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베토벤과 프리메이슨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베토벤의 첫 스승이면서 가장 중요한 스승이었던 네이푸(Neefe)는 프리메이슨이었다. 그가 가입한 프리메이슨은 중세 유럽의 석공 조합에서 유래하여 발전했지만 나중에는 직업과는 관련 없이 회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도덕, 관용, 형제애 등 이들의 가르침은 계몽주의 사상과 많은 부분에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프리메이슨으로서 독일의 철학자이며 극작가였던 레싱은 "우리는 형제애의 실천을 통해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를 막론해 모든 인류는 서로를 돕고 지원하고 보호하도록 어떤 전능한 존재에 의해 창조돼 세상에 보내진 한 가족으로 여기도록 배운다"는 말로 프리메이슨의 본질을 설명했었다.

한 작가에 의하면 네이푸는 당시로는 급진적으로 교회와 귀족이 쇠퇴하고 이성과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꿨다고 한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는 먼저 자기성찰을 통해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자신을 개조한 다음에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믿고 도덕성을 강조했다.

베토벤도 이런 영향을 받았는지 개인의 도덕성을 아주 중요하게 봤으며, 좋은 예술가가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자신을 발전시킨 후에 자신의 재능을 선하고 진실하며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데에 사용하기로 결심하고서는, 자신이 예술가로서 더 높이 평가받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더 훌륭하고 완벽하게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인본주의자이기도 했던 베토벤은 훗날 어린 시절 친구였으며 프리메이슨인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라의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면 자신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바쳐져야 한다고도 썼다. 또 그는 음악가로서의 재능이 자신을 귀족과 동등하게 만든다고 절대적으로 믿었다. 베토벤은 그의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인 바이올리니스트 안톤 쉰들러에게 자기의 심장과 머리를 가리키며 "나의 고귀성은 바로 여기, 여기에 있다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자신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리히노브스키 왕자에게 "왕자님은 어쩌다 보니 되었지만. 저는 스스로 노력해서 되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왕족이 있고, 앞으로 수천 명 더 생겨나겠지만, 베토벤은 오직 한 명뿐입니다"라고 했다.

독립적이고 완고했던 그는 어떤 집단에도 소속되기를 거부했기에 프리메이슨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많은 부분에서 그들의 사상과 가치를 공유했다. 그런 연장선에서 프리메이슨이었던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에다 음악을 붙인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중 4악장의 '환희의 송가' 가사는 당시 프리메이슨이 축제 모임에서 부르는 노래책의 가사와 같으며, 그들의 형제애와 신념을 높이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헨델의 '메시아'와는 달리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신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기독교의 유일신이 아니라 자연종교의 신과 프리메이슨의 최상위 신을 말하며,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모두는 프리메이슨의 이런 가르침과 신비주의를 자신들의 교리와 배치된다고 본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이전에 노래 가사가 기독교의 신을 찬양하기 때문에 공립예술단체인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관련 위원회의 이유가 좀 아닌 것 같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