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왕, 가왕, 가황, 몇대 천왕 등의 수식이 시대마다 노래 잘 하는 이들에게 붙는다. 그런데 '가객'이라는 수식은 웬만해선 이 사람한테만 달린다. 김광석이다. 올해(2026년)는 그의 30주기이다. 그의 명곡들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등이 연달아 초연 무대를 펼친 2012~2013년처럼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연초부터 추모 공연이 열리고 헌정 앨범이 발매되는 등 다시 김광석 바람을 부를 모양새다. 그가 떠난지는 30년이 흘렀고 1984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 참여로 데뷔한 지는 40년이 넘었다. 이렇게 긴 시간 희미해지지 않고 계속 다시 불리어지는 저력은 같은 표현이 제목인 앨범 '다시 부르기' 1(1993)과 2(1995)에서 나왔다. ◆10년차의 거듭남, 다시 부르기 김광석은 1980년대 노찾사와 밴드 동물원 활동을 거쳐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 건 솔로 활동을 펼쳤다. 1집(1989)이 '기다려줘'와 '너에게'를 띄웠고, 2집(1991)에선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이 큰 사랑을 받았으며, 3집(1992)은 좀 더 자기 색깔을 찾은듯 했으나 전작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즉, 노래 참 잘 하지만 멀리서 보면 가요계 여느 장르에 늘상 몇명은 있는 그런 재능 있는 가수 중 하나에 머물렀다. 이후 김광석은 한 달 간 서울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 나섰다. 자신의 음악 인생 10년을 중간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는데, 이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잘 소화하는' 것 아니었을까. 나를 잘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내가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잘 전해주는, 마치 연사나 이야기꾼이 되는 것.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들은 물론 평소 애창한 곡들도 공연 리스트에 올렸다. 이를 좋게 지켜본 지인들의 제안으로 공연 곡들을 수록한 다시 부르기 1이 발매됐다. 자기 노래 및 친정인 셈인 노찾사·동물원의 곡들이 앨범 대부분을 채운 가운데 1번 트랙이자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이등병의 편지'가 눈길을 끈다. 김현성이 1986년 발표한 곡을 들국화의 전인권이 1990년 리메이크한 걸 김광석이 1993년 다시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김광석 원곡으로 알았고 또한 지금도 그렇게 아는 경우가 적잖다. 그리 착각하게 되는 건 김광석의 놀라운 소화력 때문일 것이다. ◆힘껏 다시 불러 영원한 가객으로 김광석은 다시 2년 뒤 내놓은 다시 부르기 2에서는 이등병의 편지 같은 사례를 늘렸다.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선배 포크·블루스 뮤지션들의 곡을 다시 불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미국 포크 가수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1963)를 양병집이 역(逆, 1974)이라는 제목으로 각색한 걸 김광석이 새 제목을 지어 열창한 사례다. 노랫말을 보면 땅꾼이 독사에게 잡혀가는 등 사회가 뒤집힌 세태를 풍자했는데, 앨범 표지를 신문 1면 스타일로 패러디한 것과 함께 김광석이 마치 조선시대 때 풍자 시인 김삿갓으로 변모한듯한 뉘앙스도 풍긴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원곡 가사 그대로 다시 불렀을 뿐인데 좀 더 울컥하게 만든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이라는 부분을 녹음할 땐 실제 대구 방천시장 전파상 막내아들로 태어났던 김광석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소주 한 잔 마신 후 녹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 부르기 전에 깊숙이 공감(즉, 소화)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물이 다시 뭇사람들로부터 눈물을 부른다. 다시 부르기 1·2는 어떤날 출신 조동익의 감각적인 편곡과 함춘호·손진태 등 실력파 세션진이 김광석을 주인공으로 만든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광석은 평소 즐겨 부르던 음악계 선배·동료들의 곡을 정성을 다해 앨범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그랬더니 그 곡들이 마치 보답인듯 오랜 시간 조명처럼 김광석을 비추고 있다. 김광석이 일취월장 행보를 보인 두 리메이크 앨범 발매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등 명곡들로 가득한 최고작 4집(1994)이 탄생한 건 우연이 아닐 터다.
2026-04-03 12:30:00
[커버스토리] 대구경북 소멸 소도시·낙후 원도심 해법은?
◆부산 지방소멸 대책 '원도심 통합' 30년 전엔 분리를 발전의 지표로 반겼으나 시간이 지나자 생존을 위해 통합을 타진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지방소멸 위기를 대구 만큼 체감하고 있는 부산에서다.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5년 부산에서는 북구에서 사상구가, 남구에서 수영구가, 동래구에서 연제구가 각각 독립했다. 또한 옛 동래군 지역을 기장군으로 출범시켜 현재 부산의 15구 1군 체제를 갖췄다. 이 가운데 부산 원도심 지역인 중구·동구·영도구·서구가 급속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도심 노후화, 낮은 재정자립도 문제를 타개하고자 2017년부터 통합을 도모했다. 가만히 있으면 4개 구 각자 소멸하기 때문에 시급히 합쳐 인구 40만 규모의 통합구를 출범시켜야 하고, 이를 통해 먼저 합체했던 경남 창원(창원·마산·진해)과 충북 청주(청주·청원)처럼 정부 재정 인센티브 지원·중복 예산 절감·특화사업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이듬해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이 낙선하고 4개 구 구청장도 전원 교체되며 추진 자체가 멈췄다. 같은 원도심 문제 해결 취지의 인천 중구·동구 통합 제물포구 출범은 유정복 인천시장이 취임 첫 해인 2022년부터 밀어붙여 임기 중 완료한 것과 강하게 대비된다. 손 쓸 타이밍을 놓친 걸까. 8년이 지나며 중구(인구 4만4천→3만6천), 동구(8만8천→8만3천), 영도구(12만3천→10만1천), 서구(11만→10만1천)는 인구가 지속해 유출, 부산 지자체 인구 최하위권 순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은 원도심 뿐 아니라 부산 전체 인구가 같은 기간 347만에서 323만으로 크게 줄었다. ◆소멸 마지노선 '2만명' 소도시 네트워크 정답이 없기에 통합, 분구, 편입 등 행정구역 개편은 자칫 포퓰리즘에 활용될 여지도 적잖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하다. 대구경북이 여실히 겪고 있는 지방소멸 위기를 인구수가 적은 시·군은 더욱 절감하고 있는데, '인구 2만 이상 확보'라는 통합 공식이 제시돼 눈길을 끈다. '지방소멸대응 소도시 재구조화 전략'(2024)을 펴낸 김준우 대구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인구 21만 이하 소도시가 지방소멸에 가장 취약하다. 경북 250개 읍·면·동의 소멸위험지수와 인구 지속가능성을 분석했더니 소멸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인구수는 2만 이상, 소멸위험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 인구수는 1만 이상"이라며 "인구 2만 이상 자생력을 가진 강소도시와 규모는 작지만 역사·문화 자산이 있는 특화마을을 육성하고 연계해 네트워크형 소도시 구조를 만들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꼭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형식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실질적 생활권 구축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지난 2024년 한국정책학회 발표에서 각 인구 5천 안팎이며 서로 접한 경북 문경시 산양면과 예천군 용궁면 사례를 들어 "이들을 합쳐 인구 2만의 소도시를 조성할 수 있다. 자율주행이나 드론 같은 미래 기술을 사용하면 콤팩트하게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방안을 제시했다. ◆'지혜로운 축소' 저성장 도시 해법 될까 부산의 통합구 시도와 인천의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서해구 신설은 낙후한 원도심 부활에 대한 고민이 공통 배경이다. 이 고민을 대구도 갖고 있다. 과거 도심(향촌동 일대)과 현재 도심(동성로 일대) 둘 다 자리한 대구 중구 인구는 2021년 7만4천으로 바닥을 찍은 후 매년 증가해 올해 10만을 돌파, 고민에서 탈피하는듯 보인다. 착시일 수 있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집중된 덕분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지난해 4분기(10~12월) 동성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16년 만에 가장 높은 26.9%까지 치솟은 상황과도 큰 괴리를 보이기 때문이다. 자칫 인구수가 다른 현실을 가리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빈 공간을 다시 채울 동력이 부족한 곳엔 콤팩트시티(압축도시)가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성장기엔 도심 외곽 신도시를 개발한 것과 반대로 빈 도심에 주거지, 직장, 상업·문화시설을 집적해 공간 효율을 끌어올리고 생활 편의성도 높이는 도시계획이다. 13년 전 '도시축소의 시대'(2013)를 펴낸 야하기 히로시 일본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당시 이같은 집약형 도시구조를 골자로 하는 축소도시 개념을 소개하며 "'지혜롭게 쇠퇴하기'와 '보다 작게 성장하기'의 찬스"라고 강조, "풀세트형 도시 기능을 가지기 힘든 축소도시들은 서로 기능을 분담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찾게 된다"고 전망했다.
2026-04-03 12:00:00
[시사뒷담] 김부겸, 6년 전 다짐 실현할까? 팔았던 대구 집은 어떻게?
6.3 지방선거 대구시장에 공식 출마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6년 전 말과 행동이 눈길을 끈다. '꿈보다 해몽'일 수 있지만, 6년 뒤 지금을 내다본듯 해서다. ◆6년 전 낙선 직후 "다시 싸우겠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계 후보로는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최초로, 그것도 대구 정치 1번지 수성갑에서 당선되며 새로운 정치 풍토를 만들지 주목됐다. 하지만 2020년 21대 총선 때 같은 선거구에서 주호영 현 국회부의장에게 졌다. 고배를 마신 직후 찾은 곳이 바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었고, 여기서 재기를 다짐했다. 김 전 총리는 2020년 4월 24일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후 페이스북 글을 통해 고인의 변호사·재야운동 시기를 언급하며 "그분만큼 상처투성이도 없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자신의 낙선과 비교했다. 이어 "다시 툭툭 털겠다. 보란 듯이 일어서겠다. 그게 지역주의의 부활이 됐든, 보수 최후의 보루가 됐든, 영남에 똬리 튼 보수 일당 체제를 깨기 위해 다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 언급에 대해서는 2년 뒤인 2022년 20대 대선 도전을 가리켰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낙선했으나, 불과 2년 뒤였던 2002년 16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러한 '2년 뒤 재기' 스토리를 다시 쓰려했다는 얘기다. 다만, 김 전 총리에게 대권 도전 기회는 더는 주어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20·21대 대선은 이재명 대통령이 연달아 주인공이었다. 대신 그에게 이번에 다른 기회(대구시장 출마)가 주어졌다. 성공 시 대권 디딤돌로도 삼을 수 있는 기회다. ◆일찌감치 "TK 행정통합" 주장 김 전 총리는 2020년 7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페이스북에 '행정수도 완성은 노무현의 꿈'이라는 제목의 글로 포부를 밝혔다. 내용을 살펴보니 그 연장선상의 공약을 이번 대구시장 도전 때 내세울지 시선이 향하게 된다. 6년 전 글이지만 지금 대구 처지를 적확히 짚어서다. 그는 7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는 더 심각해졌다. 해법은 행정수도"라며 "수도권 일극 중심체제를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수도권은 수도권에 버금가는 광역권 '상생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구·경북에 통합신공항과 통합광역행정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대구경북통합론은 이후 2024년 5월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으나, 최근 통합 논의가 난항에 빠진 상황에서 지선을 맞게 됐다. 한편, 김 전 총리는 6년 전 당 대표 선거에선 이낙연 후보에 밀려 2위로 쓴잔을 마셨다. ◆떠나며 수성구 만촌동 집 팔았지만 김 전 총리가 떠난 사이 대구 민심이 어떻게 얼마나 변화했을지에도 관심이 향한다. 6년 전엔 그의 대구 수성구 범어동 소재 사무실에 계란 투척이 이뤄진 바 있다. 2020년 3월 24일 오후 9시 40분쯤 40대 남성 A씨가 사무실 출입문에 계란을 던지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적은 종이를 붙였다. 이에 대해 이튿날 김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처벌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배후가 있거나 조직적이지 않은, 우발적 행동을 한 것일 경우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의 대구시장 출마 수순에 곁들여지는 관심은 그의 대구 거주지 문제다. 시장 당선 시 직전 홍준표 시장처럼 관사에 입주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러지 않고 '대구 살던 대구시장'이라는 상징적 사례를 쓸 수 있었다. 대구 집을 안 팔았다면 말이다. 2021년 4월 21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삼으며 국회에 제출했던 인사청문안을 통해 그가 수성구 만촌동 아파트를 매도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우리 동네 아파트"라고 언급해 많은 유권자의 기억에 남았던 그 집이다. 이어 그는 같은해 9월 9일 총리 신분으로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 "최근 대구 집을 팔았다"고 털어놓으면서 "식구들이 여러가지로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고 예전부터 전원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경기 양평군 강하면에 전원주택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렇게 타향이 되는듯 했던 '대구'라는 키워드가 다시 그의 정치인생에 따라붙게 된 맥락이다. 정치도 생활도 모두 떠났던 김 전 총리의 대구 '컴백' 시도는 어떤 결과를 맞을까.
