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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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66년 12회>동상 김덕수 작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66년 12회>동상 김덕수 작 "또 쏜다"

    1960년대 중반,대구의 어느 빛바랜 골목.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앞마당과 굽이진 골목길은 동생과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전쟁터였다. 플라스틱 권총 한 자루가 귀하던 시절, 동생과 나는 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를 깎아 우리들만의 '병기'인 총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에는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총, 대장간에서 얻어온 못 하나를 방아쇠처럼 박아 넣은 총, 혹은 장난감 가게에서 어렵게 구한 쇠구슬 총까지. 총의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아이들 마음속에서는 모두 영화 속 영웅이 들고 다니는 총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일터로 나간사이 형제들에게 가장 멋진 놀이는 단연 '총놀이'였다. 형인 동호는 언제나 대장 역할을 맡았다. "자, 내가 경찰이다. 너는 도둑이야." 동생인 광호는 그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역할이 정해졌다. "철컥, 탕!" 낡은 플라스틱 장난감 총구에서 "탕"하는 총소리가 터져 나온다. 장난감 총을 쥔 형의 눈매가 매섭다.조금 전까지 함께 구슬치기를 하던 형제애는 간데없고, 형의 얼굴에는 전선(戰線)을 누비는 병사처럼 비장함이 서려 있다. "아아아앙! 형아, 또 쐈어!"."엄마에게 일러 줄꺼야!" 동생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고 말았다. 조금전 딱딱한 플라스틱 총알이 이마를 스쳤는지, 동생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머리를 문지러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기 직전이다. 억울한 동생은 울적이며 형에게 한마디 말한다. "형아! 이번에는 내가 경찰할꺼야. 형이 도둑해 ".형은 울고있는 동생을 달래기위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탕! 형, 맞았지? 어서 쓰러져!","아니야, 나는 방금 총알을 피했어. 헛방이야!".이 유치한 실랑이는 늘 형의 승리로 끝나거나, 동생의 울음보가 터져야 멈췄다. 김덕수의 작품인 "또 쏜다"는 전쟁후 가난하고 고단했던 시절, 골목길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

    2026-03-12 12:30:00

  • [팔도건축기행] 전주대 작은 예배당 '숲속 초막 셋'

    [팔도건축기행] 전주대 작은 예배당 '숲속 초막 셋'

    ◆ 작은 건축이 품은 침묵의 깊이 전주대학교 교정의 가장 조용한 언덕을 오르면, 시선이 멈추는 지점이 있다. 나무들 사이에서 녹슨 주홍빛의 조형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데, 이것이 김준영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작은 예배당 '숲속 초막 셋'이다. '숲속 초막 셋'은 김 교수가 화려함 대신 침묵을 선택해 만든, 아주 작은 규모의 기도같은 공간이다. 이 건축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뾰족하게 서 있는 지붕의 선이다. 각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은 공격적이라기보다 조용한 긴장을 만든다. 기도하는 사람이 몸을 곧게 세울 때의 집중과 닮아 있다. 외벽을 이루는 코르텐 강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색을 띠며 단단한 녹을 입는다. 재료가 낡아가면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특성 덕분에, 이 작은 구조물은 성경 속 초막이 지닌 소박함과 일시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작은 것 속에서 오히려 더 근원적인 세계가 보이는 방식이다. 멀리서 보면 바람을 타고 내려앉은 새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나무들 사이에 조용히 걸린 천막 같다. 날카로운 형태가 자연 속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이유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 건축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삼각형으로 열린 내부는 기능을 채우기보다 시선을 비워두기 위해 존재한다. 천장의 꼭짓점에서 십자가가 가볍게 매달려 있는데, 벽에 고정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상징을 과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하늘과 실내 사이를 잇는 얇은 선처럼 보인다. 십자가 아래로는 투명한 프레임이 놓여 있어 바깥 풍경이 그대로 실내로 들어온다. 외부는 거칠다. 코르텐 특유의 붉은 녹이 표면에 스며들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비와 바람을 맞으며 생기는 이 색은 재료가 스스로 만들어낸 시간의 흔적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벽면은 노출콘크리트 위에 찍힌 목재의 결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형태다. 콘크리트라는 단단한 재료 안에 나무의 흔적이 스며 있어, 표정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외부가 직선과 강한 표면으로 긴장을 만들었다면, 내부는 목재 결의 흐름 덕분에 자연스러운 이완을 유도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재료 사용의 차원이 아니라, 건축이 말하는 언어의 구조다. 밖에서는 스스로를 세우는 긴장감을, 안에서는 마음을 내려놓는 편안함을 경험하게 한다. 두 감정이 충돌하지 않고 조용히 균형을 이루는 방식, 바로 그 점에서 작은 건축이 깊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드러난다. ◆성경구절 인용해 건축 '숲속 초막 셋'의 형식은 성경 마태복음 17장 4절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예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베드로가 한 이 말은 서로 다른 세 존재가 한 순간을 공유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건축은 바로 이 순간을 공간으로 번역한다. 그래서 이 예배당은 세 개의 작은 집이 서로 이어진 구조를 가진다. 평면상으로는 분명히 나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바라보면 경계는 흐릿하다. 독립과 연결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모호함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구성이다. 각 초막은 예수·모세·엘리야를 상징하며 각각의 방향성과 고유한 의미를 지니지만, 세 지붕은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가깝게 맞닿아 하나의 몸을 이룬다. 밤이 되면 이 건축은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야간 사진 속에서 빛은 강판 표면에 부드럽게 번지며, 종교적 상징보다 이 장소가 가진 고요한 기도를 먼저 느끼게 한다. 외부를 비추는 조명은 형태를 강조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건물이 숨을 쉬듯 존재하도록 만든다. 실내의 빛도 마찬가지다. 삼각형을 이루는 구조의 가장자리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은 공간을 밝히려고 애쓰기보다, 사람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흐름을 따라간다. 빛이 공간을 지배하기보다, 어둠이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가깝다. ◆ 나는 무엇을 치유하는가 이 작은 건축은 규모로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오히려 크다. 눈앞의 형태를 넘어서, 건축이라는 활동 자체가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건축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공간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가. 크기와 성스러움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숲속 초막 셋은 이런 질문을 억지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방식으로 조용히 답을 보여준다. 크지 않아도 충분하다. 정직한 재료와 태도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풍경을 잘라내지 않고 품어낼 수 있을 때, 건축은 비로소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이 건축이 남기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하다. 작은 공간 속에서도 마음은 충분히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건축은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공간 앞에서 자연스럽게 침묵하게 된다면, 그 건축은 이미 제 역할의 절반을 한 것이다. 숲속 초막 셋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건물의 것이 아니라, 바람과 빛,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의 내면이다. 작은 지붕 아래에서 건축은 다시 본질을 묻는다. 나는 무엇을 치유하고, 무엇을 회복시키는가. 그 질문이 조용히 오래 남는다. 한국지방신문협회 전북일보 이종호 기자

