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변형은 아스팔트 표면이 외부 압력, 고온 등으로 눌리거나 밀려 솟아오르는 현상을 일컫는다. 특히 여름철 폭염 탓에 많이 발생하는데, 석유로 만들어진 아스팔트가 고온에 달궈지면서 연성 재질인 표면 포장이 물러져서다. 차량 통행이 많거나 정체·저속(低速) 구간인 경우 하중에 반복 노출되면서 차륜(車輪) 자국에 따라 도로가 울퉁불퉁해질 수도 있다. 소성변형이라고도 한다. 도로 변형이 횡단보도상에 나타나면 보행자는 말 그대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횡단보도는 안전하다'는 생각에 무방비(無防備) 상태에서 건너다 예상치 못한 솟구침에 걸려 넘어질 수 있어서다. 횡단보도 흰색 라인 탓에 변형 여부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유모차, 보행기 등을 이용하는 노약자에겐 더욱 취약하다. 횡단보도를 잘 건너가다 갑자기 휘청이거나 넘어지는 경우는 십중팔구 솟구치거나 꺼진 변형 노면 탓으로 보면 틀림없다. 대구의 대표 관광 명소인 3·1만세운동길과 계산성당을 이어주는 횡단보도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대구근대골목의 길목이라 더욱 당혹스럽다. 외국인 관광객이 이곳 횡단보도를 건너다 걸려 넘어질 뻔하는 장면은 심심찮게 목격된다. 애써 평점심을 찾은 뒤 얼른 남은 구간을 건너가며 걸린 지점을 뒤돌아볼 때의 그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안함에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그 황당함과 어이없음을 어찌 글로 설명할 수 있으랴. 현대백화점 옆 이면도로와 달구벌대로 연결 지점의 횡단보도는 상태가 더 심각하다. 백화점 주차장을 드나드는 차량이 많고 약전골목 등과 대로를 오가는 차들로 정체되거나 저속 운행되는 곳이라 더욱 위험하다. 횡단보도상 도로 변형이 어디 이곳뿐이겠냐만 대구, 중구의 자랑 '근대로(路)의 여행' 골목투어 구간임을 고려하면 안전사고 위험은 물론 이미지 훼손까지 우려된다. '한국 관광의 별' '한국 관광 100선' 연속 선정 등 전국 유명 관광지이자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선정된 구간의 횡단보도다. 차량 통행과 보행자 이동이 많은 곳이라 보수해도 도로 변형이 반복될 수 있고 그때마다 정비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안전사고 예방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신속한 정비가 필요하다.
2025-12-01 05:00:00
과거의 안 좋은 경험·상황을 되풀이하는 현상을 정신분석에선 '반복 강박'이라고 한다. 좋지 않은 것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고 안 하는 게 당연할 것 같은데 반복하는 모순(矛盾)적 경향을 일컫는다. 어린 시절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혐오했던 딸이 커서 연애나 결혼할 때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혼이나 이별 후 '다신 저런 사람 안 만난다' 해 놓고선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다시 만나길 반복하는 사례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려는 경향, 싫어하지만 이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판에서도 '반복 강박'처럼 되풀이되는 게 하나둘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특검이나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만 봐도 그렇다. 이를 요구하는 입장일 땐 '진상 규명'이라며 밀어붙여 놓고 반대 입장이 되면 그렇게 욕했던 상대의 '정치적 공세' 등 논리와 행태를 똑같이 반복한다. 인사청문회 때도 야당일 땐 부동산·병역·논문·가족·납세 등 도덕성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놓곤 여당이 되면 "관행" "과잉 공세"라며 비난했던 상대의 논리를 되풀이한다. 국감 때도 증인 신청과 채택 등을 둘러싼 공수 패턴이 반복된다. 법원 판결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사법부 판단 존중" "법원의 엄정한 판단" "법치의 승리"라며 쌍수(雙手)를 들고 환영하다가도 불리한 판결 땐 "정치 개입" "사법 남용'"등 압력·장악·남용·개입 등 온갖 표현을 다 동원해 맹비난한다. 일반 조직에서 여러 차례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복 강박을 줄이기 위해선 무의식적 반복을 의식화하는 게 중요하다. 반복되는 사고·행동 패턴을 객관화하고 의도적으로 행동을 바꾸는 훈련이 효과적이다. 정치인도 익숙한 정치판과 자신의 패턴에서 한발 물러나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반복했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과 경험을 의도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당일 때, 야당일 때 반복했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 패턴들을 입장이 바뀌어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선거 때마다 공개적으로 약속이나 선언을 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2025-11-24 05:00:00
[매일칼럼-이호준] 정 대표님, 도심 군·민간 공항 이전 사업입니다
대구는 지난달 대구경북신공항 문제의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는 절호(絶好)의 기회를 잡았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하루 건너 대구를 찾았고, 국정감사 땐 지역 국회의원들이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등 관련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집중 공세를 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손에 쥔 건 없었다. 대통령과 총리는 국가 지원 요청에 검토 뉘앙스만 풍기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확답은 피했다. 정부 부처들은 윗선의 후속 대책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며 책임을 위로 돌렸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대구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때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정부 재정 지원이 실현 가능하도록 검토해 보겠다"고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정부 지원과 관련해 오히려 "쉽게 약속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신공항이 지역 최대 현안임에도 타운홀 미팅의 의제(議題)로 잡지도 않았다. 대통령 방문 이틀 전 대구를 찾은 김 총리도 대구시의 신공항 재원 확보 구체적 방안 마련 요청에 "대구시가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제시해 주면 적극 조정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전례가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정부 예산으로 할 수밖에 없는 묘수(妙手)를 시가 내놓으면 검토해 보겠다는 것이다. '전례가 없으면 힘들 수 있다'는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었다. '기부 대 양여'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기부 대 양여'는 군 공항을 다른 곳에 새로 지어 주고 기존 부지를 양여받아 개발한 수익으로 충당(充當)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도 이를 잘 안다. 대구 방문 당시 직접 "지금은 지방 부동산 경기가 나빠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기부 대 양여'의 원죄(原罪)는 대구에 있다. 