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대우] 폐교, 아이들 두 번째 학교로 다시 숨 쉬게 하자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인구가 급감하는 농어촌의 경우, 폐교 활용 방안은 교육청이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가 된 지 오래다. 교직에 34년간 몸담아 온 필자로서는, 학교가 문을 닫는 현실이 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폐교들이 아이들의 『회복과 성장을 위한 '두 번째 학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단순한 매각이나 임대보다,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특화된 교육 공간으로 재구성한다면 '날지 못하는 새가 없듯이 꿈을 펼치지 못하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센터로의 활용이다. 경북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심의 건수는 2021년 975건, 2022년 1천30건, 2023년 1천165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피해학생을 위한 전담지원센터의 절실한 필요성을 보여 준다. 현재의 일시적 상담 지원 체계로는 피해학생의 심리적 회복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폐교를 활용해 지역별로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센터를 설치한다면, 피해학생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가지며 다시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둘째, 학업 중단 예방을 위한 전문 학업숙려프로그램 지원센터로의 활용이다. 경북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학업 중단 학생 수는 2021년 1천696명, 2022년 1천938명에 달한다. 이 중 학업 문제나 대인관계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이 2021년 386명, 2022년 438명이다. 이들은 교직 경험이 풍부한 교사와 상담·심리 전문가가 함께하면 충분히 학업 복귀가 가능한 학생들이다. 하지만 현재의 단기 숙려제 프로그램으로는 실질적 도움을 주기 어렵다. 경북 전역에 전문 학업숙려프로그램 지원센터를 설립해 학생 한 명 한 명이 다시 배움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위기청소년을 위한 '꿈키움학교'로의 전환이다. 경북교육청의 정서·행동특성검사에 따르면 불안, 우울, 자살, 자해 위험 등 관심군 학생은 2021년 2천659명, 2022년 2천666명, 2023년 2천589명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이 학생들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Wee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으로 연계되고 있으나, 지역별 인프라 불균형과 상담 인력 부족으로 인해 내실 있는 지원이 어렵다. 일부 기관에서는 임시 인력이 상담을 맡는 경우도 있어 근본적인 회복을 돕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폐교를 청소년 꿈키움학교로 전환해 단위 학교 차원에서 도울 수 없는 위기청소년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체계가 절실하다. 전라북도교육청은 폐교를 교육인권센터, 청소년 자치센터, 외국어 교육센터, 안전체험관, 학생수련원, 청소년 창의예술공간, 전통문화고등학교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폐교를 무상으로 임대해 주기도 한다. 경북교육청 역시 이러한 사례를 벤치마킹해 폐교를 위기청소년 지원의 거점으로 삼는 '경북형 폐교 활용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위기청소년을 돕는 길은 거창하지 않다. 폐교를 아이들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특화된 전문 기관으로 바꾸는 일, 그 기관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도록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지원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버려진 학교가 아닌, 누군가의 꿈이 다시 자라는 학교로, 아이들의 두 번째 희망으로 폐교가 다시 숨 쉬길 바란다.
2025-11-04 13:54:18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가 LA 다저스의 '가을 동화' 같은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7차전까지 가는, 그야말로 피 말리는 접전(接戰) 끝에 다저스가 4승 3패로 챔피언에 올랐다. 이 드라마는 '일본 3인방'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정규시즌뿐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다저스에 우승을 안긴 '지구 최강' 오타니 쇼헤이와 '특급'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가 그들이다. '이도류' 오타니는 포스트시즌 17경기에서 출루율 0.405, 8홈런, 14타점, OPS 1.096을 기록했다. 투수로도 2승을 거뒀다. 특히 연장 18회까지 간 월드시리즈 3차전은 압권(壓卷)이었다. 홈런 2개를 포함한 4안타 5볼넷 등 9출루의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펼쳤다. 이런 오타니를 월드시리즈에서만큼은 능가한 선수가 야마모토다. 포스트시즌 6경기에 출전, 5승 1패 평균자책점 1.45로 오타니를 지워 버렸다. 다저스가 거둔 월드시리즈 4승 중 3승(평균자책점 1.02)을 책임졌다. 그것도 위기 때마다 빛을 발했다. 벼랑 끝 6차전에 선발로 나서 승리를 거머쥐며 침몰 직전의 다저스를 마지막 7차전으로 이끌더니 바로 다음 날 7차전에도 마무리로 출전, 거의 3이닝을 무실점으로 책임지며 기어이 우승 마침표도 직접 찍었다. 최우수선수도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이들은 일본, 아시아를 넘어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도 호령하며 전 세계에 일본 야구를 각인(刻印)시켰다. 우리나라도 이정후·김혜성·김하성 등 메이저리거가 있지만 이들의 활약에는 크게 못 미친다. 다저스 우승에 김혜성이 기여한 바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월드시리즈 마지막 7차전 연장에 잠시 대수비로만 모습을 드러내 아쉬움을 남겼다. 축구에서도 일본은 탈(脫)아시아급임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 평가전만 봐도 그렇다. 지난달 우리나라에 5대 0 굴욕패를 안겼던 브라질을 3대 2로 이겼다. 월드컵 우승이 목표임을 숨기지 않는다. 야구도, 축구도 일본의 탈아시아급 성장이 그저 부럽다. 그렇다고 시기의 눈으로 보며 질투할 필요는 없다. 스포츠는 즐기면 된다.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자극받아야 하고 자존심도 상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있고 발전이 있고 내일이 있다.
