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성의 헬기 이야기] 드론과 헬기, 미래 전장의 하늘은 누구의 것인가?
현대 전쟁은 초단 기간에 승패가 갈리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미군이 최근 수행한 '에픽 퓨리(Epic Fury)' 작전에서, 작전 개시 첫 100시간 만에 2,000여 개 군사 목표가 타격되고 군함 30여 척이 격침됐다. 위성과 정찰 자산,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휘체계, 정밀 유도무기가 한 몸처럼 작동한 결과다. 위성과 드론, 레이더 등 다양한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목표를 식별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미사일과 드론, 전투기가 거의 동시에 정밀 타격을 가하는 방식이다. 소요 시간은 몇 분 수준이다. 그러나 화려한 연출 뒤에는 냉혹한 계산서가 붙는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첫 100시간 동안 비용이 37억 달러(5조 4,79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밀유도미사일과 방공요격탄 등 첨단 탄약 비용만 31억 달러(4조 5,762억 원) 수준이다. 불과 며칠 사이 수조 원이 사라지는 전장이 된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먼저 바닥나는 것은 병력이 아니라 예산이다. 미국이 단기전을 선호하고, 압도적 군사력을 짧은 기간에 집중해 전쟁의 흐름을 결정짓는 이유다. 1991년 걸프전의 대규모 공습 전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이러한 환경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는 작은 무인기, 드론이다. 값비싼 전투기와 헬기만이 하늘을 지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론은 정찰과 공격 임무에서 예상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하며 전쟁 양식을 바꾸고 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손실 부담도 적기 때문이다. 수천만 원짜리 드론이 수십억 원짜리 장비를 위협하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싸고 많이'라는 새로운 계산법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다고 미래 전장의 하늘을 드론이 일방적으로 지배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드론은 전파·GPS 교란에 취약하고, 탑재 중량과 기상 조건의 제약이 크다. 복잡한 전장 상황에서 인간 조종사처럼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도 아직 쉽지 않다. 반대로 헬기는 기체 가격이 높고 격추될 경우 인명과 장비 손실이 막대하며, 저고도로 접근해야 하는 임무 특성상 대공무기와 드론 공격에 취약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헬기가 갖는 강점은 분명하다. 병력과 장비를 빠르게 이동시키고, 부상자를 후송하며, 지휘관이 탑승해 이동 지휘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산악과 도시가 뒤섞인 복잡한 지형에서 숙련된 조종사의 판단과 기술은 여전히 전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요소다.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직접 판단하면서 유연하게 기동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헬기의 강점이다. 결국 쟁점은 "드론이냐, 헬기냐"의 선택이 아니다. 미래 전장에서는 두 수단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야 한다. 드론이 먼저 전장에 들어가 적의 위치와 위협을 탐지하고, 필요하면 선제공격을 수행해 통로를 연다. 그 뒤를 헬기가 따라가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고, 부상자를 후송하며, 지휘관이 현장을 직접 확인하면서 작전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한반도 작전환경에서는 이러한 결합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는 서해와 동해의 해상 지역, 대도시와 접경 지역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 전장이다. 서해·동해 상공에서의 해상 감시·탐색구조 임무, DMZ 인근 정찰, 독도와 같은 상징적 영토의 긴급 수송과 구조 임무는 드론과 헬기의 장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한국군이 드론·헬기·지상전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교리와 운용 체계를 얼마나 준비했는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통합 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값싼 드론 몇 대를 가진 상대에게도 전략적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 현대전은 점점 더 빠르고 정밀해질수록 막대한 비용을 요구한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다양한 전력을 얼마나 지능적으로 결합하고 운용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 전장의 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특정 플랫폼이 아니다. 값싼 드론이든 고가의 헬기든, 두 수단을 어떻게 결합하고 운용하느냐를 아는 국가가 결국 하늘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하대성 전 육군헬기부대 대장, 정치학 박사
2026-03-19 12:00:00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단기 4290년(1957년) 3월 18일 월요일/3월 20일 수요일 맑음
〈strong〉3월 18일 월요일 맑은 후 흐림〈/strong〉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읍실로 왔다. 아이들은 먼저 산마루에 올라 있었다. 나는 빨리 산길을 올랐다. 아침 공기는 참 맑았다. 나의 마음이 언제나 오늘 아침 공기와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우리는 학교로 왔다. 아이들은 많이 와 있었으며 그러나 우리는 지각 하지 않았다. 오늘은 군청(郡廳)에서 일본(⽇本)을 반대한다는 목적으로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우리는 의식을 마치고 시가행진(市街⾏進)을 한 뒤 학교로 돌아왔다. 공부를 한 시간 한 후 오후에는 체조연습을 하고 종회를 마치고 집으로 빨리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공부를 시작했다. 얼마쯤 있다가 저녁을 먹고 뒷마을에 가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공부하고 일기(⽇記) 쓰고 잤다. 〈strong〉3월 20일 수요일 맑음〈/strong〉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아침 과제(課題)를 마친 후 아침 조반을 먹고 학교로 빨리 왔다. 학교에 와서 담임선생님 심부름 즉 학급일지(學級⽇誌)를 썼다. 그래서 조회(朝會)를 하지 못하였다. 공부시간이 되어 공부를 네시간을 하였는데 열심히 공부하였다. 시간을 다 마친 후 빨리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어저께 그리던 미술을 완성하고 저녁을 먹은뒤 태욱이네 집에 가서 공부하다가 집으로 와 잠을 잤다.
