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와 대권 나비효과 <上>…DJ·盧·MB 발돋움 무대 [금주의 이슈]
대한민국 3대 선거인 대통령 선거(대선), 국회의원 선거(총선), 광역·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및 교육감 등을 뽑는 전국동시지방선거(지선) 가운데 체급만 따지면 가장 낮은 지선은 실은 꾸준히 대권의 향방을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 역대 대통령 상당수가 지선으로 발판을 다져 대권을 거머쥔 것. 지선에서 부는 바람을 주목하면 다음 대권도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바로 나비효과다. 오는 9회 지선(6.3 지선)은 누구를 바람에 실어 하늘 높이 날릴까? ◆DJ의 대권 발판 지방선거 부활 연도는 1991년이다. 그해 3월 26일과 6월 20일 치러졌는데 이때는 기초·광역의원만 선출하고 자치단체장은 뽑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가 1992년 예정됐던 단체장 선거를 비용 부담을 이유로 1995년으로 연기한 것. 그래서 공식적으로 기리는 지선 부활의 해는 1995년이다. 그해 6월 27일 1회 지선이 실시돼 지자체 살림과 그 견제를 맡을 인물들을 뽑았다. 이 선거는 9개월 뒤 15대 총선의 판을 짜는 역할도 했다. 이때 떠오른 인물이 DJ(김대중)다. 그는 공식적인 정계복귀 선언은 하지 않은 채 마치 백의종군을 하듯 민주당 선거 유세엔 참여하며 이기택 민주당 대표와 주도권 싸움을 펼쳤다. 1회 지선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뭉쳐놨던 영남과 충청을 다시 갈라놨다. 그 반사효과로 애초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당이 텃밭 호남과 서울(조순 후보 당선)에서 선전했다. 당시 대구를 제외한 영남을 민주자유당(민자당), 충청과 강원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호남과 서울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대구의 경우 문희갑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는데, 여당인 민자당 소속 조해녕 후보가 무려 4위로 참패했다. 그 원인으로 YS(김영삼) 정부의 대구 홀대론이 첫 손에 꼽힐 정도로 여당 민자당의 입지가 줄어들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DJ는 민주당의 지선 승리 바로 다음달이었던 1995년 7월 정계복귀를 선언했고, 같은해 9월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어 1996년 15대 총선에선 비록 패배(DJ마저 비례대표 낙선)했지만, 때를 기다려 1년 뒤 1997년 15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 3년(1995~1997)을 재평가해보자. DJ에게 ▷1회 지선은 승리 시 정계복귀 선언, 패배 시 잠행 지속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벤트 ▷15대 총선은 비록 민주당계 정당이 둘로 갈라졌으나 그 한 축을 잡고 버티며 주도권 싸움을 한 치킨게임 ▷15대 대선은 불과 1년 전 자신들이 저지른 표 분산을 보수가 '이회창 대 이인제' 구도로 자행한 것에 대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승리에 쐐기를 박은 한판이었다. 지금 어느 잠룡에게 대선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성공 사례를 쓴 DJ의 일정표를 벤치마킹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른바 대권 창출 3개년 계획. 그리고 당시 문희갑 후보가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당선돼 어깨에 힘을 주고 친정 한나라당에 복당, 연달아 재선까지 한 사례는 최근 역대급 공천 내홍 사례를 겪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군들의 심장을 꿈틀하게 만들었을 수도. '나도 문희갑 선배처럼'. ◆바보 노무현의 종로 2회 지선은 DJ 다음 대권을 잡은 노무현 대통령을 주목할 수 있는 선거다. 정확히는 2회 지선 한달 뒤인 1998년 7월 21일 실시된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연결고리를 갖는다. 원래 주인이었던 이명박 의원이 15대 총선 당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조사를 받다 사직해 만들어진 선거다. 이 선거에 노무현 후보가 나서 당선돼 재선으로 체급을 높였다. 그런데 노무현은 자칫 이 선거에 출마하지 못할 뻔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처음 배지를 단 노무현은 1992년 14대 총선 땐 같은 선거구에서 낙선한 후 체급을 높여 1995년 1회 지선 때 부산시장에 도전했지만 또 떨어졌다. 이렇게 낙선 후 되려 체급을 올려 링에 오르는 '저돌적 도전'의 패턴을 기억하자. 노무현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부산을 떠나 종로에 출마했지만 이명박에게 졌다. 그러자 또다시 체급을 높여 1998년 2회 지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때 DJ가 고건 전 국무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했고, 이를 존중한 노무현은 한달 뒤 종로 재보궐선거로 선회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건 후보가 당선됐고, 그 효과를 한달 뒤 노무현이 서울 한복판에서 얻은 셈이다. 여기서 안주했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탄생하지 않았을 터다. 재보궐선거 2년 뒤인 2000년 16대 총선 때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다시 부산으로 갔다. 보통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곳에선 그간 들인 노력과 비용을 따져 최소한 재선엔 도전하는 관행과 달랐다. 더구나 그가 향한 곳은 당선 경험이 있는 부산 동구가 아닌 북구·강서구을이었다. 결과는 허태열 한나라당 후보에게 53.22% 대 35.69%로 패배. 하지만 이 선거 덕분에 노무현은 낙선자임에도 큰 주목을 받으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곤 그가 해오던대로 낙선 후 어김없이 체급을 올려 도전자로 나섰다. 불과 2년 뒤인 2002년 16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종로는 저돌적 도전으로 가득한 그의 정치 인생에서 잠시 숨을 고른 곳일 수도 있고, 아까운 자리였기에 부산으로 향하며 내팽겨칠때 더욱 큰 감동을 만든 요소일 수도 있다. 한편, 정가와 언론에서는 2회 지선을 계기로 비슷한 시기 또는 같은날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비중 있게 주목하고 있다. 오는 9회 지선에서도 자리가 빈 10곳 안팎 선거구에 유력 대권 주자 내지는 저돌적 신예가 출전할지 관심이 향하고 있다. '미니총선' 수준의 재보궐선거와 9회 지선, 두 선거 가운데 어디가 더 관심을 얻고 더 큰 영향력을 낼지 경쟁하는 형국이다. ◆MB의 제2 성공신화 1회 지선은 DJ, 2회 지선(정확히는 한달 뒤 재보궐선거)은 盧가 주인공이었다면, 3회 지선은 MB(이명박)가 주역이었다. 역대 대통령 순서대로(15대 김대중, 16대 노무현, 17대 이명박) 1·2·3회 지선의 핵심 인물을 연결하면 기억하기 쉽다. MB는 2002년 6월 13일 치러진 3회 지선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됐다. MB로서는 1998년 15대 국회의원직을 불명예스럽게 사퇴했지만 4년 만에 몸집을 크게 키우는 기회를 얻었다. 이 기세를 몰아 5년 뒤인 2007년 17대 대선에서 압승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 531만표 차로 승리한 것인데, 당시 역대 대선 최다 표차였던 이 기록은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557만표 차로 승리하며 업데이트됐다. 현대건설 평사원에서 회장까지 오른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 MB는 서울시장과 대통령 자리를 연달아 획득하며 대한민국 경제·정치 분야 모두에서 성공 신화를 쓴 희귀 사례가 됐다. 그가 모시던 '왕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국회 입성은 해봤으나(1992년 14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 대권은 잡지 못한(1992년 14대 대선 3위로 낙선) 것과 늘 함께 언급되는 사례다. 이런 까닭에 MB의 정치 생애에서 점프대가 된 3회 지선은 정계 입문을 노리는 경제인들이 동경할 만한 스토리이지 않을까. MB의 서울시장 당선은 3회 지선 한나라당 압승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광역단체장 자리를 한나라당이 11개, 새천년민주당이 4개, 자민련이 1개 차지했다. 광역단체장 자리를 1회 지선에선 15개 중 4개, 2회 지선의 경우 16개 중 4개를 수확하며 대한민국 정치판의 굳건한 3지대를 형성했던 자민련은 3회 지선에선 텃밭 충남(심대평 후보 당선) 한 자리만 얻었다. 이어 자민련은 4년 뒤인 2006년 해산했다. 김종필 총재가 1995년 창당하고 11년 만이었다. 그래서 3회 지선은 자민련이 사실상 마지막 불꽃을 피운 선거로 기억된다. 〈다음 주 下편에서 계속〉
2026-04-25 12:00:00
한동안 골목길에서 가장 큰 건물은 대중목욕탕이었다. 목욕탕은 최소한 여탕·남탕 2개 층이 필요하고, 숙박시설도 겸하면 층수가 더 올라간다. 목욕물을 끓이는 보일러가 연기를 내뿜을 굴뚝도 높이 세우니, 목욕탕은 골목길에서 가장 몸집이 큰 업종이었다. 동네 대표 랜드마크였다. ◆동네 랜드마크 목욕탕 소멸중 그랬던 목욕탕은 시대 변화에 따라 사양길을 걷고 있다. 온수가 귀하고 씻을 공간도 마땅찮아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목욕 외출을 하던 문화는 집집마다 욕실을 갖추며 옛날 얘기가 됐다. 요지의 대형 사우나·찜질방으로 몸집을 키운 곳 말고 작은 동네 목욕탕은 폐업하는 추세다.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2026년 1월 기준으로 대구에서 영업 중인 목욕탕은 236곳이다. 역대 606곳이 폐업했다. 경북에서는 457곳 목욕탕이 운영되고 있는데, 누적 폐업 업소 수는 571곳이다.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고유가의 위기는 견뎠지만, 지난 2020~2022년 코로나19 대유행은 방역 규제로 목욕탕 폐업을 가속화시켰고, 여기에 시대 흐름이 더해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코로나 유행 3년 간 전국에서 960곳 목욕탕이 줄폐업을 했다. ◆부활 시도도…♨는 역사 속으로 목욕탕의 소멸은 지방소멸의 위기도 여실히 보여준다. 목욕탕이 주민생활권 내에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 사라져 어르신들이 곤혹스럽다. 이렇다보니 강원도에서는 일부 지자체가 직접 목욕탕을 차린다. 폐광이 있는 태백 철암 지역 유일한 목욕탕 철암욕장이 문을 닫자 주민들은 목욕 바구니를 들고 버스로 태백시내 원정목욕을 간다. 이에 태백시가 직접 목욕탕 조성에 나섰다. 실은 수도 서울에서도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동행목욕탕을 운영,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물론 한파·폭염 휴식처로도 활용하고 있다. 한편에선 폐업한 목욕탕을 카페, 술집, 전시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가 주목 받고 있다. 도시재생과 뉴트로(새로움을 뜻하는 New와 복고를 의미하는 Retro의 합성어) 트렌드를 타고 넓은 공간과 탕·타일 등 독특한 인테리어를 남긴 목욕탕 건물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할머니·딸·손녀, 이렇게 3대가 함께 드나들던 목욕탕의 또다른 세대 연결인 셈이다. 다채로운 변화·변신이 이어지는 가운데 쉽사리 볼 수 없게 된 건 목욕탕이나 여관·여인숙 등 숙박업소 간판에 흔히 붙던 '♨' 기호다. 행정안전부는 2008년 3월 온천법 시행규칙을 개정·공포, 일제강점기부터 100여년 동안 사용된 이 로고를 없애고 새 로고를 도입했다. 허가받은 온천만 쓸 수 있다. 다만 소급 적용을 해 기존 로고를 없애는 단속에 나선 건 아니다. 그래서 골목길엔 가야 오래된 ♨ 기호를 발견할 수 있다.
2026-04-24 16:00:00
[금주의 이슈] 정원오·추미애·박찬대, 明 받들겠나이다?
