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훈 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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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1930년 상주에 고급 백화점, 실화?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1930년 상주에 고급 백화점, 실화?

    일제강점기(1910~1945년) 우리나라에는 일본 자본과 민족 자본이 운영한 여러 백화점이 있었다. 당시 백화점이라 하면 서울의 화신백화점, 미츠코시 경성점, 조지야 백화점과 대구의 미나카이 백화점 등 주로 대도시에 집중돼 있었다. 상주백화점은 당시 지방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근대 상업시설이었기 때문에 "상주의 명물"로 불리기도 했다. 1930년대에 건립돤 상주백화점은 당시 상주가 경북 내륙 교통의 중심지이자 농산물 집산지였기에 근대적 상업시설로서 들어설 수 있었다.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련된 건축 양식을 자랑하고 있다. 2층과 3층 사이에는 기하하적 꽃문양 대리석이 장식되어 있으며 내부 계단과 창문도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상주백화점→우체국 →개인 소유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근대식 상가로 지어졌으며, 당시 지방 도시에서는 드물게 '백화점'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는 오늘날의 대형 백화점이라기보다 여러 상품을 취급하는 종합상점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백화점은 부자들이 고급 상품을 소비하던 부의 상징이자, 근대 시대의 서구적인 장보기를 경험할 수 있는 신세계였다. 상주백화점은 당시 상주시의 위상도 보여준다. 건물주 장 씨(82세)는 "이 건물의 역사가 100년 정도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당시 상주에 인구도 많았고, 작은 백화점이었지만 만남의 장소이자 당시 부자들의 자주 들리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상주백화점 인근에는 일제시대 대리석 건물인 식산은행 상주지점(SC제일은행 상주지점)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1950년 경부터는 이 건물에 상주우체국이 입주했다. 기존의 상주우체국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소됐기 때문에 새 청사를 지을 때까지 상주백화점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우체국 역사 기록에 따르면 상주우체국은 1905년 6월 부산우체국 상주출장소로 시작해, 1907년에 상주우체국으로 승격됐다.흥미로운 점은 상주백화점이 단순히 "백화점 건물"로만 남지 않고,백화점 → 우체국 → 상업시설 등으로 용도가 바뀌며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근대 상주의 번영과 꿈을 담아내고 있다. ◆9년 전 산업유산 지정, 향후 활용 계획은? 상주백화점 건물은 2017년에 경북 산업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아직은 어떤 식으로 활용할 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민간 건물주인데다 3,4층에 주인이 2대에 걸쳐 살고 있는데다 건물 가치가 높아 상주시에서 적지 않은 예산을 확보해야만 일단 매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1,2층에는 상업적인 용도로 임대를 주고 있다. 상주시는 이 일대를 근대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으로 조성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상주백화점과 식산은행 상주지점 등 일제시대에 건립된 건물을 문화체험 및 관광명소로 만들어 상주를 방문하는 이들의 필수 코스로 만들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 이 백화점은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동서남북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곳이다. 김진형 상주시 문화예술과 국가유산팀장(학예연구사)는 4일 기자와 만나 이 건물을 함께 둘러본 후 "시 예산으로 이 건물을 매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100년이 된 건물치고는 외관도 깨끗하고, 현 시점에서 봐도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당시 상주백화점은 고급 잡화들이 많이 팔려 나갔으며, 전통 시장과 달리 지역의 상류층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자주 이용됐다고 전해진다. 유럽풍 양식의 근대 건물인데다, 큰 창문 위 아래로 꽃 문양 대리석들이 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2026-06-12 13:40:00

  • [털보기자의 '그사람']

    [털보기자의 '그사람']"눈물나게 고마운 울 마누라"

    곽대훈 인수위원장의 삶에 또다른 반쪽은 바로 사랑하는 아내 이남옥 씨다. 늘 공직 생활에 바쁘다보니 함께 여행할 시간조차 없었다. 곽 위원장은 그래도 전 세계 40여개국을 업무차 또는 지인들과 다녔지만, 아내는 해외 여행을 좀처럼 다닐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곽 위원장은 지난해 5월 단 둘이 오붓하게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을 다녀왔다. 부부는 인생 말년에 제대로 탄력을 받았다. 다음 번엔 그리스와 로마 등 서유럽 쪽으로 계획도 잡고 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도 가려고 한다. 곽 위원장은 내 인생에 가장 혹독한 시절을 "국회의원 재선 도전 실패"라고 꼽았다. 당시 그는 경선 결과에 승복을 하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다. 거의 매일 같이 홧병이 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컸던 시절이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 역시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주변에서도 무소속 출마를 만류했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나즈막히 한마디를 건넸다. "여보, 그렇게 억울하면 무소속으로 나가서 최선을 다해 함 뛰어보세요. 저도 있는 힘을 다해 도울게요." 결과는 예상한대로 낙선이었지만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느낀 인생 승자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꺾은 것도 아내였다. 자신의 마지막 꿈, 대구시장에 함 도전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던 차에 또 아내의 한마디가 귓가에 전해졌다. "여보, 무소속 출마 한번이면 됐어. 더 안해도 돼." 한편, 곽 위원장은 현풍 곽씨(玄風 郭氏) 곽재우 의병장의 후손으로 문중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특히 지역 행사나 종친회 모임에서 충신·효자·열녀를 기리는 정려(旌閭)를 한곳에 모아 놓은 현풍 곽씨의 대표 유산인 '십이정려각'을 언급한다며 후손들이 항상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할 것을 강조했다.

    2026-06-12 12:30:00

  • [털보기자의 '그 사람']곽대훈 대구시장직 인수위원장

    [털보기자의 '그 사람']곽대훈 대구시장직 인수위원장 "내 꿈 이뤄낸 추 당선인"

    "고려대 선·후배 관계인데, 학창시절에는 서로 잘 몰랐죠. 2018년 추 당선인이 달성에 출마할 때, 달성 현풍과 다사에 2번이나 지원유세도 갔죠. 개인적으로는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는 친한 사이입니다. ㅎㅎㅎ"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은 지난 5일 아침에 곽대훈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오후 4시쯤 함 만나시죠. 2·28 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찾아가겠습니다." 이날 오후 만남에서 추 당선인은 정중하게 대구시장직 인수위원장을 맡아 주기를 요청했고, 곽 회장은 법률적인 검토를 거쳐 그 자리를 수락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둘은 성격부터 일하는 스타일 등 척척 맞다. 8일 인수위 현판식을 시작으로 본격 업무가 시작됐다. ◆"내 마지막 꿈이 대구시장인데…." 곽 위원장은 일생의 마지막 공직으로 대구시장을 꿈꿨다. 하지만 2020년 총선에서 재선에 실패하면서 그 꿈은 서서히 멀어져갔다. 무소속 출마까지 강행했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또다른 사명이 이어지고 있다. 새마을운동 중앙회 회장에 이어 현재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제가 사실 국회의원 3선 후 대구시장에 도전하려 했습니다. 그 꿈을 이룬 건 제가 아니라 추경호 당선인입니다. 사실 부럽기도 합니다. 한편 잘된 일이죠. 모든 것은 시대적 흐름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구 현안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에 추 당선인을 위해 열심히 도와야죠." 추 당선인과의 일 호흡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척척 맞아 들어간다. 인수위 규모도 '초미니 실무형'으로 출범시켰다. 대구시 각종 현안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만큼 향후 2주 내에 인수위 주요 임무를 정리한 후 이달 말까지 대구시정에 관한 업무 인수·인계를 완성할 계획을 짜고 있다. 현재 인수위에는 추 당선인 측에서 한동엽 공보실장, 하중환 대변인, 이은정 정책실장이 참여했고, 대구시에서는 김정기 행정부시장, 오준혁 기획조정실장, 안중곤 행정국장, 한응민 정책기획관이 들어갔다. 추 당선인과 곽 인수위원장은 "직접 실무까지 챙기겠다"고 효율적인 일처리를 강조하고 있다. ◆전임 시장 때 문제점 개선에 주력 "전 시장 때 드러난 여러 가지 대구시정의 문제점을 시정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TK 신공항, 대구경북 행정통합, 대구시 신청사 건립 등 굵직한 현안 사업들은 거의 다 지지부진하고,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대구행복진흥원 등 무리한 기관 통폐합으로 인한 부작용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전 시장은 당선 후 3년 동안 본인 스타일대로 시정을 이끌다 1년 임기를 남겨두고 사퇴를 했다. 이로 인해 지난 1년 동안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다보니, 대구시의 각종 현안을 강력하게 추진할 원동력이 약했다. 김 권한대행은 사실상 그동안 해오던 일을 잘 관리하고, 수습하는 일에 주력했다. 추 당선인의 인수위는 기본적으로는 전 시장들이 잘한 일들은 계승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운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전 시장 본인의 대권 가도(중앙 정치에 관여) 를 위해 독선적인 운영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민 참여와 소통 쪽으로 시정 방향을 바꾼다는 방침이 섰다. 곽 위원장은 "공정한 인사관리도 필요하고, 무리한 예산 삭감도 없어야 하며, 문화예술 쪽도 부흥시켜야 한다"며 "특히나 고층 아파트 때문에 망가진 도심 경관(스카이라인)을 살릴 방안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8올림픽 조직위 사무관 "큰 보람" 곽 위원장의 공직 생활은 40년이 훌쩍 넘었다. 행정고시 합격 후 달서구 부구청장을 하다 선출직인 달서구청장에 도전해 3선, 국회의원 초선에 새마을운동 중앙회 회장을 거쳐 현재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누가봐도 국가 발전과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왔음을 그 이력이 증명하고 있다. 그런 삶을 살아왔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대뜸 물었다. "언제가 가장 보람이 있었죠?",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구청장, 국회의원 시절이 아니구요. 행정고시 합격 후 1985년부터 89년까지 88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활동할 때입니다. 경기 기획을 담당했는데, 올림픽 기간(16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곽 위원장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88올림픽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대전환의 기회였고, 우리나라는 성공적으로 잘 해냈다"며 "고생하면서, 참 많은 일들을 배웠고, 성공적인 개최 이후 마음 한켠에 이 나라에 대한 뿌듯함과 공직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고 특유의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구시민의 바람 잘 읽어야 '성공' 곽 위원장은 추 당선인이 다음달에 취임하면, "대구시민들의 바람을 잘 읽어야 성공한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대구시민들은 집권 여당에 대한 막연한 기대(예산 전폭 지원)보다는 '미워도 다시 한번, 그래도 야당에 힘을 실어주자'는 여당 심판론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을 잘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과 이진숙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인이 대구시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현 정부로부터 탄압받은 인사'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김부겸 바람이 거셌지만, 결국 보수의 심장은 파란색 물결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대쪽 같은 시장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 그는 이번 선거에서 투표 용지 부족 등 부정 선거 논란을 자초한 중앙선관위에 대해서도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번 기회에 선관위를 거의 해체 수준에서 다시 개편하고,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잘 관리하도록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곽 위원장은 이달 말에 인수위원장으로서의 사명을 끝내고, 다시금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 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더이상 공직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대구를 위해 한없이 봉사하려는 마음 뿐"이라고 밝혔다.