2025-11-04 05:00:00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 및 탄핵, 대선 패배 등으로 문 닫기 직전이던 국민의힘을 그나마 제1야당으로서 존재감과 명맥을 이어 가게 한 의원 한 명만 꼽으라면 주진우 의원을 들겠다. 저급하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 팩트로 폐부(肺腑)를 깊숙이 찌르는 공격으로 집권 여당에 꾸준하게 타격을 입히는 게 제1야당에 걸맞은 저격수라 할 만해서다. 주 의원은 법조(法曹) 출신이다. 대통령실 행정관·비서관으로 일한 적이 있지만 검사로 시작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법조계에 몸을 담았던 터라 아무래도 입법 활동에 유리한 점도 많겠지만 법조인 출신이라고 다 그런 것도 아니다. 당장 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만 봐도 법조인 출신으로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의원이 적잖다. 잘하든 못하든 두각을 나타내는 의원 중 법조 출신이 많은 건 사실이다. 숫자부터 많다. 이번 22대 국회만 봐도 의원 300명 중 61명이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 출신이다. 전체의 5분의 1이나 된다. 21대 국회보다 15명 증가한 역대 최다이다. 이 중 지역구는 민주당 37명, 국민의힘 18명으로 민주당이 배나 많다. 여야에서 손꼽히는 '전투력 갑(甲)' 의원 중에도 법조인 출신이 적잖다. 국민의힘의 경우 주 의원과 함께 대여 공세의 '투 톱'이라고 할 수 있는 장동혁 대표, 그리고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과 연일 '추나 대전'을 벌이며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나경원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 역시 판사, 제22대 의원 재직 중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법조계는 예전부터 정치 등용문(登龍門)이었다. 특히 검사 출신이 두드러졌다. 검사동일체로 대변되는 검찰 문화도 패거리 문화의 최고봉인 정당과 닮았다. 법조 출신이 많은 건 직업·성향·기질 등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법을 잘 아는 만큼 법을 만드는 입법부에서도 유리할 수밖에 없어서다. 법을 잘 알고 법의 허점도 잘 아니 여기에 전투력까지 더하면 '갑'이 되는 것이다. 최근 입법부의 사법부 침해·장악 논란도 법조인의 국회 대거 입성과 관련이 없지 않다. 법조계 생리를 잘 알다 보니 만만하게 보이기도 하고, 돌아서면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어서다. 옛말 틀린 것 없다더니, 역시 '아는 놈이 더 무섭다'.
2025-10-27 05:00:00
혼기(婚期) 찬 자녀를 둔 분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상견례, 혼수, 신혼집, 세간 장만 등 확 달라진 결혼관·문화 얘기에 따라가기 숨이 찰 정도였으나 압권은 따로 있었다. 신세대 시아버지의 '끝판왕'이라야 할 수 있을 법한, "며느리에게 시부모 전화번호를 아예 입력도 하지 마라"고 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다. '말도 안 된다' '농담도 잘한다' '과장이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에 "둘이 잘 살면 된다. 시부모는 신경 쓰지 마라. 전화도 하지 마라"고 했다는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그렇게 되겠나'고 생각하면서도 '혹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어질함도 느껴졌다. 세태(世態) 변화로 인한 '현실 자각'은 엘리베이터에서도 종종 경험한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들어선 뒤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할 때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와 속도다. 마침 닫히던 중이었는지 공동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의도적으로 얼른 닫힘 버튼을 눌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시 열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을 가지기 싫어하는 요즘 세태의 반영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 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얼마 전 소셜미디어를 달궜던 '메모 사진'도 세태 변화의 한 단면(斷面)이다. '앞집 문 여는 소리나 인기척이 들리면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 달라. 서로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다'라는 메모가 아파트 현관에 붙어 있는 사진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억지다'와 '공감된다'로 크게 나뉘었지만, 이웃사촌으로 불렸던 '이웃'은 어느새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는 존재'가 됐다가 이젠 아예 마주치기도 싫은 대상이 됐다. 실제로 집을 나설 때 문 밖 인기척을 확인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시간은 '나이 속도'대로 간다는 말이 있다. 10대는 시속 10㎞의 속도, 20대는 20㎞/h, 50대는 50㎞/h, 70대는 70㎞/h 속도로 지나간다는 의미다. 실제 그럴 리야 있겠냐마는 나이가 들수록 체감(體感)하는 시간이 얼마나 빨랐으면 이런 말까지 나왔겠나. 점점 빨라지는 체감 시간에 급변하는 세태 변화까지 겹치니 따라가기도 버겁다. 시간도, 변화도 빨라도 너무 빠르다.
