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4 신춘문예] 검은 눈물같은 시선과 시린 파도 같은 어조가 돋보인 '안나의 방'

단편소설 부문 심사평

전경린 소설가
전경린 소설가

심사는 4인의 위원이 예심을 거쳐 올린 글들을 결심에서 크로스 체크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투고작의 전반적 특성을 요약하기 어려우나 서사에서 '뚜렷한 갈등의 부재'가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다. 사건 자체가 미약하더라도 단편에서 '갈등과 긴장'은 코어(core)에 해당되는데, 이에 대한 설계를 건너뛰고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인물과 상황을 그저 설명하는 글들이 상당수였다.

박승희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박승희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럭'과 '대문어의 회사 생활'은 단편이 담을 수 있는 스토리의 최적량과 흥미도가 무엇인지 아는 글이었다. 눈을 떼기 힘든 전개와 나름의 주제성을 갖고 있으나 공모전이 요구하는 강도면에서 파괴력이 약한 것이 아쉬웠다.

'해파리 공포증'은 시적 감수성으로 풀어낸 섬세한 문장을 끝까지 유지하는 솜씨가 놀라웠다. 투고자의 문장력은 흠잡을 데가 없으므로 더 넓고 다양한 세계를 보는 렌즈를 장착하여 제대로 된 '소설적 사건'과 만난다면 곧 수작을 써내리라 본다.

이연주 소설가
이연주 소설가

'마른 물고기와 생선'이 제시한 실험성은 심사자들의 시선을 빼앗고 감탄을 자아냈다. 특이한 스타일로 색감이 선명한 환상적 이미지를 그려내는 솜씨는 탁월했으나, '알'을 비롯한 주인공의 행동 양상이 모호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무리한 힘을 가하지 마세요'는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까지 당선작과 견주어 토론이 거듭된 작품이다. 면접장의 어이없는 상황 묘사나 취업을 앞둔 지원자의 내면 처리, 자연스러운 장면 전개력이 유려하고 난만해 몇 번을 다시 읽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낙점을 위해서는 서사의 증폭 면에서 약간 무리한 힘을 가했어야 했다.

해이수 소설가
해이수 소설가

'안나의 방'은 폭력적인 현실에 보호자 없이 피투(被投, Geworfenheit)된 여성의 불안과 환란, 용서와 포용을 핍진하게 그려낸 역작이다. 화소(話素)의 일부분에서 기시감을 지울 수는 없으나, 장면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포착력과 세상을 관조하는 독특한 어조에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 상처를 복수로 끝맺지 않고 갈곳 없는 사람을 자신의 방으로 들이는 작의가 전환점이 되는 한편, 끝나지 않을 시련을 예감케 하여 페이소스를 일으킨다. 작품 속 정래의 말에 빠져드는 안나처럼 이 글에는 '눌린 마음을 부풀게 하는 어떤 것'이 분명히 있었다. 작가가 지닌 검은 눈물같은 시선과 시린 파도 같은 어조가 부디 얼어붙지 않고 끝없이 아름다움을 쫓으며 살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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