    2026-03-12 12:00:00

  •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단기 4290년(1957년)3월 10일 일요일 흐림/3월 15일 금요일 맑음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단기 4290년(1957년)3월 10일 일요일 흐림/3월 15일 금요일 맑음

    〈strong〉◆3월 10일 일요일 흐림〈/strong〉 오늘은 또 늦게 일어나서 세수와 방 소제를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수학(數學) 공부하다가 태욱이가 자전거(自轉車) 타러 가자하여 형님의 특명도 받지 않고 형님의 자전거를 몰고 이웃집 넓은 마당에 가서 타고 놀다가 고모님께 꾸중을 들었다. 태욱(泰煜)이와 같이 자전거를 깨끗이 씻은 후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정말 놀러 가지 않겠다고 명심하고 공부하다가 그만 꿈나라로~ 잠에서 깬 뒤 또 공부하다가 영욱(永煜)이가 걸어 들어 와 하는 말이 "너 나의 자유의 벗이란 책을 찢었지" 하며 화를 버럭 내면서 물어 달라고 하여 할 수 없이 물어주게 되었다. 또 저녁을 먹을 때 형님의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고 나를 나무랐다. 저녁을 먹은 후 가만히 생각하니 모두 내 잘못에 그렇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남을 속이지 말고 거짓말을 아니 하며 건방지게 하지 않겠다고 명심하였다. 오늘은 꾸중 듣는 날인가 보다 하며 나 혼자 서러워 하였다. 〈strong〉◆3월 15일 금요일 맑음〈/strong〉 오늘도 일찍 일어나 (어제저녁에 조금 논 탓으로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서) 오늘 아침에는 할 수 없이 아침 과목을 하지 못하고 오늘 치룰 시험공부만 한 후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시험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에 신중히 굳게 맹세하고 학교로 왔다. 학교에 와서 이것저것 보다가 조회 종이 울리고 이어 시험종이 울려서 시험을 쳤다. 오늘은 지금까지 시험을 친 중에 가장 잘 쳤다. 시험을 친 후 태평 친구(親舊)들과 함께 천천히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집안 청소를 열심히 깨끗이 하였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넘어가고 저녁을 즐겁게 아주머니(고종사촌 형수)와 옥녀 누나와 같이 먹은 후 태욱(泰煜)이네 집에 갔다. 태욱이네 집에 창호(昌鎬)가 와서 재미있게 놀다가 일기를 쓰고 잤다.

