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관문=갓바위, 공룡관문=도심 화석, 치맥관문=닭벌판(달구벌)…대법원 이전시 법조관문? [커버스토리]
대구가 기존 관문성(關門性)들을 잃으며 마냥 쇠락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저변에서 꾸준히 대구를 주목하는 장소·소재가 분명 있다. 이걸 더욱 끌어올리면서 그 의미를 추출해 다른 분야에 창의적으로 접목시키는 시도가 필요하다. ◆소원의 메카 팔공산 갓바위 타지 사람을 불러들여 돈을 쓰도록 만드는 게 기본인 여행산업이 인위적 노력과 비용 투입 없이 저절로 구현되는 곳이 있다. 팔공산 갓바위다. 보물(구 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으로 불리는 팔공산 관봉 정상부 4m 높이 석상으로, 9세기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에 갓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많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게 팔공산 갓바위다.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전설, 석상이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을 바라보고 있어 해당 지역 사람들이 특히 효험을 본다는 속설 등 전국의 발길을 부르는 스토리 마케팅은 억만금을 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연 300만명 안팎이 갓바위를 찾는데, 최근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돼 화제가 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이 지난해(2025년) 650만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정상부 면적이 260㎡(80평)인 갓바위는 단위면적 당 방문객이 세계적 수준이다. 연 200만~300만 무슬림이 방문하는 이슬람교 성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카바 신전에도 비유할 수 있는 사례다. '살고 싶은 그곳, 흥미로운 대구 여행'(2014)을 펴낸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12년 전 팔공산 갓바위를 가리켜 "가히 세계 최고의 장소성을 가졌다"면서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통이 커서 그런지 몰라도 세계적인 갓바위를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아마도 갓바위가 다른 지방에 존재했다면 벌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것이고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팔공산 갓바위는 주소지가 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번지이긴 한데, 경산과 대구 동구에서 각각 오르는 길이 있어 향후 대구경북 통합을 재추진할 때 상징적 장소로 삼을 수 있다. ◆공룡 발자국 최다 대도시 발굴과 조명의 완성도가 부족한 대구의 관문성 소재로 '공룡 발자국'이 있다. 1994년 한 시민이 신천에서, 2001년 한 교사가 욱수천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을 잇따라 발견했고, 이후 전문가들의 연구를 거쳐 대구는 전 세계 대도시 가운데 공룡 발자국이 가장 많고 또한 화석이 선명하게 남은 드문 사례로 유명세를 탈 채비를 갖췄다. 신천과 욱수천을 비롯해 노곡동, 신당동, 지묘동 등 대구 도심 도처 공룡 발자국 화석들을 모아 현장학습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2002년 임성규 경북대 지구과학교육과 명예교수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이후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는 대구 남구 고산골에 지난 2016년 공룡공원이 조성되는 등 관심이 나타나긴 했지만, 일부 공룡 발자국들은 물 속에 잠겨 방치되는 등 과제도 여전한 상황이다.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대구'(2024)를 펴낸 대구 출신 은동진 한국사 강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부 대학·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자연사박물관이 있지만 그 규모가 작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구가 공룡수도 자격으로 유치할 수는 없을까"라고 제안했다. ◆글로벌 치맥 관문 노린다 실은 순항 중인 사례가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대구치맥페스티벌'이다. 대구권에서 사과농업 만큼 흥했던 양계산업이 연결고리다. 그 기반 위에서 멕시칸치킨·스머프치킨·멕시카나·페리카나·교촌치킨·처갓집양념치킨·호식이두마리치킨·종국이두마리치킨·땅땅치킨·치맥킹 등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탄생했다. 이후 치킨에 맥주를 곁들이는 인기 식문화 '치맥'을 대구의 특징인 무더운 여름 시기에 축제 소재로 쓴 것이다. 여기에 통일신라의 '서라벌(경주)→달구벌(대구)' 천도 추진 이야기가 가미된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2014년 6월 21일 자 매일신문 '통일신라 새 수도 달구벌 이면엔' 기고를 통해 "이 지역(대구)은 경주 김씨 세력과 각별한 관계가 있었다. 시조 김알지 탄생지가 흰 닭 울음소리와 관련돼 계림(鷄林)이라 이름 붙인 데서 드러나듯 김씨는 원래 닭을 조상신으로 여겨 숭배한 부족"이라며 "대구의 옛 이름 달구벌은 '닭의 벌판'이라는 뜻으로 이들과 각별한 친연성을 가졌다"고 풀이했다. 과거의 이야기가 받쳐주고 현재의 기획도 성공하며 나흘 내지 닷새 남짓 기간 열리는 축제 방문객은 2013년 첫 행사 27만명에서 지난해(2025년) 115만명으로 325% 증가했다. 4년 연속 100만명 돌파 기록이기도 하다. 이를 근거로 대구치맥페스티벌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6 예비 글로벌 축제에 선정됐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상대로 치맥 관문이 되라는 정책 지원이다. 실은 서울에서 3년 먼저(2010년) 치킨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전국 각지에서 치킨을 소재로 축제를 시도했지만, 인지도는 대구가 압도적이다. '치맥' 하면 '대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대법원 품어 법조 관문 될까? 미래 대구가 새 관문으로 삼을 수 있는 요소를 정치권이 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대법원 대구 이전이다. 대구가 대한민국 법조 관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다. 대법원은 광복 후 미군정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두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대한제국 고종 때 의금부→고등재판소→평리원으로 개칭한 게 근간이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최고법원 대심원 아래 고등법원으로 격하됐다가 광복 후 지금의 체계를 갖춘 것이다. 다만, 청사는 대한제국과 일제 때 서울 중구 서소문동 건물(현 서울시립미술관)을 계속 쓰던 걸 1995년 지금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했다. 그로부터 수십년 시간이 흘러 지방분권과 행정수도 이전론 등 국토 균형발전 기조 위에서 함께 거론된 게 대법원 대구 이전론이다. 진영 가리지 않고 꾸준히 제기했다. 2019년 당시 강효상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이, 2020년엔 국민의힘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의원이 주장했고,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근엔 아예 대법원 대구 이전 골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임미애·김용민·권칠승 민주당 의원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앞다퉈 발의했다. 헌법재판소 광주 이전론과 커플링 사안이다. 차규근·권칠승 의원은 "대구는 수도권과 물리적 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영남의 중심지"라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2.28 대구학생의거를 통해 4.19 혁명의 불씨를 지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도시다. 그 역사성을 보존하고 대법원이 소재하기에 충분한 의의를 지닌 지역인 바,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소재지로 적절한 도시"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 추가할 의미 부여의 힌트는 대구지법이 대구 수성구 범어동으로 1973년 이전하기 전까지 자리했던 대구 중구 공평동 동명에서 얻을 수 있다. '모든 일을 공평(公平)하게 처리하라'는 뜻으로 명명됐다. 실은 서울 종로구에도 같은 한자를 쓰는 공평동이 있는데, 이건 과거의 법원인 셈인 조선 의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일제가 국민들의 반감을 줄이고자 갖다 붙인 것이다. 대구 공평동은 1908년 대구공소원(대구고법)과 대구지방재판소(대구지법)가 개원한 곳으로, 당시 공소원은 전국에 대구를 비롯해 경성과 평양 등 3곳에만 설치됐다. 대구공소원은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현재 우리나라 남부지방 전역을 관할하는 법조 관문이었다. 그 존재감을 부활시키는 의미가 대법원 대구 이전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런 여러 이야기를 모아 대한민국 법조 관문의 서사를 후대에 전해줘야 한다면, 대법원 소재지로는 서울보단 대구가 더 어울린다.
2026-05-02 16:00:00
관문(關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 대구의 관문은 어디일까. 눈에 보이는 관문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관문, 둘 다 생각해보자. 과거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영남대로의 영남제일관(대구읍성 남문) 같은 대구 소재 길목·요충지를 얘기했다면, 현재는 대구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사회 현상·산업 기능·문화 향유 등을 가리킬 것이다. 또한 타지 사람들의 첫 인상이자 대구 사람들에겐 마음을 담고 정신을 되새기는 랜드마크 같은 것일 터다. 모두 아울러 관문성(關門性)이라고 표현해보자. 지역 브랜드 파워, 도시 경쟁력 같은 단어로도 치환할 수 있다. 이게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회복할 방도는 없을까. ◆파리 에펠탑급 발돋움 광화문…대구엔? 지난 3월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BTS(방탄소년단) 컴백 콘서트는 소속사 하이브와 글로벌 생중계를 맡은 넷플릭스 둘 다 이득을 본 윈윈(Win-Win) 사례다. 숨은 수혜자가 있다. 서울시다. 해외 관광객을 그러모은 성과는 둘째 치고, 서울시 랜드마크인 경복궁 정문 광화문을 중심에 배치한 서울시 홍보 영상을 공짜로 전 세계에 배포하는 효과를 봤다. 앞으로 광화문은 단순한 문화재나 관광지가 아니게 됐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처럼 대한민국 서울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무형의 성문, 즉 관문성으로 더욱 올라섰다. 이런 글로벌 체급의 관문성을 서울은 수도이니만큼 남산서울타워·숭례문·롯데월드타워·종묘·북촌한옥마을 등 몇 개 더 갖고 있다. 부산도 광안대교·매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전당·연 20만 게임 마니아를 집결시키며 대구가 유치전에서 패배한 전력도 있는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개최지 벡스코를, 인천도 대한민국 항공 관문 인천국제공항을 보유 중이다. 꼭 세계적이진 않더라도 가령 대전의 경우 2025년 연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한 오래된 빵집 성심당이 여행 시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로 등극하며 덩달아 지역 인지도를 높였다. 대구엔 뭐가 있을까. '2025년 대구시정현황'에 따르면 대구 12경(景, 대구의 아름다운 자연·인문 경관)으로 팔공산·비슬산·강정고령보-디아크·신천·수성못·달성토성·경상감영과 옛골목·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동성로·서문시장·83타워(대구타워)·대구스타디움을 꼽고 있다. 국제적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곳, 전국에서 일부러 몰려드는 곳은 어디일까. ◆대구 첫 인상 동성로 '공실' 관광 관문으로 따지면 대구의 유일한 '시내' 동성로를 빼놓을 수 없는데, 처지가 예전 같지 않다. 지난 주간매일 4월 3일 자 '대구경북 소멸 소도시·낙후 원도심 해법은?' 기사에서도 언급한, 14년 만의 가장 높은 공실률 26.9%(2025년 4분기 중대형 상가 기준)을 기록 중인, 즉 4곳 중 1곳은 빈 점포인 번화가가 바로 요즘 동성로다. 홍준표 대구시장 시기에 동성로를 지역 첫 관광특구로 지정하는 등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현실 지표는 뒤로 가고 있다. 랜드마크(동성로) 속 랜드마크가 대구백화점 본점 건물인데, 2021년 7월 폐점 후 현재까지 새 주인을 찾지도 새 단장을 하지도 않은 채 흉물 아닌 흉물로 변모 중이다. 지난 5년 동안 누적된 대구 방문객들의 첫 인상, 즉 초두효과(처음 제시된 정보나 인상이 나중에 제시된 것보다 기억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현상)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이걸 기업(대구백화점)도 지자체(대구시·중구)도 방치했다. 2021년 10월엔 동성로 북편 노보텔 앰배서더 대구 호텔이 폐점한 걸 시작으로 대구시티센터 건물이 공실 수순을 맞았고, 그 동쪽 대구시청 앞 주상복합아파트 부지도 사업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는 등 무더기 공실이 동성로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대구 중구청 청사를 대구백화점 본점 건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이 나오기도 했지만, 막대한 재원 마련 등 현실적 문제와 원도심 쇠퇴라는 거대한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자칫 대구 12경을 함께 구성하고 있는 '경상감영과 옛골목'이 과거 대구 제일 번화가였다가 쇠퇴한 것과 닮은 수순을 동성로도 뒤따라 밟는 건 아닐지. ◆대구읍성과 동대구 히말라야시다 그렇다면 서울 광화문처럼 오래 살아남은 다른 랜드마크에 새 의미를 부여할 순 없을까. 이건 일단 과거가 너무 안 도와준다. 실은 동성로의 탄생 배경이 친일파 박중양의 대구읍성 철거다. 성이 허물어진 구간 사방에 동성로·서성로·남성로·북성로 등 신작로가 만들어졌고 상권도 형성된 것이다. 그러면서 주요 관문도 사라졌는데 서울의 광화문·숭례문 격이 대구읍성의 남문이었던 영남제일관이다. 다른 3개 문과 비교해 웅장했다고 전해진다. 영남제일관은 조선 임진왜란(1592~98) 때 파괴된 걸 1736년(영조 12년)에 재건한 것을 박중양이 1906년 철거한 후 1980년 복원했는데, 원래 위치(대구 중구 남성로)가 아닌 대구 수성구 망우당공원에 세워지며 역사성을 잃었다. 당시 사정이 어떠했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잘 보존된 광화문이 승승장구하는 상황을 지켜만 보게 된 대구는 120년 전 박중양과 40여년 전 대구상징물 복원사업을 벌인 대구시에 연달아 원망 내지는 안타까움을 표출하게 됐다. 이 밖에도 대구 곳곳 지리적 관문이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는데, 현재진행형 사례가 관문 도로 중 하나인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다 수목들이다. 대구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대구도시철도 4호선(엑스코선) 공사 과정에서 357그루 중 일부가 사라질 예정이다. 영남제일관 사례의 교훈을 반영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과 도시의 흥망성쇠 여기까지 눈에 보이는 관문을 얘기했다면, 이제 머릿속에 그려지는 관문을 얘기해보자. 역시 흥망성쇠가 뒤섞여 있다. 과거 대구는 사과의 관문이었다. 전국 사과농업의 효시는 1899년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 에드워드 애덤스와 대구제중원 병원장 우드브리지 존슨이 대구 중구 남산동에 심은 사과나무다. 이후 사과농업이 전국으로 퍼지면서도 사과는 늘 대구가 중심지였다. 원래 능금나무가 많았던 대구 기후에서 사과나무도 잘 자랐기 때문이다. '대구 미인=사과 미인'이라는 인식도 만들어져 공짜로 지역 인지도를 높여줬다. 그러다 1970~80년대 들어 온난화·도시화 여파로 과수원이 줄며 사과 주산지 지위를 북쪽 경북에 내줬다. 이어 통계청은 2030년쯤 대구에서 사과 재배 자체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는데, 이를 몇 년 앞둔 2023년 반전 서사가 작성됐다. 사과 주산지 군위군이 대구에 편입된 것. 여기서 도시 마케팅을 어떻게 펼 지가 관건이다. 마침 군위군은 자체 개발한 신품종 여름 사과 '골든볼' 재배 면적을 확대해 전국 최대 여름 사과 주산지로 조성할 계획인데,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별칭이 생겨났을 정도로 폭염이 유명한 대구가 '여름+사과'라는 브랜딩 기회를 어떻게 살릴지 주목된다. ◆신문왕·왕건·견훤이 잊지 못할 대구 또한 과거 대구는 한반도 정치에 대안과 활로를 제시하는 관문이었다. 역사적 사건이 있다. 1천300여년 전 통일신라 때다. 689년(신문왕 9년) 국가 도읍을 서라벌(경주)에서 달구벌(대구)로 천도하는 계획이 섰다. 676년 신라의 삼국통일 후 13년이 지난 시점에 신문왕은 새 수도 건설로 진골 귀족 세력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달구벌은 신라 오악 중 중심이 되는 중악이자 아버지의 산 부악으로 숭배되며 방어에도 유리한 팔공산이 있고, 분지와 낙동강이 농경과 물자수송에 이점을 보이는 요충지였다. 이는 중앙집권 강화 골자의 9주 5소경 정비 후 화룡점정으로 준비되다 진골의 반발로 중단됐다. 만약 통일신라가 동쪽에 너무 치우친 경주에서 대구로 서진해 혁신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불과 200여년 뒤 닥칠 멸망(937년)을 막을 수 있었을까. 또다른 분기점도 대구가 배경이다. 927년 팔공산에서 후백제 견훤이 고려 왕건을 죽음 직전까지 몬 공산 전투다. 대구는 견훤이 큰 승리를 거둔 승전지였지만, 왕건에게도 비록 패했으나 여러 마을·사찰·바위·동굴이 자기 목숨을 살려준 고마운 땅이었다. 덕분에 왕건은 3년 뒤인 930년 고창(안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후삼국시대 문을 닫는 수순을 밟는다. ◆자유민주 최전선·야당도시 다음은? 대구는 비슷한 역할을 6.25 전쟁에서도 기꺼이 맡았다. 전쟁 초기였던 1950년 8~9월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낸 다부동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최전선에 대구가 있었다. 그렇게 지켜낸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지금 대한민국의 바탕이다. 대한민국의 승전지이자 많은 국민의 목숨을 살린 고마운 땅. 대구는 광복 직후였던 1946년 미 군정의 양곡배급 등 실정에 맞선 10월 항쟁을 일으켜 전국에 퍼뜨렸다. 1950년대 대구는 '야당도시'라는 별칭을 얻었고, 1960년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불의에 항거해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펼친 2.28민주운동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이같은 대구발 시도는 이념 구분을 떠나 한국 정치에 대안과 활로를 제시하는 성격을 강하게 띄었다. 이후 대구는 경북과 함께 묶여 TK라는 약어 및 '보수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 등 역대 우파 대통령 출신지라는 설명도 늘 따라다닌다. 다만 과거처럼 대안과 활로를 제시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어졌다. 그럴 만한 정치 역량도, 그럴 수 있는 정치 거인도 보이지 않는다. 현 제1야당의 정치적 기반이라지만 야당도시라는 수식은 더는 붙지 않는다. 그러면서 보수 정치의 관문이라는 존재감도 꺼지고 있다. 오는 지선은 그 마침표가 될까, 아니면 전환점이 될까.
