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명의 교차로 실크로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하늘도 땅도 건물도…푸른빛으로 물든 '동방의 로마'
푸른 모스크 돔·화려한 문양의 타일…오밀조밀한 골목마다 사람들 발길
2001년엔 도시 전체 세계유산 등재

사마르칸드의 가장 핵심 관광포인트인 레기스탄 광장. 웅장한 마드라사 건물 세 개가 마주보며 자리잡고 있다.
사마르칸드의 가장 핵심 관광포인트인 레기스탄 광장. 웅장한 마드라사 건물 세 개가 마주보며 자리잡고 있다.

실크로드의 꽃이자, 동방의 로마라는 칭송을 듣는 사마르칸드. 오밀조밀한 골목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고 여러 민족이 뒤섞인 바자르에는 각종 물건이 흥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늘보다 더 푸른 모스크 돔과 화려한 문양의 실크 옷을 걸친 여인들이 있는 곳. 푸른 도시 속으로 성큼 들어섰다. 이곳저곳에 푸른 색상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마르칸드, 사마르칸드, 발음이 혀끝에서 구르는 것을 반복해보면 명쾌한 느낌이다. 관광객들은 "실크로드는 흔히 꿈과 낭만의 길이라는데, 이름에도 그러한 느낌이 녹아있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 사마르칸드란 명칭을 보면 '사마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사람들이 만나는 곳, '칸드'는 페르시아어로 도시를 뜻한다. 사마르칸드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로 2001년에는 도시전체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틸랴코리 마드라사는 돔형지붕의 푸른색과 아라베스크 문양이 조화를 이룬다.
틸랴코리 마드라사는 돔형지붕의 푸른색과 아라베스크 문양이 조화를 이룬다.

◆ 도시전체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사마르칸드는 원래 고대 실크로드 상권을 주도하던 소그드인들의 나라였다. '대당서역기'의 주인공 현장스님의 기록에도 나타난다. 고대 중국은 사마르칸드를 강국(康國)이라고 불렀다.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출발하여 인도로 향하다가 이곳을 통과한 현장스님은 주민의 숫자가 많고 물품을 만드는 기교가 뛰어나며, 여러 나라의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하다고 적었다.

이후 8세기 초에는 혜초 스님도 이곳을 거쳐 간 기록이 왕오천축국전에 있다고 한다.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언덕에 존재했던 고대도시는 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그로부터 1백여 년이 지난 후 이 나라에 티무르라는 영웅이 나타났다. 그는 광대한 제국을 이루었고 14~15세기 사이에 도시를 다시 세웠다. 티무르가 파란색을 좋아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푸른색의 건물들이 많이 지어 졌다.

곳곳에 사용된 푸른 타일은 중국 도자기 기술과 페르시아 안료가 만나 탄생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파란색은 아프가니스탄에서 3,000년 이상 채굴되고 있는 라피스라즐리(Lapis lazuli)라는 귀한 광물질을 갈아 만든다고 한다. 푸름은 평화, 안심 안전, 신뢰, 냉정 등의 의미이고 신호등의 파란색은 '안전해요'라는 뜻이 담겨있다. 맑은 날의 파랑이란 단어에는 대부분 낙관과 긍정의 의미로 가득하다.

역설적으로 잔인한 정복왕 티무르가 푸른색을 선호한 것은 스스로 또는 병사들에게 심리적 정화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수십만 명을 학살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본국에 돌아와서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도모했다. 티무르는 정복지에서 뛰어난 기술자들을 데려오고 약탈한 그 재력으로 몽골군에 의해 폐허가 된 옛 도시 부근에 장엄한 이슬람 건물들을 지어갔다. 그는 사마르칸드를 푸른색의 건축물이 가득한 동방의 로마로 만들려 했다.

레기스탄 광장 마드라사의 아름다운 푸른타일 문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사진모델.
레기스탄 광장 마드라사의 아름다운 푸른타일 문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사진모델.

◆사마르칸드 관광중심,레기스탄

사마르칸드의 가장 핵심 관광포인트는 '레기스탄'이라는 중앙광장이다.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을 빼놓고는 중세 어느 곳에서도 사마르칸드의 레기스탄 광장에 견줄 만한 곳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왼쪽 매표소를 지나 광장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섰다. 코발트블루의 커다란 돔들이 푸른 빛을 반사한다. 레기스탄은 모래 광장이라는 뜻인데, '레기'는 모래, '스탄'은 광장을 의미한다.