2026-03-19 12:00:00
[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지조 있는 조개, 꼬막
꼬막은 11월~3월이 제철이다. 겨울의 묵직한 맛을 꼬막으로 본다면 봄의 새초롬한 맛은 봄나물일 거다. 막바지 맛이 아쉬워 꼬막에 달래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보았다. '바다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꼬막과 봄나물의 비타민은 쫄깃쫄깃 아삭하게 입맛을 돋운다. 국수에 비벼 먹거나 밥에 비벼 먹어도 좋은 메뉴이다. 겨울을 떠나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중간의 적절한 맛이다. '꼬막'은 '작은 조개'를 뜻한다. '꼬'는 '꼬마', '꼬투리'처럼 작은 사물을 지칭하고, '막'은 '오두막', '움막' 등에 사용되는 말이다. 즉 꼬막은 '작은 집에 사는' 것을 지칭한다. 고문헌의 꼬막은 껍데기가 기와지붕의 부챗살마루 같다고 해서 '와룡자(瓦龍子)', 줄무늬가 기러기가 줄지어 가는 모양과 같아서 '안항조(雁行鳥)'라 하였다. 옛사람들은 기러기와 꼬막이 본래 하나라고 보았다. 찬바람을 피해 바다로 숨어 들은 기러기들이 갯벌을 뒤집어써서 딱딱한 껍데기의 꼬막이 되었다는 것이다. 꼬막을 먹으면 기러기처럼 멀리까지 날아갈 힘이 솟는다고 해서 '벌교 가서 힘자랑하지 마라' 하였다. 반면 일제강점기에 포구에서 농산물 반출하는 일본인을 벌교 사람이 패주곤 했는데, 그 주먹이 무서워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얘기가 생겼다고 전한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 의하면 전남 여자만의 목포, 하대진포 등지에서 꼬막을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육지로 둘러싸였으나 외따로 떨어져 고립된 섬, 사람들은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야 했다. 그 여자도(汝自島)를 품은 바다가 여자만(汝自灣)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만 꼬막을 최고 상품으로 치는 이유는, 그곳이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미네랄이 풍부한 찰진 갯벌이기 때문이다. 꼬막은 껍데기를 꽉 다물고 입을 열지 않아 '지조 있는 조개'로 여겼다.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는 전라도 특산물이었고, 패각에 털이 없어 제사상에 의젓하게 자리한 '제사 꼬막'이었다. 꼬막의 다른 이름은 '안다미 조개'로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라는 '안다미로'에서 따온 순우리말이다. 고조리서에는 '음식이 곧 약이다'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원리를 따른다. 꼬막 역시 약이며 음식인 '약선(藥膳)'이었다. 꼬막의 본초명은 감(蚶)이며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다. 본초강목에 '오장을 튼튼하게 하고 소화를 도우며 역기(逆氣)를 내린다'고 하였다. 현시점에서도 꼬막은 슈퍼푸드에 가깝다. 철분과 헤모글로빈이 풍부하여 빈혈 예방에 좋고, 타우린(Taurine) 성분은 간의 해독 작용을 돕는다. '꼬막' 하면, 소설 속 배경 무대가 떠오른다. 빨치산 강동식의 아내인 외서 댁은 청년단장 염상구에게 겁탈당해 아이를 갖게 된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 과정을 견뎌내기가 두려웠던 기구한 여인은 힘없는 민족의 상실감을 보여준다. 꼬막의 간간하고, 쫄깃하고, 알큰하고, 배릿한 맛은 성적 묘사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검은 뻘에서 캐낸 그것은 각자의 닳고 닳은 지문이고 끈기였다. 태백산맥문학관과 순천만을 둘러본 후 그다음으로 으레 꼬막 정식을 먹는다. 거기에 보태 꼬막의 생산지 여자만(汝自灣)을 둘러보는 기행도 의미 있으리라 본다. 춘분(春分)이다. 빛과 어둠이 정확히 반을 나누는 시점으로 이후 낮이 더 길어지기 시작한다. 달려가는 계절 앞에 줄다리기하듯 팽팽한 마음이지만 속수무책이다. 나이 든 사람 기력 쇠하는 것이 하룻밤 새 다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보기(補氣) ·보혈(補血)하는 꼬막요리로 건강을 돋울 일이다. Tip : 꼬막의 익힘은 '데치는' 정도로 해야 한다. 너무 오래 익히면 질겨지니 주의한다.
2026-03-19 12:00:00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1960년대 중반 초가을. 경산시장 장터 한쪽 빈터에 임시 공연장이 세워졌다. 해가 기울 무렵 유랑극단이 온다는 소식에 마을주민들은 하나둘 모여들었고, 천막 안에서는 노랗고 붉은 전등 불빛이 흔들렸다.'유랑 극단'이 가져온 그 천막은 그시절 어른들에게는 고단한 삶을 잊게 해주는 마법의 공간이며, 동네 아이들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철수를 비롯한 동네아이들도 해가 지기 전부터 공연장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동전 한 닢 나오지 않았다. 입장료는 철수에겐 너무 큰 돈이었다. 입구 앞까지 갔다가도 괜히 표 검사하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까 싶어 몇 번이나 돌아섰다. 공연이 시작되고 천막 안에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악단의 아코디언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이의 발걸음은 저절로 천막 뒤쪽으로 향했다.천막은 두꺼운 천이었지만 군데군데 느슨해진 틈이 있었다. 철수는 그 틈 하나를 찾아냈다. 두 손으로 천막을 살짝 벌리자 안쪽의 환한 불빛이 실처럼 새어 나왔다.철수의 눈이 그 틈 사이로 빼꼼히 들어갔다. 사회자가 "눈물없이는 볼 수없는 이수일과 심순애를 올리겠다!"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아이고…" 하는 탄식같은 소리가 나왔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또다시 그 이야기를 보고 싶어했다. 무대에는 가난한 청년 이수일이 등장했다. 허름한 양복에 낡은 구두, 그러나 마음만은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 심순애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가난은 사랑보다 더 큰 벽이었다. 이수일이 말한다. "순애야… 지금은 내가 가난하지만 반드시 성공해서 너를 행복하게 해 줄게." 심순애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돈이 없어도 괜찮아요. 당신만 있으면 돼요." 그 장면에서 객석의 아주머니들은 눈물을 훌쩍이며 손수건을 꺼냈다.〈중략〉 공연이 끝나자 무대 위의 배우 한 사람이 객석 쪽을 힐끗 보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자, 지금부터는 어른들만 보는 시간이야!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순간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고 천막 뒤 틈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철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자기들을 보고 하는 말인가 싶어 몸을 움찔했다.배우겸 약장수는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돌며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시작되는 현란한 언변으로 회충약이나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던 정체불명의 연고를 파는 시간이었다. 은상 김태연 작 '공짜 구경'에서 비록 "애들은 가라!"는 타박을 들으며 쫓겨나던 처지였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 악극단 천막은 결코 포기할 수 없던 '한 뼘의 극장'이었다.
