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두바퀴로 달려보는 경북도 명품 자전거길] 사뿐 사뿐 빠져드는 4色 매력길…외씨버선길(2)

외씨버선 길(Beosun trail) 245Km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전국에서 몰려든 22명의 라이더들이 뭉쳤다. 경상북도의 수려한 이야기 틀 '외씨버선길 245Km' 를 5번에 나누어 달리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청송"을 출발하여 "영양", "봉화"를 거쳐 김삿갓의 고향 "영월"에서 마침표를 찍는 지난(至難)한 인내의 길이다.

◆산소 심장의 고장, "청송"

신새벽 눈을 비비며 첫 출발지인 청송 주왕산 초입의 대전사(大典寺)에 모였다. 4월이라지만 이곳 청송은 얼음골같은 냉기가 서늘하다. 믹스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손발을 부비며 출발을 위한 으샤으샤를 외친다. '외씨버선길 254Km' 는 사람의 발길이 덜 닿은 외딴 점들을 선으로 이어 걷는 트레일(trail)이다.

성숙된 또 다른 나를 찾기위해 삶을 복기해 보는 길이다. 찌든 때는 닦아내고, 앙금은 흩어버리고, 번잡함은 떨쳐버리는 길이다. 자전거는 걷는길에 열정을 흠씬 더했다. 주왕산을 통과해야 하지만, 자전거는 출입금지다. 도리없이 우회한다. 당나라 주왕(周王)의 전설이 흘러 쌓인 기암(旗岩)을 뒤로하고 청송의 자랑, 약수탕길을 달린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외씨버선길을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외씨버선길을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상탕, 중탕, 하탕 곳곳마다 물 색깔은 변화하고 시큼한 맛의 강도 역시 다르다. 샛강같은 계곡을 따라 고불고불한 길은 재미지다. 끼가 가득한 장난끼 공화국에서 옛날 옛적의 추억을 되새기고, 본격적인 슬로시티의 길로 들어선다. 느려서 오히려 좋은곳 '청송'의 심장으로 들어선다. 중평 솔밭을 지나 덕천민속마을에 도착했다. 99칸의 송소고택의 우물가에 놓여진 백고무신이 앙증맞다.

초봄! 고택위로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장작더미 연기가 옛스러움을 더한다.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스토리가 담긴, 김주영의 "객주(客主)". 울진 죽변항에서 내륙 봉화까지 소금을 날랐던 보부상들의 찌든 얘기가 청송이 고향인 작가의 필치에 녹아 들어었다. 달기 약수탕길, 슬로우시티길, 김주영 객주길을 돌아 비봉산, 매산의 산길을 넘어 영양땅으로 들어선다.

◆길 위에서 만나는 문인들의 고장, "영양"

빨간 고추가 매운 동네. 맛깔스런 문인 인물들의 면면도 매콤하다. 영양 땅이다. 지훈 조동탁(1920~1968), 일도 오희병(1901~1946), 이문열(1948~) 그리고 조선후기 맛의 대가 장계향(1598~1680). 그들이 수놓은 이야기꺼리가 곳곳에 스며있다. 두들마을의 향기가 참 은은하다. 백천한옥등 고택들과 문인의 필치와 장계향 디미방의 고소함이 조화롭게 얽혀있다.

옥계지를 거쳐 산길 11Km를 지나 선바위로 들어섰다. 깍아지른 듯 촛대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선바위'와 '남이포' 를 배경으로 단체 인증샷을 남긴다. 점점 "외씨버선"의 맛으로 들어선다. 영양 전통시장 들머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베어물고 더위를 속인후 본격적인 외씨버선 속 깊숙한 길로 들어간다. 삼지 수변공원, 금촌산길, 영양 향교를 거쳐 지훈의 고향인 '주실마을' 에 당도했다. 한눈에 딱 봐도 잘 생긴 마을이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일월산 자락 소나무 숲길을 달리거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일월산 자락 소나무 숲길을 달리거 있다.

누구라도 책을 펼쳐들면 싯구가 흘러나오리 만큼 툭터인 앞뜰과 일월산 뒷자락의 정기가 마을을 휘감아 감싸안은 전형적인 명당의 형세다. 19세 약관의 나이에 그토록 깊은 감성을 발현한 '승무(僧舞)'에 녹아든 지훈의 천재성에 놀라울 따름이다. 지훈문학관 광장앞에서 모두들 청록파의 일원이 된양 청춘을 외쳤다. 이제 영양을 서서히 벗어나 봉화로 가기위한 연결길에 나섰다. 일월산 자생화 공원까지 이어지는 마을길이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제7길 치유의 길 대티골 초입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제7길 치유의 길 대티골 초입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도계리를 거쳐 벌매교 용화리를 지나는 18.3Km 길이다. 이윽고 외씨버선길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제7길 치유의 길'의 임도길에 마주섰다. 일월산 자생화 공원 초입의 용화동 삼층석탑에서 시작한다. 천문사, 대티골, 칡밭목, 우련전까지 이어지는 약 9Km의 아름다운 숲길이다. 영양과 봉화를 잇는 영양터널이 생기기전의 옛길이다. 숲은 과연 숲 스럽다. 우거진 나무와 뒤덮힌 이끼들이 연륜을 말해준다. 편안하지만 경외롭다.