2026-05-02 14:30:00
지방선거와 대권 나비효과 <下>…朴·李는 지선으로 두각, 文·尹은? [금주의 이슈]
◆朴과 커터칼 "대전은요?" 2006년 5월 31일 치러진 4회 지선은 한나라당이 3회 지선에 이어 재차 압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민주당계 정당이 둘(미니 여당 열린우리당, 호남 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로 갈라진 구도를 공략해서다. 이 압승을 더욱 단단하게 또 인상적으로 구현한 인물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다. 4회 지선 결과는 광역단체장 자리 16개 중 한나라당 12개, 민주당 2개, 열린우리당 1개, 무소속 1개였다. 민주당은 광주와 전남을, 열린우리당은 전북을 차지했다. 즉, 텃밭을 겨우 나눠 먹었다. 무소속 1곳 당선 사례는 제주도였는데,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김태환 후보가 반발해 무소속으로 나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차지했으니 사실상 한나라당의 작품이다. 그리고 나머지 수도권·영남·충청·강원 지역이 한나라당의 파란색으로 칠해졌다. 물론 접전지도 있었다. 대전이었다. 한나라당 출신이지만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전임 대전시장 염홍철 후보가 우세하다는 예측이 나와 여당이 충청권에서 섬 하나라도 얻을 수 있을 걸로 봤다. 그러나 선거일 11일 전이었던 5월 20일, 선거 판도를 바꾸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박근혜 대표가 서울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를 하던 중 괴한으로부터 커터칼로 얼굴에 자상을 입은 것. 이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깨어난 박근혜 대표가 가장 먼저 했다는 말 "대전은요?"가 톱 뉴스 제목이었다. 선당후사(先黨後私, 내 안위보다 당이 우선)라는 말도 띄운 이 사례는 박성효 한나라당 후보의 대전시장 역전 승리 결과를 만들었다. 대전마저 취하며 민주당계 정당 둘을 호남으로 밀어붙이는 구도를 완성시켰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얻은 별명이 '선거의 여왕'이다. 당장은 대권 주자가 되지 못했으나 1년 뒤인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켰고, 다시 1년이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자유선진당·친박연대 범보수 진영을 꾸려 압승을 거뒀다. 물론 위기도 있었지만 뒤집었다. 2012년 19대 총선 땐 전년(2011)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의 후신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과반인 152석(민주통합당은 127석)을 얻었다. 이어 같은해 곧장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51.55%의 득표율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48.02%)를 꺾고 당선, 선거의 여왕 이력의 대미를 장식했다. 4회 지선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21대 대선 국민의힘 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처음으로 서울시장·경기지사에 당선된 선거이기도 하다. 이후 두 사람은 꾸준히 보수 진영 대권 주자의 수식을 얻었다. ◆이재명의 상승가도 이명박 대통령 시기 5회 지선(2010년 6월 2일)과 박근혜 대통령 시기 6회 지선(2014년 6월 4일)은 두 진영이 사실상 무승부 기록을 연거푸 쓴 사례다. 5회 지선은 여당 한나라당이 3·4회 지선 압승 행진을 멈추며 상대적으로 참패한 맥락이고(광역단체장 한나라당 6곳, 민주당 7곳, 무소속 2곳, 자유선진당 1곳 당선), 6회 지선은 여당 새누리당이 선거 2개월 전 발생한 세월호 사고로 악화한 민심을 방어한 형국이다(새누리당 8곳, 새정치민주연합 9곳 당선). 두 선거에서 기라성 같은 광역단체장 당선자 명단이 작성됐지만, 주목할 인물은 정작 기초단체장 당선자다.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다. 그는 2006년 4회 지선과 2008년 18대 총선에서 연거푸 경기 성남 민심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5회 지선에서 처음으로 성남시장에 당선됐고, 6회 지선에서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이 기세를 7회 지선(2018년 6월 13일) 때 경기지사에 당선되며 더욱 높였다. 경기지사 자리는 이후 당권·대권 둘 다 접수하는 정치 행보의 기반이 됐다. 7회 지선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 3월 10일 파면되고 1년 3개월 뒤 실시돼 2차례 이어진 무승부 구도를 깬 선거였다. 14개 광역단체장을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했다. 자유한국당은 텃밭 영남에서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마저 빼앗기고 TK(대구, 경북)만 겨우 지켰다. ◆박원순·오거돈·김경수의 헌납 끝없이 몰락할 줄 알았던 보수 진영 국민의힘은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탄생시킨 직후 치러진 8회 지선(2022년 6월 1일) 때 광역단체장 12곳 당선 성과를 올렸다.(더불어민주당은 5곳 당선) 보수 진영의 7회 지선 참패 원흉이 국정농단으로 파면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면, 진보 진영의 8회 지선 참패는 박원순·오거돈·김경수가 원흉이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공인에 대한 도덕성 잣대가 한층 강화된 분위기가 선거에 짙게 깔렸다. 서울시장의 경우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시장 사망으로 2021년 4월 7일 마련된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됐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재선 시장직에서 사퇴한 후 2번의 선거(20·21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해 정치인생이 끝나는듯 했지만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어 오세훈 시장은 1년 뒤 치러진 8회 지선에서 59.05% 대 39.24%의 득표율로 여유롭게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부산시장 자리는 오거돈 시장이 2020년 4월 23일 성추행 범행을 시인하며 사의를 밝혀 빈 자리를 2021년 재보궐선거 때 박형준 시장이 차지, 역시 1년 뒤 8회 지선에서도 유지했다. 경남지사직은 2021년 7월 21일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대법원 징역 2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며 마침 10개월 뒤였던 8회 지선 대상이 됐다. 이때 박완수 국민의힘 후보가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65.79% 대 29.33%의 압도적 득표율로 꺾었다. 박완수 후보는 창원시장과 창원 의창구 국회의원 등 경남에서만 5선을 한 베테랑, 양문석 후보는 경남 통영 출신이긴 하지만 2차례 국회의원 도전에서 낙선한 풋내기였다. 이후 2024년 22대 총선에서 경기 안산갑 의원으로 당선된 양문석은 사기대출 범죄로 올해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다. 해당 범행은 2021년 이뤄졌는데 8회 지선이 2022년에 치러졌으니, 그가 자칫 경남지사에 당선됐다면 경남도민들은 범죄자 도지사 때문에 또 선거를 치르는 피로감에 휩싸일 뻔 했다. ◆文·尹과의 연결고리는? YS(김영삼) 정부 때 치러진 1회 지선이 DJ(김대중), 2회 지선이 노무현, 3회 지선이 MB(이명박), 4회 지선이 박근혜의 대권을 창출했고, 5·6·7회 지선에서는 이재명이 승승장구한 대권 빌드업이 확인된다. 지선과 대권의 연결고리를 다룬 이 이야기에서 빠진 인물이 文·尹, 두 전직 대통령이다. 문재인의 선거 관련 족적은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친구 노무현의 대권 도전 때 새천년민주당 부산 선대위원장을 맡은 것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초선 배지를 달고 ▷같은해 18대 대선에 나선 것 ▷이후 잠행을 하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로 선출됐으나 ▷20대 총선(2016년 4월 13일) 진두지휘를 김종인 선대위 체제에 맡긴 뒤 ▷재차 잠행하던 중 ▷2017년 박근혜 파면으로 조기 실시된 19대 대선에서 대권을 차지한 것이다. 즉, 지선과는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다. DJ도 평생 2차례(1980년대 미국 망명과 1992년 14대 대선 낙선 후 정계은퇴 선언)한 잠행을 문 대통령은 5년 중 2차례나 시도한 게 대신 드러나는 특징이다. 현역 때 선거를 많이 이끌어보지 못해 아쉬운걸까. 그는 퇴임해 낙향한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에서 지속해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첫 선거인 20대 대선에서 단번에 대권을 잡은 검사 출신 윤석열은 당연히 역대 선거와 인연이 없다. 다만, 간접적 영향이라면 박영수 특검에서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문재인 정부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아 다스 300억원 횡령 등 혐의로 이명박을 구속시킨 게 있다. 그리고 이번 9회 지선은 앞서 박근혜 파면이 보수 참패로 연결된 7회 지선과 닮은꼴일지 여부에, 즉 대통령(윤석열) 파면이 재차 보수 참패를 만드는 '역사의 반복'이 나타날지 여부에 시선이 향하게 됐다. 〈끝〉
2026-05-02 12:30:00
세계가 지구촌으로 묶인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 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일생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 '마이클'이 오는 5월 13일 개봉한다. 그런데 이 영화 포스터는 마이클 잭슨의 6집 앨범 'Thriller'(스릴러, 1982) 커버 디자인을 가져다 썼다. 검은 바탕에 빛나는 황금색 글씨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늘상 평가절하됐던 그가 흑인음악을 넘어 팝 전체의 황제이자 혁명가로 올라선 순간을 표현한 듯하다. 마이클 잭슨은 친형제로 구성된 잭슨파이브(이후 잭슨스)에서 노래와 춤 모두 가장 잘 구사하는 멤버로 주목받았다. 이런 스타성을 바탕으로 솔로로 나서 청소년기에 4장의 앨범을 내놨고, 성인이 돼 만난 흑인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협업한 5집 앨범 'Off the Wall'(오프 더 월, 1979)을 발표했다. 오프 더 월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의 디스코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벽을 뛰어넘는다'는 뜻의 앨범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의 '팝 정복' 야심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음악 경계 허물며 댄스의 시대 열다 두 사람이 3년이라는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낸 후 세상에 공개한 스릴러 앨범에서 그제서야 오프 더 월(벽 허물기)을 구현한 곡이 'Beat It(비트 잇)'이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인생 최초로 록 음악을 접목한 곡이다. 기타리스트들의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연주가 백미인 이 곡은 흑인음악·백인음악 크로스오버의 효시다. 노랫말도 인종차별을 비판한 것이라 오프 더 월의 의미이고, 뮤직비디오도 실제 미 LA의 라이벌 관계인 두 갱단 조직원들이 출연한 가운데 마이클 잭슨이 춤과 노래로 중재하는 오프 더 월의 이야기다. 'Billie Jean(빌리진)'은 대중음악계에 댄스의 시대를 열었다. 불멸의 트레이드 마크로 각인될 춤 '문워크'를 구사하며 그동안 음악에 곁들이는 재주에 불과했던 춤을 음악 만큼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켰다. 마침 음악을 '눈으로 보는' MTV 방송이 대세가 된 분위기에도 올라타 새로운 대중음악 형식을 제시했다. 그래서 빌리진은 화려한 댄스가 필수인 한국 아이돌 음악, 즉 K팝의 근원도 된다. 최초의 아이돌은 영국 록 밴드 비틀즈였으나, 아이돌 산업의 디테일은 마이클 잭슨이 체계화시켜 세계에 퍼뜨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곡은 마이클 잭슨이 작사·작곡도 도맡은 작품이다. 여러모로 마이클 잭슨 그 자체인 곡이다. ◆인류史 최다 판매 음반 앨범 제목과 같은 이름의 곡 스릴러는 뮤직비디오의 위상을 끌어올린 사례다. 타이틀곡이지만 앨범 발매 1년이 다 돼서야 활동에 들어갔는데, 이때 단편영화 수준 뮤직비디오로 관심을 집중시키자는 마케팅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러나 음반사 CBS는 막대한 제작비에 난색을 표하며 지원을 거부했고 이에 MTV 등 영상업계가 투자해 스릴러 뮤직비디오가 제작될 수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늑대인간과 좀비를 연기하며 '좀비춤' 군무도 전개한 13분 분량의 뮤직비디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1983년 12월 3일 MTV로 공개돼 크게 히트했고, 발표 1년이 지난 음반을 다시 차트 정상에 올리는 성과를 냈다. 이후 반세기를 지나며 대중음악계에서 뮤직비디오는 필수로 자리잡았고, 곡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여기기도 한다. 이 세 곡만 살펴봐도 마이클 잭슨이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과 선구자적 안목은 여느 뮤지션과 비교불가이고, 이게 스릴러 음반 한 장에 농축돼 있다. 그래서 누적 7천만 내지는 1억 장 이상이 판매돼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며 앞으로 깨질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기록이라는 수사는 '놀랍다'기보다는 '걸맞다'. 스릴러 앨범이 대중음악 흐름의 선명한 분기점이 되는 걸 목격하고서 1984년 미 타임지는 마이클 잭슨의 영향력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음반·라디오·뮤직비디오의 스타. 음악계를 구원한 사람. 향후 10년 음악의 리듬을 만들어낸 작곡가. 거리에서 가장 화려한 발놀림을 자랑하는 댄서. 취향과 스타일, 심지어 인종까지 모든 경계를 허무는 가수. 마이클 잭슨, 25세.'