2026-04-03 12:00:00
[금주의 이슈] TV·신문 힘 잃은 '시사풍자', OTT·유튜브 대세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여기서 각설이는 OTT 쿠팡플레이에서 지난 3월 28일부터 새 시즌(리부트 시즌8)을 방영 중인 'SNL코리아'다. 본래 의미인 떠돌며 구걸하는 광대가 아니라, 잘 나가는 시사풍자 미디어다. SNL코리아는 선거철과 인연이 깊은데, 지난해 21대 대선 기간엔 유력 정치인들을 대거 출연시켜 정치풍자의 재료로 활용했고, 올해 6.3 지방선거 시즌에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첫 방송에 섭외하는 등 선거판 주요 무대 중 하나를 차지할 전망이다. 정치인들은 자칫 망가지더라도 대중적 인기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기에 기꺼이 캐스팅에 응한다. ◆국힘보다 나은 SNL '대여공세'? 한 전 대표는 SNL코리아에서 인기 연애 리얼리티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패러디한 '나는 후보' 코너에 출연,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이 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조폭 연루 의혹을 첫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향해 지난 3월 20일 사과를 요구한 걸 비꼰듯 SNS코리아 제작진은 '연애하다 불리한 소리 들으면 SBS, 아니 애인에게 고소하겠다고 엄포 놓는 남친'과 '직장 동료 뒷담화 하다가 회사 잘린 백수 남친' 등 2개 보기를 제시하며 누가 더 빌런(악당)인지 물었다. 이에 한 전 대표는 "대통령 권한 잡았다고 해서 자기한테 좀 불리한 보도를 했던 방송국 자체를 조져버리는 것은 좋은 정치도 아니고 나라를 퇴행시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이 대통령에게 영상편지를 남겨달라는 부탁엔 "정치를 좀 대승적으로 하라"고 일침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 기간에도 SNL코리아에 출연했다. 경선 기간 계속 살아남을 유력 후보라서 섭외된 맥락이었다. 한 전 대표는 그해 4월 21일 녹화에 참여했고 방송은 26일 이뤄졌는데, 1차 경선 컷오프 결과 발표는 녹화 바로 다음날 이뤄졌다. 즉, SNL코리아는 한 전 대표의 1차 경선 통과에 베팅을 하고 그를 섭외했던 셈이다. 이어 대선 본선 시기였던 같은해 5월 24일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배우자 설난영 여사 섭외를 파격적으로 성사시켰다. 방송 내용으로도 상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부인 김혜경 여사를 대놓고 디스(비판)하는 한국 정치풍자 초유의 사례를 썼다. 이때도 SNL코리아는 김 여사의 사법리스크인 셈인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을 꼬집은 질문을 꺼냈다. '법카(법인카드)로 사 먹은 김혜경 여사와 명품백 받은 김건희 여사 중 내조를 더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묻자 설 여사는 "첫번째(김혜경 여사)"라고 답했다. 또 김 여사 이름으로 삼행시를 해달라는 요청에 "김빠져요. 혜경궁 김씨. 경을 칠 노릇입니다"라고 당시 김혜경 여사와 연결고리 의혹이 제기된 SNS 계정을 언급했다. 설 여사는 편의점 상황극에선 아르바이트생 역할을 맡아 김 여사 분장을 한 개그우먼 정이랑에게 "법카 사용하지 마세요. 앞으로는"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SNL코리아는 지난해 시즌 막판(설난영)과 이번 시즌 첫 회(한동훈)에서 연이어 이 대통령을 저격한 셈인데, 최근 국민의힘 안에서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여투쟁'을 정당보다 더 인상 깊게 구사한 셈이 됐다. 물론 SNL코리아는 현 여권 정치인들도 균형감 있게 캐스팅한다. 당장 다음 출연자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에 출전한 박주민 예비후보다. ◆뉴스가 소홀히 한 이슈 코미디로 풍자 이런 높은 수위의 정치풍자를 과거엔 지상파 TV가 주도했다. 심지어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진 셈인 KBS가 중심에 있었다. 1986년 첫 방송된 KBS '유머 1번지'의 간판 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시초다. 가상의 재벌 비룡그룹 임원 회의 꽁트로 각종 시사 이슈를 풍자했다. 회장 역 배우 김형곤을 비롯해 김학래·엄용수·양종철 등 당대 스타 코미디언들이 출연했다. 지금과 비교해도 '독한' 시사풍자가 특징이었다. 1987년 1월 14일 발생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브리핑에서 논란이 된 사망 원인 설명인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를 그대로 "테이블을 '탁' 하고 치니 도자기가 '퍽' 하고 깨졌다"로 패러디한 게 대표적이다. '코미디 텍스트와 풍자의 정치학'(2015)을 펴낸 이기형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저녁 뉴스가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동시에 대중의 관심이 상당한 일련의 부정적이거나 불합리한 사회적 쟁점들을 코미디 텍스트가 예리하게 빗대며 웃음과 조롱 그리고 해학과 비판 정신으로 특정 쟁점들을 까발리고 조명했다"고 분석했다. KBS 뉴스에서 제대로 거론치 못한 이슈를 KBS 개그프로그램에서 시사풍자로 다루며 TV의 공론장 역할을 살렸다는 얘기다. ◆개그콘서트 필두 전성시대 이후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이같은 공론장 형성 기능을 맡았다. '봉숭아 학당'을 비롯해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불편한 진실' '비상대책위원회'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같은 코너가 시사풍자를 녹여냈다. 당시 개콘의 시사풍자 미디어로서의 체급은 현직 국회의원이 고소전을 만들 정도였다. 2011년 사마귀 유치원 코너에서 개그맨 최효종이 "국회의원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라며 풍자 개그를 하자 당시 강용석 국민의힘 의원이 집단모욕죄로 고소했다. 그러자 개콘 여러 코너에서 동료 코미디언들이 이 고소를 풍자하는 개그를 펼치는 반격으로 정치풍자의 묘미를 드러냈다. 결국 고소는 취하됐다. 2012년엔 OTT(쿠팡플레이)가 아니라 케이블 채널(tvN) 시절 SNL코리아의 정치풍자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 의해 선거방송심의위에 회부됐다. 당시 18대 대선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풍자한 '또' 캐릭터에 대해 "특정 후보를 비하하고 욕설이 난무한다"고 새누리당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심의위는 문제가 없다며 '불문' 결론을 냈다. 2015년 방송된 개콘 '민상토론'은 이명박 전 대통령 기업특혜 논란과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 등 정치 현안을 다룬 것은 물론, 롯데 형제의 난과 대한한공 땅콩 회항 등 재벌 문제도 다루며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나 할 법한 심층적 접근도 시도했다. 그러다 정부 메르스 사태 대응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걸 두고 한 시민단체가 민원을 제기, 방심위(현 방미통위)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내렸고, 이후 코너가 폐지되자 외압 논란도 불거졌다. ◆팬덤정치에 몸 사리는 지상파 이후 개콘의 시사풍자 기능은 약해졌고, KBS(개콘, 폭소클럽, 웃음 충전소)가 중심에 선 가운데 MBC(개그야)·SBS(웃음을 찾는 사람들)가 보조를 맞추던 지상파 TV 주도의 시사풍자 시대도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팬덤정치 흐름이 강해지며 특정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나오면 지지자들의 항의가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 등에 쏟아지고 더 나아가 방심위 등 규제 당국에 민원을 넣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게 누적되면 심의·재허가에 불리해질 것으로 판단한 방송사들이 몸을 사린 게 시사풍자의 약화를 넘어 실종 상태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2021년 11월 26일 경향TV 유튜브 '정치풍자 개그가 사라진 불편한 진실' 편에 출연한 개콘 출신 개그맨 황현희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겠다고 시작한 정치풍자인데, 많게는 국민 절반가량의 환호 대신 비판을 애초부터 각오해야 한다면 누가 그걸 시작하려 하겠나"라고 진단했다. ◆OTT·유튜브 시사풍자판 접수 이 틈을 지상파보다 규제가 덜한 OTT, 정확히는 tvN(TV)에서 쿠팡플레이(OTT)로 플랫폼을 옮긴 SNL코리아가 공략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사풍자 분야 중에서도 정치판이 주 타깃이다. 그간 이재명·윤석열·이준석·홍준표·안철수·유승민·오세훈·김문수·이낙연·조국·윤상현·김동연·박지원·나경원·김부겸·정청래·한동훈 등 유명 정치인들이 앞다퉈 출연했다. 또 코미디언 안영미가 뉴스 앵커로 분하는 '위켄드 업데이트'는 매주 화제의 이슈를 시사풍자로 풀어낸다. 역시 규제 외곽에 있는 유튜브도 시사풍자가 활발한 미디어다. 유튜브는 '진보 대 보수'의 진영 편향 구도가 뚜렷한 가운데 코미디언 출신들이 '정치 유튜버'로 나선 게 주요 특징이다. 여러 채널 가운데 같은 개콘 출신 강성범이 친민주 성향 '강성범TV' 유튜브(구독자 70만)를, 김영민은 보수 성향 '내시십분' 유튜브(50만)를 운영하며 입담을 바탕으로 정치풍자에 주력하고 있는 게 상징적 사례다. 유튜브는 기성 언론도 뒤늦게나마 최소 하나씩은 채널을 파 시사 이슈를 다루며 풍자 기능도 곁들이는 창구인데, 방송·신문 둘 다 과도한 수위는 자제하는 관성을 보이며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 말고 본업을 살펴보면, TV 방송의 경우 YTN '돌발뉴스'정도가 시사풍자 프로그램의 명맥을 잇고 있다. 시사와 예능을 결합한 JTBC '설전' 종영 후 TV조선 '강적들' 같은 아류 프로그램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사풍자 기능은 전보다 약하다. 다만, 선거 개표 방송 때나 유머와 패러디를 가미한 기획으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다. 신문은 김성환(동아일보 '고바우'), 박재동(한겨레 만평), 박순찬(경향신문 '장도리') 같은 스타급 시사만화가들이 잇따라 퇴장하며 존재감이 급격히 떨어져 있다.
2026-04-03 12:00:00
늘 다니던 큰 길에서 벗어나 괜히 좁고 어둡고 후미진 길로 발을 옮기면, 평소보다 좀 느리게 발을 디디면, 늘 내려다보던 스마트폰 대신 지면의 생김새를 살피고 그러다가도 고개를 위로 올려 담장과 지붕 위를 탐색하면, 골목길에 감춰진 이런저런 이야기가 발견됩니다. 그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당신의 안보시력은 얼마입니까? 맨 아래 글자까지 읽을 수 있다면, 시력 2.0이다. 과거 국정원(국가정보원)에서 만들어 골목길에 붙인 간첩 신고 홍보 시력검사표다. 지자체 홍보로 이름을 날렸던 충주맨(김선태) 같은 직원이 국정원에 있었던 걸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력이 좋다는 얘기인 시력검사표 표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사회곳곳에는간첩과좌익사범및국제범죄사범이숨어있을지모릅니다여러분의신고정신이국가안보를지켜줍니다 ◆간첩 신고 상금 500만원→20억원 이 홍보물에 적힌 간첩 신고 상금도 눈길을 끈다. 1960년대부터 간첩 신고 시 그 결과에 따라 상금을 주는 제도는 우리나라의 높은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을 반영했다. 70년대엔 간첩 신고 500만원(이하 최고액 기준), 간첩선(간첩들이 타고 온 배나 잠수정 등) 신고 1000만원이었다. 80년대에는 간첩 신고 3000만원, 간첩선 신고 5000만원으로 10년 만에 5~6배 수준으로 높였다. 90년대에는 간첩 신고 1억원, 간첩선 신고 1억5000만원으로 3배가 됐다. 이어 2011년 간첩 신고 5억원, 간첩선 신고 7억5000만원으로 10여년 만에 5배로 상승했다. 정부는 신고 상금 인상 이유로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신고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자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며 '간첩 로또'라는 제목을 기사에 붙였다. 로또 복권 1등 당첨금에 견줄만한 액수라는 표현이었다. 다시 5년 뒤였던 2016년 신고 상금 최고액이 20억원을 찍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간첩 등 국가안보 위해 사범의 활동이 수법이 날로 은밀화 및 지능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증액 이유를 밝혔다. 이후 10년이 지났고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변치 않은 건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다. 통상 10년 간격으로 간첩 신고 상금이 상승했으니, 다시 올릴 때가 된 건 아닐까. ◆대구 신암동 무장간첩 사건을 아시나요? 이 밖에도 골목길에 가면 주소를 적어놓은 팻말 속 새마을운동 심볼에 곁들여진 '반공' 글자, 동네 골목마다 한집씩 있었던 '주민신고센타' 팻말로 반공의 시대를 지나온 대한민국 현대사를 확인할 수 있다. 대구 북성로 골목에서도 '숨은 간첩 찾아내고 자수 간첩 도와주자'는 대구경찰서장 명의 구호가 새겨진 오래된 벽면을 관람할 수 있다. 북한 간첩은 실제로 우리 현실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1984년 9월 24일엔 대구 동구 신암동 백합미용실과 희민식당에서 신원미상의 북한 무장간첩 1명이 민간인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간첩은 독극물 앰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단순히 반공·멸공 궐기 대회에서 구호로만 외칠 게 아닌, 일상에서 내 가족이 언제 당할지 모를 공포였다.
2026-04-03 12:00:00
[커버스토리] 지자체 '뭉쳐야 산다' 통합이 대세? '영리한 이별' 분리도 모색
지방소멸 극복을 위해 전국에 통합 바람이 불고 있지만, 동시에 분구(分區) 같은 분리 움직임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구경북을 비롯해 광역자치단체 단위에선 '뭉쳐야 산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기초자치단체 사이엔 '영리한 이별'을 요구하는 주민 여론도 만만찮다. 통합과 분리 중 생존에 더 유리한 선택을 저울질하는 시대다.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 나뉘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합치고, 합쳐도 세월이 흐르면 반드시 나뉜다)이라는 옛말도 인용할 수 있다. 대구만 봐도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하며 경북을 벗어나 새 둥지를 틀었지만, 40년 만에 뿌리 경북에 재결합을 구애하고 있다. 생물처럼 나뉘고 합치길 반복하는 행정구역 개편은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다양한 사례를 쌓고 있고, 여기서 도출되는 의미와 던져지는 과제를 대구경북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4개 구 신설해 동력 찾는 인천 대구와 인구수·경제 규모·정치적 위상 등을 두고 '대한민국 제3의 도시' 경쟁을 하고 있는 라이벌 도시 인천은 올해 4개 구를 새롭게 출범시킨다. 인천은 대구와 마찬가지로 근대화와 산업화 다음 성장 동력이 마땅찮아 낡은 도심이 비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고 신산업 먹을거리 부재에 청년이 떠나는 문제 역시 안고 있다. 이를 해결코자 도심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신도시도 개발하면서 기업·인재 유치에 나서는 등 닮은꼴 해법을 펼치는 가운데, 인천은 2022년부터 타 대도시와 차별화 한 행정구역 개편 방책도 추진하더니 4년 만에 실현한다. 바로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서해구다. 중구·동구를 폐지해 제물포구·영종구를 신설한다. 중구의 원도심이 기존 동구와 합쳐져 제물포구가 되고, 인천국제공항 소재지로 유명한 영종도 일대가 영종구가 되는 것이다. 역시 가좌동 등 원도심 개선이 고민인 서구는 검단구를 끄집어내고 남은 서구 지역은 서해구로 이름을 바꾼다. 이에 따라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4개 구의 구청장과 지방의원을 새로 선출한다. 새 부대에 새 술이다. ◆제물포 역사성 부활…후유증 우려는 숙제 제물포구는 1883년 제물포항 개항 후 인천의 시작이 된 인천 원도심(동인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맥락이다. 인천 중구와 동구는 지난 20세기 거의 내내 인천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였으나 인천시청이 1985년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한 걸 시작으로 상권과 학교가 빠져나가 다른 부도심들이 부상하면서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이에 2020년대 들어 제물포구라는 이름으로 재결합하라는 처방전이 제시됐고, 대신 선물로 받는 셈인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 같은 기회를 부활 동력으로 삼게 됐다. 중구와 결별하는 영종구는 기존 영종국제도시 주민들이 바다 건너 내륙에 있는 중구 도심 생활·행정 인프라 이용에 어려움을 겪던 걸 해소하게 됐다. 기존 신도시(영종국제도시)가 하나의 지자체로 체급을 올리는 셈인 영종구 사례를 두고는 같은 인천 내 연수구 소재 송도국제도시가 향후 가칭 송도구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돋우며 부러워하는 여론이 감지된다. 마냥 장밋빛 전망만 있진 않다. 현대제철 등 산업경제 기반을 가진 동구와 비교해 중구는 과거 명성만 있다. 아울러 중구는 이번에 인천국제공항 기반 세수를 가진 영종국제도시를 떠나보낸다. 재정 격차가 꽤 있는 두 지자체의 결혼이 제물포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매개로 한 주도권 싸움 양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서구가 나뉘어져 생기는 검단구와 서해구는 과거엔 행정구역을 자연환경이 구분해줬으나 이젠 거대 인공시설이 구분해주게 된 희소 사례가 된다. 지난 2012년 개통한 운하인 경인 아라뱃길 북쪽이 검단구, 남쪽은 서해구가 된다. 실은 영종구도 인천국제공항 건립을 위한 영종도 간척사업의 결과물인 셈이다. ◆IT로 큰 화성·용인·성남 분구 '바람' 분구(구 신설 포함) 사례 내지는 그럴 조짐은 경기도에도 여럿 있다. 인구를 증가시키는 지역 산업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최근 경기 화성시가 일반구(선거로 구청장을 선출하는 자치구와 달리 구청장 임명) 4개를 전격 설치해 주변 지자체에 관심을 환기시켰다. 99만이 사는 화성은 인구가 50만을 넘긴 2010년부터 꾸준히 일반구 설치를 논의, 애초 3개 구 설치를 추진하다 그 사이 도시가 급격히 커진 데 따라 만세구·효행구·병점구·동탄구 등 4개 구를 올해 2월 출범시켰다. 동쪽 동 단위 지역에 인구가 몰리고 서쪽 읍·면 단위 지역은 낙후하는 동서격차 타개가 핵심 목적이다. 그런데 현지 여론은 4개 구 신설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동탄구를 구성하는 동탄신도시는 하나가 아니라 1·2신도시로 구분된다. 이에 위치를 따져 1신도시 일대를 동탄서구, 2신도시 일대를 동탄동구로 재차 나누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접 용인시 기흥구의 기흥구·구성구 분구 이슈도 다시 꿈틀하고 있다. 