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밀가루·계란 추억부터 졸업챌린지 릴스까지…졸업식 변천사

밀가루 뿌리기, 교복 찢기 등 폭력적 이벤트 벗어나
교복 물려주기, 음악회 등 의미 담은 행사로
코로나 시기에는 대학 학위수여식 취소되고
엔데믹 땐 이전 졸업자 몰려 학사복 빌리기 경쟁도
최근에는 릴스, 인생네컷 찍으며 추억 남겨

1970년대 졸업식 후 동성로에 나온 고교생들이 기마를 태워 동료의 졸업을 축하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1970년대 졸업식 후 동성로에 나온 고교생들이 기마를 태워 동료의 졸업을 축하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1973년 한 졸업식에서 고교생들이 밀가루 축하 세례를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1973년 한 졸업식에서 고교생들이 밀가루 축하 세례를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함께 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015B '이젠 안녕' 중)

엣헴, 오랜만에 돌아온 김라떼다. 요즘 가끔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지? 그래 2월은 졸업의 달 아니겠어? 오늘은 말이야, 라떼(나 때)부터 최근까지의 졸업식 변천사를 한번 훑어보려 해.

졸업이 다가오면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새로운 환경과 마주할 생각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잖아? 졸업은 다른 어떤 날들보다도 분명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특별한 날이었던 것 같아. 다신 돌아오지 않을, 그 때의 옛 기억을 다들 새록새록 떠올려보자고!

◆밀가루와 계란의 추억

나 때는 말이야, 졸업식 필수 준비물이 있었어. 그 날, 각자 비장한 얼굴을 하고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마냥 품 속에 소중히 안고 왔던 것은 바로 밀가루와 계란!

전교 졸업식 행사를 마치고 각 반에서 선생님이 졸업장을 나눠줄 때까지는 다들 숙연한 분위기를 유지해. 폭풍전야 같달까. 그러다 행사가 다 끝나고 모두가 운동장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는 그 순간! 몇몇 친구들이 품에서 밀가루와 계란을 꺼내 서로에게 투척하기 시작하지. 배틀그라운드 뺨치는 긴장감? 그런건 없어. 선생님이, 부모님이 보던지 말던지 그냥 막무가내로 뿌리고 던지는거야. 한 사람만이 표적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어. 많은 친구들이 얼굴부터 교복, 신발까지 그야말로 튀김옷을 입은 채 교문을 빠져나갔지.

근데 대체 왜 그랬던걸까? 정확하진 않지만 대체로 검은색이었던 교복에 하얀 밀가루를 뿌려서 반항심과 함께 마침내 규범을 벗어난다는 해방감, 독립에 대한 의미를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닐까? 근데.. 뭐 그런 의미를 생각하고 했겠어? 선배들로부터 보고 배운 졸업식 이벤트였던 셈이야.

또 졸업식하면 생각나는 게 있지? 졸업식 날 꽃집과 함께 특수를 누렸던 곳이 바로 중화요릿집이잖아. 졸업식이 끝나면 한 손엔 꽃다발, 한 손엔 졸업장을 들고 중화요릿집에 가서, 가족들과 같이 완두콩이 올려진 갓 나온 따뜻한 짜장면을 호로록 먹었던 추억. 한 번쯤은 있을거야.

다들 옛날 생각 나지?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라져서 이제는 거의 볼 수 없게 됐어. 아, 짜장면은 아직 먹으려나.

1986년 2월 15일 대구 대성국민학교 졸업식 후 짜장면을 먹는 학생들. 매일신문 DB
1986년 2월 15일 대구 대성국민학교 졸업식 후 짜장면을 먹는 학생들. 매일신문 DB
계명대학교 2021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스포츠마케팅학과 졸업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계명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학위 수여식을 취소하고, 각 학과별로 간소하게 진행했다. 매일신문 DB
계명대학교 2021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스포츠마케팅학과 졸업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계명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학위 수여식을 취소하고, 각 학과별로 간소하게 진행했다. 매일신문 DB

◆코로나의 습격, 졸업 같지 않은 졸업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부터 졸업식 날 교복 찢기와 같은 폭력적인 이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거든. 한겨울 추위는 둘째 치고, 학생들이 너덜너덜한 교복을 입은 채 맨살을 반쯤 드러내놓고 다니는 자체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 귀엽게 봐줄 수가 없는 정도였어.

논란이 커지자 학교 폭력급의 강압적인 이벤트를 근절하기 위해 졸업 시즌에 학교마다 경찰이 투입되기도 했어. 졸업식 문화(?)가 큰 변화를 맞은 것이지.