애초 대구가 이 방식으로 군 공항을 이전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당시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군 공항 인근 주민들의 소음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십 년 동안 삶의 질은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전투기·항공기 소음으로 고통받는 많은 시민의 절박함을 해결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이전해야 했다. 그러나 군사시설인 K2 군 공항을 이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군 공항도 이전해 주고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하라고 했다면 씨알이 먹혔겠는가. 그 고뇌의 산물이 기부 대 양여였다. 정부도 대놓고 '지원 못 한다'고 잘라 말하긴 어렵다. 군 공항 이전은 지자체가 할 일도, 비용을 댈 수 있는 규모의 사업도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호소해도 국가가 시민들의 소음 피해를 해결해 줄 생각을 안 하니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안한 방식이란 걸 안다. 도심에 있는 전투비행장, 군 공항을 민간 공항과 함께 이전하는 사업이다. 기부 대 양여 틀 안에서가 됐든 국가 주도가 됐든 정부의 개입과 재정 지원이 불가피한 국가 사업이다. 정부가 먼저 '이제라도 정부 주도 사업으로 하겠다'고 해야 하는 사업이다. 어쩔 수 없이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시작한 사업인 줄 알면서도 계속 나 몰라라 하는 건 직무 유기(職務遺棄)다. 특혜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일이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구를 찾는다. 정 대표는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 걸로 유명하다. 대구 첫 방문, 대구 현장 최고위에서 특유의 시원시원한 화법으로 대구경북 군·민간 공항 문제에 대해 시원한 해법을 내놓길 기대한다.
2025-11-18 05:00:00
우리나라 최고(最高) 배우로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던 '국민 배우' 안성기의 수십 년 전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거의 30년간 해마다 영화상을 받았던 터라 몇 년도인지 무슨 상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199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그해도 어김없이 연말 영화 시상식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수상자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고 있을 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대 맨 앞줄 한가운데에 있어야 할 주인공이었지만 가운데도, 앞줄에도 그는 없었다. 카메라도 순간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마침내 무대 맨 뒤쪽 커튼 앞에 서 있던 그를 찾아냈다.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하듯 미소 띤 채 서 있었다. 당대 최고 배우였지만 수상 때마다 겸손한 모습으로 조용히 미소만 짓거나 합동 피날레 장면에서 동료 수상자들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넘어 존경심까지 불러일으켰다. 겸손하기만 해선 힘든 직업도 있다. 정치인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정치계가 겸손해선 살아남기 힘든 세계이기도 하거니와 전투적이라야 그나마 '말발'도 먹히고 주목도 받고 지지층으로부터 인정도 받을 수 있어서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22대 국회는 넘쳐도 너무 넘친다. '오만불손(傲慢不遜)'의 극치(極致)를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오죽하면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를 두고 '역대 최악(最惡) 저질(低質) 국감', 이번 국회를 두고는 '동물 국회만도 못한 국회'라고까지 하겠는가. 특히 이번 국감에선 교만의 '끝판왕' 경쟁을 보는 듯했다. 본인만 돋보이면 상대가 의원이든 참고인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짓밟았다. 주목만 받을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 기세였다. 아무리 한쪽, 강성만 보고 정치를 한다 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다. 본인 얼굴만 낼 수 있으면, 자기 홍보만 된다면 남이야 어찌 되든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다는 모습에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였다. 더 뻔뻔하고 더 목소리 크고 더 나서고 더 강한 척해야 주목받고 살아남고 면죄부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겸손의 미덕(美德)은 어디 갔는지, 안성기가 더욱 생각나는 시절이다. 혈액암이 재발돼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의 쾌유와 건강을 빈다.
2025-11-17 05:00:00
대구 만촌네거리에서 경산 방향으로 가다 보면 담티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 정점(頂點) 이후는 '에코존'이다. 연료 절감과 배출가스 저감 효과를 위해 도입한 친환경 구간이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지형이라 가속 페달을 밟지 않고 관성에 맡긴 채 내려가라는 의미다. 대륜고를 지나면 고가도로 부근에 커다랗게 '연료절약운전구간'이라는 교통표지판도 설치돼 있고 도로 노면엔 '에코존'이라는 표시도 있다. 고개이다 보니 내리막에 앞서 오르막이 있다. 시속 60㎞인 제한속도에 맞추려면 오르막에서 가속 페달을 약간 밟아 줘야 한다. 전방 주시(注視)를 해야 하니 계기판을 보고 있을 순 없어 어느 정도 밟을지는 다년간 이곳을 지나며 익힌 나 나름의 경험과 감에 따른다. 차종이나 연식, 상태에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오후 8시 이후 시간대 기준으로 시속 60㎞ 정도로 고개를 넘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에코존에서 시속 60㎞ 중반 정도까지 가속된다. 시속 60㎞를 조금 초과해 내리막 구간에 접어들면 시속 60㎞대 후반까지 속도가 붙기도 한다. 물론 제한속도를 상회(上廻)한 게 확인될 땐 바로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낮춘다. 추석 명절 연휴 때인 지난달 8일 출근했다가 퇴근하던 오후 8시 30분쯤, 하던 대로 오르막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가 발을 떼고 전방을 주시하며 내려오던 중 속도가 평소보다 좀 더 빠른 듯해서 계기판을 보니 시속 70㎞.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순간 불이 번쩍 했다. 이동식 과속 단속 카메라였다. 그리고 10여 일 뒤 과속 통지서가 날아왔다. 시속 72㎞ 속도 위반. 에코존에, 얼마 전까지 이곳 제한속도가 시속 70㎞였다는 사실까지 오버랩되면서 속이 상했지만 얼른 온라인 납부하고 애써 잊었다. 과속은 하면 안 된다.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다만 에코존에선 가속 페달뿐 아니라 브레이크도 웬만하면 밟지 않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가속 페달을 밟아 의도적으로 과속하는 상황을 얘기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연료·배출가스 감소 효과를 노리는 에코존의 의미가 반감(半減)될 수도 있다. 순간순간 속도계를 확인하는 것도 전방주시 등 안전 운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추석 때 던져진 에코존 딜레마다.