2026-05-01 13:30:00
1970년대 전후로 서울 강남을 시작으로 대형 슈퍼마켓 체인이 유명세를 얻자 기존 식료품·공산품·담배·술 등을 팔던 동네 상회·점빵·구멍가게들이 하나둘 '슈퍼' '슈퍼마켓(켙)'으로 개명하기 시작했다. 이어 1990년대 들어 할인점을 표방한 대형마트 체인이 확산하자 여기서 '마트'를 가져와 가게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다 편의점이 대중화되기 전까지, 동네슈퍼·동네마트는 주민들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수시로 드나드는 골목길 핫 플레이스였다. ◆코카콜라 vs 펩시콜라 이걸 눈여겨 본 건 식음료 기업들이었다. 높은 광고 효과를 기대하며 슈퍼 간판에 주력 제품 상표를 가져다 붙인 것. 간판 비용 제공 등의 방법으로 슈퍼 이름 옆에 상표 이미지를 곁들였다. 마치 웹사이트 한켠에 띄우는 배너 광고처럼 말이다. 1980년대엔 콜라 전쟁이 슈퍼 간판에서 펼쳐졌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린 당시 펩시콜라 국내 사업권을 갖고 있던 롯데칠성음료는 콜라계 라이벌 코카콜라가 올림픽 공식 음료로 지정되자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서울 시내 버스정류장 1천800여곳 표지판에 펩시콜라 광고물을 부착한 것. 이에 당시 코카콜라 판매를 맡고 있던 두산식품이 슈퍼 등 소매 점포를 대상으로 코카콜라 제공 간판 부착 사례를 늘렸다. 대구경북 등 다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미료·아이스크림·술 광고 경쟁도 주요 고객인 주부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백설표(현 CJ제일제당 식품 브랜드) 조미료 '쇠고기 다시다'와 '2.5' 등 식료품 광고도 슈퍼 간판에 들어갔다. 슈퍼를 찾는 또다른 핵심 고객은 늘 군것질이 고픈 아이들이었다. 용돈을 모아 사거나, 아빠·엄마를 졸라 사거나. 이에 빙과류 라이벌이던 해태아이스크림(현 해태아이스)과 롯데아이스크림(현 롯데제과) 등 제과업계도 슈퍼 간판에서 광고 경쟁을 벌였다. 대구경북에선 금복주(참소주)와 하이트진로(하이트맥주) 등 주류업체들이 슈퍼는 물론 술집 등 음식점 간판에 활발히 자사 제품 로고를 남겼다. 이런 풍경은 대형마트에 이어 소셜커머스가 득세하고 편의점이 동네 깊숙이 침투하면서, 즉 슈퍼의 시대가 저물면서 함께 사라졌다. 골목길에서 찾을 수 있는 흔적은 살아남은 슈퍼가 교체하지 않은 간판 또는 폐업 후 방치된 간판이다. 다만, 식음료·주류업체들은 고깃집·횟집·주점 등을 상대로 자기 상표나 미녀 전속 모델이 그려진 포스터·앞치마·술잔·병따개·냉장고 등을 제공하고 직원들이 가게를 돌며 손님들에게 숙취해소제 같은 사은품을 제공하는 식으로 과거 오프라인 판촉전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2026-05-01 13:30:00
지방선거와 대권 나비효과 <上>…DJ·盧·MB 발돋움 무대 [금주의 이슈]
대한민국 3대 선거인 대통령 선거(대선), 국회의원 선거(총선), 광역·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및 교육감 등을 뽑는 전국동시지방선거(지선) 가운데 체급만 따지면 가장 낮은 지선은 실은 꾸준히 대권의 향방을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 역대 대통령 상당수가 지선으로 발판을 다져 대권을 거머쥔 것. 지선에서 부는 바람을 주목하면 다음 대권도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바로 나비효과다. 오는 9회 지선(6.3 지선)은 누구를 바람에 실어 하늘 높이 날릴까? ◆DJ의 대권 발판 지방선거 부활 연도는 1991년이다. 그해 3월 26일과 6월 20일 치러졌는데 이때는 기초·광역의원만 선출하고 자치단체장은 뽑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가 1992년 예정됐던 단체장 선거를 비용 부담을 이유로 1995년으로 연기한 것. 그래서 공식적으로 기리는 지선 부활의 해는 1995년이다. 그해 6월 27일 1회 지선이 실시돼 지자체 살림과 그 견제를 맡을 인물들을 뽑았다. 이 선거는 9개월 뒤 15대 총선의 판을 짜는 역할도 했다. 이때 떠오른 인물이 DJ(김대중)다. 그는 공식적인 정계복귀 선언은 하지 않은 채 마치 백의종군을 하듯 민주당 선거 유세엔 참여하며 이기택 민주당 대표와 주도권 싸움을 펼쳤다. 1회 지선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뭉쳐놨던 영남과 충청을 다시 갈라놨다. 그 반사효과로 애초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당이 텃밭 호남과 서울(조순 후보 당선)에서 선전했다. 당시 대구를 제외한 영남을 민주자유당(민자당), 충청과 강원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호남과 서울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대구의 경우 문희갑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는데, 여당인 민자당 소속 조해녕 후보가 무려 4위로 참패했다. 그 원인으로 YS(김영삼) 정부의 대구 홀대론이 첫 손에 꼽힐 정도로 여당 민자당의 입지가 줄어들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DJ는 민주당의 지선 승리 바로 다음달이었던 1995년 7월 정계복귀를 선언했고, 같은해 9월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어 1996년 15대 총선에선 비록 패배(DJ마저 비례대표 낙선)했지만, 때를 기다려 1년 뒤 1997년 15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 3년(1995~1997)을 재평가해보자. DJ에게 ▷1회 지선은 승리 시 정계복귀 선언, 패배 시 잠행 지속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벤트 ▷15대 총선은 비록 민주당계 정당이 둘로 갈라졌으나 그 한 축을 잡고 버티며 주도권 싸움을 한 치킨게임 ▷15대 대선은 불과 1년 전 자신들이 저지른 표 분산을 보수가 '이회창 대 이인제' 구도로 자행한 것에 대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승리에 쐐기를 박은 한판이었다. 지금 어느 잠룡에게 대선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성공 사례를 쓴 DJ의 일정표를 벤치마킹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른바 대권 창출 3개년 계획. 그리고 당시 문희갑 후보가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당선돼 어깨에 힘을 주고 친정 한나라당에 복당, 연달아 재선까지 한 사례는 최근 역대급 공천 내홍 사례를 겪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군들의 심장을 꿈틀하게 만들었을 수도. '나도 문희갑 선배처럼'. ◆바보 노무현의 종로 2회 지선은 DJ 다음 대권을 잡은 노무현 대통령을 주목할 수 있는 선거다. 정확히는 2회 지선 한달 뒤인 1998년 7월 21일 실시된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연결고리를 갖는다. 원래 주인이었던 이명박 의원이 15대 총선 당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조사를 받다 사직해 만들어진 선거다. 이 선거에 노무현 후보가 나서 당선돼 재선으로 체급을 높였다. 그런데 노무현은 자칫 이 선거에 출마하지 못할 뻔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처음 배지를 단 노무현은 1992년 14대 총선 땐 같은 선거구에서 낙선한 후 체급을 높여 1995년 1회 지선 때 부산시장에 도전했지만 또 떨어졌다. 이렇게 낙선 후 되려 체급을 올려 링에 오르는 '저돌적 도전'의 패턴을 기억하자. 노무현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부산을 떠나 종로에 출마했지만 이명박에게 졌다. 그러자 또다시 체급을 높여 1998년 2회 지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때 DJ가 고건 전 국무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했고, 이를 존중한 노무현은 한달 뒤 종로 재보궐선거로 선회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건 후보가 당선됐고, 그 효과를 한달 뒤 노무현이 서울 한복판에서 얻은 셈이다. 여기서 안주했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탄생하지 않았을 터다. 재보궐선거 2년 뒤인 2000년 16대 총선 때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다시 부산으로 갔다. 보통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곳에선 그간 들인 노력과 비용을 따져 최소한 재선엔 도전하는 관행과 달랐다. 더구나 그가 향한 곳은 당선 경험이 있는 부산 동구가 아닌 북구·강서구을이었다. 결과는 허태열 한나라당 후보에게 53.22% 대 35.69%로 패배. 하지만 이 선거 덕분에 노무현은 낙선자임에도 큰 주목을 받으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곤 그가 해오던대로 낙선 후 어김없이 체급을 올려 도전자로 나섰다. 불과 2년 뒤인 2002년 16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종로는 저돌적 도전으로 가득한 그의 정치 인생에서 잠시 숨을 고른 곳일 수도 있고, 아까운 자리였기에 부산으로 향하며 내팽겨칠때 더욱 큰 감동을 만든 요소일 수도 있다. 한편, 정가와 언론에서는 2회 지선을 계기로 비슷한 시기 또는 같은날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비중 있게 주목하고 있다. 오는 9회 지선에서도 자리가 빈 10곳 안팎 선거구에 유력 대권 주자 내지는 저돌적 신예가 출전할지 관심이 향하고 있다. '미니총선' 수준의 재보궐선거와 9회 지선, 두 선거 가운데 어디가 더 관심을 얻고 더 큰 영향력을 낼지 경쟁하는 형국이다. ◆MB의 제2 성공신화 1회 지선은 DJ, 2회 지선(정확히는 한달 뒤 재보궐선거)은 盧가 주인공이었다면, 3회 지선은 MB(이명박)가 주역이었다. 역대 대통령 순서대로(15대 김대중, 16대 노무현, 17대 이명박) 1·2·3회 지선의 핵심 인물을 연결하면 기억하기 쉽다. MB는 2002년 6월 13일 치러진 3회 지선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됐다. MB로서는 1998년 15대 국회의원직을 불명예스럽게 사퇴했지만 4년 만에 몸집을 크게 키우는 기회를 얻었다. 이 기세를 몰아 5년 뒤인 2007년 17대 대선에서 압승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 531만표 차로 승리한 것인데, 당시 역대 대선 최다 표차였던 이 기록은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557만표 차로 승리하며 업데이트됐다. 현대건설 평사원에서 회장까지 오른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 MB는 서울시장과 대통령 자리를 연달아 획득하며 대한민국 경제·정치 분야 모두에서 성공 신화를 쓴 희귀 사례가 됐다. 그가 모시던 '왕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국회 입성은 해봤으나(1992년 14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 대권은 잡지 못한(1992년 14대 대선 3위로 낙선) 것과 늘 함께 언급되는 사례다. 이런 까닭에 MB의 정치 생애에서 점프대가 된 3회 지선은 정계 입문을 노리는 경제인들이 동경할 만한 스토리이지 않을까. MB의 서울시장 당선은 3회 지선 한나라당 압승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광역단체장 자리를 한나라당이 11개, 새천년민주당이 4개, 자민련이 1개 차지했다. 광역단체장 자리를 1회 지선에선 15개 중 4개, 2회 지선의 경우 16개 중 4개를 수확하며 대한민국 정치판의 굳건한 3지대를 형성했던 자민련은 3회 지선에선 텃밭 충남(심대평 후보 당선) 한 자리만 얻었다. 이어 자민련은 4년 뒤인 2006년 해산했다. 김종필 총재가 1995년 창당하고 11년 만이었다. 그래서 3회 지선은 자민련이 사실상 마지막 불꽃을 피운 선거로 기억된다. 〈다음 주 下편에서 계속〉
2026-04-25 12:00:00
한동안 골목길에서 가장 큰 건물은 대중목욕탕이었다. 목욕탕은 최소한 여탕·남탕 2개 층이 필요하고, 숙박시설도 겸하면 층수가 더 올라간다. 목욕물을 끓이는 보일러가 연기를 내뿜을 굴뚝도 높이 세우니, 목욕탕은 골목길에서 가장 몸집이 큰 업종이었다. 동네 대표 랜드마크였다. ◆동네 랜드마크 목욕탕 소멸중 그랬던 목욕탕은 시대 변화에 따라 사양길을 걷고 있다. 온수가 귀하고 씻을 공간도 마땅찮아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목욕 외출을 하던 문화는 집집마다 욕실을 갖추며 옛날 얘기가 됐다. 요지의 대형 사우나·찜질방으로 몸집을 키운 곳 말고 작은 동네 목욕탕은 폐업하는 추세다.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2026년 1월 기준으로 대구에서 영업 중인 목욕탕은 236곳이다. 역대 606곳이 폐업했다. 경북에서는 457곳 목욕탕이 운영되고 있는데, 누적 폐업 업소 수는 571곳이다.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고유가의 위기는 견뎠지만, 지난 2020~2022년 코로나19 대유행은 방역 규제로 목욕탕 폐업을 가속화시켰고, 여기에 시대 흐름이 더해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코로나 유행 3년 간 전국에서 960곳 목욕탕이 줄폐업을 했다. ◆부활 시도도…♨는 역사 속으로 목욕탕의 소멸은 지방소멸의 위기도 여실히 보여준다. 목욕탕이 주민생활권 내에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 사라져 어르신들이 곤혹스럽다. 이렇다보니 강원도에서는 일부 지자체가 직접 목욕탕을 차린다. 폐광이 있는 태백 철암 지역 유일한 목욕탕 철암욕장이 문을 닫자 주민들은 목욕 바구니를 들고 버스로 태백시내 원정목욕을 간다. 이에 태백시가 직접 목욕탕 조성에 나섰다. 실은 수도 서울에서도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동행목욕탕을 운영,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물론 한파·폭염 휴식처로도 활용하고 있다. 한편에선 폐업한 목욕탕을 카페, 술집, 전시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가 주목 받고 있다. 도시재생과 뉴트로(새로움을 뜻하는 New와 복고를 의미하는 Retro의 합성어) 트렌드를 타고 넓은 공간과 탕·타일 등 독특한 인테리어를 남긴 목욕탕 건물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할머니·딸·손녀, 이렇게 3대가 함께 드나들던 목욕탕의 또다른 세대 연결인 셈이다. 다채로운 변화·변신이 이어지는 가운데 쉽사리 볼 수 없게 된 건 목욕탕이나 여관·여인숙 등 숙박업소 간판에 흔히 붙던 '♨' 기호다. 행정안전부는 2008년 3월 온천법 시행규칙을 개정·공포, 일제강점기부터 100여년 동안 사용된 이 로고를 없애고 새 로고를 도입했다. 허가받은 온천만 쓸 수 있다. 다만 소급 적용을 해 기존 로고를 없애는 단속에 나선 건 아니다. 그래서 골목길엔 가야 오래된 ♨ 기호를 발견할 수 있다.
2026-04-24 16:00:00
[금주의 이슈] 정원오·추미애·박찬대, 明 받들겠나이다?