화성과 용인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매개로 급성장했는데, 최근 반도체 활황에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민들의 분구 요구를 형성하는 한 요인이다. 애초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경기 수원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권선구도 분구 논의 대상이 된 바 있다. 반도체 활황은 이들 삼성전자 소재지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있는 경기 이천시까지 포함, 경기 남부 지역 부동산 시장에 제법 훈풍도 만들고 있다. 경기 성남시에서도 분당구 내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를 분당구·판교구로 가르자는 여론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역시 네이버·카카오 등 공룡 IT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테크노밸리의 존재감이 분구 여론에 영향을 끼친 맥락이다. ◆대구 침체에 달서구·북구 분구 '잠잠' 대구에도 분구 여론이 있다. 대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달서구에 꾸준히 제기됐다. 달서구는 지난 2001년 인구 60만을 돌파하며 분구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 당시 달서구는 서울 송파구(69만)와 노원구(64만)에 이어 전국 69개 자치구 중 3번째로 60만 고지에 올랐다. 1988년 대구 남구·서구의 일부를 떼어다 만든 달서구 인구는 출범 당시 28만이었던 게 1997년 50만을 넘어서더니 4년 만에 60만을 찍었다. 성서산업단지가 1988년 1차 단지, 1992년 2차 단지를 조성하며 배후 주거지구가 마련돼 성서 지역을 형성했고, 미완에 그친 월배공업단지 부지가 2003년 월배신도시로 개발된 전후로 월배 지역도 형성했다. 이렇게 생활권이 둘로 나뉘자 가칭 성서구·월배구 분구 여론이 형성됐다. 1990년 달서경찰서에 이어 2005년 성서경찰서가 마련되고 성서행정타운 부지가 성서구청 입지로 거론되는 등 가시적 기반을 갖춰나갔으나, 지금은 별 얘기가 없다. 60만을 넘겼던 인구가 2026년 현재 51만까지 하락해 조만간 통상적 분구 기준(50만 이상)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생활권을 이유로는 대구 북구에도 분구 논의가 존재한다. 금호강과 함지산이라는 자연 경계를 기준으로 먼저 북구로 자리잡았던 남쪽 지역과 1981년 편입된 북쪽 지역(과거 칠곡읍, 통칭 '강북')을 분할하는 시나리오다. 강북 지역 칠곡지구엔 가칭 강북구 분구에 대비한 칠곡행정타운(또는 강북행정타운) 부지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는 대구가 '지금과 달리' 성장을 구가하던 시기 성서행정타운 부지와 함께 달서구·북구의 분구 가능성을 높게 따진 흔적인 셈이다. ◆가창 수성구 편입 불발…'깜짝' 군위 대구 편입 현재 인구가 달서구(51만)보단 적지만 북구(41만)와 함께 대구 공동 2위 수준이며, '대구의 강남' '서울 강남 다음 가는 교육환경' '비수도권 최고 부자 동네' 등 대구 톱 내지는 탈대구급 입지라는 수식이 붙는 수성구는 이같은 선호도를 바탕으로 편입 이슈를 홍역처럼 앓았다. 바로 대구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 논의다. 가창면은 과거 수성구의 뿌리인 수성현 지역이었고, 수성구 파동에 접해 수성구 생활권이 꽤 굳어진 지역이다. 이에 수성구 편입 공약이 선거 때 등장하기도 했고, 특히 2023년엔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이 편입 검토 의사를 밝히자 최재훈 달성군수가 반대 입장으로 맞선 것은 물론, 편입 설명회에서 찬성·반대 주민들 간 충돌이 벌어지는 등 핫 이슈였다. 곁들여 달성군 다사읍·하빈면의 달서구 편입 논의가 불거질 조짐도 있었다. 수성구는 1980년 대구 동구 남쪽 지역이 분리돼 출범했는데, 바로 1년 뒤인 1981년 경북 경산시(당시 경산군) 고산면(현재 시지 지역)을 편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수성구 서쪽 범어·황금 등지는 동대구 부도심을 구성하지만, 동쪽 시지는 맞닿은 경산과 생활권을 공유하는 연담화(連擔化) 환경에 놓여 있어 이게 향후 분구의 단초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즉, 선택지는 늘 열려 있다. 지금 수도권에서도 그러듯이 분구도, 편입도 언제든 지역 생존 논리를 자극하면 강한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 2023년 군위군 대구 편입이 그런 예다. 당시 경북에 속했던 군위는 팔공산이 가로막고 있어 대구와 생활권도 공유하지 않았지만, 새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군위의 협조 없이는 자칫 무산될 위기를 역으로 압박, 대구 편입을 신속히 성사시켰다.
2026-04-03 11:30:00
[금주의 이슈] 북중미 월드컵도 독점중계 논란…6월 개최 전 해결 가능?
'보편적 시청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월 JTBC의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독점중계가 제한된 시청 통로에 따른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는 방송사 수지타산 논리와 별개로 공공재 성격의 재미와 감동을 국민들이 골고루 누릴 수 없었다는 문제 제기로 연결됐다. 이어 2개월여 뒤 재차 JTBC가 독점중계할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제도 개선을 주문, 정부와 정치권이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통상 지상파 3사가 공동중계해왔다. 그러다 종편채널 4곳 중 하나인 JTBC의 독점중계가 이번에 초유의 사례를 쓰며 논란이 된 것인데, 실은 3사의 과점중계 관행에 대해서도 지상파의 영향력이 점점 낮아지는 시대에 과연 정답인지 질문이 꾸준히 향한 바 있다. ◆개회식 시청률 1/10로 급감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개회식 시청률은 1.8%(이하 닐슨코리아)로 집계됐다. 4년 전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시청률 18%(KBS1 9.9%, MBC 4%, SBS 4.1%)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개막식을 하는지도 몰랐다"는 국민 반응이 다수 언론 보도 제목에 인용됐다. 물론 이들 수치는 보정이 필요하다. 베이징 대회 개회식은 오후 8시 20분부터 초저녁 황금시간대에 중계된 반면 밀라노 코르티나 대회 개회식은 평일 새벽 3시 30분부터 중계됐다. 그래서 개회식 당일 낮 JTBC 재방송 시청률 1.9%도 더한 3.7%+알파(보정치)를 비교 대상으로 삼을 만한데, 그럼에도 18%에 근접하기란 역부족이다. 다른 주요 경기 시청률을 살펴봐도 밀라노 코르티나 대회는 가장 높았던 게 대한민국의 주 종목인 쇼트트랙 남자 500m·여자 1000m·남자 5000m 계주 경기가 연이어진 2월 16일 저녁 11.2% 기록이다. 베이징 대회 땐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경기가 있었던 2022년 2월 14일 방송 3사 중계 합산 시청률이 최고 기록이다. 46.6%였다. 그 밖에도 20~30%대 기록이 숱했다. ◆완성도 높이는 공동중계 효능 이번 동계올림픽 땐 독점중계의 시청 만족도 저하 문제에도 시선이 향했다. 지난 2월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최가온이 금메달을 차지, 우리 선수단의 첫 금메달 획득 기록이 작성됐지만 정작 이 순간은 JTBC로 생중계되지 않았다. 당시 쇼트트랙 경기를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JTBC는 최가온의 결승 1차 시기까지만 보여주고 쇼트트랙 경기로 중계를 전환했다. 이후 최가온의 경기는 JTBC스포츠에서 생중계됐다. 이어 최가온이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JTBC는 자막 속보로만 전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JTBC 측은 "최가온 선수의 경기를 JTBC와 JTBC스포츠에서 동시 생중계했으나, 쇼트트랙 경기가 시작됨에 따라 JTBC는 쇼트트랙 중계로 전환하고 JTBC스포츠에서 하프파이프 중계를 이어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JTBC가 쇼트트랙 중계 도중 다시 최가온 선수 경기로 전환할 경우 쇼트트랙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은 없어지게 된다. 쇼트트랙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강세 종목이자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만큼 시청자 선택권을 고려해 중계를 유지했다"고 부연했다. 그런데 JTBC스포츠는 JTBC와 비교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즉 시청자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채널이다. 특히 채널번호(대구경북 기준)가 JTBC는 10번대 위주이지만 JTBC스포츠는 87번부터 977번까지 멀리 떨어져 있는 등 일부 시청자들이 최가온의 경기를 계속 보기 위한 채널 전환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는 KBS가 평소 대등한 인지도의 1·2TV 채널을 십분 활용해 여러 경기를 동시중계하고 유연하게 전환하는 노하우와 비교됐다. 최가온의 경기를 화면 분할이나 같은 화면 내 미니화면으로라도 동시중계하고, 경기 종료 후 연달아 지연중계를 편성하는 등 운용의 묘가 부재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시청자 입장에선 중계 방송사가 여럿일 경우 가령 어느 한 곳이 실수를 저질러도 신속히 채널을 돌려 시청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때 방송사끼리 일종의 보험이 되는 순기능이 형성된다. 경쟁 구도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시청 만족도에 보완이 이뤄지는 셈인데, 이런 효능이 독점중계에선 나올 수 없다. ◆李 "제도 개선"→여당 법 개정 착수 최가온 경기 중계 문제 이후로도 독점중계를 타깃으로 한 지적이 쏟아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의견을 개진해 이슈에 불을 더욱 지폈다. 그는 대회 종료 이틀 뒤였던 지난 2월 24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우리 선수들의 투지와 활약에도 과거 국제대회와 비교하면 사회적 열기가 충분히 고조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며 "국제적 행사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접근성을 폭넓게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 이유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JTBC 독점중계 문제를 꼬집은 발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각 여당에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이달 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현안 질의에서 "JTBC가 현행 방송법상 유료방송 가입 가구가 90% 이상이라는 이유로 '보편적 시청권' 요건을 충족했다고 주장했으나 유료방송은 매달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유료방송 시청률 90% 이상→보편적 시청권 충족 해석→독점중계 가능'이라는 현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주요 스포츠 이벤트를 무료방송에서 볼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하는 영국 '리스티드 이벤트'와 호주 '안티 사이포닝' 제도를 사례로 들어 "시청권 범위를 무료방송 중심으로 전면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맡은 한정애 국회의원은 올림픽·월드컵 등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이달 16일 밝혔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고시 국민관심행사 중계방송권자가 지상파 방송사업자 등에게 중계방송권 제공 요청을 받았을 때,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가 중계권 관련 분쟁 조정 권한을 갖는 조항도 들어갔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JTBC가 따낸 중계권을 지상파 방송사들에 재판매하는 협상이 결렬돼 62년 만에 처음으로 지상파 중계 없이 진행됐다. ◆코리아풀·사전승인제 강화해야 이달 20일엔 방미통위가 개막까지 2개월여 남았지만 여전히 중계권 협상 난항이 지속 중인 북중미 월드컵을 콕 찝어 보편적 시청권 보장 방안을 위한 공개간담회를 개최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 국민에게 듣는다'는 제목으로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행사에선 결국 방송업계의 힘겨루기 결과인 셈인 중계권 협상 결렬이 곧 국민들의 보편적 시청권 훼손으로 이어진 걸 두고 방송사 공동협력 체계(코리아풀) 강화와 사전 승인제 도입 등의 개선책을 거론했다. ◆KBS 패럴림픽 중계권 파격 개방 지상파를 통한 무료 시청 확대와 함께 온라인·디지털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간담회에서 나왔는데, 이는 앞서 KBS가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 독점 중계권을 다른 지상파는 물론 다양한 매체에 개방한 사례와 궤를 같이 한다. 패럴림픽은 신체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동계·하계 대회 모두 올림픽 종료 직후 같은 개최지에서 이어진다. 그래서 올림픽을 중계한 방송사 인력이 그대로 남아 패럴림픽 중계도 맡는 편이다. 그런데 JTBC는 이번 동계패럴림픽 중계권은 사지 않았다. 대신 중계권을 독점 확보한 KBS는 1·2TV와 유튜브 등 보유 채널을 최대한 활용해 대회를 중계했다. 아울러 다른 매체의 영상 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뒀던 관행에서 벗어나 유튜브 업로드를 비롯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쓸 수 있도록 했고, 지상파를 포함해 뉴스 전문 채널과 종편 등 다양한 매체에 주요 경기 영상과 인터뷰를 제공했다. 마침 우리 선수단은 금 2·은 4·동 1로 종합 13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둬 그만큼 많은 소식이 쏟아졌다. 이같은 파격적 독점 중계권 개방은 JTBC의 독점중계를 에둘러 비판한 맥락으로 해석됐다. KBS는 "수익성보다는 상대적으로 보도에서 소외돼 온 패럴림픽의 위상을 높이고, 참가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널리 알리겠다는 공영방송의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수신료의 가치'를 표방하는 KBS의 이러한 대승적 결단에 정부·정치권의 제도 개선 잰걸음이 더해져 관심 여론을 증폭, JTBC와 지상파 방송사들 간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어 KBS가 동계패럴림픽 중계권을 전격 개방할 때 드러낸 마음가짐을 철회하지 않고 월드컵 때도 지속하면, 관행이었던 지상파 과점중계의 한계 역시 극복해 온라인·디지털 환경 기반 보편적 시청권을 대폭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26-03-27 13:00:00
이적과 김진표로 구성된 2인조 패닉이 1집을 발표한 1995년 10월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이 발매된 때이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타이틀곡 '컴백홈'으로 KBS 음악프로그램 가요톱텐 1위를 4주 연속 기록해 골든컵을 차지하는 동안, 패닉의 타이틀곡 '아무도'는 제목마냥 아무도 모르는 곡으로 묻혔다. ◆반년 뒤 역주행 '달팽이' 그러다 반년이나 지난 1996년 4월 역주행으로 가요톱텐 1위를 차지한 곡이 있다. '달팽이'다. 홍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이 곡은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현대인의 지친 일상을 느리고 작고 하찮은 몸집의 달팽이에 비유한 노랫말로 많은 공감을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다만, 이런 감동을 주는 곡들만 가득할 줄 알고 음반을 사서 들어봤더니 놀라 당황해 하는 경우도 이어졌다. 일단 앨범 커버부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유행한 '엽기' 코드를 한 발 앞서 활용한듯한 두 멤버의 장난스러운 표정들로 채워져 있다. 못 뜬 타이틀곡 아무도는 이별의 후유증을 두통과 숙취에 비유한듯한 왁자지껄한 펑키리듬의 곡이다. 이런 스타일을 이적은 이후 김진표와 헤어져 버클리 음대 출신 기타리스트 한상원·피아니스트 정원영 등과 결성한 6인조 밴드 긱스에서 더욱 짙게 이어나간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는 김진표가 사회 비판 랩으로 채운 곡이다. 역시 이후 김진표가 JP라는 이름의 래퍼로 나서게 된 시발점이다. ◆소수자 차별 꼬집은 '왼손잡이' 달팽이 다음으로 인기를 누린 '왼손잡이'는 두 사람이 애초 세상에 던져 흔들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잘 보여주는 곡이다.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 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을 오래된 차별 대상인 왼손잡이에 비유했다. 비슷한 시기였던 1995년 9월 신해철이 이끌던 록 밴드 넥스트가 동성동본 금혼법을 비판한 록발라드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내놔 화제가 된 것과 닮은 사례다. 또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에서 가출 청소년 문제를 다뤄 실제 집으로 복귀시키기도 한 컴백홈, 원래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혁명 내지는 체제전복 주장으로 표현한 가사가 담겼지만 사전심의 과정에서 공연윤리위원회가 지적하자 아예 가사 전체를 삭제하는 반발로 더욱 유명세를 탄 '시대유감' 등도 함께 묶어 90년대 중반을 지나던 한국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인재(人災)가 연이어졌고, 당시 신문과 TV에선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연일 뉴스로 다뤘다. 이에 대중가요가 즉각 반응한 것이다. 왼손잡이의 노랫말을 변주해 요약할 수 있다. "왼손잡이인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세상을 망치는 건 부실공사를 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너희들이야." 왼손잡이로 대표되는 패닉의 사회 비판 성향은 1년 뒤 2집 '밑'(1996)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제주도의 푸른 밤'과 페어링? 패닉의 1집은 한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중 하나인 들국화 멤버 최성원이 데모 테이프를 들고 온 이적을 알아보고 전체 프로듀서를 맡아 정성껏 매만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서 가장 뜬 곡 달팽이는 이적이 작사·작곡 모두 담당하긴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7년 전 최성원이 들국화가 아닌 솔로로 처음 발표한 곡 제주도의 푸른 밤(1988)과 서사가 묘하게 연결된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현실은 시간 순으로 인과를 형성하지만, 예술세계에선 시간을 뒤집어도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요즘 현대인들은 여전히 달팽이처럼 살기 때문에, 이상향은 여전히 별이 빛나는 푸른 밤 제주도를 닮은 낙원일지도.