    2026-06-12 12:30:00

  • [청라언덕-권성훈] '점입가경'(漸入佳境) 초입, 여권 내 권력 다툼

    [청라언덕-권성훈] '점입가경'(漸入佳境) 초입, 여권 내 권력 다툼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0일 의원총회 발언) 6·3 지방선거가 끝나고 여권 내 권력 다툼이 점입가경(漸入佳境)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야말로 '친명'(親明)과 '친청'(親淸)의 정치적 생명을 건 파워 게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양쪽 공히 목표는 2년 후 총선 공천권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선 승리 후 차기 대권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1차 전쟁터는 8월 17일로 확정된 민주당 내 전당대회. 정 대표는 연임에 사활(死㓉)을 걸어야 할 입장이다. 실패할 경우 현 권력의 핵심 친명파로부터 공천 학살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차 하면, 지난 당 대선 경선에서 대장동 의혹을 제기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처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양쪽 모두 선전포고는 끝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럽 해외 순방을 나가기 전, 당 지도부의 공항 영접을 먼저 사양했다. 아예 오지 말라고 부탁한 셈이다. 대신 김민석 국무총리가 영접을 담당했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앞두고, 김 총리를 향해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 성과를 냈다'고 공개 칭찬을 했다. 김 총리는 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당 권력 장악에 총대를 멨다. 상대는 정청래 현재 당 지휘관이다. 정치 내공만으로 볼 때 만만치 않은 상대다. 향후 두 달여 동안 여권 내 권력 다툼이 어떤 양상으로 치달을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쉽지 않다. 양 계파의 중간 지대에 있는 의원들이 어느 쪽에 줄을 설지도 흥미진진하게 볼 대목이다. 진보세력의 핵심 계보를 들여다보면, 이번 여권 내 파워 게임은 분명 친노·친문으로 대표되는 '구주류'와 뉴(New)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신주류'가 한판 승부를 펼치는 치킨 게임 양상을 띠고 있다. 신주류는 지방선거 후 곧장 사퇴한 이언주 전 최고위원을 비롯해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박찬대 인천시장 당선인, 부산 북갑 하정우 후보 등으로 봐도 무방하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흥망(興亡)은 진보 내 권력 다툼의 속성을 잘 보여 준다. 제17대 총선에서 전체 299석 중 절반이 넘는 152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참여정부의 지지율 급락과 함께 위기가 찾아왔다. 2007년 초에는 110석으로 줄어들면서, 제1당 자리마저 한나라당(127석)에 내주고, 창당 4년여 만(2003~2007)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현 시점에서 분당의 위기마저 감지되는 쪽은 제1야당 국민의힘이 아니라 거대 여당 민주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기고도 진 여당 쪽에 분열의 위기가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다. 지고도 이긴 제1야당에 오히려 큰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모처럼 보수가 상대의 분열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다. 정청래 대표의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 발언을 반추해 보면 참으로 도발적이다. '(진보 쪽이) 단결하면 승리했고, 분열하면 패배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서는 친명계를 대표하는 김민석 총리와 이리 떼나 승냥이 떼처럼 처절하게 싸워야 할 판이다. 국민들은 여당 내 권력 다툼의 결말이 자못 궁금하다. 집권 여당은 국민의 관심이 2년 후 공천권을 향한 양쪽 계파의 치열한 다툼의 결과보다는 '어느 쪽이 올바른 길을 지향하느냐' '국민을 위한 진정성 있는 정치를 하느냐'임을 명심해야 한다. 권력 아귀다툼은 곧 자멸이다.

    2026-06-11 17:35:55

  • 메이저뷰티 아카데미 '글로벌 K-뷰티 스쿨 in 히로시마'

    메이저뷰티 아카데미 '글로벌 K-뷰티 스쿨 in 히로시마'

    메이저뷰티 아카데미(대표 황시안)와 수성관광재단은 4일 히로시마 영사관 초청으로 히토마치 플라자 4층에서 2026 한·일 경제 교류 행사의 일환으로 '글로벌 K-뷰티 스쿨 in 히로시마' 메이크업 시연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황시안 대표는 "지난해에는 삿포로에서 진행했으며, 매년 일본 여성들의 호응이 뜨겁다"고 밝혔다.

    2026-06-08 17:12:12

  • 김춘원(95)·이동철(93) 두 참전용사

    김춘원(95)·이동철(93) 두 참전용사 "다부동·화산 전투에서 생존한 것이 기적"