2026-03-19 12:00:00
[과학으로 보는 세상] 운동하는 예비 아빠, 튼튼한 아들 낳는다!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처럼 운동선수 아빠에게서 운동선수인 아들이 태어나는 경우를 더러 본다. 유전자를 통해 국가대표급의 운동 재능을 물려주지 않더라도,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자녀의 신체적 체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실제로 예비 아빠의 규칙적인 운동이 미래 태어날 아들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운동 흙수저' 아빠, '운동 금수저' 자녀 얻어 시 첸 중국 난징대 교수팀은 규칙적으로 운동한 수컷 생쥐가 새롭게 얻은 체력을 수컷 자손에게 전달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DNA를 통해 유전자를 직접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운동에 의해 변형된 RNA 조각을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10월 6일 국제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게재됐다. 대부분의 유전 형질은 유전자 속 DNA를 통해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달된다. 가령, 폐활량이 큰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은 달리기에 더 유리한 식이다. 그런데 '맛있는 김치찌개 끓이는 비법'처럼 삶 속에서 경험하거나 학습한 것은 DNA에 기록되지 않는다. 대신 DNA의 화학적 포장 방식을 변화시켜 자손의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이를 후성유전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매개체로 '마이크로RNA(microRNA, miRNA)'가 주목받고 있다. 식단, 스트레스, 운동 등 생활 반경이 miRNA 구성을 바꾸면 이 변화가 정자나 난자에 전달돼 수정란의 발달과 자손의 대사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된다. 제1 저자인 신 인 중국 난징대 연구원은 "운동선수들의 자녀가 운동을 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을 것일 수도 있지만, '선수들이 쌓아온 훈련과 시간이 자녀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이번 연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정자 miRNA를 통해 배아에 운동 능력 전달 지금까지 엄마의 신체 활동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임신 전과 임신 중의 신체 활동이 후생유전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녀의 대사 건강, 인지 기능, 신체 수행력과 활동력 등을 향상시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빠의 신체 활동이 정자를 통해 자손에게 후생유전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진은 우선 수컷 생쥐에게 2주 동안 트레드밀 달리기를 시켰다. 운동한 수컷 쥐와 운동하지 않은 암컷을 교배시켜 얻은 수컷 자손은 운동하지 않은 수컷 쥐의 자손보다 더 오래 달리는 등 운동 능력이 뛰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조건도 좋아졌다. 근육량은 높고 지방량은 낮았으며, 고지방 식이에 노출되었을 때도 비만이나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낮았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가 관찰되는 것일까?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PGC-1α(감마 공동활성화 단백질 1-알파) 단백질이 증가한다. 이는 미토콘드리아를 만드는 유전자를 켜는 단백질로, 지구력과 대사력이 증가한다. 연구진은 정자와 수정란의 RNA를 분석해 운동으로 인해 증가한 10종의 miRNA를 찾아냈다. 그중에서도 'miR-148a-3p'라는 miRNA가 NCoR1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 중심 역할을 했다. 즉, 운동을 하면 PGC-1α가 증가하는 동시에 miR-148a-3p가 NCoR1를 억제하는 셈이다. 이에 배아에서 우리 몸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를 더 활발하게 돌아가게 해, 자손의 대사와 근육 기능을 향상시키게 된다. 이는 실제 운동과 유전자적 PGC-1α 활성화가 동일한 형태의 후성유전적 변화를 유발함을 의미한다. 운동으로 인한 miRNA 변화는 사람의 정자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남성 8명과 운동하지 않은 남성 24명의 정자를 수집해 분석했다. 생쥐에서 발견한 10개의 miRNA 중 7개가 운동하는 남성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타고난 '유전적 재산'이 없더라도, 아버지의 운동 습관 변화가 miRNA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연구라는 의미가 있다. 재니스 베일리 캐나다 라발대 교수는 "임신 전 아버지의 운동이 미래 세대의 건강을 개선하고, 비만, 만성질환의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평가했다. KISTI의 과학향기 권예슬 과학칼럼니스트
2026-03-19 12:00:00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12>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른 이치로 돌아간다"
2026년 1월 13일 자 뉴스에는 〈민주당, 윤석열 사형 구형에 "사필귀정…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결론"; 與, 尹 사형 구형에 "사필귀정…헌정 파괴에 준엄한 심판" 등, 사필귀정이란 말이 다수 등장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은, 〈일 사(事), 반드시 필(必), 돌아갈 귀(歸), 바를 정(正)〉으로,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른 이치로 돌아간다"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귀결되며, 잘못된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가끔 "일(事)은 반드시(必) 돌아와서(歸) 바르게 된다(正)"라는 식으로 읽는 수가 있으나 '귀정'에 대한 옳은 해석이 아니다. 사필귀정이란 사자성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주로 한국에서만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때는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의 『건재문집』(健齋文集)에, 이후 효산(曉山) 이수형(李壽瀅, 1837~1908)의 『효산집』에 보인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근대기에 걸쳐 신문・잡지나 관공문서 등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에는 '사필'이 빠진 '귀정'(歸正)이란 표현만이 『후한서』, 『진서』, 아울러 송대 조승(趙升)의 『조야유요』(朝野類要)나 명대의 『수호전』 등에 보인다. '정(正)'은 "하나(一)밖에 없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서(止) 살핀다"라는 뜻이 합해져, '성을 향해서 정복하러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정벌하다, 바로 잡으러 가다'의 '정(征)' 자와도 통하게 된다.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올바른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은 '바르다, 정당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어 - '공정'(公正), '정의'(正義)'에서 알 수 있듯이 - 공(公)이나 의(義) 자와도 결합한다. 정치의 공정성은 '올바름'에서 출발한다. 즉 대의명분을 확보해야 그 생명력을 얻는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는 "정치[政]란 바르게 한다[正]는 것"이라 대답했다. 권력의 올바름은 통치자의 사리사욕[私]이 아닌 '사회적 올바름'(=의리)이라는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요즘같이 법적 정의가 흔들리고 파당적 이권에 골몰하는 세상에서는 '공평, 공정'이란 말을 쓰기란 좀 어색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든 일이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노자』(왕필본) 79장에는 "하늘의 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을 편든다"(天道無親, 常與善人)라는 말이 있다. 사필귀정이란 도리를 시사한다. 과연 그런가. 일찍이 사마천은 이 말을 의심했다. 그는 『사기』 「백이열전」에서, 올바르게 살던 많은 사람이 화를 입는 경우를 거론하며, "천도라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天道, 是邪非邪)라고 물은 바 있다.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공자의 뛰어난 제자 안회는 가끔 쌀 뒤주가 비어 있었고,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어찌 된 셈인가?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 고기를 회 쳐서 먹으며 포악한 짓을 멋대로 저지르고 수천 명의 패거리를 모아 천하를 마구 휘젓고 다녔으나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사마천의 이러한 물음은 여전히 타당하다. 과연 사필귀정이란 말은 믿을만 한가? 각자 이렇게 물으며, 어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려 노력할 때, 좋은 세상도 화답해 오리라 본다.