6.3 지방선거 핵심 전장에 출전할 더불어민주당 선수단이 지난 9일 위용을 갖췄다. 이날 정원오 전 서울 성동구청장이 전현희·박주민 국회의원을 제압하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최종 선출되면서다. 이틀 전인 7일 선출된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 일찌감치 지난 4일 단수공천의 선택을 받은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 등 여당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3인 명단이 확정된 것. ◆與 수도권 공천, 국힘과 딴판 셋 중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와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의 경우 과반 득표로 경선을 2인 결선으로 끌고가지 않고 마무리했는데, 후보가 그만큼 파괴력을 냈고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릴 시간도 늘어나는 것이니 탈락한 후보들이야 아쉽지만 당 차원에선 반길 일이다. 당장 라이벌 국민의힘의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과 대비된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은 18일 오세훈 후보를 최종 확정했는데, 오 후보는 정 후보보다 9일 모자란 선거 일정을 얻게 됐다. 정 후보는 현재 국민의힘으로부터 해외출장과 여론조사 언급 등 여러 의혹과 관련한 공세에 직면해 있는데, 이 공세의 과녁이 되는 시간이 길어질지 아니면 되려 방패로 막아 역공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정치 거물과 신예 다크호스 누구도 발탁하지 못한 채 난항을 겪은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공천판은 역시 먼저 추 후보를 링 위에 올린 더불어민주당과 더욱 비교되는 사례다. 추 후보로서는 자만, 방심하지 않는 게 당락의 최대 관건이 되지 않을까. ◆먼저 내달리는 정·추·박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의 이번 선거 경쟁력을 두고는 적진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에두르는 표현으로 우세하게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일 자신의 온라인 정치 플랫폼 '청년의꿈'에 한 지지자가 올린 "추 후보가 당선될까?"라는 질문에 "경기도 국힘 기반 조직은 다 붕괴됐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이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만 선거 때 뒤를 받쳐줄 조직력이 크게 떨어져 있고, 이게 추 후보를 유리하게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 전 시장은 지난 3월 30일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는데, 향후 그가 언급한 인물들의 당선 적중률에도 시선이 향하게 됐다. 시간 여유를 얻은 추 후보는 지난 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경기도 31개 시·군 민주당 지선 후보들이 확정되는 대로 민생현안을 즉시 논의하겠다. 가칭 '더불어민주당 경기민생 대책위원회'를 꾸려 현안에 대처하겠다"고 정책 경쟁 우위에 시간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후보는 누가 뽑히더라도 헐레벌떡 뒤를 쫓아가야 하는 형국이다. ◆明픽 주목 정원오 세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과 연결고리를 하나씩 갖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의 SNS 칭찬으로 '명Pick(픽, 이재명의 선택)'이라는 수식을 얻으며 체급을 키웠고, 결과론이긴 하나 이때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낙점된 셈이다. 이번 경선은 그 찬반 투표정도가 아니었을까.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8일 SNS X(구 트위터)에 성동구가 주민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 92.9%의 긍정평가를 받았다는 기사를 공유하며 "정원오 구청장님이 잘하기는 잘하나 봅니다. 저의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명함도 못 내밀듯…ㅋ"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정원오 구청장은 이 글을 재인용해 "원조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다니…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그는 타칭은 물론 자칭으로 '리틀 이재명' '순한맛 이재명' 등의 별명을 언급했다. 이번 경선 시기엔 '이재명 정부의 서울시장, 하나씩 착착 정원오'라는 슬로건을 썼다. 정 후보는 기초자치단체장이기에 으레 얻는 직함이었을 수 있으나 이 대통령의 당 대표 시기였던 2024년 5~6월 당 대표 자치분권 특보를 맡았고, 이후 대권을 잡은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누적해왔다. ◆'명추연대' 인연 추미애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권 발판이 된 경기도지사 승리를 도왔다고 자평한다. 이 대통령은 2018년 6월 7회 지선 때 재선 경기 성남시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경기도지사에 첫 당선됐다. 이때 추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아 선거 압승을 이끌었다. 추 후보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 대통령 이름 끝 글자와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나란히 붙인 '명추연대'라는 표현으로 이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당선 뒤에 자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3월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당 대표로 있던 시절, (7회 지선)경기도지사 공천을 받은 이재명 후보를 향해 당 안팎에서 온갖 음해와 공격이 쏟아졌다. 주류 세력은 후보를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때 저는 쓸데없는 말에 휘둘리지 말고, 능력을 보라고 했다. 끝까지 지켜냈다"면서 "(20대)대선 과정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갖 유언비어가 당내 경쟁 과정에서 흘러나왔고, 대장동과 같은 거짓 프레임도 그때 만들어졌다. 그래서 저는 '명추연대'로까지 불릴만큼 거짓 음해에 맞섰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TK(대구경북) 출신이면서 민주당에서 거물 정치인이 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추 후보 고향은 경북 달성(이후 대구로 편입), 이 대통령 고향은 경북 안동. 여기에 경기도지사 선후배라는 이력을 추가할지 여부에 시선이 향하게 됐다. ◆친명계 핵심 박찬대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는 셋 중 가장 친명(친이재명) 색채가 짙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 및 본선 선대위 수석대변인을 맡아 친명계 핵심 인사로 부상했다. 인천 연수갑 재선 의원이던 박찬대 후보는 20대 대선에서 패배해 정치인생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었던 이 대통령에게 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를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도 선대위 비서실장을 맡았고 이번엔 당선 결과를 얻었다. 이어 그는 2개월 뒤였던 2022년 8월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로 당선돼 당권을 잡은지 약 2년 후인 2024년 9월 당 원내대표가 돼 수뇌부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러다 2025년 21대 대선에 출마한 이 대통령 대신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는 흔치 않은 인연을 맺었다. 향후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과 동석할 수 있는 인천시장 자리는 그가 친명계 핵심에서 좌장급으로 향하는 코스가 될 수 있다. ◆수도권 석권 역대 3차례 이 대통령으로서는 정원오·추미애·박찬대 세 후보 모두 승리할 경우, 인구수로 보나 경제규모로 보나 지리적 중요도로 보나 중앙정부와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 수도권 지방정부 3곳을 여당 단체장이 이끌게 돼 그만큼 정책을 펴기 수월해진다. 또한 수도권 석권이 곧 지선 압승이었던 전례를 감안하면, '명청대전' 같은 논란 섞인 표현으로 관측되는 당 내지는 민주 진영 장악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이 경우 지선이 대선 바로 다음 해에 열린 탓에 대통령 임기가 무려 4년 남았음에도 선거 결과에 따라 애꿎게 따라붙을 수 있었던 조기 레임덕 우려를 씻어내게 된다. 아마도 2028년 4월 23대 총선까지는 큰 걱정 없이. 한 정당의 수도권 석권은 사실 종종 나오는 사례다. 모두 8차례 치러진 대한민국 지선에서 3회 작성됐다. ▷2022년 6월 3회 지선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안상수 인천시장이 당선됐다. 이를 포함해 광역단체장 16곳 중 한나라당이 11곳, 새천년민주당이 4곳,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1곳을 차지했다. ▷2006년 5월 4회 지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석권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안상수 인천시장이 그 주인공. 광역단체장 16곳 중 한나라당 12곳, 민주당 2곳, 열린우리당 1곳, 무소속 1곳 당선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018년 6월 7회 지선은 리벤지 매치(복수전)가 됐다. 광역단체장 17곳 중 더불어민주당이 14곳, 자유한국당이 2곳을 얻었고, 나머지 1곳은 무소속 차지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을 배출했다.
2026-04-18 17:00:00
[시사뒷담] 흰색 옷만 입으면 백의종군(白衣從軍)? 조국·박민식·한동훈 요즘 패션 코디 살펴보니
선거철 백의종군(白衣從軍) 바람이 또 부는 모양새다. 애국·애민 정신으로 백의종군했던 충무공 이순신을 연상시킬지, 아니면 그저 한자 뜻 그대로 흰색 옷을 입고 전쟁(선거)에 나서는 패션쇼에 그칠지, 지켜볼 일이다. ◆이순신의 재기(再起) 서사 백의종군은 계급이나 직책 없이 군에 종사한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패했거나 실책을 저지른 장수에 대한 징계인데, '공을 세우면 관직에 복귀시켜 주겠다'며 재기의 기회를 주는 처벌이었다. 이순신이 제일 유명한 사례다. 임진왜란 때 조선 왕 선조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1597년 2월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돼 백의종군했다. 같은해 4월 도원수 권율의 군사 자문이 됐다가 7월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하자 다시 통제사로 임명됐고, 곧장 조선 수군을 수습해 전세를 뒤집는 승리를 거둔 게 바로 10월 치른 명량해전이다. 이렇게 버려졌다가 몇 달 만에 공을 세워 영웅이 되는 역전 서사에 비유할 만한 게 현대 정치 속 선거다. 단어 몇 개만 바꿔 다시 적어보자. '공천에서 떨어졌다가 몇 달 만에 당선돼 권력을 얻는 역전 서사'. ◆흰색 옷 선택 후보 점점 늘어 시간이 흐르며 백의종군은 공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뿐 아니라 정계 진출·복귀를 타진하는 것은 물론 잠시 당 노선·색깔에서 탈피하려는 인물들까지 더해, 이들이 주로 흰색 옷을 입고 선거에 뛰어드는 걸 가리키는 표현이 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한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가 유세 때 당색이자 자기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색 말고 흰색 점퍼를 입었다. 보수 표심이 강한 곳에서 괜히 역효과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2016년 20대 총선 땐 '친박'(친박근혜)이 대세였던 새누리당에서 공천배제된 비박계 유승민 국회의원이 탈당 후 자신이 3선을 한 대구 동을에 무소속으로 출마, 4선을 차지했다. 이때 새누리당 상징 붉은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펼쳤다. 다만 글씨는 빨간색을 좀 쓰긴 했다. 흰색 옷 후보는 점점 늘어났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은 정권 심판론이 거세지자 친윤(친윤석열)·비윤 인사 가리지 않고 흰색 의상을 코디했다. 윤석열 정부 국가보훈부 장관 출신 박민식 서울 강서을 후보마저 흰색 점퍼를 입었고, 험지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정운천 후보는 하얀색 개량한복을 입고 '오직 전북'이라고 적힌 흰색 머리띠를 둘렀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보수 지지가 여전한 서울 강남 지역에 출마한 홍익표(서초을), 강청희(강남을), 박경미(강남병) 등 후보들이 당색 파란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택했다. 홍 후보는 언론에 "파란색 점퍼도 번갈아 입는다"며 "정당보다 인물을 봐달라고 호소할 때 흰색 점퍼를 입는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다만, 사례로 든 7명 후보들 중 유승민 후보 빼곤 낙선했으니 효험이 있는지는 아리송하다. 그럼에도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선거운동 때 입을 옷이니, 흰색 점퍼는 사라지지 않았다. 6.3 지방선거 및 같은날 치를 미니총선 수준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조국혁신당은 공식석상에서 당색 파란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착용하고 있다. 먼저 파란색을 당색으로 쓴 더불어민주당과의 차별화 뉘앙스가 읽힌다. 답보 상태인 정당 지지율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재보선 전 지역 공천 선언이 배경이 아닐까. 조국혁신당은 과거 선거철엔 당색 중 하나인 딥블루 색상의 점퍼를 입었다. 역대 손에 꼽을 공천 내홍이 벌어진 국민의힘 대구시장 선거판에선 추경호 예비후보가 흰색 겉옷을 입고 대구 서문시장 등을 누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부산 북갑 재보선 눈길 전재수 민주당 의원이 부산시장에 출마하면 재보선이 실시될 부산 북갑은 흰색 옷 유세 연구 사례가 될 전망이다.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이 이미 소속 국민의힘 당색 붉은색이 아니라 뒤에 'KOREA'(코리아)라고 적힌 흰색 점퍼를 입고 지역을 돌고 있다. 그는 2년 전 22대 총선에서도 흰색 점퍼를 애용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무소속 출마 가능성이 높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최근 흰색 셔츠 차림으로 부산 북구 소재 구포시장과 만덕시장 등을 찾았다. 무소속 후보의 상징색이 하얀색이다. 역시 하마평에 올랐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까지 가세해 흰색 점퍼를 입었다면 더욱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그는 경기 평택을로 출마를 선회했다. 자칫 이들을 보고 네티즌들이 "역시 백의민족"이라는 농담을 던질 수 있는데, 듣고 웃어 넘기면 일류, 발끈하면 하수.