    전쟁은 역사가 됐지만, 기억은 아직 살아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시작된 비극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한반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그 격랑의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낸 참전용사들은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부동의 능선에는 아직도 치열했던 전투의 기억이 남아 있고, 영천호국원에는 이름 모를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을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의 중심지였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들을 만나 전쟁의 아픈 기억을 들어본다.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이들의 나이는 100세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당시 전쟁터에서의 기억은 너무도 또렷하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가 훌쩍 지났건만 당시의 기억은 어찌 그리도 생생할까. 매일이 일촉즉발(一觸卽發), 생사(生死)를 오갔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들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바로 옆 전우가 쓰러지고, 시체가 쌓인 참호 속에서 적군과 싸워야 하는 그 처절한 현장을 겪어보지 않고, 어찌 가늠이나 할까. 전쟁터는 일상이 갑작스런 죽음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전쟁 세대의 뇌리 속 기억은 강렬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그 호국 영령들의 희생 위에 자유를 누리고, 세계 속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한강의 기적', '낙동강의 기적'은 전쟁의 폐혜를 딛고 일어선 한민족의 저력을 전 세계에 보여준 쾌거다. 본지는 살아 있는 증언을 기록하고, 대구·경북 곳곳에 남겨진 전쟁의 흔적을 찾아 전한다. ♬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지부장 임채환)의 추천으로 지난달 27일 한국전쟁 두 참전용사를 만났다. 1931년생 김춘원 씨와 1933년생 이동철 씨. 백수(百壽, 100세)를 바라보는 노병(老兵)이지만 전쟁 당시를 떠올릴 때의 눈빛만은 혈기왕성한 전장의 전투병이었다. "지금 살아있는 것도 꿈인지, 생시인지…."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보여준 두 용사의 애국심은 아직도 불타고 있었다. 휴전을 한 지, 73년이 흘렀건만 둘의 기억 속에는 전쟁의 아픈 상흔이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두 용사 모두 화랑 무공훈장을 받고, 국가로부터 매월 참전 영예수당과 무공 수훈수당을 합쳐 55만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나라의 안보관과 군인들의 전투태세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했다. '신의 가호'인지, 더 큰 기적으로 생각된 것은 두 용사가 수십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직까지 정정하게 살아계시다는 것 뿐 아니라 총알이 빗발치는 고지전 전투에서도 단 한발도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3701295, 수색병 김춘원 군인에게 군번은 생존 확인증이나 다름없다. 그 때문일까? 김춘원 용사는 주민번호보다 군번을 더 확실하게 외우고 있었다. 자판기처럼 이름만 대면 바로 군번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의 6·25 전쟁 스토리는 한편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고향이 의성인 그는 18세에 결혼을 했다. 1949년에 태어난 김완준 경주 예술의전당 관장이 큰 아들이다. 고향에서 임시 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다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홍익대 정경학과(정치경제)에 편입시험을 치고, 서울 아현동에서 자취를 하는 중에 전쟁이 터졌다. 북한 인민군은 3일 만에 남하해 서울을 함락시켰다. 뒤늦게 전쟁의 심각성을 깨달은 김씨는 친구들과 고향(의성)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경기도에서 인민군에 붙잡혔다. 하지만 전쟁터에도 휴머니티는 살아숨쉬었다. 인민군은 "학생들인데 그냥 보내줘라"고 풀어줬고, 그 길로 중앙선 철도를 따라 고향까지 한걸음에 도망쳤다. 고향으로 내려온 김 씨는 교편 생활을 그만두고 8월 25일에 군에 입대했다. M1 소총을 몇 차례 분해·결합하고, 간단한 집체교육과 함께 실전 전투에 투입됐다. 이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겪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부터 국군의 북진(서울 수복)과 함께 중공군 개입으로 인한 1·4 후퇴까지. 3번의 죽을 고비도 넘겼다. #1.국군이 북진하다 평북 희천에서 중공군의 기습을 받았을 때, #2. 묘향산에서 적들에 포위되어 일주일 가량 고립됐다 구사일생, #3. 파라호 전투에서 능선을 횡단하다 집중사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전쟁통에 총알 한발 맞지 않은 행운에 대해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각오"라고 회고했다. 그는 매년 6월이 되면 당시 영천 화산전투에서 수색대를 이끌던 홍재익 소령, 홍덕숭 선임하사, 그리고 김재경, 장병국, 현용환, 남상욱, 이규직 등 전우들이 생각난다. 더불어 전쟁터에서 숨진 고향 친구들, 군번조차 받지 못한 채 적의 공격에 숨진 전우들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이제는 6·25 참전용사도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지껏 살아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척추 쪽에 석회가 생겨나 다리 아래 쪽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 참전용사로서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그 교훈을 후세에 알리는 일에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9706561, 정보병 이동철 "어리다고 안 받아주나요?" 4남 3녀의 둘째로 태어난 이동철 참전용사는 6·25 발발 당시 18세 청년으로 자원입대를 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모병소에서 받아주지 않자 한달여 후에 다시 찾아가 "나라를 위해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떼를 쓰면서까지 결국 군에 입대했다. 기초 군사훈련을 3일 받고, 낙동강 전선에서 가장 치열했던 칠곡 다부동 전투에 실전 투입됐다. 능선을 점령하기 위한 고지전을 펼치고, 적의 후방 교란 작전까지 담당했다. 그는 "시체가 곳곳에 즐비했다. 불도저로 시체를 치울 정도였고,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죽었는지 모른다"고 눈물로 회상했다. 이 용사는 놀랍게도 6·25 전쟁 당시의 기억들을 소환해 일기장 형식으로 다 정리해 놓았다. ▷조국수호를 위한 입대, 1950년 8월 ▷칠곡 다부동에서 영천 신령으로, 8월 말 ▷38선을 돌파한 날, 10월 ▷드디어 평양에 입성, 10월18일 ▷중공군이 공격해오던 그날 밤, 10월25일 등. 그는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신나게 압록강까지 북진을 하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군위에서 시작해 선산→상주→노량진→한강→고양→파주→임진강→고란포→평양→대동강→온산 등을 거쳐 중공군이 개입할 때까지 북녘 땅까지 밟았다. "그 당시에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더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제 다시 가볼 수 없는 곳이죠." 1950년 마지막날도 잊을 수가 없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압록강에서 계속 후퇴하다 임진강 적성면 일대에서 7명의 수색 분대가 적의 기습을 받아, 인근 산으로 도망가 다행히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생존했다. 적으로부터 총알 세례를 그렇게 받았지만, 운 좋게도 아무도 총상을 입지 않았다. 그는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 1사단을 이끈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존경한다. 당시 국군 1사단과 미군 병력은 8월 초부터 약 한달 동안 대구 북쪽 약 20km에 이르는 칠곡군 다부동에서 남침하려는 북한군 3·13·15사단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낙동강 방어선을 잘 지켰다. "지금도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에 백선엽 장군 동상을 보면, 또다시 가슴이 뜁니다." 이 용사는 전쟁이 끝나고 결혼해 2남2녀를 낳았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제일모직에 입사해 15년 정도 근무했으며, 윤활유 관련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평탄한 삶은 없고, 늘 도전과 시련이 뒤따랐다"며 "전쟁터에서의 경험은 평생 강렬하게 남아 아직도 생에 힘을 준다"고 말했다. ◆두 용사가 말하는 6·25 전쟁 "생지옥" 두 참전용사가 전하는 한국전쟁의 기억은 "생지옥"이라는 세 글자로 요약된다. 한 생명이 그저 하루 아침의 이슬처럼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적군을 앞에 두고, 죽음을 각오하고 돌격 앞으로를 외쳐야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총상을 당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극적인 일인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김춘원 용사는 "젊음을 나라에 바쳐 구국 전선에서 초개와 같이 산화한 전우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우리 다음 세대는 다시는 전쟁의 쓰라린 경험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철 용사도 "전쟁터에서 무명의 용사로 죽은 이들이 너무 많다"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대한민국의 번영과 평화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대구시 교육청(교육감 강은희)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가 발간한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참전 대한민국 무공수훈자 전쟁증언록'을 펴낸 김춘원 편집위원장은 "개인이든 국가든 힘이 없으면 반드시 멸망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전쟁을 교훈삼아 경제와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민이 단합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철 용사도 "요즘 젊은이들이 정신적으로 너무 나약한 것 같다"며 "너무 편한 것만 찾으려 하고, 희생하지 않으려 한다면, 전쟁 중에 누가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하겠느냐. 국가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존경하고, 예우하는 애국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2026-06-06 14:30:00

  • [커버스토리]월남전 참전용사 이택우(84) 박격포 부사수

    [커버스토리]월남전 참전용사 이택우(84) 박격포 부사수

    "목숨을 담보로 걸고, 나라도 위할 겸 돈 벌러 갔죠." 국군 맹호부대 박격포 부사수인 이택우(84) 월남전 참전용사는 1965년 11월 25일 베트남 전쟁터로 떠나, 정확히 1년 만에 돌아왔다. 이유는 간명했다. 독일 파병 광부나 간호사처럼 군인의 신분으로 한달 수입 45달러를 벌기 위함이었다. 당시로서는 생명 수당까지 합쳐져, 꽤나 많은 월급이었다. 2년 정도 있다 돌아오면, 고국에서 집을 살 정도였다. 지난달 28일 주간매일 취재진과 함께 국립영천호국원을 찾은 그는 목숨을 달리한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묘지 앞에서 경건한 참배를 올렸다. 한 손엔 태극기, 한 손엔 꽃다발을 들고, 이곳 저곳 참전 용사들의 묘지에서 호국 영령을 위한 묵념을 하기도 했다. 그런 후에 61년 전 치열했던 전장(戰場)의 포화 속으로 잠시 상념에 잠겼다. ◆맹호부대 박격포 부사수 "병장 이택우" "아직도 오른쪽 귀로는 작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 용사는 베트남 전쟁에 투입된 1년 동안 거의 박격포 부사수라는 직책을 부여받고, 적진을 향해 수천-수만발의 포를 쏘았다. 지축을 울리는 포성을 매일 같이 듣다보니, 노후에 청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가능하면 고함 치듯이 큰 소리로 질문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다행히 기자의 목청이 높은 터라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월남전 당시 생사를 오간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실전 전투에 투입되고 난 후 맹호부대의 명사수 포병으로 베트콩(반정부 게릴라 조직의 통칭) 일당을 섬멸했는데 이후 치밀한 보복이 있었다. 베트콩 특수 부대원들이 아군 진지에 대전차 지뢰를 매설해 놓은 것. 중대장이 이 지뢰를 밟았고, 곁에 있던 소대장과 함께 온 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다행히 다른 부대원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창 더웠던 7월 여름에는 부대원 7명이 토벌 작전을 펼치다 베트콩들의 기습 공격을 받고, 뿔뿔이 흩어져 산악지대에서 생존 투쟁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천운(天運)일까? 7명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아군 진지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는 "우리는 언제 죽을 지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냈다"며 "'돌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앞뒤 생각지 않고 진격했다. 살아남은 건 기적"이라고 회상했다. 참고로 이 용사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병장 기준 월급을 100달러를 책정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각자 개인에게 45달러씩 주고, 나머지 55달러는 국가 경제 재건 등에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아들, 대전현충원 안장 "참 모진 것인 인생이라고, 둘째가 군에서 다쳐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 용사의 자녀는 2남1녀. 하지만 1남1녀가 됐다. 둘째 아들인 이현창 씨는 군에서 크게 다친 후 투병 끝에 14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 그는 특수부대 출신인 첫째 아들(이호상) 가족과 함께 현충일(6.6) 다음날인 7일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아갈 예정이다. 첫째 이호상 씨는 "우리 가족은 군대에서 참 많은 일을 겪었다"며 "참 신기하죠? 제 아들 선호가 내 동생 현창이를 꼭 닮았다"고 눈물을 꾹 참았다. 둘째 아들은 군에서 공병부대 내 도하 장비(임시 다리)를 설치하는 특수 임무병으로 활약했는데, 고된 훈련과 함께 부대 내 가혹행위(구타) 등으로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생겼다. 전역 후에는 머리 정수리 쪽 숨골에 뇌종양이 생겨 거의 식물인간으로 지내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가 국가와 싸워 결국엔 1급 판정을 받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국립 영천호국원에 안장될 예정인 이 용사는 "돌이켜보면, 제가 월남전 파병을 다녀온 것부터 둘째 아들이 군대에서 큰 아픔을 겪은 일들이 우연하게 발생한 것이 아닌 것 같다"며 "분명한 것은 국가를 위해 일하고, 나라가 잘 사는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확신했다. 지천명(50세)이 넘은 나이에 늦깎이 결혼을 해 첫째 아들과 함께 아내가 또다른 생명을 잉태 중인 이호상 씨는 "아버지가 예쁜 며느리와 손자 둘을 보면서, 가슴에 사무친 한(恨)을 다소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2026-06-05 14:30:00