6.3 지방선거 핵심 전장에 출전할 더불어민주당 선수단이 지난 9일 위용을 갖췄다. 이날 정원오 전 서울 성동구청장이 전현희·박주민 국회의원을 제압하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최종 선출되면서다. 이틀 전인 7일 선출된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 일찌감치 지난 4일 단수공천의 선택을 받은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 등 여당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3인 명단이 확정된 것. ◆與 수도권 공천, 국힘과 딴판 셋 중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와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의 경우 과반 득표로 경선을 2인 결선으로 끌고가지 않고 마무리했는데, 후보가 그만큼 파괴력을 냈고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릴 시간도 늘어나는 것이니 탈락한 후보들이야 아쉽지만 당 차원에선 반길 일이다. 당장 라이벌 국민의힘의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과 대비된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은 18일 오세훈 후보를 최종 확정했는데, 오 후보는 정 후보보다 9일 모자란 선거 일정을 얻게 됐다. 정 후보는 현재 국민의힘으로부터 해외출장과 여론조사 언급 등 여러 의혹과 관련한 공세에 직면해 있는데, 이 공세의 과녁이 되는 시간이 길어질지 아니면 되려 방패로 막아 역공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정치 거물과 신예 다크호스 누구도 발탁하지 못한 채 난항을 겪은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공천판은 역시 먼저 추 후보를 링 위에 올린 더불어민주당과 더욱 비교되는 사례다. 추 후보로서는 자만, 방심하지 않는 게 당락의 최대 관건이 되지 않을까. ◆먼저 내달리는 정·추·박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의 이번 선거 경쟁력을 두고는 적진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에두르는 표현으로 우세하게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일 자신의 온라인 정치 플랫폼 '청년의꿈'에 한 지지자가 올린 "추 후보가 당선될까?"라는 질문에 "경기도 국힘 기반 조직은 다 붕괴됐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이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만 선거 때 뒤를 받쳐줄 조직력이 크게 떨어져 있고, 이게 추 후보를 유리하게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 전 시장은 지난 3월 30일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는데, 향후 그가 언급한 인물들의 당선 적중률에도 시선이 향하게 됐다. 시간 여유를 얻은 추 후보는 지난 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경기도 31개 시·군 민주당 지선 후보들이 확정되는 대로 민생현안을 즉시 논의하겠다. 가칭 '더불어민주당 경기민생 대책위원회'를 꾸려 현안에 대처하겠다"고 정책 경쟁 우위에 시간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후보는 누가 뽑히더라도 헐레벌떡 뒤를 쫓아가야 하는 형국이다. ◆明픽 주목 정원오 세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과 연결고리를 하나씩 갖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의 SNS 칭찬으로 '명Pick(픽, 이재명의 선택)'이라는 수식을 얻으며 체급을 키웠고, 결과론이긴 하나 이때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낙점된 셈이다. 이번 경선은 그 찬반 투표정도가 아니었을까.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8일 SNS X(구 트위터)에 성동구가 주민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 92.9%의 긍정평가를 받았다는 기사를 공유하며 "정원오 구청장님이 잘하기는 잘하나 봅니다. 저의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명함도 못 내밀듯…ㅋ"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정원오 구청장은 이 글을 재인용해 "원조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다니…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그는 타칭은 물론 자칭으로 '리틀 이재명' '순한맛 이재명' 등의 별명을 언급했다. 이번 경선 시기엔 '이재명 정부의 서울시장, 하나씩 착착 정원오'라는 슬로건을 썼다. 정 후보는 기초자치단체장이기에 으레 얻는 직함이었을 수 있으나 이 대통령의 당 대표 시기였던 2024년 5~6월 당 대표 자치분권 특보를 맡았고, 이후 대권을 잡은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누적해왔다. ◆'명추연대' 인연 추미애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권 발판이 된 경기도지사 승리를 도왔다고 자평한다. 이 대통령은 2018년 6월 7회 지선 때 재선 경기 성남시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경기도지사에 첫 당선됐다. 이때 추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아 선거 압승을 이끌었다. 추 후보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 대통령 이름 끝 글자와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나란히 붙인 '명추연대'라는 표현으로 이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당선 뒤에 자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3월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당 대표로 있던 시절, (7회 지선)경기도지사 공천을 받은 이재명 후보를 향해 당 안팎에서 온갖 음해와 공격이 쏟아졌다. 주류 세력은 후보를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때 저는 쓸데없는 말에 휘둘리지 말고, 능력을 보라고 했다. 끝까지 지켜냈다"면서 "(20대)대선 과정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갖 유언비어가 당내 경쟁 과정에서 흘러나왔고, 대장동과 같은 거짓 프레임도 그때 만들어졌다. 그래서 저는 '명추연대'로까지 불릴만큼 거짓 음해에 맞섰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TK(대구경북) 출신이면서 민주당에서 거물 정치인이 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추 후보 고향은 경북 달성(이후 대구로 편입), 이 대통령 고향은 경북 안동. 여기에 경기도지사 선후배라는 이력을 추가할지 여부에 시선이 향하게 됐다. ◆친명계 핵심 박찬대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는 셋 중 가장 친명(친이재명) 색채가 짙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 및 본선 선대위 수석대변인을 맡아 친명계 핵심 인사로 부상했다. 인천 연수갑 재선 의원이던 박찬대 후보는 20대 대선에서 패배해 정치인생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었던 이 대통령에게 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를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도 선대위 비서실장을 맡았고 이번엔 당선 결과를 얻었다. 이어 그는 2개월 뒤였던 2022년 8월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로 당선돼 당권을 잡은지 약 2년 후인 2024년 9월 당 원내대표가 돼 수뇌부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러다 2025년 21대 대선에 출마한 이 대통령 대신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는 흔치 않은 인연을 맺었다. 향후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과 동석할 수 있는 인천시장 자리는 그가 친명계 핵심에서 좌장급으로 향하는 코스가 될 수 있다. ◆수도권 석권 역대 3차례 이 대통령으로서는 정원오·추미애·박찬대 세 후보 모두 승리할 경우, 인구수로 보나 경제규모로 보나 지리적 중요도로 보나 중앙정부와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 수도권 지방정부 3곳을 여당 단체장이 이끌게 돼 그만큼 정책을 펴기 수월해진다. 또한 수도권 석권이 곧 지선 압승이었던 전례를 감안하면, '명청대전' 같은 논란 섞인 표현으로 관측되는 당 내지는 민주 진영 장악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이 경우 지선이 대선 바로 다음 해에 열린 탓에 대통령 임기가 무려 4년 남았음에도 선거 결과에 따라 애꿎게 따라붙을 수 있었던 조기 레임덕 우려를 씻어내게 된다. 아마도 2028년 4월 23대 총선까지는 큰 걱정 없이. 한 정당의 수도권 석권은 사실 종종 나오는 사례다. 모두 8차례 치러진 대한민국 지선에서 3회 작성됐다. ▷2022년 6월 3회 지선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안상수 인천시장이 당선됐다. 이를 포함해 광역단체장 16곳 중 한나라당이 11곳, 새천년민주당이 4곳,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1곳을 차지했다. ▷2006년 5월 4회 지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석권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안상수 인천시장이 그 주인공. 광역단체장 16곳 중 한나라당 12곳, 민주당 2곳, 열린우리당 1곳, 무소속 1곳 당선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018년 6월 7회 지선은 리벤지 매치(복수전)가 됐다. 광역단체장 17곳 중 더불어민주당이 14곳, 자유한국당이 2곳을 얻었고, 나머지 1곳은 무소속 차지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을 배출했다.
2026-04-18 17:00:00
[시사뒷담] 흰색 옷만 입으면 백의종군(白衣從軍)? 조국·박민식·한동훈 요즘 패션 코디 살펴보니
선거철 백의종군(白衣從軍) 바람이 또 부는 모양새다. 애국·애민 정신으로 백의종군했던 충무공 이순신을 연상시킬지, 아니면 그저 한자 뜻 그대로 흰색 옷을 입고 전쟁(선거)에 나서는 패션쇼에 그칠지, 지켜볼 일이다. ◆이순신의 재기(再起) 서사 백의종군은 계급이나 직책 없이 군에 종사한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패했거나 실책을 저지른 장수에 대한 징계인데, '공을 세우면 관직에 복귀시켜 주겠다'며 재기의 기회를 주는 처벌이었다. 이순신이 제일 유명한 사례다. 임진왜란 때 조선 왕 선조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1597년 2월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돼 백의종군했다. 같은해 4월 도원수 권율의 군사 자문이 됐다가 7월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하자 다시 통제사로 임명됐고, 곧장 조선 수군을 수습해 전세를 뒤집는 승리를 거둔 게 바로 10월 치른 명량해전이다. 이렇게 버려졌다가 몇 달 만에 공을 세워 영웅이 되는 역전 서사에 비유할 만한 게 현대 정치 속 선거다. 단어 몇 개만 바꿔 다시 적어보자. '공천에서 떨어졌다가 몇 달 만에 당선돼 권력을 얻는 역전 서사'. ◆흰색 옷 선택 후보 점점 늘어 시간이 흐르며 백의종군은 공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뿐 아니라 정계 진출·복귀를 타진하는 것은 물론 잠시 당 노선·색깔에서 탈피하려는 인물들까지 더해, 이들이 주로 흰색 옷을 입고 선거에 뛰어드는 걸 가리키는 표현이 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한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가 유세 때 당색이자 자기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색 말고 흰색 점퍼를 입었다. 보수 표심이 강한 곳에서 괜히 역효과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2016년 20대 총선 땐 '친박'(친박근혜)이 대세였던 새누리당에서 공천배제된 비박계 유승민 국회의원이 탈당 후 자신이 3선을 한 대구 동을에 무소속으로 출마, 4선을 차지했다. 이때 새누리당 상징 붉은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펼쳤다. 다만 글씨는 빨간색을 좀 쓰긴 했다. 흰색 옷 후보는 점점 늘어났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은 정권 심판론이 거세지자 친윤(친윤석열)·비윤 인사 가리지 않고 흰색 의상을 코디했다. 윤석열 정부 국가보훈부 장관 출신 박민식 서울 강서을 후보마저 흰색 점퍼를 입었고, 험지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정운천 후보는 하얀색 개량한복을 입고 '오직 전북'이라고 적힌 흰색 머리띠를 둘렀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보수 지지가 여전한 서울 강남 지역에 출마한 홍익표(서초을), 강청희(강남을), 박경미(강남병) 등 후보들이 당색 파란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택했다. 홍 후보는 언론에 "파란색 점퍼도 번갈아 입는다"며 "정당보다 인물을 봐달라고 호소할 때 흰색 점퍼를 입는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다만, 사례로 든 7명 후보들 중 유승민 후보 빼곤 낙선했으니 효험이 있는지는 아리송하다. 그럼에도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선거운동 때 입을 옷이니, 흰색 점퍼는 사라지지 않았다. 6.3 지방선거 및 같은날 치를 미니총선 수준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조국혁신당은 공식석상에서 당색 파란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착용하고 있다. 먼저 파란색을 당색으로 쓴 더불어민주당과의 차별화 뉘앙스가 읽힌다. 답보 상태인 정당 지지율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재보선 전 지역 공천 선언이 배경이 아닐까. 조국혁신당은 과거 선거철엔 당색 중 하나인 딥블루 색상의 점퍼를 입었다. 역대 손에 꼽을 공천 내홍이 벌어진 국민의힘 대구시장 선거판에선 추경호 예비후보가 흰색 겉옷을 입고 대구 서문시장 등을 누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부산 북갑 재보선 눈길 전재수 민주당 의원이 부산시장에 출마하면 재보선이 실시될 부산 북갑은 흰색 옷 유세 연구 사례가 될 전망이다.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이 이미 소속 국민의힘 당색 붉은색이 아니라 뒤에 'KOREA'(코리아)라고 적힌 흰색 점퍼를 입고 지역을 돌고 있다. 그는 2년 전 22대 총선에서도 흰색 점퍼를 애용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무소속 출마 가능성이 높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최근 흰색 셔츠 차림으로 부산 북구 소재 구포시장과 만덕시장 등을 찾았다. 무소속 후보의 상징색이 하얀색이다. 역시 하마평에 올랐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까지 가세해 흰색 점퍼를 입었다면 더욱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그는 경기 평택을로 출마를 선회했다. 자칫 이들을 보고 네티즌들이 "역시 백의민족"이라는 농담을 던질 수 있는데, 듣고 웃어 넘기면 일류, 발끈하면 하수.
2026-04-18 12:30:00
도시에 반드시 설치되며 시민 대다수가 밟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쇳덩이가 있다. 인간과 지하세계의 연결고리이기도 한데, 지하상가·지하철역 등지와 달리 쉽게 가볼 수 없는 지하공간을 연결한다. ◆길바닥 터줏대감 맨홀 맨홀(Manhole)이다. 상·하수도관, 가스관, 통신선·전선 등을 매설한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를 평소엔 막고 있지만 유지·보수 시엔 여는 뚜껑이다. 보통 둥근 모양이지만, 네모난 모양도 있고, 드물게 삼각형 모양도 있다. 둥근 게 많은 이유는 통로(관로)가 둥글게 설계돼 있어서다. 아래에 매설된 게 뭔지 알아볼 수 있는 정보가 겉면에 표시돼 있는데, 설치 주체이거나 유지·보수 관련 기관·기업 이름정도만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보니 세상에서 사라진 명칭이 지면에 계속 노출돼 행인들을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한번 설치하면 장기간 교체할 필요가 없으니 명칭 변경을 이유로 맨홀을 바꿔 끼우는 건 예산 낭비다. 통신 관련 회사들이 마치 홍보의 일환이었던듯 경쟁적으로 자사 이름을 통신선 매설 맨홀에 새겼다. 두루넷·하나로통신(이상 현 SK브로드밴드), 데이콤·LG파워콤(이상 현 LG텔레콤) 등 옛 기업명을 어렵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골목길에서 우리나라 통신업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셈이다. 대구도시가스(구 대성에너지)와 '체'라는 줄임말로 표기된 체신부(우편·전보 담당 기관, 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의 뿌리. 우체국은 과기정통부 산하 우정사업본부 소속) 등의 사례도 있다. 이런 사례들과 반대로, 변치 않는(좀 더 정확히는 변치 않기를 바라는) 지역 명소를 홍보하는 맨홀 또는 맨홀 디자인의 조형물도 있다. 지면에 설치되는 이정표 내지는 랜드마크다. 대구 중구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철거됐다가 옆 동네인 수성구에 복원된 영남제일관 자리에 그 모습을 새겼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근대골목·동성로·김광석길 등지에 노후 맨홀 뚜껑을 교체하는 겸 계산성당·청라언덕 등 명소 디자인 맨홀을 설치한 바 있다. ◆추락·절도 뉴스 불청객 맨홀은 집중호우 때면 뉴스에 곧잘 오르는, 전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많은 비가 내려 물이 역류해 적어도 수십kg, 무거우면 100kg이 넘는 맨홀이 열리며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사람이 빠졌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이어진다. 쇠로 된 맨홀이 많지만 2000년대 초반 전국에 저렴한 비용과 미관 개선을 이유로 콘크리트 맨홀이 꽤 설치됐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며 균열이 일어나고 파손되면서 보행자가 맨홀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도 잇따랐다. 그러자 추락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관련 기관장이나 지자체장이 직접 올라 서서 안전성을 입증하는 사진이 마치 유행처럼 보도자료로 뿌려졌다. 맨홀은 범죄 뉴스에도 등장한다.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맨홀 자체를 훔쳐 고철로 판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거나, 맨홀을 열어 그 안에 있는 구리선을 절단해 훔친 일당이 경찰에 검거되거나다. 이는 당시 철과 구리 등 금속류 원자재 가격이 꽤 상승했다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민생경제는 그만큼 팍팍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2026-04-17 11:45:00
영화 접속(1997)은 음악을 빼면 완성되지 않는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대표 사례다. 다른 예를 살펴보면 판소리 붐을 일으킨 영화 서편제(1993)가 있다. 서편제는 락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국악을 체득해 국악인으로 나선 김수철의 음악세계가 영화음악으로 구현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블록버스터급 제작비 30억원이 투입된 영화 쉬리(1999)는 음악감독 이동준이 70인조 관현악단을 동원해 할리우드 첩보물 체급의 리듬과 공간감을 만든 사례다. 접속은 이들과 결이 좀 다르다.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는 선곡이 다른 요소들을 압도한 사례다. 새로운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과거의 좋은 음악을 골라 써 폭발력을 내는 건 영리하기까지 한 일이다. ◆PC통신 넘어 음반으로 접속 영화 '접속'은 PC통신으로 인연을 맺은 남녀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좀 더 중요한 매개체가 있다. 음반이다. 라디오 음악 방송 PD로 일하는 동현(한석규 분)은 어느날 옛 연인이 우편으로 보낸 한 장의 레코드판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을 방송으로 틀자, 그걸 듣고 매료된 수현(전도연 분)이 레코드 가게에서 해당 음반을 찾지만 구할 수 없다. 결국 PC통신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음악을 한 번 더 틀어달라고 신청한다. 이에 동현은 신청자가 혹여 옛 연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PC통신에 접속, 수현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내 수현이 옛 연인이 아니란 걸 알게 되지만, 둘은 옛사랑과 짝사랑이 만든 열병을 앓는 닮은 처지가 서로 끌렸던지 온라인으로 계속 교감한다. 두 사람을 PC통신으로 연결시켜 준 곡은 미국 락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1969년 발표한 3번째 앨범 수록곡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다. 해당 음반은 영화 초반부 동현에게 전해지며 등장, 후반부 동현을 기다리는 수현의 손에 들려진다.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수미쌍관이다. 접속이라는 제목을 단순히 해석하면 그 수단인 PC통신을 떠올리겠으나, 좀 더 깊게 보면 두 사람이 감정을 이입(접속)한 음반이 핵심 매개체다. 영화의 결승선 바로 앞에선 음악의 바톤 터치도 극적으로 이뤄진다. 미국 재즈 뮤지션 사라 본의 어 러버즈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가 두 사람에게 마치 봄비처럼 내린다. "How gentle is the rain that falls softly on the meadow(들판을 부드럽게 적시는 빗방울들은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로 시작하는 노래다.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페일 블루 아이즈가 지나가고 마치 언약식처럼 사랑을 축복하는 노랫말의 곡이 영화 엔딩을 장식하는 것이다. ◆전도연·조영욱의 출세작 두 곡을 비롯해 영국 소울 뮤지션 더스티 스프링 필드의 사랑의 모습(The Look of Love) 등 선곡 리스트가 일품이다. 음악감독 조영욱의 솜씨다. 작곡가 출신이 아니라서 대신 작곡팀을 지휘해 영화음악을 만들고 이에 더해 선곡으로 승부를 보는 이례적 스타일인데, 특히 박찬욱과 여러 작품에서 협업했다. 이등병의 편지(김광석)를 삽입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시작으로 박찬욱 영화의 강점인 미쟝센을 소리로 구현한 셈인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헤어질 결심(2022) 등의 음악을 작업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자전거 탄 풍경)의 도입부 기타 연주가 흘러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영화 클래식(2003)과 한국 느와르의 아이콘이 된 영화 신세계(2013)의 음악도 프로듀싱했다. 조영욱이 이렇게 한국 영화음악을 이끌어온 경력의 출발점에 접속이 있다. 즉, 그의 영화음악 데뷔작이다. 마찬가지로 장윤현의 영화감독 데뷔작이자 드라마 출연만 하던 전도연의 영화배우 데뷔작이기도 하다. 접속으로 조영욱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장윤현은 대종상 신인감독상, 전도연은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과 대종상 신인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이를 포함해 접속은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7개 트로피, 청룡영화상에선 한국영화최고흥행상 등 2개 트로피를 수확했다. 접속 OST 음반은 공식적으로 80만장 이상, 비공식적으로는 100만장 이상 팔려 지금도 깨지지 않는 한국 영화 OST 음반 판매량 1위 기록을 갖고 있다. 영화 역시 1997년 추석 때부터 연말까지 전국 150만 관객을 그러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음악으로 승부하고픈 한국 영화라면 여러모로 닮고 싶은 기록이 아닐까.