2026-03-19 12:00:00
[시사뒷담] 4년 전 민주 대尹투쟁 SNS 랭킹 1위 진성준→이번엔 국힘 대明투쟁 조사
2004년 미국에서 시작된 SNS 페이스북은 이제 한국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태계가 됐다. 정치인들에겐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즉각 폭탄 발언을 던질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커뮤니케이션 무기다. 또 정치인들끼리 실시간 설전을 벌여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기도 한다. 동료 의원들과 스크럼을 짜 같은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공유할 경우, 오프라인에서 함께 피켓을 드는 것보다 더 강력한 여론전을 구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선거철엔 더욱 과열되는 정치 플랫폼이 바로 페이스북이다. 이와 관련한 똑닮은 조사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 진영을 상대로 4년 간격을 두고 벌어졌다. ◆페북 잘하면 연임 가능성 상승? 이재명 대통령 지지자로 알려져 있는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은 20대 대선 3개월 전이었던 2021년 12월 2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당시 21대 국회) SNS 활동 순위'를 페이스북으로 공개했다. 그는 "2021년 11월 17~2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나온 개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공식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계정의 게시물 수를 모두 합해 순위를 매겼다"면서 "이재명 후보 선거운동은 물론, 글 중에 이재명 후보의 사진 또는 단순 언급된 것까지 포함시켰다. 또한 이재명 후보가 언급되지 않더라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한 비판과 지적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김용민 이사장은 "단 한 건도 글을 올리지 않는 국회의원들의 개선 노력을 부탁드린다"며 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단결을 호소했다. 베스트 21명 의원은 이랬다. ▷진성준 ▷김남국 ▷조정식 ▷강선우 ▷소병훈 ▷양이원영 ▷문정복 ▷박주민 ▷최기상 ▷윤후덕 ▷김영진 ▷윤호중 ▷이용빈 ▷이탄희 ▷박용진 ▷고민정 ▷송영길 ▷강병원 ▷임종성 ▷장경태 ▷정청래 순이었다. 워스트 80명 의원도 가렸는데, 그 중 '단 한 건도 글을 올리지 않은 의원' 17명은 ▷김민기 ▷김민철 ▷김수흥 ▷김정호 ▷김진표 ▷맹성규 ▷박광온 ▷송갑석 ▷송기헌 ▷안규백 ▷윤영찬 ▷이형석 ▷인재근 ▷전혜숙 ▷조응천 ▷한병도 ▷홍성국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베스트 의원 21명 중 다음 22대 총선에 공천되고 본선에서도 승리한 경우가 62%(13명)에 달한 것과 비교, 워스트 의원 17명 중 22대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례는 29%(5명)에 불과했다.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걸까? 일종의 '줄 서기' 프레임을 적용할 수도, 페이스북 활동이 활발한 만큼 오프라인에서 민심을 얻는 활동 역시 잘 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실은 별 상관 없는 요소일 가능성도 있다. 이 조사 15위에 랭크됐던 박용진 당시 의원은 비교적 높은 순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 같은날 페이스북을 통해 "스스로를 권력화하고 근거없이 비난하게 하고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고 조사 및 순위 공개 행위에 대해 비판하면서 "SNS가 아니어도 의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후보와 당의 승리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張 발언 받아 본지도 전수조사 4년 뒤 매일신문은 "국민의힘이 SNS에 이재명 대통령 비판하는 글 하나씩만 올려도 하루에 메시지 107개가 나온다. 그러면 우리 지지자도 '아 이제 국민의힘이 제대로 싸우네'라고 반응할 것"이라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인터뷰(올해 2월 16일) 발언을 매개로 국민의힘 의원 107명의 페이스북 대여투쟁 현황을 조사했다. 앞서 김용민 이사장 측이 대선 3개월 전에 전수 조사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6.3 지방선거 석 달 전에 전수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지난 7일 자 '[전수분석] 국힘 최고 파이터는 주진우…꼴찌는 누구?' 기사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2025년 6월 4일부터 올해 2월 13일까지 254일 간 국민의힘 의원 107명이 자기 명의로 페이스북에 남긴 게시글 2만5천801건을 전수 분석해 순위를 매겼다. 상위 20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주진우 ▷박수영 ▷김민전 ▷박성훈 ▷최수진 ▷송언석 ▷김미애 ▷나경원 ▷최보윤 ▷조배숙 ▷유상범 ▷김승수 ▷최은석 ▷김장겸 ▷이상휘 ▷이종배 ▷강선영 ▷김소희 ▷박정훈 ▷서명옥 1위를 차지한 주진우 의원이 조사 기간 페이스북에 올린 787건의 게시물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 비판 등 대여투쟁 내용은 673건(86%)이었다. 조사의 계기가 된 장동혁 대표는 27위를 기록했다. 이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6.3 지선 성적표나 향후 23대 총선(2028년 4월 12일 예정) 결과 등과도 엮이며 향후 더욱 풍부한 분석을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그때까지 당이 회생에 성공해 보수 대표 제1야당의 자리를 굳건히 해야 쓰임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김용민 이사장과 매일신문이 잇따라 닮은 형식의 선례를 만든데 따라, 이를 정당 등 정치권에서 벤치마킹할 여지도 생겼다.
2026-03-19 12:00:00
[금주의 이슈] 대한민국은 음주운전 꼼수·상습범과의 전쟁중
3월 들어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키워드가 '음주운전'이다. 최근 배우 이재룡이 음주운전 후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 및 일명 '술타기' 수법을 썼다는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이돌 '위너' 출신 남태현은 징역형이 구형돼 수감 위기에 놓였다. 또 지난 2월 음주운전으로 다른 차량을 연달아 들이받아 모두 15명의 부상자를 만들며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임명 6개월 만에 직권면직된 김인호 전 산림청장이 불구속 송치됐다는 소식이 이달 업데이트됐다. 아울러 봄 행락철을 맞아 경찰이 전국 각지에서 음주운전 집중단속에 나섰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도 기사로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10만명이 넘는 음주운전자가 적발된다. 그나마 점점 감소하고 있는 숫자인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습 음주운전이 고질병이다. "음주운전의 왕국이냐"고 조롱 받을 자격(?)이 충분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끊이지 않는 유명인 음주운전 최근 화제의 인물이 된 이재룡과 남태현 둘 다 음주운전 재범 이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꼼수 의혹과 죄질불량 맥락도 더해져 비판 여론을 더욱 돋우는 모습이다. 이재룡은 이달 6일 오후 11시쯤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청담역 인근에서 차를 운전하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후 달아나 3시간정도 후 지인 집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처음엔 "지인 집에서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던 이재룡은 "소주 4잔을 마시고 차를 몰았고, 사고 당시 중앙분리대에 살짝 접촉한 줄 알았다"고 뒤늦게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이재룡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0.03~0.08%)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면서 그가 추가로 술을 마셔 음주 측정에 혼선을 주려 했다는 술타기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음주운전자가 도주하는 등의 경우에 대비, 마신 술의 양·알코올 도수·체중 등을 바탕으로 시간 경과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을 쓴다. 그런데 술타기 수법을 쓰면 음주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수치 파악이 힘들어진다. 음주운전자의 몸이 증거로 채택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이를 통해 음주운전 혐의 자체를 모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이끌어낸 판례도 여럿이다. 이재룡 측은 "사고 발생 전부터 예정돼 있던 약속에 참여한 것이다. 음주 측정 방해 목적으로 추가 음주를 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13일 경찰은 이재룡을 음주측정방해 혐의로 추가 입건했고, 결국 이재룡이 의혹을 인정한 데 따라 18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술타기 꼼수에 재범도 서슴없이 바로 '김호중 방지법'을 적용한 것이다. 2025년 6월부터 시행 중인 도로교통법 44조 5항에서는 음주 측정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술이나 의약품 등을 사용하면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지난 2024년 5월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후 달아나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구입한 걸 두고 술타기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면 도망가는 게 더 유리하다'는 취지로 모방이 잇따라 국민적 지탄이 집중되자, 같은해 11월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이다. 연예계 유명한 주당으로 꼽히는 이재룡은 실은 23년 전에도 음주운전을 저지른 바 있다. 행동과 장소 등이 이번과 꽤 닮았던 터라 시선이 향한다. 그는 2003년 3월 21일 강남구 청담사거리 인근에서 차를 몰다 운행 중이던 택시와 추돌했다. 당시 이재룡은 차를 몰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음주측정을 거부하다 서울강남경찰서로 연행된 후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했다. 이때도 지인들과 술을 더 마시기 위해 이동하던 중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남태현은 지난해 4월 27일 서울 강변북로 경기 일산 방향 동작대교 인근에서 면허취소 기준(0.08%)을 크게 초과한 혈중알코올농도 0.122%의 상태로 운전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도로 제한 최고속도(시속 80km)를 훌쩍 넘긴 시속 182km까지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남태현은 다치지 않았고, 다행히 다른 인명피해 역시 없었다. 그 또한 재범이었다. 남태현은 지난 2023년 3월 8일 새벽 강남구 한 주택가에서 음주 후 차를 8m정도 운전해 적발된 바 있다. 이어 2024년 1월 마약 투약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 집행유예 기간 중 음주운전을 또 저지른 것이다. 이에 검찰은 이달 12일 남태현의 음주운전 사건 결심공판에서 상습적 음주운전과 죄질불량 등을 이유로 징역형을 구형한 맥락이다. ◆적발 감소했지만 상습이 난제 술타기 같은 꼼수를 막는 법이 도입돼 모방범죄를 막고, 도마에 올랐던 유명인이 법적 처벌을 받는 과정이 널리 알려지는 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기에 사후약방문임에도 반길 일이다. 그런데 경찰 등 당국이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하는 난제가 상습 음주운전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음주운전 초범(1회) 적발 건수는 2010년 17만9천86건에서 2025년 6만81건으로 15년 사이 3분의 1 규모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재범(2회 이상)부턴 딴판이다. 총 건수는 감소 추세지만 다회 적발로 갈수록 병폐 수준이다. 7회 이상 상습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2010년 478건에서 2025년 935건으로 되려 2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6회도 903건에서 1천71건으로 늘었고, 5회는 3천118건에서 2천516건으로 소폭 줄어 제자리 수준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초범 단속 건수는 특히 2019년 '윤창호법' 시행 시기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면서도 "2회 이상 재범자는 전체 감소세에 비해 하락 폭이 완만하다"고 지적했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자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법정형 수준을 1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높인 것을 비롯해 ▷음주운전 초범 기준(2→1회) ▷적발 시 면허취소 기준(3→2회) ▷음주운전 혈중알코올농도 기준(최저 0.05% 이상~최고 0.2% 이상→최저 0.03% 이상~최고 0.13% 이상)을 강화했다. ◆50대男 상습 최다 골칫덩이 지난해(2025년) 2회 이상 상습 음주운전자 4만6천556명을 성·연령별로 분류했더니 남성(4만3천76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50대 남성(1만2천798명)이 제일 많았고, 40대 남성(1만2천197명)과 60대 남성(7천883명)이 뒤를 이었다. 젊은층은 초범 적발 후 갱생해 재범률이 급격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30대 남성은 초범이 1만4천111명이고, 2회 이상은 그 절반 아래 수준인 6천529명이었다. 반면 50대 남성은 초범(7천962명)보다 2회 이상(1만2천798명)이 더 많은 부류다. 7회 이상의 경우도 50대 남성(360명)이 1위였고, 60대 남성(296명)과 40대 남성(184명)이 뒤따랐다. 7회 이상 사례의 90%를 중장년들이 차지한 것으로, 20대 남성이 6명이고 30대 남성은 24명인 것과 대비된다. 재범을 저지른 배우 이재룡(62)과 재범 방지 대상인 김인호(62) 전 산림청장 둘 다 60대다. 계속 적발돼도 도로 위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음주운전을 서슴지 않는 인생을 이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을 포함한 음주운전자들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024년 138명에 달했다. 2015년 583명에서 크게 감소한 것이긴 하나, 죽지 않아도 됐을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음주운전자들의 '예비살인' 방종을 매섭게 노려보게끔 만든다. ◆시동잠금장치 효과 낼까? 이에 윤창호법과 김호중 방지법 등 관련 법이 도입되고 있으며, 음주운전자들이 꾸준히 누릴 수 있었던 '특별사면' 길도 일찌감치 막혔다. 2009년 광복절 특사 때만 해도 5년 내 2회 미만 음주운전자는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그랬던 게 2015년 광복절 특사에서 2회 이상 상습 음주운전자는 제외했고, 2016년 광복절 특사를 시작으로 초범도 제외하고 있다. 그럼에도 숙지지 않는 음주운전을 근절코자 물리적 수단도 전격 도입된다. 골칫거리인 상습 음주운전자들이 첫 타깃이다. 올해 10월부터 5년 내 2회 이상 음주로 적발된 운전자는 운전면허 재취득 시 본인 소유 차량에 '시동 잠금 장치'를 의무설치해야 한다. 운전대에 설치된 음주 측정기로 음주 여부를 측정해야 운전을 할 수 있다. 함께 설치된 카메라는 운전자 확인 테스트에 쓰인다. 최대 300만원이 드는 설치 비용은 운전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2026-03-19 11:30:00
