운영을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며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 이 대표는 두 자녀(아들, 딸)를 업고 발로 뛰며 인맥을 넓혀갔다. 남편은 "회사 문을 닫더라도 끝까지 해보고 결정하자"고 말해 다시 도전하는 선택으로 이어졌고, 결국 삼오무역을 정비해 25년 전 (주)젠텍스를 설립하고 새로운 기업으로 재출발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세련된 감각으로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해, 매출도 쑥쑥 신장했다. 현재 코튼, 인견, 천연 소재에 다채로운 디자인을 넣어, 미국과 유럽 등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타고난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공예품 공장까지 병행했다. 하지만 모든 사업이 그렇듯 순탄한 길만은 아니었다. IMF 외환위기 때도 잘 버텼지만, 이후 잘 나갈 때 문제가 생겼다. 달성 논공공단에 5군데나 공장을 지으려 했지만 사기를 당해 1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또한, 곳곳에 부동산 투자를 했지만 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자금이 묶여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이란전쟁으로 인한 3중고를 겪고 있다. 유가 급상승으로 인해 원단 가격, 해상 물류비를 비롯해 모든 비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 이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힘겹게 지나고 나니, 지난해부터는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인해 회사 수지를 맞추기가 힘들었다"며 "기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고행(苦行)이지만 잘 나갈 때를 즐기는 마음으로 한다"고 털어놨다. ◆국내 최초의 '고래의 꿈' 화가 "나에게 이런 재능이…, 고래의 꿈은 제가 꿈꾸는 세상에 대한 바람이자 자화상입니다." 2015년 우연히 지인의 미술 전시회에 갔다가 '나도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날 바로 사설 화가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선긋기부터 구도잡기 등 기본기를 터득한 후 사과 그림(정물화)을 그렸다. 처음 그렸던 사과작품은 사무실 입구에 걸려 있었는데, 먹음직스러울 만큼 입체적이며, 사실적이었다. 화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후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빠져들었다. 주제는 '고래의 꿈'.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흰 긴수염 고래가 큰 인기를 끌기 전에 이 대표의 고래 그림은 지역 화단에서는 이미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남녀노소가 다 좋아할만한 고래가 중국 장가계 봉우리 사이로 유영하고, 화려한 꽃밭 위를 날고, 파도치는 해안가 바위를 향해 도약한다.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엄청난 역동성이 느껴진다. 이 고래는 사실 하늘을 날고 싶은 자신을 묘사한 것이다. 고래 그림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한국미술대전 특선 2회, 대구미술대전 대상, 서울국제미술교류전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7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과 2019년 두 번째 개인전 때는 전시 작품이 모두 팔리는 성과를 올렸다. 큰 그림은 작품 가격이 수천만원에 달한다. ◆팔방미인 "유일한 단점, 사투리" 친구들은 이 회장에 대해 농담삼아 이렇게 얘기한다. 한 친구가 "니는 못하는게 뭐꼬?"라고 했고, 다른 친구가 "얼굴하고 안 어울리게,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심하다 아이가?". 이 대화 속에는 누구라도 팔방미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이 고향이다 보니 사투리가 심한 건 본인도 잘 알고 있다. 학창시절에도 조용한 듯 하지만 또래의 리더 역할을 잘 했으며, 친구들은 자연스레 '우리 대장'으로 받아들였다. 심한 사투리는 오히려 카리스마 말투가 된 듯 했다. 부드러운 성격은 지역 사회에서 인맥의 달인 반열에 올려놨다. 학계 및 언론계의 CEO 아카데미(최고위 과정)의 흥행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했으며, 이 회장의 적극 추천을 한 기수는 참석 인원이 늘어나고, 활기가 넘쳤다. 로터리, 라이온스 등 봉사단체 뿐 아니라 민주평통 대구 동구협의회장까지 지냈다. 이 대표는 예체능의 끼로 똘돌 뭉쳤다.문화예술계 뿐만아니라 체육계와도 인맥이 닿아있다. 사교를 위해 위해 배운 골프는 이내 싱글 골퍼가 되었고,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크골프 고수(언더파)가 되었다. 더불어 파크골프 저변 확대와 시설 확충을 위해 이시아폴리스 중심상가 단지에 스크린 파크 골프장도 문을 열었다. 이 대표는 "그림도 그렇고 골프도 그래요. 제가 집중력이 남다른 것 같다"며 "다른 화가들이 20~30년 소요될 그림 그리기를 저는 10년 안에 다 했으며, 골프도 작은 승부욕 때문에 더 빨리 기술을 터득했다"고 겸연쩍은 듯 미소지었다.
2026-03-19 12:00:00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통일벼 도정' 1940년 설립, 영주 풍국정미소
"통일벼 도정해 탄광촌, 군부대에 보냅니다." 경북 영주 광복로는 안동, 봉화, 울진으로 가는 교통 요충지다. 이런 지형적 영향 탓에 1930년대부터 미곡유통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풍국정미소는 1940년에 문을 열었다. 당시 광복로 일대에는 30여 곳의 정미소가 밀집되어 있었다. 당시 이곳에서 도정된 쌀포대는 인근 탄광지대와 군부대로 반출됐다. 그많던 정미소들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 후 이제는 풍국정미소 하나만 잘 보존되어 남아있다. 2018년 8월에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720호 지정되었으며, 경북산업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한일(韓日) 혼합 목조 형태로 도정기계가 있는 건물동을 비롯해 비축창고, 사무실 등의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70년 정미소 사무, 우기섭 씨 풍국정미소의 소유주인 우기섭(85, 본명 우길언) 씨를 현장에서 잠시 만나보니, 유쾌·상쾌·통쾌한 분이었다. "제가 호적상 41년생인데 사실은 37년에 태어났습니다. 아시잖아요? 예전에는 태어나고 많이 죽은 탓에 아예 4년 늦게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사실상 올해 제가 구순입니다. ㅎㅎㅎ" 우 씨는 쌀이 도정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한 후 창고와 사무실 등에 남아있는 그 시절 쌀 도정과 관계된 도구와 물품, 비품 등을 보고 공장이 한창 돌아가던 그 때를 회상했다. "조부 때부터 이곳에서 사무 일을 봤는데, 사촌에게 잠시 넘어갔다, 그 후로는 제 평생을 받쳐 일한 곳입니다. 쌀 팔아서 번 돈으로 아들 셋, 딸 하나 잘 키웠죠. 이제는 손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우 씨는 특유의 유머 감각 뿐 아니라 건강관리도 잘 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영주시가 예산을 잘 확보해, 이 정미소를 적당한 가격에 매입해주는 것이다. 영주시는 2018년 이후 개인 소유의 이 정미소 매입비을 비롯해 사후 개발 예산까지 확보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매일 놀기삼아 이곳으로 출근하는 그는 "큰 욕심은 없지만 대대로 물려받은 가업 재산인 만큼 너무 헐값에 넘길 수는 없다"며 "정미소가 국가재산으로 잘 매각되면, (기자 양반에게) 쌀밥 한번 거하게 사겠다"고 터털웃음을 지었다. ◆현대적 곡물 유통의 중심 "쌀 산업관" 영주시도 풍국정미소를 매입한 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근대 산업시기에 양곡가공업의 생성과 양곡 유통에 관련된 역사, 당시 정미소의 건축 양식과 설비 구조를 비롯해 도정 기기들, 판수동 저울, 막대 측량기 등이 잘 보존된 산업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지역 마켓으로 '쌀 산업관' 형태로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5가지로 구분하면, ▷도정체험공간(정미업 종사자 채용) ▷전시공간(영주문화원 및 재단) ▷지역 농산물 판매소(농업 종사자 연계) ▷쌀음식 체험관(지역 떡집 및 방앗간) ▷관광안내 센터(영주시 및 마을조합). 정미소 건축물과 도정기계는 현대식으로 복원해 전시 및 체험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며, 오래된 지붕 구조도 현대식 건축 재료를 보강해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다. 