2026-04-17 11:44:00
[골목뒷담] '컴퓨터' 세탁 다음은 'AI(인공지능)'?
골목길에 '슈퍼' 만큼 흔했던 업종이 있다. '세탁소'다. 슈퍼는 이름의 흥망성쇠가 잘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구멍가게' '점빵' '상회' 등으로 불리다 1970년대 전후 서울 강남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확산하며 유명세를 탄 대형 슈퍼마켓 체인의 영향을 받았다. 그보단 체급이 작은 '미니슈퍼'라고 하더니 미니라는 접두어를 뺀 것이다. 이어 1990년대 들어 할인점을 표방한 대형마트 체인이 퍼지자, 여기서 '마트'를 가져다 쓰기도 했다. 그렇게 존속하던 동네슈퍼와 동네마트는 대형마트·편의점의 득세로 힘을 잃은 모습이다. 생존을 위해 편의점으로 옷을 갈아입은 슈퍼는 꽤 된다. ◆80년대 컴퓨터크리닝 전성 세탁소는 어땠을까? 1980년대에 전자동 세탁기가 보급되자 '컴퓨터'라는 표현을 붙였다. 세탁을 가리키는 클리닝(cleaning)의 옛날 표기이자 물 대신 유기용제를 쓰는 드라이크리닝의 준말이기도 한 '크리닝' 앞에 붙였다. 컴퓨터크리닝이라는 표현이 유행한 것이다. 단순하긴 하지만 컴퓨터 회로가 탑재된 세탁기를 쓰는 것이니 어불성설은 아니었다. 1980년대 신문을 살펴보면 '세탁업소의 컴퓨터 시대 선언'이라는 광고도 찾을 수 있다. 광고에선 현대컴퓨터크리닝 사장님이 "88올림픽도 있고 국민 위생 문제도 있고 하니"라고 추천하고, 원미컴퓨터크리닝 주인장도 "미국에 사는 동생이 귀국해 미국을 예로 들며 권장하더라"고 호평했다. 당시 컴퓨터 또는 콤퓨터 따위의 표현은 전자동 방식과 최신·첨단을 강조하는 마케팅 맥락에서 세탁기 말고도 각종 가전 등 전자기기에 붙었다. 1990년대 들어 세탁소 업계는 재차 변화를 맞았다. 세탁기가 가정마다 보급되면서다. 이에 세탁소들은 드레스 셔츠와 운동화 같은 전문·특성화 세탁을 강조하고 나섰고, 1인 가구 증가엔 셀프세탁소(코인 빨래방)가 대응했다. 가정용 소형 세탁기로는 소화할 수 없는 이불 세탁, 세탁기보단 보급률이 떨어지는 건조기 이용을 제공하는 전략도 펼쳤다. ◆동네 세탁소 퇴장…시장은 확장 그러면서도 컴퓨터크리닝 다음 기술 혁신이 반영된 표현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실은 컴퓨터크리닝에 앞서 '고속세탁'이라는 표현이 세탁소 사이에 유행한 바 있다. 시대를 되돌아보면 고속 다음 컴퓨터 다음 수식은 '스마트'나 요즘 유행하는 'AI'(인공지능)가 됐을 법도 한데. 대신 힘을 얻은 키워드는 '프랜차이즈'와 '온라인 플랫폼'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세탁소 수는 2017년 2만7천곳에서 2023년 2만곳 안팎으로 줄었고 지금은 1만여곳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그럼에도 국내 세탁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5조원이었던 게 2026년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동네 세탁소의 빈자리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채우는 한편 아직은 점유율이 낮은 온라인 세탁 플랫폼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2026-04-10 12:00:00
지난 3월 말 두 인물이 교차하며 두 정당의 상반된 처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3월 30일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선을 집중시킨 하마평을 현실로 구현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대구시장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것. 이 이슈는 광역시·도 인구수 7위로 추락한 대구를 부산·경기·인천보다 주목 받고 서울에도 견줄만한 체급의 선거판으로 끌어올렸다. 사실 김부겸 전 총리가 움직이기 전부터 대구는 눈길을 끌긴 했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공천 내홍으로 말이다. 그 장본인 이정현 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바로 하루 뒤인 3월 31일 사퇴했다. 지역주의를 타파해 본 이력(김부겸 2016년 20대 총선 대구 수성갑 당선, 이정현 2014년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선)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남긴 족적과 밟을 행보는 더 좋은 대한민국 정치를 위한 분석 자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정현에 의해 뒤틀렸고(공천) 김부겸에 의해 재차 뒤틀릴 수 있는(본선) 대구는 특히 더. ◆한 달 만 사퇴→이틀 뒤 번복 이정현 전 공관위원장은 지난 2월 19일 공관위 출범과 함께 '현역 단체장 물갈이'를 예고하며 대대적 혁신을 천명했다. 이어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13일 사퇴 입장을 밝혔다. 이때 대구시장을 비롯한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 방식 등과 관련한 당 지도부·공관위 내부 이견 문제가 드러났다. 당시 장동혁 당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간 당 노선 갈등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일종의 항의성 거취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힘을 실어달라는 항의이자 당 지도부와의 힘겨루기라는 것. 실제로 그는 당 지도부 설득을 받는 모양새로 이틀 뒤인 3월 15일 복귀했다. ◆감 떨어진 부산 공천 해프닝 보통 이쯤에서 갈등은 봉합되고, 공천 과정은 죽을 힘을 다해 스포트라이트를 끌어 와 유권자의 호감을 높이는 마케팅 과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의 복귀 후에도 악재는 쏟아졌다. 부산시장 공천에서 현직 박형준 시장을 컷오프하고 주진우 국회의원을 단수공천한다는 얘기가 3월 16일 알려지자, 주진우 의원 본인까지 포함한 부산 소속 국민의힘 의원 17명 전원이 "부산시장 후보의 경쟁력을 스스로 낮추는 결정을 재고하라"며 경선을 요구했다. 왜였을까.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부산에서 내리 3선에 여당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출마가 예상되는데, 직전 2022년 8회 지선의 변성완 후보(득표율 박형준 66.36%, 변 32.23%)나 2021년 재보궐선거 때 김영춘 후보(박 62.67%, 김 34.42%)와 체급 자체가 다르다. 더구나 전 의원이 4월 30일 전 사퇴할 경우 지선과 함께 치러질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 출마 후보군으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대권 잠룡들이 거론된다. 이처럼 주목도가 커진 부산 선거판에서 국민의힘 부산시장 공천은 힘 빠지는 단수공천보단 흥행몰이를 위한 경선을 택해야 한단 걸 의원들은 물론 부산시민들도 알고 있었다. 즉, 삼척동자도 아는 걸 이 전 위원장은 몰랐던 셈이니 그의 정치감각에 의구심이 향할만했다. 결국 사흘 후인 3월 19일 국민의힘 공관위는 두 사람(박형준, 주진우) 간 경선으로 부산시장 후보를 결정키로 했다. ◆대구 공천 '실험장' 멸칭 대구시장 공천은 '공천실험장'이라는 멸칭을 얻으며 대한민국 헌정사 공천 파국의 주요 사례로 추가될 전망이다. 역시나 흘러나온 얘기가 갈등의 불씨가 됐다. 중진 의원들을 컷오프시키고 신예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초선 최은석 의원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내용이 3월 16일부터 언론 보도를 도배했다. 이어 3월 22일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이진숙 전 위원장을 컷오프시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주 부의장은 컷오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되는 촌극을, 이진숙 전 위원장은 선거판을 떠나지 않고 대구에서 유세를 벌이는 촌극을 펼쳤다. 절차상 하자 문제도 있었다. 충북지사 공천에서 컷오프된 현직 김영환 지사가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 법원은 국민의힘 당규 11조에서 공천신청 관련 제반 사항을 당 홈페이지 등으로 3일 이상 공고하고 공천신청 접수기간은 15일 이내로 해야하는 걸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인재 수혈은커녕 이탈 러시 이정현 전 위원장의 또다른 직무유기는 새 인재를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대표 사례가 경기지사 공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김동연 현 지사 및 추미애·한준호 의원 간 중량감 있는 경선을 흥행카드로 내세운 반면(추미애 후보 선출), 국민의힘에서는 양향자 최고위원과 함진규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이 등판했는데, 애초 후보군으로 거론된 안철수·나경원·김은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 거물급 가운데 단 1명도 섭외하지 못한 꼴이다. 시정 홍보에 한 획을 그은 '충주맨'을 기용해 전국구 인지도를 얻어 소속 당의 선거 흥행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조길형 전 충주시장은 국민의힘 충북지사 공천 잡음에 분노하며 이탈했다. 그는 지난 3월 1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특정인의 새치기 접수"라는 표현으로 김수민 전 의원의 뒤늦은 후보 접수를 꼬집으며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고 예비후보에서 사퇴했다. 이어 김수민 전 의원은 김영환 지사 가처분 인용 결과가 나오자 "추가 공모 절차 자체가 당규 위반이라는 법원 판단으로 저의 국민의힘 후보 자격은 상실됐다"며 출마를 접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 위원장은 조길형·김수민 둘 다 '날리는' 실책을 저지른 셈이다. ◆민주당 대어 김부겸 수혈 성공 국민의힘 수혈 난국과 정반대 분위기를 더불어민주당은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캐스팅으로 강하게 누렸다. 3월 중하순 점점 달아오른 하마평, 3월 30일 김 전 총리의 출마 선언, 이어진 언론의 집중 보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공관위의 김 후보 '만장일치' 단수공천 등 일련의 과정엔 잡음도 이견도 없었다. 이 과정을 관리한 김이수 민주당 공관위원장은 여전히 이름이 낯설다. 그만큼 언론 보도에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정당의 공당(公堂) 브랜드 격차가 읽힌다. 반대로 이 전 위원장의 전남광주특별시장 셀프 수혈(출마)은 빛을 못 받고 있다. ◆12년 전 이정현의 전성기 이런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을 실은 이정현 전 위원장이 12년 전 몸소 겪은 바 있다. 그가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간판을 달고 호남 유일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다. 이 전 위원장은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서갑원 후보와 맞붙었다. 그런데 순천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서 후보를 재출격시킨 건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실책이었다. 서 후보는 18대 의원 임기 중이던 2011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그런 인물을 불과 3년 뒤 같은 선거구에 내보낸 것이다. 아울러 그의 과거 실책이 업보마냥 각종 잡음을 만들었다. 이를 이 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홍보수석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 지원사격도 거부한 채 자전거 민심 유세로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위원장은 여당 후보임을 내세워 예산폭탄 공약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예산폭탄을 준다는데 그거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제가 반대할 것"이라며 "서 후보를 국회로 보내주시면 찬성할 것"이라고 말한 게 '협박성 발언' '순천·곡성 주민을 개·돼지로 본다' 등의 역풍을 불렀다. 결과는 49.43%(이) 대 40.32%(서), 9%포인트 앞선 승리였다. 고향 곡성에서는 무려 70.5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부겸·이정현 '평행이론' 성립? 12년 뒤 김부겸 전 총리가 나설 대구시장 선거는 묘하게 이정현 전 위원장의 그때 그 선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닮은 점이 적잖다. 우선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단체장 사퇴에 따른 궐위를 채우는 성격이라 정규 지선보단 재보궐선거의 냄새를 풍긴다. 홍준표 전 시장은 21대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해 4월 11일 대구시장직을 중도사퇴했다. 이 전 위원장은 잇따라 의원직을 잃는 실책을 저지른 후보 및 당(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반감을 공략해 호남에서 이겼다. 김 전 총리도 대구 내지는 영남의 국민의힘 심판 분위기를 파고들 모양새다. 여기엔 홍 전 시장이 대권 도전을 위해 매듭짓지 않은 대구시정에 대한 평가도 곁들여질 전망. 이 전 위원장이 구사한 예산폭탄 공약은 김 전 총리도 제시한 상황이다. 김 전 총리는 지난 3월 30일 대구 2.28기념중앙공원 출마선언 자리에서 "이번 기회에 김부겸이 한 번 써먹으시라"며 "제가 시장이 돼야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임기 4년 남은 이재명 정부와의 협력 속에서 대구경북 행정통합, 통합신공항 이전, 취수원 문제 등 지역 현안을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당과 맞서야 할 땐 맞서겠다며 순천·곡성에서 이 전 위원장이 당과의 분리 전술을 취한 걸 떠올리게 했다. 김 전 총리는 이달 3일 공천 면접 후 당과 지역 민심이 충돌할 경우 어찌 할지 묻는 취재진에 "불가피하게 대구시민 입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당 입장에 무조건 맞출 수만은 없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2026-04-10 11:30:00
가수왕, 가왕, 가황, 몇대 천왕 등의 수식이 시대마다 노래 잘 하는 이들에게 붙는다. 그런데 '가객'이라는 수식은 웬만해선 이 사람한테만 달린다. 김광석이다. 올해(2026년)는 그의 30주기이다. 그의 명곡들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등이 연달아 초연 무대를 펼친 2012~2013년처럼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연초부터 추모 공연이 열리고 헌정 앨범이 발매되는 등 다시 김광석 바람을 부를 모양새다. 그가 떠난지는 30년이 흘렀고 1984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 참여로 데뷔한 지는 40년이 넘었다. 이렇게 긴 시간 희미해지지 않고 계속 다시 불리어지는 저력은 같은 표현이 제목인 앨범 '다시 부르기' 1(1993)과 2(1995)에서 나왔다. ◆10년차의 거듭남, 다시 부르기 김광석은 1980년대 노찾사와 밴드 동물원 활동을 거쳐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 건 솔로 활동을 펼쳤다. 1집(1989)이 '기다려줘'와 '너에게'를 띄웠고, 2집(1991)에선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이 큰 사랑을 받았으며, 3집(1992)은 좀 더 자기 색깔을 찾은듯 했으나 전작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즉, 노래 참 잘 하지만 멀리서 보면 가요계 여느 장르에 늘상 몇명은 있는 그런 재능 있는 가수 중 하나에 머물렀다. 이후 김광석은 한 달 간 서울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 나섰다. 자신의 음악 인생 10년을 중간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는데, 이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잘 소화하는' 것 아니었을까. 나를 잘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내가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잘 전해주는, 마치 연사나 이야기꾼이 되는 것.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들은 물론 평소 애창한 곡들도 공연 리스트에 올렸다. 이를 좋게 지켜본 지인들의 제안으로 공연 곡들을 수록한 다시 부르기 1이 발매됐다. 자기 노래 및 친정인 셈인 노찾사·동물원의 곡들이 앨범 대부분을 채운 가운데 1번 트랙이자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이등병의 편지'가 눈길을 끈다. 김현성이 1986년 발표한 곡을 들국화의 전인권이 1990년 리메이크한 걸 김광석이 1993년 다시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김광석 원곡으로 알았고 또한 지금도 그렇게 아는 경우가 적잖다. 그리 착각하게 되는 건 김광석의 놀라운 소화력 때문일 것이다. ◆힘껏 다시 불러 영원한 가객으로 김광석은 다시 2년 뒤 내놓은 다시 부르기 2에서는 이등병의 편지 같은 사례를 늘렸다.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선배 포크·블루스 뮤지션들의 곡을 다시 불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미국 포크 가수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1963)를 양병집이 역(逆, 1974)이라는 제목으로 각색한 걸 김광석이 새 제목을 지어 열창한 사례다. 노랫말을 보면 땅꾼이 독사에게 잡혀가는 등 사회가 뒤집힌 세태를 풍자했는데, 앨범 표지를 신문 1면 스타일로 패러디한 것과 함께 김광석이 마치 조선시대 때 풍자 시인 김삿갓으로 변모한듯한 뉘앙스도 풍긴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원곡 가사 그대로 다시 불렀을 뿐인데 좀 더 울컥하게 만든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이라는 부분을 녹음할 땐 실제 대구 방천시장 전파상 막내아들로 태어났던 김광석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소주 한 잔 마신 후 녹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 부르기 전에 깊숙이 공감(즉, 소화)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물이 다시 뭇사람들로부터 눈물을 부른다. 다시 부르기 1·2는 어떤날 출신 조동익의 감각적인 편곡과 함춘호·손진태 등 실력파 세션진이 김광석을 주인공으로 만든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광석은 평소 즐겨 부르던 음악계 선배·동료들의 곡을 정성을 다해 앨범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그랬더니 그 곡들이 마치 보답인듯 오랜 시간 조명처럼 김광석을 비추고 있다. 김광석이 일취월장 행보를 보인 두 리메이크 앨범 발매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등 명곡들로 가득한 최고작 4집(1994)이 탄생한 건 우연이 아닐 터다.