2025-10-20 05:00:00
지난 명절 연휴, 지인(知人)들과 건강보험료 얘기를 나누다 그들의 납부액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혹 잘못 들은 것 아닌가 해서 확인까지 했다. 그런데 1억원 맞단다. 1년 동안 벌기도 힘든, 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액수다. 연봉 5천만원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연간 200만원 조금 덜 낸다. 일반 직장인은 상상도 못 할 금액이다. 가장 먼저 속상하지 않은지 물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생돈' 1억원을, 그것도 매년 낸다는 게 어디 예삿일이겠나. 각종 공제(控除)액을 다 합한 것도 아니고 건보료만 1억원을 내야 한다니 다소 억울한 마음도 들 것 같아서다. 역시나 속상하다고 했다. 그런데 1억원이 아깝다는 하소연이 아니었다. 많이 버니 사회 환원 차원에서 많이 낼 수 있다고 했다. 속상한 건 너무 당연하다는 반응, 돈 많이 버는 것 자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라고 했다. '돈은 돈대로 많이 내고 욕은 욕대로 먹는 게' 속상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부자들에 대해 인식이 안 좋은 나라도 찾기 힘들긴 하다. 혼돈의 시기, 친일·친미(親美)하며 부를 축적한 이들이 많았던 것도 맞다. 여러 역사적 배경은 뒤로하고라도 '부자들은 다 도둑놈'이라는 인식에, 많이 부담해도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돈 많으니 많이 내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면서 돈 많이 버는 건 좋게 보지 않는 이상한 심리 말이다. '건보료를 1억원이나 낼 정도면 도대체 얼마를 번다는 거야' 하는 반감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얼마나 벌길래 1억원을 낼 수 있는지'가 궁금할 순 있지만, 궁금증과 반감의 어감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감형 의문에선 부러움과 의심, 질투 등 부정적 감정이 단번에 느껴진단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직장가입자의 경우 건보료 상한(上限)은 올해 기준 월 900만8천340원이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1억800만원 정도다. 월급 1억2천700만원 이상(연봉 15억2천460만 원 이상)을 받는 고소득 직장인이 해당된다. 아무리 많이 번다 해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건보료만 1억원을 내는 건 쉽지 않다. 병·의원 이용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 억울할 수 있다. 많이 낸다고 의료 서비스 이용 시 받는 혜택도 없다. 건보료 1억원치를 이용하려면 병원에서 아예 살아야 하지 않겠나. 달리 말하면 그렇지 않은 많은 국민이 이들이 내는 건보료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 개선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소득 상위층의 보험료가 과도하니 보험료 부과 구조 전반에 대해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 지역가입자의 경우 2023년 기준 1천25억원의 보험료를 내고 보험 급여로 4조1천910억원을 받았다. 납부(納付)한 보험료의 41배다. 반면 기준 소득이 가장 높은 10분위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는 지난해 4조3천55억여원으로, 1분위 가입자 1천161억여원보다 37배 이상 많았다. 많이 내고도 불편한 시선까지 감수해야 한다면 속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는 원론적(原論的)인 얘기는 아니다. 다만, 돈 많이 벌어서 상대적으로 적게 버는 이들을 위해 보이지 않게 기여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해서다. 거창할 거 없이, 병원 갈 때나 진료 기다리다 가끔 이름 모를 그들을 위해 고마운 마음, 앞으로도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 한번 가져 보면 어떨까 한다.
2025-10-14 05:00:00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란 게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거나 그 과정을 듣기만 해도, 자신이 실제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활성화돼 반응하는 뇌 속 신경세포다. 자신이 열렬히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에 대해 갖는 강한 소속감과 감정적 헌신, 대리 만족과 닮았다. 물론 팬덤 현상을 거울 뉴런으로 설명하는 건 무리가 있다. 덩달아 좋고, 슬프고, 아픈 게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이긴 하지만, 좀 더 정확히는 다른 사람의 생각·감정을 본능적으로 파악, 반응하는 공감 능력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해서다. 그래도 거울 뉴런이 사회적 상호작용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알려진 만큼 정치인의 행동과 말에 집단·개인적으로 반응하는 강성 팬덤의 신경학적 토대(土臺)가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사회적 동일시와 집단극화, 확증 편향 등 심리·사회적 요인이 더 결정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강성 지지자들만 바라보며 정치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이 됐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그렇게 대표가 되더니 아예 '더불어청래당'이라는 지지 세력까지 형성됐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사실상 같은 방식으로 대표가 됐고,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고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뒤 단번에 대선 후보로 부상한 조국도 마찬가지다. 이젠 강성 지지층이 없으면 정치 대망론(大望論)을 꿈꿀 수조차 없는 판이 됐다. 단순 지지를 떠나 지지 정치인을 조정·통제하고 생각과 행동까지 정해 주는 당황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확실한 기반, 동력이 필요한 정치인들을 숙주 삼아 존재감과 세력을 더욱 키워 나가고, 그 덕에 한자리를 하게 되거나 더 높은 자리를 원하는 정치인들은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 다수가 아닌 일부 극단적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하는 것은 맞지 않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강성 당원만 보고 정치하는, 강성 지지층 눈치를 살펴 정책을 만들고 입법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 강성 팬덤에 편승(便乘)한, 극단이 판치는 정치에 대한 문제점과 부작용을 돌아보고, 성찰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적절한 출구를 찾아내는 사회적 담론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 hoper@imaeil.com