2026-04-18 12:30:00
도시에 반드시 설치되며 시민 대다수가 밟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쇳덩이가 있다. 인간과 지하세계의 연결고리이기도 한데, 지하상가·지하철역 등지와 달리 쉽게 가볼 수 없는 지하공간을 연결한다. ◆길바닥 터줏대감 맨홀 맨홀(Manhole)이다. 상·하수도관, 가스관, 통신선·전선 등을 매설한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를 평소엔 막고 있지만 유지·보수 시엔 여는 뚜껑이다. 보통 둥근 모양이지만, 네모난 모양도 있고, 드물게 삼각형 모양도 있다. 둥근 게 많은 이유는 통로(관로)가 둥글게 설계돼 있어서다. 아래에 매설된 게 뭔지 알아볼 수 있는 정보가 겉면에 표시돼 있는데, 설치 주체이거나 유지·보수 관련 기관·기업 이름정도만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보니 세상에서 사라진 명칭이 지면에 계속 노출돼 행인들을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한번 설치하면 장기간 교체할 필요가 없으니 명칭 변경을 이유로 맨홀을 바꿔 끼우는 건 예산 낭비다. 통신 관련 회사들이 마치 홍보의 일환이었던듯 경쟁적으로 자사 이름을 통신선 매설 맨홀에 새겼다. 두루넷·하나로통신(이상 현 SK브로드밴드), 데이콤·LG파워콤(이상 현 LG텔레콤) 등 옛 기업명을 어렵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골목길에서 우리나라 통신업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셈이다. 대구도시가스(구 대성에너지)와 '체'라는 줄임말로 표기된 체신부(우편·전보 담당 기관, 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의 뿌리. 우체국은 과기정통부 산하 우정사업본부 소속) 등의 사례도 있다. 이런 사례들과 반대로, 변치 않는(좀 더 정확히는 변치 않기를 바라는) 지역 명소를 홍보하는 맨홀 또는 맨홀 디자인의 조형물도 있다. 지면에 설치되는 이정표 내지는 랜드마크다. 대구 중구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철거됐다가 옆 동네인 수성구에 복원된 영남제일관 자리에 그 모습을 새겼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근대골목·동성로·김광석길 등지에 노후 맨홀 뚜껑을 교체하는 겸 계산성당·청라언덕 등 명소 디자인 맨홀을 설치한 바 있다. ◆추락·절도 뉴스 불청객 맨홀은 집중호우 때면 뉴스에 곧잘 오르는, 전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많은 비가 내려 물이 역류해 적어도 수십kg, 무거우면 100kg이 넘는 맨홀이 열리며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사람이 빠졌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이어진다. 쇠로 된 맨홀이 많지만 2000년대 초반 전국에 저렴한 비용과 미관 개선을 이유로 콘크리트 맨홀이 꽤 설치됐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며 균열이 일어나고 파손되면서 보행자가 맨홀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도 잇따랐다. 그러자 추락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관련 기관장이나 지자체장이 직접 올라 서서 안전성을 입증하는 사진이 마치 유행처럼 보도자료로 뿌려졌다. 맨홀은 범죄 뉴스에도 등장한다.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맨홀 자체를 훔쳐 고철로 판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거나, 맨홀을 열어 그 안에 있는 구리선을 절단해 훔친 일당이 경찰에 검거되거나다. 이는 당시 철과 구리 등 금속류 원자재 가격이 꽤 상승했다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민생경제는 그만큼 팍팍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2026-04-17 11:45:00
영화 접속(1997)은 음악을 빼면 완성되지 않는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대표 사례다. 다른 예를 살펴보면 판소리 붐을 일으킨 영화 서편제(1993)가 있다. 서편제는 락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국악을 체득해 국악인으로 나선 김수철의 음악세계가 영화음악으로 구현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블록버스터급 제작비 30억원이 투입된 영화 쉬리(1999)는 음악감독 이동준이 70인조 관현악단을 동원해 할리우드 첩보물 체급의 리듬과 공간감을 만든 사례다. 접속은 이들과 결이 좀 다르다.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는 선곡이 다른 요소들을 압도한 사례다. 새로운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과거의 좋은 음악을 골라 써 폭발력을 내는 건 영리하기까지 한 일이다. ◆PC통신 넘어 음반으로 접속 영화 '접속'은 PC통신으로 인연을 맺은 남녀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좀 더 중요한 매개체가 있다. 음반이다. 라디오 음악 방송 PD로 일하는 동현(한석규 분)은 어느날 옛 연인이 우편으로 보낸 한 장의 레코드판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을 방송으로 틀자, 그걸 듣고 매료된 수현(전도연 분)이 레코드 가게에서 해당 음반을 찾지만 구할 수 없다. 결국 PC통신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음악을 한 번 더 틀어달라고 신청한다. 이에 동현은 신청자가 혹여 옛 연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PC통신에 접속, 수현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내 수현이 옛 연인이 아니란 걸 알게 되지만, 둘은 옛사랑과 짝사랑이 만든 열병을 앓는 닮은 처지가 서로 끌렸던지 온라인으로 계속 교감한다. 두 사람을 PC통신으로 연결시켜 준 곡은 미국 락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1969년 발표한 3번째 앨범 수록곡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다. 해당 음반은 영화 초반부 동현에게 전해지며 등장, 후반부 동현을 기다리는 수현의 손에 들려진다.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수미쌍관이다. 접속이라는 제목을 단순히 해석하면 그 수단인 PC통신을 떠올리겠으나, 좀 더 깊게 보면 두 사람이 감정을 이입(접속)한 음반이 핵심 매개체다. 영화의 결승선 바로 앞에선 음악의 바톤 터치도 극적으로 이뤄진다. 미국 재즈 뮤지션 사라 본의 어 러버즈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가 두 사람에게 마치 봄비처럼 내린다. "How gentle is the rain that falls softly on the meadow(들판을 부드럽게 적시는 빗방울들은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로 시작하는 노래다.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페일 블루 아이즈가 지나가고 마치 언약식처럼 사랑을 축복하는 노랫말의 곡이 영화 엔딩을 장식하는 것이다. ◆전도연·조영욱의 출세작 두 곡을 비롯해 영국 소울 뮤지션 더스티 스프링 필드의 사랑의 모습(The Look of Love) 등 선곡 리스트가 일품이다. 음악감독 조영욱의 솜씨다. 작곡가 출신이 아니라서 대신 작곡팀을 지휘해 영화음악을 만들고 이에 더해 선곡으로 승부를 보는 이례적 스타일인데, 특히 박찬욱과 여러 작품에서 협업했다. 이등병의 편지(김광석)를 삽입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시작으로 박찬욱 영화의 강점인 미쟝센을 소리로 구현한 셈인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헤어질 결심(2022) 등의 음악을 작업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자전거 탄 풍경)의 도입부 기타 연주가 흘러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영화 클래식(2003)과 한국 느와르의 아이콘이 된 영화 신세계(2013)의 음악도 프로듀싱했다. 조영욱이 이렇게 한국 영화음악을 이끌어온 경력의 출발점에 접속이 있다. 즉, 그의 영화음악 데뷔작이다. 마찬가지로 장윤현의 영화감독 데뷔작이자 드라마 출연만 하던 전도연의 영화배우 데뷔작이기도 하다. 접속으로 조영욱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장윤현은 대종상 신인감독상, 전도연은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과 대종상 신인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이를 포함해 접속은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7개 트로피, 청룡영화상에선 한국영화최고흥행상 등 2개 트로피를 수확했다. 접속 OST 음반은 공식적으로 80만장 이상, 비공식적으로는 100만장 이상 팔려 지금도 깨지지 않는 한국 영화 OST 음반 판매량 1위 기록을 갖고 있다. 영화 역시 1997년 추석 때부터 연말까지 전국 150만 관객을 그러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음악으로 승부하고픈 한국 영화라면 여러모로 닮고 싶은 기록이 아닐까.
2026-04-17 11:44:00
[골목뒷담] '컴퓨터' 세탁 다음은 'AI(인공지능)'?
골목길에 '슈퍼' 만큼 흔했던 업종이 있다. '세탁소'다. 슈퍼는 이름의 흥망성쇠가 잘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구멍가게' '점빵' '상회' 등으로 불리다 1970년대 전후 서울 강남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확산하며 유명세를 탄 대형 슈퍼마켓 체인의 영향을 받았다. 그보단 체급이 작은 '미니슈퍼'라고 하더니 미니라는 접두어를 뺀 것이다. 이어 1990년대 들어 할인점을 표방한 대형마트 체인이 퍼지자, 여기서 '마트'를 가져다 쓰기도 했다. 그렇게 존속하던 동네슈퍼와 동네마트는 대형마트·편의점의 득세로 힘을 잃은 모습이다. 생존을 위해 편의점으로 옷을 갈아입은 슈퍼는 꽤 된다. ◆80년대 컴퓨터크리닝 전성 세탁소는 어땠을까? 1980년대에 전자동 세탁기가 보급되자 '컴퓨터'라는 표현을 붙였다. 세탁을 가리키는 클리닝(cleaning)의 옛날 표기이자 물 대신 유기용제를 쓰는 드라이크리닝의 준말이기도 한 '크리닝' 앞에 붙였다. 컴퓨터크리닝이라는 표현이 유행한 것이다. 단순하긴 하지만 컴퓨터 회로가 탑재된 세탁기를 쓰는 것이니 어불성설은 아니었다. 1980년대 신문을 살펴보면 '세탁업소의 컴퓨터 시대 선언'이라는 광고도 찾을 수 있다. 광고에선 현대컴퓨터크리닝 사장님이 "88올림픽도 있고 국민 위생 문제도 있고 하니"라고 추천하고, 원미컴퓨터크리닝 주인장도 "미국에 사는 동생이 귀국해 미국을 예로 들며 권장하더라"고 호평했다. 당시 컴퓨터 또는 콤퓨터 따위의 표현은 전자동 방식과 최신·첨단을 강조하는 마케팅 맥락에서 세탁기 말고도 각종 가전 등 전자기기에 붙었다. 1990년대 들어 세탁소 업계는 재차 변화를 맞았다. 세탁기가 가정마다 보급되면서다. 이에 세탁소들은 드레스 셔츠와 운동화 같은 전문·특성화 세탁을 강조하고 나섰고, 1인 가구 증가엔 셀프세탁소(코인 빨래방)가 대응했다. 가정용 소형 세탁기로는 소화할 수 없는 이불 세탁, 세탁기보단 보급률이 떨어지는 건조기 이용을 제공하는 전략도 펼쳤다. ◆동네 세탁소 퇴장…시장은 확장 그러면서도 컴퓨터크리닝 다음 기술 혁신이 반영된 표현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실은 컴퓨터크리닝에 앞서 '고속세탁'이라는 표현이 세탁소 사이에 유행한 바 있다. 시대를 되돌아보면 고속 다음 컴퓨터 다음 수식은 '스마트'나 요즘 유행하는 'AI'(인공지능)가 됐을 법도 한데. 대신 힘을 얻은 키워드는 '프랜차이즈'와 '온라인 플랫폼'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세탁소 수는 2017년 2만7천곳에서 2023년 2만곳 안팎으로 줄었고 지금은 1만여곳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그럼에도 국내 세탁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5조원이었던 게 2026년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동네 세탁소의 빈자리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채우는 한편 아직은 점유율이 낮은 온라인 세탁 플랫폼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2026-04-10 12:00:00
지난 3월 말 두 인물이 교차하며 두 정당의 상반된 처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3월 30일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선을 집중시킨 하마평을 현실로 구현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대구시장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것. 이 이슈는 광역시·도 인구수 7위로 추락한 대구를 부산·경기·인천보다 주목 받고 서울에도 견줄만한 체급의 선거판으로 끌어올렸다. 사실 김부겸 전 총리가 움직이기 전부터 대구는 눈길을 끌긴 했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공천 내홍으로 말이다. 그 장본인 이정현 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바로 하루 뒤인 3월 31일 사퇴했다. 지역주의를 타파해 본 이력(김부겸 2016년 20대 총선 대구 수성갑 당선, 이정현 2014년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선)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남긴 족적과 밟을 행보는 더 좋은 대한민국 정치를 위한 분석 자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정현에 의해 뒤틀렸고(공천) 김부겸에 의해 재차 뒤틀릴 수 있는(본선) 대구는 특히 더. ◆한 달 만 사퇴→이틀 뒤 번복 이정현 전 공관위원장은 지난 2월 19일 공관위 출범과 함께 '현역 단체장 물갈이'를 예고하며 대대적 혁신을 천명했다. 이어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13일 사퇴 입장을 밝혔다. 이때 대구시장을 비롯한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 방식 등과 관련한 당 지도부·공관위 내부 이견 문제가 드러났다. 당시 장동혁 당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간 당 노선 갈등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일종의 항의성 거취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힘을 실어달라는 항의이자 당 지도부와의 힘겨루기라는 것. 실제로 그는 당 지도부 설득을 받는 모양새로 이틀 뒤인 3월 15일 복귀했다. ◆감 떨어진 부산 공천 해프닝 보통 이쯤에서 갈등은 봉합되고, 공천 과정은 죽을 힘을 다해 스포트라이트를 끌어 와 유권자의 호감을 높이는 마케팅 과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의 복귀 후에도 악재는 쏟아졌다. 부산시장 공천에서 현직 박형준 시장을 컷오프하고 주진우 국회의원을 단수공천한다는 얘기가 3월 16일 알려지자, 주진우 의원 본인까지 포함한 부산 소속 국민의힘 의원 17명 전원이 "부산시장 후보의 경쟁력을 스스로 낮추는 결정을 재고하라"며 경선을 요구했다. 왜였을까.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부산에서 내리 3선에 여당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출마가 예상되는데, 직전 2022년 8회 지선의 변성완 후보(득표율 박형준 66.36%, 변 32.23%)나 2021년 재보궐선거 때 김영춘 후보(박 62.67%, 김 34.42%)와 체급 자체가 다르다. 더구나 전 의원이 4월 30일 전 사퇴할 경우 지선과 함께 치러질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 출마 후보군으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대권 잠룡들이 거론된다. 이처럼 주목도가 커진 부산 선거판에서 국민의힘 부산시장 공천은 힘 빠지는 단수공천보단 흥행몰이를 위한 경선을 택해야 한단 걸 의원들은 물론 부산시민들도 알고 있었다. 즉, 삼척동자도 아는 걸 이 전 위원장은 몰랐던 셈이니 그의 정치감각에 의구심이 향할만했다. 결국 사흘 후인 3월 19일 국민의힘 공관위는 두 사람(박형준, 주진우) 간 경선으로 부산시장 후보를 결정키로 했다. ◆대구 공천 '실험장' 멸칭 대구시장 공천은 '공천실험장'이라는 멸칭을 얻으며 대한민국 헌정사 공천 파국의 주요 사례로 추가될 전망이다. 역시나 흘러나온 얘기가 갈등의 불씨가 됐다. 중진 의원들을 컷오프시키고 신예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초선 최은석 의원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내용이 3월 16일부터 언론 보도를 도배했다. 이어 3월 22일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이진숙 전 위원장을 컷오프시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주 부의장은 컷오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되는 촌극을, 이진숙 전 위원장은 선거판을 떠나지 않고 대구에서 유세를 벌이는 촌극을 펼쳤다. 절차상 하자 문제도 있었다. 충북지사 공천에서 컷오프된 현직 김영환 지사가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 법원은 국민의힘 당규 11조에서 공천신청 관련 제반 사항을 당 홈페이지 등으로 3일 이상 공고하고 공천신청 접수기간은 15일 이내로 해야하는 걸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인재 수혈은커녕 이탈 러시 이정현 전 위원장의 또다른 직무유기는 새 인재를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대표 사례가 경기지사 공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김동연 현 지사 및 추미애·한준호 의원 간 중량감 있는 경선을 흥행카드로 내세운 반면(추미애 후보 선출), 국민의힘에서는 양향자 최고위원과 함진규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이 등판했는데, 애초 후보군으로 거론된 안철수·나경원·김은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 거물급 가운데 단 1명도 섭외하지 못한 꼴이다. 시정 홍보에 한 획을 그은 '충주맨'을 기용해 전국구 인지도를 얻어 소속 당의 선거 흥행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조길형 전 충주시장은 국민의힘 충북지사 공천 잡음에 분노하며 이탈했다. 그는 지난 3월 1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특정인의 새치기 접수"라는 표현으로 김수민 전 의원의 뒤늦은 후보 접수를 꼬집으며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고 예비후보에서 사퇴했다. 이어 김수민 전 의원은 김영환 지사 가처분 인용 결과가 나오자 "추가 공모 절차 자체가 당규 위반이라는 법원 판단으로 저의 국민의힘 후보 자격은 상실됐다"며 출마를 접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 위원장은 조길형·김수민 둘 다 '날리는' 실책을 저지른 셈이다. ◆민주당 대어 김부겸 수혈 성공 국민의힘 수혈 난국과 정반대 분위기를 더불어민주당은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캐스팅으로 강하게 누렸다. 3월 중하순 점점 달아오른 하마평, 3월 30일 김 전 총리의 출마 선언, 이어진 언론의 집중 보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공관위의 김 후보 '만장일치' 단수공천 등 일련의 과정엔 잡음도 이견도 없었다. 이 과정을 관리한 김이수 민주당 공관위원장은 여전히 이름이 낯설다. 