  • [커버스토리]TK는 호국의 땅, 가볼만한 4곳 '강추'

    [커버스토리]TK는 호국의 땅, 가볼만한 4곳 '강추'

    "6월에는 호국영령을 기리는 곳으로…." 대구경북(TK)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 호국의 땅이다. 곳곳에 국군과 UN군이 피흘린 현장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북한군이 기습 남침을 감행해, 주춤한 곳이 바로 낙동강 전투다. 이 치열했던 전투로 인해 UN군이 참전할 시간적 여유를 벌어줬다. 이후 그 유명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지며, 국군은 압록강·두만강까지 북진(北進)했다. 낙동강 전투에서도 전 세계사에 남을 만한 고지전이 바로 다부동 전투다. 작전지역은 대구 북쪽 22km에 이르는 칠곡군 일대며 303고지, 328고지, 숲데미산, 유학산 등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남북 간의 교전이 펼쳐졌다. 주 저항선에서는 백병전으로 북한군을 저지했다. 그야말로 시체가 쌓여, 작은 야산을 이룰 정도였다. 적군과 아군의 피해가 엄청났던 화산 전투를 기리며, 국립영천호국원을 방문하는 좋을 듯 하다.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486 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30~50분 정도 거리라 가족 단위로 나들이 겸 참배하기에도 편리한 곳이다. 중앙고속도로 다부 IC를 빠져나오면 지척 거리에 있다. 기념관 밖에는 탱크와 비행기 등 야외 전시장비를 비롯해 구국용사·구국경찰 충혼비를 비롯해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트루먼 美 대통령, 백선엽 장군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다부동 전투의 생생한 현장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을 뿐 당시 전쟁 유품과 사진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더불어, 6·25 전쟁 최초의 전차전인 '볼링앨리 전투'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준다. 1950년 8월 21일 저녁, 자주포를 앞세운 북한군 전차와 미군 전차들이 맞섰는데, 전차포탄들이 마치 볼링공이 핀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볼링앨리'(Bowling Alley)라는 이름을 붙였다. ◆ 6·25 전쟁 중 폭파, 복원된 '호국의 다리' 일제강점기에 처음 만들어져 6·25 전쟁 중 폭파된 다리다.6·25전쟁이 발발하자 낙동강이 최후의 저지선으로 정해졌다. 북한 인민군이 낙동강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철교의 폭파가 불가피했다. 8월 3일 오후 8시 30분 왜관에서 두 번째 교각이 유엔군에 의해 폭파되었다. 낙동강 전투를 기리기 위하여 '호국의 다리'로 명명했다. 1941년 왜관철교가 가설됨에 따라 철도 교량에서 인도교로 바뀌었다. 현재는 이곳 인근의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하고 있다. 다리 주변에 음악분수와 다목적 광장이 새롭게 신설되어 칠곡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호국의 다리를 건너가는 것도 6월 호국 투어 코스로 딱 맞다. 부친이 다부동전투 전사자인 한 가족은 "호국의 땅인 칠곡에서 이곳 호국의 다리를 건너,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방문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아버님 같은 분들의 희생이 있기에 현 세대가 오늘의 평화가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추모와 힐링이 함께 하는 국립영천호국원 국립영천호국원은 언제가도 추모와 힐링을 함께 할 수 있는 공원묘지로 어딜 봐도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영천시 고경면 호국로 1720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국가유공자를 비롯해 6·25참전 유공자, 월남참전 유공자, 제대군인, 장기재직 경찰·해경·소방 공무원들의 묘역이 곳곳에 안치돼 있다. 영천대첩비는 6·25 전쟁 중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 섬멸함으로써 조국의 자유를 지켜낸 영천대첩을 기념하고, 보병 제8사단을 주축으로 한 참전 장병들의 전공을 높이 현창하기 위해 대첩비를 건립했다. 입구의 홍살문은 호국원 전역을 일반지역과 성역지역으로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1958년에 세워진 대구 앞산 충혼탑 대구 앞산 충혼탑(忠魂塔)은 6·25 전쟁에 참전한 대구 출신 전몰 용사를 기리기 위하여 1958년 5월 30일 세워졌다. 대구 출신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군경과 민간인 등 5,352위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알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됐다. 충혼탑의 전신은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 옆에 건립한 영현봉안탑(英顯奉安塔)이다. 규모가 작은데다 유원지 주변이라 장소가 부적합하다는 여론에 따라 1971년 4월 20일 남구 대명동 앞산 자락(대명동 산 186번지)으로 이전하여 재건립했다.

    2026-06-05 14:30:00

  •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구미수출 1억 달러 돌파" 구미 수출산업의 탑

    "구미에 웬 작은 에펠탑?" 경부고속도로 구미IC를 빠져나와 구미국가산업단지로 들어가는 광평동 로터리 한가운데에 에펠탑 모양의 하늘로 치솟은 뾰족한 첨탑이 하나 우뚝 서 있다. 구미의 상징이자 수출도시임을 알리는 수출산업의 탑이다. 구미국가산업단지가 건설되고, 1976년 9월 구미공단 연간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달성한 기념으로 건립됐다. 구미수출산업탑은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메카이자 한강의 기적을 이끈 구미국가산업단지의 역사와 성장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며 1970년대 대한민국 경제 발전기의 뜨거웠던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기념비이다. 현장에서 바라본 수출탑은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여행온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날카로운 탑신은 세계 시장을 향해 끝없이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개척 정신과 수출 의지를 상징한다. 탑의 아랫부분이 사방으로 곡선을 그리며 안정적으로 퍼지는 구조는 공업단지를 기반으로 한 국가 경제의 견고한 기틀을 의미하고 있다. 마치 온 국민의 저력이 하나로 모여 에너지가 분출되는 듯한 역동성을 주어, 70년대 '수출 보국'의 활기찬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산업화 혼이 서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나라의 산업화를 이룬 설계자이자 대한민국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구세주에 가까운 인물이다. 이 수출탑에 오면 당시 이 나라가 얼마나 경제 발전을 이루고, 매년 경제성장률이 얼마나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는지 그 기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구미시 도로원표의 기준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수출탑의 높이는 40m에 이르며, 지름은 18m 규모다. 탑의 정면을 바라보면,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휘호인 "輸出産業의 塔(수출산업의 탑)"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글씨체는 힘이 넘치고, 상하좌우의 삐침 붓글씨가 하늘을 날 것처럼 날카롭게 뻗어나간다. 경상북도는 2018년 6월에 이 탑을 산업유산으로 지정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1991년에 발간한 '구미공단 20년사'에 따르면 이 탑은 700여 평 부지에 조성됐다. 탑신 부분은 세 곳으로 구분이 되는데, 새마을운동 3대 정신인 근면·자조·협동을 나타내며, 건설·생산·수출이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의미를 담았다. 하단부는 육각형의 거북 형상으로 구미(龜尾)를 상징하며, 적벽돌을 쌓아 맞춘 것은 국가 근대화를 위해 단합하자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미래성장 도시 구미 "TK 재도약의 중심" 실제 구미 수출산업의 탑 설립 이후 수출 실적은 당시 세계 속 초고도 경제성장 국가의 위상을 보여줬다. 이듬해인 1977년 구미공단의 연간 수출총액은 3억 달러로 3배 이상 급성장했으며, 국가적으로는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서울이 '한강의 기적'이라면 구미는 '낙동강의 기적'을 이뤄낸 셈이다. 그로부터 반세기(50년)가 흐른 2025년 대한민국 수출 총액은 7천97억 달러에 이른다. 올해는 AI 반도체 수출 호조로 7천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구미시는 수출산업의 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탑 아래 오색 조명을 설치해, 도심 야경을 밝히는 건축물로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해놨다. 더불어 첨단 IT도시 구미를 대표할만한 콘텐츠 개발에도 이 탑을 활용하고 있다. AR(증강현실) 콘텐츠로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구미 수출산업의 탑'으로 검색해, 앱을 다운받은 후 핸드폰 카메라로 수출산업의 탑을 비추면 다양한 형태의 증강현실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전천수 구미시 도시건설국장은 "TK의 성장동력이 되는 도시는 단연 구미와 포항 그리고 대구 산단"이라며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구미는 반도체, 포항은 배터리 등 새로운 엔진을 찾고 있다"며 수출산업의 탑이 상징하는 의미와 향후 활용계획 등을 밝혔다. 한편, 구미시는 구미공단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2023년 9월 16일, 김장호 구미시장과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과 장훈 한국산업인력공단 경북서부지사장이 구미 발전을 위해 결의를 다진 작은 기념비를 탑 정면에 세워 놓았다.