2025-11-11 05:00:00
[기고-홍대우] 폐교, 아이들 두 번째 학교로 다시 숨 쉬게 하자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인구가 급감하는 농어촌의 경우, 폐교 활용 방안은 교육청이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가 된 지 오래다. 교직에 34년간 몸담아 온 필자로서는, 학교가 문을 닫는 현실이 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폐교들이 아이들의 『회복과 성장을 위한 '두 번째 학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단순한 매각이나 임대보다,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특화된 교육 공간으로 재구성한다면 '날지 못하는 새가 없듯이 꿈을 펼치지 못하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센터로의 활용이다. 경북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심의 건수는 2021년 975건, 2022년 1천30건, 2023년 1천165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피해학생을 위한 전담지원센터의 절실한 필요성을 보여 준다. 현재의 일시적 상담 지원 체계로는 피해학생의 심리적 회복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폐교를 활용해 지역별로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센터를 설치한다면, 피해학생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가지며 다시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둘째, 학업 중단 예방을 위한 전문 학업숙려프로그램 지원센터로의 활용이다. 경북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학업 중단 학생 수는 2021년 1천696명, 2022년 1천938명에 달한다. 이 중 학업 문제나 대인관계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이 2021년 386명, 2022년 438명이다. 이들은 교직 경험이 풍부한 교사와 상담·심리 전문가가 함께하면 충분히 학업 복귀가 가능한 학생들이다. 하지만 현재의 단기 숙려제 프로그램으로는 실질적 도움을 주기 어렵다. 경북 전역에 전문 학업숙려프로그램 지원센터를 설립해 학생 한 명 한 명이 다시 배움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위기청소년을 위한 '꿈키움학교'로의 전환이다. 경북교육청의 정서·행동특성검사에 따르면 불안, 우울, 자살, 자해 위험 등 관심군 학생은 2021년 2천659명, 2022년 2천666명, 2023년 2천589명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이 학생들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Wee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으로 연계되고 있으나, 지역별 인프라 불균형과 상담 인력 부족으로 인해 내실 있는 지원이 어렵다. 일부 기관에서는 임시 인력이 상담을 맡는 경우도 있어 근본적인 회복을 돕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폐교를 청소년 꿈키움학교로 전환해 단위 학교 차원에서 도울 수 없는 위기청소년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체계가 절실하다. 전라북도교육청은 폐교를 교육인권센터, 청소년 자치센터, 외국어 교육센터, 안전체험관, 학생수련원, 청소년 창의예술공간, 전통문화고등학교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폐교를 무상으로 임대해 주기도 한다. 경북교육청 역시 이러한 사례를 벤치마킹해 폐교를 위기청소년 지원의 거점으로 삼는 '경북형 폐교 활용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위기청소년을 돕는 길은 거창하지 않다. 폐교를 아이들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특화된 전문 기관으로 바꾸는 일, 그 기관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도록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지원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버려진 학교가 아닌, 누군가의 꿈이 다시 자라는 학교로, 아이들의 두 번째 희망으로 폐교가 다시 숨 쉬길 바란다.
2025-11-04 13:54:18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가 LA 다저스의 '가을 동화' 같은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7차전까지 가는, 그야말로 피 말리는 접전(接戰) 끝에 다저스가 4승 3패로 챔피언에 올랐다. 이 드라마는 '일본 3인방'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정규시즌뿐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다저스에 우승을 안긴 '지구 최강' 오타니 쇼헤이와 '특급'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가 그들이다. '이도류' 오타니는 포스트시즌 17경기에서 출루율 0.405, 8홈런, 14타점, OPS 1.096을 기록했다. 투수로도 2승을 거뒀다. 특히 연장 18회까지 간 월드시리즈 3차전은 압권(壓卷)이었다. 홈런 2개를 포함한 4안타 5볼넷 등 9출루의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펼쳤다. 이런 오타니를 월드시리즈에서만큼은 능가한 선수가 야마모토다. 포스트시즌 6경기에 출전, 5승 1패 평균자책점 1.45로 오타니를 지워 버렸다. 다저스가 거둔 월드시리즈 4승 중 3승(평균자책점 1.02)을 책임졌다. 그것도 위기 때마다 빛을 발했다. 벼랑 끝 6차전에 선발로 나서 승리를 거머쥐며 침몰 직전의 다저스를 마지막 7차전으로 이끌더니 바로 다음 날 7차전에도 마무리로 출전, 거의 3이닝을 무실점으로 책임지며 기어이 우승 마침표도 직접 찍었다. 최우수선수도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이들은 일본, 아시아를 넘어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도 호령하며 전 세계에 일본 야구를 각인(刻印)시켰다. 우리나라도 이정후·김혜성·김하성 등 메이저리거가 있지만 이들의 활약에는 크게 못 미친다. 다저스 우승에 김혜성이 기여한 바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월드시리즈 마지막 7차전 연장에 잠시 대수비로만 모습을 드러내 아쉬움을 남겼다. 축구에서도 일본은 탈(脫)아시아급임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 평가전만 봐도 그렇다. 지난달 우리나라에 5대 0 굴욕패를 안겼던 브라질을 3대 2로 이겼다. 월드컵 우승이 목표임을 숨기지 않는다. 야구도, 축구도 일본의 탈아시아급 성장이 그저 부럽다. 그렇다고 시기의 눈으로 보며 질투할 필요는 없다. 스포츠는 즐기면 된다.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자극받아야 하고 자존심도 상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있고 발전이 있고 내일이 있다.
