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하 국힘)은 대통령 선거 패배 후 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먼저 혁신 깃발을 올렸다. 그리고 안철수 혁신위원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다음으로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선언하며 세 번째 주자로 나섰다. 쉼 없이 혁신을 추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국힘의 혁신은 말 뿐이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물으며 지도부 총사퇴, 공천 혁신, 기득권 세력 퇴장을 요구했다. 급진적이었지만 문제의식은 정확했고, 진정성도 있었다. 하지만 당내 주류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는 '개인 정치', '분열 조장'이라는 딱지를 받고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졌다.
안철수 혁신위원장은 실용 보수, 정책 정당화, 외연 확장이라는 노선을 제시했다. 그리고 누군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정확히 져야 한다고 했다. 기득권 구조에 대한 체질 개선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전권을 주겠다'라는 지도부의 말이 지켜질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자진해서 혁신위원장을 던져버렸다.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비교적 절차 중심의 접근을 택하고 있는 것 같다. 전 당원 투표 확대, 당헌·당규 개정 등 당원 중심 정당 운영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반성과 사과를 당헌에 명문화하자는 제안은 상징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인적 쇄신과 권력구조 혁신에는 구체적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지도부가 그의 제안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 그가 얼마나 자율성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이 세 가지 제안은 혁신의 방향성, 강도, 실행 전략, 정치적 맥락에서 조금씩 서로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으나 이들이 처한 상황은 같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도부는 패배의 책임을 지지 않고, 주류 세력은 권한을 놓지 않는다. 패배는 있었으나 반성은 없고, 변화의 의지는 더더욱 없다. 당의 권력구조는 그대로이고, 혁신 요구는 번번이 기득권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모든 혁신안이 실권을 건드리는 순간 무력화되고 있다. 국힘은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실은 변화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국힘의 혁신 동력이 당 지도부나 주류 정치 엘리트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국힘의 진정한 혁신은 아래로부터, 당원의 손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원은 정당의 정통성과 생존 가능성을 보증하는 실질적 주권자다. 지금 국힘에 필요한 것은 당원이 참여하고 결정하는 민주적 시스템이다.
혁신안을 당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만들고 그것을 전당원 투표에 부치고, 공천 원칙을 당원의 뜻으로 수립하고, 지도부조차 당원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실질적 당원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힘이 보수 정당으로서 다시 설 수 있는 길은, 당원이 나서 기득권을 걷어차고 직접 혁신의 주체로 등장하는 것이다. 국힘 혁신의 유일한 동력은 당원의 힘이다. 당원이 깨어나고, 조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혁신은 누군가의 호의로 주어지지 않는다. 혁신은 주권자 손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당원이 힘으로 혁신을 보여줄 차례다.
당원은 어떻게 정당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그저 '당원이 중요하다'고 선언하는 것 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원이 자기 권한을 확인하고, 집단적 목소리를 내며, 혁신안을 만들어가는 정치 주체로 나서지 않는다면, 당원 주권은 공허한 이상에 불과하다. 당원들이 행동해야 한다.
21세기 초반부터, 우리나라의 모든 정당은 '민주적 대중정당' 노선을 추구해 왔다. 제왕적 총재 체제, 명망가 중심의 간부정당 체제를 해체하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당원들에게 중요한 결정 권한을 주는 대중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당 권력구조를 당원 중심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치의식과 참여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으며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당원의 존재와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 비추어 보면 국힘은 민주적 정당도 아니고 대중정당도 아니다. 오로지 윤석열과 몇몇 과두세력에 의해 움직이는 패거리 정당이 되었다. 이를 바로 잡는 것이 국힘 혁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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