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증유의 질병 코로나19로 전국이 잔뜩 웅크리던 때에 오히려 외연을 넓힌 기업이 있다. 바로 산업용 냉각기와 냉동공조기를 전문 제조하는 대구 중소기업 ㈜덕산코트랜이다. 최근 친환경 전기자동차 시장이 커지면서 2차전지 수요가 크게 늘며 덕산코트랜에 새로운 판로가 열렸다. 2차전지 특성상 생산의 전 공정에 냉각이 필요해서다. 덕분에 덕산코트랜은 그해 달성군 다사읍에 새로운 공장도 짓고, 매출 200억원의 성과도 거뒀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굽이마다 강해졌다는 강환수 덕산코트랜 대표는 "어렵다, 불경기만 탓할 것이 아니라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대장장이가 연단할수록 쇠가 단단해지듯 시련을 강해지는 기회로 삼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달성 공장 집무실에서 강 대표를 직접 만나 그의 경영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덕산코트랜을 모르는 사람도 CI를 보면 바로 안다.
▶맞다. 덕산코트랜이라면 모르는 사람도 CI를 보면 고속도로에서 광고판을 봤다고 한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만 브랜드 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소기업도 브랜드를 알리고, 그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가치를 키우는 일인 만큼 다른 비용을 조금 덜 쓰더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최근에 중소기업융합대구경북연합회 회장이 되셨다.
▶중소기업융합회는 예전 이(異)업종교류연합회라는 단체다. 통상 이런 모임을 하면 저녁 먹으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다지는 게 중심이다. 그렇게 이업종 간 교류를 위한 단체로 있어오다가 이제는 시대 변화에 따라 기업도 융합성이 필요해졌다.
사람과 기술을 서로 교류하고 융합성을 갖는데 관심을 두게 됐다. 인적 네트워크를 넘어서 서로 다른 업종 간에도 벤치마킹하고 연구개발(R&D) 노하우 같은 것도 나눌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순수하게 제조업체 대표들이 모여서 한 시간 정도 세미나를 들으며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강소기업 대표가 됐지만, 처음 사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세상 살면서 고마운 분이 두 분 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양조장, 정미소 등을 운영하셨는데 의식주에 문제없이 잘 살았다. 고등학교 때 지금으로 따지면 학생회장 격인 연대장 학생을 할 정도로 유복했다. 그런데 고3 때 아버지가 보증을 잘 못 서주면서 대학도 못 보낼 정도로 형편이 기울었다. 오죽했으면 고등학교 은사님이 당신 월급을 주면서 대학을 가라고 하셨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다. 결혼을 하고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버지 망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 스스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간절함을 갖게 되어서다. 아버지가 고의로 가세를 기울게 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던 1987년 6월, 플라스틱 사출 기계 제조회사에서 영업을 했는데 당시 소장이 엄청 괴롭혔다. 다른 사람들이 사직서 내고 도망가는데 오기가 발동했다. 그때 소장을 이겨보려고 내 방식으로 영업하면서 강해졌다. 그러면서 '내가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고 돈 300만원 가지고 사무실을 얻어서 사출기 대리점을 차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내가 강해지게 해 준 고마운 분이다.

-평소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하는 편인가?
▶IMF 당시 직원 임금도 제대로 못 줄 때도 있었는데 겁도 없이 자그마한 공장 하나를 경매로 샀다. 금융위기 때도 공장을 넓혔다. 코로나19로 남들이 힘들다고 할 때 달성에 공장을 지었다. 준비가 돼 있으니까 어려운 시기에도 곳간이 채워지더라.
코로나19로 어려울 때 운영자금을 마련한다고 은행에서 몇 십억 원씩 돈을 빌리는 사업가들이 많았다. '실탄'이 준비되어야 하니까. 그런데 운영자금은 쓰고 나면 없어지는 돈이다. 나는 차라리 투자했다. 시간이 지나면 껍데기는 남아있다.
돈을 쓰는데도 순서가 있지만 어디에 쓰느냐도 중요하다. 이사를 하다 보면 통상 기존에 있는 것보다 조금 크게 간다. 그런데 그거 한 3년 지나면 공간이 모자라다. 한 자리에 30년, 50년 있는 게 좋은 게 아니나 성장을 하면서 둥지를 키우고, 옮기는 것도 필요하다. 성장했지 않나.
-업계에서 덕산 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사 기술에 직접 생산, 영업, 서비스를 하는 게 강점이다. 중소기업이 많지만 자기 제품, 자기 브랜드를 가진 회사가 많지 않다.
우리는 우리 기술로 만든 우리 제품을 직접 영업하고, 문제가 있으면 직접 서비스하면서 고객의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시장 대응력이 빠르다. 지금도 서비스 리포트는 제가 직접 보고 받는다. 마케팅에도 기획이 있고 전략이 있다. R&D도 기획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결국은 고객 간지러워하는 곳을 긁어주는 걸 만들어야 한다.
가령 예전에 반도체 공장에서 요구하던 클린룸은 당시에는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했지만 요즘은 그 정도는 쉽다. 오히려 대구의 엘앤에프처럼 2차전지 제조 관련 공정에서는 온도와 습도를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 산업도 바뀌고 환경이 바뀌니까 거기에 필요한 특수한 요구를 대응해줘야 한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안 좋다. 애로사항은 없나?
▶환율이나 물가 상승 문제도 힘들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게 있다. 수입 자재 수급 문제다.
제조업은 품질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독일에서 들여오는 펌프가 있는 데 주문해서 받기까지 기본 6개월 걸린다. 우리는 고급 장비를 만드는데 그 펌프를 꼭 써야 한다. 그런데 펌프 회사는 펌프 생산에 필요한 소재를 못 구한다. 결국 우리도 펌프를 못 들여온다.
당장 내일도 예측이 안 되는데 그 펌프가 필요한 장비 수주를 받을지 알 수 없다. 예전에는 데이터를 갖고 어느 정도 예측해서 미리 발주를 넣어놨다. 안 그러면 수요를 못 맞췄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수주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도 벌어지는 거다. 이런 게 환율이나 금리 문제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애로사항이다.
-최근 기업계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준비 상황은?
▶거창하게 이야기할 거 없다. 도쿄의정서라든지 30년 전부터 세계 각국이 환경, 사회 분야에 인식한 문제가 있다. ISO처럼 인증서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 조그만 공장에서 뭐가 필요하냐'고 생각할 게 아니라 회사 규모에 맞게 각자 동참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다.
덕산코트랜이 생산하는 냉각기에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신냉매로 제품을 만들고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인버터 냉각기를 만들고, 비윤리적인 경영을 하는 업체의 부품을 쓰지 않는 등 하나씩 바꿔나가면 되는 일이다.
지배구조도 기업이 투명하게 돌아가는지 하나씩 체크해봐야 한다. 대표이사인 나부터 투자자이면서 경영자이니까 월급을 받고 직원들처럼 살아가면 된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돈을 왜 버는지 고민해야 한다.
자가진단을 하면서 나와 관계있는 투자자, 관련사로 영향을 미치면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대구에 냉동 공조 관련 학과가 없다. 우리 회사가 우리 기술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기술 인재를 계속 다듬고 만들어내야만 우리 회사가 지속 가능하다.
그런데 부산 등지에 관련 학과 출신들이 대구에 안 오려고 한다. '볼 게 없다' '먹을 게 없다'고 한다. 그들이 대구로 오도록 대구의 가치를 만드는 게 가장 관건이다. 좋은 사람이 올 수 있도록 투자하고 100명 중 둘, 셋이라도 건지면 다행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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