2025-11-04 05:00:00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 및 탄핵, 대선 패배 등으로 문 닫기 직전이던 국민의힘을 그나마 제1야당으로서 존재감과 명맥을 이어 가게 한 의원 한 명만 꼽으라면 주진우 의원을 들겠다. 저급하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 팩트로 폐부(肺腑)를 깊숙이 찌르는 공격으로 집권 여당에 꾸준하게 타격을 입히는 게 제1야당에 걸맞은 저격수라 할 만해서다. 주 의원은 법조(法曹) 출신이다. 대통령실 행정관·비서관으로 일한 적이 있지만 검사로 시작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법조계에 몸을 담았던 터라 아무래도 입법 활동에 유리한 점도 많겠지만 법조인 출신이라고 다 그런 것도 아니다. 당장 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만 봐도 법조인 출신으로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의원이 적잖다. 잘하든 못하든 두각을 나타내는 의원 중 법조 출신이 많은 건 사실이다. 숫자부터 많다. 이번 22대 국회만 봐도 의원 300명 중 61명이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 출신이다. 전체의 5분의 1이나 된다. 21대 국회보다 15명 증가한 역대 최다이다. 이 중 지역구는 민주당 37명, 국민의힘 18명으로 민주당이 배나 많다. 여야에서 손꼽히는 '전투력 갑(甲)' 의원 중에도 법조인 출신이 적잖다. 국민의힘의 경우 주 의원과 함께 대여 공세의 '투 톱'이라고 할 수 있는 장동혁 대표, 그리고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과 연일 '추나 대전'을 벌이며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나경원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 역시 판사, 제22대 의원 재직 중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법조계는 예전부터 정치 등용문(登龍門)이었다. 특히 검사 출신이 두드러졌다. 검사동일체로 대변되는 검찰 문화도 패거리 문화의 최고봉인 정당과 닮았다. 법조 출신이 많은 건 직업·성향·기질 등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법을 잘 아는 만큼 법을 만드는 입법부에서도 유리할 수밖에 없어서다. 법을 잘 알고 법의 허점도 잘 아니 여기에 전투력까지 더하면 '갑'이 되는 것이다. 최근 입법부의 사법부 침해·장악 논란도 법조인의 국회 대거 입성과 관련이 없지 않다. 법조계 생리를 잘 알다 보니 만만하게 보이기도 하고, 돌아서면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어서다. 옛말 틀린 것 없다더니, 역시 '아는 놈이 더 무섭다'.
2025-10-27 05:00:00
혼기(婚期) 찬 자녀를 둔 분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상견례, 혼수, 신혼집, 세간 장만 등 확 달라진 결혼관·문화 얘기에 따라가기 숨이 찰 정도였으나 압권은 따로 있었다. 신세대 시아버지의 '끝판왕'이라야 할 수 있을 법한, "며느리에게 시부모 전화번호를 아예 입력도 하지 마라"고 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다. '말도 안 된다' '농담도 잘한다' '과장이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에 "둘이 잘 살면 된다. 시부모는 신경 쓰지 마라. 전화도 하지 마라"고 했다는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그렇게 되겠나'고 생각하면서도 '혹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어질함도 느껴졌다. 세태(世態) 변화로 인한 '현실 자각'은 엘리베이터에서도 종종 경험한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들어선 뒤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할 때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와 속도다. 마침 닫히던 중이었는지 공동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의도적으로 얼른 닫힘 버튼을 눌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시 열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을 가지기 싫어하는 요즘 세태의 반영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 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얼마 전 소셜미디어를 달궜던 '메모 사진'도 세태 변화의 한 단면(斷面)이다. '앞집 문 여는 소리나 인기척이 들리면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 달라. 서로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다'라는 메모가 아파트 현관에 붙어 있는 사진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억지다'와 '공감된다'로 크게 나뉘었지만, 이웃사촌으로 불렸던 '이웃'은 어느새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는 존재'가 됐다가 이젠 아예 마주치기도 싫은 대상이 됐다. 실제로 집을 나설 때 문 밖 인기척을 확인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시간은 '나이 속도'대로 간다는 말이 있다. 10대는 시속 10㎞의 속도, 20대는 20㎞/h, 50대는 50㎞/h, 70대는 70㎞/h 속도로 지나간다는 의미다. 실제 그럴 리야 있겠냐마는 나이가 들수록 체감(體感)하는 시간이 얼마나 빨랐으면 이런 말까지 나왔겠나. 점점 빨라지는 체감 시간에 급변하는 세태 변화까지 겹치니 따라가기도 버겁다. 시간도, 변화도 빨라도 너무 빠르다.