2026-04-03 12:30:00
[커버스토리] 대구경북 소멸 소도시·낙후 원도심 해법은?
◆부산 지방소멸 대책 '원도심 통합' 30년 전엔 분리를 발전의 지표로 반겼으나 시간이 지나자 생존을 위해 통합을 타진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지방소멸 위기를 대구 만큼 체감하고 있는 부산에서다.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5년 부산에서는 북구에서 사상구가, 남구에서 수영구가, 동래구에서 연제구가 각각 독립했다. 또한 옛 동래군 지역을 기장군으로 출범시켜 현재 부산의 15구 1군 체제를 갖췄다. 이 가운데 부산 원도심 지역인 중구·동구·영도구·서구가 급속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도심 노후화, 낮은 재정자립도 문제를 타개하고자 2017년부터 통합을 도모했다. 가만히 있으면 4개 구 각자 소멸하기 때문에 시급히 합쳐 인구 40만 규모의 통합구를 출범시켜야 하고, 이를 통해 먼저 합체했던 경남 창원(창원·마산·진해)과 충북 청주(청주·청원)처럼 정부 재정 인센티브 지원·중복 예산 절감·특화사업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이듬해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이 낙선하고 4개 구 구청장도 전원 교체되며 추진 자체가 멈췄다. 같은 원도심 문제 해결 취지의 인천 중구·동구 통합 제물포구 출범은 유정복 인천시장이 취임 첫 해인 2022년부터 밀어붙여 임기 중 완료한 것과 강하게 대비된다. 손 쓸 타이밍을 놓친 걸까. 8년이 지나며 중구(인구 4만4천→3만6천), 동구(8만8천→8만3천), 영도구(12만3천→10만1천), 서구(11만→10만1천)는 인구가 지속해 유출, 부산 지자체 인구 최하위권 순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은 원도심 뿐 아니라 부산 전체 인구가 같은 기간 347만에서 323만으로 크게 줄었다. ◆소멸 마지노선 '2만명' 소도시 네트워크 정답이 없기에 통합, 분구, 편입 등 행정구역 개편은 자칫 포퓰리즘에 활용될 여지도 적잖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하다. 대구경북이 여실히 겪고 있는 지방소멸 위기를 인구수가 적은 시·군은 더욱 절감하고 있는데, '인구 2만 이상 확보'라는 통합 공식이 제시돼 눈길을 끈다. '지방소멸대응 소도시 재구조화 전략'(2024)을 펴낸 김준우 대구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인구 21만 이하 소도시가 지방소멸에 가장 취약하다. 경북 250개 읍·면·동의 소멸위험지수와 인구 지속가능성을 분석했더니 소멸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인구수는 2만 이상, 소멸위험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 인구수는 1만 이상"이라며 "인구 2만 이상 자생력을 가진 강소도시와 규모는 작지만 역사·문화 자산이 있는 특화마을을 육성하고 연계해 네트워크형 소도시 구조를 만들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꼭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형식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실질적 생활권 구축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지난 2024년 한국정책학회 발표에서 각 인구 5천 안팎이며 서로 접한 경북 문경시 산양면과 예천군 용궁면 사례를 들어 "이들을 합쳐 인구 2만의 소도시를 조성할 수 있다. 자율주행이나 드론 같은 미래 기술을 사용하면 콤팩트하게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방안을 제시했다. ◆'지혜로운 축소' 저성장 도시 해법 될까 부산의 통합구 시도와 인천의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서해구 신설은 낙후한 원도심 부활에 대한 고민이 공통 배경이다. 이 고민을 대구도 갖고 있다. 과거 도심(향촌동 일대)과 현재 도심(동성로 일대) 둘 다 자리한 대구 중구 인구는 2021년 7만4천으로 바닥을 찍은 후 매년 증가해 올해 10만을 돌파, 고민에서 탈피하는듯 보인다. 착시일 수 있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집중된 덕분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지난해 4분기(10~12월) 동성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16년 만에 가장 높은 26.9%까지 치솟은 상황과도 큰 괴리를 보이기 때문이다. 자칫 인구수가 다른 현실을 가리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빈 공간을 다시 채울 동력이 부족한 곳엔 콤팩트시티(압축도시)가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성장기엔 도심 외곽 신도시를 개발한 것과 반대로 빈 도심에 주거지, 직장, 상업·문화시설을 집적해 공간 효율을 끌어올리고 생활 편의성도 높이는 도시계획이다. 13년 전 '도시축소의 시대'(2013)를 펴낸 야하기 히로시 일본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당시 이같은 집약형 도시구조를 골자로 하는 축소도시 개념을 소개하며 "'지혜롭게 쇠퇴하기'와 '보다 작게 성장하기'의 찬스"라고 강조, "풀세트형 도시 기능을 가지기 힘든 축소도시들은 서로 기능을 분담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찾게 된다"고 전망했다.
2026-04-03 12:00:00
[시사뒷담] 김부겸, 6년 전 다짐 실현할까? 팔았던 대구 집은 어떻게?
6.3 지방선거 대구시장에 공식 출마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6년 전 말과 행동이 눈길을 끈다. '꿈보다 해몽'일 수 있지만, 6년 뒤 지금을 내다본듯 해서다. ◆6년 전 낙선 직후 "다시 싸우겠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계 후보로는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최초로, 그것도 대구 정치 1번지 수성갑에서 당선되며 새로운 정치 풍토를 만들지 주목됐다. 하지만 2020년 21대 총선 때 같은 선거구에서 주호영 현 국회부의장에게 졌다. 고배를 마신 직후 찾은 곳이 바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었고, 여기서 재기를 다짐했다. 김 전 총리는 2020년 4월 24일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후 페이스북 글을 통해 고인의 변호사·재야운동 시기를 언급하며 "그분만큼 상처투성이도 없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자신의 낙선과 비교했다. 이어 "다시 툭툭 털겠다. 보란 듯이 일어서겠다. 그게 지역주의의 부활이 됐든, 보수 최후의 보루가 됐든, 영남에 똬리 튼 보수 일당 체제를 깨기 위해 다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 언급에 대해서는 2년 뒤인 2022년 20대 대선 도전을 가리켰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낙선했으나, 불과 2년 뒤였던 2002년 16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러한 '2년 뒤 재기' 스토리를 다시 쓰려했다는 얘기다. 다만, 김 전 총리에게 대권 도전 기회는 더는 주어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20·21대 대선은 이재명 대통령이 연달아 주인공이었다. 대신 그에게 이번에 다른 기회(대구시장 출마)가 주어졌다. 성공 시 대권 디딤돌로도 삼을 수 있는 기회다. ◆일찌감치 "TK 행정통합" 주장 김 전 총리는 2020년 7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페이스북에 '행정수도 완성은 노무현의 꿈'이라는 제목의 글로 포부를 밝혔다. 내용을 살펴보니 그 연장선상의 공약을 이번 대구시장 도전 때 내세울지 시선이 향하게 된다. 6년 전 글이지만 지금 대구 처지를 적확히 짚어서다. 그는 7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는 더 심각해졌다. 해법은 행정수도"라며 "수도권 일극 중심체제를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수도권은 수도권에 버금가는 광역권 '상생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구·경북에 통합신공항과 통합광역행정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대구경북통합론은 이후 2024년 5월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으나, 최근 통합 논의가 난항에 빠진 상황에서 지선을 맞게 됐다. 한편, 김 전 총리는 6년 전 당 대표 선거에선 이낙연 후보에 밀려 2위로 쓴잔을 마셨다. ◆떠나며 수성구 만촌동 집 팔았지만 김 전 총리가 떠난 사이 대구 민심이 어떻게 얼마나 변화했을지에도 관심이 향한다. 6년 전엔 그의 대구 수성구 범어동 소재 사무실에 계란 투척이 이뤄진 바 있다. 2020년 3월 24일 오후 9시 40분쯤 40대 남성 A씨가 사무실 출입문에 계란을 던지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적은 종이를 붙였다. 이에 대해 이튿날 김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처벌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배후가 있거나 조직적이지 않은, 우발적 행동을 한 것일 경우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의 대구시장 출마 수순에 곁들여지는 관심은 그의 대구 거주지 문제다. 시장 당선 시 직전 홍준표 시장처럼 관사에 입주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러지 않고 '대구 살던 대구시장'이라는 상징적 사례를 쓸 수 있었다. 대구 집을 안 팔았다면 말이다. 2021년 4월 21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삼으며 국회에 제출했던 인사청문안을 통해 그가 수성구 만촌동 아파트를 매도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우리 동네 아파트"라고 언급해 많은 유권자의 기억에 남았던 그 집이다. 이어 그는 같은해 9월 9일 총리 신분으로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 "최근 대구 집을 팔았다"고 털어놓으면서 "식구들이 여러가지로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고 예전부터 전원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경기 양평군 강하면에 전원주택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렇게 타향이 되는듯 했던 '대구'라는 키워드가 다시 그의 정치인생에 따라붙게 된 맥락이다. 정치도 생활도 모두 떠났던 김 전 총리의 대구 '컴백' 시도는 어떤 결과를 맞을까.