2025-10-13 05:00:00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아시아·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새로운 삶과 기회를 얻었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 히스패닉 등 출신과 문화가 다른 집단이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용광로(鎔鑛爐)'라 불렸다. '서로 다른 것들을 녹여 단일한 미국인으로 만든다'는 용광로 이론까지 나왔다. 국적·인종·문화의 다양성은 미국이 혁신과 창조성의 아이콘이 되고 경제·과학·문화·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세계 최강이 되는 동력이 됐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만든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상징과도 같았다. 사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그 시작은 17세기 초 영국 등 유럽 국가의 이민자들이 대서양 연안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다. 카터, 부시 등 역대 대통령들과 워런 버핏, '석유왕' 록펠러 등도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 후손이다. 이후 다양한 출신이 하나의 시민권과 가치 아래 융합(融合)돼 살아가면서 흑인 첫 메이저리그 선수인 재키 로빈슨, 아시아계 NBA 선수 등 스포츠 스타, 흑인 대통령, 라틴계 대통령 후보까지 나왔다. 최근 논란이 된 H-1B(전문직)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한 인물도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차고 넘친다. 뜨거웠던 그 '용광로' 미국에 이상 기류가 감지(感知)된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이민의 문은 전례 없이 좁아지고, 불법체류자 단속 등으로 유색 인종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비자 역시 발급받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얼마 전 조지아주 한국인 단속 및 구금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는 머스크 등이 미국으로 올 수 있었던 취업 비자 H-1B 비자 수수료를 최근 1천400달러에서 10만달러로 100배나 올렸다. 당장 미국 내 기업들의 인재 유치 및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글로벌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서의 '미국'엔 백인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 취업자들도 함께 있다. 이를 부정하면 미국의 정체성도 무너진다. 용광로가 식은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더 잘사는 나라가 될까? 아님 몰락의 시작일까? hoper@imaeil.com
2025-10-02 05:00:00
대구 달서구 청년센터, '달·라·왕(달서구 라면왕 대회)' 개최
대구 달서구 청년창업지원센터·청년센터는 지난 22일 센터에서 '달·라·왕(달서구 라면왕) 대회'를 개최해 박서형 씨의 '버터 오바마' 라면을 1위로 선정했다. 예선 참가 14개 팀 중 본선에 진출한 4개이 기량을 겨룬 이날 행사는 단순한 요리 경연을 넘어 청년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참여하는 주도형 축제로 마련돼 의미를 더했다. 이번 대회는 지역 청년 참가자들이 직접 끓인 라면을 심사위원단과 청년시식단이 함께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자신만의 독창적인 레시피와 개성 있는 조리법을 선보이며 라면이라는 일상적인 음식을 통해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2025-09-23 14:23:27
김밥 꽁다리를 좋아한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땐 '꽁다리'부터 젓가락을 댄다. 거의 본능적이다. 반듯하고 먹음직스러운 중간 부분은 양보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強迫)이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의 영향도 한몫한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 잠을 설치다 일찍 일어나면 들리던 어머니의 김밥 써는 소리. 듣기만 해도 설레고 기분 좋아지는 소리. 부엌에 가면 김밥 몸통은 안 돼도 썰다가 어머니가 드시던 꽁다리는 몇 개 얻어먹을 수 있었다. '큰사람 돼야 하니 꽁다리는 먹으면 안 된다'며 도시락엔 꽁다리를 넣지 않으셨지만, 그래서 더 먹기 힘들었던, 더 좋아했던 김밥 꽁다리다. 최근 정치권에서 난데없는 힘자랑이 벌어졌다. 누가 더 높으니, 누가 더 힘이 세니, 누가 권력 서열(序列)이 더 높으니 하는 논쟁이 며칠 이어졌다. 판은 이재명 대통령이 깔았다. 얼마 전 강원도에 가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 됐다"고 하더니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대한민국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며 권력 서열을 정했다. 그러더니 며칠 뒤엔 국무회의에서 "자기가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게 노력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같은 힘과 권력 얘기긴 한데 무슨 말인지 앞뒤 연결은 잘 안 된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세고 권력 서열이 제일 높다. 나를 제외하곤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지 모르겠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누구인진 다들 안다. '여의도 대통령' '충정로 대통령' 등도 있다고들 하는데 누가 최고인지를 떠나 다 권력의 정점(頂點)에 있는 이들이다. 최고 자리에 있을수록 겸손하고 뒤로 물러설 줄 알면 존재감과 인간성이 더 빛날 텐데 왜 굳이 '나 잘났소' '나 최고요' 하며 과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정쩡한 경우엔 악을 쓰며 드러내야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최고는 가만히 있어도 최곤데 말이다. 김밥 꽁다리는 잘나지도 않고 제일 끄트머리에 있지만 좋다. 그냥 좋다. 힘이 세야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자랑하지 않아서, 양보하고 품을 줄 알아서 더 인정과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더 멋지지 않을까. hoper@imaeil.com
2025-09-23 05:00:00
#캐나다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미국으로 넘어갈 때다. 국경(國境)에서 총을 멘 미 국경수비대원들이 버스에 올랐다. 좌우 좌석을 둘러보며 뒤쪽으로 이동하다 내 앞에서 멈추더니 여권을 요구했다. 비자 등 모든 게 정상적이라 별 걱정 없이 여권을 건넸다. 형식적 절차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원은 갑자기 버스에서 내리라고 했다. 순간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으나 돌아온 건 고압적·위협적인 표정·태도뿐, 배낭까지 꺼내 멘 채 수비대 사무실로 가야 했다. 만원 버스에서 내린 건 나와 인도인 단 두 명. 온갖 서류를 꺼내 설명하고 사정하며 쩔쩔매던 인도인의 모습에 내가 다 화날 정도였다. 다시 버스에 타면서 알았다. 승객 중 유색 인종은 우리 둘뿐이라는 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엔 한국어 리플릿이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영어, 일어 등은 있는데 한국어는 없냐"고 물었다. 직원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없다"고 했고, "왜 없냐"는 되물음에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듯 "왜 있어야 하냐"고 되받아쳤다. 상한 속을 뒤로하고 "한국어도 만들어 달라"고 한 뒤 돌아섰다. 없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물은 건 한국인이 방문할 때마다 묻다 보면 언젠간 비치(備置)해 놓지 않을까 해서였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배터리 공장 단속 및 구금(拘禁) 사태를 보면서 떠오른 1990년대 배낭여행 당시 일화다. 그때의 한국은 그랬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코리아'라고 하면 '노스 코리아'인지 묻던 시절이었고, 친근함을 표시하려고 '현다이'를 아는 척할 때였다. 당시 북미에서 '한국' 하면 그나마 많이 알려진 게 '현다이'여서다. '현다이', 즉 현대자동차가 저가로 북미에 공세를 가할 때였다. 30년 새 한국의 국격(國格)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급상승했다. 경제·문화·군사 등 다방면에서 단군 이래 최고라 할 정도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쇠사슬에 묶여 체포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한국 눈치는 보는 분위기다. 이를 계기로 비자 체계 개편·탄력 운용도 거론된다. 새 제도가 마련된다면 그나마 반분은 풀릴 듯하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미국 갈 대체 인력이 없어 공장 설립이 계속 지연된다면… '운짐'이 달까? hoper@imaeil.com