    2026-05-29 13:30:00

  • [털보기자의 '그사람']강정선 대구예총 회장

    [털보기자의 '그사람']강정선 대구예총 회장 "대구 문화 재도약"

    "대구의 문화 저력,이제부터 재도약입니다." 지난 2월 26일 치러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구시연합회(이하 한국예총 대구연합회) 회장 선거에서 당시 강정선 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이치우 전 대구음악협회장과의 1,2차 투표에서 40대 40으로 동수가 나오면서 연장자 우선 규정에 따라 13대 회장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지난달 14일 (사)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대구예총) 정기총회에서도 제2대 대구예총 회장으로 선출됐다. 강 회장은 취임사에서 "박빙의 선거 결과였던 만큼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선배 세대의 연륜과 후배 세대의 혁신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통합의 조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13대 대구예총 회장 자리에 선출된 강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다시 한번 대구 문화예술의 재도약을 선언하고, 문화예술인의 화합을 당부했다. 더불어 코로나 팬데믹과 문화 암흑기(전 시장 시절 예산삭감과 인력 통폐합)를 지나서, 6·3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될 차기 대구시장과 함께 문화 재도약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역대 첫 女회장 "준비된 예총 회장"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습니다. 예총 안에서 경력만 40년, 역대 회장 일곱 분을 모셨습니다." 대구예총은 열 세번째만에 첫 여성 회장을 탄생시켰다. 충분히 준비된 '관록의 회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예총 안에서 탄탄하게 밟아, 수장 자리까지 꿰찼다. 이사만 30년, 무용협회장 12년, 부회장 16년, 수석 부회장 6년을 지냈다. 그런 만큼 예총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반목, 잘한 일과 못한 것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온화하지만 강단있는 성격(부드러운 카리스마)의 강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3가지를 약속했다. 첫째로 관 주도에서 시민 및 지역 예술인 주도로의 완벽한 전환, 둘째, 각 축제만의 독창적인 브랜드화, 셋째로 지속 가능한 축제 생태계 구축을 들었다. 그는 "축제는 단순히 며칠 동안 먹고 즐기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도시의 가치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문화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차기 대구시장 유력 두 후보(김부겸 VS 추경호)와는 이미 차담 형식의 만남을 통해, 차기 대구 문화예술의 재도약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을 약속받았다. '누구의 정책이 더 파격적이고 마음에 들었느냐'는 기자의 유도 질문에는 "누구를 바보로 아느냐? 아직은 말할 수 없어요"라며 수줍은 소녀의 미소로 되받았다. ◆"울 남편, 아직 제 곁에 있나봐요" "6,171일"(결혼 후 남편과 함께 한 행복한 나날들) 인터뷰 도중에 울컥하며 들은 것은 24년 기자 생활 중 처음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별(死別)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전 세계인을 울린 명화 '사랑과 영혼'(데미 무어,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현실판이었다. 남편은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3년에 급성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여전히 강 회장의 마음 속에 동행하고 있었다. "'God, Why me?'(신이시여!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이리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주나이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구요. 4개월 반 동안 24시간 병간호를 하고, 장례 후 6개월 동안 두문불출했어요. 너무 애가 닳고, 그토록 날 아끼고 사랑했던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낼 수가 없었어요." 그런 슬픔 속에 침잠하던 강 회장을 깨운 건 바로 중2 아들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눈에 쏙 들어왔다. 놀랍게도 중학생 아들은 더 어른스럽게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동네 마트를 가더라도 늘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다니고, 외로울 틈을 주지 않았다. 배구선수였던 그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현재 항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스튜디어스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왔다. 하늘이 준 소중한 선물, 손자도 얻었다. 〈〈 Special Thanks 〉〉 남편 병수발 당시 동산병원 황재석 담당 의사에게 눈물나도록 감사합니다. 제주도에서 우리 아들이 선수로 참가했던 배구장을 찾아가, 책 선물과 함께 용돈(봉투)까지 주시고 격려해 주셨어요. 사별 후 제 취업자리까지 알아봐 주시려 했죠?(ㅎㅎㅎ) ◆"저도 한때 아리따운 무용수 출신" 강 회장은 1956년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현재 덩치로는 믿기지 않겠지만 어릴 적 별명은 '성냥개비'. 몸이 허약해서 시작한 것이 무용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에 무용계에 입문해 무려 63년의 세월 동안 한 길을 걸어왔다. 경북여고 46회 졸업생이자 세종대 무용학과 75학번이다. 대학 졸업 후에는 10년 동안 경산여중·고 교사를 역임하고, '강정선 무용학원'을 문을 열었다. 지역에서는 꽤나 명성이 높았으며, 수익도 넉넉할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몰려 들었다. 그러면서 일찍이 대구무용협회에 발을 들여 놓았으며, 지역 무용계를 이끌어가는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도 당당하게 "무용은 나의 운명"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감명깊게 본 책이나 영화가 없냐'는 질문에는 "무용 무대만 보러 다닌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어릴 적부터 긍정적인 마인드로 무장한 강 회장은 "지금부터 대구 문화예술은 호기(好氣)를 맞았다"며 "코로나19, 문화예산 대폭 삭감 등 문화 암흑기를 다들 잘 견뎌줬다. 더이상 악화될 일은 없다. 새로운 대구 문화 르네상스를 꽃피우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의 예총회장 행보(임기 4년, 연임 가능)에서 사심(私心)은 1도 없다. 그는 문곤(5,6대)→권정호(7대)→최영은(8대)→문무학(9대)→류형우(10대)→김종성(11대)→이창환(12대) 역대 회장단을 이어 멋진 여성 리더십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2026-05-29 12:30:00

  • [털보기자의 '그사람']강 회장이 꿈구는 대구

    [털보기자의 '그사람']강 회장이 꿈구는 대구 "글로벌 문화 일류도시"

    "문화의 문턱을 더 낮추겠습니다. 대구 온 도시에 문화의 향기가 가득해야 합니다. 236만여 명 시민들이 각자의 취향대로 다양한 형태로 각 분야의 문화예술을 생활 속에서 즐겼으면 합니다." 강정선 회장이 꿈꾸는 문화도시 대구의 활기찬 모습이다. 그는 "더이상 대구 문화의 퇴보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은 후, 직전 대구시장이 문화예술 쪽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시절을 질타하기도 했다.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전 시장 시절을 "문화의 암흑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구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百年大計)도 마련했다. 첫째는 문화를 소비와 복지의 관점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와 산업적 관점으로 접근하자는 것. 특히, 대구는 근대 문화예술의 발상지로 오페라, 뮤지컬, 국악, 미술, 문학(시와 소설 등) 등 독보적인 문화자산을 보유한 만큼 이를 경제적인 마인드로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둘째,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이다. 큰 취지는 예술인들이 눈 앞의 행정절차나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이자 약속이다. 또, 신진 예술가들이 대구를 떠나지 않도록 세대별 맞춤형 창작 지원체계를 갖추고자 계획하고 있다. 강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문화예술은 도시의 품격이자 경쟁력"이라며 "다음달 3일 뽑힐 새 시장과 함께 대구가 진정한 글로벌 문화 일류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잘 발맞춰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제 안에는 든든한 후원자 또 있어요. 죽어서도 날 지켜주는 우리 남편이에요. (수줍은 듯) ㅎㅎㅎ."

    2026-05-29 12:30:00

  • 김재용 대구시의원, 대구사격연맹 특별 감사패 받아

    김재용 대구시의원, 대구사격연맹 특별 감사패 받아

    대구사격연맹(회장 김동후)은 18일 평소 대구 사격 발전에 기여한 점과 '2027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대구 유치에 큰 공헌을 한 김재용 대구시의원(경제환경위원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날 김재용 위원장은 "영광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내년도 세계사격선수권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26-05-23 16:54:27

  • 대구시민 염장 지르는 홍준표 전 시장 [정치야설 '5분전']

    대구시민 염장 지르는 홍준표 전 시장 [정치야설 '5분전']