그만큼 언론 보도에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정당의 공당(公堂) 브랜드 격차가 읽힌다. 반대로 이 전 위원장의 전남광주특별시장 셀프 수혈(출마)은 빛을 못 받고 있다. ◆12년 전 이정현의 전성기 이런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을 실은 이정현 전 위원장이 12년 전 몸소 겪은 바 있다. 그가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간판을 달고 호남 유일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다. 이 전 위원장은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서갑원 후보와 맞붙었다. 그런데 순천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서 후보를 재출격시킨 건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실책이었다. 서 후보는 18대 의원 임기 중이던 2011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그런 인물을 불과 3년 뒤 같은 선거구에 내보낸 것이다. 아울러 그의 과거 실책이 업보마냥 각종 잡음을 만들었다. 이를 이 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홍보수석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 지원사격도 거부한 채 자전거 민심 유세로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위원장은 여당 후보임을 내세워 예산폭탄 공약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예산폭탄을 준다는데 그거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제가 반대할 것"이라며 "서 후보를 국회로 보내주시면 찬성할 것"이라고 말한 게 '협박성 발언' '순천·곡성 주민을 개·돼지로 본다' 등의 역풍을 불렀다. 결과는 49.43%(이) 대 40.32%(서), 9%포인트 앞선 승리였다. 고향 곡성에서는 무려 70.5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부겸·이정현 '평행이론' 성립? 12년 뒤 김부겸 전 총리가 나설 대구시장 선거는 묘하게 이정현 전 위원장의 그때 그 선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닮은 점이 적잖다. 우선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단체장 사퇴에 따른 궐위를 채우는 성격이라 정규 지선보단 재보궐선거의 냄새를 풍긴다. 홍준표 전 시장은 21대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해 4월 11일 대구시장직을 중도사퇴했다. 이 전 위원장은 잇따라 의원직을 잃는 실책을 저지른 후보 및 당(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반감을 공략해 호남에서 이겼다. 김 전 총리도 대구 내지는 영남의 국민의힘 심판 분위기를 파고들 모양새다. 여기엔 홍 전 시장이 대권 도전을 위해 매듭짓지 않은 대구시정에 대한 평가도 곁들여질 전망. 이 전 위원장이 구사한 예산폭탄 공약은 김 전 총리도 제시한 상황이다. 김 전 총리는 지난 3월 30일 대구 2.28기념중앙공원 출마선언 자리에서 "이번 기회에 김부겸이 한 번 써먹으시라"며 "제가 시장이 돼야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임기 4년 남은 이재명 정부와의 협력 속에서 대구경북 행정통합, 통합신공항 이전, 취수원 문제 등 지역 현안을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당과 맞서야 할 땐 맞서겠다며 순천·곡성에서 이 전 위원장이 당과의 분리 전술을 취한 걸 떠올리게 했다. 김 전 총리는 이달 3일 공천 면접 후 당과 지역 민심이 충돌할 경우 어찌 할지 묻는 취재진에 "불가피하게 대구시민 입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당 입장에 무조건 맞출 수만은 없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2026-04-10 11:30:00
가수왕, 가왕, 가황, 몇대 천왕 등의 수식이 시대마다 노래 잘 하는 이들에게 붙는다. 그런데 '가객'이라는 수식은 웬만해선 이 사람한테만 달린다. 김광석이다. 올해(2026년)는 그의 30주기이다. 그의 명곡들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등이 연달아 초연 무대를 펼친 2012~2013년처럼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연초부터 추모 공연이 열리고 헌정 앨범이 발매되는 등 다시 김광석 바람을 부를 모양새다. 그가 떠난지는 30년이 흘렀고 1984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 참여로 데뷔한 지는 40년이 넘었다. 이렇게 긴 시간 희미해지지 않고 계속 다시 불리어지는 저력은 같은 표현이 제목인 앨범 '다시 부르기' 1(1993)과 2(1995)에서 나왔다. ◆10년차의 거듭남, 다시 부르기 김광석은 1980년대 노찾사와 밴드 동물원 활동을 거쳐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 건 솔로 활동을 펼쳤다. 1집(1989)이 '기다려줘'와 '너에게'를 띄웠고, 2집(1991)에선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이 큰 사랑을 받았으며, 3집(1992)은 좀 더 자기 색깔을 찾은듯 했으나 전작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즉, 노래 참 잘 하지만 멀리서 보면 가요계 여느 장르에 늘상 몇명은 있는 그런 재능 있는 가수 중 하나에 머물렀다. 이후 김광석은 한 달 간 서울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 나섰다. 자신의 음악 인생 10년을 중간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는데, 이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잘 소화하는' 것 아니었을까. 나를 잘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내가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잘 전해주는, 마치 연사나 이야기꾼이 되는 것.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들은 물론 평소 애창한 곡들도 공연 리스트에 올렸다. 이를 좋게 지켜본 지인들의 제안으로 공연 곡들을 수록한 다시 부르기 1이 발매됐다. 자기 노래 및 친정인 셈인 노찾사·동물원의 곡들이 앨범 대부분을 채운 가운데 1번 트랙이자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이등병의 편지'가 눈길을 끈다. 김현성이 1986년 발표한 곡을 들국화의 전인권이 1990년 리메이크한 걸 김광석이 1993년 다시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김광석 원곡으로 알았고 또한 지금도 그렇게 아는 경우가 적잖다. 그리 착각하게 되는 건 김광석의 놀라운 소화력 때문일 것이다. ◆힘껏 다시 불러 영원한 가객으로 김광석은 다시 2년 뒤 내놓은 다시 부르기 2에서는 이등병의 편지 같은 사례를 늘렸다.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선배 포크·블루스 뮤지션들의 곡을 다시 불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미국 포크 가수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1963)를 양병집이 역(逆, 1974)이라는 제목으로 각색한 걸 김광석이 새 제목을 지어 열창한 사례다. 노랫말을 보면 땅꾼이 독사에게 잡혀가는 등 사회가 뒤집힌 세태를 풍자했는데, 앨범 표지를 신문 1면 스타일로 패러디한 것과 함께 김광석이 마치 조선시대 때 풍자 시인 김삿갓으로 변모한듯한 뉘앙스도 풍긴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원곡 가사 그대로 다시 불렀을 뿐인데 좀 더 울컥하게 만든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이라는 부분을 녹음할 땐 실제 대구 방천시장 전파상 막내아들로 태어났던 김광석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소주 한 잔 마신 후 녹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 부르기 전에 깊숙이 공감(즉, 소화)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물이 다시 뭇사람들로부터 눈물을 부른다. 다시 부르기 1·2는 어떤날 출신 조동익의 감각적인 편곡과 함춘호·손진태 등 실력파 세션진이 김광석을 주인공으로 만든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광석은 평소 즐겨 부르던 음악계 선배·동료들의 곡을 정성을 다해 앨범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그랬더니 그 곡들이 마치 보답인듯 오랜 시간 조명처럼 김광석을 비추고 있다. 김광석이 일취월장 행보를 보인 두 리메이크 앨범 발매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등 명곡들로 가득한 최고작 4집(1994)이 탄생한 건 우연이 아닐 터다.
2026-04-03 12:30:00
[커버스토리] 대구경북 소멸 소도시·낙후 원도심 해법은?
◆부산 지방소멸 대책 '원도심 통합' 30년 전엔 분리를 발전의 지표로 반겼으나 시간이 지나자 생존을 위해 통합을 타진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지방소멸 위기를 대구 만큼 체감하고 있는 부산에서다.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5년 부산에서는 북구에서 사상구가, 남구에서 수영구가, 동래구에서 연제구가 각각 독립했다. 또한 옛 동래군 지역을 기장군으로 출범시켜 현재 부산의 15구 1군 체제를 갖췄다. 이 가운데 부산 원도심 지역인 중구·동구·영도구·서구가 급속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도심 노후화, 낮은 재정자립도 문제를 타개하고자 2017년부터 통합을 도모했다. 가만히 있으면 4개 구 각자 소멸하기 때문에 시급히 합쳐 인구 40만 규모의 통합구를 출범시켜야 하고, 이를 통해 먼저 합체했던 경남 창원(창원·마산·진해)과 충북 청주(청주·청원)처럼 정부 재정 인센티브 지원·중복 예산 절감·특화사업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이듬해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이 낙선하고 4개 구 구청장도 전원 교체되며 추진 자체가 멈췄다. 같은 원도심 문제 해결 취지의 인천 중구·동구 통합 제물포구 출범은 유정복 인천시장이 취임 첫 해인 2022년부터 밀어붙여 임기 중 완료한 것과 강하게 대비된다. 손 쓸 타이밍을 놓친 걸까. 8년이 지나며 중구(인구 4만4천→3만6천), 동구(8만8천→8만3천), 영도구(12만3천→10만1천), 서구(11만→10만1천)는 인구가 지속해 유출, 부산 지자체 인구 최하위권 순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은 원도심 뿐 아니라 부산 전체 인구가 같은 기간 347만에서 323만으로 크게 줄었다. ◆소멸 마지노선 '2만명' 소도시 네트워크 정답이 없기에 통합, 분구, 편입 등 행정구역 개편은 자칫 포퓰리즘에 활용될 여지도 적잖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하다. 대구경북이 여실히 겪고 있는 지방소멸 위기를 인구수가 적은 시·군은 더욱 절감하고 있는데, '인구 2만 이상 확보'라는 통합 공식이 제시돼 눈길을 끈다. '지방소멸대응 소도시 재구조화 전략'(2024)을 펴낸 김준우 대구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인구 21만 이하 소도시가 지방소멸에 가장 취약하다. 경북 250개 읍·면·동의 소멸위험지수와 인구 지속가능성을 분석했더니 소멸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인구수는 2만 이상, 소멸위험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 인구수는 1만 이상"이라며 "인구 2만 이상 자생력을 가진 강소도시와 규모는 작지만 역사·문화 자산이 있는 특화마을을 육성하고 연계해 네트워크형 소도시 구조를 만들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꼭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형식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실질적 생활권 구축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지난 2024년 한국정책학회 발표에서 각 인구 5천 안팎이며 서로 접한 경북 문경시 산양면과 예천군 용궁면 사례를 들어 "이들을 합쳐 인구 2만의 소도시를 조성할 수 있다. 자율주행이나 드론 같은 미래 기술을 사용하면 콤팩트하게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방안을 제시했다. ◆'지혜로운 축소' 저성장 도시 해법 될까 부산의 통합구 시도와 인천의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서해구 신설은 낙후한 원도심 부활에 대한 고민이 공통 배경이다. 이 고민을 대구도 갖고 있다. 과거 도심(향촌동 일대)과 현재 도심(동성로 일대) 둘 다 자리한 대구 중구 인구는 2021년 7만4천으로 바닥을 찍은 후 매년 증가해 올해 10만을 돌파, 고민에서 탈피하는듯 보인다. 착시일 수 있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집중된 덕분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지난해 4분기(10~12월) 동성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16년 만에 가장 높은 26.9%까지 치솟은 상황과도 큰 괴리를 보이기 때문이다. 자칫 인구수가 다른 현실을 가리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빈 공간을 다시 채울 동력이 부족한 곳엔 콤팩트시티(압축도시)가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성장기엔 도심 외곽 신도시를 개발한 것과 반대로 빈 도심에 주거지, 직장, 상업·문화시설을 집적해 공간 효율을 끌어올리고 생활 편의성도 높이는 도시계획이다. 13년 전 '도시축소의 시대'(2013)를 펴낸 야하기 히로시 일본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당시 이같은 집약형 도시구조를 골자로 하는 축소도시 개념을 소개하며 "'지혜롭게 쇠퇴하기'와 '보다 작게 성장하기'의 찬스"라고 강조, "풀세트형 도시 기능을 가지기 힘든 축소도시들은 서로 기능을 분담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찾게 된다"고 전망했다.
2026-04-03 12:00:00
[시사뒷담] 김부겸, 6년 전 다짐 실현할까? 팔았던 대구 집은 어떻게?
6.3 지방선거 대구시장에 공식 출마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6년 전 말과 행동이 눈길을 끈다. '꿈보다 해몽'일 수 있지만, 6년 뒤 지금을 내다본듯 해서다. ◆6년 전 낙선 직후 "다시 싸우겠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계 후보로는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최초로, 그것도 대구 정치 1번지 수성갑에서 당선되며 새로운 정치 풍토를 만들지 주목됐다. 하지만 2020년 21대 총선 때 같은 선거구에서 주호영 현 국회부의장에게 졌다. 고배를 마신 직후 찾은 곳이 바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었고, 여기서 재기를 다짐했다. 김 전 총리는 2020년 4월 24일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후 페이스북 글을 통해 고인의 변호사·재야운동 시기를 언급하며 "그분만큼 상처투성이도 없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자신의 낙선과 비교했다. 이어 "다시 툭툭 털겠다. 보란 듯이 일어서겠다. 그게 지역주의의 부활이 됐든, 보수 최후의 보루가 됐든, 영남에 똬리 튼 보수 일당 체제를 깨기 위해 다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 언급에 대해서는 2년 뒤인 2022년 20대 대선 도전을 가리켰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낙선했으나, 불과 2년 뒤였던 2002년 16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러한 '2년 뒤 재기' 스토리를 다시 쓰려했다는 얘기다. 다만, 김 전 총리에게 대권 도전 기회는 더는 주어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20·21대 대선은 이재명 대통령이 연달아 주인공이었다. 대신 그에게 이번에 다른 기회(대구시장 출마)가 주어졌다. 성공 시 대권 디딤돌로도 삼을 수 있는 기회다. ◆일찌감치 "TK 행정통합" 주장 김 전 총리는 2020년 7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페이스북에 '행정수도 완성은 노무현의 꿈'이라는 제목의 글로 포부를 밝혔다. 내용을 살펴보니 그 연장선상의 공약을 이번 대구시장 도전 때 내세울지 시선이 향하게 된다. 6년 전 글이지만 지금 대구 처지를 적확히 짚어서다. 그는 7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는 더 심각해졌다. 해법은 행정수도"라며 "수도권 일극 중심체제를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수도권은 수도권에 버금가는 광역권 '상생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구·경북에 통합신공항과 통합광역행정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대구경북통합론은 이후 2024년 5월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으나, 최근 통합 논의가 난항에 빠진 상황에서 지선을 맞게 됐다. 한편, 김 전 총리는 6년 전 당 대표 선거에선 이낙연 후보에 밀려 2위로 쓴잔을 마셨다. ◆떠나며 수성구 만촌동 집 팔았지만 김 전 총리가 떠난 사이 대구 민심이 어떻게 얼마나 변화했을지에도 관심이 향한다. 6년 전엔 그의 대구 수성구 범어동 소재 사무실에 계란 투척이 이뤄진 바 있다. 2020년 3월 24일 오후 9시 40분쯤 40대 남성 A씨가 사무실 출입문에 계란을 던지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적은 종이를 붙였다. 이에 대해 이튿날 김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처벌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배후가 있거나 조직적이지 않은, 우발적 행동을 한 것일 경우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의 대구시장 출마 수순에 곁들여지는 관심은 그의 대구 거주지 문제다. 시장 당선 시 직전 홍준표 시장처럼 관사에 입주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러지 않고 '대구 살던 대구시장'이라는 상징적 사례를 쓸 수 있었다. 대구 집을 안 팔았다면 말이다. 2021년 4월 21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삼으며 국회에 제출했던 인사청문안을 통해 그가 수성구 만촌동 아파트를 매도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우리 동네 아파트"라고 언급해 많은 유권자의 기억에 남았던 그 집이다. 이어 그는 같은해 9월 9일 총리 신분으로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 "최근 대구 집을 팔았다"고 털어놓으면서 "식구들이 여러가지로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고 예전부터 전원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경기 양평군 강하면에 전원주택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렇게 타향이 되는듯 했던 '대구'라는 키워드가 다시 그의 정치인생에 따라붙게 된 맥락이다. 정치도 생활도 모두 떠났던 김 전 총리의 대구 '컴백' 시도는 어떤 결과를 맞을까.