2025-09-15 05:00:00
이재명 대통령은 말을 잘한다. 특히 의미를 강렬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을 땐 '조어(造語)'나 '비유' 등을 즐겨 사용한다. 이로 인해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말만 앞선다' '말뿐이다'는 등 욕을 먹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 '피스 메이커' '페이스 메이커'가 전자의 대표적인 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 메이커'를 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명언'이라는 찬사가 나왔다.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양 날개' '두 바퀴'를 언급한 건 후자의 예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새는 양 날개로 난다'고 한다"며 "기업, 노동 둘 다 중요하다. 어느 한 편만 있어서 되겠느냐"고 하고선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을 의결했다. '양 날개'를 강조해 놓고 그 자리에서 바로 기업이라는 한쪽 날개를 부러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8일 오찬 회동을 한다. 이 대통령,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말 잘한다는 정치인 중에서도 특히 말 잘하고 말발이 센 정치인으로 꼽힌다. 특히 정·장 두 대표는 양 극단의 강성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또 어떤 언어를 구사할지도 관심사지만 '정-장'의 만남과 '말발 대결'이 더 궁금한 게 사실이다. 각 진영에서 초강경파인 데다 상대 정당에 대한 극도의 반감(反感)을 보이고 있어 이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이목이 쏠려서다. 악수 여부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가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대표와의 악수 거부를 공언해 와서다. 또 어떤 화려한 말로 악수를 할지 또는 안 할지 주목된다. "새는 양 날개로 난다"면서도 '한쪽 날개'를 꺾은 대통령이, 야당을 인정하지 않고 아득바득 '한쪽 날개'로만 날려는 정 대표가, '한쪽 날개'인 '반탄(反彈)' 세력만 보고 정치한다는 비판을 받는 장 대표가 이날 만남에서 펼칠 '말의 향연'이 궁금하다. '강 대 강' '말 대 말'의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부디 협치·소통·협력의 기본 중 기본인 '양 날개'와 '두 바퀴'의 진리를 말만이 아닌 가슴과 머리로 곱씹어 보는 회동이 되길 바란다.
2025-09-08 05:00:00
얼마 전 일본에선 '추하고 기묘한 생물'이라는 외모 비하(卑下) 논란이 일었다. 일본 총리 이시바 시게루를 두고 신흥 정당의 정치인이 한 발언이었다. 직접적으론 외모 비하지만 참·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데 대한 일종의 '놀림'이었다. 그런데 이 비하는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참패 책임에 대한 퇴진 압박에 시달리던 이시바는 이 발언 덕에 오히려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곧 사임을 공식화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이시바에 대한 동정론이 일면서다. 이는 이시바에게 버티기 동력이 됐고, 그 사이 10%대였던 지지율은 40% 안팎까지 올랐다. 그러나 다시 진퇴(進退)의 기로에 섰다. 이시바가 속한 자민당이 2일 의원총회를 열고 조기 총재 선거 찬반 여부를 묻는 절차를 진행하기로 해서다. 이번 주 내 의사를 확인할 예정이라 8일쯤이면 총재 선거 실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소속 의원·당직자 등 342명 중 과반수가 찬성하면 차기 총재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이 경우 이시바의 퇴진은 사실상 확정된다. 그런데 분위기가 꼭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앞서 의견 수렴하기로 결정할 때만 해도 퇴진 확정 분위기였지만 외모 비하 발언에 이은 각국 정상과의 잇단 외교 일정이 이시바를 도왔다. '사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50%를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우리나라로 봐서도 이시바가 총리직을 유지하는 게 낫다. 대미 관계, 통상·안보 정세 급변 등 트럼프발(發) 파고를 함께 넘고 있는 동병상련(同病相憐) 입장에서 힘을 모아야 할 상대로 이만한 인물이 없다. 우호적인 한국 인식에다 동반자적 태도 등 협력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다. 이시바는 총리 취임 전부터 '친한(親韓) 노선'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총리가 된 뒤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 지난 6월 한국 대사관 주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 땐 관방장관 등 내각 서열 1~4위와 방위상·합참의장·참모총장 등 국방 지휘 라인까지 모두 총출동시켰다. 일본 언론조차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한국에 대한 최상위 성의 표시이자 양국 간 미래 협력과 신뢰 의지에 대한 표시였다. 이시바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몇 안 되는 총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역사 문제에 있어 자성적인 입장을 보여 와 일본 내에서도 '반일적'이라고 공격을 받을 정도다. 지난 2019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문 땐 "일본이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문제들이 오늘날 여러 형태로 표면화하고 있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하고, 한일합병에 대해 일본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패전일 추도사에선 13년 만에 '반성'을 언급했고, 23일 한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 언론발표문을 통해선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담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繼承)한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이시바는 '이념'보다 '개념'의 정치인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는 일본 내 보기 드문 우파 정치인이고, 대중적 인기보다는 책임감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소신과 원칙을 중요시하고 인간 됨됨이도 인상적이다. 며칠 뒤면 거취가 결정되지만, 퇴진 여부를 떠나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그의 '개념 정치'가 계속되길 응원한다.