    2026-03-12 12:00:00

  • [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6>실연과 상실의 서정 '짝사랑'

    [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6>실연과 상실의 서정 '짝사랑'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잃어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 섰는 임자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맴을 돕니다'. 1936년 고복수가 발표한 '짝사랑'은 90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한국인의 애창곡이다. 박영호가 가사를 짓고 손목인이 곡을 실은 '짝사랑'은 한 사나이의 체념적 연정(戀情)을 일제강점기 망국의 상실감을 대변하는 겨레의 속울음으로 격상시킨 명곡이다. 그래서 고복수의 '짝사랑'은 단순한 실연의 노래를 넘어선다. 근대적 서정시가 대중가요와 정서적 공명을 이룬 작품이다. 노랫말은 우리 근대문학이 즐겨 다뤘던 정한(情恨)과 자기 억제의 미학을 응축하고 있다. 짝사랑은 고백 이전에 가슴에 묻은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의 실패가 아닌 사랑의 유예(猶豫)에 가깝다. 낮은 음역의 정조는 남성적 순정의 원형을 이룬다. 사랑을 숙명처럼 감내하고 슬픔을 미덕처럼 간직하는 창법과 가사는 '초혼'이나 '진달래꽃'에서 시사하는 김소월의 서정성과 닮았다. 이른바 승화된 이별의 정한이다. 토로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어지는 감정의 서사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대중가요에는 유랑과 상실, 이별과 눈물, 좌절과 탄식, 망향과 망국의 슬픔 등이 농축되어 있다. '짝사랑'도 그렇다. '이즈러진 조각달'과 '임자없는 들국화'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표류하는 개인이기도 하지만, 나라를 빼앗기고 방황하는 겨레이기도 했다. 노랫말의 저변에는 망국민의 설움과 저항의식이 정제된 시어와 은유적인 표현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대중들은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과 쓰라린 울분을 노래로 해소했다. 온겨레가 그리워한 짝사랑의 대상은 잃어버린 나라였던 것이다. 작사가 박영호는 토속적이고 감성적인 시어로 그같은 대중의 욕구에 부응했고, 작곡가 손목인이 그린 선율에 가수 고복수가 울음섞인 목소리를 얹어 민중의 우수와 애환을 대변했다. 실연과 망국의 허망한 심사를 비감어린 성음으로 토해낸 것이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風花日將老)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佳期猶渺渺)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空結同心草)'. 우리 가곡 '동심초'(同心草)의 노랫말 원전은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薛濤)의 춘망사(春望詞) 연작시 4수 가운데 세 번째 시(詩)이다.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 시인이 번안해 가사를 붙인 것이다. 설도의 시는 사위어가는 청춘에 대한 아쉬움과 떠나버린 정인(情人)에 대한 그리움을 바람에 날리는 꽃잎에 비유했다. 김억의 가사 또한 사랑이 스러지고 난 다음의 쓸쓸한 가을 정취와 상실의 정서를 유려한 우리말로 대변했다. '짝사랑'은 '춘망사'와 '동심초'의 한국적 변주이다. 짙은 가을의 서정에도 부합하는, 외로워도 슬퍼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 절제된 감성이 압권이다. 김소월의 '초혼'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이르지 못할 사랑의 절규라면, '진달래꽃'은 떠나는 사람의 평안을 비는 역설의 미학이다. 한용운의 '임의 침묵'은 응답 없는 사랑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독백이다. '임의 침묵' 또한 상실한 조국을 잃어버린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은유한 연가풍의 작품이다. 불교적인 비유와 상징적 기법을 사용한 '짝사랑'의 서사적·서정적 심연이다. 대중문화평론가

    2026-03-12 12:00:00

  •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11>  '수주대토'(守株待兎),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11> '수주대토'(守株待兎),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