2026-04-03 12:00:00
[금주의 이슈] TV·신문 힘 잃은 '시사풍자', OTT·유튜브 대세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여기서 각설이는 OTT 쿠팡플레이에서 지난 3월 28일부터 새 시즌(리부트 시즌8)을 방영 중인 'SNL코리아'다. 본래 의미인 떠돌며 구걸하는 광대가 아니라, 잘 나가는 시사풍자 미디어다. SNL코리아는 선거철과 인연이 깊은데, 지난해 21대 대선 기간엔 유력 정치인들을 대거 출연시켜 정치풍자의 재료로 활용했고, 올해 6.3 지방선거 시즌에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첫 방송에 섭외하는 등 선거판 주요 무대 중 하나를 차지할 전망이다. 정치인들은 자칫 망가지더라도 대중적 인기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기에 기꺼이 캐스팅에 응한다. ◆국힘보다 나은 SNL '대여공세'? 한 전 대표는 SNL코리아에서 인기 연애 리얼리티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패러디한 '나는 후보' 코너에 출연,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이 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조폭 연루 의혹을 첫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향해 지난 3월 20일 사과를 요구한 걸 비꼰듯 SNS코리아 제작진은 '연애하다 불리한 소리 들으면 SBS, 아니 애인에게 고소하겠다고 엄포 놓는 남친'과 '직장 동료 뒷담화 하다가 회사 잘린 백수 남친' 등 2개 보기를 제시하며 누가 더 빌런(악당)인지 물었다. 이에 한 전 대표는 "대통령 권한 잡았다고 해서 자기한테 좀 불리한 보도를 했던 방송국 자체를 조져버리는 것은 좋은 정치도 아니고 나라를 퇴행시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이 대통령에게 영상편지를 남겨달라는 부탁엔 "정치를 좀 대승적으로 하라"고 일침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 기간에도 SNL코리아에 출연했다. 경선 기간 계속 살아남을 유력 후보라서 섭외된 맥락이었다. 한 전 대표는 그해 4월 21일 녹화에 참여했고 방송은 26일 이뤄졌는데, 1차 경선 컷오프 결과 발표는 녹화 바로 다음날 이뤄졌다. 즉, SNL코리아는 한 전 대표의 1차 경선 통과에 베팅을 하고 그를 섭외했던 셈이다. 이어 대선 본선 시기였던 같은해 5월 24일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배우자 설난영 여사 섭외를 파격적으로 성사시켰다. 방송 내용으로도 상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부인 김혜경 여사를 대놓고 디스(비판)하는 한국 정치풍자 초유의 사례를 썼다. 이때도 SNL코리아는 김 여사의 사법리스크인 셈인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을 꼬집은 질문을 꺼냈다. '법카(법인카드)로 사 먹은 김혜경 여사와 명품백 받은 김건희 여사 중 내조를 더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묻자 설 여사는 "첫번째(김혜경 여사)"라고 답했다. 또 김 여사 이름으로 삼행시를 해달라는 요청에 "김빠져요. 혜경궁 김씨. 경을 칠 노릇입니다"라고 당시 김혜경 여사와 연결고리 의혹이 제기된 SNS 계정을 언급했다. 설 여사는 편의점 상황극에선 아르바이트생 역할을 맡아 김 여사 분장을 한 개그우먼 정이랑에게 "법카 사용하지 마세요. 앞으로는"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SNL코리아는 지난해 시즌 막판(설난영)과 이번 시즌 첫 회(한동훈)에서 연이어 이 대통령을 저격한 셈인데, 최근 국민의힘 안에서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여투쟁'을 정당보다 더 인상 깊게 구사한 셈이 됐다. 물론 SNL코리아는 현 여권 정치인들도 균형감 있게 캐스팅한다. 당장 다음 출연자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에 출전한 박주민 예비후보다. ◆뉴스가 소홀히 한 이슈 코미디로 풍자 이런 높은 수위의 정치풍자를 과거엔 지상파 TV가 주도했다. 심지어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진 셈인 KBS가 중심에 있었다. 1986년 첫 방송된 KBS '유머 1번지'의 간판 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시초다. 가상의 재벌 비룡그룹 임원 회의 꽁트로 각종 시사 이슈를 풍자했다. 회장 역 배우 김형곤을 비롯해 김학래·엄용수·양종철 등 당대 스타 코미디언들이 출연했다. 지금과 비교해도 '독한' 시사풍자가 특징이었다. 1987년 1월 14일 발생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브리핑에서 논란이 된 사망 원인 설명인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를 그대로 "테이블을 '탁' 하고 치니 도자기가 '퍽' 하고 깨졌다"로 패러디한 게 대표적이다. '코미디 텍스트와 풍자의 정치학'(2015)을 펴낸 이기형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저녁 뉴스가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동시에 대중의 관심이 상당한 일련의 부정적이거나 불합리한 사회적 쟁점들을 코미디 텍스트가 예리하게 빗대며 웃음과 조롱 그리고 해학과 비판 정신으로 특정 쟁점들을 까발리고 조명했다"고 분석했다. KBS 뉴스에서 제대로 거론치 못한 이슈를 KBS 개그프로그램에서 시사풍자로 다루며 TV의 공론장 역할을 살렸다는 얘기다. ◆개그콘서트 필두 전성시대 이후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이같은 공론장 형성 기능을 맡았다. '봉숭아 학당'을 비롯해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불편한 진실' '비상대책위원회'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같은 코너가 시사풍자를 녹여냈다. 당시 개콘의 시사풍자 미디어로서의 체급은 현직 국회의원이 고소전을 만들 정도였다. 2011년 사마귀 유치원 코너에서 개그맨 최효종이 "국회의원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라며 풍자 개그를 하자 당시 강용석 국민의힘 의원이 집단모욕죄로 고소했다. 그러자 개콘 여러 코너에서 동료 코미디언들이 이 고소를 풍자하는 개그를 펼치는 반격으로 정치풍자의 묘미를 드러냈다. 결국 고소는 취하됐다. 2012년엔 OTT(쿠팡플레이)가 아니라 케이블 채널(tvN) 시절 SNL코리아의 정치풍자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 의해 선거방송심의위에 회부됐다. 당시 18대 대선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풍자한 '또' 캐릭터에 대해 "특정 후보를 비하하고 욕설이 난무한다"고 새누리당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심의위는 문제가 없다며 '불문' 결론을 냈다. 2015년 방송된 개콘 '민상토론'은 이명박 전 대통령 기업특혜 논란과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 등 정치 현안을 다룬 것은 물론, 롯데 형제의 난과 대한한공 땅콩 회항 등 재벌 문제도 다루며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나 할 법한 심층적 접근도 시도했다. 그러다 정부 메르스 사태 대응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걸 두고 한 시민단체가 민원을 제기, 방심위(현 방미통위)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내렸고, 이후 코너가 폐지되자 외압 논란도 불거졌다. ◆팬덤정치에 몸 사리는 지상파 이후 개콘의 시사풍자 기능은 약해졌고, KBS(개콘, 폭소클럽, 웃음 충전소)가 중심에 선 가운데 MBC(개그야)·SBS(웃음을 찾는 사람들)가 보조를 맞추던 지상파 TV 주도의 시사풍자 시대도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팬덤정치 흐름이 강해지며 특정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나오면 지지자들의 항의가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 등에 쏟아지고 더 나아가 방심위 등 규제 당국에 민원을 넣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게 누적되면 심의·재허가에 불리해질 것으로 판단한 방송사들이 몸을 사린 게 시사풍자의 약화를 넘어 실종 상태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2021년 11월 26일 경향TV 유튜브 '정치풍자 개그가 사라진 불편한 진실' 편에 출연한 개콘 출신 개그맨 황현희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겠다고 시작한 정치풍자인데, 많게는 국민 절반가량의 환호 대신 비판을 애초부터 각오해야 한다면 누가 그걸 시작하려 하겠나"라고 진단했다. ◆OTT·유튜브 시사풍자판 접수 이 틈을 지상파보다 규제가 덜한 OTT, 정확히는 tvN(TV)에서 쿠팡플레이(OTT)로 플랫폼을 옮긴 SNL코리아가 공략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사풍자 분야 중에서도 정치판이 주 타깃이다. 그간 이재명·윤석열·이준석·홍준표·안철수·유승민·오세훈·김문수·이낙연·조국·윤상현·김동연·박지원·나경원·김부겸·정청래·한동훈 등 유명 정치인들이 앞다퉈 출연했다. 또 코미디언 안영미가 뉴스 앵커로 분하는 '위켄드 업데이트'는 매주 화제의 이슈를 시사풍자로 풀어낸다. 역시 규제 외곽에 있는 유튜브도 시사풍자가 활발한 미디어다. 유튜브는 '진보 대 보수'의 진영 편향 구도가 뚜렷한 가운데 코미디언 출신들이 '정치 유튜버'로 나선 게 주요 특징이다. 여러 채널 가운데 같은 개콘 출신 강성범이 친민주 성향 '강성범TV' 유튜브(구독자 70만)를, 김영민은 보수 성향 '내시십분' 유튜브(50만)를 운영하며 입담을 바탕으로 정치풍자에 주력하고 있는 게 상징적 사례다. 유튜브는 기성 언론도 뒤늦게나마 최소 하나씩은 채널을 파 시사 이슈를 다루며 풍자 기능도 곁들이는 창구인데, 방송·신문 둘 다 과도한 수위는 자제하는 관성을 보이며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 말고 본업을 살펴보면, TV 방송의 경우 YTN '돌발뉴스'정도가 시사풍자 프로그램의 명맥을 잇고 있다. 시사와 예능을 결합한 JTBC '설전' 종영 후 TV조선 '강적들' 같은 아류 프로그램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사풍자 기능은 전보다 약하다. 다만, 선거 개표 방송 때나 유머와 패러디를 가미한 기획으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다. 신문은 김성환(동아일보 '고바우'), 박재동(한겨레 만평), 박순찬(경향신문 '장도리') 같은 스타급 시사만화가들이 잇따라 퇴장하며 존재감이 급격히 떨어져 있다.
2026-04-03 12:00:00
늘 다니던 큰 길에서 벗어나 괜히 좁고 어둡고 후미진 길로 발을 옮기면, 평소보다 좀 느리게 발을 디디면, 늘 내려다보던 스마트폰 대신 지면의 생김새를 살피고 그러다가도 고개를 위로 올려 담장과 지붕 위를 탐색하면, 골목길에 감춰진 이런저런 이야기가 발견됩니다. 그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당신의 안보시력은 얼마입니까? 맨 아래 글자까지 읽을 수 있다면, 시력 2.0이다. 과거 국정원(국가정보원)에서 만들어 골목길에 붙인 간첩 신고 홍보 시력검사표다. 지자체 홍보로 이름을 날렸던 충주맨(김선태) 같은 직원이 국정원에 있었던 걸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력이 좋다는 얘기인 시력검사표 표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사회곳곳에는간첩과좌익사범및국제범죄사범이숨어있을지모릅니다여러분의신고정신이국가안보를지켜줍니다 ◆간첩 신고 상금 500만원→20억원 이 홍보물에 적힌 간첩 신고 상금도 눈길을 끈다. 1960년대부터 간첩 신고 시 그 결과에 따라 상금을 주는 제도는 우리나라의 높은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을 반영했다. 70년대엔 간첩 신고 500만원(이하 최고액 기준), 간첩선(간첩들이 타고 온 배나 잠수정 등) 신고 1000만원이었다. 80년대에는 간첩 신고 3000만원, 간첩선 신고 5000만원으로 10년 만에 5~6배 수준으로 높였다. 90년대에는 간첩 신고 1억원, 간첩선 신고 1억5000만원으로 3배가 됐다. 이어 2011년 간첩 신고 5억원, 간첩선 신고 7억5000만원으로 10여년 만에 5배로 상승했다. 정부는 신고 상금 인상 이유로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신고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자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며 '간첩 로또'라는 제목을 기사에 붙였다. 로또 복권 1등 당첨금에 견줄만한 액수라는 표현이었다. 다시 5년 뒤였던 2016년 신고 상금 최고액이 20억원을 찍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간첩 등 국가안보 위해 사범의 활동이 수법이 날로 은밀화 및 지능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증액 이유를 밝혔다. 이후 10년이 지났고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변치 않은 건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다. 통상 10년 간격으로 간첩 신고 상금이 상승했으니, 다시 올릴 때가 된 건 아닐까. ◆대구 신암동 무장간첩 사건을 아시나요? 이 밖에도 골목길에 가면 주소를 적어놓은 팻말 속 새마을운동 심볼에 곁들여진 '반공' 글자, 동네 골목마다 한집씩 있었던 '주민신고센타' 팻말로 반공의 시대를 지나온 대한민국 현대사를 확인할 수 있다. 대구 북성로 골목에서도 '숨은 간첩 찾아내고 자수 간첩 도와주자'는 대구경찰서장 명의 구호가 새겨진 오래된 벽면을 관람할 수 있다. 북한 간첩은 실제로 우리 현실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1984년 9월 24일엔 대구 동구 신암동 백합미용실과 희민식당에서 신원미상의 북한 무장간첩 1명이 민간인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간첩은 독극물 앰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단순히 반공·멸공 궐기 대회에서 구호로만 외칠 게 아닌, 일상에서 내 가족이 언제 당할지 모를 공포였다.
