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탐사∼생산까지 최대 10년…정부, 올 연말 첫 시추 착수

[영일만 유전 시대] 석유·가스 최대 140억 배럴 확인 땐 ‘세계 15위 매장국’ 기대
가스 75%-석유 25% 추정…심해 구멍 글로벌社에 맡겨
1차 탐사 시추 가치 없어도 5차 걸쳐 부존 가능성 확인
경제성 확정 때 개발 본격화…생산 기간도 최소 30년 걸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날 영일만 산업단지 상공에서 바라본 영일만 앞바다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날 영일만 산업단지 상공에서 바라본 영일만 앞바다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부 공식 발표가 나오면서 전체 매장량과 경제성, 앞으로 시추 일정에 관심이 쏠린다. 또한 정부 발표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이 '에너지 빈국'을 벗어나 세계 15위의 석유 매장국으로 부상하는 만큼 향후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가스·석유 최대 140억배럴 매장 추정…개발 현실화시 '잭폿'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2월 영일만 앞바다에서 최소 35억배럴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가스 부존 가능성이 크다는 통보를 받고서 5개월에 걸쳐 외국 전문가, 국내 자문단 등의 검증 과정을 거쳤다. 이 수치는 탐사자원량으로 물리탐사 자료를 해석해 산출한 유망 구조의 추정 매장량으로, 아직 시추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통상 석유·가스 개발은 ▷물리 탐사자료 취득 ▷전산 처리 ▷자료 해석 ▷유망 구조 도출(석유가 발견될 전망이 있는 구조) ▷탐사 시추(지하자원을 탐사하려고 땅속 깊이 구멍을 파는 작업) ▷개발·생산 등의 단계를 밟아 진행된다.

현재 정부는 물리탐사 자료 해석을 통해 동해 심해에 석유·가스 유망 구조가 있다는 점을 발견한 상태다. 정부는 매장 예상 자원의 비율을 가스 75%, 석유 25%로 추정한다. 가스는 최소 3억2천만톤(t)에서 최대 12억9천만t, 석유는 최소 7억8천만배럴에서 최대 42억2천만배럴이 부존할 것으로 전망한다.

남미 가이아나 광구는 금세기 발견된 단일광구 최대 심해유전으로 평가받는다. 이곳의 발견 자원량(매장량+발견 잠재자원량)이 110억배럴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동해 심해 개발이 현실화한다면 '잭폿'이라 부를만하다.

◆탐사에서 생산까지 최대 10년…첫 시추는 올 연말

남은 것은 탐사 시추를 통해 본격적으로 실제 부존 여부와 부존량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의 경제성이 있다고 확정하면 본격적인 개발·생산에 들어간다.

탐사 시추 이후에는 탐사정 시추로 구조 내 석유·가스 부존을 확인한 뒤 평가정 시추를 통해 매장량을 파악한다. 이어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생산시설을 설치하고 나서 석유·가스 생산을 개시한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첫 탐사부터 생산까지는 약 7∼10년이 걸리며 생산 기간은 약 30년이다.

정부는 연말까지 1차 탐사 시추에 착수할 계획이다. 1차 시추에서 개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더라도 최소 5차에 걸쳐 부존 가능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심해 해저에 1개의 시추 구멍을 뚫는 데는 약 1천억원이 든다. 개발 과정에서의 투자 비용은 정부의 재정 지원과 석유공사의 외국투자 수익금, 외국 메이저기업의 투자 유치를 통해 조달할 방침이다.

심해에 깊은 구멍을 뚫는 시추는 전문 장비와 기술력이 필요해 미국·유럽 등 글로벌 전문기업에 맡겨질 전망이다. 다만 이후 유전·가스전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 국내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시추를 해봐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어서 (시추) 과정에서 관계부처, 국회와 협의해 최대한 (정부가)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석유공사는 동해 천해에서 총 11공 탐사정 시추 끝에 국내 최초로 상업적 가스를 발견, 95번째 산유국이 됐다. 석유공사는 아직 탐사가 시행되지 않은 지역에 대해서도 평가를 통해 추가 유망 구조를 도출할 예정이다.

정부의 탐사 실시 지역은 전체 광권의 약 3분의 1가량으로, 미탐사 지역이 남아 있다. 지난해 탐사 면적은 1천900㎡였으며, 정부는 지속적인 탐사·분석을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개발 성공하면 에너지 자립 넘어 수출 가능성도

이번 발표로 명목상 산유국을 넘어 한국의 오랜 꿈인 실질적 산유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의 97∼98%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로, 특히 원유는 수입 에너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만큼 동해 심해 석유·가스 개발이 실제로 이뤄지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안정되면서 국내 산업 기반이 공고해지고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는 등 국가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의 통계를 인용한 한국석유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가채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베네수엘라로, 3천38억배럴의 매장량을 나타냈다. 가채 매장량이란 기술적으로 시추할 수 있는 석유 규모를 말한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 점유율은 17.5%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6분의 1 이상을 베네수엘라가 가진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2천976억배럴(17.2%)로 베네수엘라에 이어 매장량 2위다.

이들 대표적 산유국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치이지만 만약 영일만 앞바다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확인되면 한국은 브라질(127억배럴)을 누르고 15위의 석유 매장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또한 13위인 중국(262억배럴)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석유 매장량을 확보하게 된다. 다만 시추 기술력의 차이로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 순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이번 자료 조사 결과만으로 석유·가스 개발이 현실화한 것처럼 단정하는 것은 이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개발 성공률에 대해 "저희가 받은 자료에는 20% 정도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석유·가스 개발 사업 분야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여전히 실패할 확률이 80%에 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은 1998년 울산 앞바다에서 가스전을 발견하고 시추 등 과정을 거쳐 '동해 가스전'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당시도 큰 기대가 이어졌으나,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약 4천500만배럴의 가스를 생산하고 가스 고갈로 문을 닫았다. 약 17년 동안 매출은 2조6천억원, 순이익은 1조4천억원에 그쳐 개발 초기의 큰 기대에는 못 미쳤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제 탐사 시추를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추후 절차를 보면서 차분히 기다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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