    "국민의힘, '수주대토'로는 국민 선택을 받을 수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내용에서 수주대토는 "우연히 얻은 성과에 기대어 같은 결과가 반복되기를 기다리는 무기력, 무대책인 태도를 경계하는 이야기"임을 밝힌다.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지킬 수(守), 그루터기 주(株), 기다릴 대(待), 토끼 토(兎)"로,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라는 뜻이다. 즉 "아무런 반성과 개선 없이 과거의 행운이 현재에 다시 있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어리석은 태도"를 꼬집는 고사성어이다. 유사한 표현으로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린다"라는 속담이 있다. 수주대토의 이야기는 『한비자』의 「오두(五蠹)」편에 나온다. 오두의 '두'는 나무속을 파먹는 좀 벌레로, 나라 안에 기생하는 벌레 같은 인간들을 비유한다. '오두'란 다섯 무리의 벌레들, 즉 국정이 어지러운 틈을 타서 혼란을 조장하는 구태의연한 학자 나부랭이나 떨거지 정치인 등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때 철저히 배척받았던 예치(禮治)의 주창자인 순자(荀子). 그의 제자 한비(韓非). 보통 '선생 자(子)' 자를 붙여서 한비자라고 부른다. 한비는 스승 순자의 예치를 한 걸음 더 진척시켜 '법치'(法治)로 나아갔다. 「오두」편에서는 말한다. "지금 시대에 요, 순, 탕, 무의 도리를 아름답게 여기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새로운 성인에게 조소가 될 것이니, 이로써 성인은 오래된 옛것을 약속하지 않고, 항상 옳은 것만을 본받지 않으며, 세상의 일을 따지는 것에서 준비한다."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에 대해 과거의 구태의연한 방식을 택하는 유가(儒家)가 '인의'(仁義)에 의한 덕치(德治)를 주장하는 부류를 비판한 다음, 어리석은 송나라 사람을 예로 든다. "송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자가 있었는데, 밭 가운데에 나무 그루터기가 있어서, 토끼가 달려오다가 그루터기에 부딪혀서는 목이 꺾여 죽었다. 이런 이유로 쟁기를 버리고선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다시 토끼를 얻기를 바랐으나 토끼를 다시 얻을 수 없었으니, 자신은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어서 "지금 앞선 왕의 정치로써 당대의 백성을 다스리려 함은 모두가 그루터기를 지키는 유형이다"라고 하여, 유가의 인의가 아닌 '법'으로써 다스려야 함을 강조한다. 고사에 나오는 '송(宋)' 나라 사람은 보통 '어리석음' '바보'의 대명사다. 송나라는 주 왕조가 무너뜨린 은(殷) - 상(商)으로도 부름 - 의 유민들(→商人)이 집단이주한 약소국으로, 주변국들에 시달리며 무시당하는 '씹힘'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순박했고, 자아를 잊은 채 자유롭게 살아가는 철학을 가졌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장자(莊子)이다. 송나라 사람들에겐 수주대토 외에도 알묘조장(揠苗助長,곡식의 싹을 뽑아 올려 성장을 돕는다는 뜻으로,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일을 서두르다 오히려 해를 끼치는 상황을 비유) 등등 바보 취급받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편, 수주대토 이야기에는 경제적, 환경적 배경도 들어 있다. 당시 농토의 확대로 산을 개간하는 통에 산림이 줄어드니 동물의 활동 영역도 좁아졌단다. 따라서 사냥이나 맹수들의 추격에 쫓긴 토끼가 농사짓는 밭으로 다급하게 튀어나오다 그만 철기 도구로 개간돼 삐죽삐죽하게 잘린 날카로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게 되었다는 말이다. 16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작품 '네덜란드 속담' 가운데는 '나올 생각도 없는 알을 기다리며 닭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이처럼 세상에는 안타깝게도 김칫국부터 마시며 요행을 기다리는 인간들이 있다. 꿈 깨라. 세상에 공짜란 없다.