    "고마해라~~~ 제발 쫌~~~, 이제 지겹다."(洪의 안티 팬)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SNS(페이스북)는 늘 언론의 화제가 된다. 전국 대다수의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이 홍 전 시장의 페이스북에 팔로우(친구 추가)를 하고 있으며, 어떤 글을 올리든 기사화될 정도로 인플루언서 정치인으로 위상이 높다. 하지만 대구시민들 입장에서는 서울시민이 된 홍 전 시장의 글이 거북하고, 때로는 짜증마저 유발하기도 한다. 한 때 친분이 있었던 입장에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과거 당내 대선 경선이나 본 선거에서 늘 "내가 보수의 적장자"임을 강조했던 터라 더 그렇다. 보수 본색의 '홍카콜라'(빨간색 상징)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포카리스웨트'(파란색 상징) 행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성 보수파로부터 "본인이 먹던 우물에 침뱉지 마라"는 비난마저 받고 있다. ◆'국민의힘 망해라'는 염원 담긴 듯 홍 전 시장이 최근 3,4년 동안 마구잡이로 날리는 SNS 글 속에는 일관된 흐름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망조(亡兆)가 든 정당이며, 자신을 중심으로 보수가 새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생각이 커지다 못해 이제는 스크류바처럼 꼬이고, 과배기처럼 뒤틀려, 급기야 집권여당(이재명 정권)의 편을 드는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어떻게든 타격을 주려는 제1목표가 분명해 보인다. 이런 행보는 본인이야 묵은 감정(분노, 답답함, 안타까움 등 복잡 미묘)을 해소하는 측면이 있겠지만, '보수의 심장' TK 시도민들의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4년 전 당내 경선 후보로 뛸 때, 기자(야수)가 진행했던 TV매일신문 '관풍루'에 출연해 "대구를 위해 홍준표가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취임 후 정반대를 행보를 이어가며, 대구를 대선 출마를 위한 발판 정도로 여겼다. "백수가 안 갈 이유가 없다"며 그렇게 비판하고 욕했던 이재명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만난 후(일명 막걸리 회동) 국무총리 입각설이 나온 것도 보수 지지자들은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는 황당한 행보다. 오죽 했으면,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정부에서 한 자리 받아 먹으려고 여기저기 부역짓까지 하고 있다. 자리에 눈이 멀어 나라 팔아 먹는 것은 이완용이나 하던 짓거리"라고 맹비난했다. ◆'갈 지(之) 행보' 민주당 지지, 한동훈과 설전 홍 전 시장이 앞으로도 어디로 튈 지 모른다. 현재 행보를 보면, 충분히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올해 초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고 오더니, 이제 또 대구시장 선거에 뜬금없이 숟가락을 얹는다. 대구 발전을 위해 집권 정당인 김부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대구의 60대 한 시민은 "홍 전 시장은 도대체 왜 이러나? 아예 대구시민들 염장 지르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고 힐난했다. 또, 현재 칸쿤 휴양(여직원 대동), 주폭 전과(여종업원 외박 강요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 국민의힘 당원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에 신주호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부대변인은 18일 "홍 전 시장은 '소시민으로 갈등과 반목 없는 세상에서 살겠다'고 한 자신의 말처럼 노욕을 거두고 그런 삶을 살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노추(老醜)를 드러내지 말라"고 논평했다. 홍 전 시장의 SNS 불똥은 또 부산 북갑 재보궐 선거에 뛰고 있는 한동훈 무소속 후보에게도 옮겨 붙었다. 한 후보는 집권여당(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홍 전 시장을 향해 "탈영병 홍 전 시장이 월북(越北)까지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거기서도 (홍 전 시장을) 안 받아줄 것"이라고 조롱했다. 이 설전으로 인해 정원오·홍준표 VS 오세훈·한동훈 이라는 연합 전선마저 생성됐다. 한편, 홍 전 시장은 18일 정 후보의 주폭 사건과 관련해 "30여년 전 모호한 사건을 선거의 쟁점으로 삼는 것은 참 아쉽다"며 "네거티브 유혹은 늘 판세를 요동치게 하지만 결국 될 사람은 되게 되어 있다"고 말해, 국민의힘으로부터 큰 반발을 사고 있다.

    2026-05-23 12:30:00

  • [창간 80년, 격동 80년]나라 뒤흔든 정경 유착 사건 '사카린 밀수'

    [창간 80년, 격동 80년]나라 뒤흔든 정경 유착 사건 '사카린 밀수'

    "돈 되는 사카린, 밀수로 어마어마한 폭리" 1966년 전국을 뒤흔든 사카린 밀수 사건은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큰 교훈을 남겼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국가 차원의 큰 특혜를 누리면서, 그것도 모자라 부정한 방법으로 폭리를 취하려다 덜미가 잡힌 것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정 구호를 '부패척결'로 내세웠지만, 정경 유착 비리임도 드러났다. 이맹희 회장(이건희 兄)은 1993년에 발간된 '회상록, 묻어둔 이야기'를 통해 사카린 밀수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 기관들이 눈 감아준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라고 고백했다. 밀수현장은 본인이 직접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왔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 속에 어두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정경 유착, 사카린을 건설자재로 위장 한국전쟁(6·25) 이후 제당업은 국가 차원의 산업재건 계획 안에 포함됐다. 대구에 본사를 둔 삼성물산 이병철 회장은 1953년에 제일제당을 설립했으며, 자본금 18만5천 달러를 정부에서 지원 받았다. 게다가 원료 수입 독점권과 함께 환율 혜택 등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 이런 특혜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은 더 큰 수익을 노리고 밀수를 계획했다. 1966년 5월24일, 삼성은 울산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천259 포대(약 55t 물량)를 건설자재로 속여 세관을 통해 들여오려다 덜미가 잡혔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천59 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만원을 부과했다. 또, 당시 삼성은 일본 미쓰이 물산으로부터 정부의 지급보증 하에 4천200만 달러의 상업차관도 빌린 상태였다.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상업차관(4천200만 달러)을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리베이트(뒷돈)로 100만 달러를 건네줬다. 이병철 회장은 이 사실을 박 전 대통령에게 알렸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여러 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서로 간의 이해가 딱 맞아 떨어졌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가 들여와야 했고, 청와대는 정치자금(검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파문, 한국비료 국가에 헌납 21세기 글로벌 일류 기업이 된 삼성그룹 차원에서는 이 사카린 밀수 사건은 아픈 흑역사다. 당시 군사정권과 결탁해 부정한 방법으로 폭리를 취하려 한 범죄였으며,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어떻게 급성장 했는지를 보여주는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 사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 외에도 삼성은 또 한번 국가를 속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맹희 회장은 정부가 눈감아 주기로 하자, 한술 더 떴다. 밀수를 하는 김에 사카린 원료를 비롯해 수입이 어려운 공작기계나 건설용 기계, 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리스 판 등도 들여오려 했다. 이병철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내통해 국가간 밀수가 허용되자, 삼성은 정부 모르게 몇가지 욕심을 더 냈다. 이 사건이 터지자 박정희 정권과 삼성 모두 국민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며, 국민적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나라의 산업화라는 큰 명분 아래 법적 처벌(큰 액수의 벌금형)마저 적었다. 삼성은 이 사건으로 전국 방송 및 신문사로부터 뭇매를 맞아야 했다. 기업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삼성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그룹 차원의 대대적인 조치를 내렸다. 이병철 회장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삼성의 계열사인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했으며, 매스컴(중앙일보 등)과 학원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 한편,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 유명했던 무소속 김두한 의원은 그 해 9월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한 대정부 질의 도중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던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등 여러 각료들에게 오물을 투척하기도 했다.

    2026-05-22 11:30:00

  • 2026 제2회 대구 키스(KIS) 트레일러닝 대회 '대성황'

    2026 제2회 대구 키스(KIS) 트레일러닝 대회 '대성황'

    대구 스타디움 인근 유건산, 망월산, 진밭골 일대의 산악지대를 달리는 '2026 제2회 대구 키스(KIS) 트레일러닝 대회'가 1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15, 16일 양일간 펼쳐졌다. 대구산악연맹이 주최하고, 파라마운트(대표 안병기)가 주관했다. 교촌치킨과 브룩스러닝, DJI는 후원사로 참여했다. 이번 대회는 13㎞, 24㎞, 40km, 키즈 트레일 700m 4개의 코스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3㎞ 부문에서는 ▷남자 1위 박형철 1시간22분35초, 2위 김춘호 1시간24분24초, 3위 정재훈 1시간25분16초 ▷여자 1위 허소정 1시간34분48초, 2위 김수현 1시간40분43초, 3위 김소라 1시간43분13초. 24km 부문에서는 ▷남자 1위 지명규 2시간47분59초, 2위 김종열 2시간49분16초, 3위 이호섭 2시간52분17초 ▷여자 1위 우성은 3시간46분04초, 2위 나아름 3시간46분49초, 3위 이성희 3시간 59분13초, 40Km 부문에서는 ▷남자 1위 이인식 4시간56분11초, 2위 박형근 5시간19분04초, 3위 이원진 5시간33분27초 ▷여자 1위 이현주 6시간16분18초, 2위 정설아 6시간37분33초, 3위 김동희 6시간42분49초. 대회를 주최한 안병기 대표는 "지난해 대구 최초로 시작된 산악마라톤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이제부터 전 세계인들이 관심을 갖는 대회이자 멋진 이벤트로 자리잡아, 대구의 위상을 드높이고 싶다"고 밝혔다.

    2026-05-21 18:44:15

  • 제 2회 KIS 트레일러닝 개최…40㎞ 男 이인식·女이현주 1위

    제 2회 KIS 트레일러닝 개최…40㎞ 男 이인식·女이현주 1위

    지난 16~17일 열린 대구 유일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제2회 KIS 트레일러닝' 대회의 우승자가 가려졌다. 대구산악연맹이 주최한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긴 코스인 40㎞에 이인식 씨가 4시간56분11초로 남자 참가자 중 1위로 골인했다. 여자 참가자 중에서는 이현주 씨가 6시간16분18초로 1위를 차지했다. 40㎞ 코스는 대구스타디움서편광장을 출발, 유건산과 망월산, 성암산, 진밭골을 거쳐 다시 대구스타디움서편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24㎞ 코스 남자부문에서는 지명규 씨가 2시간 47분59초로 1위를 기록했고, 여자부문은 나아름 씨가 3시간46분4초로 1위가 됐다. 가장 짧은 13㎞는 박형철 씨가 1시간22분35초로 남자 부문 1위, 허소정 씨가 1시간34분48초로 여자 부문 1위를 기록했다. 'KIS 트레일러닝'은 대구에서 열린 유일한 트레일러닝 대회로 지난해 12월 처음 열렸다. 1천여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16일 사전 몸풀기 및 키즈 트레일 러닝 대회와 17일 본 경기로 나눠서 진행됐다.

