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뜨거워도, 차가워도 좋다…"커피대신 차(茶) 마십니다"

푸른차문화연구원 티클래스, 백차·녹차·홍차 등 6대차 시음
공정 방법 달라 향·맛·활용도 제각각…찻물 우리며 내면 집중
최근 전세계적으로 말차 유행, 건강한 이미지 트렌드와 맞아
시장규모 10%↑·급증한 수요에 공급난도…국내산 수출 주목

해야 할 일은 늘 많고, 전해야 할 소식은 끝이 없다. 뉴스와 알림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일에 진득하게 집중하는 일은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 됐다. 마음은 늘 분주하고, 머릿속은 수많은 정보로 가득하다. 어느새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조차 잊은 채, 멈추지 않는 일상에 떠밀려 살고 있진 않았나.

이번 시리즈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오히려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시간이 절실하다는 생각.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다도, 서예, 꽃꽂이에는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의 힘이 담겨있다. 느리지만 차분하게 흐르는 나를 향한 시간들이 있다. 2주에 한 번씩 세 편으로 나눠 주말&팀 기자들이 직접 수업을 체험하며 마음을 다듬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첫 시작은 따뜻한 찻물에 몸과 마음을 씻는 시간 '다도'다.

대구 수성구 삼덕동에 위치한 푸른차문화연구원. 티클래스를 신청하면 푸르른 녹음을 앞에 두고 차를 시음할 수 있다. 최현정 기자
대구 수성구 삼덕동에 위치한 푸른차문화연구원. 티클래스를 신청하면 푸르른 녹음을 앞에 두고 차를 시음할 수 있다. 최현정 기자

◆이열치열, 뜨거운 차는 곧 보약

익숙하면서도 낯선 '차'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주말& 기자들은 대구 수성구 삼덕동에 위치한 푸른차문화연구원에 티클래스를 예약하고 다녀왔다. 총 4층 규모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은은한 말린 찻잎의 향이 먼저 반겨준다. 티클래스가 열리는 강의실 창밖으로는 푸르른 녹음이 보였고, 실내에는 뽀얀 도자기 찻잔과 정갈한 찻잎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사실 이곳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차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공간이다. 다도 클래스와 같은 교육부터 직접 하동에서 찻잎을 사서 차를 만들고 케이터링까지 하는 마을기업이다. 다도 정규반 수강생만 일주일에 100여 명이나 된다고.

다기와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과가 놓여져있다. 가지런히 놓여진 찻잎은 왼쪽부터 백차, 녹차, 홍차, 청차, 흑차.
다기와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과가 놓여져있다. 가지런히 놓여진 찻잎은 왼쪽부터 백차, 녹차, 홍차, 청차, 흑차.

이날 수업에서는 하나의 차 나무에서 생산될 수 있는 6가지 차 종류에 관한 설명을 듣고 맛볼 수 있었다. 흔히 '6대 차'라 불리며 공정 방법에 따른 산화·발효 정도에 따라 백차, 녹차, 홍차, 청차, 흑차, 황차로 분류한다. 본래 차라고 부르는 것들은 이 여섯 가지 종류의 차만 취급하고, 이 외에 옥수수차, 보리차와 같은 곡물·채소차 등은 '대용차'로 구분한다.

시음에 앞서, 강사님이 기자들의 식사 여부를 확인했다. 빈속에 차를 먹게 되면 위에 부담이 가기 때문에 차는 반드시 식사 후에 먹으라고 권했다.

백차
백차

첫 번째 '백차'는 제조법이 가장 간단한 차로, 찻잎을 덖거나 비비지 않고 자연건조해 만든 차다. 설명을 들은 후 시음을 해서일까. 부드럽고 산뜻해서 입문하기 좋은 맛이었다. '3년 묵은 백차는 약, 7년 묵은 백차는 보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백차를 약처럼 마셨다. 산화 과정 없이 완성된 차라 위에 부담이 적고, 열을 내려주는 찬 성질로 여름에 마시기 좋은 차다.

녹차
녹차
홍차
홍차

다음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두 차를 마셔봤다. '녹차'는 찻잎을 덖거나 쪄 뜨거운 열을 가한 후 비비고 건조한 차다. 특히 24절기 중 곡우 전에 딴 잎을 우전이라 하는데 이때 찻잎이 음식의 풍미를 높여주는 아미노산이 많아 높은 등급으로 분류된다. '홍차'는 찻잎을 비벼서 잎의 색이 갈색으로 산화된 것을 건조한 차다. 동양에선 찻물이 붉어 홍차라 부르지만, 서양에선 찻잎이 검어 '블랙티'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홍차는 우유와 단맛을 더해 마시는 '밀크티'의 재료로도 활용된다.

청차
청차

네 번째 '청차'는 흔히들 아는 '우롱차'다. 청차의 경우 찻잎을 판에 넣고 흔들고 멈추는 작업을 12시간 반복한 후 가열하는 어려운 작업의 차라 고급차에 속한다. 제다 과정에서 찻잎이 부딪힐 때 가장자리가 산화되는 데 이때의 좋은 향을 활용하는 차로, 그래서인지 뒷맛에 살짝 남는 고소함이 인상적이었다.