    2026-03-12 11:50:00

  • [임무출의 낱말 맞히기]<제11회>

    [임무출의 낱말 맞히기]<제11회>

    〈strong〉〈가로 풀이〉〈/strong〉 1. ○○○쇠: 흥하고 망함. 그리고 성하고 쇠함. =영고성쇠. 3. ○○○주: 한 척의 조그마한 배. =일엽소선. 5. ○○상박: 아랫사람에게 후하고 윗사람에게는 박함. ↔상후하박. 7. ○○설한: 눈 내리고 추운 겨울의 석 달 동안. =엄동설한. 8. ○○성찬: 푸짐하게 잘 차린 맛있는 음식. =산해진미. 10. ○○○열: 여러 갈래로 갈려 흩어짐. =사분오열. 12. 고신○○: 임금의 신임이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 13. ○○유취: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 =황구유취. 14. 지어○○: 재앙이 못의 물고기에 미친다. =앙급지어. 15. 녹음○○: 푸르게 우거진 나무 그늘과 싱그럽고 향기로운 풀. 16. 기○○○: 기세가 매우 높고 힘찬 모양. 18. ○○탕지: 쇠로 만든 성(城)과 그 둘레에 파놓은 뜨거운 물로 가득 찬 못이란 뜻.방어 시설이 철통같이 튼튼한 성. 20. 백화○○: 온갖 꽃이 활짝 피어서 아름답고 흐드러짐. =백화만발. 21. ○○반성: 자기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스스로 돌이켜 봄. 23. ○○○유: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은 물에 젖는다는 뜻으로 이익을 얻으려고 다투는 사람은 언제나 고생을 면치 못함을 비유. 24. 이○○○: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주의. 〈strong〉〈세로 풀이〉〈/strong〉 1. ○○○○: 넘쳐흐를 정도로 흥미가 매우 많음. 2. ○○지맹: 적군이 성 밑까지 쳐들어와서 항복한 나라가 적국과 맺는 굴욕적인 맹약. 3. 일거○○: 하나하나의 행동. 또는 동작이나 움직임. =일거수일투족. 4. ○○○○: 외롭게 자라서 견문이 좁고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음. 6. ○○○배: 술자리에 뒤늦게 온 사람에게 권하는 석 잔의 술. 7. 삼○○○: 서너 사람이나 네댓 사람. 떼를 지어 다니거나 무엇을 하고 있는 모양. 9. ○○○심: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호사수구. 11. ○○○등: 분한 마음이 몹시 세차게 치밀어 오름. =분기등천. 분기충천. 12. ○○○침: 원앙을 수놓은 이불과 베개. 15.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싸우다가 어부에게 붙잡힌다는 뜻 =휼방지쟁. 16. ○○○방: 세계의 모든 나라나 모든 곳. 17. ○○○비: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대로 하여야 함. 19. ○○○○: 참되고 성실한 마음과 뜻. 20. 감홍○○: 가을에 단풍이 울긋불긋함. 22. ○○괴괴: 외관이나 분위기가 몹시 기이하고 괴상함. ◆ 〈strong〉9회 정답〈/strong〉 〈strong〉〈응모요령〉〈/strong〉 ▶낱말맞히기 정답 공모(이름·휴대폰 번호·주소를 반드시 기재) ①우편엽서 ②이메일: mincho@imaeil.com ▶당첨자는 지면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 ▶보내실 곳: 대구시 중구 서성로 20 매일신문 주간본부(우편번호 41933) ▶당첨자는 본지 지면 발표

    2026-03-12 11:45:00

  • [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미래 미술을 앞당겨 실천하는 예술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미래 미술을 앞당겨 실천하는 예술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미술이 미술의 문제인 시대는 마침표를 찍었다. 오늘날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종종 당혹감을 느낀다. 캔버스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이나 대리석 조각 대신, 텅 빈 공간, 알 수 없는 기계 장치, 혹은 모니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환되는 디지털 이미지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미술은 물질적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의미했다.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매체의 특성을 탐구하는 이른바 '미술 내부의 문제'에 집중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미술이 오직 미술만의 문제에 천착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다.오늘날 미술은 또 한 번의 자연스러운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서서히 미술의 영역 안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현실이 된 미래 미술을 가장 먼저 앞당겨 실천하고 있는 독보적인 예술가가 있다. 바로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다. 그는 첨단 기술을 단순히 신기한 표현 도구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진화하는 독립적인 생태계(Ecosystem)를 창조한다는 점이다. 위그의 설치 작품 〈Uumwelt〉(2018)는 인간 중심적 세계 인식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지각한다는 문제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작품 제목인 Uumwelt(우움벨트)는 주변 환경을 뜻하는 독일어 Umwelt(움벨트)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움벨트는 단순히 자연환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생명체가 자신의 감각과 지각 구조를 통해 경험하는 주관적 세계를 의미하는 생물학적·철학적 개념이다. 생물학자 야콥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은 이 개념을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세계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감각 체계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피에르 위그의 〈Uumwelt〉는 이 개념을 현대 기술 환경 속에서 새롭게 확장한다. 작품은 인공지능 이미지 인식 시스템, 센서, 마스크 형태의 조각, 그리고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장치들이 결합된 복합적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설치에서 인공지능은 전시 공간에 등장하는 인간의 얼굴을 인식하고 분석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시각적 인식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인간이 보는 얼굴과 기계가 인식하는 얼굴은 동일한 대상이지만 서로 다른 데이터 구조와 알고리즘에 의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작품 제목에서 Umwelt앞에 U를 하나 더 붙인 Uumwelt라는 변형된 표기는 이러한 개념적 확장을 암시한다. 이는 전통적인 생물학적 Umwelt 개념이 인간과 동물의 감각 세계를 설명하는 데 머물렀다면, 위그의 작업에서는 인공지능과 기계 시스템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환경적 체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위그의 작품 〈Uumwelt〉는 하나의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을 해체하고, 서로 다른 감각 체계와 인식 장치가 만들어 내는 다중적 세계들을 제시한다. 이 작품에서 전시 공간은 인간을 중심으로 조직된 관람 환경이 아니라, 인간·기계·비인간 존재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복합적 생태계로 변모한다.