사마르칸드의 중심 광장으로 이곳에서는 옛날부터 알현식, 사열식, 사형집행 등이 있었다. 지금도 국가적인 대규모 경축행사나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실크로드 교역로를 부활시킨 티무르 때는 대규모 국제시장도 열렸다. 기념품 가게 벽면에는 당시 시장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린 그림들도 걸려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50숨짜리 지폐에도 이곳 광장이 그려져 있다. 레기스탄 광장에는 섬유광고 사진촬영 모습도 보인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의 배경은 아름다운 푸른 타일 아라베스크 문양 벽면이다.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므로 독특한 아라베스크 문양의 벽면 장식이 발전했다.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므로 독특한 아라베스크 문양의 벽면 장식이 발전했다.

광장에는 웅장한 건물 세 개가 디귿자 모양의 대칭으로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다. 마드라사는 모든 종류의 교육기관을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이다. 왼쪽에는 1420년에 세워진 울루그벡 마드라사. 티무르의 손자이며 유명한 수학자, 천문학자인 그의 이름을 따라 세워졌다. 직사각형 레기스탄 광장 맞은편 가운데에 보이는 틸랴코리 마드라사는 황금장식이라는 뜻이며 아라베스크 문양이 특징이다.

맨 우측에는 사자를 그렸다는 뜻의 셰르도르 마드라사가 자리 잡고 있다.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람 율법에서는 동물이나 사람을 그리지 못하게 하는데 당시의 영주가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려 했다고 한다. 티무르 이후에도 사마르칸드에는 티무르 영묘, 레기스탄 광장, 비비하눔 모스크 등이 지어졌고 약 150년 동안 번영을 누렸다. 후세 사람들은 이 시기를 사마르칸드의 영광이라 일컫는다.

티무르 자료관에 전시 중인 티무르 초상화. 소련의 학자들이 티무르의 두개골을 근거로 얼굴을 복원해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티무르 자료관에 전시 중인 티무르 초상화. 소련의 학자들이 티무르의 두개골을 근거로 얼굴을 복원해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영웅,티무르

1336년 출생한 티무르는 삼촌을 비롯한 지방 봉건영주들의 지원 속에 전사로 성장했다. 여러 부족세력들 사이를 줄타기하며 권모술수를 배우고 자신의 기반을 구축해 갔다. 티무르는 상전에 대한 모반을 다반사로 꾀하며 의형제를 모살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33세가 되던 1369년 중앙아시아의 유목 부족들을 통합하는 데 성공,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 후 거의 40년을 유라시아 사방 각지를 원정하고 정복하는 데 몰두했다.

그의 나이 69세가 되던 1405년 겨울, 중국을 치러 가다가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였다. 지금의 지중해 지역부터 서아시아, 인도, 중국, 러시아 일부를 포함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티무르의 정복전은 엄청난 파괴와 살육을 수반했다. 당시 유럽지역의 국가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떤 역사가들은 그를 문명의 도살자라 부르기도 했다.

하늘 색상과 비교되는 모스크 건물의 녹색 지붕. 티무르가 파란색을 좋아했기 때문에 푸른색의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하늘 색상과 비교되는 모스크 건물의 녹색 지붕. 티무르가 파란색을 좋아했기 때문에 푸른색의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1941년 소련의 학자들이 사마르칸드에 있는 티무르의 무덤을 열어서 그의 시신을 조사했다. 그들은 두개골을 근거로 그의 얼굴을 복원해 초상화를 그렸으며 다리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사실 티무르는 우즈베키스탄 역사 속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다양한 민족이 패권을 다툰 앞선 왕조의 역사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티무르는 우즈베키스탄의 영웅으로 다시 깨어나게 된다.

과거 소련의 역사를 지우고 그 자리에 티무르를 새겨 넣었다. 국민들 역시 티무르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그를 국가 영웅으로 대접하고 있다. 신생 독립국으로서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티무르만 한 인물이 없었다. 국가에 의해 티무르는 점점 더 밝은 곳으로 소환되고 있다. 이제 그의 꿈이 서린 사마르칸드의 영광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박순국 언론인
박순국 언론인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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