2026-03-19 11:45:00
〈strong〉◆가로 풀이〈/strong〉 1. 꽃이라도 ○○○이 되면 오던 봉접도 아니 온다. 3. 닫는 말에 채질한다고 경상도까지 하루에 ○ ○○○. 5. 내 탓 네 탓 ○○ ○: 자기의 잘못을 환경의 탓으로 돌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9. ○○○ 월천꾼 즐기듯: 누구를 만나 반갑게 맞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0. 당나귀 ○○○○고 한다: 귀머거리의 판단 능력을 조롱하는 말. 12. 검은 구름에 백로 ○○○○:어떤 일을 해도 그 자취가 남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4. 겨울이 지나지 않고 ○이 오랴. 15. 노루 ○○ 막대기: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6. 굶은 ○ 부엌 들여다보듯: 치사스럽게 남의 것을 바라는 모양을 욕으로 이르는 말. 17. 닭의 부리가 될지라도 소의 ○○는 되지 마라. 19. ○○ 없는 털이 있을까: 바탕이 있어야 그 위에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 20. 닭 잡아 겪을 ○○○ ○ 잡아 겪는다. 23. 겉 다르고 ○ 다르다. 〈strong〉◆세로 풀이〈/strong〉 1. 공술 한 잔 보고 ○ ○ 간다. 2. 구 년 ○○에 볕 기다리듯: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거나 기다리는 모양. 3. 길은 ○ ○ 말은 할 탓: 같은 말이라도 하기에 따라서 상대편에게 주는 영향이 다름. 4. 광에서 ○○ ○○: 제 살림이 넉넉하고 윤택하여야 남을 동정하게 됨. 6. 노는 입에 ○○○○: 아무 하는 일 없이 그저 노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하는 것이 나음. 7. 고양이가 알 낳을 ○○○: 터무니 없는 거짓말 같은 일이라는 말. 8. 노루 꼬리가 길면 ○○○ 길까: 보잘것없는 재주를 지나치게 믿음을 비웃는 말. 11. 남의 아이 ○ ○ ○○○ 열 번 때리나 때렸다는 소리 듣기는 마찬가지다. 12. 겨울은 ○○ ○○○ 봄 그리운 줄 안다. 13. 늙은이 ○○ ○○○: 늙은이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잘 치름. 18. ○○ 쉬파리 모여들 듯: 음식을 하였을 때 사람들이 떼거리로 모여드는 모양. 21. 달이 둥글면 이지러지고 ○○이 차면 넘친다. 22. 남의 집 ○○은 쓸어나 보는데, 우리 집 ○○은 쓸어도 못 본다. ◆〈strong〉10회 정답〈/strong〉 〈응모요령〉 ▶낱말맞히기 정답 공모(이름·휴대폰 번호·주소를 반드시 기재) ①우편엽서 ②이메일: mincho@imaeil.com ▶당첨자는 지면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 ▶보내실 곳: 대구시 중구 서성로 20 매일신문 주간본부(우편번호 41933) ▶당첨자는 본지 지면 발표
2026-03-19 11:30:00
[이정식의 시대의 창]AI 시대, 청년의 첫 계단을 다시 놓아야
AI가 청년 일자리의 첫 계단을 흔들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6년 1월 청년 취업자는 전년 같은 달보다 17만 5천 명 줄었고, 청년 고용률은 43.6%로 2024년 5월 이후 21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반면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경기 둔화, 글로벌 테크 업종의 투자 위축, 고금리 장기화 등 복합 요인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심상치 않은 구조적 신호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종별 고용 통계를 보면, 20대 초반 청년 개발자 고용은 최근 2년간 뚜렷한 감소세를 보인 반면, 30대 이상 숙련 개발자 고용은 안정적이거나 소폭 증가했다. OECD·WEF 등 국제기구는 회계·법무·컨설팅·소프트웨어 개발 등 이른바 'AI 고(高)노출 직무'에서 단순·반복적인 초급 업무가 먼저 자동화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다. 이 두 흐름은 공통의 원인을 가리킨다. AI가 숙련자의 '보완재'로 기능하는 반면, 신입의 '대체재'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연공 편향적 고용 재편'이라 부를 수 있다. '직무 분리' 이론에 따르면, 자동화는 직무 전체를 대체하기보다 직무 내의 특정 단계를 먼저 흡수한다. 신입이 수행하던 초급 단계가 먼저 흡수될 때, 기업의 채용 수요는 줄지만 숙련자의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이는 기술 전환기에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이다. 일자리 통계의 단기 변동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장기 경로 효과다. 노동경제학은 경기침체기나 구조 전환기에 입직이 지연된 세대가 경기 회복 이후에도 임금과 승진 속도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현상을 '초기 경력 충격'이라 개념화한다. 첫 단추가 꿰어지지 않으면 이후의 단추를 맞추기가 훨씬 어렵다는 의미다. AI 전환기의 청년 고용 절벽이 이 충격으로 이어진다면, 현재 청년세대는 단지 취업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체의 소득 곡선과 경력 곡선이 낮아지는 구조적 불이익을 안게 된다. 현재 정부의 청년고용 대책은 구직활동 장려금, 직업훈련 확대, 취업 매칭 서비스 등 공급 측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청년의 의욕이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첫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가 마른 시장에서 공급만 늘리는 것은 물이 없는 강에 배를 띄우라는 격이다. 그렇다고 AI 도입을 억제하면 생산성 경쟁에서 뒤처지고, 결국 더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혁신의 속도가 아니라 그 충격을 흡수할 제도의 설계다. KDI는 AI 확산이 과도한 자동화와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하며, 사회안전망 강화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다만 '유연성'이 언제나 해고 용이화로 오해되는 현실에서, 진정한 유연성은 해고의 편의가 아니라 진입 기회의 다양성—단기 프로젝트 채용, 직무 기반 수습 경로, 공공-민간 연계 수련제 등—에서 찾아야 한다. AI 도입 기업에 대한 청년 신규 채용 유지 인센티브를 제도화하고, 직업훈련 체계를 '경력 미보유자 우선' 원칙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AI 고용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여 분기별로 업종·연령·직무 수준별 고용 변동을 AI 노출도와 교차 분석하여 공개하고, 특정 임계치에 도달하면 집중 지원 프로그램이 자동 발동되는 정책 트리거 연계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또 AI가 창출하는 신규 직무를 공식 직무로 새롭게 정의하고, 청년이 먼저 진입할 수 있도록 교육과 채용 체계를 선제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시각을 바꿀 때다. 신입 채용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바라보지 않으면, 3~5년 후 기업은 후속 인재 풀을 잃게 된다. 숙련자 중심으로 기술의 이익이 집중되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역량 격차와 소득 격차는 장기 고착화되고 '디지털 불평등'이 '세대 불평등'으로 번진다. 정부는 제도를 설계하고, 기업은 채용의 문을 열고, 사회는 그 첫걸음을 함께 받쳐야 한다. 청년이 AI 시대에 공정하게 설 수 있는 첫 계단을 놓아야 할 때다.