지역 판매소는 영주 815 광복쌀과 순흥 기지떡 등은 특화 브랜드 상품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며, 해마다 이곳에서 쌀 축제를 여는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중에 있다. 영주시는 풍국정미소 뒷편 학교 부지(영광중학교)에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해,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청사진(조감도)도 제시했다. 영주시 홍보담당 관계자는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크지만 풍국정미소는 산업적 가치가 있는 만큼 머지 않아 영주의 새 명물로 거듭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풍국정미소는 구시가지(구도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인근에는 공공기관 관사들이 모여있던 '관사골', 영주동 근대 한옥,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숫골', 일제시대 세워진 신사로 인한 '신사골', 단종 폐위 후 선비들이 낙향한 '두서마을' 등 이 고장의 살아숨쉬는 역사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2026-03-19 11:30:00
"파기름장을 한 숟가락 퍼넣어 비벼라" 낮에 따온 홍합으로 저녁에 홍합밥을 지었다. 아이들 손바닥만 한 홍합을 반으로 잘라 솥에 넣고, 참기름을 넉넉하게 둘러 볶았다. 구수한 김이 술술 오르자 불린 쌀을 넣고 밥을 안쳤다. 데친 대황(해조류의 일종)을 꽁치젓갈에 버무려 내고, 김성도 이장님, 김신열 여사와 셋이서 홍합밥을 양푼이에 퍼담아 앉은뱅이 상에 둘러앉았다. 시키는 대로 파를 넣은 참기름장에 비벼서 한 숟가락 떴다. 맛의 신천지였다. 한 양푼이 다 비우고, 체면 차릴 것도 없이, 남은 밥마저 퍼담아 해치웠다. 2008년 9월 3일, 울릉읍에서 2098번째로 본적지를 독도로 옮기고 독도상주기자로 들어간 날 저녁, 김신열 여사는 홍합밥을 지어줬다. 독도 주민으로서 배려였고, 환영이었다. 그 당시에도 독도 홍합밥은 귀한 음식이었다. 김신열 여사가 물질 나가 홍합을 따면, 김성도 이장님이 모터보트를 몰고 나가 받아온다. 오후에는 둘러앉아 그것을 까서, 비닐봉지에 나눠 담는다. 관광선 편으로 울릉도로 보내면 홍합 한 알에 5백 원 꼴이 된다. 홍합은 독도 김 이장댁 주소득원이다 보니, 끼니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17년 전 홍합밥을 지어줬던 김신열 여사가 지난 3월 2일 별세했다. 2018년 김성도 이장이 타계한 후 뭍으로 나와 생활하다가, 노환으로 천명을 다한 것이다. 김성도, 김신열 부부는 1991년 독도로 주민등록지를 이전하고, 2006년 2월부터 독도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1965년 최종덕 씨가 처음 서도에 슬레이트 블록집을 짓고 거주한 이후, 1986년에 들어간 조준기·최경숙 부부에 이어서, 세 번째 주민이 된 것이다. 독도에서 생활한 주민들은 그동안 '우리 땅 독도' 지키기에 큰 축이 되었다. 2008년부터 1년 동안 독도상주기자로 생활하는 동안, 독도에는 마을이 있었고, 이웃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독도에는 경비대원, 등대원, 독도관리사무원, 119구급대원뿐이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이다. 독도를 생활 근거지로 하여, 바다가 내주는 산물을 젖줄로 하여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사람 없는 동네에서 관리자들끼리 서로 관리하고 있다. 독도를 하루라도 비워둘 수는 없다. 지금 독도에 들어가서 살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도를 관리하는 행정관서는 지난날과 같이 독도에 민간인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 빨리 독도 입주민 선정기준을 만들고, 엄정한 심사를 거쳐 독도에 들어가서 생활할 주민을 정해야 한다. 독도는 대한민국 사람, 민간인이 들어가서 홍합을 따고, '독도카페'도 운영해야 된다. 그 옛날, 독도경비대원들이 50일 간 독도 근무를 마치고, 울릉도 본대로 복귀하는 전날. 김신열 여사는 언제나 간부와 고참병들을 서도로 불러다 홍합밥을 지어 먹여 보냈다. 다음날 독도를 떠나는 경비대원들은 독도 사람들 인정에 눈시울을 붉혔다. 나중에 육지 나가서도 안부 전화를 하면 늘 독도 홍합밥이 생각난다고 했다. 독도상주기자 시절 함께 생활했던 강석경 경비대장, 추호 통신반장, 그리고 엄태명 등대소장님. 우리가 어민숙소에서 홍합밥 비벼 먹던 그때가 '독도리'다웠지 않습니까. 전충진(전 매일신문 독도상주기자)
2026-03-18 15:33:38
[정치야설 '5분전']'흐지부지' TK 행정통합 "내 이럴 줄 알았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올초 주간매일 인터뷰 코너에서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헛발질이 행정통합과 신공항"이라며 "애초에 되지도 않을 일에 시도민에게 희망고문을 가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시민은 "각자 밥그릇 챙기기 바쁘고, 6·3 지방선거가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며 "다 집어치우고, 주어진 일들이나 잘하라"고 성토했다. 대구시의 한 간부는 기자에게 개인 SNS를 통해 "TK 국회의원 25명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도 우왕좌왕한다"며 "공무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눈치만 보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서로 다른 통합 구상을 갖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2번이나 탄핵 당하고, 뭘 했나?" 박근혜 정권 때 "밀양 신공항 건설", 윤석열 정권 때 "TK 행정통합"을 했더라면, 두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뒤늦은 통탄을 하는 민심도 이해가 간다. TK가 앞장 서 두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쥐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지만 집권하는 동안 지역을 위해 해놓은 굵직한 업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육계에서 은퇴한 한 시민은 박 전 대통령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남권에 몰아준 5개 공업 도시(구미 전자, 포항 철강, 울산 석유화학, 창원 기계, 거제 조선)의 하늘길 수송을 위해 영남권 중심인 밀양에 신공항 건설을 못박고, 첫삽을 떴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TK 행정통합 역시 윤석열 정권 초기에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 파격적인 지원과 혜택을 주는 조건을 내걸었어야 했다. 보수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며, 순진무구하게 정치공학적 계산을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재명 현 정부는 광주·전남에 대놓고 국가 예산 퍼주기를 하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대구경북은 부글부글 끊기만 하고 있다. 야심찬 TK 행정통합을 추진했던 경북도 관계자는 "경북도청 신도시를 북부권 거점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사실상 통합이 무산됐다"며 "현 정부 하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든 잘 되겠느냐"며 좌절했다. ◆이재명 정권 아래 제일 미운 곳 "TK" 기획예산처의 한 국장급 간부는 이런 말을 했다. "전라도와 충청도,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가능하면 해주고, TK는 어지간하면 안 주는 쪽으로 묵시적 지침이 서 있다." 실제 올해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의 예산총액만 비교해봐도, 모 국장급 간부의 얘기는 빈 말이 아님을 반증한다. 광주·전남은 인구 320만명에 25조원의 예산을 배정받았으며, 대구경북은 인구 480만명에 24조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인구 대비로 봤을 때는 최소 30조원 이상은 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7월 광주전남특별시까지 출범하게 된다면, 대놓고 예산 몰아주기(4년 동안 20조원 인센티브)를 할 수 있다. 정부는 행정통합 시·도에 대한 공공기관 이전 등의 전폭적 지원을 공표했으며, AI(인공지능) 관련 산업을 몰아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정부가 내년 하반기 목표로 추진하는 공공기관 지방 2차 이전에도 대구·경북엔 빨간불이 들어왔다. 경북도는 ▷농협중앙회 ▷우체국물류지원단 ▷국토교통과학진흥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환경산업기술원 등을 전략 유치 대상 기관으로 선정했지만 불확실성만 커져가고 있다. 한 대구시의원은 6·3 지방선거 이후에는 TK에 대한 노골적 차별이 극에 달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8년 전 지선에서 TK만 빼고 싹쓸이를 한 적이 있다"며 "코로나19 당시 한 여권 인사는 대구경북을 봉쇄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진보 정권의 갈라치기 전략에 분연히 맞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대구경북은 지역 발전을 위한 좋은 시기를 다 놓치고, 갈수록 진화하는 진보 정권의 갈라치기 전략 속에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다. 특히, TK 통합신공항과 행정통합은 가슴앓이만 할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해법과 대안을 찾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2026-03-12 13:00:00