[금주의 이슈] "트럼프 막내아들 전쟁터 보내라"…군 복무 노블레스 오블리주 관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이게 빈번히 거론되는 분야가 '군(軍) 복무'다. 우리나라처럼 병역 의무가 있는 국가에서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재벌가 등 고위층 자식이 병역을 피하는 꼼수를 부리면 즉각 날카로운 지탄이 향한다. 모병제를 택한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전쟁을 치를 때 고위층 자녀를 전선에 내보내는 게 유서 깊은 미덕이자 일명 '까방권'(비난 금지)을 얻는 처세술이다. ◆美 대통령 아들 참전 전통 "배런은?" 최근 눈길이 쏠린 대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내아들 배런 트럼프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공격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미군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SNS를 중심으로 배런의 입대를 촉구하는 'SendBarron'(배런을 보내라) 'SendBarronToWar'(배런을 전쟁터로 보내라) 등의 해시태그(#)가 확산한 것. 여기엔 미군 군복을 입은 배런의 AI(인공지능) 생성 및 합성 이미지가 곁들여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전쟁이 정당하다면 왜 대통령 아들은 참전하지 않는가?"라고 물으며 고위층 자식인 배런과 순직한 미군 청년들의 목숨값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배런의 나이는 19세다. 미군 입대 가능 나이는 17~34세. 전통이 있으니 형성된 여론이다. 우선 미국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들이 1차 대전에 참전했다. 이들 가운데 4남 쿠엔틴은 1918년 7월 프랑스에서 전투기를 몰다 독일군에 격추돼 20세로 생을 마쳤다. 이어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건강이 나빠져 반년 뒤인 1919년 1월 사망했다. 2차 대전 땐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 모두 전장으로 갔다. 이 가운데 장남 제임스 루스벨트는 해병대 소속으로 1942년 8월 태평양 마킨섬 일본군 기지 기습 작전에 참여했다. 그런데 당시 미군은 대통령의 아들이 포로가 되거나 전사할 경우 일본군이 악용할 것을 우려, 그를 작전에서 배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되려 제임스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 아버지의 지시로 작전에 뛰어든 제임스는 공을 세워 훈장을 받았다. 이어 지금 47대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으니, 역사를 아는 미국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들 배런을 주시하고 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미국을 강대국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지도자인데, 정작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는 뭐하고 있느냐는 질문의 구성 성분 중 하나가 가족의 군 복무로 입증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셈이다. ◆왕관 수여 조건 '젊을 때 군 복무' 영국 왕실은 내부 규율을 바탕으로 군 복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철저히 실천하는 경우다. 남녀 가리지 않고, 전시와 평시도 구분하지 않는다. 꽃다운 젊은 시절을 기꺼이 군에서 보내게 한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공주 때였던 2차 대전 및 그 이후 7년 동안(1945~1952) 영국군 차량정비·수송 장교로 복무한 사실이 유명하다. 왕위를 이은 아들 찰스 3세 역시 왕세자 때 7년 간(1971~1977) 영국 해군에서 복무했다. 찰스 3세의 동생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는 왕자 시기였던 1982년 해군 헬기 조종사로 포클랜드 전쟁 최전선을 누볐다. 찰스 3세의 아들,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2세의 장손 윌리엄 왕세자도 2006년 영국 육군사관학교 입학 후 2013년 전역하기까지 주로 구조헬기 조종사로 일하며 156회 작전에서 149명을 구조했다. 윌리엄 왕세자 동생 해리 왕자는 2007년부터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간 전쟁에 투입됐다. 이에 탈레반이 선전효과를 노리고 2012년 그가 주둔하던 기지를 공격해 많은 사상자가 나오자 어쩔 수 없이 귀국했지만, 2015년까지 군 복무를 수행했다. ◆유럽 왕실 드레스 대신 군복 '女풍' 유럽 각국 왕실은 근래 공주는 물론 왕비까지, 여성들의 솔선수범 군 입대로 국민들에게 국방과 안보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5년차에 접어들고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매개로 이어오던 미국과의 군사 공조가 흔들리는 게 배경이다. 비상 시 남성은 물론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를 대비한 포석도 된다. 네덜란드 왕세녀 카타리나 아말리아(22) 공주는 지난 1월 기초군사교육을 마치고 상병 계급장을 달았다. 그는 현재 암스테르담대 법학과 학업과 국방대학 2년 군사훈련 과정을 병행 중이다. 이에 더해 어머니인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54) 왕비가 지난 2월 네덜란드 육군 예비군에 입대해 사격 등 단기 집중 군사훈련을 소화했다. 아말리아 공주의 행보는 지난해 국방대학 지원자를 2배 가까이로 늘려 아말리아 효과로 불린다. 막시마 왕비의 입대는 제한 연령 55세에 1년 앞서 이뤄진 것으로, 네덜란드 민영방송 RTL은 "상징적 가치가 매우 크다. 중장년층도 예비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강력한 홍보 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르웨이 왕위 계승 서열 2위 잉리드 알렉산드라(22) 공주는 2024~2025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최전방에서 이등병 계급을 달고 장갑차 사수로 복무했다.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여공(왕위 계승 서열 1위) 레오노르(20) 공주는 이미 10대 때인 2023년부터 육·해·공 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으며 드레스보다 군복이 더 어울리는 여왕 수업에 임하고 있다. ◆한국 재벌가 솔선수범 주목 실은 비슷한 사례가 우리나라 재벌가에서 나와 화제가 된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차녀 최민정 씨가 지난 2014년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입대, 소말리아 해역 청해부대에 파병되는 등 해군 장교로 복무했던 것이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장남 이지호 씨 역시 지난해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해 복무 중인데, 선천적으로 얻은 미국 국적을 포기해 시선이 향했다. 일반 병 복무 시 두 나라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고 해외 장기체류시 아예 군 면제를 노릴 수 있었지만, 미국 시민권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장교 복무를 선택한 데 큰 의미가 부여됐다. 이후 최태원·이재용 회장 둘 다 반도체 호황으로 국가 경제를 일으키는 新(신) 산업 역군으로 주목된 걸 감안하면, 자녀들의 군 복무는 소비자이자 개미 주주이기도 한 많은 국민들을 기업을 응원하는 우군으로 만드는데 적잖게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병역 꼼수 흑역사 '석사장교' 대한민국은 6.25 전쟁 때 제임스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이 함께 참전한 아들을 잃으면서도 퇴역 직전까지 분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를 포함해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러 온 미군 장성의 아들들이 142명이나 되고, 그 중 35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사회 고위층이 자식에게 군 복무 특혜를 주는 행태를 꾸준히 보이며 역사에 먹칠을 했다. 군부정권 시기였던 1982년 도입돼 1991년 폐지된 '석사장교'가 대표 사례다. 석사 이상 학력 지원자들 중 시험으로 선발하는 장교라서 붙은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특수전문요원'. 무슨 대북특수작전이라도 펼칠 것 같지만, 실은 약한 강도의 군사교육을 받고 여행까지 곁들인 전방 체험을 하는 게 전부였다. 복무 기간은 단 6개월. 이 제도 도입기엔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전재국 씨가, 폐지 직전엔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현 주중대사가 혜택을 얻으면서 꼼수를 아예 제도로 만든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석사장교 출신 50~60대가 현재 사회 각계에서 활동 중이다. 당시 이 제도가 좀 이상하다고 의식했건 그러지 못했건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건, 앞으로 선거 또는 고위 공직에 나서거나 유명해져 인기인이 되려면 진땀 해명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2026-03-12 12:00:00
[시사뒷담] 정원오 말고 더 있다? 지선 앞 너도나도 '리틀 이재명'
6.3 지방선거 공천 시즌에 여당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리틀 이재명' 수사가 난립하고 있다. 타칭과 자칭 가리지 않으면서 마치 유통업계의 '라이선스 생산' 같다는 비유도 하게 만든다. ◆정원오만? 황명선發도 최근 리틀 이재명이라는 표현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에게 가장 잦게 붙고 있다. 일종의 사전 마케팅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14일 뉴스1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저를 리틀 이재명이라 불러주시는데 굉장히 영광스럽다"고 타칭에 대한 반응을 밝히더니, 같은해 12월 4일 시사인 유튜브 출연 땐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성남시장을 하실 때 주민들께 굉장한 효능감을 줬다. 삶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지역이 바뀌는 거, 그런 측면에서 성동구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효능감을 느낀 주민들께서 제게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데 (이 대통령과의) 차이라고 하면 좀 사이즈 차이가 있다"면서 "저는 리틀 이재명이다"라고 자칭도 구사했다. 그런데 리틀 이재명이 이번에 처음 나온 별칭은 아니다. 앞서 자타공인 '찐명'(진짜 이재명계)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붙었다. 그는 충남 논산시장으로 있던 지난 2022년 8회 지선 때 충남도지사 경선에 도전하며 "많은 분들이 저한테 '충남의 이재명' '리틀 이재명'이라고 이야기를 하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어 요즘 황 최고위원은 자신이 받았던(또한 스스로 가리켰던) 수식을 다른 지선 도전자들에게 붙이는 흡사 '감별사'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31일 문정우 전 충남 금산군수(금산군수 출마) 출판기념회를 방문해 "뚝심과 진정성, 세일즈 등 제가 신뢰하는 분이다. 리틀 이재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튿날인 2월 1일엔 전문학 전 민주당 당 대표 특보(대전 서구청장 출마) 출판기념회에 가서 "이 대통령이 직접 '전문학은 리틀 이재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치분권을 통한 기본사회라는 철학과 실천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2월 7일엔 박정현 현 충남 부여군수(부여군수 출마) 출판기념회를 찾아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한 것처럼 기본사회와 더불어 사람사는 부여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진짜 리틀 이재명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지난 1월 17일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송기섭 충북 진천군수(충북도지사 출마) 책 발간 행사(출판전시회) 방문을 앞두고 "리틀 이재명으로 불리우는 두 새로운 리더의 중요한 만남"이라는 똑같은 문구가 포함된 보도자료 인용 뉘앙스의 기사 3건이 나오기도 했다. 또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전북도지사 출마선언문에서 "이 대통령이 정치적 롤모델이다. 전북도지사로 결정된다면 리틀 이재명이 되겠다"고 표현했다. ◆남발은 금물…李 진짜 의중은? 상표권(?) 주인인 셈인 이 대통령은 황 최고위원 등에게 이런 라이선스 생산을 허가한 걸까. 물론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대한민국에선 그런 허락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정치 수사다. 다만, 애초 명품 브랜드였던 프랑스 피에르가르뎅이 세계 140개국에 800개가 넘는 라이선스를 허용했다가(우리나라에선 수건·우산·양말로 참 많이 접한 상표) 브랜드 가치가 폭락했던 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이 대통령 이름값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리틀 노무현'이라고 하면 경남 남해군수를 하다 노무현 정부 행정자치부 장관에 발탁됐던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만 가리키는 것과도 대비된다. 리틀 이재명은 이번 지선을 앞두고 남발 상태인데다 실은 황 최고위원에 앞서서도 쓰였다. 이헌욱 한국부동산원 원장이 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때부터 그렇게 알려졌다. 정작 이 대통령은 직접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1명만 언급한 모습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8일 SNS X(구 트위터)에 성동구가 주민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 92.9%의 긍정평가를 받았다는 기사를 공유, "정원오 구청장님이 잘하기는 잘하나 봅니다. 저의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명함도 못 내밀듯…ㅋ"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정원오 구청장은 이 글을 재인용해 "원조 '일잘러'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다니…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한편, 이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갈등 구도에 놓는 '명청대전' 프레임은 여전히 지속 중이지만, '리틀 정청래'라는 표현은 선거판에서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딴 건 몰라도 이 싸움 만큼은 이 대통령이 압도하는 모양새다.
2026-03-05 11:50:00
[커버스토리] 캐릭터 전성시대, 지자체 캐릭터의 미래는?