    2026-05-20 15:00:34

  • 영남권에 번지는 빨간 물감…국힘 급반등 [정치야설 '5분전']

    영남권에 번지는 빨간 물감…국힘 급반등 [정치야설 '5분전']

    6·3 전국 지방선거가 19일을 남겨둔 가운데 영남권에 빨간색 물감이 번지고 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5개 광역단체장 중 경북도를 제외하고는 오차범위 밖 열세였던 국민의힘(이하 국힘) 후보들이 이달 중순부터 보수 세력이 뭉침과 동시에 힘을 얻고 있다. 벌써 4곳(대구·경북·울산·경남)에서 오차범위 내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지리멸렬했던 야당은 공천된 광역단체장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전체적인 선거 구도가 바뀐 탓도 크다. '윤석열 정권의 조작 수사 및 기소 의혹 특별검사법'(이하 조작 기소 특검법)에 대한 국민 역풍이 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스스로 죄를 지우려 한다는 사실이 국민 눈에 빤하게 읽히고 있는 형국이다. 야당도 총공세에 나서고 있으며, 언론마저 집권 여당의 속셈을 간파한 후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이러자 놀랍게도 지난달 '야당 심판'에서 이달 들어 '정권 심판'으로 180도 판도가 바뀌고 있다. ◆호재 만난 국민의힘 "8~10곳 석권?" "경북 빼고는 다 먹구름이 끼었는데, 어느새 걷히고 있습니다. 화창해질 듯~~~.".최근 국힘 관계자의 말이다. 불과 한달 전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한국 갤럽이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전국 성인 1,001명,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 12.3%), 국민의힘 당 지지율이 18%로 밑바닥을 쳤다. 누구나 해보나마나 여당에 참패할 것이라 예상했다. 국힘 당원들마저 8년 전 지방선거 결과(TK를 제외 전국 파란색 도배)처럼 될 것이라는 자조섞인 얘기를 했다. 그렇게 암담했던 분위기가 5월 초순이 지나면서 급반전되고 있다. 국힘은 영남권 5곳을 싹쓸이하고,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과반(9석 이상) 석권이라는 새 목표를 설정했다. 골수 보수 지지자인 권두원(69, 교육사업 종사자) 씨마저 "윤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 짐이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차라리 김부겸 후보를 찍겠다"고 지인들에게 공언했다. 하지만 5월 초부터 조금씩 다시 생각이 달라져, 이번 주부터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치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9일 매일신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최근 일주일 사이에 분위기가 달라진 걸 체감한다"며 "낙관할 상황은 아니지만 최대한 노력해 분위기를 잘 끌고 가겠다"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후보 분열 문제가 말끔히 해소되는 등 공천 내홍이 일단락됨과 동시에 이른바 '조작 기소 특검법'이 국민적 반발을 사면서 대구·경북(TK)에 이어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보수 결집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장동혁 당 대표 체제가 선거 이후에도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 초반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할 경우 현 지도부에 대한 재신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오기도 한다. ◆"대구도 뒤집혔다, 부산만 남았다" 전국 언론의 정치면과 사설 등은 영남권에서 여야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진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이재명 정부와 집권여당의 '조작 기소 특검법' 추진이 보수층을 되레 결집시키고, 국민적 반발을 사고 있는 것으로 대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본지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무선 ARS방식으로 대구시장 지지도 여론조사를 한 결과(대구 거주 성인 1,004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응답률 6.8%)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는 46.1%,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2.6%였다. JTBC 의뢰로 메타보이스·리서치랩이 지난 5월 5일부터 6일까지 무선 전화면접방식으로 조사한 결과(대구 거주 성인 804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오차 범위 ±3.5%포인트, 응답률 11.3%), 추경호 후보가 41%로 김부겸 후보 40%와 오차범위 내 초 접전이었다. 울산 경남에 이어 부산마저도 초 접전을 벌이고 있다. KBS울산방송·울산매일신문 의뢰해 여론조사 '공정'이 5월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유무선 ARS방식으로 실시한 울산시장 지지도 조사(울산 거주 성인 804명, 95% 신뢰 수준에 ±3.5%포인트, 응답률 6.1%)에서 김두겸 국힘의힘 후보가 37.1%, 김상욱 민주당 후보가 32.9%였다. 경남도지사의 경우 이달 초 경남신문 의뢰로 모노리서치가 5월1일부터 2일까지 무선 ARS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경남 거주 성인 1,000명,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7.7%) 박완수 국힘 후보가 44.1%, 김경수 민주당 후보는 41.9%였다. 부산시장 여론조사도 오차 범위 내 초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달 초 부산MBC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지난 5월 1일부터 2일까지 무선 ARS방식으로 이틀간 여론조사한 결과(부산 거주 성인 1,013명, 95% 신뢰 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응답률 6.9%) 전재수 민주당 후보가 46.9%, 박형준 국힘 후보는 40.7%였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결과에 탄력을 받은 박형준 후보는 "조작 기소 특검법을 계기로 바닥 민심이 임계점에 왔다"며 "부산에서의 역전도 멀지 않은 것 같다"고 필승을 다짐했다.

    2026-05-16 17:30:00

  • [털보기자의 '그사람']

    [털보기자의 '그사람']"뇌 안에 꽈리가…" 윤순영 전 중구청장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 회색 콘크리트 공화국(온통 밋밋한 고층 아파트 숲)이 된 대구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문득 부드럽고 섬세한 카리스마로 구정을 이끌었던 문화 구청장이 떠올랐다. 그 이름 석자는 윤.순.영. 내리 3선을 하며 대구 근대골목 투어(한국 관광의 별 대상 수상)를 비롯해 방천동 김광석 길을 조성한 장본인이다. 또한 계산오거리 주변을 관광의 명소로 바꿔 놓았다. 12년 전 매일신문 노동조합 조두진 위원장이 감사패를 전달할 정도였으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8일 어버이날 분도빌딩 한 카페에서 점심을 겸해 반가운 얼굴과 마주했다. 첫인사로 '그간 별고 없었는지요?'라고 안부를 묻자, "웬 걸~, 지난해 말 뇌 안에 꽈리 때문에 큰 수술을 했어요. 문화계 후배들과 자리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쓰러졌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봐요"라는 슬픈 답변이 되돌아왔다. '어떤 스트레스였나'고 추가 질문을 하자,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도심을 함 보라"고 통탄했다. 두 전직 대구시장(권영진 8년+홍준표 3년) 재임시절 도시 디자인과 색깔에 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은데 대한 원망도 살짝 담겨 있었다. 특히, 윤 전 청장은 김범일 시장 시절에 도심의 전매청 자리를 아파트 단지로 만든 것은 도시를 망치는 우매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청주시가 전매청 부지를 국립미술관 분관으로 유치해 도심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고,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부심을 안겨준 사례를 빗대기도 했다. 또, 권영진 전 시장은 자갈마당(홍등가) 부지를 고미술 거리나 런던처럼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만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다시금 찾아간 김광석 길 "곳곳에 숨결 느껴" 만나자마자 점심 1시간 남짓, 분도 갤러리 내 사무실에서 2시간 남짓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취재진과 '김광석 길' 곳곳을 거닐었다. 윤 청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분도 빌딩을 나서자마자 대백프라자 쪽 입구에서 전국에서 가장 큰 기타와 마주했다. "이게 가수 김광석과 늘 함께 했던 그 명품 통기타 모형을 그대로 본떠서 8m 크기로 만든 겁니다." 윤 전 청장은 함께 길을 걸으며, 벽화 하나하나가 어떻게 그려진 것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상세하게 알려줬다. 그러더니, 작은 공연장 입구 옆 벽에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 놓은 김광석의 얼굴 부조와 레코드 판 모양 위에 새겨진 점자를 가리켰다. "여러 아이디어 중에 신중하게 선택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겁니다. 이곳에선 모두가 김광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 "한국 관광의 별(★)" 윤 전 청장은 3선 재임기간 중 세가지 큰 업적으로 동성로 노점상 철거(반발 심해 죽을 고생을 했던 기억)와 김광석 길 조성 그리고 대구 근대골목 투어가 지역 대표 관광상품이 된 것을 꼽았다. "그 구청장, 예술이네" 이런 기분 좋은 말까지 들었던 그는 초선 시절부터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이라는 골목투어를 기획했고, 작은 기적을 일궈냈다. 이 골목투어는 2012년 대한민국 관광의 별(대상)이 되었고,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곳'에도 선정됐다. 지금도 매년 전국에서 또 해외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대구 최고의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그는 "우리는 함께 옛길을 찾아 지도를 그리고 그 위에 새 길을 깔았다"며 "낡고 헌 골목에 새 숨을 불어넣으니 골목은 그 옛 시절의 오밀조밀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고 뿌듯해 했다. ◆일과 결혼 "화려한 싱글, 문화기획자" 윤 전 청장을 따라다니는 또다른 수식어는 '소녀 또는 수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묻자 "일과 결혼했다. 그게 다다"라고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실제 그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대답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성에 관심이 많았던 때, 혼기(婚期)를 놓쳤다. 이후 문화예술 및 공연 기획자, 선출직 행정가로서의 삶에 푹 빠져 살았다고 회고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그는 학창시절(상주여중·고교)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주목 받았던 규율 반장이자 리더십으로 충만한 행동파 여걸(女傑)이었다. 의외로 경영학을 전공했던 대학시절은 조용하게 보냈다. 뭘 할 지에 대한 고민과 방황 때문이었다. 그러다 중앙대 대학원에 입학해 문화예술 기획 쪽에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인생은 다시금 날개를 폈다. 윤 전 청장의 잠재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주연 박정자, 윤석화, 손숙),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주연 남경주, 최정원), '고래사냥'(연출 송승환) 등의 대구 공연을 기획했다. 극단 분도를 창립해 톱배우 이성민을 주연으로 한 '불의 나라'도 무대 위에 올렸다. 이성민 배우는 윤 전 청장과의 개인적 인연 때문에 중구청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인생 3막, 서막이 밝았다" 윤 전 청장의 인생 2막은 끝이 났다. 1막은 화려한 문화 기획자로서의 광폭 행보였으며, 2막은 대구 중구청장에 당선되어, 내리 3선을 하며 문화 행정을 펼친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3막의 시작되고 있다. 뇌 수술까지 한 터라 더더욱 새 인생을 사는 의미는 더해진다. "뭐가 두렵겠습니까? 문화가 흐르는 도시, 대구를 위해 뭐든 하겠습니다. 자연의 향기는 꽃, 인간의 향기는 문화입니다." 현재 맡고 있는 직책은 (사)여성과 도시 이사장, (사)박동준 기념사업회 이사장 그리고 분도갤러리 대표다. 아직 짱짱하고, 총명하기 때문에 대구를 위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6·3 지방선거에서 망가진 대구를 살릴 훌륭한 시장이 선출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이제 도심을 살릴 마지막 심폐 소생술을 해야 한다"며 "경제도 살려야 하겠지만, 회색 도시를 탈바꿈시킬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당장 해야 할 버킷리스트도 있다. 대구가톨릭대에서 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는데, 논문을 못썼다. '윤순영 미학 박사' 타이틀도 완성시켜야 할 숙제다. 세계 문화 탐방을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그는 일생 일대의 좋은 추억과 기억이 남아 있는 여행지로 ▷스위스 알프스 산맥 ▷일본 나오시마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꼽았다.