[커버스토리]배신의 정치-전문가들이 본 '배신 프레임' 작동 원리
정치에서 '배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대파를 제거하는데 강력한 프레임이자 무기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배신은 조선시대 조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역모'를 연상시키며, 처단해야 할 인물로 몰아부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배신'에 관한 다양한 견해는 두 단어가 가진 본질과 파괴력에 대해 잘 설명해준다. 한국의 정당 정치와 민주주의를 연구한 박상훈 박사는 '배신의 언어'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왜곡하는지 분석하면서, "적과 동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반대 의견을 내면 '배신자'로 낙인찍는다"며 "팬덤 정치와 배신자 프레임이 결합했을 때, 아주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박 박사는 배신자 프레임 작동 원리를 3단계로 규정한다. ▷1단계=이견의 악마화(정책적 반대를 배신으로 규정) ▷2단계=좌표찍기와 공격(강성 지지층을 동원한 물리적·심리적 압박) ▷정당의 요새화(다른 목소리가 사라진 순혈주의 정당). 그는 "보수의 배신자 논란, 진보의 문자폭탄, 수박 논란 같은 현상들은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주디스 슈클라 정치철학자는 "배신은 인간관계의 가장 파괴적인 행위의 하나"라며 "정치에서 배신은 권력을 유지하거나, 전복시키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준만 정치 칼럼니스트는 한국 특유의 배신자 프레임을 '특정 지도자 숭배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배신자에겐 욕설(비난)만 있고, 시시비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유승민, 한동훈의 경우 보수 정치가 '배신자 무간지옥'에 빠져있다"고 분석했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정당이 공적 결사체가 아닌 사적 추종 집단처럼 변질된 것"이라며 "민주적 절차보다 강력한 지도자(대통령)에 대한 일체감을 강조하는 문화가 반대파를 '배신자'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정당의 종교 집단화"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2026-03-12 12:00:00
대구경북 정치권에는 '배신자'라는 키워드가 20여년 전 '친박친이'(親朴親李) 논란으로 시작해 아직까지 핫이슈다. 그 중심에 자리잡은 유승민 전 의원과 한동훈 전 장관은 답답하기만 하다. 두 정치인은 "보수도 시대 변화에 맞춰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며,"'배신'으로 모는 것은 보수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맹목적 충성심'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며 보수가 새롭게 태어나길 갈망하고 있다. 두 사람은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당할 만큼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당당히 탄핵 선봉에 나섰고, '개혁 보수의 아이콘'으로 선봉장에 서려 했다. 만약, 보수 세력이 총집결해 이 둘의 노선을 따라갔으면, 또 어떤 정치 지형이 펼쳐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두 정치인 둘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로 손색이 없는 경력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라면 누구라도 1번 핵심 참모로 삼고 싶어할 인재다. 유 전 의원은 날카로운 경제전문가, 한 전 장관은 법조계에선 뛰어난 검사로 정평이 나 있다. 보수 정권 당시 둘은 비슷한 정치의 길을 걸었다. 유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맡을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대선 승리 이후에는 유 전 의원은 경제 정책을 이끌었고, 원내대표까지 맡아 당·정을 아울렀다. 한 전 장관은 윤석열 정권의 황태자로 불릴 만큼 보수의 새 바람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일당백'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더불어민주당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시 한 전 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은 보수 세력에겐 시원한 탄산수와 같았다. ◆유승민의 지향점 "따뜻한 보수" "15년 전, 제가 보수당에 입당한 것은 제가 꿈꾸는 보수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유 전 의원은 2015년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보수의 가야할 새로운 길'은 당시에는 역대급 명연설로 회자되고 있다. 그는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세상"이라고 역설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이 더 큰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유 전 의원은 진영 논리로 뛰어넘자고 했다. "진영은 그 본질이 독재와 같다. 진영의 울타리를 쳐놓고, 그 내부 구성들에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의 '새로운 보수로 나아가자'는 소신 발언으로, '포스트 박근혜'의 선봉장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이내, 청와대발 '배신의 정치' 논란으로 이어졌다. 그는 4년 전 TV매일신문 '관풍루'에 출연해서도 "결과론적(정권 교체)으로 사과를 드리겠다. 하지만 당시 보수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따뜻한 공동체를 지향하고자 제안해던 제 지향점은 옳았다"고 해명했다. ◆한동훈의 나침반 "尹 넘어서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다." 한 전 장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에 대해 초지일관 확고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보수의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외치며, 친한계 18명과 함께 계엄 해제 표결에 참석했다. 그 후로도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은 마땅하며, 헌법을 유린한 것을 확신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보수의 심장 대구를 방문해서도 보수 내에서 '마이 웨이'(My Way)를 선언했다. 그의 메시지는 "보수를 재건하기 위해 윤석열 노선을 끊어내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서보겠다." 한 전 장관은 "우리가 앞장서서 윤석열 노선(윤 어게인)을 끊어내고 보수를 재건하는데 여러분의 도구가 되겠다"며 "대구에서 윤석열 정권을 극복하자는 움직임이 나오면 금방 회복할 수 있다. 대구는 언제나 정면승부를 해왔다. 그래서 대구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애초부터 '누구의 부하'라는 말조차 거부했기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는 듯하다. 그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이 나를 업어 키워? 개똥 같은 소리"라고 일갈했다. 또, "누구의 사단인 적도, 사단을 만든 적도 없다"며 패거리 문화의 병폐에 정면 도전을 선언했다. 유승민 전 의원과 한 전 장관이 어떤 보수의 미래를 개척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진행형이다.