2026-03-19 11:30:00
가톨릭 사제인 상현은 헌신적인 봉사와 도덕적인 삶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 이면에는 신앙에 대한 깊은 회의와 의문을 품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그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더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슬픔과 자기 회의에 시달리다 치명적인 바이러스 백신 개발 실험에 참여한다. 실험은 실패하고 모든 자원자들이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사망하지만, 상현만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유일하게 완치된다. 그의 신도들은 그를 기적의 치유자로 칭송하며 떼를 지어 몰려들기 시작하고, 이 소식은 그의 어린 시절 친구인 강우와 그의 가족에게까지 퍼져나간다. 강우는 상현을 마작 모임에 초대하고, 상현은 강우의 아내 태주를 만나 연모의 감정을 품는다. 그리고 상현은 다시 병이 재발하여 햇빛을 볼 수 없는 흡혈귀로 깨어난다. 그는 불멸의 삶을 얻은 듯하지만, 사람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존재의 조건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상현은 태주와의 만남을 통해 평생 도망쳐왔던 강렬한 육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라시오 키로가'의 〈내 손으로 만든 지옥〉에서 서술된 문장이 떠오른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려면 비정상적인 삶을 살면서 쾌락에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족하지요. 기이한 방식으로 쾌락을 얻을수록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두 사람은 그 즉시 하나가 되기 마련입니다. 단둘이 꾸민 낙원에서 행복에 취해 살기 위해 다른 생각은 일절 안 할 테니까요." 상현이 구원의 갈증 안에서 시달리던 상상력은 하늘에서 꽃비처럼 흩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염되고 질척거리며 후끈거리는 지하에서 부화하여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상현에게 진정한 불안은 죽은 뒤 천국의 문에 대한 확신보다는, 정말로 살아있었던가 하는 불확실성에 있기 때문이었다. 구원은 안정적인 삶을 담보하면서 존재를 포기하는 일이며, 기약 없는 신적 사랑은 매력 없는 친절한 얼굴이다. 명확한 답이 없는 구원은 결국 닫힌 문과 같다. 닫힌 문에 갇혀서 창백해진 사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를 뿐이다. 성직자와 신도들은 평범한 일상의 굴레에 빠지고, 체념하면서 늙어가고, 신앙과 믿음 사이에 지켜야 할 임무라는 늪에 빠져서, 생이 주는 열정을 하나씩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이미 늙어버리고, 무료한 운명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육체는, 혹시나 일전에 경험했었던 쾌락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혹은 몰래 갈망했으나 위로받지 못했던 결핍 때문에 폭식의 대상을 갈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연이 갑자기 맺어준 연인과 온갖 난잡한 행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만든 망상의 세계에 둘러싸여 안온하게 쾌락을 나눈다. 마치 새가 지저귀고, 시냇물이 흐르듯이. 더 이상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 없는 완벽한 타락을 함께 학습하면서. 누구도 상대방을 혼미스럽게 취하도록 마시고 먹어본 적이 없다면,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제 불가능의 욕망으로 연인의 몸을 복종시키지 않았다면, 그건 진정 사랑한 게 아니지 않을까. 비밀과 탈선을 함께 공모하며 황홀경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광기의 열정이고, 금지된 사랑으로 가는 무한한 도취이다. 지금 너의 혀를 타고 내려오는 비릿하고 더운 피가 한없이 달콤하다. 그 짜릿한 감미로움이 나의 갈증을 영원토록 목마르게 한다.