2025-09-02 05:00:00
급변(急變)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있겠냐마는 범죄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디지털 관련이나 보이스 피싱 등 과거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테러 협박 등 위험한 장난성 범죄도 늘고 있다. 범죄 연령대 변화도 눈에 띈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60대 이상의 범죄가 급증하는가 하면 학령기 나이대 아이들의 범죄도 증가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경찰청의 범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범죄 158만3천여 건 중 61세 이상 노인층 피의자 비율이 18.8%로, 청년층(19~30세) 18.3%를 넘어섰다. 2011년 통계 집계(集計)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61세 이상 범죄는 2020년(15.8%) 이후 매년 늘고 있는데, 특히 살인 피의자 비율의 경우 23.2%로 모든 나이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이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관련이 깊다.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0년 24%에서 지난해 28.2%로 증가하는 등 계속 늘고 있다. 수명·건강에 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도 생계 곤란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노인층 범죄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절도의 경우 60세 이상이 33.9%나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觸法少年·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연령 조정 등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촉법소년 기준 연령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젠 더 이상 놔둘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8천600여 명이던 촉법소년 검거 인원은 지난해 2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잠정)됐다. 특히 촉법소년의 성폭력 범죄 건수가 크게 늘었고,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엔 중1 학생이 장난으로 인터넷에 올린 '신세계백화점 폭발물 설치' 협박으로 수천 명이 대피하고 경찰·소방 수백 명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참 극단의 시대다. 범죄도 저·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정치도 극우·극좌 양 극단이 활개치는 시대가 됐으니 말이다. 당장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고 답답한 것도 비슷하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져 보자.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극에 달하면 예상치 못한 해결의 실마리가 툭하고 나타날 수도 있으니. hoper@imaeil.com
2025-09-01 05:00:00
▶남정후 씨 26일 별세. 남수석(태원산업 대표·매일탑리더스아카데미 회원)·미정·미희 씨 부친상. 빈소=대구파티마병원장례식장 501호. 발인=8월 28일(목) 오전 6시 50분. 장지=명복공원-도림사추모공원
2025-08-26 13:37:10
님비(NIMBY)는 '내 뒷마당엔 안 돼(Not In My Back Yard)'라는 말의 약어(略語)다. '내가 사는 지역엔 혐오 시설이 들어올 수 없다'는 거부 의사를 의미한다. 님비 현상은 공공의 이익으로 볼 땐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자신의 지역엔 받아줄 수 없다'는 유치 반대 행동으로 보면 된다. 대표적인 혐오 시설로는 쓰레기 소각장, 장애인·노숙자 시설, 화장 시설, 발전소, 버스 차고지 등이 있다. 이유도 땅값, 치안, 생활환경, 정서 등 다양하다. 1987년 미국 뉴욕 근교 아이슬립에서 배출된 쓰레기 처리를 위한 후보 지역의 주민들이 외친 말에서 유래됐다. AI 시대 핵심이자 필수 시설인 '데이터센터'도 님비 취급을 받는 분위기다. 유치 경쟁도 벌어졌던 시설인데 기피(忌避) 시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 없는 AI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엄청나게 늘고 있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실제로 미국 일부 지역에선 데이터센터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반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전력과 냉각수 사용량이 어마어마해 지역의 전기와 물을 엄청나게 소비하는 데다 소음 공해 등 생활 불편도 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가뜩이나 전기가 부족한 수도권에 몰려선 안 된다'는 등 수도권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보니 수도권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어서다. 전자파·소음·발열 등 건강상 우려, 재산 피해 등의 이유로 건립 반대나 공사 지연·중단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우주 공간에 데이터센터를 구축(構築)하려고 시도,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우주 데이터센터용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력과 국가 생존이 달린 글로벌 AI 전쟁에서 살아남고, 세계 3대 AI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데이터센터는 필수다. 그런데 혐오 시설로 낙인(烙印)찍히면 건립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 딜레마다. 데이터센터가 님비 시설이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선 선제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불안감 및 오해 해소는 물론 유치 지역 혜택 정책에서부터 전력, 냉각수 공급 전략까지 계획을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수립해야 한다. 아니면 중국처럼 우주 공간에 구축하든가. hoper@imaeil.com
2025-08-25 05:00:00