2026-03-12 12:00:00
[커버 스토리]배신의 정치-진보 세력의 만능키 '이간계'(보수 분열 전략)
"권력 못 잡으면 배신자?"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3당 합당 때는 배신자 프레임이 무력화됐다. YS는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선언했고, 대권을 손에 쥔 후에 정권 초기부터 군사 독재의 잔재를 청산했고,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아무도 '배신자'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유승민, 한동훈 두 정치인은 다르다. 둘은 대권을 잡지도 못했을 뿐더러 배신의 딱지는 좀체 지워지지도, 잊혀지지도 않고 있다. 두 보수 대통령의 탄핵(박근혜·윤석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 마디에 의한 '배신'은 보수의 트라우마로 십수년째 작동중이다. ◆이준석·이낙연·이상민 "배신자도 아냐" 대선 기간과 당선 후에도 윤 대통령에 맞섰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역시 '민주당의 2중대', '트로이의 목마', '이재명 기쁨조' 등의 맹비난을 받았지만 '배신자'라기 보다 '네가지가 없다'고 욕을 많이 먹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경우 정권을 장악한 이재명 계가 아예 개무시하자는 전략으로 일관했으며, 배신자라기보다 존재감을 없애는데 주력했다. 고(故) 이상민 전 국회의원의 경우에도 보수 진영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정치권에서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진보 진영의 만능키 '이간계'(보수 분열) 진보 진영은 2번의 정권 교체에 '이간계' 카드를 잘 활용했다. 이 카드는 언제든 먹혔고, 너무나 효율적이고 손쉬운 전략이었다. 쉬운 예로, 진보 세력 30~40%가 유승민과 한동훈의 편을 든다고 하자. 보수 세력 내 10~20%만 동요할 경우 50% 이상의 강력한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진보 성향 언론마저 합세할 경우 보수 세력 내 강경파와 개혁파는 분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내 한 인사는 "보수 거물급 정치인은 자기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조금만 부추기만 된다"고 털어놨다. ◆현 집권 세력 "배신자 대신 비유적 표현" 현 집권당 내에서는 배신자란 표현을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한 과거 경험이 현재의 가장 중요한 정치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 진영에서는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단일화 실패로 전두환 군사정권 이후에도 대통령 직선제임에도 군인 출신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을 지켜봐야 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DJ의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였을 때도 DJ 지지자들은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안희정·이재명 후보가 대선 경선에서 격렬하게 다툴 때도 '배신자 프레임'으로 상대를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당내에서 정치적 타협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사쿠라, 수박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략적으로 '배신'이라는 악성 종양을 국민의힘에 던져버렸다.
2026-03-12 12:00:00
[커버 스토리]배신의 정치-유승민·한동훈은 '보수 궤멸의 원횽인가?'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달 15일, 방송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불출마 의사를 재차 확정지었다. 유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택한 배경에는 과거부터 그를 괴롭혀온 '배신자 프레임'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배신(背信)은 '믿음'과 한뿌리에서 자란다. 신뢰가 쌓여야 '배신'이라는 단어에 힘이 실린다. 인류사나 개인사에서도 배신은 뼈아픈 키워드다. 왕조 형태를 갖춘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도 늘 충정과 배신은 반복돼 왔다. "보수는 배신과 분열로, 진보는 변절자와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현대 정치에서 배신은 정치 흐름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군사정권 이후 보수정권은 네번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배신과 분열로 진보진영에 두번이나 정권을 넘겨줬다.김영삼(YS)·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5년을 다 채웠지만, 이후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은 결국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 수감에도 배신자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중이다. 보수 일각에서는 그 중심에 유승민 전 의원과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있다고 말한다. 유 전 의원과 한 전 장관이 대통령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탄핵 절차에 돌입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식이다. 시장통 등 유세장에 이 둘이 나타나면, 누군가 "배신자"라고 소리친다. 두 정치인은 억울하다고 말한다. 탄핵된 두 대통령을 뛰어넘는 새로운 보수(개혁 보수)를 하고픈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이라도 자기 정치를 하고 싶어한다. 핵심 측근이 주군(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바른 길을 안내하는 것도 충정이다. 문제는 그 충정이 지나쳐, 분파적 언행(적을 이롭게 함)으로 비난받을 뿐이다. "한번 배신한 자는 또다시 배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한동훈에게 "윤석열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 "더 이상 우리 당에 얼씬거리면 안 된다"고 했다. 한동훈은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고 했다. 강성 보수지지파들은 결과론적으로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유승민 전 의원과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의 탓으로 보고 있다. 두 배신자가 나서지 않았다면,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수 없는 의석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힘들게 되찾은 정권을 다시 갖다받치는 꼴이 됐다고 말한다. 실제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은 두 사람이 진보 세력과 힘을 합친 결과로 가능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는 무려 62명이 집권 세력에 등을 돌렸으며, 윤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친한파(한동훈 계 의원들)들이 앞장서 재적의원 3분의 2를 넘길 수 있었다. ◆"주군을 버려? 이럴 수는 없는겨!" 대구경북민을 비롯해 보수 세력은 두 번의 대통령 탄핵에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공존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과연 탄핵 당할 만한 일을 했느냐며 안타까워 한다. 특히,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은 이후 정치행태를 지켜 보면서 "나라를 아예 통째로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하고 있다","삼권분립이 존재하지 않는 독재정권"이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정치판에서 '배신의 프레임'에 쌓여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5년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덕으로 큰 주제'에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여당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을 겨냥해,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라고 비판했다. 이후 갈등은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유 전 의원은 탄핵에 앞장 선 후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보수정치인들이 분노하는 지점도 '자신을 키워준 대통령에게 그럴 수 있느냐'는 대목이었다. 유 전 의원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맡은데다,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정권의 성공을 위한 헌신 의무를 저버렸다고. 한 전 장관 역시 배신의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정권 초기 법무부장관도 당 비대위원장도 뒷배는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 검찰 선배로서 그 누구보다 챙겼으며, 김건희 전 여사마저 외국에 나가며 남편인 윤 대통령 것과 함께 특별한 선물을 사올 정도였다고 한다. 유영하 의원은 이달 초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구 민심은 한동훈을 배신자로 본다"고 일갈했다. ◆거대한 정당에 맞서는데 내부 총질? 2022년 7월 26일. 취임후 윤석열 대통령은 여당 대표인 이준석을 향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대표"라며 직격했다. 이후 2024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채 상병 특검과 김건희 여사 사과를 요구한 한동훈 후보를 향해 "대통령의 황태자가 배신의 정치를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제 1야당인 국민의힘은 절대 다수 의석을 확보한 현 집권당(더불어민주당)과 맞서야 한다. 보수진영 정치인들은 배신자들을 향해 "하나로 똘똘 뭉쳐 싸워도 힘겨운 판에 분열을 획책하는 '민주당의 2중대' 또는 '내부 총질러'"라며 반드시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보수 칼럼니스트는 보수 정당에게 배신자란 단순한 변절자가 아닌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지적한다. 특히 보수파는 두 번의 탄핵을 겪어면서, 배신이라는 트라우마가 작동하고 있다. 장동혁 당 대표 역시 집토끼 결집을 노리고 있다. 당 지도부는 내부 분열은 곧 지지층의 투표 의지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배신자 프레임'을 동원해서라도 내부 단속을 먼저 한 후에 6·3 지방선거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한국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가 잘된 경우를 봤느냐, 죽은 대통령을 더 짓밟지 마라"며 "'중도'라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권력의 세계에선 공허한 것이며, 정통 보수는 최소한의 염치와 인간적 도리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2026-03-12 12:00:00
