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치요다구 구단시타 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으면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입구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 다시 10여 분쯤 걸으면 치도리카후치(千鳥ケ淵) 전몰자 묘원을 만날 수 있다. 치도리카후치는 황실의 거처인 에도성을 둘러싼 해자의 한 부분이다. 해자가 묘원을 동남으로 감싸고 있는 조용한 곳이다.
일본 정부가 이곳에 전몰자 묘원을 만든 것은 1959년이었다. 태평양 연안 곳곳에서 수습한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들의 유골을 모아 이곳에 안치했다. 식민지시대 일본에 끌려갔다 불귀의 객이 된 조선의 군인과 군속들의 유해도 상당수 이곳에 안치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역에 해당하는 곳이 치도리카후치 묘원인 셈이다.
야스쿠니 신사나 치도리카후치 묘원이나 전몰자를 추도하는 시설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접은 사뭇 다르다. 야스쿠니는 일왕을 위한 전쟁에 참여했다 숨진 250만 명의 영령을 신으로 받든다. 이곳에는 A급 전범도 합사돼 있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권의 각료들이 수시로 공물을 바치기도 하고 참배를 하기도 해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물이 됐다.
치도리카후치 묘원은 야스쿠니에 비하면 버려진 곳에 가깝다. 해마다 8'15를 기념해 일부 야스쿠니 신사에 비판적인 종교 단체나 재야 단체들이 별도의 추모식을 가지는 것이 고작이다. 해자 양쪽으로 수백 그루의 벚나무를 심어 벚꽃이 피는 짧은 기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이 묘원은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심한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대안 시설로 일본 내외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야스쿠니 수호 세력들의 반대가 걸림돌이 됐다.
이번 주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 참석차 일본을 찾았던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야스쿠니가 아닌 치도리카후치 전몰자 묘원을 찾아 헌화했다. 아베는 지난 5월 야스쿠니 신사가 알링턴 국립묘지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 각료들이 이런 아베에게 알링턴에 상응하는 일본의 추도 시설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치도리카후치 전몰자 묘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아베 스스로도 집권 1기인 지난 2007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대신 치도리카후치 묘원을 찾은 바 있다. 그런 아베가 집권 2기를 맞아 더 강력히 야스쿠니를 고집하고 있다. 아베는 뭘 믿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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