지난해 수능(修能) 후 발표를 기다리던 아들이 대뜸 "떨어지면 바로 입대하겠다"고 선언해 깜짝 놀랐다는 지인의 얘기다. "떨어질 수도 있지, 너무 상심 마라. 한 해 더 하면 되지. 재수는 '필수'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며 위로를 건넸더니 "군대 가서 재수 준비를 하겠다는 말"이었단다. 요즘 군대는 개인·자유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주고 공부하는 걸 막지도 않고 수능 특별 휴가도 보내 주기 때문에 가능하단다. "주말을 활용해 '인강'도 들을 수 있다. 어차피 복무 중이어서 떨어져도 상관없고 제대 후 다시 수능 쳐도 시간상 손해 보는 것 없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수능 준비하러 학원 대신 군대 간다'가 가능한 시대가 됐다. 달라진 군 풍속도(風俗圖)다. 군대는 맨날 맞고 얼차려 받고, 화장실 청소 밀대 걸레를 입에 물고 머리를 박기도 했던 곳으로 인식돼 있는 부모 세대로선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다. 개인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장되는 카투사나 공군이 특히 인기다. 공군 입대를 위해 조금이라도 점수를 더 받으려고 지게차운전기능사, 대형면허 등 각종 자격증·면허증까지 취득할 정도다. 군의관·공중보건의 대신 일반 병사로 입대하려는 의대생도 급증했다. 복무 기간도 줄고, 월급도 많이 받고, 공부도 할 수 있고,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있는 등 복무 여건이 개선된 건 반가운 얘기다. 그런데 사실 걱정이 더 크다. 저출생으로 병역(兵役) 자원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어 최소한의 병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해서다. 국군 병력이 지난달 45만 명으로, 6년 새 11만 명이나 급감했다고 한다. 수년 내 40만 명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군사분계선에 배치돼 경계 근무를 설 병력조차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부는 무기체계 첨단화, 시스템 자동화 등 '국방 혁신 4.0'을 추진 중이다. 병력 부족 등에 대비해 더 적은 인원으로도 높은 전투 효율을 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무리 자동화·첨단화돼도 절대 병력의 감소에는 방법이 없다. 군사분계선 경계병(警戒兵)도 로봇으로 대체될 날이 머지않다. 지금도 일부 비무장지대에 실전 배치돼 있는, 24시간 감시와 필요시 자동 사격도 가능한, 로봇 경계병이 운용되고 있지만 10년 후쯤엔 아예 모두 대체될지도 모를 일이다. hoper@imaeil.com
2025-08-19 05:00:00
세계 '양강' 미국과 중국의 상반(相反)된 글로벌 행보에 눈길이 간다. 미국은 동맹에도 예외 없는 자국 우선주의로 전 세계를 관세 공포로 몰아넣은 데 반해 중국은 원조와 투자,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제 협력과 교류를 확대하고 있어서다. 미국은 한마디로 '힘의 논리'를 앞세운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로 사실상 세계 각국의 '공공의 적'이 됐다.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더한 불이익을 당할까 봐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는 나라가 상당수다. 물론 브라질, 인도 등 브릭스(BRICS) 국가를 중심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국가도 있긴 하다. 반면, 중국은 대규모 인프라 및 산업 투자 사업을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와 연계해 세계 각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대일로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150개국 안팎과 인프라, 에너지, 통신, 제조업 분야에서 협력하며 동맹, 우방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심지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에 항구와 철도망 구축을 본격화하며 신실크로드 확장을 추진하는 상태다. 동시에 소규모 현지 맞춤형 원조와 지속가능한 녹색 발전 사업도 추진하며 다각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세계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다자주의 후퇴와 중국의 세계화 전략이 맞물리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도 엇갈리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올 4월까지 넉 달 동안 고소득·중하위소득 등 주요 25개국 3만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은 추락한 반면 중국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고소득 국가 10개국의 경우 미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이 35%로, 지난해 51%에 비해 16%포인트(p)나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24%로,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받은 53%보다 30%p 가까이 폭락했다. 반대로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은 주요 10개 고소득 국가의 경우 23%에서 32%로 9%p 상승했고, 중하위소득 국가 9개국에선 58%나 '일자리를 창출해 준' 중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은 우리가 알던 '글로벌 리더'로서의 그 미국이 아니고, 세계 패권국(覇權國)을 향한 중국의 전략과 야망은 무섭다. 5년 후, 10년 후가 궁금하다.
2025-08-11 05: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볼수록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 전 세계를 상대로 워낙 길을 잘 들여 놔서 이젠 웬만해선 놀라지도 않는다. 이게 미국 대통령이 할 짓인가 싶을 정도의 충격적인 일도 그가 하면 '트럼프니까' 한마디로 넘기기 일쑤다. 그가 한 말이 적중하면 '역시', 틀려도 작전·트릭·수싸움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뭔 말을 해도 결국엔 다 말이 된다. 얼마 전 트럼프를 위한 골프용 방탄차 '골프 포스 원'(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에 빗댄 말) 등장 소식이 전해졌다. 전용 골프 방탄차라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린가. 그런데 '역시 트럼프'라는 놀람 정도로 끝났다. 지난 1월 취임 후 반년도 안 돼 골프를 즐기는 데 들어간 국가 예산이 700억원이 넘고, 임기의 거의 4분의 1을 골프장에서 보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나라였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탄핵(彈劾)이 거론됐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이해 충돌이나 윤리, 이런 것도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처음엔 '이게 말이 돼? XX 거 아냐'며 반응하던 사람들도 이젠 무신경하게 받아들인다. 선거 공약, 국가 정책 중 트럼프 가족 사업과 연관된 것으로 드러난 것도 하나둘이 아니다. 비트코인 채굴 사업, 가상자산 플랫폼 설립 및 자체 암호화폐 사업, 하다 하다 '트럼프 모바일'이라는 이동통신·스마트폰 사업까지, 상상 초월(超越)이다. '트럼프 바이블'이라는 성경도 만들었다. 트럼프 머그 등 각종 굿즈, 신발, 향수, 와인 등 각종 라이선스 사업은 트럼프 일가 돈벌이에 끼지도 못한다. 트럼프가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인 관세 전쟁이 마무리 단계다. 국가별 관세율 격차는 10~50%로, 역시 트럼프 마음이었다. 한미 관세 협상도 끝났다. 역시나 트럼프가 원하는 걸 대체로 다 챙겼다는 평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주한미군과 방위·국방비 등 안보 협상이 남았다. 한미 정상회담도 이달 중 열릴 것으로 보인다. 또 뭘 얼마나 트럼프에게 내줘야 할지 모른다. 어떤 기상천외한 걸 들고나올지 예측 불허(豫測不許)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미 실용 외교도 기대되지만 트럼프가 다른 정상들에게 했던 것처럼 면전에서 망신을 주지 않을까 불안도 하다.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극진한 예우를 할 수도 있다. 왜? 트럼프니까. hoper@imaeil.com