[기고]17년 만에 WBC 8강 진출 "정신력의 승리"
"17년 만에 8강 진출, 간절히 바라면 이뤄집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극적으로 호주를 7:2로 이기고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호주, 대만 세 팀이 각각 2승 2패로 경우의 수를 따지는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한국팀은 강한 정신력과 응집력으로 그야말로 기적을 이뤄냈다. 정규이닝 동안 2실점 이하로 5점차 이상의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불가능한 목표를 선수단의 간절함이 이룬 것이다. 국민적 관심도 높았던 이번 대회에서 한국팀이 야구 인프라와 저변에서 앞선 일본 야구에 패했을 때는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프로리그 규모와 선수연봉 측면에서 한국보다 열등한 대만팀에게 패했을 때는 정말 뼈아팠고, 비난의 여론도 거세었다. 2023 WBC에 비해 올해 대회에서는 경기력이 나아지며 8강전에 진출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향후의 국제대회 준비를 위해서는 몇 가지 실천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메이저리그(MLB)가 세계 야구를 선도하고 있는 만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경기 규칙(rule)을 MLB에서 사용하는 규칙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연장전 승부치기, 투수의 투구 시간(pitch clock)과 견제구 수 제한, 비디오 판독 요청 절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은 물론 이러한 노력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국 야구가 우물 안 개구리를 면하고,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1라운드 경기들에서 한국팀이 어려움을 많이 겪은 것은 타선에 비해 약한 투수력이 중요한 고비마다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야구는 70% 이상이 투수에게 달려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투수의 영향력이 타선이나 수비보다는 크다는 의미이다. 투수는 위기의 순간에도 마운드에서 홀로 감정을 조절하며 구종과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제구가 조금만 흔들려도 실점으로 연결되어 비난을 많이 받는 심리적 압박이 큰 포지션이다. 따라서 투수의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멘탈훈련의 도입이 필요하다. 왜 많은 MLB 투수들이 주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는지 한국 야구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보여준 투혼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좋은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미국 마이애미로 날아가는 비행기 세리머니를 보이며 마침내 목표를 이룬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한국팀이 8강전에서 만날 상대 팀은 도미니카 아니면 베네수엘라인데 거의 메이저리그 올스타팀 수준에 가깝다. 도쿄의 기적이 마이애미까지 이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2026-03-11 19:05:16
[털보기자의 '그사람']'문소평이라 불리는 여걸' 문신자 원장
"중국엔 등소평, 대구엔 문소평", "중국엔 공자, 한국엔 신자" 주요 일간지 칼럼에 소개될 정도로 '대구의 여걸(女傑)'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문신자 한국국외문화유산연구원장(1938년 영덕 출생). 구순(九旬)을 바라보지만 아직 정정하다. 마음만은 늘 청춘이며, 삶의 열정은 MZ 세대를 능가한다. 지난달 22일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북콘서트에서도 찬조 연사로 나서, "저는 1938년에 영덕에서 생산된 좀 오래된 제품, 문신자입니다."라는 가벼운 인사말로 시작부터 청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더불어 40년 동안 함께 해온 두터운 신뢰도 과시하면서, 주 부의장을 한껏 띄워줬다. ◆일제시대 갑부(문명기)의 딸, 교육자 문 원장의 인생에서 아버지 문명기라는 이름 석자는 빼놓을 수가 없다. 일제 시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부(富)를 쌓은 인물이다. 영덕 출신으로 1907년부터 제지업 광제회(廣濟會) 설립에 종사했으며, 1932년에는 광산업(금은 채굴)으로 조선의 최고 갑부라 명성을 떨쳤다. 아버지의 경영 능력과 수완 그리고 미래를 보는 혜안은 딸의 핏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 방년(芳年, 여자 20세) 이후 인생 1막은 교육자로의 삶이었다. 대구를 비롯해 포항, 영천 등에서 현장 교사로 20년을 보냈다. 이후 교육 지도자의 삶이 펼쳐졌다. 1986년부터 대구 서부교육청 장학사로 출발해 1988년 대구시 교육청 장학관, 1995년 대구 신천초교 교장, 1999년 신암초교 교장을 끝으로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화려한 인생 2막이 시작된다. ◆정년 퇴직 후 인생 2막 "인맥 퀸" 인생 2막은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출발한다. 경북과학대에서 출발해 대구가톨릭대 등에서 최고 경영자 과정으로 정·관·재계 인맥을 쌓기 시작했다. 대구시 체육회 이사, 민주평통 대구지역 부의장, 재구 영덕 향우회장 한국-우즈벡 교류협회 회장, 한류문화인진흥재단 이사장 등 각종 단체나 모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문팬(문신자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였다. 지난해 미수연(米壽宴, 88세 생일) 기념 라운딩(해내다 CC)에서 인맥의 결정판을 보여줬다. 금배지만 8명이 왔으며, 단체장을 비롯해 160여 팀이 골프를 친 후에 뒤풀이를 했다. 생일 축하와 더불어 의미있는 나눔도 실천했다. 아들 셋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신홍식)에 1억원을 기부약정하며, 아너 소사이어티 263호 회원이 됐다. ◆하루 4시간 수면이면 충분 문 원장은 교육자 퇴직 이후 26년을 하루 4시간만 자고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주간매일 취재팀과의 인터뷰 역시 저녁식사를 겸해 늦은 밤까지 진행했다. 그 날도 에티오피아 대사와의 만남 등 주요한 일정을 다 소화한 후에 본인의 살아온 이력과 삶의 철학 등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더 궁금한 것이 없냐?"고 할 정도로 열정적인 삶 그 자체였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가슴 뛰고 소중한 날인가?" 그런 날들이 계속된 탓인지, '89세'라는 나이가 무색했다. 아마도 세월이 문 원장을 붙잡아 둘 틈이 없을 것 같았다. 인터뷰 도중 들려준 두 가지 인생교훈은 뇌리에 박혔다. 첫번째는 남의 말을 나쁘게 하지 마라. 두번째는 굴러다니는 낙엽은 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타인을 미워하기보다 본인 삶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다. ◆온 몸은 만신창이, But 골프 사랑 89세에 아픈 데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문 원장 역시 온 몸이 파란만장하다. 위암 말기라 위를 다 덜어내고, 십이지장에 소화 계통을 바로 연결시켰다. 소식(小食)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양쪽 다리 모두 인공관절로 버티고 있다. '그래도 움직일 수 있으니, 골프도 치는 것 아니겠냐'는 문 원장의 정신력은 인체의 신비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골프는 인맥을 쌓기 위해 더없이 좋은 도구인 만큼, 아직도 놓지 않고 있다. 드라이버 비거리는 130m 안팎이지만 숏게임(어프로치, 퍼팅)에서 구력을 있는 만큼, 동반자들과 함께 라운딩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의 실력과 매너를 겸비하고 있다. ◆교육심리 전공자 '피그말리온 효과' 교육심리학 전공자인 그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교사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를 늘 강조한다. 늘 "나는 된다", "할 수 있다", "잘 할거다" 등 긍정적인 자기 세뇌(다짐)을 반복하며, 그대로 실천하는 행동력을 보여주며 살아왔다. 또 다른 인생 철학이 담긴 문구도 늘 강조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구절을 좋아한다. 문 원장은 "제 에너지의 원천은 생각에 있으며, 낮잠을 자지 않는 것도 제 습관이며, 지역 사회와 나라를 위해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여태껏 쉼없이 달려왔다"고 털어놨다. ◆63년 해로한 우리 남편 "그리워" 문 원장은 같은 교육자(성광고 교장)로 63년을 함께 해로한 남편이 아직도 꿈에 나타나, 건강을 염려해 준다. "아직도 밤늦게 다니냐? 제발 좀 일찍 들어오이라"고 잔소리를 한다. 남편은 하늘나라로 가기 전, 늘 바깥 일이 많은 아내를 걱정했기 때문. 남편은 살아생전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집안 일은 뒷전이다보니, 화가 날 때는 "허파 디비진다"('뒤집어진다'의 경상어 방언), "다 때려 치아라"('다 그만 접어라'의 경상도 속어)며 많이 투덜거렸다고 한다. 그는 "여보!! 고맙고, 미안하고, 그립다"는 말로 부부 간의 애틋한 정을 표현했다.