2025-10-20 05:00:00
지난 명절 연휴, 지인(知人)들과 건강보험료 얘기를 나누다 그들의 납부액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혹 잘못 들은 것 아닌가 해서 확인까지 했다. 그런데 1억원 맞단다. 1년 동안 벌기도 힘든, 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액수다. 연봉 5천만원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연간 200만원 조금 덜 낸다. 일반 직장인은 상상도 못 할 금액이다. 가장 먼저 속상하지 않은지 물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생돈' 1억원을, 그것도 매년 낸다는 게 어디 예삿일이겠나. 각종 공제(控除)액을 다 합한 것도 아니고 건보료만 1억원을 내야 한다니 다소 억울한 마음도 들 것 같아서다. 역시나 속상하다고 했다. 그런데 1억원이 아깝다는 하소연이 아니었다. 많이 버니 사회 환원 차원에서 많이 낼 수 있다고 했다. 속상한 건 너무 당연하다는 반응, 돈 많이 버는 것 자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라고 했다. '돈은 돈대로 많이 내고 욕은 욕대로 먹는 게' 속상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부자들에 대해 인식이 안 좋은 나라도 찾기 힘들긴 하다. 혼돈의 시기, 친일·친미(親美)하며 부를 축적한 이들이 많았던 것도 맞다. 여러 역사적 배경은 뒤로하고라도 '부자들은 다 도둑놈'이라는 인식에, 많이 부담해도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돈 많으니 많이 내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면서 돈 많이 버는 건 좋게 보지 않는 이상한 심리 말이다. '건보료를 1억원이나 낼 정도면 도대체 얼마를 번다는 거야' 하는 반감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얼마나 벌길래 1억원을 낼 수 있는지'가 궁금할 순 있지만, 궁금증과 반감의 어감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감형 의문에선 부러움과 의심, 질투 등 부정적 감정이 단번에 느껴진단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직장가입자의 경우 건보료 상한(上限)은 올해 기준 월 900만8천340원이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1억800만원 정도다. 월급 1억2천700만원 이상(연봉 15억2천460만 원 이상)을 받는 고소득 직장인이 해당된다. 아무리 많이 번다 해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건보료만 1억원을 내는 건 쉽지 않다. 병·의원 이용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 억울할 수 있다. 많이 낸다고 의료 서비스 이용 시 받는 혜택도 없다. 건보료 1억원치를 이용하려면 병원에서 아예 살아야 하지 않겠나. 달리 말하면 그렇지 않은 많은 국민이 이들이 내는 건보료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 개선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소득 상위층의 보험료가 과도하니 보험료 부과 구조 전반에 대해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 지역가입자의 경우 2023년 기준 1천25억원의 보험료를 내고 보험 급여로 4조1천910억원을 받았다. 납부(納付)한 보험료의 41배다. 반면 기준 소득이 가장 높은 10분위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는 지난해 4조3천55억여원으로, 1분위 가입자 1천161억여원보다 37배 이상 많았다. 많이 내고도 불편한 시선까지 감수해야 한다면 속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는 원론적(原論的)인 얘기는 아니다. 다만, 돈 많이 벌어서 상대적으로 적게 버는 이들을 위해 보이지 않게 기여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해서다. 거창할 거 없이, 병원 갈 때나 진료 기다리다 가끔 이름 모를 그들을 위해 고마운 마음, 앞으로도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 한번 가져 보면 어떨까 한다.
2025-10-14 05:00:00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란 게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거나 그 과정을 듣기만 해도, 자신이 실제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활성화돼 반응하는 뇌 속 신경세포다. 자신이 열렬히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에 대해 갖는 강한 소속감과 감정적 헌신, 대리 만족과 닮았다. 물론 팬덤 현상을 거울 뉴런으로 설명하는 건 무리가 있다. 덩달아 좋고, 슬프고, 아픈 게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이긴 하지만, 좀 더 정확히는 다른 사람의 생각·감정을 본능적으로 파악, 반응하는 공감 능력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해서다. 그래도 거울 뉴런이 사회적 상호작용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알려진 만큼 정치인의 행동과 말에 집단·개인적으로 반응하는 강성 팬덤의 신경학적 토대(土臺)가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사회적 동일시와 집단극화, 확증 편향 등 심리·사회적 요인이 더 결정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강성 지지자들만 바라보며 정치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이 됐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그렇게 대표가 되더니 아예 '더불어청래당'이라는 지지 세력까지 형성됐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사실상 같은 방식으로 대표가 됐고,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고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뒤 단번에 대선 후보로 부상한 조국도 마찬가지다. 이젠 강성 지지층이 없으면 정치 대망론(大望論)을 꿈꿀 수조차 없는 판이 됐다. 단순 지지를 떠나 지지 정치인을 조정·통제하고 생각과 행동까지 정해 주는 당황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확실한 기반, 동력이 필요한 정치인들을 숙주 삼아 존재감과 세력을 더욱 키워 나가고, 그 덕에 한자리를 하게 되거나 더 높은 자리를 원하는 정치인들은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 다수가 아닌 일부 극단적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하는 것은 맞지 않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강성 당원만 보고 정치하는, 강성 지지층 눈치를 살펴 정책을 만들고 입법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 강성 팬덤에 편승(便乘)한, 극단이 판치는 정치에 대한 문제점과 부작용을 돌아보고, 성찰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적절한 출구를 찾아내는 사회적 담론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 hoper@imaeil.com