    2026-05-15 14:30:00

  • [털보기자의 '그사람']

    [털보기자의 '그사람']"내 영혼의 동반자, 그리운 고(故) 박동준"

    "친구야! 왜 아직도 꿈에 한번도 안 나타나니? 천국 안 갔어?" 삶의 이런 동반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둘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평생을 함께 했다. 인터뷰 하러 간 날이 마침 어버이날이었는데, 박동준 디자이너의 하나 뿐인 아들(이름이 중구, 우연의 일치?)과 며느리(은희) 그리고 그 자녀(선우) 이름으로 된 예쁜 카네이션 바구니가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짐작컨대, "그 아들이 윤 전 청장을 또다른 어머니로 여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짠한 감동마저 전해왔다. 둘의 만남의 윤 전 청장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도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던 때, 책을 사랑했던 단골 중년(박동준 디자이너의 부친)이 "우리 딸하고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별다른 기대가 없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너무나도 통하는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책을 사랑하고, 문화를 향유하고, 인생의 도전을 즐기다는 공통점이었다. 윤 전 청장이 전하는 영혼의 파트너 박동준 디자이너(향년 68세로 별세)는 2004년에 갑상선 암이 발병해 15년 동안 가슴 찢어지는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치 않았다고 한다. 2014년에는 뼈로 전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담당 의사와 단 둘이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11월12일 세상과 이별하는 그날까지 꿈을 놓치 않고 더 큰 열정으로 일했다. "참! 지독하죠? ㅎㅎㅎ" 둘은 이승과 저승에 있지만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분도 빌딩은 같이 지은 건물로 아들이 지분을 상속받았지만, 건물 관리는 여전히 윤 전 청장이 맡고 있다. 게다가 친구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그 뜻을 받들어 (사)박동준 기념사업회 이사장 자리를 맡아 패션을 중심으로 한 문화계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박동준 디자이너는 담담 의사에게 2억원을 건네며 "이 돈으로 갑상선암 연구 더 하시고, 나 같은 사람 없도록 해주세요."말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하늘나라로 갔다.

    2026-05-15 14:30:00

  •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

    [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꺼~~ 어억, 좋타!" 65년 전통 예천 용궁 합동양조장

    경북 예천군 용궁면은 예전부터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들이 모여 있었다. 산 좋고, 물 좋고, 아늑한 동네다. 그 중에 경북의 산업유산이자 향토 뿌리기업인 용궁 합동양조장이 읍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건물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고풍스런 빨간 벽돌 건물에 '헤롱헤롱 막걸리병' 상징물이 현관 지붕 위에 올려져 있다. 100평 남짓한 건물과 마당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양조장 옆에 주인 권순만(78) 씨와 부인 조희정 씨가 살고 있는 주거공간도 마련돼 있다. 전통적인 주조 방식(누룩 발효)으로 매월 3천병 정도 생산해, 거의 예천군과 인근 안동시와 문경시 등에서 소비된다. 막걸리 유효기간이 길지 않은데다, 유통마저 원활하지 않아 타 지역에선 맛보기가 쉽지 않다. ◆"기냥 65년 이 일만 했어. 묻지 마!" 올해로 65년째 이 양조장 일을 하고 있는 권순만(78) 대표와의 20분 가량 진행한 짧은 인터뷰는 한편의 콩트였다. '올해 연세가 몇인지?'라고 첫 질문을 건네자, "묵을 만큼 묵었어. 원래 1946년생인데, 2년 늦게 호적을 올렸어. 만으로 80세"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어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라고 묻자, "중학교 입학하려 했는데, 15세부터 아버지가 막걸리 배달일을 시킨 후로 여지껏 이 일 하고 있지"라고 허공을 쳐다봤다. 또, 대뜸 '뭐 좀 남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추가 질문을 하자, "이놈 저놈 다 떼가고, 나한테 떨어지는 건 얼마 안 돼"라고 이번엔 땅을 내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터뷰 말미에는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이제 사모님과 여행도 좀 다니시라'라고 권유하자, "말라꼬~~~ 가면 뭐하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라고 단박에 거절하며, 질문하는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랬다. 권 대표는 그렇게 막걸리와 함께 65년 인생 고락(苦樂)을 함께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저 막걸리 제조하고 배달하는 일만 했다. 한 때 잘 나갈 때(1960~70년대)도 있었다. 직원들도 많았으며, 매출액도 상당했다. 그 덕택으로 아들 둘, 딸 셋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는 "아이고~~~, 언제 그래 세월이 흘렀노"라며 멍하니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부부의 호흡은 완벽했다. 아내는 누룩으로 술을 발효시키는 공간에서 자신만의 비법으로 맛나고 깨끗한 막걸리 원액을 만들어내고,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기계식 제조공장에서는 권 대표의 우직한 장인의 기술이 빛을 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용궁 생막걸리는 예천군 일대를 중심으로 인접 지역의 식당이나 마트 등으로 배달된다. ◆'합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양조장에 왜 '합동'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했다. 누구나 주인이 여러 명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 알아보니, 주인이 한 때 여섯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각자 지분을 가지고, 양조장에서 나오는 수익을 분배했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이 양조장의 주주인 셈이다. 이 양조장 경영은 수십년 동안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주주는 3~6명으로 자주 바뀌었는데, 현재는 권 씨 가족을 제외하고는 1명만이 6분의 1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권 대표는 수년 전 자신의 지분마저 두 아들에게 넘겼다. 깜짝 놀랄만한 우연은 또 있었다. 제5대 사장인 권 대표는 제3대 권성훈 사장(기자와 성·이름 동일) 아래에서 경영을 배우면서 일을 했다. 아직 살아있는 권성훈 사장에 따르면 제1,2대 사장은 본인의 선대(할아버지, 아버지)인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 출신의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건강이 허락하실 때까지 이 양조장을 가동할 생각"이라며 "경북도와 예천군이 향후 이 양조장을 어떤 형태로 보존할 것이지 함께 고민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그는 건물 앞에 세워진 '헤롱헤롱 막걸리병' 상징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를 설치한 기관에서 철거해 줄 것도 당부했다. 송윤석 예천군청 투자유치팀장은 "용궁면에 위치한 합동양조장은 우리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숨쉬는 자랑거리이자 산업유산"이라며 "이 양조장을 향후 어떻게 예천 관광과 연결시킬 지, 좋은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2026-05-15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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