    2026-03-12 11:45:00

  • [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역사주의와 해석학을 빙자한 뜬금없는 이란 문화재 이야기

    [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역사주의와 해석학을 빙자한 뜬금없는 이란 문화재 이야기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 바보 자식과 나쁜 새끼. 여성은 어느 쪽을 골라도 꽝이다. 머리 나쁜 것을 참고 살거나 마음에 멍드는 것을 참고 살거나. 예제를 배로 늘려보자. 세상에는 네 종류의 남자가 있다. 말 많고 눈치 없는 놈, 말 많고 눈치 빠른 놈, 말 없고 눈치 없는 놈, 말 없고 눈치 빠른 놈. 이 중에서 여성이 가장 데리고 살기 좋은 놈은? 하나씩 보자. 말 없고 눈치 없는 놈, 속이 터진다. 아이고 답답해 가슴 치다가 빨리 가고 싶다면 최고의 선택이다. 말 없고 눈치 빠른 놈, 위험하다. 불륜 사건에서 살인은 보통 이런 놈들이 저지른다. 말 많고 눈치 없는 놈, 최악이다. 화병 나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될 확률이 높다. 그나마 제일 나은 게 말 많고 눈치 빠른 놈이다. 실수도 잦지만 바로바로 말로 수습하는 스타일이어서 매번 그냥 넘어가게 된다. 단점은 이게 무한 반복된다는 것. 해서 가끔 원치 않았는데 여성이 득도하는 일이 생긴다. ◆집에 가져오고 싶었던 터키의 청동 대포들 해보시면 생각보다 유익한 말장난이다. 관점이 있고 대상이 있다는 역사학의 주요 방법론을 현실에서 구현했다고나 할까. 관점이 없으면 세상은 온통 잡다한 사실과 편린들이 모여 뭉개진 데칼코마니처럼 보일 것이다. 보고도 뭘 봤는지 모르는. 집 떠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10여 개국을 다녀왔다. 처음 동양 두세 개 나라를 돌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여기에 유럽 주요국을 서너 개 더하자 기준이 잡히기 시작했다. 양해 구하고 말장난 한 번만 더 해보자. 세상의 모든 나라는 네 종류다. 가봤고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 가봤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 안 가봤고 가 볼 생각 전혀 없는 나라, 안 가 봤지만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외교 문제 일으키기 싫어 가고 싶지 않은 두 나라는 생략한다. 가봤고 다시 가고 싶은 나라는 터키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아무리 역사가 오래됐다 한들 결국 한 문명이다. 거기서 거기인 왕조들의 퇴적물은 금방 질린다. 터키는 서아시아 문명을 무찌른 그리스 문명을 로마 문명이 덮고 다시 그리스 문명이 솟아올라 이를 통제하는 가운데 최종적으로는 이슬람 문명이 상층부에 올려진 문명이다. 해서 길 다니다 보면 이게 대체 언제적 유물인지 추리가 불가능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당연히 모른다. 확실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라면 박물관으로 가야 할 물건들이 동네 공터에서 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비에 젖는 청동 대포가 안쓰러워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우산을 씌어주고 있던 어느 동양 놈을 현지인들은 참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던 기억이다. ◆아랍을 문화적으로 정복했다고 믿는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들 가보지 않았지만 가보고 싶은 나라는 이란이다. 서양문명의 뿌리에 그리스와 로마가 있고 동양문명의 토대에 주나라와 한나라가 있다면 그 중간 지점인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는 페르시아(이란)가 있다. 중원을 접수한 북방이민족들이 한나라가 쌓아놓은 문화에 좌절한 끝에 결국 한족 동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옛 페르시아 제국 자리를 차지한 거친 유목 민족들도 땅은 정복했지만 지배는 꿈도 못꿨다. 지배는 커녕 페르시아 관료들을 빼면 나라가 안 돌아갔다. 심지어 궁중 언어도 페르시아어였다. 그 문명의 뼈대가 보고 싶은 거다. 이 뼈대는 말 그대로 그냥 돌무더기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돌무덤 보면서 심오하게 고개 끄덕이는 게 유적 구경이다. 그래도 로마 유적보다는 낫단다. 가시적인 볼거리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래서 전쟁의 장기화와 확대가 걱정이다. 헤이그 문화재보호협약(1954)은 문화유산 공격을 엄정하게 금지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그게 얼마나 지켜질까. 게다가 전쟁에서 상대방 국민의 저항 의지를 꺾는 순서가 생존권 파괴(집), 공동체 파괴 그리고 마지막이 정체성 파괴다. 문화적 유산 파괴의 목적은 고도의 심리전으로 "너희는 사라질 민족이다"라는 메시지다. 설마 미국이 그러겠냐고? 이란 반군과 쿠르드군이 합류한다며? 그래서 걱정이란 얘기다. 이란 문화재가 이들의 주요 고려 대상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의도치 않은 피해로 혹시 전쟁 전이면 볼 수 있었는데 터만 남은 유적이 되어 버린다면 참 많이 슬플 것 같다.