흑차
흑차

다섯 번째 '흑차'는 대표적으로 중국의 '보이차'가 있다. 찻잎에 끓인 물을 뿌려 안전하게 숙성시킨 차다. 원반 모양으로 다져 발효시키기도 한다. 숙성·발효를 거쳐 확실히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차였다. 마지막 '황차'는 기술이 많이 드는데 비해 수요가 적어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차다. 이날 시음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푸른차문화연구원에는 다도와 함께 명상 수업도 진행되고 있다.
푸른차문화연구원에는 다도와 함께 명상 수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김태인 푸른차문화연구원 실장은 대구에 차를 오래 마신 사람들이 많고, 모임이 활성화된 영향으로 전국에서도 차단체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40년 전통을 자랑하며 전국에서 찾는 다기 전문점 청백원도 중구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도 수업에 젊은 부부, 차의 고장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도 이곳을 찾는다고. 그러면서 매해 열리던 대구 차박람회가 올해는 열리지 않아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차는 혼자 마시는 것도 좋은데, 같이 마시는 것도 좋다. 균등하게 잔을 나누는 과정에서 심적으로 다도의 효과를 느껴보길 바란다. 발걸음해 문 두드리기가 어렵지만, 하게 되면 재밌는 삶의 취미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다"

이날 티클래스를 수강한 김 기자는 "2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차를 마주하는 시간 동안 일상과 동떨어진 새로운 공간에 들어온듯 했다"라며 "물을 끓이고 찻물이 우러나는 것을 기다리고, 향과 맛에 집중하면서 일상에서 소외된 내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본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인스타그램에선 #matcha(말차) 태그로 900만 건이 넘는 게시물이 공유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선 #matcha(말차) 태그로 900만 건이 넘는 게시물이 공유되고 있다

◆이냉치냉, 말차음료 쿨한 유행

한국에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말이 있을 만큼 차가운 음료를 선호하는 민족이다. 이러한 취향을 반영해 최근 몇 년 새 차는 뜨겁기만 한 음료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원한 말차 음료는 커피를 대체할 카페인 대체재이자, 건강 음료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녹색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전통적으로 일본 다도에서 사용되는 말차는 녹차와 같은 찻잎을 사용하지만, 재배 방식과 제조 공정에서 차이가 있다. 햇빛을 차단한 상태로 재배한 어린 찻잎을 찌고 말린 뒤, 맷돌로 곱게 갈아 가루 형태로 만든다. 그늘에서 키워 떫은맛은 덜하고, 찻잎 전체를 가루째 섭취하기 때문에 카페인, 클로로필, 항산화 성분 등의 함량이 높고 풍미도 진하다.

가루 형태의 말차는 특유의 떫은 맛이 덜하고 풍미가 진해 여러 레시피 재료로 활용된다. 클립아트코리아
가루 형태의 말차는 특유의 떫은 맛이 덜하고 풍미가 진해 여러 레시피 재료로 활용된다. 클립아트코리아

이러한 말차 유행은 건강한 일상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웰니스' 트렌드와도 맞닿아있다. 건강한 음식과 생활 습관을 통해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이들이 말차의 자연스러운 건강함에 반응한 것. 해시태그 #matcha(말차)는 틱톡에서만 180만 개 이상 검색됐으며, 인스타그램에선 해당 태그로 900만 건이 넘는 게시물이 공유되고 있다. 음료를 넘어 디저트·요리에서도 재료로 활용되며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말차를 즐겨마신다고 밝힌 영국 유명 가수 두아리파. 말차 라떼에 코코넛 밀크를 더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기도 했다. SNS 캡쳐
말차를 즐겨마신다고 밝힌 영국 유명 가수 두아리파. 말차 라떼에 코코넛 밀크를 더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기도 했다. SNS 캡쳐
로꼬
로꼬 '말차 하이'(Matcha High) 앨범 커버

여기에 해외 가수 두아리파, 배우 젠데이아, 모델 카일리 제너, 국내에선 블랙핑크 제니 등 유명 스타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 말차를 꼽은 것도 한몫했다. 말차 라테를 즐겨 마신다는 국내 래퍼 로꼬는 지난달 신곡 제목을 '말차 하이'(Matcha High)로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더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말차 시장은 지난해 38억천만 달러(약 5조2천100억원)에서 올해 42억4천만 달러(약 5조7천500억원)로 약 10.3%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2029년에는 64억 달러(약 8조9천4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급증한 수요 탓에 일본산 말차 공급난이 발생하면서, 국내산 가루 녹차의 글로벌 진출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하동의 가루 녹차는 2017년부터 미국, 캐나다 등의 스타벅스에 납품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커피보다 말차음료를 즐겨마셨다는 20대 이 모씨는 "10년 전만 해도 말차 음료를 파는 카페를 찾기 어려워, 일부 메뉴를 취급하는 곳에서만 겨우 즐길 수 있었는데 요즘은 웬만한 카페 한두 군데만 가도 있어 대세임을 실감한다"라며 "쌉싸름하면서도 단맛이 호불호 있을 순 있겠지만 커피로는 채워지지 않는 풍성한 맛을 준다. 시각적으로도 예쁘고 건강에도 좋다보니 '말차 붐'이 언제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말차를 즐겨마신다고 밝힌 해외 유명 배우 젠데이아. 인터넷 갈무리
말차를 즐겨마신다고 밝힌 해외 유명 배우 젠데이아. 인터넷 갈무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