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고성인 낙포 이굉과 안동 귀래정 은행나무

뿌리 깊은 집안이 남긴 수령 480년의 큰나무

오랫동안 같이 근무하다가 퇴직한 동료들과 함께 문화유적답사를 갔다. 목적지는 영양군의 두들마을과 서석지 등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안동을 경유하게 되었다. 그때 차창으로 TV와 신문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던 '원이엄마'의 조형물과 길가에 서 있는 큰 은행나무,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한 건물을 보았다.

언젠가 다시 와서 자세히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도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또다시 이곳을 지나게 되어 이번에는 차를 멈추고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조형물은 '아가페상'이었다. 유명을 달리한 지아비에게 쓴 애절한 편지글은 기억을 새롭게 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 자세히 보시고 내게 말해 주세요….'

다시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안동시 보호수로 지정(1982년)되었으며 수령이 480년이라는 표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동쪽으로 난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니 귀래정(歸來亭,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이었다. 고성 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李增)의 둘째 아들 낙포 이굉(1440~1516)이 1513년(중종 8)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앞서 보았던 원이 엄마의 남편 이응태(李應台, 1556~1586)는 낙포의 고손자였다.

고성 이씨 청도 입향조 모헌(慕軒) 이육(李育)이 조성한 2만1천 평의 유호연지(柳湖蓮池)와 그가 청도에 정착한 배경에 대해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또한 낙포의 형, 평의 아들이어서 고성 이문과의 묘한 인연에 어리둥절했다.

도로변의 은행나무에 대해 종손 이만용 님께 낙포가 심은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확증할 수 있는 문헌은 없으나 당시 정자 안에 있던 나무인 만큼 맞을 것이라고 했다. 수령(樹齡)도 낙포가 지은 귀래정의 '나이'와 비슷했다.

낙포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낙포(洛浦) 또는 귀래정이라고도 했다. 세종조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의 손자로, 고성 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李增)의 아들이다.

이증은 1419년(세종 1) 서울에서 태어났다.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었으나 그 뒤에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문음(門蔭)으로 영산현감이 되어 선정을 펼쳤으나,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아니하고 산수가 아름다운 안동으로 옮겨 살다가 1480년(성종 11) 돌아가신 분이다.

낙포는 공의 둘째 아들로 1464년(세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세에 1480년(성종 11) 문과에 급제했다.

1500년(연산군 6) 사헌부집의를 거쳐 승문원판교'상주목사를 역임한 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김굉필(金宏弼)의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고 영해로 유배되었다.

중종반정 뒤 다시 기용되어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개성부유수 등을 지냈고, 1513년(중종 8)에 사직한 뒤 고향인 안동에 내려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에 연유하여 귀래정을 짓고 그곳에서 은거하였다. 시문에도 능해 당대 명사였던 이현보, 이우 등 문사들과 어울렸다.

하회의 옥연정, 임청각의 군자정과 함께 안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 3곳 중 하나로 안동팔경에서도 귀래조운(歸來朝雲), 즉 '귀래정의 아침 구름'이 제2경으로 소개되었다.

고성이문은 무오'갑자 양 사화에서 크게 화를 입었다. 무오사화에서는 낙포의 형, 평의 아들 윤(胤)과 주가 각각 거제도와 진도로 유배되었고, 갑자사화에서는 주가 다시 제주도로 이배되었다가 한양으로 옮겨져 참형(斬刑)되고, 형 평은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평의 다섯째 아들 여는 진도로 유배되고, 낙포 자신은 영해로, 아우 명은 영덕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사환(仕宦)으로 다져진 튼튼한 뿌리는 이런 피화에도 불구하고 임청각(보물 제182호), 탑동종택(중요민속문화재 제185호) 등 훌륭한 문화재를 남겼고,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1858~1932)을 비롯해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했다. 특히, 두 종류의 특별한 생명문화유산을 후세에 남겼는데 낙포의 안동 귀래정 은행나무와 청도 모헌의 군자정 연꽃이 그것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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