2026-04-03 12:00:00
[커버스토리] 지자체 '뭉쳐야 산다' 통합이 대세? '영리한 이별' 분리도 모색
지방소멸 극복을 위해 전국에 통합 바람이 불고 있지만, 동시에 분구(分區) 같은 분리 움직임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구경북을 비롯해 광역자치단체 단위에선 '뭉쳐야 산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기초자치단체 사이엔 '영리한 이별'을 요구하는 주민 여론도 만만찮다. 통합과 분리 중 생존에 더 유리한 선택을 저울질하는 시대다.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 나뉘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합치고, 합쳐도 세월이 흐르면 반드시 나뉜다)이라는 옛말도 인용할 수 있다. 대구만 봐도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하며 경북을 벗어나 새 둥지를 틀었지만, 40년 만에 뿌리 경북에 재결합을 구애하고 있다. 생물처럼 나뉘고 합치길 반복하는 행정구역 개편은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다양한 사례를 쌓고 있고, 여기서 도출되는 의미와 던져지는 과제를 대구경북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4개 구 신설해 동력 찾는 인천 대구와 인구수·경제 규모·정치적 위상 등을 두고 '대한민국 제3의 도시' 경쟁을 하고 있는 라이벌 도시 인천은 올해 4개 구를 새롭게 출범시킨다. 인천은 대구와 마찬가지로 근대화와 산업화 다음 성장 동력이 마땅찮아 낡은 도심이 비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고 신산업 먹을거리 부재에 청년이 떠나는 문제 역시 안고 있다. 이를 해결코자 도심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신도시도 개발하면서 기업·인재 유치에 나서는 등 닮은꼴 해법을 펼치는 가운데, 인천은 2022년부터 타 대도시와 차별화 한 행정구역 개편 방책도 추진하더니 4년 만에 실현한다. 바로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서해구다. 중구·동구를 폐지해 제물포구·영종구를 신설한다. 중구의 원도심이 기존 동구와 합쳐져 제물포구가 되고, 인천국제공항 소재지로 유명한 영종도 일대가 영종구가 되는 것이다. 역시 가좌동 등 원도심 개선이 고민인 서구는 검단구를 끄집어내고 남은 서구 지역은 서해구로 이름을 바꾼다. 이에 따라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4개 구의 구청장과 지방의원을 새로 선출한다. 새 부대에 새 술이다. ◆제물포 역사성 부활…후유증 우려는 숙제 제물포구는 1883년 제물포항 개항 후 인천의 시작이 된 인천 원도심(동인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맥락이다. 인천 중구와 동구는 지난 20세기 거의 내내 인천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였으나 인천시청이 1985년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한 걸 시작으로 상권과 학교가 빠져나가 다른 부도심들이 부상하면서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이에 2020년대 들어 제물포구라는 이름으로 재결합하라는 처방전이 제시됐고, 대신 선물로 받는 셈인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 같은 기회를 부활 동력으로 삼게 됐다. 중구와 결별하는 영종구는 기존 영종국제도시 주민들이 바다 건너 내륙에 있는 중구 도심 생활·행정 인프라 이용에 어려움을 겪던 걸 해소하게 됐다. 기존 신도시(영종국제도시)가 하나의 지자체로 체급을 올리는 셈인 영종구 사례를 두고는 같은 인천 내 연수구 소재 송도국제도시가 향후 가칭 송도구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돋우며 부러워하는 여론이 감지된다. 마냥 장밋빛 전망만 있진 않다. 현대제철 등 산업경제 기반을 가진 동구와 비교해 중구는 과거 명성만 있다. 아울러 중구는 이번에 인천국제공항 기반 세수를 가진 영종국제도시를 떠나보낸다. 재정 격차가 꽤 있는 두 지자체의 결혼이 제물포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매개로 한 주도권 싸움 양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서구가 나뉘어져 생기는 검단구와 서해구는 과거엔 행정구역을 자연환경이 구분해줬으나 이젠 거대 인공시설이 구분해주게 된 희소 사례가 된다. 지난 2012년 개통한 운하인 경인 아라뱃길 북쪽이 검단구, 남쪽은 서해구가 된다. 실은 영종구도 인천국제공항 건립을 위한 영종도 간척사업의 결과물인 셈이다. ◆IT로 큰 화성·용인·성남 분구 '바람' 분구(구 신설 포함) 사례 내지는 그럴 조짐은 경기도에도 여럿 있다. 인구를 증가시키는 지역 산업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최근 경기 화성시가 일반구(선거로 구청장을 선출하는 자치구와 달리 구청장 임명) 4개를 전격 설치해 주변 지자체에 관심을 환기시켰다. 99만이 사는 화성은 인구가 50만을 넘긴 2010년부터 꾸준히 일반구 설치를 논의, 애초 3개 구 설치를 추진하다 그 사이 도시가 급격히 커진 데 따라 만세구·효행구·병점구·동탄구 등 4개 구를 올해 2월 출범시켰다. 동쪽 동 단위 지역에 인구가 몰리고 서쪽 읍·면 단위 지역은 낙후하는 동서격차 타개가 핵심 목적이다. 그런데 현지 여론은 4개 구 신설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동탄구를 구성하는 동탄신도시는 하나가 아니라 1·2신도시로 구분된다. 이에 위치를 따져 1신도시 일대를 동탄서구, 2신도시 일대를 동탄동구로 재차 나누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접 용인시 기흥구의 기흥구·구성구 분구 이슈도 다시 꿈틀하고 있다. 화성과 용인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매개로 급성장했는데, 최근 반도체 활황에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민들의 분구 요구를 형성하는 한 요인이다. 애초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경기 수원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권선구도 분구 논의 대상이 된 바 있다. 반도체 활황은 이들 삼성전자 소재지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있는 경기 이천시까지 포함, 경기 남부 지역 부동산 시장에 제법 훈풍도 만들고 있다. 경기 성남시에서도 분당구 내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를 분당구·판교구로 가르자는 여론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역시 네이버·카카오 등 공룡 IT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테크노밸리의 존재감이 분구 여론에 영향을 끼친 맥락이다. ◆대구 침체에 달서구·북구 분구 '잠잠' 대구에도 분구 여론이 있다. 대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달서구에 꾸준히 제기됐다. 달서구는 지난 2001년 인구 60만을 돌파하며 분구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 당시 달서구는 서울 송파구(69만)와 노원구(64만)에 이어 전국 69개 자치구 중 3번째로 60만 고지에 올랐다. 1988년 대구 남구·서구의 일부를 떼어다 만든 달서구 인구는 출범 당시 28만이었던 게 1997년 50만을 넘어서더니 4년 만에 60만을 찍었다. 성서산업단지가 1988년 1차 단지, 1992년 2차 단지를 조성하며 배후 주거지구가 마련돼 성서 지역을 형성했고, 미완에 그친 월배공업단지 부지가 2003년 월배신도시로 개발된 전후로 월배 지역도 형성했다. 이렇게 생활권이 둘로 나뉘자 가칭 성서구·월배구 분구 여론이 형성됐다. 1990년 달서경찰서에 이어 2005년 성서경찰서가 마련되고 성서행정타운 부지가 성서구청 입지로 거론되는 등 가시적 기반을 갖춰나갔으나, 지금은 별 얘기가 없다. 60만을 넘겼던 인구가 2026년 현재 51만까지 하락해 조만간 통상적 분구 기준(50만 이상)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생활권을 이유로는 대구 북구에도 분구 논의가 존재한다. 금호강과 함지산이라는 자연 경계를 기준으로 먼저 북구로 자리잡았던 남쪽 지역과 1981년 편입된 북쪽 지역(과거 칠곡읍, 통칭 '강북')을 분할하는 시나리오다. 강북 지역 칠곡지구엔 가칭 강북구 분구에 대비한 칠곡행정타운(또는 강북행정타운) 부지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는 대구가 '지금과 달리' 성장을 구가하던 시기 성서행정타운 부지와 함께 달서구·북구의 분구 가능성을 높게 따진 흔적인 셈이다. ◆가창 수성구 편입 불발…'깜짝' 군위 대구 편입 현재 인구가 달서구(51만)보단 적지만 북구(41만)와 함께 대구 공동 2위 수준이며, '대구의 강남' '서울 강남 다음 가는 교육환경' '비수도권 최고 부자 동네' 등 대구 톱 내지는 탈대구급 입지라는 수식이 붙는 수성구는 이같은 선호도를 바탕으로 편입 이슈를 홍역처럼 앓았다. 바로 대구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 논의다. 가창면은 과거 수성구의 뿌리인 수성현 지역이었고, 수성구 파동에 접해 수성구 생활권이 꽤 굳어진 지역이다. 이에 수성구 편입 공약이 선거 때 등장하기도 했고, 특히 2023년엔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이 편입 검토 의사를 밝히자 최재훈 달성군수가 반대 입장으로 맞선 것은 물론, 편입 설명회에서 찬성·반대 주민들 간 충돌이 벌어지는 등 핫 이슈였다. 곁들여 달성군 다사읍·하빈면의 달서구 편입 논의가 불거질 조짐도 있었다. 수성구는 1980년 대구 동구 남쪽 지역이 분리돼 출범했는데, 바로 1년 뒤인 1981년 경북 경산시(당시 경산군) 고산면(현재 시지 지역)을 편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수성구 서쪽 범어·황금 등지는 동대구 부도심을 구성하지만, 동쪽 시지는 맞닿은 경산과 생활권을 공유하는 연담화(連擔化) 환경에 놓여 있어 이게 향후 분구의 단초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즉, 선택지는 늘 열려 있다. 지금 수도권에서도 그러듯이 분구도, 편입도 언제든 지역 생존 논리를 자극하면 강한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 2023년 군위군 대구 편입이 그런 예다. 당시 경북에 속했던 군위는 팔공산이 가로막고 있어 대구와 생활권도 공유하지 않았지만, 새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군위의 협조 없이는 자칫 무산될 위기를 역으로 압박, 대구 편입을 신속히 성사시켰다.
2026-04-03 11:30:00
[금주의 이슈] 북중미 월드컵도 독점중계 논란…6월 개최 전 해결 가능?
'보편적 시청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월 JTBC의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독점중계가 제한된 시청 통로에 따른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는 방송사 수지타산 논리와 별개로 공공재 성격의 재미와 감동을 국민들이 골고루 누릴 수 없었다는 문제 제기로 연결됐다. 이어 2개월여 뒤 재차 JTBC가 독점중계할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제도 개선을 주문, 정부와 정치권이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통상 지상파 3사가 공동중계해왔다. 그러다 종편채널 4곳 중 하나인 JTBC의 독점중계가 이번에 초유의 사례를 쓰며 논란이 된 것인데, 실은 3사의 과점중계 관행에 대해서도 지상파의 영향력이 점점 낮아지는 시대에 과연 정답인지 질문이 꾸준히 향한 바 있다. ◆개회식 시청률 1/10로 급감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개회식 시청률은 1.8%(이하 닐슨코리아)로 집계됐다. 4년 전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시청률 18%(KBS1 9.9%, MBC 4%, SBS 4.1%)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개막식을 하는지도 몰랐다"는 국민 반응이 다수 언론 보도 제목에 인용됐다. 물론 이들 수치는 보정이 필요하다. 베이징 대회 개회식은 오후 8시 20분부터 초저녁 황금시간대에 중계된 반면 밀라노 코르티나 대회 개회식은 평일 새벽 3시 30분부터 중계됐다. 그래서 개회식 당일 낮 JTBC 재방송 시청률 1.9%도 더한 3.7%+알파(보정치)를 비교 대상으로 삼을 만한데, 그럼에도 18%에 근접하기란 역부족이다. 다른 주요 경기 시청률을 살펴봐도 밀라노 코르티나 대회는 가장 높았던 게 대한민국의 주 종목인 쇼트트랙 남자 500m·여자 1000m·남자 5000m 계주 경기가 연이어진 2월 16일 저녁 11.2% 기록이다. 베이징 대회 땐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경기가 있었던 2022년 2월 14일 방송 3사 중계 합산 시청률이 최고 기록이다. 46.6%였다. 그 밖에도 20~30%대 기록이 숱했다. ◆완성도 높이는 공동중계 효능 이번 동계올림픽 땐 독점중계의 시청 만족도 저하 문제에도 시선이 향했다. 지난 2월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최가온이 금메달을 차지, 우리 선수단의 첫 금메달 획득 기록이 작성됐지만 정작 이 순간은 JTBC로 생중계되지 않았다. 당시 쇼트트랙 경기를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JTBC는 최가온의 결승 1차 시기까지만 보여주고 쇼트트랙 경기로 중계를 전환했다. 이후 최가온의 경기는 JTBC스포츠에서 생중계됐다. 이어 최가온이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JTBC는 자막 속보로만 전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JTBC 측은 "최가온 선수의 경기를 JTBC와 JTBC스포츠에서 동시 생중계했으나, 쇼트트랙 경기가 시작됨에 따라 JTBC는 쇼트트랙 중계로 전환하고 JTBC스포츠에서 하프파이프 중계를 이어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JTBC가 쇼트트랙 중계 도중 다시 최가온 선수 경기로 전환할 경우 쇼트트랙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은 없어지게 된다. 쇼트트랙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강세 종목이자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만큼 시청자 선택권을 고려해 중계를 유지했다"고 부연했다. 그런데 JTBC스포츠는 JTBC와 비교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즉 시청자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채널이다. 특히 채널번호(대구경북 기준)가 JTBC는 10번대 위주이지만 JTBC스포츠는 87번부터 977번까지 멀리 떨어져 있는 등 일부 시청자들이 최가온의 경기를 계속 보기 위한 채널 전환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는 KBS가 평소 대등한 인지도의 1·2TV 채널을 십분 활용해 여러 경기를 동시중계하고 유연하게 전환하는 노하우와 비교됐다. 최가온의 경기를 화면 분할이나 같은 화면 내 미니화면으로라도 동시중계하고, 경기 종료 후 연달아 지연중계를 편성하는 등 운용의 묘가 부재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시청자 입장에선 중계 방송사가 여럿일 경우 가령 어느 한 곳이 실수를 저질러도 신속히 채널을 돌려 시청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때 방송사끼리 일종의 보험이 되는 순기능이 형성된다. 경쟁 구도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시청 만족도에 보완이 이뤄지는 셈인데, 이런 효능이 독점중계에선 나올 수 없다. ◆李 "제도 개선"→여당 법 개정 착수 최가온 경기 중계 문제 이후로도 독점중계를 타깃으로 한 지적이 쏟아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의견을 개진해 이슈에 불을 더욱 지폈다. 그는 대회 종료 이틀 뒤였던 지난 2월 24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우리 선수들의 투지와 활약에도 과거 국제대회와 비교하면 사회적 열기가 충분히 고조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며 "국제적 행사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접근성을 폭넓게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 이유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JTBC 독점중계 문제를 꼬집은 발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각 여당에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이달 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현안 질의에서 "JTBC가 현행 방송법상 유료방송 가입 가구가 90% 이상이라는 이유로 '보편적 시청권' 요건을 충족했다고 주장했으나 유료방송은 매달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유료방송 시청률 90% 이상→보편적 시청권 충족 해석→독점중계 가능'이라는 현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주요 스포츠 이벤트를 무료방송에서 볼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하는 영국 '리스티드 이벤트'와 호주 '안티 사이포닝' 제도를 사례로 들어 "시청권 범위를 무료방송 중심으로 전면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맡은 한정애 국회의원은 올림픽·월드컵 등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이달 16일 밝혔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고시 국민관심행사 중계방송권자가 지상파 방송사업자 등에게 중계방송권 제공 요청을 받았을 때,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가 중계권 관련 분쟁 조정 권한을 갖는 조항도 들어갔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JTBC가 따낸 중계권을 지상파 방송사들에 재판매하는 협상이 결렬돼 62년 만에 처음으로 지상파 중계 없이 진행됐다. ◆코리아풀·사전승인제 강화해야 이달 20일엔 방미통위가 개막까지 2개월여 남았지만 여전히 중계권 협상 난항이 지속 중인 북중미 월드컵을 콕 찝어 보편적 시청권 보장 방안을 위한 공개간담회를 개최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 국민에게 듣는다'는 제목으로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행사에선 결국 방송업계의 힘겨루기 결과인 셈인 중계권 협상 결렬이 곧 국민들의 보편적 시청권 훼손으로 이어진 걸 두고 방송사 공동협력 체계(코리아풀) 강화와 사전 승인제 도입 등의 개선책을 거론했다. ◆KBS 패럴림픽 중계권 파격 개방 지상파를 통한 무료 시청 확대와 함께 온라인·디지털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간담회에서 나왔는데, 이는 앞서 KBS가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 독점 중계권을 다른 지상파는 물론 다양한 매체에 개방한 사례와 궤를 같이 한다. 패럴림픽은 신체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동계·하계 대회 모두 올림픽 종료 직후 같은 개최지에서 이어진다. 그래서 올림픽을 중계한 방송사 인력이 그대로 남아 패럴림픽 중계도 맡는 편이다. 그런데 JTBC는 이번 동계패럴림픽 중계권은 사지 않았다. 대신 중계권을 독점 확보한 KBS는 1·2TV와 유튜브 등 보유 채널을 최대한 활용해 대회를 중계했다. 아울러 다른 매체의 영상 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뒀던 관행에서 벗어나 유튜브 업로드를 비롯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쓸 수 있도록 했고, 지상파를 포함해 뉴스 전문 채널과 종편 등 다양한 매체에 주요 경기 영상과 인터뷰를 제공했다. 마침 우리 선수단은 금 2·은 4·동 1로 종합 13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둬 그만큼 많은 소식이 쏟아졌다. 이같은 파격적 독점 중계권 개방은 JTBC의 독점중계를 에둘러 비판한 맥락으로 해석됐다. KBS는 "수익성보다는 상대적으로 보도에서 소외돼 온 패럴림픽의 위상을 높이고, 참가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널리 알리겠다는 공영방송의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수신료의 가치'를 표방하는 KBS의 이러한 대승적 결단에 정부·정치권의 제도 개선 잰걸음이 더해져 관심 여론을 증폭, JTBC와 지상파 방송사들 간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어 KBS가 동계패럴림픽 중계권을 전격 개방할 때 드러낸 마음가짐을 철회하지 않고 월드컵 때도 지속하면, 관행이었던 지상파 과점중계의 한계 역시 극복해 온라인·디지털 환경 기반 보편적 시청권을 대폭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26-03-27 13:00:00