2026-03-05 12:00:00
[털보기자의 '그 사람']나눔 실천하는 삶 "부(富)는 공유"
부친으로부터 베푸는 마음을 물려받은 문 원장은 평생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나눔은 물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과도 연결되어 있다. 교육심리 전문가인 그는 사회교육원장 시절에도 늘 회원들의 고민거리를 함께 공유하며, 성실하게 상담해준 탓에 은혜를 잊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남을 욕하는 사람과 껌씹는 스타일을 비유한 것도 귓 속에 쏙 들어온다. 껌은 돌려 씹는 사람도 있고, 단물만 빠지면 뱉는 유형도 있고, 질근질근 씹어돌리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을 씹는 것도 그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남을 아무리 욕해봐야, 그만큼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것. 그는 지난해 미수연 잔치 때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한 후에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88세에도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언제든 새롭게 도전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 고향 영덕에 큰 산불 피해가 난 이후에도 아들 셋과 함께 영덕군에 지원금 1천만원을 전달했다. 문 원장의 아호는 정승(正昇)이다. 큰 스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바른 길로 오르라'는 의미를 담아 지어줬다. 아호에 담긴 뜻대로 바른 길을 찾아가며,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아들 셋에게도 늘 가르친다. "쓸 만큼 쓰고, 나머지는 아껴서 또 좋은 곳에 써라." 그의 패션은 '이세이 미야케'(일본 패션 디자이너 이름, '주름'이 포인트). 평상복 중에 60% 이상이 이 브랜드다. 이유는 실용적이고, 편하기 때문이다. "저한테 딱 어울립니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구요. 문신자 패션이라고나 할까요? ㅎㅎㅎ." 구순(90세)을 바라보고 있지만 내일 할 일에 대한 벅참과 기대감만 있을 뿐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1,2월 빡빡한 스케줄은 보셨으니 알테고, 3월에도 벌써부터 일정들이 빼곡 들어차고 있습니다. 이런 탓에 아플 틈도 없고, 늙을 겨를도 없습니다. 세월은 저를 붙잡지 못할껄요? ㅋㅋㅋ."
2026-03-05 11:30:00
(사)대구 유림회는 지난달 26일 정기총회를 열어, 윤석준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윤 회장은 연임 수락 후 강선봉 한센병박물관 회장에게 5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2026-03-04 17:41:36
[창간 80년, 격동 80년]이승만 대통령 영구 집권을 위한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발췌개헌 이후 치러진 1952년 8월 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고 국회권력까지 장악하게 된 이승만 대통령은 내친김에 대통령을 계속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하지만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은 중임까지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 규정을 바꿔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 라는 이상한 문구를 넣어 1954년 헌법을 다시한번 개정을 시도하게 된다. ◆3선 연임, 이승만 집권 연장의 꿈 이뤄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에 앞서 1954년 5월 20일에 있었던 제3대 총선의 결과가 매우 중요했다. 이 선거에서는 각 정당에서 한 선거구에 한 후보를 공천하는 정당 공천제가 처음으로 실시됐다. 4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 입후보자들에게 "개헌 조건부로 입후보케 하라"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즉 개헌 지지의 다짐을 받고 자유당 후보로 입후보하도록 한 것이다. 5월 20일 총선에서 자유당은 국회 203석 가운데 114석을 차지했으며, 제1야당은 겨우 15석에 불과했다. 이에 자유당은 개헌안 통과를 위해 무소속 의원들을 회유 또는 협박하는 방식으로 136명을 확보했다. 그리고 9월 6일 136명 의원들의 찬성 서명으로 개헌안은 국회의 공식 절차를 밟게 됐다. 정부는 이 개헌안을 이틀 후 공고했으며, 11월 1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공고 기간 동안에는 야당인 민국당과 무소속 동지회는 개헌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대운동을 치열하게 펼쳤다. 개헌안 표결은 우여곡절 끝에 11월 27일 비밀투표에 붙여졌고, 재석 202인 중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가 나왔다.이날 국회 사회자였던 최순주 국회부의장은 1표차로 개헌안의 부결을 선포했다.개헌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203명의 3분의 2 이상, 즉 135.333… 명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136표 이상이어야 하는데, 135.333… 명에서 0.5 미만의 끝다리를 떼고 135표 이상이면 가결이라는 논리를 궤변을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여권 인사들은 '저명한 수학자까지 동원해 203의 3분의 2를 물었고, 원하는 답(135명)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8일 정부와 자유당은 수학 용어인 '사사오입(四捨五入)'을 근거로 개헌안 통과를 주장했고, 29일 최순주 국회부의장이 개헌안 부결은 '계산상 착오'로 취소한 후 가결 통과를 선포했다. 이때 이철승 의원이 의장석에 등단하여 최순주를 멱살을 잡아끌면서 "내려와"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야당 의원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개헌안 '부결 번복 가결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온 국민의 눈을 가리는 기가 막히는 셈법이 동원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사오입 개헌(四捨五入 改憲)이다. 자유당은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해,개헌안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 이 사사오입 개헌은 자유당 몰락의 신호탄이 됐다. ◆대통령 하야 후 망명 "욕심이 화 불러" 사사오입 개헌의 최대 수혜자는 당연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초대 대통령(1948~52년, 간선제)에 이어 2대(1952~56년, 직선제), 3대(1956~60년, 직선제)까지 국가 수반의 자리를 차지한 것. 국무총리제는 폐지되었으며, 대통령 궐위시 부통령이 승계한다는 것도 명시했다. 개헌안 중 경제 체제의 중점을 국유·국영의 원칙으로부터 사유·사영의 원칙으로 이전한 것은 국민을 위한 진일보(進一步)한 내용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 무리한 개헌안 통과에 이은 3선 연임은 또다른 비극을 낳는 씨앗이 됐다. 당시 개헌안에 반대했던 세력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 야당 의원들은 범야당 연합전선을 형성했으며, 11월 30일 '호헌동지회'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결성했다. 또,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민주당)의 장면 부통령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사사오입' 개헌으로 4년 더 대통령직을 유지했지만, 한국 정치사에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선명하게 새겼다. 헌법에 명시된 '1차에 한해 중임 가능' 조항을 초대 대통령만은 예외로 한다는 헌법 개정 시도 자체가 비극의 단초가 됐다. 3선 대통령이 된 후에 4선 도전도 무투표로 당선됐다. 국민은 이 대통령을 용서하지 않았다.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인해 4·19 민주혁명이 발발했으며, 이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했다. 경무대(현 청와대)를 떠나 자택인 이화장에 잠시 머물다,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했다. 5년이 더 흐른 1965년 7월 19일 호놀룰루 요양원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2026-02-26 12:30:00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4>'의성을 빛내라' 성광성냥공장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겨울이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동화가 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이다. 성냥은 20세기에 일상 속의 소중한 도구로 늘 곁에 존재했다. 부엌이나 장터에서 불을 피우기 위한 수단으로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시골 마루에도 할아버지가 앉은 자리 옆에는 담뱃불을 붙이기 위한 큰 성냥통이 자리잡고 있었다. 〈strong〉◆의성 젊은이들의 소중한 일터〈/strong〉 경북 의성(義城)에 가면 1960년에서 1970년대까지 의성경제를 책임지다시피 한 엄청난 규모의 성냥공장이 있었다.성광(城光)성냥공장이다.의성 성광성냥공장은 1954년 6.25때 월남한 실향민 양태훈씨와 김하성씨가 설립됐다.당시로서는 자동화 생산 설비를 갖춘 혁신적인 공장이었다. 그리고 '의성을 빛내라'라는 의미를 담아 '성광(城光)이라는 회사이름을 지었다. 의성군 도심 한켠에 자리잡은 산업유산 성광(城光) 성냥공장은 1960년대 당시 의성군 관내 220명여 명의 젊은이들이 성광성냥에서 근무하거나 성광성냥과 관련된 일을 할 정도로 지역경제에도 기여할 정도로 소중한 일터였다.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과정은 사람이 일일이 하는 수작업에 가까웠다. 성냥 생산량이 늘면서, 성냥갑을 납품하는 하도급업체까지 두었다. 의성읍 사람치고 성광성냥 제조에 취업이든 부업이든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성냥공장에서 33년간 근무한 김한숙 씨는 회고록에서 "성냥공장가서 월급 타가지고 다달이 농협에 갖다 넣으면 1년만 되면 100만원 씩 이래 되거든요.(중략),적금 넣고 그거가지고 또 모두고 이래.그때만 해도 1억 가 있으면 평생 먹고 산다 캣거든요..."말했다. 〈성광성냥〉이 다른 성냥과 달리 쉽게 눅눅해지지 않는 두약(頭藥) 덕분에 경북은 물론 부산 경남지역과 습기가 많은 바닷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당시 이사를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성냥불처럼 재산이 확 일어나라"란 축복의 의미로 성냥이나 커다란 통성냥을 들고 찾아갔다. 