숲은 쉼(休)이다. 숲은 생(生)이다. 숲은 기(氣)다. 자전거 두바퀴 위에서 호흡은 들숨 날숨을 반복하고 거칠어지고 다리는 옥죄어 오지만, 눈은 청명해지고 가슴은 뻥뚫리고 머리는 흰백색으로 맑아진다. 모두들 지르는 탄성이 메아리를 이룬다. 치유다 부활이다. 1801년 옛 천주교도들이 숨어들어 지냈다는 우련전에서 길은 봉화 방향으로 접어든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춘양역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춘양역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산세가 봉우리를 짓는, "봉화"

외씨버선길중 험난한 오지길로 들어선다. '봉화연결길'이다. 길은 멀다. 23Km나 된다. 차도 진입 불가다. 단단히 각오하고 달려야 한다. 해발 700~900m 이르는 비탈길의 연속이다. 우련전을 출발하여 마당목이, 죽골을 거쳐 분천역까지 이어진다. 걸으면 약7~8시간, 자전거로도 3~4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등짝 봇짐에 비상간식을 쟁여 챙기고 단디 다짐하고 달려야 한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분천산타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분천산타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나 달렸을까, 짙은 숲속을 벗어나 분천역의 산타마을이 저멀치 보이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V-협곡 열차가 운치높은 사시사철 재미진 스토리가 쏠쏠한 분천역을 지나 보부상길로 접어든다. 울진 바다에서 내륙 춘양까지 소금을 날랐다는 이야기가 맴도는 길이다. 길은 제법 거칠다. 곧은재, 씨라리골, 높은터, 모래재를 거쳐 '억지춘양' 이라는 춘양목에 이른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박달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박달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춘양면 사무소 인근의 만산고택을 슬쩍 둘러보고 춘양목 군락지를 향한다.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뒤 산길을 위험스레 넘는다. 간밤에 내린 비로 계곡물이 꽤나 불었다. 도리없이 자전거를 들쳐매고 물길을 헤치고 나왔다. 서벽리 춘양목 군락지의 솔향기가 흠씬 진하다. 연신 배가 꼬록댄다. 때마침 보급차가 전해준 비빔밥을 흙바닥에 철퍼덕 앉아 맛나게 감춘다. 신선 놀음이다. 길은 점점 깊어진다.

해발 780m 옥돌령과 문수산 사이에 낀 주실령을 넘고 박달령에 올라야한다. 길은 쫄깃하다. 단 한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거친 내리막을 지나 오전약수터로 접어든다. 혀끝을 쏘는 탄산수의 청량함을 시원스레 맛볼수 있다. 곧이어 호수가 펼쳐진다. 물야저수지다.

늦은목이 옹달샘에서 발원하여 이곳에 이르러 큰 호수를 이루었다. 생달마을을 숨가쁘게 오르고 상운사 임도로 접어 들었다. 동네가 바뀐다. 말투도 바뀐다. 강원도래요?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영월 외씨버선 갤러리를 둘러본 후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영월 외씨버선 갤러리를 둘러본 후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단종, 김삿갓 그리고 동강의 땅 "영월"

12세의 어린 나이에 불과 3년 남짓 왕노릇을 하고 회한의 청령포를 거쳐 장릉에 묻힌 비운의 "단종애사". 외씨버선길 중 가장 인내심이 요구되는 길에 맞닥뜨린다. 제11길 마루금길이다. 해발 1,000m를 넘나든다. 선달산(1,236m), 어래산(1,064m)를 거쳐 난고 김삿갓문학관에 이르는 험준한 길이다. 천천히 가야한다. 늦은목이 입구부터 자전거는 때론 밀고 들쳐매고 나아가야 한다.

곱돌령을 돌무렵 인내심이 바닥난다. 탈진상태다. 진퇴양난이다. 해는 뉘엿뉘엿, 온몸은 너덜해졌다. 물도 똑 떨어졌다. 하지만 도리없다. 가야한다. 천천히라도. 한발작씩 내딪어야 한다. 앞으로. 이게 인생이다. 김삿갓의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계속 따라간다. 옥동천 계곡을 따라 조선민화박물관도 지나고 삿갓교, 든돌, 들모랭이, 메기못, 가랭이봉, 예밀교까지 맑디 맑은 계곡 모퉁이를 따라서 방랑시인 김병연의 생애를 되씹는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고 있다.

마침내 외씨버선길의 마지막 제13길 관풍헌 가는길이다. 마을의 옥동천은 큰강 남한강에 합류했다. 강폭은 더 넓어졌다. 물살도 제법 우렁차다. 가재골을 넘으니 고씨동굴의 푯말이 보인다. 깊은 산중 화전민들의 생활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지목독'을 지나 영월읍내로 들어섰다. 단종이 홍수를 피해 잠시 머물렀다는 '관풍헌'에 드디어 도착했다. 245Km에 마침표를 찍는다.

길은 끝났다. 끝매듭을 지었다. 하지만, 감동은 흐르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약5개월 동안, 땀과 거친 호흡으로 뭉쳐진 22명의 라이더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지나온 땀방울에 박수를 보냈다. 결코 쉽지 않았던 길이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없이 불평없이 묵묵히 그 길을 달려왔다.

그져 무쏘의 뿔처럼 앞뒤 재단없이 무던히 전진해왔다. 길은 스승이다. 외씨버선길은 그랬다. 형언할수 없는 감동과 교훈을 가득안고 돌아오는 길, 눈꺼풀은 내려앉지만 입가의 미소는 멈출수가 없다. 아듀(Adieu)! 외씨버선길! 인생길!

글·사진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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