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전창훈] 스포츠의 새로운 상수(常數)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최근 '경기장이 불타고 있다'. 다소 과한 표현이지만, 야외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나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에겐 드세지는 폭염이 이처럼 위협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KBO는 지난 8일 폭염 대비책을 긴급 발표했다. 구장마다 폭염 정도에 따라 4분인 클리닝타임을 최대 10분까지 연장하는 한편 선수단과 관객을 위해 충분한 냉방기기를 갖추고 쉼터 등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이번 대책에 경기 시간도 한낮 무더위를 피해 늦추는 방안이 포함됐다.

지난해 KBO 리그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폭염으로 4경기가 취소되는가 하면 관중들 중에 온열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KBO 입장에서 예년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 폭염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프로축구 K리그에서도 기온이 32℃ 이상이면 전·후반 한 차례씩 '쿨링 브레이크'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잠시나마 선수들이 열기를 피해 수분을 섭취하며 숨을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다.

외국도 '폭염과의 전쟁'은 매한가지다. 특히 지난 13일(현지시간) 끝난 FIFA 클럽 월드컵은 개최지인 미국의 기록적인 폭염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났다. '열돔 현상'(고기압이 정체되면서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현상)으로 체감 온도가 45도 이상 치솟으면서 일부 선수는 감독에게 교체를 요청하는가 하면, 후보 선수들은 벤치를 떠나 라커 룸에서 경기를 시청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축구계는 벌써부터 내년 이맘때 열릴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우려하고 있으며, 일각에선 경기 킥오프 시간을 오전 9시로 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2025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는 무더위에 지친 선수가 기권하고 관중이 탈진하는 일도 발생하는 등 전 세계 곳곳의 경기장이 폭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불타는 경기장'(Rings of Fire)은 사실 지난해 나온 보고서의 제목이다.

지난해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및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 스포츠 선수들이 기후 과학자, 생리학자 등과 함께 이 보고서를 발표했다. 요지는 폭염에서 경쟁하는 운동선수의 경우 화상을 비롯해 열경련, 열사병 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으며 심하면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폭염을 피하기 위한 일정 조정 등 선수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일련의 조치를 제안했다.

지구온난화는 이제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다. 폭염으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는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기후학자들의 중론이다.

경기 시간 조정이나 '쿨링 브레이크' 같은 단기적인 처방을 넘어 리그 전체 일정을 재검토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혹서기에는 잠시 리그를 멈추는 '여름 휴식기' 도입이나 아예 봄에 개막해 여름 전에 시즌을 마치는 '춘추제' 전환도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관중석 지붕 설치 확대 ▷통풍 구조 개선 ▷경기장 주변 녹지공간 조성 등 선수와 관중을 위한 경기장 인프라 개선도 뒤따라야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 주최 기관이나 단체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사)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지난 4일 "혹서기 환경에서 선수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경기에 나서고 있다"면서 "폭염 대책은 경기력 이전에 생존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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