전성기 이곳에서 생산된 하루 20만 보루의 성냥은 전국으로 유통됐다. 하지만 1980년대 가스라이터에 밀려 성냥산업도 차츰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국내 성냥공장들도 중국산의 저가 공세에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성광성냥도 2013년 결국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strong〉근현대 예비문화유산으로 재탄생〈/strong〉 성광성냥은 13년 전 가동을 중단했지만, 폐업당시 성냥을 생산하고 포장하던 모든 기계설비들이 근현대 예비문화유산으로 잘 보존돼 있다.의성군은 이 공장부지를 2년 전 18억원에 사들여, 올해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내년도 하반기에 산업유산 전시관으로 재탄생시킬 계획을 세웠다. 공장에 들어서면 원목을 잘라 성냥개비 크기로 절단하는 절단기와 성냥봉에 '두약'을 바르던 '윤전기'를 비롯해 성냥을 생산하던 모든 과정들이 온전히 남아 당시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윤전기는 지난해 말 국가유산청이 새로 도입한 근현대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성냥 제조 윤전기로서 역사적 희소성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산업유산은 문화로 꽃피울 채비를 하고 있으며, 추억의 성냥은 시대에 맞도록 변신중이다. 이에 발맞춰, 의성군도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을 진행 중이다.전면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 성냥공장 박물관과 전시체험관, 복합커뮤니티센터, 주민 활동공간 등을 차례로 조성할 방침이다. 현재 의성군이 확보한 사업비만 18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올해 1월 10일까지는 의성 성광성냥 공장부지에서 작가 김진우 기획전 '진화의 불씨'도 진행했다. 1954년부터 2012년까지 가동됐던 국내 마지막 성냥공장으로 산업화 시대의 기억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아냈다. 작가는 과거의 기계와 공간이 새로운 예술 창작의 에너지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구체적인 로드맵도 나왔다. 의성군은 1960~80년대 의성의 삶과 노동 그리고 지역 경제 활동지수 등에 대한 기초 조사 및 아카이브 구축을 하고 있다. 더불어 성냥 제조 과정을 체험 프로그램, 지역 청년 창업 연계, 관광 활성화, 성광 성냥 브랜드화(상품 개발) 등을 추진중이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성냥공장을 통해 의성의 근현대 산업사를 재조명할 수 있을 뿐더러 미래 문화유산으로서의 잠재적 가치가 높다"며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 거리 등 공장 주변까지 연계해 문화 관광의 거점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2026-02-26 12:00:00
[정치야설 '5분전']뿌리치기 힘든 유혹 '대통령의 선거개입'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 초청 회견 등 여러 공식 석상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후 대통령의 선거중립 위반으로 인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이어졌다.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법을 어긴 것은 맞으나 민주적 기본 질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할 정도의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탄핵안을 기각해 그 법적 기준을 더욱 구체화했다. 대통령은 헌법 제7조(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와 공직선거법 제9조에 근거해 선거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중에 소속 정당(집권당)을 어떤 방식으로든 도우려는 마음에 선거중립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李 대통령, 전재수 SNS 글 공유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 선거판이 뜨겁다. 국민의 힘 박형준 현 시장에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국회의원의 맞대결 양상인데, 이재명 대통령이 부산도 파란색으로 도배됐으면 하는 마음에 전 의원의 SNS(페이스북) 글을 공유했다. 정부 차원에서 부산 발전을 위해 전폭 지원할 것(해수부 이전, 해사법원, 동남권 투자공사 등)이라고 약속했다. 국민의힘 부산시당은 지난 20일 논평을 통해 "사실상 지방선거 힘 싣기이자 선거 개입"이라며 "부산의 품격에 먹칠하는 행위며, 대통령의 한없이 가벼운 처사에 유감을 표한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민주당 측은 "기소 여부도 확정되지 않은 사안을 근거로 정치활동과 표현을 통제하겠다는 것은 무죄추정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크게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文 대통령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청와대가 직접 나서 특정 후보(송철호 전 울산시장)의 당선을 돕기 위해 공권력을 이용했다는 의혹으로 현재까지도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오랜 친구인 송철호 후보를 위해 상대 후보였던 김기현 울산시장에 대해 하명 수사를 지시하고, 공약 수립까지 도우려 한 것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진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청와대 관계자들이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대통령 본인의 직접적 지시 여부는 법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 만큼이나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으로 인한 거센 비판에 직면한 사건이다. ◆朴 대통령, 공천 개입 논란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 개입 논란은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논란이다. 대통령이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국가기관과 조직을 동원해 여당의 공천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5년 11월 국무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한 발언에서 시작됐다. 이 발언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는 '진박 감별사' 논란마저 일었다. 친박계 의원들이 나서서 누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진실한 사람'인지 판별하고, 비박계 후보들을 밀어내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이 공천 개입 논란은 당시 새누리당 내 극심한 계파 갈등을 초래했으며, 김무성 당 대표가 공천 직인 날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옥새 들고 나르샤'(옥새 런)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尹 대통령, 민생토론회 논란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총선을 앞두고 1월부터 3월까지 전국을 돌며 24차례나 민생토론회를 연 것이 발단이 됐다. 논란의 핵심은 민생 행보로 볼 것인지, 관권 선거인지 여부였다. 야권 및 시민단체는 사실상의 선거 지원이며,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및 여권은 '정당한 국정 수행'이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부처 업무보고를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일 뿐"라며 "선거와 무관하게 민생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대통령의 고유 통치행위"라고 맞섰다. 2024년 10월, 서울 경찰청은 윤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사건에 대해 최종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검찰로 불송치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 토론회 개최 논란은 향후 선거 국면에서 대통령의 정책 홍보가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026-02-26 11:30:00
[커브스토리] 신뢰와 협력의 메시지 담은 '세기의 악수'
악수는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인사 방식 가운데 하나다. 단순한 예절을 넘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신뢰와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근·현대에는 신뢰와 협력의 메시지를 담는 상징적 행위로 인식된다. 특히 정치와 외교 현장에서는 악수 장면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갈등의 종식, 화해의 시작, 국제 질서의 변화를 상징하는 순간으로 기록돼 왔다. 역사 속에서는 한 번의 악수가 전쟁과 대립을 평화와 협상으로 전환하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악수의 기원은 고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낯선 이를 만날 때 상대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서로 오른손을 내밀어 잡는 행위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표시로 해석됐다. 곧,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음을 알리는 비언어적 신호였다. ◆근현대사의 '세기의 악수들' #1. '美 닉슨과 中 주은래' 적과의 화해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방중은 '전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라 불리며, 현대사 최고의 반전 드라마로 기억된다. 냉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미국과 중국이 20년 넘게 이어오던 적대 관계를 깨고 손을 맞잡다. 닉슨은 '악수'를 소통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1954년 제네바 회담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주은래의 악수를 거부했던 사건은 중국에 큰 굴욕이었다. 이를 의식한 닉슨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주은래에게 손을 내밀었다. #2. 