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我又)'는 나도 이고 '율목(栗木)'은 밤나무다. 율곡 이이에 대한 이야기로 '국조인물고'에 전한다. 율곡의 아명은 현룡으로 출생하는 날 밤 신사임당이 흑룡의 꿈을 꿔 지었다. 현룡은 어렸을 적에 강릉 오죽헌에서 자랐는데, 서당에서 돌아오자 외할머니가 물었다.
"현룡아, 저 나무의 열매가 무엇인지 아느냐?"
"예, 석류입니다. 제가 석류에 대해서 시를 한 수 지어보겠습니다."
"홍피낭리 쇄홍주(紅皮囊裏碎紅珠)"
"무슨 뜻인지 설명해 보아라!"
"붉은 주머니에 빨간 구슬이 한껏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외할머니는 현룡의 글 솜씨에 놀랐다. 어느 날 스님이 지나가다가 현룡이를 보고 귀인상에 호랑이에게 다칠 액(厄)이 보인다고 했다. 청천병력 같은 말을 듣고 외면하려다 그냥 지날 수가 없어, 짐짓 스님을 불러 물었다.
"그럼, 현룡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밤나무 천 그루를 심으면 액운도 막고 훗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위 이원수가 들어오자 이 말을 전했다.
"여보게, 사위! 밤나무를 심는 일은 하늘이 내려준 천행이라 생각하네. 그리되면 집안 살림에도 유익하고 이웃에도 좋은 일이며, 게다가 현룡이를 위하는 일 아닌가!"
밤나무를 심기 위하여 온 고을 뒤져 500여 그루의 묘목을 구했다. 파주 미추산에 묘목을 심고, 나머지는 알밤으로 정성껏 심었다. 3년이 되자 밤나무를 헤아려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1천 그루 중 한 그루가 모자랐다.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두 번 세 번 헤아려 봤지만 999그루로 한 그루가 모자랐다.
'왜 한 그루가 안 보일까?' 그 때였다.
"나도 밤나무요(我又栗木)."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잎은 분명히 밤나무인데 잎 뒷면이 하얗게 보였다. 밤나무 잎과 근사한데 스스로 밤나무라고 하니 그 후부터는 이 나무를 '나도 밤나무'라고 불렀다. 이렇게 1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고 이웃과 나눔으로 액을 때웠다.
예부터 밤나무는 신목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고, 왕의 목관으로 사용했다. 또 밤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배(梨)만하다고 했다. '수서(隋書)'와 '북서(北書)'에 백제에서는 큰 밤이 난다고 기록했다. '삼국유사 원효불기'에는 일꾼에게 한 끼 몫으로 밤 두 알을 주었는데, 관청에서는 한 알만 주라고 했다. '고려도경' 23권에는 복숭아만 하다고 했다. 그런데 현재는 커야 호두알만 하다. 씨에는 향기가 없어도 꽃에는 향기가 있고, 열매는 달고 맛있으며, 씨는 작아도 아름드리나무로 자랄 수 있다. 또 큰 나무에 몇 개의 열매가 열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씨에는 크기와 모양과 맛과 향기가 설계되어 있어 열매를 소중히 여긴다.
율곡의 행적을 일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아홉 차례나 장원 급제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지나가는 과객의 소리도 하늘이 내린 소리로 듣고 실천 했던 가풍과, 왜란을 대비해 십만양병설을 주창한 통찰력은 미래를 예측한 선견지명이었다. 율곡은 당시 퇴계 이황과 함께 쌍벽을 이루어 영남학파에 이어 기호학파의 태두가 되어 한 시대를 이끈 대학자였다.
(사)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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