2026-04-03 12:00:00
[금주의 이슈] TV·신문 힘 잃은 '시사풍자', OTT·유튜브 대세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여기서 각설이는 OTT 쿠팡플레이에서 지난 3월 28일부터 새 시즌(리부트 시즌8)을 방영 중인 'SNL코리아'다. 본래 의미인 떠돌며 구걸하는 광대가 아니라, 잘 나가는 시사풍자 미디어다. SNL코리아는 선거철과 인연이 깊은데, 지난해 21대 대선 기간엔 유력 정치인들을 대거 출연시켜 정치풍자의 재료로 활용했고, 올해 6.3 지방선거 시즌에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첫 방송에 섭외하는 등 선거판 주요 무대 중 하나를 차지할 전망이다. 정치인들은 자칫 망가지더라도 대중적 인기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기에 기꺼이 캐스팅에 응한다. ◆국힘보다 나은 SNL '대여공세'? 한 전 대표는 SNL코리아에서 인기 연애 리얼리티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패러디한 '나는 후보' 코너에 출연,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이 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조폭 연루 의혹을 첫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향해 지난 3월 20일 사과를 요구한 걸 비꼰듯 SNS코리아 제작진은 '연애하다 불리한 소리 들으면 SBS, 아니 애인에게 고소하겠다고 엄포 놓는 남친'과 '직장 동료 뒷담화 하다가 회사 잘린 백수 남친' 등 2개 보기를 제시하며 누가 더 빌런(악당)인지 물었다. 이에 한 전 대표는 "대통령 권한 잡았다고 해서 자기한테 좀 불리한 보도를 했던 방송국 자체를 조져버리는 것은 좋은 정치도 아니고 나라를 퇴행시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이 대통령에게 영상편지를 남겨달라는 부탁엔 "정치를 좀 대승적으로 하라"고 일침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 기간에도 SNL코리아에 출연했다. 경선 기간 계속 살아남을 유력 후보라서 섭외된 맥락이었다. 한 전 대표는 그해 4월 21일 녹화에 참여했고 방송은 26일 이뤄졌는데, 1차 경선 컷오프 결과 발표는 녹화 바로 다음날 이뤄졌다. 즉, SNL코리아는 한 전 대표의 1차 경선 통과에 베팅을 하고 그를 섭외했던 셈이다. 이어 대선 본선 시기였던 같은해 5월 24일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배우자 설난영 여사 섭외를 파격적으로 성사시켰다. 방송 내용으로도 상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부인 김혜경 여사를 대놓고 디스(비판)하는 한국 정치풍자 초유의 사례를 썼다. 이때도 SNL코리아는 김 여사의 사법리스크인 셈인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을 꼬집은 질문을 꺼냈다. '법카(법인카드)로 사 먹은 김혜경 여사와 명품백 받은 김건희 여사 중 내조를 더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묻자 설 여사는 "첫번째(김혜경 여사)"라고 답했다. 또 김 여사 이름으로 삼행시를 해달라는 요청에 "김빠져요. 혜경궁 김씨. 경을 칠 노릇입니다"라고 당시 김혜경 여사와 연결고리 의혹이 제기된 SNS 계정을 언급했다. 설 여사는 편의점 상황극에선 아르바이트생 역할을 맡아 김 여사 분장을 한 개그우먼 정이랑에게 "법카 사용하지 마세요. 앞으로는"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SNL코리아는 지난해 시즌 막판(설난영)과 이번 시즌 첫 회(한동훈)에서 연이어 이 대통령을 저격한 셈인데, 최근 국민의힘 안에서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여투쟁'을 정당보다 더 인상 깊게 구사한 셈이 됐다. 물론 SNL코리아는 현 여권 정치인들도 균형감 있게 캐스팅한다. 당장 다음 출연자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에 출전한 박주민 예비후보다. ◆뉴스가 소홀히 한 이슈 코미디로 풍자 이런 높은 수위의 정치풍자를 과거엔 지상파 TV가 주도했다. 심지어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진 셈인 KBS가 중심에 있었다. 1986년 첫 방송된 KBS '유머 1번지'의 간판 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시초다. 가상의 재벌 비룡그룹 임원 회의 꽁트로 각종 시사 이슈를 풍자했다. 회장 역 배우 김형곤을 비롯해 김학래·엄용수·양종철 등 당대 스타 코미디언들이 출연했다. 지금과 비교해도 '독한' 시사풍자가 특징이었다. 1987년 1월 14일 발생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브리핑에서 논란이 된 사망 원인 설명인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를 그대로 "테이블을 '탁' 하고 치니 도자기가 '퍽' 하고 깨졌다"로 패러디한 게 대표적이다. '코미디 텍스트와 풍자의 정치학'(2015)을 펴낸 이기형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저녁 뉴스가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동시에 대중의 관심이 상당한 일련의 부정적이거나 불합리한 사회적 쟁점들을 코미디 텍스트가 예리하게 빗대며 웃음과 조롱 그리고 해학과 비판 정신으로 특정 쟁점들을 까발리고 조명했다"고 분석했다. KBS 뉴스에서 제대로 거론치 못한 이슈를 KBS 개그프로그램에서 시사풍자로 다루며 TV의 공론장 역할을 살렸다는 얘기다. ◆개그콘서트 필두 전성시대 이후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이같은 공론장 형성 기능을 맡았다. '봉숭아 학당'을 비롯해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불편한 진실' '비상대책위원회'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같은 코너가 시사풍자를 녹여냈다. 당시 개콘의 시사풍자 미디어로서의 체급은 현직 국회의원이 고소전을 만들 정도였다. 2011년 사마귀 유치원 코너에서 개그맨 최효종이 "국회의원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라며 풍자 개그를 하자 당시 강용석 국민의힘 의원이 집단모욕죄로 고소했다. 그러자 개콘 여러 코너에서 동료 코미디언들이 이 고소를 풍자하는 개그를 펼치는 반격으로 정치풍자의 묘미를 드러냈다. 결국 고소는 취하됐다. 2012년엔 OTT(쿠팡플레이)가 아니라 케이블 채널(tvN) 시절 SNL코리아의 정치풍자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 의해 선거방송심의위에 회부됐다. 당시 18대 대선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풍자한 '또' 캐릭터에 대해 "특정 후보를 비하하고 욕설이 난무한다"고 새누리당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심의위는 문제가 없다며 '불문' 결론을 냈다. 2015년 방송된 개콘 '민상토론'은 이명박 전 대통령 기업특혜 논란과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 등 정치 현안을 다룬 것은 물론, 롯데 형제의 난과 대한한공 땅콩 회항 등 재벌 문제도 다루며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나 할 법한 심층적 접근도 시도했다. 그러다 정부 메르스 사태 대응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걸 두고 한 시민단체가 민원을 제기, 방심위(현 방미통위)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내렸고, 이후 코너가 폐지되자 외압 논란도 불거졌다. ◆팬덤정치에 몸 사리는 지상파 이후 개콘의 시사풍자 기능은 약해졌고, KBS(개콘, 폭소클럽, 웃음 충전소)가 중심에 선 가운데 MBC(개그야)·SBS(웃음을 찾는 사람들)가 보조를 맞추던 지상파 TV 주도의 시사풍자 시대도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팬덤정치 흐름이 강해지며 특정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나오면 지지자들의 항의가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 등에 쏟아지고 더 나아가 방심위 등 규제 당국에 민원을 넣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게 누적되면 심의·재허가에 불리해질 것으로 판단한 방송사들이 몸을 사린 게 시사풍자의 약화를 넘어 실종 상태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2021년 11월 26일 경향TV 유튜브 '정치풍자 개그가 사라진 불편한 진실' 편에 출연한 개콘 출신 개그맨 황현희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겠다고 시작한 정치풍자인데, 많게는 국민 절반가량의 환호 대신 비판을 애초부터 각오해야 한다면 누가 그걸 시작하려 하겠나"라고 진단했다. ◆OTT·유튜브 시사풍자판 접수 이 틈을 지상파보다 규제가 덜한 OTT, 정확히는 tvN(TV)에서 쿠팡플레이(OTT)로 플랫폼을 옮긴 SNL코리아가 공략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사풍자 분야 중에서도 정치판이 주 타깃이다. 그간 이재명·윤석열·이준석·홍준표·안철수·유승민·오세훈·김문수·이낙연·조국·윤상현·김동연·박지원·나경원·김부겸·정청래·한동훈 등 유명 정치인들이 앞다퉈 출연했다. 또 코미디언 안영미가 뉴스 앵커로 분하는 '위켄드 업데이트'는 매주 화제의 이슈를 시사풍자로 풀어낸다. 역시 규제 외곽에 있는 유튜브도 시사풍자가 활발한 미디어다. 유튜브는 '진보 대 보수'의 진영 편향 구도가 뚜렷한 가운데 코미디언 출신들이 '정치 유튜버'로 나선 게 주요 특징이다. 여러 채널 가운데 같은 개콘 출신 강성범이 친민주 성향 '강성범TV' 유튜브(구독자 70만)를, 김영민은 보수 성향 '내시십분' 유튜브(50만)를 운영하며 입담을 바탕으로 정치풍자에 주력하고 있는 게 상징적 사례다. 유튜브는 기성 언론도 뒤늦게나마 최소 하나씩은 채널을 파 시사 이슈를 다루며 풍자 기능도 곁들이는 창구인데, 방송·신문 둘 다 과도한 수위는 자제하는 관성을 보이며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 말고 본업을 살펴보면, TV 방송의 경우 YTN '돌발뉴스'정도가 시사풍자 프로그램의 명맥을 잇고 있다. 시사와 예능을 결합한 JTBC '설전' 종영 후 TV조선 '강적들' 같은 아류 프로그램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사풍자 기능은 전보다 약하다. 다만, 선거 개표 방송 때나 유머와 패러디를 가미한 기획으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다. 신문은 김성환(동아일보 '고바우'), 박재동(한겨레 만평), 박순찬(경향신문 '장도리') 같은 스타급 시사만화가들이 잇따라 퇴장하며 존재감이 급격히 떨어져 있다.
2026-04-03 12:00:00
늘 다니던 큰 길에서 벗어나 괜히 좁고 어둡고 후미진 길로 발을 옮기면, 평소보다 좀 느리게 발을 디디면, 늘 내려다보던 스마트폰 대신 지면의 생김새를 살피고 그러다가도 고개를 위로 올려 담장과 지붕 위를 탐색하면, 골목길에 감춰진 이런저런 이야기가 발견됩니다. 그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당신의 안보시력은 얼마입니까? 맨 아래 글자까지 읽을 수 있다면, 시력 2.0이다. 과거 국정원(국가정보원)에서 만들어 골목길에 붙인 간첩 신고 홍보 시력검사표다. 지자체 홍보로 이름을 날렸던 충주맨(김선태) 같은 직원이 국정원에 있었던 걸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력이 좋다는 얘기인 시력검사표 표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사회곳곳에는간첩과좌익사범및국제범죄사범이숨어있을지모릅니다여러분의신고정신이국가안보를지켜줍니다 ◆간첩 신고 상금 500만원→20억원 이 홍보물에 적힌 간첩 신고 상금도 눈길을 끈다. 1960년대부터 간첩 신고 시 그 결과에 따라 상금을 주는 제도는 우리나라의 높은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을 반영했다. 70년대엔 간첩 신고 500만원(이하 최고액 기준), 간첩선(간첩들이 타고 온 배나 잠수정 등) 신고 1000만원이었다. 80년대에는 간첩 신고 3000만원, 간첩선 신고 5000만원으로 10년 만에 5~6배 수준으로 높였다. 90년대에는 간첩 신고 1억원, 간첩선 신고 1억5000만원으로 3배가 됐다. 이어 2011년 간첩 신고 5억원, 간첩선 신고 7억5000만원으로 10여년 만에 5배로 상승했다. 정부는 신고 상금 인상 이유로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신고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자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며 '간첩 로또'라는 제목을 기사에 붙였다. 로또 복권 1등 당첨금에 견줄만한 액수라는 표현이었다. 다시 5년 뒤였던 2016년 신고 상금 최고액이 20억원을 찍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간첩 등 국가안보 위해 사범의 활동이 수법이 날로 은밀화 및 지능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증액 이유를 밝혔다. 이후 10년이 지났고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변치 않은 건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다. 통상 10년 간격으로 간첩 신고 상금이 상승했으니, 다시 올릴 때가 된 건 아닐까. ◆대구 신암동 무장간첩 사건을 아시나요? 이 밖에도 골목길에 가면 주소를 적어놓은 팻말 속 새마을운동 심볼에 곁들여진 '반공' 글자, 동네 골목마다 한집씩 있었던 '주민신고센타' 팻말로 반공의 시대를 지나온 대한민국 현대사를 확인할 수 있다. 대구 북성로 골목에서도 '숨은 간첩 찾아내고 자수 간첩 도와주자'는 대구경찰서장 명의 구호가 새겨진 오래된 벽면을 관람할 수 있다. 북한 간첩은 실제로 우리 현실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1984년 9월 24일엔 대구 동구 신암동 백합미용실과 희민식당에서 신원미상의 북한 무장간첩 1명이 민간인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간첩은 독극물 앰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단순히 반공·멸공 궐기 대회에서 구호로만 외칠 게 아닌, 일상에서 내 가족이 언제 당할지 모를 공포였다.