2026-03-19 11:30:00
◆대구시립교향악단 체임버 시리즈Ⅰ. 프랑스 목관의 흐름 3월 25일 오후 7시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 입장료 무료 문의 053-430-7765 대구시립교향악단의 단원들이 고품격 실내악을 들려주는 '체임버 시리즈'의 무대다. 셴유칭(플루트), 최규연(오보에), 이성규(클라리넷), 윤주훈(바순), 정승원(피아노)이 참여해 생상스의 '타란텔라, Op.6', 풀랑크의 '오보에,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3중주, FP 43', 프랑세의 '목관 4중주' 등 프랑스 작곡가의 목관 중심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주재범 사진전 '존재의 형태(Shape of Being)' 2월 21일(토)~3월 28일(토) 사진 전문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053-766-3570 사진작가 주재범의 사진 속 식물들은 말라가면서도 흔들리고, 노래하듯 유려한 선을 그린다. 가녀린 형상과 자연스럽게 드리워진 선들은 인위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를 드러낸다. 그는 시들어가는 줄기와 꽃, 꽃잎을 촬영하며 소멸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형태에 주목한다.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만들어내는 시간을 기다린 흑백 사진은 생(生)과 사(死), 현존과 부재의 경계에 놓인 순간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사라지면서도 남겨지는 형상을 따라가며, 존재는 반드시 '살아 있음'으로만 증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미술평론가 김웅기는 작품 비평에서 '시간 속에서 현존하는 대상을 통해 부재를 증명하고, 부재를 통해 공간 속 현존을 드러내는 이율배반적 맥락의 배치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존재의 형태를 주재범은 자신만의 사진 언어로 제시한다.'라고 썼다. ◆20주년 특별기획 화우반세기회 정기展 '삶과 예술의 진화' 3월 24일~3월 29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6-8전시실 문의 010-3814-1375 화우반세기회(회장 윤백만)의 창립 20주년 특별기획전이다. 고찬용, 유재희, 정귀순, 윤정혁, 김장환, 박정숙, 박명숙, 구두리, 곽계연, 진성수, 윤백만, 정삼이, 천수연 등 약 1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예술적 기록에 의한 삶'(6전시실), '꿈과 비전의 전개'(7전시실), '환상과 상상의 혼재'(8전시실)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동시대 대구 미술의 진화된 작품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고찬용 作)
2026-03-19 11:30:00
삼보모터스·삼보프라텍, 대구사랑의열매 나눔명문기업 동시 가입
삼보모터스(주)와 삼보프라텍(주)이 1억원이상 고액기업 기부자 모임인 '나눔명문기업'에 동시 가입하며 지역사회 나눔문화 확산에 동참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신홍식)는 지난 16일, 대구 달성군 삼보모터스(주) 세천공장에서 삼보모터스(주)·삼보프라텍(주) 나눔명문기업 가입식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삼보모터스(주)·삼보프라텍(주) 이유경 사장과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이재경 시민참여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해 나눔명문기업 인증패 전달식을 가졌다. 삼보모터스(주)는 5년간 총 3억500만 원을 기부하며 나눔명문기업 실버 등급으로 가입해 대구 28호(전국 692호) 나눔명문기업이 됐으며, 삼보프라텍(주)은 총 1억2,300만 원을 기부하며 그린 등급으로 가입해 대구 29호(전국 693호) 나눔명문기업이 됐다. 삼보모터스(주)와 삼보프라텍(주)은 지역 산업 발전과 함께 성장해 온 대구 대표 기업으로, 자동차 부품 제조 분야에서 국내외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삼보모터스그룹은 그동안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나눔활동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산불 피해 지원 성금과 저출생 대응 기금, 사회공헌협의회 기부 등 다양한 나눔활동을 이어오며, 지역사회 취약계층 지원과 나눔문화 확산에 기여해왔다. 또한, 삼보모터스그룹 이재하 회장은 대구 151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개인 고액 기부에도 앞장서며 지역사회 나눔문화 확산에 모범이 되고 있다. 이유경 삼보모터스(주)·삼보프라텍(주) 사장은 "기업의 성장과 함께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신홍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보모터스와 삼보프라텍이 나눔명문기업에 동참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이번 가입이 지역사회에 나눔의 선한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6-03-18 17:04:55
대구 서구, 15개 관계 기관과 통합돌봄 업무협약 체결
대구 서구(구청장 류한국)는 지난 17일 통합돌봄서비스 관계 기관(퇴원 환자 연계 및 일상생활 돌봄)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오는 27일 통합돌봄 제도 시행을 앞두고 지역 내 돌봄 자원 간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협약은 돌봄이 필요한 시민들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 건강관리, 장기 요양, 일상생활 돌봄, 주거 등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협약에는 퇴원 환자 연계 의료기관 7개소(대구연세요양병원, 더필병원,새동산병원, 세민병원, 열린큰병원, 제일효요양병원, 한신병원)와 일상생활 돌봄 제공기관 7개소(노인의전화재가노인돌봄센터, 보은재가노인돌봄센터,샐롬재가노인돌봄센터, 정다운재가노인돌봄센터, 서구지역자활센터, 서구시니어클럽, 대구돌봄사회적협동조합), 주거 환경 개선기관 1개소(주거복지협동조합) 등 15개 기관이 참여했다. 협약에 따라 의료기관은 퇴원 전 환자의 건강 상태와 돌봄 필요도를 파악하고 구에 즉시 연계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일상생활 돌봄 기관은 가사 식사 지원, 방문목욕, 병원 동행, 단기 돌봄 서비스를 주거 환경개선 기관은 대상자 맞춤 주거 생활환경 개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는 빈틈없는 돌봄서비스 지원을 위해 지역사회 돌봄 민관협력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류한국 서구청장은 "통합(統合)된 서비스가 필요한 구민에게 서비스를 알리고 연결하는 든든한 통로가 되겠다."라며 "지역사회와 소통하여'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통(通)하는 서구!'를 만들어 가겠다."라고 밝혔다.
2026-03-18 16:46:18
최안집 월성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달서인재육성장학재단에 후원금 전달
대구 달서구(구청장 이태훈)는 최안집 월성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이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100만 원을 (재)달서인재육성장학재단에 기탁했다고 17일 밝혔다. 최안집 위원장은 월성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이끌며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주민 중심의 복지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2026-03-18 16:38:46
대구 남구(구청장 조재구)는 지난 17일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 남구 출신 6·25참전유공자 2,144명의 이름을 새긴 명비 제막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제막식에는 대구 남구청장, 대구지방보훈청장, 보훈단체장, 참전유공자 및 유가족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기념사 및 축사, 기념공연, 제막 행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명비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국가 수호를 위해 헌신한 대구 남구 출신 6·25참전유공자들의 공적을 기리고, 그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명비는 가로·세로 각 2.4m, 높이 3.34m 규모로, 대구 남구 출신 6·25 참전유공자 2천14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명비 디자인은 단단한 돌의 갈라진 틈에서 피어난 국화를 형상화하여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과 희망, 그리고 참전영웅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재구 남구청장은 "6·25 참전유공자 명비 건립으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웅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자유 수호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2026-03-18 16:38:35
대구영웅사랑봉사회, 함장종합사회복지관 고액기부자클럽 등재
대구 수성구 함장종합사회복지관(관장 권혁철)은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을 실천한 대구영웅사랑봉사회를 복지관 고액기부자클럽에 등재하고, 지난 13일 명예의 전당 등재 기념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대구영웅사랑봉사회는 회원들의 뜻을 모아 복지관에 후원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 나눔 문화 확산에 동참해 왔다.