이적과 김진표로 구성된 2인조 패닉이 1집을 발표한 1995년 10월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이 발매된 때이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타이틀곡 '컴백홈'으로 KBS 음악프로그램 가요톱텐 1위를 4주 연속 기록해 골든컵을 차지하는 동안, 패닉의 타이틀곡 '아무도'는 제목마냥 아무도 모르는 곡으로 묻혔다. ◆반년 뒤 역주행 '달팽이' 그러다 반년이나 지난 1996년 4월 역주행으로 가요톱텐 1위를 차지한 곡이 있다. '달팽이'다. 홍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이 곡은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현대인의 지친 일상을 느리고 작고 하찮은 몸집의 달팽이에 비유한 노랫말로 많은 공감을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다만, 이런 감동을 주는 곡들만 가득할 줄 알고 음반을 사서 들어봤더니 놀라 당황해 하는 경우도 이어졌다. 일단 앨범 커버부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유행한 '엽기' 코드를 한 발 앞서 활용한듯한 두 멤버의 장난스러운 표정들로 채워져 있다. 못 뜬 타이틀곡 아무도는 이별의 후유증을 두통과 숙취에 비유한듯한 왁자지껄한 펑키리듬의 곡이다. 이런 스타일을 이적은 이후 김진표와 헤어져 버클리 음대 출신 기타리스트 한상원·피아니스트 정원영 등과 결성한 6인조 밴드 긱스에서 더욱 짙게 이어나간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는 김진표가 사회 비판 랩으로 채운 곡이다. 역시 이후 김진표가 JP라는 이름의 래퍼로 나서게 된 시발점이다. ◆소수자 차별 꼬집은 '왼손잡이' 달팽이 다음으로 인기를 누린 '왼손잡이'는 두 사람이 애초 세상에 던져 흔들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잘 보여주는 곡이다.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 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을 오래된 차별 대상인 왼손잡이에 비유했다. 비슷한 시기였던 1995년 9월 신해철이 이끌던 록 밴드 넥스트가 동성동본 금혼법을 비판한 록발라드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내놔 화제가 된 것과 닮은 사례다. 또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에서 가출 청소년 문제를 다뤄 실제 집으로 복귀시키기도 한 컴백홈, 원래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혁명 내지는 체제전복 주장으로 표현한 가사가 담겼지만 사전심의 과정에서 공연윤리위원회가 지적하자 아예 가사 전체를 삭제하는 반발로 더욱 유명세를 탄 '시대유감' 등도 함께 묶어 90년대 중반을 지나던 한국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인재(人災)가 연이어졌고, 당시 신문과 TV에선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연일 뉴스로 다뤘다. 이에 대중가요가 즉각 반응한 것이다. 왼손잡이의 노랫말을 변주해 요약할 수 있다. "왼손잡이인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세상을 망치는 건 부실공사를 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너희들이야." 왼손잡이로 대표되는 패닉의 사회 비판 성향은 1년 뒤 2집 '밑'(1996)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제주도의 푸른 밤'과 페어링? 패닉의 1집은 한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중 하나인 들국화 멤버 최성원이 데모 테이프를 들고 온 이적을 알아보고 전체 프로듀서를 맡아 정성껏 매만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서 가장 뜬 곡 달팽이는 이적이 작사·작곡 모두 담당하긴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7년 전 최성원이 들국화가 아닌 솔로로 처음 발표한 곡 제주도의 푸른 밤(1988)과 서사가 묘하게 연결된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현실은 시간 순으로 인과를 형성하지만, 예술세계에선 시간을 뒤집어도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요즘 현대인들은 여전히 달팽이처럼 살기 때문에, 이상향은 여전히 별이 빛나는 푸른 밤 제주도를 닮은 낙원일지도.
2026-03-19 12:00:00
[시사뒷담] 4년 전 민주 대尹투쟁 SNS 랭킹 1위 진성준→이번엔 국힘 대明투쟁 조사
2004년 미국에서 시작된 SNS 페이스북은 이제 한국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태계가 됐다. 정치인들에겐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즉각 폭탄 발언을 던질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커뮤니케이션 무기다. 또 정치인들끼리 실시간 설전을 벌여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기도 한다. 동료 의원들과 스크럼을 짜 같은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공유할 경우, 오프라인에서 함께 피켓을 드는 것보다 더 강력한 여론전을 구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선거철엔 더욱 과열되는 정치 플랫폼이 바로 페이스북이다. 이와 관련한 똑닮은 조사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 진영을 상대로 4년 간격을 두고 벌어졌다. ◆페북 잘하면 연임 가능성 상승? 이재명 대통령 지지자로 알려져 있는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은 20대 대선 3개월 전이었던 2021년 12월 2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당시 21대 국회) SNS 활동 순위'를 페이스북으로 공개했다. 그는 "2021년 11월 17~2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나온 개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공식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계정의 게시물 수를 모두 합해 순위를 매겼다"면서 "이재명 후보 선거운동은 물론, 글 중에 이재명 후보의 사진 또는 단순 언급된 것까지 포함시켰다. 또한 이재명 후보가 언급되지 않더라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한 비판과 지적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김용민 이사장은 "단 한 건도 글을 올리지 않는 국회의원들의 개선 노력을 부탁드린다"며 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단결을 호소했다. 베스트 21명 의원은 이랬다. ▷진성준 ▷김남국 ▷조정식 ▷강선우 ▷소병훈 ▷양이원영 ▷문정복 ▷박주민 ▷최기상 ▷윤후덕 ▷김영진 ▷윤호중 ▷이용빈 ▷이탄희 ▷박용진 ▷고민정 ▷송영길 ▷강병원 ▷임종성 ▷장경태 ▷정청래 순이었다. 워스트 80명 의원도 가렸는데, 그 중 '단 한 건도 글을 올리지 않은 의원' 17명은 ▷김민기 ▷김민철 ▷김수흥 ▷김정호 ▷김진표 ▷맹성규 ▷박광온 ▷송갑석 ▷송기헌 ▷안규백 ▷윤영찬 ▷이형석 ▷인재근 ▷전혜숙 ▷조응천 ▷한병도 ▷홍성국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베스트 의원 21명 중 다음 22대 총선에 공천되고 본선에서도 승리한 경우가 62%(13명)에 달한 것과 비교, 워스트 의원 17명 중 22대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례는 29%(5명)에 불과했다.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걸까? 일종의 '줄 서기' 프레임을 적용할 수도, 페이스북 활동이 활발한 만큼 오프라인에서 민심을 얻는 활동 역시 잘 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실은 별 상관 없는 요소일 가능성도 있다. 이 조사 15위에 랭크됐던 박용진 당시 의원은 비교적 높은 순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 같은날 페이스북을 통해 "스스로를 권력화하고 근거없이 비난하게 하고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고 조사 및 순위 공개 행위에 대해 비판하면서 "SNS가 아니어도 의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후보와 당의 승리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張 발언 받아 본지도 전수조사 4년 뒤 매일신문은 "국민의힘이 SNS에 이재명 대통령 비판하는 글 하나씩만 올려도 하루에 메시지 107개가 나온다. 그러면 우리 지지자도 '아 이제 국민의힘이 제대로 싸우네'라고 반응할 것"이라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인터뷰(올해 2월 16일) 발언을 매개로 국민의힘 의원 107명의 페이스북 대여투쟁 현황을 조사했다. 앞서 김용민 이사장 측이 대선 3개월 전에 전수 조사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6.3 지방선거 석 달 전에 전수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지난 7일 자 '[전수분석] 국힘 최고 파이터는 주진우…꼴찌는 누구?' 기사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2025년 6월 4일부터 올해 2월 13일까지 254일 간 국민의힘 의원 107명이 자기 명의로 페이스북에 남긴 게시글 2만5천801건을 전수 분석해 순위를 매겼다. 상위 20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주진우 ▷박수영 ▷김민전 ▷박성훈 ▷최수진 ▷송언석 ▷김미애 ▷나경원 ▷최보윤 ▷조배숙 ▷유상범 ▷김승수 ▷최은석 ▷김장겸 ▷이상휘 ▷이종배 ▷강선영 ▷김소희 ▷박정훈 ▷서명옥 1위를 차지한 주진우 의원이 조사 기간 페이스북에 올린 787건의 게시물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 비판 등 대여투쟁 내용은 673건(86%)이었다. 조사의 계기가 된 장동혁 대표는 27위를 기록했다. 이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6.3 지선 성적표나 향후 23대 총선(2028년 4월 12일 예정) 결과 등과도 엮이며 향후 더욱 풍부한 분석을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그때까지 당이 회생에 성공해 보수 대표 제1야당의 자리를 굳건히 해야 쓰임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김용민 이사장과 매일신문이 잇따라 닮은 형식의 선례를 만든데 따라, 이를 정당 등 정치권에서 벤치마킹할 여지도 생겼다.
2026-03-19 12:00:00
[금주의 이슈] 대한민국은 음주운전 꼼수·상습범과의 전쟁중
3월 들어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키워드가 '음주운전'이다. 최근 배우 이재룡이 음주운전 후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 및 일명 '술타기' 수법을 썼다는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이돌 '위너' 출신 남태현은 징역형이 구형돼 수감 위기에 놓였다. 또 지난 2월 음주운전으로 다른 차량을 연달아 들이받아 모두 15명의 부상자를 만들며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임명 6개월 만에 직권면직된 김인호 전 산림청장이 불구속 송치됐다는 소식이 이달 업데이트됐다. 아울러 봄 행락철을 맞아 경찰이 전국 각지에서 음주운전 집중단속에 나섰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도 기사로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10만명이 넘는 음주운전자가 적발된다. 그나마 점점 감소하고 있는 숫자인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습 음주운전이 고질병이다. "음주운전의 왕국이냐"고 조롱 받을 자격(?)이 충분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끊이지 않는 유명인 음주운전 최근 화제의 인물이 된 이재룡과 남태현 둘 다 음주운전 재범 이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꼼수 의혹과 죄질불량 맥락도 더해져 비판 여론을 더욱 돋우는 모습이다. 이재룡은 이달 6일 오후 11시쯤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청담역 인근에서 차를 운전하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후 달아나 3시간정도 후 지인 집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처음엔 "지인 집에서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던 이재룡은 "소주 4잔을 마시고 차를 몰았고, 사고 당시 중앙분리대에 살짝 접촉한 줄 알았다"고 뒤늦게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이재룡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0.03~0.08%)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면서 그가 추가로 술을 마셔 음주 측정에 혼선을 주려 했다는 술타기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음주운전자가 도주하는 등의 경우에 대비, 마신 술의 양·알코올 도수·체중 등을 바탕으로 시간 경과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을 쓴다. 그런데 술타기 수법을 쓰면 음주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수치 파악이 힘들어진다. 음주운전자의 몸이 증거로 채택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이를 통해 음주운전 혐의 자체를 모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이끌어낸 판례도 여럿이다. 이재룡 측은 "사고 발생 전부터 예정돼 있던 약속에 참여한 것이다. 음주 측정 방해 목적으로 추가 음주를 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13일 경찰은 이재룡을 음주측정방해 혐의로 추가 입건했고, 결국 이재룡이 의혹을 인정한 데 따라 18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술타기 꼼수에 재범도 서슴없이 바로 '김호중 방지법'을 적용한 것이다. 2025년 6월부터 시행 중인 도로교통법 44조 5항에서는 음주 측정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술이나 의약품 등을 사용하면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지난 2024년 5월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후 달아나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구입한 걸 두고 술타기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면 도망가는 게 더 유리하다'는 취지로 모방이 잇따라 국민적 지탄이 집중되자, 같은해 11월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이다. 연예계 유명한 주당으로 꼽히는 이재룡은 실은 23년 전에도 음주운전을 저지른 바 있다. 행동과 장소 등이 이번과 꽤 닮았던 터라 시선이 향한다. 그는 2003년 3월 21일 강남구 청담사거리 인근에서 차를 몰다 운행 중이던 택시와 추돌했다. 당시 이재룡은 차를 몰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음주측정을 거부하다 서울강남경찰서로 연행된 후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했다. 이때도 지인들과 술을 더 마시기 위해 이동하던 중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남태현은 지난해 4월 27일 서울 강변북로 경기 일산 방향 동작대교 인근에서 면허취소 기준(0.08%)을 크게 초과한 혈중알코올농도 0.122%의 상태로 운전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도로 제한 최고속도(시속 80km)를 훌쩍 넘긴 시속 182km까지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남태현은 다치지 않았고, 다행히 다른 인명피해 역시 없었다. 그 또한 재범이었다. 남태현은 지난 2023년 3월 8일 새벽 강남구 한 주택가에서 음주 후 차를 8m정도 운전해 적발된 바 있다. 이어 2024년 1월 마약 투약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 집행유예 기간 중 음주운전을 또 저지른 것이다. 이에 검찰은 이달 12일 남태현의 음주운전 사건 결심공판에서 상습적 음주운전과 죄질불량 등을 이유로 징역형을 구형한 맥락이다. ◆적발 감소했지만 상습이 난제 술타기 같은 꼼수를 막는 법이 도입돼 모방범죄를 막고, 도마에 올랐던 유명인이 법적 처벌을 받는 과정이 널리 알려지는 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기에 사후약방문임에도 반길 일이다. 그런데 경찰 등 당국이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하는 난제가 상습 음주운전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음주운전 초범(1회) 적발 건수는 2010년 17만9천86건에서 2025년 6만81건으로 15년 사이 3분의 1 규모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재범(2회 이상)부턴 딴판이다. 