2026-04-03 12:00:00
[커버스토리] 지자체 '뭉쳐야 산다' 통합이 대세? '영리한 이별' 분리도 모색
지방소멸 극복을 위해 전국에 통합 바람이 불고 있지만, 동시에 분구(分區) 같은 분리 움직임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구경북을 비롯해 광역자치단체 단위에선 '뭉쳐야 산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기초자치단체 사이엔 '영리한 이별'을 요구하는 주민 여론도 만만찮다. 통합과 분리 중 생존에 더 유리한 선택을 저울질하는 시대다.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 나뉘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합치고, 합쳐도 세월이 흐르면 반드시 나뉜다)이라는 옛말도 인용할 수 있다. 대구만 봐도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하며 경북을 벗어나 새 둥지를 틀었지만, 40년 만에 뿌리 경북에 재결합을 구애하고 있다. 생물처럼 나뉘고 합치길 반복하는 행정구역 개편은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다양한 사례를 쌓고 있고, 여기서 도출되는 의미와 던져지는 과제를 대구경북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4개 구 신설해 동력 찾는 인천 대구와 인구수·경제 규모·정치적 위상 등을 두고 '대한민국 제3의 도시' 경쟁을 하고 있는 라이벌 도시 인천은 올해 4개 구를 새롭게 출범시킨다. 인천은 대구와 마찬가지로 근대화와 산업화 다음 성장 동력이 마땅찮아 낡은 도심이 비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고 신산업 먹을거리 부재에 청년이 떠나는 문제 역시 안고 있다. 이를 해결코자 도심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신도시도 개발하면서 기업·인재 유치에 나서는 등 닮은꼴 해법을 펼치는 가운데, 인천은 2022년부터 타 대도시와 차별화 한 행정구역 개편 방책도 추진하더니 4년 만에 실현한다. 바로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서해구다. 중구·동구를 폐지해 제물포구·영종구를 신설한다. 중구의 원도심이 기존 동구와 합쳐져 제물포구가 되고, 인천국제공항 소재지로 유명한 영종도 일대가 영종구가 되는 것이다. 역시 가좌동 등 원도심 개선이 고민인 서구는 검단구를 끄집어내고 남은 서구 지역은 서해구로 이름을 바꾼다. 이에 따라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4개 구의 구청장과 지방의원을 새로 선출한다. 새 부대에 새 술이다. ◆제물포 역사성 부활…후유증 우려는 숙제 제물포구는 1883년 제물포항 개항 후 인천의 시작이 된 인천 원도심(동인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맥락이다. 인천 중구와 동구는 지난 20세기 거의 내내 인천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였으나 인천시청이 1985년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한 걸 시작으로 상권과 학교가 빠져나가 다른 부도심들이 부상하면서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이에 2020년대 들어 제물포구라는 이름으로 재결합하라는 처방전이 제시됐고, 대신 선물로 받는 셈인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 같은 기회를 부활 동력으로 삼게 됐다. 중구와 결별하는 영종구는 기존 영종국제도시 주민들이 바다 건너 내륙에 있는 중구 도심 생활·행정 인프라 이용에 어려움을 겪던 걸 해소하게 됐다. 기존 신도시(영종국제도시)가 하나의 지자체로 체급을 올리는 셈인 영종구 사례를 두고는 같은 인천 내 연수구 소재 송도국제도시가 향후 가칭 송도구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돋우며 부러워하는 여론이 감지된다. 마냥 장밋빛 전망만 있진 않다. 현대제철 등 산업경제 기반을 가진 동구와 비교해 중구는 과거 명성만 있다. 아울러 중구는 이번에 인천국제공항 기반 세수를 가진 영종국제도시를 떠나보낸다. 재정 격차가 꽤 있는 두 지자체의 결혼이 제물포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매개로 한 주도권 싸움 양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서구가 나뉘어져 생기는 검단구와 서해구는 과거엔 행정구역을 자연환경이 구분해줬으나 이젠 거대 인공시설이 구분해주게 된 희소 사례가 된다. 지난 2012년 개통한 운하인 경인 아라뱃길 북쪽이 검단구, 남쪽은 서해구가 된다. 실은 영종구도 인천국제공항 건립을 위한 영종도 간척사업의 결과물인 셈이다. ◆IT로 큰 화성·용인·성남 분구 '바람' 분구(구 신설 포함) 사례 내지는 그럴 조짐은 경기도에도 여럿 있다. 인구를 증가시키는 지역 산업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최근 경기 화성시가 일반구(선거로 구청장을 선출하는 자치구와 달리 구청장 임명) 4개를 전격 설치해 주변 지자체에 관심을 환기시켰다. 99만이 사는 화성은 인구가 50만을 넘긴 2010년부터 꾸준히 일반구 설치를 논의, 애초 3개 구 설치를 추진하다 그 사이 도시가 급격히 커진 데 따라 만세구·효행구·병점구·동탄구 등 4개 구를 올해 2월 출범시켰다. 동쪽 동 단위 지역에 인구가 몰리고 서쪽 읍·면 단위 지역은 낙후하는 동서격차 타개가 핵심 목적이다. 그런데 현지 여론은 4개 구 신설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동탄구를 구성하는 동탄신도시는 하나가 아니라 1·2신도시로 구분된다. 이에 위치를 따져 1신도시 일대를 동탄서구, 2신도시 일대를 동탄동구로 재차 나누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접 용인시 기흥구의 기흥구·구성구 분구 이슈도 다시 꿈틀하고 있다. 화성과 용인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매개로 급성장했는데, 최근 반도체 활황에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민들의 분구 요구를 형성하는 한 요인이다. 애초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경기 수원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권선구도 분구 논의 대상이 된 바 있다. 반도체 활황은 이들 삼성전자 소재지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있는 경기 이천시까지 포함, 경기 남부 지역 부동산 시장에 제법 훈풍도 만들고 있다. 경기 성남시에서도 분당구 내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를 분당구·판교구로 가르자는 여론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역시 네이버·카카오 등 공룡 IT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테크노밸리의 존재감이 분구 여론에 영향을 끼친 맥락이다. ◆대구 침체에 달서구·북구 분구 '잠잠' 대구에도 분구 여론이 있다. 대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달서구에 꾸준히 제기됐다. 달서구는 지난 2001년 인구 60만을 돌파하며 분구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 당시 달서구는 서울 송파구(69만)와 노원구(64만)에 이어 전국 69개 자치구 중 3번째로 60만 고지에 올랐다. 1988년 대구 남구·서구의 일부를 떼어다 만든 달서구 인구는 출범 당시 28만이었던 게 1997년 50만을 넘어서더니 4년 만에 60만을 찍었다. 성서산업단지가 1988년 1차 단지, 1992년 2차 단지를 조성하며 배후 주거지구가 마련돼 성서 지역을 형성했고, 미완에 그친 월배공업단지 부지가 2003년 월배신도시로 개발된 전후로 월배 지역도 형성했다. 이렇게 생활권이 둘로 나뉘자 가칭 성서구·월배구 분구 여론이 형성됐다. 1990년 달서경찰서에 이어 2005년 성서경찰서가 마련되고 성서행정타운 부지가 성서구청 입지로 거론되는 등 가시적 기반을 갖춰나갔으나, 지금은 별 얘기가 없다. 60만을 넘겼던 인구가 2026년 현재 51만까지 하락해 조만간 통상적 분구 기준(50만 이상)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생활권을 이유로는 대구 북구에도 분구 논의가 존재한다. 금호강과 함지산이라는 자연 경계를 기준으로 먼저 북구로 자리잡았던 남쪽 지역과 1981년 편입된 북쪽 지역(과거 칠곡읍, 통칭 '강북')을 분할하는 시나리오다. 강북 지역 칠곡지구엔 가칭 강북구 분구에 대비한 칠곡행정타운(또는 강북행정타운) 부지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는 대구가 '지금과 달리' 성장을 구가하던 시기 성서행정타운 부지와 함께 달서구·북구의 분구 가능성을 높게 따진 흔적인 셈이다. ◆가창 수성구 편입 불발…'깜짝' 군위 대구 편입 현재 인구가 달서구(51만)보단 적지만 북구(41만)와 함께 대구 공동 2위 수준이며, '대구의 강남' '서울 강남 다음 가는 교육환경' '비수도권 최고 부자 동네' 등 대구 톱 내지는 탈대구급 입지라는 수식이 붙는 수성구는 이같은 선호도를 바탕으로 편입 이슈를 홍역처럼 앓았다. 바로 대구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 논의다. 가창면은 과거 수성구의 뿌리인 수성현 지역이었고, 수성구 파동에 접해 수성구 생활권이 꽤 굳어진 지역이다. 이에 수성구 편입 공약이 선거 때 등장하기도 했고, 특히 2023년엔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이 편입 검토 의사를 밝히자 최재훈 달성군수가 반대 입장으로 맞선 것은 물론, 편입 설명회에서 찬성·반대 주민들 간 충돌이 벌어지는 등 핫 이슈였다. 곁들여 달성군 다사읍·하빈면의 달서구 편입 논의가 불거질 조짐도 있었다. 수성구는 1980년 대구 동구 남쪽 지역이 분리돼 출범했는데, 바로 1년 뒤인 1981년 경북 경산시(당시 경산군) 고산면(현재 시지 지역)을 편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수성구 서쪽 범어·황금 등지는 동대구 부도심을 구성하지만, 동쪽 시지는 맞닿은 경산과 생활권을 공유하는 연담화(連擔化) 환경에 놓여 있어 이게 향후 분구의 단초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즉, 선택지는 늘 열려 있다. 지금 수도권에서도 그러듯이 분구도, 편입도 언제든 지역 생존 논리를 자극하면 강한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 2023년 군위군 대구 편입이 그런 예다. 당시 경북에 속했던 군위는 팔공산이 가로막고 있어 대구와 생활권도 공유하지 않았지만, 새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군위의 협조 없이는 자칫 무산될 위기를 역으로 압박, 대구 편입을 신속히 성사시켰다.
2026-04-03 11:30:00
[금주의 이슈] 북중미 월드컵도 독점중계 논란…6월 개최 전 해결 가능?
'보편적 시청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월 JTBC의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독점중계가 제한된 시청 통로에 따른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는 방송사 수지타산 논리와 별개로 공공재 성격의 재미와 감동을 국민들이 골고루 누릴 수 없었다는 문제 제기로 연결됐다. 이어 2개월여 뒤 재차 JTBC가 독점중계할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제도 개선을 주문, 정부와 정치권이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통상 지상파 3사가 공동중계해왔다. 그러다 종편채널 4곳 중 하나인 JTBC의 독점중계가 이번에 초유의 사례를 쓰며 논란이 된 것인데, 실은 3사의 과점중계 관행에 대해서도 지상파의 영향력이 점점 낮아지는 시대에 과연 정답인지 질문이 꾸준히 향한 바 있다. ◆개회식 시청률 1/10로 급감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개회식 시청률은 1.8%(이하 닐슨코리아)로 집계됐다. 4년 전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시청률 18%(KBS1 9.9%, MBC 4%, SBS 4.1%)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개막식을 하는지도 몰랐다"는 국민 반응이 다수 언론 보도 제목에 인용됐다. 물론 이들 수치는 보정이 필요하다. 베이징 대회 개회식은 오후 8시 20분부터 초저녁 황금시간대에 중계된 반면 밀라노 코르티나 대회 개회식은 평일 새벽 3시 30분부터 중계됐다. 그래서 개회식 당일 낮 JTBC 재방송 시청률 1.9%도 더한 3.7%+알파(보정치)를 비교 대상으로 삼을 만한데, 그럼에도 18%에 근접하기란 역부족이다. 다른 주요 경기 시청률을 살펴봐도 밀라노 코르티나 대회는 가장 높았던 게 대한민국의 주 종목인 쇼트트랙 남자 500m·여자 1000m·남자 5000m 계주 경기가 연이어진 2월 16일 저녁 11.2% 기록이다. 베이징 대회 땐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경기가 있었던 2022년 2월 14일 방송 3사 중계 합산 시청률이 최고 기록이다. 46.6%였다. 그 밖에도 20~30%대 기록이 숱했다. ◆완성도 높이는 공동중계 효능 이번 동계올림픽 땐 독점중계의 시청 만족도 저하 문제에도 시선이 향했다. 지난 2월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최가온이 금메달을 차지, 우리 선수단의 첫 금메달 획득 기록이 작성됐지만 정작 이 순간은 JTBC로 생중계되지 않았다. 당시 쇼트트랙 경기를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JTBC는 최가온의 결승 1차 시기까지만 보여주고 쇼트트랙 경기로 중계를 전환했다. 이후 최가온의 경기는 JTBC스포츠에서 생중계됐다. 이어 최가온이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JTBC는 자막 속보로만 전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JTBC 측은 "최가온 선수의 경기를 JTBC와 JTBC스포츠에서 동시 생중계했으나, 쇼트트랙 경기가 시작됨에 따라 JTBC는 쇼트트랙 중계로 전환하고 JTBC스포츠에서 하프파이프 중계를 이어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JTBC가 쇼트트랙 중계 도중 다시 최가온 선수 경기로 전환할 경우 쇼트트랙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은 없어지게 된다. 쇼트트랙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강세 종목이자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만큼 시청자 선택권을 고려해 중계를 유지했다"고 부연했다. 그런데 JTBC스포츠는 JTBC와 비교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즉 시청자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채널이다. 특히 채널번호(대구경북 기준)가 JTBC는 10번대 위주이지만 JTBC스포츠는 87번부터 977번까지 멀리 떨어져 있는 등 일부 시청자들이 최가온의 경기를 계속 보기 위한 채널 전환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는 KBS가 평소 대등한 인지도의 1·2TV 채널을 십분 활용해 여러 경기를 동시중계하고 유연하게 전환하는 노하우와 비교됐다. 최가온의 경기를 화면 분할이나 같은 화면 내 미니화면으로라도 동시중계하고, 경기 종료 후 연달아 지연중계를 편성하는 등 운용의 묘가 부재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시청자 입장에선 중계 방송사가 여럿일 경우 가령 어느 한 곳이 실수를 저질러도 신속히 채널을 돌려 시청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때 방송사끼리 일종의 보험이 되는 순기능이 형성된다. 경쟁 구도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시청 만족도에 보완이 이뤄지는 셈인데, 이런 효능이 독점중계에선 나올 수 없다. ◆李 "제도 개선"→여당 법 개정 착수 최가온 경기 중계 문제 이후로도 독점중계를 타깃으로 한 지적이 쏟아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의견을 개진해 이슈에 불을 더욱 지폈다. 그는 대회 종료 이틀 뒤였던 지난 2월 24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우리 선수들의 투지와 활약에도 과거 국제대회와 비교하면 사회적 열기가 충분히 고조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며 "국제적 행사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접근성을 폭넓게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 이유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JTBC 독점중계 문제를 꼬집은 발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각 여당에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이달 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현안 질의에서 "JTBC가 현행 방송법상 유료방송 가입 가구가 90% 이상이라는 이유로 '보편적 시청권' 요건을 충족했다고 주장했으나 유료방송은 매달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유료방송 시청률 90% 이상→보편적 시청권 충족 해석→독점중계 가능'이라는 현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주요 스포츠 이벤트를 무료방송에서 볼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하는 영국 '리스티드 이벤트'와 호주 '안티 사이포닝' 제도를 사례로 들어 "시청권 범위를 무료방송 중심으로 전면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맡은 한정애 국회의원은 올림픽·월드컵 등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이달 16일 밝혔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고시 국민관심행사 중계방송권자가 지상파 방송사업자 등에게 중계방송권 제공 요청을 받았을 때,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가 중계권 관련 분쟁 조정 권한을 갖는 조항도 들어갔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JTBC가 따낸 중계권을 지상파 방송사들에 재판매하는 협상이 결렬돼 62년 만에 처음으로 지상파 중계 없이 진행됐다. ◆코리아풀·사전승인제 강화해야 이달 20일엔 방미통위가 개막까지 2개월여 남았지만 여전히 중계권 협상 난항이 지속 중인 북중미 월드컵을 콕 찝어 보편적 시청권 보장 방안을 위한 공개간담회를 개최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 국민에게 듣는다'는 제목으로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행사에선 결국 방송업계의 힘겨루기 결과인 셈인 중계권 협상 결렬이 곧 국민들의 보편적 시청권 훼손으로 이어진 걸 두고 방송사 공동협력 체계(코리아풀) 강화와 사전 승인제 도입 등의 개선책을 거론했다. ◆KBS 패럴림픽 중계권 파격 개방 지상파를 통한 무료 시청 확대와 함께 온라인·디지털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간담회에서 나왔는데, 이는 앞서 KBS가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 독점 중계권을 다른 지상파는 물론 다양한 매체에 개방한 사례와 궤를 같이 한다. 패럴림픽은 신체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동계·하계 대회 모두 올림픽 종료 직후 같은 개최지에서 이어진다. 그래서 올림픽을 중계한 방송사 인력이 그대로 남아 패럴림픽 중계도 맡는 편이다. 그런데 JTBC는 이번 동계패럴림픽 중계권은 사지 않았다. 대신 중계권을 독점 확보한 KBS는 1·2TV와 유튜브 등 보유 채널을 최대한 활용해 대회를 중계했다. 아울러 다른 매체의 영상 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뒀던 관행에서 벗어나 유튜브 업로드를 비롯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쓸 수 있도록 했고, 지상파를 포함해 뉴스 전문 채널과 종편 등 다양한 매체에 주요 경기 영상과 인터뷰를 제공했다. 마침 우리 선수단은 금 2·은 4·동 1로 종합 13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둬 그만큼 많은 소식이 쏟아졌다. 이같은 파격적 독점 중계권 개방은 JTBC의 독점중계를 에둘러 비판한 맥락으로 해석됐다. KBS는 "수익성보다는 상대적으로 보도에서 소외돼 온 패럴림픽의 위상을 높이고, 참가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널리 알리겠다는 공영방송의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수신료의 가치'를 표방하는 KBS의 이러한 대승적 결단에 정부·정치권의 제도 개선 잰걸음이 더해져 관심 여론을 증폭, JTBC와 지상파 방송사들 간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어 KBS가 동계패럴림픽 중계권을 전격 개방할 때 드러낸 마음가짐을 철회하지 않고 월드컵 때도 지속하면, 관행이었던 지상파 과점중계의 한계 역시 극복해 온라인·디지털 환경 기반 보편적 시청권을 대폭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26-03-27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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