2026-03-18 16:38:24
사)한국산림보호협회 중앙회(회장 허태조)는 지난 14일 팔공산 가산산성에서 중앙회 임원과 이사, 전국 협의회 임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6년 산불 없는 한 해를 기원하는 산불예방·산림보호 캠페인과 재선충병 방지를 위한 산신대제를 개최했다. 허태조 회장은 "산불은 한순간의 부주의로도 소중한 산림을 잃게 만드는 큰 재난"이라며 "산림보호협회는 앞으로도 산불예방 홍보와 재선충병 방지 활동에 적극 나서 건강한 산림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6-03-16 16:11:32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66년 12회>동상 김덕수 작 "또 쏜다"
1960년대 중반,대구의 어느 빛바랜 골목.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앞마당과 굽이진 골목길은 동생과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전쟁터였다. 플라스틱 권총 한 자루가 귀하던 시절, 동생과 나는 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를 깎아 우리들만의 '병기'인 총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에는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총, 대장간에서 얻어온 못 하나를 방아쇠처럼 박아 넣은 총, 혹은 장난감 가게에서 어렵게 구한 쇠구슬 총까지. 총의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아이들 마음속에서는 모두 영화 속 영웅이 들고 다니는 총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일터로 나간사이 형제들에게 가장 멋진 놀이는 단연 '총놀이'였다. 형인 동호는 언제나 대장 역할을 맡았다. "자, 내가 경찰이다. 너는 도둑이야." 동생인 광호는 그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역할이 정해졌다. "철컥, 탕!" 낡은 플라스틱 장난감 총구에서 "탕"하는 총소리가 터져 나온다. 장난감 총을 쥔 형의 눈매가 매섭다.조금 전까지 함께 구슬치기를 하던 형제애는 간데없고, 형의 얼굴에는 전선(戰線)을 누비는 병사처럼 비장함이 서려 있다. "아아아앙! 형아, 또 쐈어!"."엄마에게 일러 줄꺼야!" 동생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고 말았다. 조금전 딱딱한 플라스틱 총알이 이마를 스쳤는지, 동생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머리를 문지러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기 직전이다. 억울한 동생은 울적이며 형에게 한마디 말한다. "형아! 이번에는 내가 경찰할꺼야. 형이 도둑해 ".형은 울고있는 동생을 달래기위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탕! 형, 맞았지? 어서 쓰러져!","아니야, 나는 방금 총알을 피했어. 헛방이야!".이 유치한 실랑이는 늘 형의 승리로 끝나거나, 동생의 울음보가 터져야 멈췄다. 김덕수의 작품인 "또 쏜다"는 전쟁후 가난하고 고단했던 시절, 골목길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
2026-03-12 12:30:00
◆ 작은 건축이 품은 침묵의 깊이 전주대학교 교정의 가장 조용한 언덕을 오르면, 시선이 멈추는 지점이 있다. 나무들 사이에서 녹슨 주홍빛의 조형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데, 이것이 김준영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작은 예배당 '숲속 초막 셋'이다. '숲속 초막 셋'은 김 교수가 화려함 대신 침묵을 선택해 만든, 아주 작은 규모의 기도같은 공간이다. 이 건축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뾰족하게 서 있는 지붕의 선이다. 각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은 공격적이라기보다 조용한 긴장을 만든다. 기도하는 사람이 몸을 곧게 세울 때의 집중과 닮아 있다. 외벽을 이루는 코르텐 강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색을 띠며 단단한 녹을 입는다. 재료가 낡아가면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특성 덕분에, 이 작은 구조물은 성경 속 초막이 지닌 소박함과 일시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작은 것 속에서 오히려 더 근원적인 세계가 보이는 방식이다. 멀리서 보면 바람을 타고 내려앉은 새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나무들 사이에 조용히 걸린 천막 같다. 날카로운 형태가 자연 속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이유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 건축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삼각형으로 열린 내부는 기능을 채우기보다 시선을 비워두기 위해 존재한다. 천장의 꼭짓점에서 십자가가 가볍게 매달려 있는데, 벽에 고정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상징을 과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하늘과 실내 사이를 잇는 얇은 선처럼 보인다. 십자가 아래로는 투명한 프레임이 놓여 있어 바깥 풍경이 그대로 실내로 들어온다. 외부는 거칠다. 코르텐 특유의 붉은 녹이 표면에 스며들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비와 바람을 맞으며 생기는 이 색은 재료가 스스로 만들어낸 시간의 흔적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벽면은 노출콘크리트 위에 찍힌 목재의 결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형태다. 콘크리트라는 단단한 재료 안에 나무의 흔적이 스며 있어, 표정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외부가 직선과 강한 표면으로 긴장을 만들었다면, 내부는 목재 결의 흐름 덕분에 자연스러운 이완을 유도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재료 사용의 차원이 아니라, 건축이 말하는 언어의 구조다. 밖에서는 스스로를 세우는 긴장감을, 안에서는 마음을 내려놓는 편안함을 경험하게 한다. 두 감정이 충돌하지 않고 조용히 균형을 이루는 방식, 바로 그 점에서 작은 건축이 깊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드러난다. ◆성경구절 인용해 건축 '숲속 초막 셋'의 형식은 성경 마태복음 17장 4절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예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베드로가 한 이 말은 서로 다른 세 존재가 한 순간을 공유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건축은 바로 이 순간을 공간으로 번역한다. 그래서 이 예배당은 세 개의 작은 집이 서로 이어진 구조를 가진다. 평면상으로는 분명히 나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바라보면 경계는 흐릿하다. 독립과 연결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모호함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구성이다. 각 초막은 예수·모세·엘리야를 상징하며 각각의 방향성과 고유한 의미를 지니지만, 세 지붕은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가깝게 맞닿아 하나의 몸을 이룬다. 밤이 되면 이 건축은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야간 사진 속에서 빛은 강판 표면에 부드럽게 번지며, 종교적 상징보다 이 장소가 가진 고요한 기도를 먼저 느끼게 한다. 외부를 비추는 조명은 형태를 강조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건물이 숨을 쉬듯 존재하도록 만든다. 실내의 빛도 마찬가지다. 삼각형을 이루는 구조의 가장자리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은 공간을 밝히려고 애쓰기보다, 사람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흐름을 따라간다. 빛이 공간을 지배하기보다, 어둠이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가깝다. ◆ 나는 무엇을 치유하는가 이 작은 건축은 규모로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오히려 크다. 