출범 30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지방자치 만큼 익숙하지 않은 존재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마스코트 캐릭터(이하 지자체 캐릭터)다. 상당수 지자체가 구색으로만 갖추기에 주민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단체장이 바뀌면 교체되기 일쑤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본래 목적인 상징성을 담는 걸 넘어 캐릭터로 수익과 부가 효과를 내고자 열심이다. 캐릭터 소비가 퍽 늘어난 시대다. 뽀로로 다음 아기상어 다음 티니핑 등 아이들을 공략하는 캐릭터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MZ세대는 좋아하는 아이돌·게임·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가방에 키링(열쇠고리)으로 주렁주렁 달기 바쁘며, 어른들도 어린 시절 추억의 캐릭터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에 기업들은 제품과 서비스에 인기 캐릭터를 쓰려고 경쟁 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IP(지적재산권) 시장 규모는 2005년 2조7000억원대였던 게 20년이 지난 2025년 추정 16조2000억원대로 6배로 커졌다. 그만큼 캐릭터 없인 못 사는 세상이 됐다는 방증일텐데, 지자체 캐릭터가 비집고 들어가 기회로 잡을 순 없을까? ◆지역 '홍보대사'→돈 버는 '영업사원' 지자체 캐릭터는 1995년 지방자치제도 시행 후 주로 지역 위인·특산품을 모델로 삼거나 설화·민담을 아이디어로 활용해 하나 둘 탄생했다. 붐이 일어난 건 2000년대부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00~2005년에만 108개 지자체가 175개 캐릭터를 개발한 걸 시작으로 현재 17개 광역자치단체 및 243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광역시·도는 전라북도를 제외하고, 시·군·구는 서울 강남구와 노원구·대전 동구(구 캐릭터 대신 18개 동 마스코트 사용)·강원 강릉시(홍길동 캐릭터를 보유했으나 2009년 홍길동 고향을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인 전남 장성군에 패소해 상표등록 취소) 등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다 갖추고 있다. 그러다 처음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지자체 캐릭터 사례가 나왔다. 2011년 만들어진 경기 고양시 캐릭터 고양고양이다. 한 공무원이 고양시 지명에서 착안해 만든 고양이 캐릭터와 SNS에서 말끝마다 "~고양"이라고 붙이는 귀여운 말투를 두고 관공서 전시행정 이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큰 호응이 나왔고, 이에 2013년부터 원래 고양시 캐릭터 코코를 대체했다. 지자체 캐릭터가 스스로 갇힌 '틀'일 수 있는 의미(지역 소재)보다 재미(고양시와 같은 발음인 고양이)에 집중하니 효과가 커진 셈이다. 비슷한 사례는 서울 양천구에서도 나왔다. 원래 원구화(구의 꽃) 해바라기를 활용한 해누리가 있었는데, 지도상 양천구 경계선이 마치 강아지처럼 생긴 게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고, 이게 그대로 2017년 양천구 캐릭터 해우리로 개발됐다. 해누리와 공동 캐릭터이자 양천구 반려견 축제 마스코트로 쓰이고 있다. ◆펭수·日쿠마몬 롤모델로 떠올라 2019년엔 지자체는 물론 공공기관과 사기업에도 큰 자극을 주는 사례가 나타났다. 지자체 캐릭터는 아니다. EBS(교육방송) 캐릭터 펭수다. 기존 EBS 캐릭터들과 달리 성인을 타깃으로 한 유머 코드로 전국적 인기를 얻으며 광고 모델·협찬·상표권 판매·라이선스 상품(굿즈) 출시 등으로 2019년 11월부터 2020년 7월까지 9개월 동안 10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펭수를 계기로 지자체 캐릭터에 대해 지역을 홍보하는 기본 임무에 더해 지역경제 살리기까지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면서 언론과 학계가 재주목한 사례가 일본 구마모토현 캐릭터 쿠마몬이다. 2010년 구마모토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들어져 관광상품·교통서비스·테마파크 등 각종 지역경제 요소와 연계돼 영업사원 역할을 톡톡이 하고 있다. 2011~2023년 누적 매출액이 1조4000억엔에 달한다. 한국 돈으로 연 1조원대 매출을 올린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2020년 다른 상업 캐릭터들을 제치고 일본 캐릭터 호감도 1위도 차지했다. 쿠마몬은 구마모토현 공무원이라는 의인화 설정이 특징인데, 남극에서 온 EBS 연습생이라는 설정이 인기 요소였던 펭수가 벤치마킹한 맥락이다. ◆예산낭비·부실관리·교체문제 도마에 스타가 된 펭수를 따라하고 엄청난 실적을 올리는 쿠마몬을 목표로 삼았지만, 국내 지자체 캐릭터들은 주목할 성공 사례를 내놓지 못했다. '공공' 내지는 '복지부동'의 관성 탓일까? 전북 전주시는 캐릭터 관리 문제로 도마에 올랐다. 신유정 전주시의원은 지난 1월 29일 의회 자유발언에서 "난립한 캐릭터를 정리해 전주의 얼굴을 하나로 정비해야 한다"며 전주시 캐릭터 맛돌이·멋순이를 비롯해 시·출연기관 등 11개 이상 공공 캐릭터를 언급했다. 대부분 인지도가 미미하거나 활용도가 낮다는 비판이었다. 신 의원은 캐릭터 개발 용역과 사업에 4억5천만원이 투입된 점을 가리키며 "일부는 저작권이나 상표권조차 확보 못했다. 활용 전략 없이 필요할 때마다 개별 용역으로 제작하다 보니 예산 투입만 반복됐다"고 지적, "기존 캐릭터 리뉴얼·신규 캐릭터 개발·목적별 캐릭터 통합이 필요하다. 잘 정립된 대표 캐릭터는 전주를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직관적 '도시의 언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시 캐릭터 꿈돌이는 과거 부실 관리를 개선해 체계적 전략으로 도시의 언어가 되고 있는 사례다. 1993년 대전엑스포 마스코트로 탄생한 꿈돌이는 추억 속 캐릭터로 퇴장하는듯 했으나 2020년 카카오TV 내 꿈은 라이언을 통해 주목받아 다시 인지도를 높이는 과정을 밟고 있다. 대전시는 마침 대전엑스포 개최 30주년이었던 2023년엔 꿈돌이와 꿈순이를 비롯해 친구·가족 캐릭터를 추가한 꿈씨패밀리를 구성, 캐릭터 세계관을 확장했다. 이런 재정비 과정에선 갑론을박도 불거진다. 첫 대중적 인기 사례인 고양고양이는 10년 만인 지난 2023년 가와지쌀 캐릭터로 교체되며 사용이 중지돼 논란이 발생했다. 희소한 성공 사례이자 고양시 인지도를 높인 자산을 왜 폐기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이동환 고양시장은 지난 1월 18일 페이스북으로 "고양고양이 캐릭터 역시 한 시대의 노력 속에서 탄생한 소중한 자산"이라면서도 "고양시의 고유성과 산업적 잠재력을 충분히 담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 가와지쌀 캐릭터는 고양시만의 역사·문화·특산물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도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구경북도 '두 마리 토끼' 잡을까? 교체 고민은 대구시 캐릭터도 공유한다. 2000년 지정된 '패션이'이다. 섬유패션도시 대구를 상징하는 캐릭터인데, 25년이 흐른 지금 대구 섬유패션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의미가 퇴색됐고 시민들도 잘 모른다. 그래서 2018년 캐릭터 교체 움직임도 나왔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1999년 도입된 경상북도 캐릭터 신나리도 비슷한 처지다. 신이 난 갓 쓴 나리(지체 높은 사람)의 모습인데, 갓 쓴 양반의 고장 안동에 경북도청이 있는 건 맞지만, 역시 매력과 인지도 모두 크게 떨어진다. 대신 대구시는 대구 도심 하천 신천에서 발견되는 멸종위기종 동물 수달로 2020년 도달쑤(도시 달구벌 수달) 캐릭터를 제작, 사실상 대구시 캐릭터로 활용하고 있다. 올해 열리는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굿즈로도 출시돼 좀 더 인지도를 높일 태세다. 경북도는 실은 신나리 캐릭터의 미미한 존재감이 아쉬울 것이 없는 게 안동시와 공동기획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EBS·퍼니플럭스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엄마까투리 캐릭터를 성공 사례로 보유 중이다. 동화작가 권정생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특히 아이들로부터 호응을 얻는 귀여운 꿩병아리 캐릭터들을 가족 세계관으로 탄생시켜 지역과 콘텐츠 시장에서 두루 활용하고 있다. 지역 상징성을 담으면서 상업 캐릭터 시장도 공략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 시도는 대구경북에서 지속해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대구 수성구 캐릭터 뚜비가 활발하다. 전국 최대 두꺼비 산란지 망월지의 생태 가치를 알리고자 지난 2024년 4월 출시된 뚜비는 곧장 첫 굿즈 상품을 선보여 18개월 만에 2억여원의 매출을 올렸고 그 종류도 50여종까지 확장했다. 지자체 캐릭터지만 처음부터 상품화에 공을 들인 것. 굿즈 생산 일부를 지역에서 맡고, 지역 업체와 제과 등 콜라보 제품을 출시하는 등 지역경제와의 밀착도 특징이다. 이어 문을 두드린 게 해외 진출이다. 수성구는 홍콩 글로벌 마케팅 라이선싱 전문기업 OBG와 뚜비 IP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1월 25일 밝혔다. 경북 김천시 캐릭터 오삼이는 최근 대박을 터뜨린 김천김밥축제와 결합해 생명력을 연장한 사례다. 2020년 김천시는 방사지 지리산에서 김천 수도산으로 터전을 옮긴 반달가슴곰 KM-53을 지자체 캐릭터로 만들었다. 그런데 KM-53은 2023년 6월 경북 상주에서 민가침입 등 사고 방지를 위한 국립공원공단 포획 과정 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오삼이의 서사는 멈추지 않았고, 2024년 김천김밥축제 성공을 계기로 김천 특산품 자두·호두로 맛을 내고 오삼이를 형상화 한 흑미밥을 넣은 오삼이김밥이 편의점에 출시되기도 했다. 대전 꿈돌이는 엑스포 종료 후 행사장에 마련된 꿈돌이랜드가 폐쇄되자 훼손된 채 방치된 꿈돌이 모형으로 시민들 인식 속에서 폐기 판정을 받았지만, 부활 서사를 썼다. 오삼이도 죽은 KM-53을 기리는 역할까지 부여받아 좀 더 특별한 캐릭터 서사를 써 나가고 있는 셈이다.
2026-03-05 11:30:00
[커버스토리] 지자체 캐릭터, 더 귀여워지고 세계관 확장해야 경쟁력…정책 뒷받침도 필수
캐릭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만큼 캐릭터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이 틈바구니에서 선택받고 주목받는 지자체 캐릭터만이 밥값(투입된 지자체 예산)을 할 수 있다. ◆좀 더 귀여워져라 우선 당장의 트렌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귀여워야 먹힌다. '지역단위별 공식 홈페이지 및 소셜미디어 지역캐릭터 활용현황 차이 비교'(2025)를 펴낸 남윤재 경희대 문화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는 "일본 지역 캐릭터 성공 사례에서 확인되듯 쿠마몬과 후낫시(두 캐릭터는 2020년 일본 캐릭터 호감도 조사에서 지자체 캐릭터로는 유이하게 1위와 5위를 차지) 등 귀엽고 유쾌한 형태의 캐릭터는 지역 정체성보다 감성적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성과 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달성한다"며 전북 익산시 사례를 들었다. 익산시는 애초 서동·선화공주 캐릭터가 있음에도 2019년 관광캐릭터 마룡이를 추가로 도입했다. 서동의 어머니가 용과 인연을 맺어 서동을 낳았다는 연못 마룡지에서 이름을 가져와 귀여운 용의 모습을 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어 2023년엔 기존 서동·선화공주 캐릭터도 2등신 비율로 다시 디자인, 좀 더 귀엽게 꾸몄다. 이 내용을 참고해 주간매일은 대구시 캐릭터 패션이의 귀여운 버전을 AI(인공지능) 챗GPT에 의뢰해 제작해봤다. 챗GPT는 단 1분여 만에 귀여워진 패션이를 만들어주며 "표정만 살짝 바꿔도 매력이 잘 살아났다"고 캐릭터 리뉴얼 작업 후기를 밝혔다. ◆세계관 넓혀 생명력 연장 롱런도 중요하다. 캐릭터의 성장판이 닫히지 않도록 계속 발을 굴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생명력 연장 전략이 요즘 유행이기도 한 세계관 확장이다. 뽀로로·아기상어·티니핑 같은 국산 캐릭터는 물론이고 산리오·디즈니·포켓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의 공통된 특징은 떼로 등장해 세상을 누비며 재미와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을 펼친다는 것이다. 이미 대전 꿈돌이가 꿈씨패밀리 세계관을 구성했고,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군은 발효의 힘을 깨우쳐 국왕 자리에 오른 고추장을 비롯한 각종 장류와 미생물들로 구성된 순창왕국 세계관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다. 남 교수는 "캐릭터를 새로 만들지 않더라도 기존 캐릭터에 구체적인 세계관을 설정하거나, 기존 세계관이 있더라도 활용하지 못했다면 적극 소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뜨지 못한 대다수 지자체 캐릭터들에게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통합 과제를 품은 대구경북은 기존 지자체 캐릭터를 한데 모으는 세계관 통합 이벤트에 나서도 좋지 않을까. 지자체장들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는 동안 지자체 캐릭터들이 가상공간에서 대구경북 자연환경과 산업지대를 누비며 주민들과 만나 활약하는 모습을 그린다면. ◆지역 캐릭터 진흥 입법 주목 지자체 캐릭터의 활로를 찾고 더욱 업그레이드시키는 시도가 활발해지려면 정책적 뒷받침도 필수다. 김승수 국민의힘 국회의원(대구 북구을)은 지난해 11월 28일 대한민국 최초의 '캐릭터산업 진흥법' 제정안을 대표발의, 급변하는 글로벌 콘텐츠 경쟁 속에서 K-캐릭터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은 물론, 창작 기반 및 IP 보호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 특색을 담는 캐릭터 육성 정책도 빼놓지 않았다. 법안 제17조가 '지역특화 캐릭터 육성'이다. 지역 역사·문화·자연자원·전통산업을 반영한 지역특화 캐릭터를 만들고 키우는 사업자 등에 대한 지원 내용을 담았다. 또 지역특화 캐릭터를 활용한 관광상품·축제·공공서비스 개발부터 홍보와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김 의원은 "캐릭터는 K-콘텐츠의 출발점이자 수출을 이끄는 핵심 IP이다. 법 제정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2026-03-05 11:30:00
[금주의 이슈] 정치인 출판기념회 논란 지속…없앨까? 고쳐 쓸까?
'대한민국 헌법 21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여기서 출판과 집회라는 단어를 합쳐 선거철에 구현하면 바로 '출판기념회'다. 주로 출마 예정자의 책 발간을 기념하는 자리다. 이 행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책값 명목의 돈봉투가 늘 논란이다. 올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그렇다. 불법은 아닌 출판기념회에 편법이라는 비판이 계속 따라붙는 까닭이다. 해법은 없을까? ◆법 사각지대 '눈 먼 돈' 꼬리표 정치인 출판기념회 행사장은 마치 결혼식장 같다. 결혼하는 부부 대신 출마를 결심했거나 그럴 것 같아 보이는 정치인이 무대에 오르는 행사장의 입구는 축하화환이 늘어선 풍경부터 똑닮았다. 돈봉투를 지참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접수대에 내고 방명록을 적는 것까지는 같은데, 식권이 아니라 책을 받는 게 좀 다를 뿐. 그렇게 모인 돈이 얼마나 되는지 주최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건 결혼식과 출판기념회의 핵심적인 공통점이다. 출판기념회에서 모인 돈은 정치후원금과 달리 선거관리위원회에 수입·지출 내역을 보고할 의무가 없으며 모금 한도 역시 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이렇게 눈 먼 돈이 모이는 출판기념회는 일찌감치 일부 정치인이 악용한 바 있다. 2013년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맡고 있던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출판기념회에서 유관기관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축하금 3천360만원을 받았다. 이에 대해 법원은 신 의원이 사립유치원 특혜 내용이 담긴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대가, 즉 뇌물성 후원금으로 봤다.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최종 선고된 사례다. 이후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출판기념회는 꼭 불법성이 보이지 않더라도 의심의 눈초리와 비판 여론이 향하는 타깃이 됐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해 인사청문회 때 좋게 보면 '솔직한', 동료 정치인들이 봤을땐 '순진한' 고백으로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해 6월 25일 이틀째 청문회 일정에서 과거 2차례 출판기념회로 2억5천만원의 수익을 얻은 것에 대해 "국민 일반의 눈으로 봐서는 큰 돈이지만, (출판기념회)평균으로 봐서는 그다지 과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답변, 되려 여론을 악화시켰다.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아이돌 팬미팅과 닮은 점은 수만원에서 10만원대로 형성된 팬미팅 티켓(돈봉투)과 대신 선물로 주는 아이돌 굿즈(책)정도다. 차이점은 아이돌 팬미팅 수익은 국세청에 신고돼 세금도 납부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 총리에 대해서는 단 2차례 쇼로 억대 수익을 거둔 데다 세금 한푼 내지 않은 걸 아무렇지 않게 실토해 국민적 분노가 쏟아졌던 셈이다. ◆'꼼수' 논란에 '계륵' 처지 출판기념회 개최를 출마 선언으로 이해한 지지자들이 황당해 한 사례도 최근 잇따랐다.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이 지난해 12월 20일 책 '이태훈의 길' 출판기념회를 열어 대구시장 출마 채비를 드러냈다가 올해 2월 2일 돌연 출마 포기 선언을 했던 것. 3선 구청장인 그가 지난 2023년 12월 2일 22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을땐 그에 앞서 출판기념회 같은 출정식 성격의 행보를 보이지 않았기에 이번처럼 지지자들이 혼란스러워할 일도 없었다. 그러면서 의구심이 향하게 된 출판기념회 수익의 향방은 향후 공직자 재산신고 액수 변동 내역정도로만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구청 직원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후 승진 대상자가 된 맥락을 두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구지역본부 달서구지부가 지난해 12월 23일 인사 철회 촉구 집회를 여는 등 논란만 더해졌다. 달서구는 적법한 절차를 거친 인사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2월 23일엔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위한 여정을 중단한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지난 1월 15일 서울시장 도전을 표명하고 2월 3일 자신이 지은 '빛의 혁명 빛의 명령'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걸 신속히 물린 맥락이다. 이 행사는 여러 참석자가 책 가격(2만5천원)을 넘어서는 돈이 담긴 봉투를 현금수거함에 넣는 모습이 여러 언론 보도로 전해지며 화제가 됐다. 서 의원은 공교롭게도 당 공천관리위원회 면접 직전 출마 의사를 접었는데, 출판기념회 돈봉투 논란에 대한 부담을 의식한 건지 시선이 향한다. 물론, 꼭 선거 출마자가 아니더라도 상시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다는 항변이 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진행한 자신의 책 '대통령의 쓸모' 전국 순회 출판기념회가 대표 사례다. 지난 2월 12일 서울 국회 행사에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서영교·박주민·전현희·김영배 의원 등)이 집결한 걸 시작으로 2월 20일 경기 수원 행사 땐 경기도지사 후보군(김동연 현 지사와 추미애·한준호·권칠승 의원, 양기대 전 의원 등)이 참석하는 등 지선 특별판 민주당 전당대회를 방불케 했다. 즉각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2월 13일 국민의힘은 김 전 부원장이 대장동 사건으로 2심에서 징역 5년 선고를 받고 수감 생활을 하다 지난해 보석으로 풀려나 있으면서 이같은 출판기념회 행보를 밟고 있는 데다 민주당 유력 인사들이 대거 출동하는 모습을 두고 "민주당은 '범죄자 전문 병풍 부대'"라고 일갈했다. 다만, 한편으로는 '범죄자라도 써서(?)' 전국 순회 행사를 열어 지선 흥행몰이를 할 만한 콘텐츠가 국민의힘엔 없기에 부러움 섞인 시기와 질투도 충분히 드러낼 만한 사례였다. 이처럼 출판기념회는 포기하기 아까운 계륵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은 대구시장 출마를 계기로 정치 인생 22년 간 단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던 출판기념회(책 '주호영의 시간, 그리고 선택')를 지난 2월 22일 개최한 자리에서 "출판기념회를 비판 받는 행사로 인식했지만 6선쯤 되니 후배들에게 뭔가 남겨야 할 의무감에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또 누군가에겐 되려 리스크만 키우는 계륵일까. 비판 여론을 의식한 출판기념회 취소도 잇따랐다. 대구 달서구청장에 출마한 김형일 전 달서구 부구청장은 지난 2월 10일 페이스북으로 자신의 책 '책임' 출판기념회 취소 공지를 전하며 "출판기념회를 둘러싼 사회적 이슈와 국민적 정서를 무겁게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뒤이어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인 홍성주 전 대구시 경제부시장도 2월 26일 페이스북으로 저서 '유쾌한 고집, 성주씨' 북토크 행사 취소 결정을 알리며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이나 세 과시용으로 비치며 주민들께 피로감을 주는 구태 관행을 이제는 끊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없애? 고쳐 써?…유권자 만남 순기능도 실은 출판기념회를 과감히 손 봐 계륵이 아닌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에게 유익한 제도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역시 지난해 김민석 총리 청문회가 촉발했다.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경북 경산)은 지난해 6월 편법적 정치자금 모금 성격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집회 또는 다수 초청 형태로 일정한 장소에서 출판물을 판매하거나 입장료 등 대가성 금전을 받는 출판기념회 개최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어 조 의원은 법안이 반년 넘게 계류 상태였던 지난 2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출판기념회는 책을 보고 오는 게 아니라 권력을 보고 오는 것이다. 그럴 일 없지만 제가 출판기념회를 연다면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분들이 눈도장 찍겠다고 오지 않겠나. 책의 정가만 내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라고 출판기념회 자체가 문제임을 지적했다. 출판기념회를 정치자금법 규율 대상에 두는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부산 해운을)도 지난해 6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역시 해를 넘겨 계류 중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얻는 책 판매 수익이나 참가비 등을 모두 정치자금에 포함시키는 게 법안의 골자다. 책 가격을 도서정가제나 시중 통상 가격을 초과하지 못하게 하고 1인당 구매 수량도 1권 또는 1세트로 제한하기 때문에 돈봉투에 거액이 담길 수 없다. 또 출판기념회 수입·지출 명세를 행사 종료 후 30일 내로 중앙선관위에 신고해야 하고, 이를 어길 시 수익 전액 몰수 및 형사처벌이 가능토록 했다. 출판기념회는 이들 법안에서 다루는 '돈 문제'만 뜯어고치면 유권자에게 효용성 높은 도구라는 견해가 있다. 21세기정치학회보 제35집 4호(2025년 12월 발행)에 실린 '출판기념회 개최 동기 분석: 정치자금, 그리고 인지도 향상'(제1저자 노송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BK21 행정연구원, 교신저자 이현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에서는 "선거운동이 매스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한 비접촉적 방식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출판기념회는 유권자와 정치인이 마주할 수 있는 드문 접촉 기회다. 행사 준비·홍보 과정에서도 지역구민과 만날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고 봤다. 이어 "무조건적인 폐지 주장보다는 수익 창출 금지나 수익금 공개 의무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단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문제점인 정치자금 모금 창구 역할을 방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출판기념회 폐지보다 더 나은 해법"이라고 조언했다.