    2026-03-12 11:44:00

  • [법도 문학도 아닌] 그녀의 선택은?

    [법도 문학도 아닌] 그녀의 선택은?

    일흔일곱 대기업 사장의 희수연에 별거 중이던 아내가 선물한 것은 협의이혼 신고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위장의 밤〉은 그의 죽음을 둘러싼 냉혹한 가족 이야기이다. 사별한 첫 부인과의 사이에는 딸이,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는 아들이 있으나, 그 아들이 변변찮은 관계로, 그는 데릴사위를 부사장으로 삼아 그에게 회사를 물려주려 한다. 그에게는 또 서른 전후의 내연녀가 있는데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서는 아내와의 협의이혼 신고서가 필요하다. 협의이혼 신고서는 받았지만, 그 서류가 관공서에 제출되어야만 이혼의 효력이 발생하는데, 바로 그 밤에 그는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그 상태에서라면 이혼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으므로, 배우자에게 3/7, 딸과 아들에게는 각 2/7가 상속된다. 딸과 데릴사위로서는 이복형제인 아들과 양어머니가 5/7를 상속받게 되므로, 회사를 물려받을 수 없게 된다. 불과 몇 시간만이라도, 이혼신고서 제출 전까지 그의 사망 사실을 숨길 수만 있다면 1/2을 상속받게 되므로, 그의 시신을 발견한 데릴사위는 절박하게 이를 위한 계략을 꾸민다. 여기에 이미 1년여 남짓 사실혼 관계에 있던 세 번째 부인 후보가 가담한다. 그녀에게 상속재산은 없지만, 거액의 생명보험이 있는데, 보험계약의 내용인즉, 계약일로부터 1년이 지나야지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에 사별로 홀로 남겨진 그녀가 누군가와 사실혼 관계에 돌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의 경우는 현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녀들로서는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대신 돌봐주는 그녀가 법적 배우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한 그러한 관계에 굳이 반기를 들 까닭이 없다. 물론 사실혼 관계에서 증여를 통한 재산 이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소설 속 77세의 그는 자신의 재력으로 무려 30살 전후인 그녀와 사실혼 관계를 맺었으나, 재력가인 그가 2~30년 연하의 그녀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경우는 현실에서 그리 드물지 않다. 70대 후반의 재력가인 그가 50대의 그녀에게 빌딩을 주겠노라며 사실혼을 제안한다. 당시만 해도 건강에 문제가 없었던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녀는 같이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면서 그와 함께했지만, 처음 약속과 달리 그는 차일피일 미루며 빌딩을 넘겨주지 않는다. 점점 노쇠하고 건강도 나빠지는 그를 보면서 그녀는 점점 불안해진다. 이러다 어느 날 덜컥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녀는 꼼짝없이 맨몸으로 쫓겨나야 한다. 한편 그는 그대로 자신이 그녀에게 빌딩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녀가 자신과의 사실혼을 받아들였을까 늘 불안하다. 빌딩을 넘겨주는 순간 그녀에게 자신의 효용은 다한 것이어서 그녀가 자신을 떠나버릴까 두렵기 그지없다. 냉정하게 말해 자식들은 그가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에게 재산을 남기고 떠나길 바라지만, 그녀는 그가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며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므로, 그로서는 이 상태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하고 싶다. 그의 말만 믿고 사실혼 관계를 5년, 10년 이어가던 그녀가 더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변호사를 찾아와 묻는다. 지금이라도 빌딩을 넘겨준다는 말에 더는 연연하지 않고, 그에 훨씬 못 미치더라도 재산분할청구로 얼마라도 확실히 받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사실혼 관계는 일방의 의사만으로 언제든지 해소할 수 있으므로 오늘 사실혼 관계 해소에 따른 재산분할심판청구를 하면 내일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재산분할은 받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해주기는 한다. 그가 내일이라도 빌딩을 넘겨줄지 아니면 당장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고 선택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라고도 말해준다. 덧붙여 그가 넘겨주겠다는 빌딩의 가치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녀들의 유류분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그만큼은 반환소송이 청구될 수 있다고도 알려준다. 소설 속 그들의 계략은 성공하지 못하고, 살인사건의 진실은 밝혀진다. 사실혼 관계의 그녀는 그가 이혼하지 않은 채로 사망함으로써 상속을 받지도, 생명 보험금조차 요건 미달로 받지 못한다. 현실에서 만난 그녀의 선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026-03-12 11:30:00