눈앞의 형태를 넘어서, 건축이라는 활동 자체가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건축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공간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가. 크기와 성스러움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숲속 초막 셋은 이런 질문을 억지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방식으로 조용히 답을 보여준다. 크지 않아도 충분하다. 정직한 재료와 태도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풍경을 잘라내지 않고 품어낼 수 있을 때, 건축은 비로소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이 건축이 남기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하다. 작은 공간 속에서도 마음은 충분히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건축은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공간 앞에서 자연스럽게 침묵하게 된다면, 그 건축은 이미 제 역할의 절반을 한 것이다. 숲속 초막 셋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건물의 것이 아니라, 바람과 빛,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의 내면이다. 작은 지붕 아래에서 건축은 다시 본질을 묻는다. 나는 무엇을 치유하고, 무엇을 회복시키는가. 그 질문이 조용히 오래 남는다. 한국지방신문협회 전북일보 이종호 기자
2026-03-12 12:00:00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단기 4290년(1957년)3월 10일 일요일 흐림/3월 15일 금요일 맑음
〈strong〉◆3월 10일 일요일 흐림〈/strong〉 오늘은 또 늦게 일어나서 세수와 방 소제를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수학(數學) 공부하다가 태욱이가 자전거(自轉車) 타러 가자하여 형님의 특명도 받지 않고 형님의 자전거를 몰고 이웃집 넓은 마당에 가서 타고 놀다가 고모님께 꾸중을 들었다. 태욱(泰煜)이와 같이 자전거를 깨끗이 씻은 후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정말 놀러 가지 않겠다고 명심하고 공부하다가 그만 꿈나라로~ 잠에서 깬 뒤 또 공부하다가 영욱(永煜)이가 걸어 들어 와 하는 말이 "너 나의 자유의 벗이란 책을 찢었지" 하며 화를 버럭 내면서 물어 달라고 하여 할 수 없이 물어주게 되었다. 또 저녁을 먹을 때 형님의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고 나를 나무랐다. 저녁을 먹은 후 가만히 생각하니 모두 내 잘못에 그렇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남을 속이지 말고 거짓말을 아니 하며 건방지게 하지 않겠다고 명심하였다. 오늘은 꾸중 듣는 날인가 보다 하며 나 혼자 서러워 하였다. 〈strong〉◆3월 15일 금요일 맑음〈/strong〉 오늘도 일찍 일어나 (어제저녁에 조금 논 탓으로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서) 오늘 아침에는 할 수 없이 아침 과목을 하지 못하고 오늘 치룰 시험공부만 한 후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시험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에 신중히 굳게 맹세하고 학교로 왔다. 학교에 와서 이것저것 보다가 조회 종이 울리고 이어 시험종이 울려서 시험을 쳤다. 오늘은 지금까지 시험을 친 중에 가장 잘 쳤다. 시험을 친 후 태평 친구(親舊)들과 함께 천천히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집안 청소를 열심히 깨끗이 하였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넘어가고 저녁을 즐겁게 아주머니(고종사촌 형수)와 옥녀 누나와 같이 먹은 후 태욱(泰煜)이네 집에 갔다. 태욱이네 집에 창호(昌鎬)가 와서 재미있게 놀다가 일기를 쓰고 잤다.
2026-03-12 12:00:00
[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6>실연과 상실의 서정 '짝사랑'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잃어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 섰는 임자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맴을 돕니다'. 1936년 고복수가 발표한 '짝사랑'은 90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한국인의 애창곡이다. 박영호가 가사를 짓고 손목인이 곡을 실은 '짝사랑'은 한 사나이의 체념적 연정(戀情)을 일제강점기 망국의 상실감을 대변하는 겨레의 속울음으로 격상시킨 명곡이다. 그래서 고복수의 '짝사랑'은 단순한 실연의 노래를 넘어선다. 근대적 서정시가 대중가요와 정서적 공명을 이룬 작품이다. 노랫말은 우리 근대문학이 즐겨 다뤘던 정한(情恨)과 자기 억제의 미학을 응축하고 있다. 짝사랑은 고백 이전에 가슴에 묻은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의 실패가 아닌 사랑의 유예(猶豫)에 가깝다. 낮은 음역의 정조는 남성적 순정의 원형을 이룬다. 사랑을 숙명처럼 감내하고 슬픔을 미덕처럼 간직하는 창법과 가사는 '초혼'이나 '진달래꽃'에서 시사하는 김소월의 서정성과 닮았다. 이른바 승화된 이별의 정한이다. 토로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어지는 감정의 서사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대중가요에는 유랑과 상실, 이별과 눈물, 좌절과 탄식, 망향과 망국의 슬픔 등이 농축되어 있다. '짝사랑'도 그렇다. '이즈러진 조각달'과 '임자없는 들국화'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표류하는 개인이기도 하지만, 나라를 빼앗기고 방황하는 겨레이기도 했다. 노랫말의 저변에는 망국민의 설움과 저항의식이 정제된 시어와 은유적인 표현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대중들은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과 쓰라린 울분을 노래로 해소했다. 온겨레가 그리워한 짝사랑의 대상은 잃어버린 나라였던 것이다. 작사가 박영호는 토속적이고 감성적인 시어로 그같은 대중의 욕구에 부응했고, 작곡가 손목인이 그린 선율에 가수 고복수가 울음섞인 목소리를 얹어 민중의 우수와 애환을 대변했다. 실연과 망국의 허망한 심사를 비감어린 성음으로 토해낸 것이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風花日將老)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佳期猶渺渺)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空結同心草)'. 우리 가곡 '동심초'(同心草)의 노랫말 원전은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薛濤)의 춘망사(春望詞) 연작시 4수 가운데 세 번째 시(詩)이다.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 시인이 번안해 가사를 붙인 것이다. 설도의 시는 사위어가는 청춘에 대한 아쉬움과 떠나버린 정인(情人)에 대한 그리움을 바람에 날리는 꽃잎에 비유했다. 김억의 가사 또한 사랑이 스러지고 난 다음의 쓸쓸한 가을 정취와 상실의 정서를 유려한 우리말로 대변했다. '짝사랑'은 '춘망사'와 '동심초'의 한국적 변주이다. 짙은 가을의 서정에도 부합하는, 외로워도 슬퍼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 절제된 감성이 압권이다. 김소월의 '초혼'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이르지 못할 사랑의 절규라면, '진달래꽃'은 떠나는 사람의 평안을 비는 역설의 미학이다. 한용운의 '임의 침묵'은 응답 없는 사랑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독백이다. '임의 침묵' 또한 상실한 조국을 잃어버린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은유한 연가풍의 작품이다. 불교적인 비유와 상징적 기법을 사용한 '짝사랑'의 서사적·서정적 심연이다. 대중문화평론가
2026-03-12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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