이후부터 졸업식은 단순히 졸업장을 전하는 행사에서 벗어나, 선생님·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리는 세족식이나 음악회, 타임캡슐 묻기, 교복 물려주기 등 의미를 담은 이벤트를 함께 즐기는 축제로 발돋움했어.

졸업식에 또 한 번 변화가 찾아온 건 코로나 아니겠어? 나 김라떼가 2020년~2022년 2월 졸업생들에게 물어봤다. 그 때 대학 졸업식은 어땠니?

"코로나가 한창 확산하던 2020년 2월, 대구에서는 졸업식이 아예 취소됐어. 졸업사진을 못 남겨서 아쉬웠는데, 그 해 하계졸업기간에 학교를 다시 찾아 사진을 남길 수 있었어. 하지만 학사복, 학사모 대여 기간을 정해두고 각자 방문해 사진만 찍는 분위기여서 졸업식 특유의 행사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지. 경북대 본관 앞 잔디는 졸업식 날만 되면 기념 사진을 남기기 위한 인파로 북적여 발 디딜 틈 찾기가 어려운 곳인데, 사람 한 명 안 지나가는 그곳에서 졸업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최지민·28)

"2021, 2022년엔 그나마 코로나 확산세가 나아져서 졸업식 날짜가 잡혔었어. 그래도 다른 학교에서는 온라인 학위 수여식을 진행하기도 했지.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잠깐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은 뒤 계속 마스크를 썼어."(김예원·26)

"코로나 탓에 어느 학과는 학사복조차 빌려주지 않았어. 그래서 재학생 커뮤니티에는 학사복을 빌려준다는 웃지 못할 글들이 올라오곤 했지. 또 졸업식을 못한 이전 졸업자들이 2022년 2월에 몰리면서 학사복을 빌리는 데 경쟁 아닌 경쟁이 붙기도 했어. 최대한 빨리 학과 사무실에 얘기해서 학사복을 선점하거나, 못 구하면 서로 바꿔 입어가며 사진을 찍기도 했어."(심헌재·28)

인스타그램에서 졸업챌린지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졸업을 기념해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남긴 영상들을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서 졸업챌린지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졸업을 기념해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남긴 영상들을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평생에 한번뿐인 졸업식, 현수막에 축하의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평생에 한번뿐인 졸업식, 현수막에 축하의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학사복 입고 가족들과 함께 '인생네컷'을 찍은 최현정 기자.
학사복 입고 가족들과 함께 '인생네컷'을 찍은 최현정 기자.

◆'졸업챌린지' 릴스, 인생네컷 찰칵!

그럼 요즘 졸업식 풍경은 어떨까? 눈에 띄는 건 '인간 화환'이나 '졸업 축하 현수막'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소소한 이벤트가 많아졌다는거야.

인간 화환은 말 그대로 화환띠에 각종 문구를 적어 몸에 두르는 거야. 매일신문 아카이빙센터에서 찾아낸 2017년 경북대 졸업식 풍경을 보자. 졸업생을 축하하는 친구들이 두른 화환띠에는 '어서 돈을 벌어 세금을 내세요', '콩팥 빼고 다 드릴께 시켜만 줍쇼',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 등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자조 섞인 비애가 담겨있기도 해.

학과 동기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걸어준 졸업 축하 현수막은 얼마나 감동적이게? 자신의 얼굴이 프린트된 축하 현수막 본 적 있어? 받아본 이들은 대단한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감사하고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회상해.

꽃다발 대신 좋아하는 간식을 꽂은 간식 다발이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인형 다발도 요즘 인기라고 하지?

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졸업챌린지'야. 라떼(나 때)는 상상도 못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춤 릴스를 찍고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며 졸업식을 기념하는거지. 혹은 학사복을 입고 인생네컷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기도 한대.

실제로 SNS에 졸업챌린지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다양한 춤을 함께 추거나, 그동안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을 편집한 영상들을 쉽게 볼 수 있어. 활짝 웃으며 그 순간을 즐기는 졸업생들의 모습이 반짝반짝 어찌나 예쁜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를 추억하며 나 김라떼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이 넘치는 졸업식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최근에는 학생 수 감소에 따라 마지막 졸업식을 하는 학교가 늘고 있어서 안타까워. 대구에서도 지난해 교동중, 올해 신당중이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고 문을 닫았어. 앞으로 그런 곳은 더욱 많아지겠지?

자, 김라떼와 함께 되돌아본 졸업식 변천사, 어땠어? 졸업과 관련한 추억을 떠올려보고, 각자의 세대가 경험했던 졸업식의 풍경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눠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 그럼 나 김라떼는 또 라떼(나 때) 시절 얘기로 다시 돌아올게!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