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사람들 말로 나는 이 집에 3년 정도 갇혀 있었다고 한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들이 문틈 사이로 풍겨온다. 바깥은 어떤 세상일까. 조금 무섭기도 하다.
"철컥-" 보호소의 철창문이 열린다. 그리고 처음 보는 아저씨가 나를 번쩍 안아든다. '사랑아~' 몇 번을 똑같은 이름만 내리 부른다. 나는 이제 사랑이인가?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포항 집단 유기 시츄 50마리, 어떻게 지내나
사랑이는 지난달 23일 포항시 남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발견된 시츄 50마리 중 한 마리다. 당시 포항시 동물보호팀과 119구조대는 악취가 심하게 난다는 인근 주민 신고로 현장을 방문했다. 발견된 50마리 중 1마리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49마리 전원을 포항시 동물보호센터로 구조했으나 이동 중 한 마리가 더 폐사하며 총 48마리가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했다. 현재 48마리 중 20마리가 입양됐고, 남은 28마리 중 5마리는 사망, 23마리가 보호 중이다.

"특별한 일도 아닌데, 뭘 취재까지 하나요" 사랑이를 입양한 노세준 씨(60)의 첫마디였다. 노 씨는 이달 7일 '암컷 11번'으로 불리던 사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시츄 48마리는 성별에 따라 번호가 붙여져 입양 공고가 났다. "집단유기 시츄 뉴스를 보고 포항을 찾았습니다. 키우고 싶었던 견종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크더라고요. 환갑까지 살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단어라고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습니다" 노 씨는 요즘 늦둥이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전 자식 키울 때처럼 사랑이의 배변색을 매일 확인하고 밥을 잘 먹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가슴을 졸인다. "저도 안 쓰는 고급 머드 샴푸(애견용)를 사봤어요. 피부에 좋다는 영양제도 구매했네요. 힘들었을 사랑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요"


집단 유기 시츄는 오랜 기간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을 수 있고, 근친 교배로 태어난 개체들인만큼 유전병의 우려도 있다. 실제로 동물보호센터에 보호중인 23마리 중 대다수가 파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파보 바이러스는 장염 질환을 일으키는 전염병의 일종으로 면역력이 약한 어린 개체에서 자주 발생하고 치사율도 높다.
그럼에도 입양 문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포항시 동물보호센터 센터장은 이를 두고 놀라운 일이라 말한다. "유기동물에게 파보 바이러스는 떼놓을 수 없는 질병입니다. 포항 시츄들도 그 불행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고요. 파보 바이러스 의심 개체들은 공식적으로 입양이 중단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려가서 치료해 보겠다는 입양자분들이 8명 정도 계셨어요. 입양 후 발병한 경우도 많을텐데 여태껏 파양 사례도 없어요. 모든 걸 알고도 아이들의 새 가족이 되어 주겠다 나서시는 보호자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신속하고 따뜻했던 유기적 대응 눈길
집단 유기 시츄가 발견된 지난달 23일.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과 '포인핸드(유기견 입양 플랫폼)에 시츄 48마리의 입양 공고가 줄줄이 올라왔다. 게시글이 올라온 간격은 고작 해봐야 몇 분. 그리고 포항시동물보호센터 온라인 카페에는 우려의 댓글들이 이어졌다. "이 많은 아이들을 수용하실 수 있나요" "기존 아이들도 많을텐데" "먹이고 씻기고 너무 바쁘실 것 같아요" "봉사자도 받나요?" 하지만 포항의 대처는 신속했다. 센터 내 공간 확보와 미용, 중성화 수술 등의 절차가 빠르게 이뤄졌다.

포항시동물보호센터는 유기적 협조체계를 강조했다. "저희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니고요, 평소에도 저희 센터와 포항시 동물보호팀, 포항 시내 동물 관련 업체들은 아주 밀접하게 소통하고 있어요. 50마리가 한꺼번에 유기되는 사례가 많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이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합심한 덕분이라 할 수 있겠네요"
미용이 시급하다는 포항시 동물보호팀의 전화에 업계 관계자 5명은 곧장 현장으로 달려왔다. 이들은 시츄 48마리의 몸에 돌덩이처럼 매달린 털을 가위질하고 길다랗고 구부러진 발톱을 깎아냈다. 똥오줌이 엉긴 털은 그들의 옆으로 수북이 쌓여 갔다. 당시 시츄를 미용했던 '퍼피짱' 업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처참했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을 못하겠네요. 지옥에서 살다 나온 아이들이 따뜻한 곳에서 평안히 살아가는 것. 제가 바라는 건 그것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중성화 수술은 포항시 동물병원 수의사들이 발벗고 나섰다. 48마리 중 새끼 한 마리를 제외한 암컷 수컷 47마리 모두가 중성화를 마쳤다. 그리고 현재 수의사들은 파보바이러스에 전염된 시츄들을 치료하는 일을 맡고 있다. 포항시 동물보호팀 관계자는 "처음에 신고를 받고 경찰과 함께 시츄 50마리를 발견했을 때에는 너무 끔찍한 광경에 이 아이들을 과연 입양하려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라며 "앞으로도 포항시는 유기 동물을 줄이기 위해 동물을 버리지 않는 문화가 형성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동물 학대·유기…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들
누더기 모습으로 발견된 포항 시츄 50마리의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이 사건이 전국적 관심을 끌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매년 전국에서 버려지는 유기동물은 10만 마리가 넘는다. 그리고 입양되지 못한 유기견들은 매년 2만마리 이상 안락사 된다. 1마리가 유기되든 50마리가 한꺼번에 유기되든, 유기를 했다는 것은 매한가지다. 유기라는 행위에는 결코 경중이 없다.
동물학대범의 처벌도 남겨진 과제다. 포항 시츄 50마리를 방치한 견주는 동물학대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에 넘겨졌다. 당시 폐사한 상태로 발견된 시츄 2마리의 부검 결과는 '가해 흔적이 발견되지 않음'으로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물리적 폭행을 가한 것은 아니지만 더운 여름 아파트 안에 방치를 하고, 먹이를 주지 않는 행위는 엄연한 동물 학대입니다" 라고 말했다.
지난해 동물보호법이 전면 개정됐다. 반려동물 인식이 높아진 결과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의 법적 지위는 '물건'으로 규정된다. 그러다보니 동물학대 범죄의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다. 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 4249건 중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는 122명(3%) 뿐이었다. 절반 가까이가 불기소(46.4%)됐고, 약식명령으로 벌금형(32.5%)에 그친 사례도 많았다. 법무부는 지난 2021년 10월 해당 조항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마저도 2년째 국회를 맴돌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며칠 뒤, 사랑이의 소식이 전해졌다. 사랑이는 새로 생긴 가족과 첫 목욕을 하고 첫 산책을 했다. 활짝 웃는 사랑이의 모습에서 그간의 고된 삶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철컥-" 사랑이에게 비로소 새로운 인생이 열렸다. 그리고 부디 이 관심이 시츄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기를. 포항 보호소에 남아있는 180여마리. 더 나아가 전국의 13만8천823마리 (8월 13일 기준). 모든 유기동물들이 부디 새 삶을 찾기를.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오늘도 그 말을 간절히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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