총 건수는 감소 추세지만 다회 적발로 갈수록 병폐 수준이다. 7회 이상 상습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2010년 478건에서 2025년 935건으로 되려 2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6회도 903건에서 1천71건으로 늘었고, 5회는 3천118건에서 2천516건으로 소폭 줄어 제자리 수준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초범 단속 건수는 특히 2019년 '윤창호법' 시행 시기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면서도 "2회 이상 재범자는 전체 감소세에 비해 하락 폭이 완만하다"고 지적했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자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법정형 수준을 1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높인 것을 비롯해 ▷음주운전 초범 기준(2→1회) ▷적발 시 면허취소 기준(3→2회) ▷음주운전 혈중알코올농도 기준(최저 0.05% 이상~최고 0.2% 이상→최저 0.03% 이상~최고 0.13% 이상)을 강화했다. ◆50대男 상습 최다 골칫덩이 지난해(2025년) 2회 이상 상습 음주운전자 4만6천556명을 성·연령별로 분류했더니 남성(4만3천76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50대 남성(1만2천798명)이 제일 많았고, 40대 남성(1만2천197명)과 60대 남성(7천883명)이 뒤를 이었다. 젊은층은 초범 적발 후 갱생해 재범률이 급격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30대 남성은 초범이 1만4천111명이고, 2회 이상은 그 절반 아래 수준인 6천529명이었다. 반면 50대 남성은 초범(7천962명)보다 2회 이상(1만2천798명)이 더 많은 부류다. 7회 이상의 경우도 50대 남성(360명)이 1위였고, 60대 남성(296명)과 40대 남성(184명)이 뒤따랐다. 7회 이상 사례의 90%를 중장년들이 차지한 것으로, 20대 남성이 6명이고 30대 남성은 24명인 것과 대비된다. 재범을 저지른 배우 이재룡(62)과 재범 방지 대상인 김인호(62) 전 산림청장 둘 다 60대다. 계속 적발돼도 도로 위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음주운전을 서슴지 않는 인생을 이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을 포함한 음주운전자들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024년 138명에 달했다. 2015년 583명에서 크게 감소한 것이긴 하나, 죽지 않아도 됐을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음주운전자들의 '예비살인' 방종을 매섭게 노려보게끔 만든다. ◆시동잠금장치 효과 낼까? 이에 윤창호법과 김호중 방지법 등 관련 법이 도입되고 있으며, 음주운전자들이 꾸준히 누릴 수 있었던 '특별사면' 길도 일찌감치 막혔다. 2009년 광복절 특사 때만 해도 5년 내 2회 미만 음주운전자는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그랬던 게 2015년 광복절 특사에서 2회 이상 상습 음주운전자는 제외했고, 2016년 광복절 특사를 시작으로 초범도 제외하고 있다. 그럼에도 숙지지 않는 음주운전을 근절코자 물리적 수단도 전격 도입된다. 골칫거리인 상습 음주운전자들이 첫 타깃이다. 올해 10월부터 5년 내 2회 이상 음주로 적발된 운전자는 운전면허 재취득 시 본인 소유 차량에 '시동 잠금 장치'를 의무설치해야 한다. 운전대에 설치된 음주 측정기로 음주 여부를 측정해야 운전을 할 수 있다. 함께 설치된 카메라는 운전자 확인 테스트에 쓰인다. 최대 300만원이 드는 설치 비용은 운전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2026-03-19 11:30:00
[금주의 이슈] "트럼프 막내아들 전쟁터 보내라"…군 복무 노블레스 오블리주 관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이게 빈번히 거론되는 분야가 '군(軍) 복무'다. 우리나라처럼 병역 의무가 있는 국가에서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재벌가 등 고위층 자식이 병역을 피하는 꼼수를 부리면 즉각 날카로운 지탄이 향한다. 모병제를 택한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전쟁을 치를 때 고위층 자녀를 전선에 내보내는 게 유서 깊은 미덕이자 일명 '까방권'(비난 금지)을 얻는 처세술이다. ◆美 대통령 아들 참전 전통 "배런은?" 최근 눈길이 쏠린 대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내아들 배런 트럼프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공격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미군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SNS를 중심으로 배런의 입대를 촉구하는 'SendBarron'(배런을 보내라) 'SendBarronToWar'(배런을 전쟁터로 보내라) 등의 해시태그(#)가 확산한 것. 여기엔 미군 군복을 입은 배런의 AI(인공지능) 생성 및 합성 이미지가 곁들여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전쟁이 정당하다면 왜 대통령 아들은 참전하지 않는가?"라고 물으며 고위층 자식인 배런과 순직한 미군 청년들의 목숨값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배런의 나이는 19세다. 미군 입대 가능 나이는 17~34세. 전통이 있으니 형성된 여론이다. 우선 미국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들이 1차 대전에 참전했다. 이들 가운데 4남 쿠엔틴은 1918년 7월 프랑스에서 전투기를 몰다 독일군에 격추돼 20세로 생을 마쳤다. 이어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건강이 나빠져 반년 뒤인 1919년 1월 사망했다. 2차 대전 땐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 모두 전장으로 갔다. 이 가운데 장남 제임스 루스벨트는 해병대 소속으로 1942년 8월 태평양 마킨섬 일본군 기지 기습 작전에 참여했다. 그런데 당시 미군은 대통령의 아들이 포로가 되거나 전사할 경우 일본군이 악용할 것을 우려, 그를 작전에서 배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되려 제임스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 아버지의 지시로 작전에 뛰어든 제임스는 공을 세워 훈장을 받았다. 이어 지금 47대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으니, 역사를 아는 미국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들 배런을 주시하고 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미국을 강대국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지도자인데, 정작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는 뭐하고 있느냐는 질문의 구성 성분 중 하나가 가족의 군 복무로 입증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셈이다. ◆왕관 수여 조건 '젊을 때 군 복무' 영국 왕실은 내부 규율을 바탕으로 군 복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철저히 실천하는 경우다. 남녀 가리지 않고, 전시와 평시도 구분하지 않는다. 꽃다운 젊은 시절을 기꺼이 군에서 보내게 한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공주 때였던 2차 대전 및 그 이후 7년 동안(1945~1952) 영국군 차량정비·수송 장교로 복무한 사실이 유명하다. 왕위를 이은 아들 찰스 3세 역시 왕세자 때 7년 간(1971~1977) 영국 해군에서 복무했다. 찰스 3세의 동생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는 왕자 시기였던 1982년 해군 헬기 조종사로 포클랜드 전쟁 최전선을 누볐다. 찰스 3세의 아들,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2세의 장손 윌리엄 왕세자도 2006년 영국 육군사관학교 입학 후 2013년 전역하기까지 주로 구조헬기 조종사로 일하며 156회 작전에서 149명을 구조했다. 윌리엄 왕세자 동생 해리 왕자는 2007년부터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간 전쟁에 투입됐다. 이에 탈레반이 선전효과를 노리고 2012년 그가 주둔하던 기지를 공격해 많은 사상자가 나오자 어쩔 수 없이 귀국했지만, 2015년까지 군 복무를 수행했다. ◆유럽 왕실 드레스 대신 군복 '女풍' 유럽 각국 왕실은 근래 공주는 물론 왕비까지, 여성들의 솔선수범 군 입대로 국민들에게 국방과 안보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5년차에 접어들고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매개로 이어오던 미국과의 군사 공조가 흔들리는 게 배경이다. 비상 시 남성은 물론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를 대비한 포석도 된다. 네덜란드 왕세녀 카타리나 아말리아(22) 공주는 지난 1월 기초군사교육을 마치고 상병 계급장을 달았다. 그는 현재 암스테르담대 법학과 학업과 국방대학 2년 군사훈련 과정을 병행 중이다. 이에 더해 어머니인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54) 왕비가 지난 2월 네덜란드 육군 예비군에 입대해 사격 등 단기 집중 군사훈련을 소화했다. 아말리아 공주의 행보는 지난해 국방대학 지원자를 2배 가까이로 늘려 아말리아 효과로 불린다. 막시마 왕비의 입대는 제한 연령 55세에 1년 앞서 이뤄진 것으로, 네덜란드 민영방송 RTL은 "상징적 가치가 매우 크다. 중장년층도 예비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강력한 홍보 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르웨이 왕위 계승 서열 2위 잉리드 알렉산드라(22) 공주는 2024~2025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최전방에서 이등병 계급을 달고 장갑차 사수로 복무했다.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여공(왕위 계승 서열 1위) 레오노르(20) 공주는 이미 10대 때인 2023년부터 육·해·공 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으며 드레스보다 군복이 더 어울리는 여왕 수업에 임하고 있다. ◆한국 재벌가 솔선수범 주목 실은 비슷한 사례가 우리나라 재벌가에서 나와 화제가 된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차녀 최민정 씨가 지난 2014년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입대, 소말리아 해역 청해부대에 파병되는 등 해군 장교로 복무했던 것이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장남 이지호 씨 역시 지난해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해 복무 중인데, 선천적으로 얻은 미국 국적을 포기해 시선이 향했다. 일반 병 복무 시 두 나라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고 해외 장기체류시 아예 군 면제를 노릴 수 있었지만, 미국 시민권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장교 복무를 선택한 데 큰 의미가 부여됐다. 이후 최태원·이재용 회장 둘 다 반도체 호황으로 국가 경제를 일으키는 新(신) 산업 역군으로 주목된 걸 감안하면, 자녀들의 군 복무는 소비자이자 개미 주주이기도 한 많은 국민들을 기업을 응원하는 우군으로 만드는데 적잖게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병역 꼼수 흑역사 '석사장교' 대한민국은 6.25 전쟁 때 제임스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이 함께 참전한 아들을 잃으면서도 퇴역 직전까지 분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를 포함해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러 온 미군 장성의 아들들이 142명이나 되고, 그 중 35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사회 고위층이 자식에게 군 복무 특혜를 주는 행태를 꾸준히 보이며 역사에 먹칠을 했다. 군부정권 시기였던 1982년 도입돼 1991년 폐지된 '석사장교'가 대표 사례다. 석사 이상 학력 지원자들 중 시험으로 선발하는 장교라서 붙은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특수전문요원'. 무슨 대북특수작전이라도 펼칠 것 같지만, 실은 약한 강도의 군사교육을 받고 여행까지 곁들인 전방 체험을 하는 게 전부였다. 복무 기간은 단 6개월. 이 제도 도입기엔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전재국 씨가, 폐지 직전엔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현 주중대사가 혜택을 얻으면서 꼼수를 아예 제도로 만든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석사장교 출신 50~60대가 현재 사회 각계에서 활동 중이다. 당시 이 제도가 좀 이상하다고 의식했건 그러지 못했건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건, 앞으로 선거 또는 고위 공직에 나서거나 유명해져 인기인이 되려면 진땀 해명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2026-03-12 12:00:00
[시사뒷담] 정원오 말고 더 있다? 지선 앞 너도나도 '리틀 이재명'
6.3 지방선거 공천 시즌에 여당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리틀 이재명' 수사가 난립하고 있다. 타칭과 자칭 가리지 않으면서 마치 유통업계의 '라이선스 생산' 같다는 비유도 하게 만든다. ◆정원오만? 황명선發도 최근 리틀 이재명이라는 표현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에게 가장 잦게 붙고 있다. 일종의 사전 마케팅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14일 뉴스1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저를 리틀 이재명이라 불러주시는데 굉장히 영광스럽다"고 타칭에 대한 반응을 밝히더니, 같은해 12월 4일 시사인 유튜브 출연 땐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성남시장을 하실 때 주민들께 굉장한 효능감을 줬다. 삶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지역이 바뀌는 거, 그런 측면에서 성동구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효능감을 느낀 주민들께서 제게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데 (이 대통령과의) 차이라고 하면 좀 사이즈 차이가 있다"면서 "저는 리틀 이재명이다"라고 자칭도 구사했다. 그런데 리틀 이재명이 이번에 처음 나온 별칭은 아니다. 앞서 자타공인 '찐명'(진짜 이재명계)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붙었다. 그는 충남 논산시장으로 있던 지난 2022년 8회 지선 때 충남도지사 경선에 도전하며 "많은 분들이 저한테 '충남의 이재명' '리틀 이재명'이라고 이야기를 하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어 요즘 황 최고위원은 자신이 받았던(또한 스스로 가리켰던) 수식을 다른 지선 도전자들에게 붙이는 흡사 '감별사'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31일 문정우 전 충남 금산군수(금산군수 출마) 출판기념회를 방문해 "뚝심과 진정성, 세일즈 등 제가 신뢰하는 분이다. 리틀 이재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튿날인 2월 1일엔 전문학 전 민주당 당 대표 특보(대전 서구청장 출마) 출판기념회에 가서 "이 대통령이 직접 '전문학은 리틀 이재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치분권을 통한 기본사회라는 철학과 실천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2월 7일엔 박정현 현 충남 부여군수(부여군수 출마) 출판기념회를 찾아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한 것처럼 기본사회와 더불어 사람사는 부여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진짜 리틀 이재명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지난 1월 17일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송기섭 충북 진천군수(충북도지사 출마) 책 발간 행사(출판전시회) 방문을 앞두고 "리틀 이재명으로 불리우는 두 새로운 리더의 중요한 만남"이라는 똑같은 문구가 포함된 보도자료 인용 뉘앙스의 기사 3건이 나오기도 했다. 또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전북도지사 출마선언문에서 "이 대통령이 정치적 롤모델이다. 전북도지사로 결정된다면 리틀 이재명이 되겠다"고 표현했다. ◆남발은 금물…李 진짜 의중은? 상표권(?) 주인인 셈인 이 대통령은 황 최고위원 등에게 이런 라이선스 생산을 허가한 걸까. 물론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대한민국에선 그런 허락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정치 수사다. 다만, 애초 명품 브랜드였던 프랑스 피에르가르뎅이 세계 140개국에 800개가 넘는 라이선스를 허용했다가(우리나라에선 수건·우산·양말로 참 많이 접한 상표) 브랜드 가치가 폭락했던 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이 대통령 이름값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리틀 노무현'이라고 하면 경남 남해군수를 하다 노무현 정부 행정자치부 장관에 발탁됐던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만 가리키는 것과도 대비된다. 리틀 이재명은 이번 지선을 앞두고 남발 상태인데다 실은 황 최고위원에 앞서서도 쓰였다. 이헌욱 한국부동산원 원장이 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때부터 그렇게 알려졌다. 정작 이 대통령은 직접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1명만 언급한 모습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8일 SNS X(구 트위터)에 성동구가 주민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 92.9%의 긍정평가를 받았다는 기사를 공유, "정원오 구청장님이 잘하기는 잘하나 봅니다. 저의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명함도 못 내밀듯…ㅋ"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정원오 구청장은 이 글을 재인용해 "원조 '일잘러'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다니…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한편, 이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갈등 구도에 놓는 '명청대전' 프레임은 여전히 지속 중이지만, '리틀 정청래'라는 표현은 선거판에서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딴 건 몰라도 이 싸움 만큼은 이 대통령이 압도하는 모양새다.
2026-03-05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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