2025-08-03 19:25:26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특검의 압박이 전방위적(全方位的)으로 거세지고 있다. 29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 다음 달 6일엔 김건희 여사에 대한 피의자 신문 조사가 예정돼 있다. 윤 부부 공천 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도되고 윤상현 의원도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김 여사 주변 압수수색에선 문제의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가 발견돼 진품 감정 중이다. 윤 전 대통령 최측근들도 진술을 뒤집는 등 하나둘 등을 돌리고 있다. 이를 두고 윤 전 대통령은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졌다"고 심경을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을까.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비상계엄을 왜 했을까. 미스터리다. 성공할 것으로 믿었을까. 성공했다 한들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했을까. 당시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었다 해도 그저 잠들기 전 분한 마음에 머릿속으로 펼쳐 볼 수 있는 상상과 공상, 그중에서도 가장 허황(虛荒)된 망상 아니던가. 그런데 실제로 계엄을 선포했다. 그것도 여럿이 함께. 집단지성을 발휘해도 모자랄 판에 집단사고를 한 것이다. '이유가 뭘까.' 북한 위협과 종북·반국가 세력 척결, 줄탄핵·예산 삭감 등 거대 야당(당시 더불어민주당) 폭주에 따른 국가 시스템 마비, 부정선거 의혹 등 거론된 계엄의 이유를 가져와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봐도 이해가 안 된다. 항간에 가장 유력하고 직접적인 이유라며 나돈 '김건희 여사 보호' '건진 법사·명태균 게이트 차단'은 말할 것도 없다. 민주당과 종북 세력, 부정선거 의혹 때문이라면 정치적 무능과 지도자로서 능력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풀지 않고 계엄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자격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특검, 각종 게이트로부터 김 여사를 보호하기 위해 계엄을 했다면 대통령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임기를 채우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백번 양보해 계엄이 성공했다면? 최악이다. 국격(國格) 실추에, 국가 신뢰도 추락에, 정치·경제·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극심한 혼란이 불 보듯 뻔하다. 어떤 이유도 이해될 만한 게 없다. 오죽하면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위한 계엄'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윤 전 대통령은 며칠 전 비상계엄 이유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SNS에 썼다. "역사가 심판할 몫"이라고도 했다. 안타깝게도 역사의 심판을 받기 전에 신평 변호사가 표현한 '1.7평 독방, 생지옥'에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또 윤 전 대통령 표현대로 '명령을 따랐던' 군·경·경호처 등 하급자 수십 명은 줄줄이 구속되거나 수사·재판을 받는 것도 모자라 임금이 날아가고 연금 박탈 위기에까지 놓였다. 평생 쌓아온 사명감과 자부심, 명예, 그리고 일터를 잃고 하루하루 고통받고 있다. 그 명령 때문에 보수 진영과 국민의힘은 쑥대밭이 됐고, 재기(再起)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고쳐 쓸 수도 없을 지경이다. '허황돼 보이고, 현실 인식 못 하는 과대망상가, 주변 아부꾼들 거짓말에 쉽게 속는 어리석은 사람'. 국회 탄핵소추 법률대리인단 소속이었던 한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해 묘사한 표현이다. 윤 전 대통령의 상대 진영 변호사여서 악의나 폄훼(貶毁) 의도가 깔렸다고 볼 수도 있고, 사실도 아니었으면 하지만 달리 '비상계엄을 왜 했는지' 의문을 해소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2025-07-29 05:00:00
2000년대 초·중반 미국 원정 출산 붐이 일었다. 1980년대도 원정 출산이 없진 않았지만 재벌가 등 일부 부유층에 국한(局限)됐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조기 유학·명문대 진학 등 교육과 병역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중산층으로 확산됐고 다양한 패키지 상품과 관련 전문 업체까지 등장할 정도로 시장 규모가 커졌다. 자녀의 미국 시민권 획득을 위해 너도나도 출산 원정을 떠나 비공식적으로 '한국 신생아 100명당 1명꼴로 미국 시민권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연간 5천 명 안팎이 미국으로 원정 출산을 떠난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원정 출산이 가능한 것은 미국이 속지주의(屬地主義), 즉 출생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다. 미국 땅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 국적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비행기를 타고 가다 미국 영공에 진입하자마자 기내에서 출산한 경우도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기내 출산'을 위한 '만삭 원정'이 무용담(武勇談)처럼 나돈 배경이다. 그러나 기내 출산 자체가 드물고 무엇보다 위험해 요즘은 임신 36주 이후 승객의 탑승을 제한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제는 이러한 원정 출산, 기내 출산이라는 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출생 시민권'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지난 1월 발동(發動)해서다. 미 연방 대법원이 얼마 전 이 행정명령을 일부 주에서는 실행할 수 있다고 결정하면서 28개 주에선 문제 삼지 않는 한 이 행정명령이 적용된다. 다만 다른 22개 주에선 여전히 출생 시민권을 유지하고 있고, 아직 헌법 개정, 대법원의 행정명령 합헌성 판단 등의 과정도 남아 있어 원정 출산의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출생 시민권 '인정' '금지' 주(州)로 나뉘면서 특정 주에 '원정 출산족'들이 몰리는 새로운 풍속(風俗)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그 경우 미국의 한인 밀집 지역 지형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미국 속지주의와 원정 출산'의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린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스타일로 봐선 '원정 출산' '기내 출산'이 '그때 그 시절'의 이야깃거리로 기억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hoper@imaeil.com
2025-07-27 1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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