동·서독 정상 악수 '핏줄의 재결합'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동독과 서독 지도자가 나눈 악수는 '분단의 시대가 끝나고 통일 독일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이정표였다. 이후 통일 독일은 단일 민족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유럽 강대국의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당시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와 동독의 신임 총리 한스 모드로(Hans Modrow)의 만남은 이웃나라 정상 간의 회동이 아니라 한 민족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거대한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두 정상의 악수는 '핏줄의 재결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3. 美 트럼프-北 김정은 첫 만남 '13초'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파격적인 형식과 장소 덕분에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두 정상은 성조기와 인공기가 교차 배치된 복도에서 걸어 나와, 정중앙에서 만나 약 13초 동안 악수를 했다. 트럼프는 상대의 팔을 가볍게 두드려 주도권을 쥐려 했고, 김정은도 이에 맞서 굳건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이는 "우리는 대등한 대화 파트너"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시각적으로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4. '南-北 만남' DJ와 김정일 두손 맞잡아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한반도 분단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55년 분단의 벽을 허물고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장면이 TV로 생중계되자, 전 국민은 '공존과 화해', '한반도 냉전의 해체'를 기대했다. 이후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만남 그리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 이은 판문점 회동에서도 남북 정상간 악수는 양국간 화해 물결의 알리는 장면으로 각인됐다. 2000년대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 중 3번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실질적 핵폐기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악수가 외교적 '신호'로서의 의미는 컸지만, 실질적 정책 변화를 담보하지는 못했다. 정상 간의 악수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몇몇 괴팍한 정상들은 악수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기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 국가간 외교에서는 따뜻한 손길로 신뢰의 물꼬를 트는 반가움을 담아 서로 손을 내민다. 단순한 인사를 넘어 외교 수단으로 활용되는 악수, 정상들의 맞잡은 두 손에 세계의 평화와 미래가 달려 있기도 하다.
2026-02-19 12:30:00
20일부터 기초단체장을 비롯한 광역의원,기초의원 출마자들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다.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는 순간부터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인 선거운동이 가능해진다. 대구·경북(TK) 지역 특성상 보수 성향의 특정 정당(현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해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곳이다. 정당 내 후보를 뽑는 경선이 훨씬 더 치열하고 실질적인 승부처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본선 투표보다 "누가 공천을 받느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비후보자들의 시계는 이미 뜨거운 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선거 현장에서는 "눈은 마음을 보고, 손은 표심을 잡는다"는 말이 있다. 현장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손을 잡으며 건네는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 그 지역의 민심과 후보자에 대한 기대치 아니면 불신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주간매일 취재팀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출마했던 후보자들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뜨거웠던 선거운동 현장을 재구성한다. ◆대구 서구 북비산네거리 인력시장 어스름한 새벽, 불을 밝힌 인력시장 앞으로 한 기초의원에 출마한 예비후보가 나타났다. 두툼한 장갑을 벗어 던지고 맨손을 내미는 그의 손끝이 금세 벌겋게 달아오른다. 후보자: "안녕하십니까, 서구의 일꾼 OOO입니다!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늘 꼭 좋은 일자리 잡으시길 제가 응원합니다" 유권자: 한 중년 남성은 투박한 손으로 후보자와 악수하며 되물었다. "허~ 허~, 후보님 손은 참 따뜻하네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 일자리 걱정 안하게 마음도 좀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소?" 짧은 악수였지만, 그 안에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민심이 실려 있었다.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 한 표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는 좋은 악수의 사례로 보인다. ◆대구 중구 서문시장 대구 민심의 바로미터이자, 사람들이 모여서 활기가 넘치는 서문시장. 이곳의 악수는 유독 길다. 상인들은 후보자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채,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후보자: "어머니, 저 예비후보자 OOO입니다! 요즘 장사는 좀 어떠십니까? 물가가 너무 올라 걱정입니다." 유권자(옷가게 운영): "아이고, 내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인데. 선거 때는 이렇게 손도 잘 잡아주면서, 당선되면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 아니야? 이번엔 진짜 믿어도 되는 거야?" 후보자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한 표를 얻기까지 악수도 쉽지 않다. 요구하는 것이 많을수록 악수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말이 많으면, 초점도 흐려지기 마련. 적당히 잘 치고 빠지는 것도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대구 수성구 범어역 지하철 입구 출근 인파가 쏟아지는 이곳에서의 악수는 '속도전'이다. 수성구 시의원에 출마한 한 예비후보자가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명함을 건네고, 찰나의 악수를 건넨다. 후보자: "좋은 아침입니다. 기호 0번 OOO, 젊은 대구를 만들겠습니다. 오늘도 힘내십시오!" 유권자(30대 직장인): "(명함을 받으며) 나중에 읽어볼게요. 출근길이라 좀 바빠서요." 이곳의 후보자들은 무관심이라는 벽과 싸운다. 수백 번의 거절 끝에 얻어낸 한 번의 악수가 후보자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다. 악수를 받아주는 유권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한번씩은 지인들이 와서 역으로 악수를 청할 때는 힘이 절로 난다. ◆대구 동구 신암동 평화시장 골목 동구 기초의원 예비후보자가 지나는 유권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후보자: "어르신 잘 지내십니까?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 OOO입니다. 머슴처럼 부려 주십시오.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유권자: "악수만 하지 말고, 저기 골목길 가로등 꺼진 것부터 좀 봐줘요. 무서워 죽겠어요." 후보자는 유권자가 '동네의 일꾼'임을 체감하며, 꼭 당선되면 바꿔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악수는 단순히 표를 구걸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유권자에게는 '나를 잊지 말라'는 당부이며, 후보자에게는 '책임지고, 잘 하겠다'는 서약이다. 선거철의 뜨거웠던 악수가 당선 후의 차가운 외면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그 짧은 악수의 감촉을 기억하며 지켜보고 있다.
2026-02-19 12:30:00
"잡는 순간, 감이 옵니다." 6·3 지방선거가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2022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 지방선거에서는 주먹 인사로 대체되었던 후보자들의 악수가 다시 선거판의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후보자들은 악수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한다. 이달 3일 지방선거에 출마할 시·도지사 예비후보들의 등록이 시작되면서 본격 선거레이스가 시작됐다. 예비 후보자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거리와 시장, 경로당 등에서 유권자들의 손을 잡고 허리를 굽히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풀뿌리 민주주의 꽃인 지방선거는 여전히 발로 뛰는 선거라 악수를 잘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짧은 접촉이지만, 그 손길에는 후보자의 메시지, 선거 전략이 고스란히 담긴다.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책 공약이나 연설보다 유권자와의 가장 직접적인 '스킨십'이자, 짧은 찰나에 진심을 전달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악수에 대해 "가장 원초적인 정치 행위"라고 말한다. 눈을 마주치며 손을 맞잡는 행위는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존중한다는 신호다. 하지만 악수 정치에도 한계가 있다. 형식적으로 반복될 경우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비판을 받으며, 실제 득표와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2026-02-19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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