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시간 속 거대한 다양성의 나라
비행기가 히말라야 능선을 넘을 때, 한 나라의 국경이 아니라 세계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구름 위로 솟은 설봉들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을 품고 있었다. 그 침묵 아래 펼쳐진 땅, 인도였다.
인도는 오래전부터 신비의 나라로 불려 왔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인도는 신비 이전에 적나라한 삶의 나라였다. 하늘은 지붕이 되고, 대지는 마루가 되며, 거리와 시장은 인간 존재의 모든 장면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태어나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다투고, 병들고, 떠나는 일이 하나의 풍경처럼 이어진다. 마치 세상 전체가 거대한 해우소인 듯 인간은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이 나라는 신을 말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이야기한다. 인도는 거대한 모순의 덩어리다. 누군가에게는 혼돈의 땅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샘물이다.
인도의 거리에는 경계가 없다. 성스러운 소와 누더기를 걸친 수행자, 최신 스마트폰을 든 청년이 같은 공간에서 뒤섞인다. 생로병사와 배설, 그리고 기도까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도의 시간은 수직과 수평으로 동시에 흐른다. 힌두교와 불교의 발상지답게 수천 년 전 베다(Veda) 경전을 외우며 갠지스강에서 목욕 재계를 하는 이들의 눈빛은 여전히 고요하다. 인도에서 종교는 신전의 벽 안에 머물지 않는다. 시장의 소음 속에도, 기차역 플랫폼 위에도, 새벽 강가의 물안개 속에도 스며 있다.
인도인들의 눈망울은 유난히 맑다.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삶 속에서도 그들이 비교적 태평한 얼굴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삶이'나'의 의지로만 통제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신의 뜻이나 업(Karma)에 맡기며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는 늘 미래를 걱정하며 사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인도는 완결된 문장이 아니다. 쉼표와 여백, 때로는 물음표로 이어지는 거대한 서사다. 여행자는 이제 그 쉼표 사이를 걷기 시작한다.
◆수천 년의 권력과 시장의 아우성의 도시 '델리'
인도라는 거대한 서사시의 첫 장을 넘기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이 있다. 바로 수도 델리(Delhi)다.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후텁지근한 공기와 끊이지 않는 경적 소리가 이곳이 맨몸의 나라임을 선언한다. 여행자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시간 속으로 들어선다.
델리의 진면목은 화려한 빌딩 숲이 아니라 미로처럼 얽힌 올드 델리의 골목에 있다. 대형 시장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향신료 냄새와 갓 튀긴 자레비(Jalebi)의 달콤한 향, 사람들의 땀 냄새가 뒤섞여 공기를 채운다. 이 도시는 처음부터 솔직하다. 숨기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골목길에서는 릭샤와 오토바이, 소달구지와 보따리를 멘 상인들이 조금의 틈도 없이 엉켜 흐른다.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혼잡이겠지만, 그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삶의 리듬이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붉은 성벽의 레드 포트가 위용을 드러낸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무굴 제국의 황제들이 머물던 궁성이다.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에 오르면 올드 델리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이슬람의 기도 소리 아잔(Azan)이 울려 퍼지며, 인도가 왜 종교의 나라라 불리는지 실감하게 한다.
델리 중심부의 인도문(India Gate)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역사와 희생을 상징하는 문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아치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과 넓게 펼쳐진 길을 바라보면 이곳이 인도인들의 기억과 자부심이 깃든 공간임을 알게 된다.
구루드와라 방글라 사힙(Gurudwara Bangla Sahib)은 시크교의 중요한 성지다. 황금빛 돔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사원의 모습이 물에 비쳐 평화로운 풍경을 만든다. 특히 누구에게나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은 종교와 국적을 넘어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보여준다.
델리 남쪽에는 높이 73m의 쿠투브 미나르(Qutub Minar)가 우뚝 서 있다. 델리 술탄 왕조의 승리를 기념해 세운 탑이다. 풍화된 조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평범하지만 깊은 진리를 떠올리게 된다.
이곳 사람들은 과거를 박제하지 않는다. 유적지 돌 틈에 기대어 잠을 자고, 고대 사원 앞에서 오늘 하루의 장사를 기원한다. 델리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도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살아가는 도시다.
◆델리의 혈관, 릭샤에서 메트로까지
델리의 길 위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 경적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나 여기 있다'는 존재의 신호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묘한 질서가 있다.
올드 델리의 골목을 누비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릭샤다.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는 사이클 릭샤는 좁은 골목을 통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탈것이다. 땀에 젖은 기사의 등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델리의 풍경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노란색과 초록색이 대비되는 오토 릭샤, 이른바 '툭툭(Tuk-tuk)'도 델리의 상징이다. 미터기 대신 흥정이 오가는 이 과정은 여행자에게 인도의 첫 관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델리 메트로(Metro)다. 2002년 개통 이후 델리의 일상을 바꿔 놓은 현대 문명의 상징이다. 레드, 옐로, 블루, 핑크 등 10여 개 노선이 거미줄처럼 도시 전역을 연결하며 총연장은 350km가 넘는다. 현재도 확장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지하철은 인도를 미래로 실어 나른다. 혼란스러운 도시 속에서 질서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역마다 영어와 힌디어 안내 방송이 흐르고, 여성 전용칸과 보안 검색대도 마련되어 있다. 메트로는 인도인들의 자부심이다.
러시아워의 환승역 라지브 초크(Rajiv Chowk)나 카슈미르 게이트(Kashmere Gate)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열차 문이 열리는 순간 사람들은 거대한 파도처럼 움직인다. 그 안에는 목적지를 향한 치열한 삶의 에너지가 흐른다.
그러나 역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오면 다시 릭샤 기사와 길 한복판에 누워 있는 소를 마주하게 된다. 이 극명한 대비야말로 인도의 진짜 모습이다. 최첨단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가족의 안녕을 빈다. 델리의 교통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울려 퍼지는 삶의 교향곡이다.
이제 여행자는 라다크와 카슈미르로 향하는 관문, 델리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인도의 기차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다. 한 나라의 인생사가 뒤섞이는 거대한 광장이다.
다음 목적지는 라다크.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이 만나는 고산 사막, 총성과 침묵이 공존하는 국경의 땅이다. 그 높은 고도에서 인간은 더욱 겸손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 카슈미르. 위험과 평온이 한 화면에 겹쳐진 풍경 속으로 여행자는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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