2025-10-13 05:00:00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아시아·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새로운 삶과 기회를 얻었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 히스패닉 등 출신과 문화가 다른 집단이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용광로(鎔鑛爐)'라 불렸다. '서로 다른 것들을 녹여 단일한 미국인으로 만든다'는 용광로 이론까지 나왔다. 국적·인종·문화의 다양성은 미국이 혁신과 창조성의 아이콘이 되고 경제·과학·문화·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세계 최강이 되는 동력이 됐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만든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상징과도 같았다. 사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그 시작은 17세기 초 영국 등 유럽 국가의 이민자들이 대서양 연안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다. 카터, 부시 등 역대 대통령들과 워런 버핏, '석유왕' 록펠러 등도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 후손이다. 이후 다양한 출신이 하나의 시민권과 가치 아래 융합(融合)돼 살아가면서 흑인 첫 메이저리그 선수인 재키 로빈슨, 아시아계 NBA 선수 등 스포츠 스타, 흑인 대통령, 라틴계 대통령 후보까지 나왔다. 최근 논란이 된 H-1B(전문직)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한 인물도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차고 넘친다. 뜨거웠던 그 '용광로' 미국에 이상 기류가 감지(感知)된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이민의 문은 전례 없이 좁아지고, 불법체류자 단속 등으로 유색 인종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비자 역시 발급받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얼마 전 조지아주 한국인 단속 및 구금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는 머스크 등이 미국으로 올 수 있었던 취업 비자 H-1B 비자 수수료를 최근 1천400달러에서 10만달러로 100배나 올렸다. 당장 미국 내 기업들의 인재 유치 및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글로벌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서의 '미국'엔 백인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 취업자들도 함께 있다. 이를 부정하면 미국의 정체성도 무너진다. 용광로가 식은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더 잘사는 나라가 될까? 아님 몰락의 시작일까? hoper@imaeil.com
2025-10-02 05:00:00
대구 달서구 청년센터, '달·라·왕(달서구 라면왕 대회)' 개최
대구 달서구 청년창업지원센터·청년센터는 지난 22일 센터에서 '달·라·왕(달서구 라면왕) 대회'를 개최해 박서형 씨의 '버터 오바마' 라면을 1위로 선정했다. 예선 참가 14개 팀 중 본선에 진출한 4개이 기량을 겨룬 이날 행사는 단순한 요리 경연을 넘어 청년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참여하는 주도형 축제로 마련돼 의미를 더했다. 이번 대회는 지역 청년 참가자들이 직접 끓인 라면을 심사위원단과 청년시식단이 함께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자신만의 독창적인 레시피와 개성 있는 조리법을 선보이며 라면이라는 일상적인 음식을 통해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2025-09-23 14:23:27
김밥 꽁다리를 좋아한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땐 '꽁다리'부터 젓가락을 댄다. 거의 본능적이다. 반듯하고 먹음직스러운 중간 부분은 양보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強迫)이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의 영향도 한몫한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 잠을 설치다 일찍 일어나면 들리던 어머니의 김밥 써는 소리. 듣기만 해도 설레고 기분 좋아지는 소리. 부엌에 가면 김밥 몸통은 안 돼도 썰다가 어머니가 드시던 꽁다리는 몇 개 얻어먹을 수 있었다. '큰사람 돼야 하니 꽁다리는 먹으면 안 된다'며 도시락엔 꽁다리를 넣지 않으셨지만, 그래서 더 먹기 힘들었던, 더 좋아했던 김밥 꽁다리다. 최근 정치권에서 난데없는 힘자랑이 벌어졌다. 누가 더 높으니, 누가 더 힘이 세니, 누가 권력 서열(序列)이 더 높으니 하는 논쟁이 며칠 이어졌다. 판은 이재명 대통령이 깔았다. 얼마 전 강원도에 가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 됐다"고 하더니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대한민국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며 권력 서열을 정했다. 그러더니 며칠 뒤엔 국무회의에서 "자기가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게 노력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같은 힘과 권력 얘기긴 한데 무슨 말인지 앞뒤 연결은 잘 안 된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세고 권력 서열이 제일 높다. 나를 제외하곤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지 모르겠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누구인진 다들 안다. '여의도 대통령' '충정로 대통령' 등도 있다고들 하는데 누가 최고인지를 떠나 다 권력의 정점(頂點)에 있는 이들이다. 최고 자리에 있을수록 겸손하고 뒤로 물러설 줄 알면 존재감과 인간성이 더 빛날 텐데 왜 굳이 '나 잘났소' '나 최고요' 하며 과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정쩡한 경우엔 악을 쓰며 드러내야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최고는 가만히 있어도 최곤데 말이다. 김밥 꽁다리는 잘나지도 않고 제일 끄트머리에 있지만 좋다. 그냥 좋다. 힘이 세야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자랑하지 않아서, 양보하고 품을 줄 알아서 더 인정과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더 멋지지 않을까. hoper@imaeil.com
2025-09-23 05:00:00
#캐나다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미국으로 넘어갈 때다. 국경(國境)에서 총을 멘 미 국경수비대원들이 버스에 올랐다. 좌우 좌석을 둘러보며 뒤쪽으로 이동하다 내 앞에서 멈추더니 여권을 요구했다. 비자 등 모든 게 정상적이라 별 걱정 없이 여권을 건넸다. 형식적 절차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원은 갑자기 버스에서 내리라고 했다. 순간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으나 돌아온 건 고압적·위협적인 표정·태도뿐, 배낭까지 꺼내 멘 채 수비대 사무실로 가야 했다. 만원 버스에서 내린 건 나와 인도인 단 두 명. 온갖 서류를 꺼내 설명하고 사정하며 쩔쩔매던 인도인의 모습에 내가 다 화날 정도였다. 다시 버스에 타면서 알았다. 승객 중 유색 인종은 우리 둘뿐이라는 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엔 한국어 리플릿이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영어, 일어 등은 있는데 한국어는 없냐"고 물었다. 직원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없다"고 했고, "왜 없냐"는 되물음에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듯 "왜 있어야 하냐"고 되받아쳤다. 상한 속을 뒤로하고 "한국어도 만들어 달라"고 한 뒤 돌아섰다. 없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물은 건 한국인이 방문할 때마다 묻다 보면 언젠간 비치(備置)해 놓지 않을까 해서였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배터리 공장 단속 및 구금(拘禁) 사태를 보면서 떠오른 1990년대 배낭여행 당시 일화다. 그때의 한국은 그랬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코리아'라고 하면 '노스 코리아'인지 묻던 시절이었고, 친근함을 표시하려고 '현다이'를 아는 척할 때였다. 당시 북미에서 '한국' 하면 그나마 많이 알려진 게 '현다이'여서다. '현다이', 즉 현대자동차가 저가로 북미에 공세를 가할 때였다. 30년 새 한국의 국격(國格)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급상승했다. 경제·문화·군사 등 다방면에서 단군 이래 최고라 할 정도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쇠사슬에 묶여 체포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한국 눈치는 보는 분위기다. 이를 계기로 비자 체계 개편·탄력 운용도 거론된다. 새 제도가 마련된다면 그나마 반분은 풀릴 듯하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미국 갈 대체 인력이 없어 공장 설립이 계속 지연된다면… '운짐'이 달까? hoper@imaeil.com