2026-03-05 11:30:00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려 33대 왕 창왕이 화제였다. 천만 영화 등극 수순을 밟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조선 6대 왕 단종과 연결 지은 관심이었다. 영화를 보고 우리 역사 속 다른 사례를 찾다 "단종보다 더 비극적 최후를 맞은 왕"이라는 반응이 쏟아진 것. 단종은 고1 나이 16세 때 죽었고, 창왕은 초2 나이 9세 때 죽었다. 창왕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단명한 왕이다. 단종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거나 삼촌 세조로부터 사사(賜死)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왕은 아버지 우왕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졌다. 죽음 이후도 대비된다. 영월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엄흥도가 수습해 암장(暗葬)했고, 이 묘는 후일 숙종이 노산군으로 불리던 단종을 복권하며 장릉이라는 능호를 얻었다. 엄흥도는 공조판서로 추증됐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천만 영화의 바탕이 된 반면, 창왕은 시신과 무덤에 관한 기록 자체가 없다. 단종은 후대가 매년 단종제와 사육신제로 기리지만, 창왕은 그런 것도 없다. 두 어린 왕의 공통점은 죽어야 할 정도로 책임질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위 기간이 단종은 3년(세조 즉위 후 상왕 재위 기간 제외), 창왕은 1년이다. 그동안 뭘 할 수 있었을까. 단종은 세조의 야욕으로 쫓겨났고, 창왕은 실정을 저질렀다며 아버지 우왕이 폐위될 때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함께 쫓겨났다. 다만, 권력 투쟁이 극단으로 치닫던 고려 말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이성계가 우왕을 끌어내리고 잠시 왕위에 올린 창왕 역시 없애는 건 시대 흐름 앞에선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권문세족의 부패와 수탈이 극에 달한 고려는 어떻게든 당시 힘을 얻은 성리학의 위민(爲民·백성을 위함) 사상을 바탕으로 왕과 신하가 서로 견제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의 교체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바로 조선이다. 개인의 운명은 참 안타깝지만, 창왕은 교체가 반드시 필요했던 시기의 지도자, 단종은 그 반대 맥락의 사례다. 세조가 권력을 얻으려 일으킨 계유정난에 참여한 한명회 등 공신들의 세력이 커지며 조선은 다시 고려 말처럼 퇴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짙어진 붕당정치가 당파 싸움으로 변질됐고 왕권이 약해지자 세도정치가 득세해 조선 멸망의 주원인이 됐다. 지금 지구촌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은 자유민주주의다. 그 반대는 독재다. 방법이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최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와 이란의 알리 하메네이 등 주요 독재자들이 잇따라 체포 또는 제거됐다. 그러자 세계인의 눈길이 향하게 된 곳이 북한인데, 우왕처럼 시대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독재자 김정은이 올해 나이 13세의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키우고 있다는 소식이 조선중앙통신발로 쏟아지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주애 양의 운명은 창왕이다. 단종의 운명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고모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이 마치 세조처럼 조카 주애를 치는 권력 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반역죄로 숙청되고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되는 걸 지켜본 김여정이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주애 양은 어떤 운명에 놓일까. 아니, 실은 또래 평범한 청소년들처럼 살고 싶은 건 아닐까. 앞으로 주애 양이 단종도 창왕도 아닌 운명을 직접 선택할지 여부에 적잖은 시선이 향하게 됐다. 자칫 큰 책임을 질 과오를 저지르기 전에 말이다.
2026-03-04 16:51:18
[금주의 이슈] 국산 천만영화 부활할까? '왕과 사는 남자' 시작으로 '휴민트' '국제시장2' 등 후보군
1천만 이상 관객을 모은 영화를 뜻하는 '천만영화'. 대한민국 영화산업 활황을 가늠하는 지표다. 지난해(2025년)는 코로나19 대유행 타격을 입은 2020·2021년을 제외하고 14년 만에 국산작은 물론 해외영화까지 포함해 천만영화가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은 해였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집에서 영화를 즐기는 OTT 확산, 영화표 가격 인상, 수준 높아진 관객들의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반응, "외출하면 영화 말고도 즐길거리가 많다"는 여가문화 변화가 복합적 원인으로 분석된다. 영화산업 위기론이 짙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영화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대중매체의 자리를 좀체 잃지 않고 있다. 세상을 관통하는 작품이 나와 대중의 마음을 흔들면 천만영화 릴레이가 재개될 수 있다. 올해 천만영화 후보작은 일단 두 편 개봉했다.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잇따라 극장에 걸려 발길을 모으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와 '휴민트'다. ◆'왕과 사는 남자' 순항중 왕과 사는 남자는 2월 26일 0시 현재 관객수 652만을 돌파, 올해 천만영화 릴레이의 첫 주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조선 때 삼촌 수양대군(세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노산군 이홍위)이 유배지 강원 영월 청령포에서 촌장 엄흥도 등 주민들과 교감했다는 '실화 반 각색 반' 이야기다. 만약 이 작품이 천만영화가 되면 제목에 '왕'과 '남자'가 들어가면 뜬다는 법칙을 공고히 하게 된다. 두 키워드가 들어간 '왕의 남자'(2005)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이하 광해)가 각각 똑닮은 1천230만여 관객을 모았다. 왕의 남자는 연산군, 광해는 광해군,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과 세조라는 조선의 '문제적' 왕들의 시기를 다룬 게 비슷하다. 더불어 세 작품 모두 선거를 코앞에 둔 선거철에 개봉했다. 2005년 12월 개봉한 왕의 남자는 4회 지방선거(2006년 5월 31일), 2012년 9월 개봉한 광해는 18대 대선(2012년 12월 19일), 2026년 2월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9회 지방선거(2026년 6월 3일)와 시기적으로 연결고리를 갖는다. 왕과 선거는 권력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공통점이다. 물론 영화 내용과 선거 결과를 엮는 건 별개의 문제. 참고로 4회 지선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12개 광역단체장을 탄생시키며 범민주 진영에 압승했고, 18대 대선은 박근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그리고 하나 더. 문제적 조선 임금이 등장하는 또다른 천만영화로 '명량'(2014)이 있다. 이순신의 활약을 다루며 그 반대편 암군 선조를 손가락질하게 만든 이 영화는 관객 1천761만을 그러모아 국산·해외 작품 통틀어 천만영화 역대 랭킹 1위다. ◆'휴민트' 흥행 청신호…'국제시장2' 곧 개봉 휴민트도 2월 26일 0시 기준으로 167만 관객을 모아 선전 중이다. 사람을 이용하는 첩보를 뜻하는 휴민트(Human Intelligence) 활극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남북 정보요원 간 액션에 스릴러에 멜로까지 버무려 펼쳐진다. 이 영화 관객수가 1천만을 넘기면 우리나라 천만영화 계보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천만영화 첫 작품 '실미도'(2003, 관객수 1천108만)가 대북 특수작전을 준비하던 실미도 부대의 비극을, 두번째 작품 '태극기 휘날리며'(2004, 1천174만)가 6.25 전쟁의 참상을 다루는 등 마찬가지로 남북분단을 얘기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멀리는 조선시대, 가까이는 근현대사 등 한국 역사가 소재가 되면 천만영화가 곧잘 탄생한다. 전무했던 2025년은 건너뛰더라도 2024년작 '파묘'가 한국인 특유의 묫자리(명당) 문화를 다루며 일제강점기 연관 소재들로 흥미도 일으켜 1천191만 관객을, 2023년엔 12.12 군사반란을 소환한 '서울의 봄'이 1천312만 관객을 불렀다. 올해도 닮은 접근을 취하는 영화 개봉이 예정돼 있다. 2014년 1천426만명이 본 천만영화 '국제시장'의 후속작 '국제시장2'가 곧 관객들과 만난다. 윤제균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 1편은 6.25 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시작으로 파독 광부·간호사, 베트남 파병, 이산가족찾기 등 1950~80년대 격변기를 몸소 겪은 덕수(배우 황정민 분)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2편은 다시 80년대부터 성민(덕수와 함께 파독 광부로 일한 인물, 이성민 분)의 인생이 맞닥뜨린 1987년 6월 항쟁, 1992년 미 LA 폭동, 1997년 IMF 외환위기,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을 스크린에 풀어낼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의 영화 '암살자(들)'도 이미 촬영을 마쳐 올해 하반기에 개봉할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 유해진이 왕과 사는 남자의 엄흥도 역에 이어 재차 시대물 주연을 맡는다. 그러고 보면 박 대통령 시대와 연관된 천만영화가 적잖다. 그의 재임기간(1963~1979)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긴데다 이후 현대사에 미친 영향도 큰 탓이다. 실미도의 바탕인 1971년 실미도 사건을 비롯해 국제시장 속 굵직한 사건들이 박 정권 시기에 일어났다. 택시운전사(2017, 1천218만명)에서 다룬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서울의 봄에서 다룬 1979년 12.12는 박 대통령의 독재 및 죽음(1979년 10.26 사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건이다. ◆천만영화 부활 간절한 영화계 국내 극장 관객수는 2019년 2억2천667만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후 내림세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였던 2020~2021년 5천만~6천만명대로 급감했으나 2022년 1억명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시기 널리 보급된 OTT의 공세 등이 영화산업의 위기를 가시화시켰고, 결국 2025년 관객수 1억명을 겨우 웃도는 수준을 보였다. 특히 2025년은 다른 여러 위기 요인과 함께 한국 영화의 작품성·마케팅 자체가 부진한 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천만영화 편수가 같은 맥락의 지표다. 2019년 역대 가장 많은 5편이 탄생한 반면, 2025년엔 0편이었다. 그래서 영화계는 올해(2026년)가 영화산업 반등의 분기점이 될 지 주목하는데, 눈길이 쏠릴 이슈가 바로 천만영화 부활이다. 천만영화는 다시 볼 수 없는 구시대의 현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올해 2년 연속으로 천만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더욱 힘을 얻을 주장이다. 그래서 이미 업계는 OTT 작품 판매와 해외 2차 시장 공략 등으로 감소한 극장 티켓 수익을 벌충하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다만, 천만영화는 단순히 돈 문제 만은 아니다. 10여년 전이었던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천만영화를 통해 바라본 한국 영화 제작의 현실과 전망' 포럼에서 당시 천만영화 변호인(2013, 1천137만)을 제작한 위더스필름의 최재원 대표는 "(관객수)1천만이 넘는다는 건 관객들의 무의식과 조우하는 완벽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며, 대중문화로서 한 시대의 정서를 나타내는 문화적 표현의 의미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1천만이 하나의 목표처럼 됐다"고 우려, 여러 문제점 가운데 영화산업의 자본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예견은 현실이 됐다. 현재 거대 OTT 자본은 극장 관객수를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이자 판권 확보를 매개로 제작비를 투자해 영화계의 숨통을 틔우는 양면적 존재로 영화산업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상황이다.
