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스타트업 '릴리커버' 안선희 대표 "年 대구-서울 500번 왕복, 47억 투자 유치"

피부 AI 진단, 화장품 즉석 조제…시장 무시? 헝그리 정신으로 버텨
엑셀러레이터·캐피탈 수도권 집중…초기 자본·네트워크 뒷받침 절실

2016년 창업해 올해 9년차를 맞는
2016년 창업해 올해 9년차를 맞는 '릴리커버'의 안선희 대표. 뷰티테크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릴리커버는 피부와 두피를 AI와 로봇을 통해 진단하고 맞춤형 화장품을 즉석에서 조제하는 혁신적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다.

대구 스타트업이 10년 이상 살아남기란 기적에 가깝다. 스타트업 창업가는 매 순간 '포기하지 않을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2016년 창업해 올해 9년차를 맞는 '릴리커버' 안선희(47) 대표의 성장기는 창업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뷰티테크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릴리커버는 피부와 두피를 AI와 로봇을 통해 진단하고 맞춤형 화장품을 즉석에서 조제하는 혁신적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다.

◆모두가 외면한 '듣보잡' 스타트업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 연구원을 거쳐 경북대병원에서 10년간 화상치료 분야의 임상 의료기기 개발 업무 등을 맡았던 안 대표는 39세에 처음 창업에 나섰다. 그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데 신발이 없어 머리카락으로 신을 지어 길을 떠나는 심정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힘든 길인지 몰랐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창업에 나섰지만 초기에는 바이어 상담회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털어놨다.

처음 회사를 꾸려 나갔을 때는 사람과 돈이 늘 부족했다. 좋은 사람을 뽑고 싶어도 이른바 '듣보잡' 스타트업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학부와 석사 과정을 함께한 대학 후배들과 의기투합해서 회사를 꾸려갔으나 혼란스러운 초기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회사를 그만뒀다. 안 대표는 "창업 3년차였던 2019년에는 직원 4~5명 한꺼번에 나가버린 일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초기에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 현재 릴리커버는 25명의 인력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맡으며 조직 체계가 한층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스타트업계는 초기 투자자를 '3F'라고 부른다. Family(가족), Friends(친구), Fools(바보들)를 의미한다. 그만큼 투자금을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릴리커버는 초기 투자자 덕분에 사업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창업은 창업자 혼자 잘나서 되는 일이 아니다. 네트워크와 경험, 초기 자본,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한 해에 서울과 대구를 500번 이상 오가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창업 초기에는 같은 날 서울에 2번 간 적도 있다. 오전에 서울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에 대구에 갔다가 다시 서울 일정을 소화하러 가는 식이다. 그는 "투자자를 비롯한 모든 기회가 서울에 많다. 실제 서울에 오라는 제안이 많았지만 고향인 대구에 좋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버텼다"고 회상했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엑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탈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창업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에 444개의 엑셀러레이터(AC)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인 240개가 서울에 있다. 대구는 8개(1.8%)에 불과하고, 경북은 9개(2%)로 소수에 그쳤다.

스타트업레시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에 286개의 벤처캐피탈(VC)이 존재하며, 이 중 81.1%인 232개사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대구는 2곳(0.7%), 경북은 3곳(1.0%)로 극소수의 벤처캐피탈만 존재한다.

◆벽면 가득 표창…실력으로 버텼다

릴리커버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각종 표창장과 상장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실력과 기술력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흔적이다. 초기 창업자는 별다른 기반도 없이 오로지 실적으로만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해야 또 다른 기회를 맞을 수 있다.

릴리커버는 2021년에 키오스크 형태의 무인 화장품 제조 로봇 '애니마'를 기반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추구하는 스마트팩토리를 과감하게 선보인 덕분에 47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기술력과 사업 모델의 차별성을 증명한 결정적 계기였다.

안 대표는 일반적인 기업과 스타트업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헝그리 정신, 명확한 목표 의식,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배 창업자들에게 기존 시장과의 차별점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대표는 "사업을 하려면 나만의 뾰족한 포인트, 자신만의 돋보이는 특장점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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