2025-09-15 05:00:00
이재명 대통령은 말을 잘한다. 특히 의미를 강렬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을 땐 '조어(造語)'나 '비유' 등을 즐겨 사용한다. 이로 인해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말만 앞선다' '말뿐이다'는 등 욕을 먹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 '피스 메이커' '페이스 메이커'가 전자의 대표적인 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 메이커'를 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명언'이라는 찬사가 나왔다.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양 날개' '두 바퀴'를 언급한 건 후자의 예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새는 양 날개로 난다'고 한다"며 "기업, 노동 둘 다 중요하다. 어느 한 편만 있어서 되겠느냐"고 하고선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을 의결했다. '양 날개'를 강조해 놓고 그 자리에서 바로 기업이라는 한쪽 날개를 부러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8일 오찬 회동을 한다. 이 대통령,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말 잘한다는 정치인 중에서도 특히 말 잘하고 말발이 센 정치인으로 꼽힌다. 특히 정·장 두 대표는 양 극단의 강성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또 어떤 언어를 구사할지도 관심사지만 '정-장'의 만남과 '말발 대결'이 더 궁금한 게 사실이다. 각 진영에서 초강경파인 데다 상대 정당에 대한 극도의 반감(反感)을 보이고 있어 이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이목이 쏠려서다. 악수 여부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가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대표와의 악수 거부를 공언해 와서다. 또 어떤 화려한 말로 악수를 할지 또는 안 할지 주목된다. "새는 양 날개로 난다"면서도 '한쪽 날개'를 꺾은 대통령이, 야당을 인정하지 않고 아득바득 '한쪽 날개'로만 날려는 정 대표가, '한쪽 날개'인 '반탄(反彈)' 세력만 보고 정치한다는 비판을 받는 장 대표가 이날 만남에서 펼칠 '말의 향연'이 궁금하다. '강 대 강' '말 대 말'의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부디 협치·소통·협력의 기본 중 기본인 '양 날개'와 '두 바퀴'의 진리를 말만이 아닌 가슴과 머리로 곱씹어 보는 회동이 되길 바란다.
2025-09-08 05:00:00
얼마 전 일본에선 '추하고 기묘한 생물'이라는 외모 비하(卑下) 논란이 일었다. 일본 총리 이시바 시게루를 두고 신흥 정당의 정치인이 한 발언이었다. 직접적으론 외모 비하지만 참·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데 대한 일종의 '놀림'이었다. 그런데 이 비하는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참패 책임에 대한 퇴진 압박에 시달리던 이시바는 이 발언 덕에 오히려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곧 사임을 공식화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이시바에 대한 동정론이 일면서다. 이는 이시바에게 버티기 동력이 됐고, 그 사이 10%대였던 지지율은 40% 안팎까지 올랐다. 그러나 다시 진퇴(進退)의 기로에 섰다. 이시바가 속한 자민당이 2일 의원총회를 열고 조기 총재 선거 찬반 여부를 묻는 절차를 진행하기로 해서다. 이번 주 내 의사를 확인할 예정이라 8일쯤이면 총재 선거 실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소속 의원·당직자 등 342명 중 과반수가 찬성하면 차기 총재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이 경우 이시바의 퇴진은 사실상 확정된다. 그런데 분위기가 꼭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앞서 의견 수렴하기로 결정할 때만 해도 퇴진 확정 분위기였지만 외모 비하 발언에 이은 각국 정상과의 잇단 외교 일정이 이시바를 도왔다. '사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50%를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우리나라로 봐서도 이시바가 총리직을 유지하는 게 낫다. 대미 관계, 통상·안보 정세 급변 등 트럼프발(發) 파고를 함께 넘고 있는 동병상련(同病相憐) 입장에서 힘을 모아야 할 상대로 이만한 인물이 없다. 우호적인 한국 인식에다 동반자적 태도 등 협력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다. 이시바는 총리 취임 전부터 '친한(親韓) 노선'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총리가 된 뒤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 지난 6월 한국 대사관 주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 땐 관방장관 등 내각 서열 1~4위와 방위상·합참의장·참모총장 등 국방 지휘 라인까지 모두 총출동시켰다. 일본 언론조차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한국에 대한 최상위 성의 표시이자 양국 간 미래 협력과 신뢰 의지에 대한 표시였다. 이시바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몇 안 되는 총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역사 문제에 있어 자성적인 입장을 보여 와 일본 내에서도 '반일적'이라고 공격을 받을 정도다. 지난 2019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문 땐 "일본이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문제들이 오늘날 여러 형태로 표면화하고 있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하고, 한일합병에 대해 일본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패전일 추도사에선 13년 만에 '반성'을 언급했고, 23일 한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 언론발표문을 통해선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담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繼承)한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이시바는 '이념'보다 '개념'의 정치인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는 일본 내 보기 드문 우파 정치인이고, 대중적 인기보다는 책임감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소신과 원칙을 중요시하고 인간 됨됨이도 인상적이다. 며칠 뒤면 거취가 결정되지만, 퇴진 여부를 떠나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그의 '개념 정치'가 계속되길 응원한다.