2026-02-26 15:30:00
대한민국 트로트는 음지에서 양지로 영역을 넓힌 역사를 갖고 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슈퍼스타 임영웅을 배출한 2020년이 절정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250('이오공'이라고 읽는다, 걸그룹 뉴진스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하다)이 내놓은 앨범 '뽕'(2022)은 조금 다른 결로 트로트를 조명한 사례다. ◆홀대 받은 트로트 '뽕짝' 트로트라고 다 같은 트로트가 아니다. 정통 트로트가 있는가 하면 블루스, 락, 국악, 포크, 댄스 같은 장르 내지는 스타일과 결합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템포(BPM)가 빠른 댄스 트로트의 대표곡인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2013)가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차용하기 훨씬 전부터, 전자올겐(신디사이저 건반)을 비롯한 각종 전자악기를 활용해 흥을 극도로 돋우는 방향으로 나아간 트로트가 바로 '뽕짝'이다. 정규 앨범을 기반으로 곡이 발표되고 한땐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연말 가수상까지 타는 이력을 쌓은 제도권 내 다른 트로트 음악들과 비교해, 뽕짝은 홀대 받았다. 경박스럽다는 오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일명 '뽕짝 메들리' 음반의 가격이 저렴하니 그만큼 수준도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 중장년 및 노년 세대가 뽕짝을 온몸으로 즐기기 위해 찾는 캬바레와 관광버스 속 일탈에 대한 부정적 시선 등이 지난 수십년 간 형성한 뽕짝의 이미지다. 하지만 뒤집어 보자. 신나는 리듬과 흥겨운 추임새가 선물해 준 해방감을 아마도 체면치레 탓에 경박스럽다고 표현했을 터다. 음반이 값이 싼 건 소규모 인력이 최신 트로트부터 흘러간 옛 노래와 민요에 유명 팝송까지 엮어 신속히 편곡해 출시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많은 곡이 음반에 담기니 오히려 가성비가 높다. 그리고 '뽕끼'로 가득한 캬바레·관광버스에서의 일탈은 고단했던 산업화 시대에 국가가 제공하지 못한 스트레스 해소라는 복지 아닌가. 그러면서 뽕짝은 트로트계의 언더그라운드 내지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트로트 여왕 주현미의 이름을 알린 게 1984년부터 발표한 옛 노래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 시리즈였고, 그 덕분에 '비내리는 영동교'(1985)를 첫 히트곡으로 띄울 수 있었다. 김용임과 진성도 초기엔 캬바레·관광버스 메들리 앨범으로 명성을 높였고 이후 '사랑의 밧줄'(2003)과 '안동역에서'(2008년 안동사랑노래 버전이 아닌 2012년 편곡 버전이 떴다) 같은 자기 곡으로 거장의 반열에 들어섰다. ◆뽕짝史 탐구 '듣는 다큐멘터리' 이러한 뽕짝 메들리 판의 입지전적 인물이 노래하는 관광버스 가이드로 시작해 고속도로 메들리 앨범을 100만장 넘게 팔아치우다 1990년대에 일본까지 진출했던 이박사다. 그리고 이박사의 전속 건반 주자 김수일을 함께 언급해야 한다. 250은 이박사 만큼 김수일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 앨범 첫번째 곡 '모든 것이 꿈이었네'는 250이 이박사의 집에서 만난 김수일로부터 전해 들은 미발표곡을 편곡한 것이다. 이박사를 비롯해 수많은 뽕짝 가수들의 뒤에는 무대에서 또 녹음실에서 묵묵히 전자올겐을 연주하는 김수일 같은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250은 지금 '고속도로의 황태자'로 불리는 나운도도 초빙해 협업했다. 대구 곳곳 캬바레에서 활동한 이력도 있는 나운도는 2010년대 들어 뽕짝계를 상징하는 전자올겐 연주자이자 가수로 올라섰다. 250과 나운도가 함께 작업한 곡은 장은숙의 1978년 노래 '춤을 추어요'다. 흘러간 옛 노래를 전자올겐 등으로 다시 색을 입혀 부활시키는 뽕짝 메들리의 문법을 재현하는 시도였던 셈이다. 이 음반은 뽕짝 메들리 앨범은 아니다. 프로듀서인 250이 트로트 특유의 꺾기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다. 대신 뽕짝 특유의 리듬 패턴, 음원 소스, 사운드 질감 등을 채집해 전자음악의 작법으로 풀어냈다. 이 앨범 작업을 위해 250은 이박사를 인터뷰하고 서울 동묘에 가서 뽕짝에 주로 쓰이는 음색이 담긴 악기들을 찾고 뽕짝에 맞춰 즐기는 사교댄스 교습 현장도 견학했다. 무려 5년 동안이나. 250에 앞서 뽕짝을 가져다 쓴 시도는 국내 테크노와 락 장르에서 종종 있었다. 그러나 250처럼 뽕짝이 흘러온 궤적을 탐구한 다큐멘터리적 시도는 없었다. 이 앨범은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을 차지했다.
2026-02-26 12:00:00
[금주의 이슈] 선거철 또 나타난 '박정희 마케팅'…환심 사기 아니라 시대정신?
TK(대구경북) 선거철 단골 전략인 '박정희 마케팅'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김없이 등장했다. 자치단체장 도전자들이 출사표를 던지며 잇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성과, 고향 대구경북에 보여준 애정, 리더십 능력 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 물론 이번에도 환심 사기의 일환일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박 전 대통령의 과(過)는 인정하되 공(功)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공과론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연결고리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해답을 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박정희표 산업화 다시 한번" 출마선언 잇따라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은 지난 1월 25일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동대구역 박정희 동상 앞에서 개최했다. 그는 "대한민국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 대통령의 길 위에서 대구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며 자동차 부품, 로봇 산업단지 재편과 수성 AX(인공지능 전환) 혁신도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대구 경제 재산업화'를 강조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였던 29일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경북 구미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 경북도지사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역시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업적을 인용,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무너져가는 경북을 재건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대구경북이 박 전 대통령 때 산업화 수혜를 입은 과거와 지방소멸 위기에 이른 현재를 대비시킨듯 "중앙의 무관심으로 인한 '경북 패싱'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2일엔 이강덕 전 포항시장이 구미 구미코에서 경북도지사 출마 선언을 하며 아예 "제2의 박정희가 되겠다"고 발언했다. 그는 "박 대통령께서 물려주신 경북의 철강·전자·자동차·기계 산업의 유산 위에 2차전지·반도체·방위산업·항공이 결합한 AI로봇산업으로 경북 중흥의 길을 새롭게 열겠다"고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국가산업단지를 만든 구미에 더해, 중공업을 뒷받침하는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설립한 포항도 함께 띄운 맥락이다. 이어 9일 유영하 국민의힘 국회의원(대구 달서갑)이 대구 중구 삼성상회 터에서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열어 "대구는 박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신념을 앞장서서 실천했던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심이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이기도 한 그가 두 전직 대통령 관련 장소를 기자회견장으로 고르지 않은 데 시선이 향했는데, 실은 연결고리가 있었다. 삼성상회 터는 삼성그룹이 태동한 곳으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정주영 현대 창업주 그리고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근대화 토양을 일군 '거인'으로 평가된다. 유영하 의원은 "삼성의 출발점에서 대구의 내일을 열기 위한 상징적 선택"이라며 삼성 반도체 공장과 삼성병원 분원 대구 유치를 공약했다. ◆과거 '공염불+포퓰리즘' 박정희 마케팅과 비교되네 후보들의 구체적인 공약 대결에 앞서 예고편(출마 선언)만 공개된 셈이지만, 과거와 비교해 박정희 마케팅의 질(質)과 격(格)이 좀 높아진 모습이다. 그동안 박정희 마케팅은 유권자들로부터 좋게 말하면 '호감을 얻는', 본색은 '환심을 사는' 뉘앙스였다. 2014년 6회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경북도지사 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한 박승호 예비후보는 "(박 전 대통령 고향인)구미시 명칭을 박정희시로 바꾸자"고 주장했고, 권오을(현 국가보훈부 장관) 예비후보는 박 전 대통령 생가 참배 후 "생가를 국가유적지로 지정케 하고 세계대통령박람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심지어 진보 진영 대구시장 후보였던 당시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도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와 교류하겠다"며 대구에 박정희컨벤션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셋 다 떨어졌고 해당 공약들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2018년 7회 지선에서 경북도지사에 도전한 남유진 전 구미시장은 명함에 '리틀 박정희'라는 문구를 새겼다. 물론 그는 시장 시기였던 2013년 박 전 대통령 탄신 기념행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엔 할 말이 없다"고 하는 등 꾸준히 박정희 마케팅에 공을 들인 바 있다. 대구시장에 도전했던 이진훈 전 대구 수성구청장은 동대구역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이 공약은 2022년 8회 지선에서 당선된 홍준표 대구시장이 2024년 실현했다. ◆"朴, 산업화 功 있다" 李 당선 결과 낸 TK 공략 이렇게 보수 텃밭 대구경북에서 박정희 마케팅이 성행하면 상대 진보 진영은 박 전 대통령의 독재 이력을 꼬집으며 견제했다. 그런 양상은 지난해(2025) 21대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이재명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를 호평하며 크게 수정됐다. 그는 지난해 5월 13일 구미역 광장 유세에서 "박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말살한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보면 산업화를 이끌어낸 공도 있다"면서 "박정희 정책이면 어떻고, 김대중 정책이면 어떤가. 필요하면 쓰고 불필요하면 버리는 거다. 진영과 이념이 뭐가 중요하냐"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017년 경기 성남시장 시기 대선 도전 땐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은 참배하면서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찾지 않았고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군사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했던 그야말로 독재자이다.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게 매우 찜찜했던지 8년 뒤 대선 후보 땐 첫 일정으로 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고 즉각 구미를 찾아 박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는 등 '태세전환'으로 표심 공략에 나섰다. 꼭 이 발언 때문만은 아니었겠으나, 이 대통령은 경북에서 고향 안동(31.28%) 다음으로 많은 득표율을 구미(28.13%)에서 기록했다. 낙선한 20대 대선 당시 구미 득표율 기록(26.74%)을 경신한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AI 산업 전환기에 '압축성장'이 롤모델?…美 한반도 군사적 역할 축소 우려에 朴 50년 전 대처 해법될까? 시대가 박정희를 다시 부르고 있어서일까?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필두로 첨단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시기인 까닭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다진 것은 물론 그 속도까지 빨랐던 '압축성장'의 산업화 성과가 롤모델로 전해진다. 이걸 대구경북 단체장 출마 예정자들이 줄줄이 인용하는 모습이다. 또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지정학적 우선 순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좁혀지면서 미국의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역할이 축소, 이제는 우리 주도로 대북 억제에 나서게 됐다는 위기론을 두고는 박 전 대통령이 1970년대에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의심을 품고 대미 안보·경제 의존을 줄이며 경제개발과 국방력 강화를 함께 도모한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제임스 김 한국프로그램국장은 미국 새 국방전략(NDS) 분석 자료를 지난 1월 23일 언론에 배포, "한국의 책임이 확대되고 반대로 미국은 선택적 관여라는 좀 더 광범위한 전략 아래 역내 군사적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한미동맹이 이전에 비해 비대칭적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고 보면서 "한국이 이번 전환기를 전략적, 작전적, 산업적, 외교적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한미동맹의 미래 뿐만 아니라 동북아 안보 구조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방위산업을 주목, "세계 10위권 무기 수출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미국과의 방산 협력 유형·규모를 확대하는 게 동맹 재구성의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침 당명을 바꿀 국민의힘은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를 당의 헌법이자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당헌·당규에 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금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은 지난 2일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에서 "반공 이데올로기 강화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산물인 자유민주주의, 산업화 등을 더 명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했다. 다만, 민주주의 분야에선 명백하다고 볼 수 있는 박 전 대통령의 과오는 넓게는 보수 정치권, 좁게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정희 마케팅을 펼치는 후보들이 슬기롭게 풀어내야 할 과제로 분석된다.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는 이달 2일 성명을 내고 "박정희 동상 앞 출마 선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자 독재자 미화 행위"라며 "국민의힘 예비 후보자들은 박정희 동상 철거를 분명히 공약하라"고 요구했다.
2026-02-19 14:13:35
이소라는 대학생이던 1991년 재즈보컬 그룹 '낯선 사람들' 멤버로 데뷔했다. 그러다 싱어송라이터 김현철과 함께 영화 '그대 안의 블루'(1992)의 동명의 주제가를 불러 주목 받았다. 이소라를 눈여겨 본 김현철은 또다른 싱어송라이터 조규찬, 낯선 사람들을 이끌었던 고찬용과 함께 3인 프로듀싱 체제로 이소라의 1집 'Lee So Ra Vol.1'(1995)을 만들었다. 이 음반은 100만장 이상 팔렸다. 당시 여자 솔로 가수 최다 판매 앨범 기록을 썼다. 가장 유명한 곡은 김현철이 만든 타이틀곡 '난 행복해'다. 증권맨 출신 뮤지션 김광진이 곡을 준 '처음 느낌 그대로'도 유명하다. 이문세와 듀엣으로 부른 '잊지 말기로 해'도 빼놓을 수 없다. 수록곡은 모두 9곡. 이소라는 2집부터는 직접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기 때문에, 이 앨범은 이소라의 이후 음악세계를 열어준 주춧돌인 셈이다. 그런 의미를 강조한듯 이소라는 음반 속지에서 이런 감사의 말을 풀어냈다. "내가 노래할 수 있게 해 준 찬용이와 노래는 절제라는 걸 알게 해 준 규찬이와 나도 모르던 내 목소리를 찾아내준 현철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가수라면 이런 제작자, 작곡가, 프로듀서를 꼭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까. 가수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를 가리키는 표현 아닐까. 이 말과 함께 눈길을 끄는 게 CD 겉면에 새겨진 달 하나와 별 셋 그림이다. 마치 동방박사 3인(별 셋, 김현철·조규찬·고찬용)과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운명처럼 찾아온 보컬리스트 이소라(달 하나)의 만남을 표현한듯 하다. 가요계에서 먼저 입지를 다져 빛나고 있던 세 뮤지션(별)이 자신들과 결이 좀 다른 빛을 내고 있던 이소라(달)를 막 발견해 만나러 가던 시점을 그린듯 하다. 물론, 공식 설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추측. 우리말 성서에 동방박사로 번역된 헬라어 마구스(마기)는 마술사를 의미한다. 높은 작품성을 갖춘 것은 물론, 흥행도 크게 성공한 앨범을 만들어냈으니 김현철·조규찬·고찬용, 이 세 사람은 그때 우리 가요계에서 마술 같은 활약을 했다고 할 만하다. 달은 이후 이소라의 6집 '눈썹달(2004)'의 제목이자 앨범 커버 이미지로 재등장했다. 사실 이소라의 노래들 중 달의 차가운 온도, 은은한 분위기, 외로움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례가 적잖다. 이 앨범을 발매한 레이블 '동아기획'도 함께 주목해보자. 동아기획의 족적을 분석한 책 '동아기획 이야기'(이소진 저, 2025)에 따르면 이소라는 동아기획표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고 브랜드도 강화한 일종의 '추천' 시스템의 결실이었다. 김현식이 자신의 세션 밴드이기도 했던 봄여름가을겨울·빛과 소금을, 전인권(들국화)은 하덕규(시인과 촌장)를, 하덕규는 장필순을, 최성원(들국화)은 박학기를, 조동익(어떤날)은 김현철을 추천하며 앨범 발매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리고 김현철이 이소라를 추천했다. 19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견인한 동아기획표 음악의 특징은 그저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닌 적극적인 창작자들을 내세운 것이고, 이에 매료돼 팬덤이 된 대중들은 출시일을 손에 꼽아 기다려 동아기획 뮤지션들의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아가 환호했다. 이소라도 그 유전자를 이어받았고, 마침 1집의 흥행 성공과 함께 스타로 발돋움한 이소라의 영향력은 실력으로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펼쳐야 인정 받는, 눈높이가 제법 올라간 지금의 대중음악 환경을 만드는 데 분명 일조했을 것이다. 이소라는 1집 이후 발라드만 부른 게 아니라 원래 구사했던 재즈부터 포크와 록까지 폭넓은 장르를 소화하며 실험적인 스타일의 음악도 꾸준히 시도했는데, 이 역시 뮤지션에게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한국 가요계 풍토 형성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90년대에 등장한 이소라는 20세기 동아기획이 보여준 미덕을 21세기 대한민국 대중가요 씬으로 전달한 뮤지션 중 하나다. 그때 서태지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소라의 1집 앨범이 그 증거다.
2026-02-19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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