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한계 상황에 내몰린 서민 살림

지난해 가계 여윳돈이 50조원 넘게 줄었다. 고금리 여파에 경기 부진이 이어져서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개인사업자 포함)와 비영리단체의 지난해 순자금 운용액은 158조2천억원으로 2022년(209조원) 대비 50조8천억원 줄었다. 국민 살림살이가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이자 부담은 더 커졌다. 지난해 가구 부담 이자비용은 월세 등 주거비 지출을 9년 만에 넘어섰다. 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전국·1인 이상) 월평균 이자비용은 전년보다 30% 이상 늘어난 13만원으로, 월세 등 실제 주거비 11만1천300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월세 비중 증가로 주거비 지출이 늘었지만 이자비용이 더 컸다는 말이다. 임차 가구의 여윳돈은 줄었다. 지난해 4분기 월세가구의 흑자율(처분가능소득 대비 흑자액)은 20.0%로, 2019년 1분기(17.3%) 이후 4년여 만에 최저다.

돈이 없어 보험마저 깨고 있다. 지난해 생명보험사가 중도 해지자에게 돌려준 '해약환급금'은 45조원을 넘어섰다. 형편이 어려워 보험금을 못 낸 탓에 계약이 파기돼 돌려받는 '효력상실환급금'을 더하면 47조원을 넘는다. 보험 해약환급금 규모는 2년 연속 40조원대를 넘겼다. 물가마저 심상찮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두 달 연속 3%대 오름세를 나타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마저 연일 오르고 있어 당분간 금리 인하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험 해지나 약관대출 급증은 가계 살림의 한계를 알리는 신호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갈등과 대치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은 결국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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