2025-09-02 05:00:00
급변(急變)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있겠냐마는 범죄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디지털 관련이나 보이스 피싱 등 과거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테러 협박 등 위험한 장난성 범죄도 늘고 있다. 범죄 연령대 변화도 눈에 띈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60대 이상의 범죄가 급증하는가 하면 학령기 나이대 아이들의 범죄도 증가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경찰청의 범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범죄 158만3천여 건 중 61세 이상 노인층 피의자 비율이 18.8%로, 청년층(19~30세) 18.3%를 넘어섰다. 2011년 통계 집계(集計)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61세 이상 범죄는 2020년(15.8%) 이후 매년 늘고 있는데, 특히 살인 피의자 비율의 경우 23.2%로 모든 나이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이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관련이 깊다.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0년 24%에서 지난해 28.2%로 증가하는 등 계속 늘고 있다. 수명·건강에 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도 생계 곤란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노인층 범죄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절도의 경우 60세 이상이 33.9%나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觸法少年·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연령 조정 등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촉법소년 기준 연령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젠 더 이상 놔둘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8천600여 명이던 촉법소년 검거 인원은 지난해 2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잠정)됐다. 특히 촉법소년의 성폭력 범죄 건수가 크게 늘었고,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엔 중1 학생이 장난으로 인터넷에 올린 '신세계백화점 폭발물 설치' 협박으로 수천 명이 대피하고 경찰·소방 수백 명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참 극단의 시대다. 범죄도 저·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정치도 극우·극좌 양 극단이 활개치는 시대가 됐으니 말이다. 당장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고 답답한 것도 비슷하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져 보자.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극에 달하면 예상치 못한 해결의 실마리가 툭하고 나타날 수도 있으니. hoper@imaeil.com
2025-09-01 05:00:00
▶남정후 씨 26일 별세. 남수석(태원산업 대표·매일탑리더스아카데미 회원)·미정·미희 씨 부친상. 빈소=대구파티마병원장례식장 501호. 발인=8월 28일(목) 오전 6시 50분. 장지=명복공원-도림사추모공원
2025-08-26 13:37:10
님비(NIMBY)는 '내 뒷마당엔 안 돼(Not In My Back Yard)'라는 말의 약어(略語)다. '내가 사는 지역엔 혐오 시설이 들어올 수 없다'는 거부 의사를 의미한다. 님비 현상은 공공의 이익으로 볼 땐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자신의 지역엔 받아줄 수 없다'는 유치 반대 행동으로 보면 된다. 대표적인 혐오 시설로는 쓰레기 소각장, 장애인·노숙자 시설, 화장 시설, 발전소, 버스 차고지 등이 있다. 이유도 땅값, 치안, 생활환경, 정서 등 다양하다. 1987년 미국 뉴욕 근교 아이슬립에서 배출된 쓰레기 처리를 위한 후보 지역의 주민들이 외친 말에서 유래됐다. AI 시대 핵심이자 필수 시설인 '데이터센터'도 님비 취급을 받는 분위기다. 유치 경쟁도 벌어졌던 시설인데 기피(忌避) 시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 없는 AI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엄청나게 늘고 있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실제로 미국 일부 지역에선 데이터센터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반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전력과 냉각수 사용량이 어마어마해 지역의 전기와 물을 엄청나게 소비하는 데다 소음 공해 등 생활 불편도 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가뜩이나 전기가 부족한 수도권에 몰려선 안 된다'는 등 수도권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보니 수도권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어서다. 전자파·소음·발열 등 건강상 우려, 재산 피해 등의 이유로 건립 반대나 공사 지연·중단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우주 공간에 데이터센터를 구축(構築)하려고 시도,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우주 데이터센터용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력과 국가 생존이 달린 글로벌 AI 전쟁에서 살아남고, 세계 3대 AI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데이터센터는 필수다. 그런데 혐오 시설로 낙인(烙印)찍히면 건립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 딜레마다. 데이터센터가 님비 시설이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선 선제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불안감 및 오해 해소는 물론 유치 지역 혜택 정책에서부터 전력, 냉각수 공급 전략까지 계획을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수립해야 한다. 아니면 중국처럼 우주 공간에 구축하든가. hoper@imaeil.com
2025-08-2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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