  • [금주의 공연,전시]

    [금주의 공연,전시]

    ◆2026 DCH 앙상블 페스티벌 -앙상블 쏘노 스트링 콰르텟 ​3월 18일 오후 7시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 입장료 1만원 문의 053-430-7700 ​앙상블 쏘노 스트링 콰르텟은 바이올리니스트 박치상이 이끄는 실내악 연주단체 '앙상블 쏘노(Ensemble Sonore)'의 주축 멤버들로 구성된 현악 4중주단이다. 박치상·박미선(바이올린), 경희설(비올라), 배원(첼로)이 무대에 올라 13년 호흡의 앙상블을 선보인다. 보로딘의 '현악 4중주 1번'과 '2번',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 12번', 그리고 김유리의 '바이올린, 비올라 그리고 첼로를 위한 현악 3중주'를 연주한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제523회 정기 연주회 '생상스, 프랑스 낭만의 빛' 3월 20일 오후 7시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입장료 1만원~3만원 문의 053-430-7765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생상스의 음악'을 주제로 정기 연주회를 펼친다. 이번에는 특히 대구와 히로시마의 자매도시 교류 공연으로 마련되어 히로시마교향악단 단원과 함께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알렉 쉬친이 협연으로 선보이는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g단조, Op.22'와 오페라 〈동양의 공주〉 서곡, '교향곡 1번 E♭장조, Op.2'를 들려준다. ◆대구문학관 기획 2025 탄생 100주년이오덕·박주일 특별展 ​~5월 31일 대구문학관 3층 특별전시실 문의 053-421-1231 ​대구문학관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지역 주요 작가들의 작품과 문학적 성과를 조명하기 위해 매년 특별 전시를 개최한다. 2025년에는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시인 박주일(1925~2009)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이오덕과 박주일은 문학인이자 교육자로서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이룬 문학인들이다. 이번 전시에는 두 작가의 대표 시집과 등단 문예지 등 대구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통해 그들의 문학 및 교육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정태경 초대 개인展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3월 18일~3월 28일 환갤러리 문의 053-710-5998 ​정태경 작가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시리즈로 최근까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마치 흑백 사진처럼 지워진 과거가 어느 날 화폭으로 되살아나면 어떨까, 내 집은 어떠할까 등에 관한 옛 기억을 이야기한다.

    2026-03-12 11:30:00

  • 달서구 의사회, 달서인재육성장학재단에 장학금 300만원 후원

    달서구 의사회, 달서인재육성장학재단에 장학금 300만원 후원

    대구 달서구(구청장 이태훈)는 달서구 의사회(회장 배상근)가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써달라며 300만원의 후원금을 (재)달서인재육성장학재단에 전달했다고 10일 밝혔다. 달서구 의사회는 2012년부터 매년 지역 인재 육성과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꾸준히 후원해 오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 3,900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이태훈 (재)달서인재육성장학재단 이사장은"소중한 정성을 모아 후원해 주신 달서구 의사회에 깊이 감사드린다"며"지역사회 기부문화 확산에 힘써 주신 만큼, 맡겨 주신 기금은 우수한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소중하게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2026-03-11 16:21:13

  • 대구 남구청,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업무협약 체결

    대구 남구청,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업무협약 체결

    대구 남구(구청장 조재구)는 11일 지역 소상공인들의 경영난 해소를 위해 대구신용보증재단 및 아이엠뱅크 봉덕동지점과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20억원의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지원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며, 남구에서 3개월 이상 영업 중인 소상공인은 2천만원까지 대출 신청을 할 수 있으며, 대출금리 중 2.0%를 2년간 남구청에서 지원받아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 조재구 남구청장은 "우리 남구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경영자금에 보탬이 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지역상생의 동반자가 되겠다."라고 말했다.

    2026-03-11 16:14:47

  • 이솜한복, 한복 패션쇼 가져

    이솜한복, 한복 패션쇼 가져

    이솜한복(대표 이금아)은 지난 6일 대구국제섬유박람회(PID) 부대행사인 '2026 직물과 패션의 만남전'에서 지역 신소재와 디자이너의 감각을 결합한 비즈니스 한복 패션쇼를 선보였다. 이날 패션쇼에서 이솜한복은 섬세한 자수와 세련된 색감의 조화를 통해 한복이 단순한 전통 의상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 'K-패션'의 핵심 콘텐츠임을 입증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다.

    2026-03-11 12:59:37

  • [하대성의 헬기 이야기] 하늘을 나는 택시, 어떻게 강대국의 무기가 되었나?

    [하대성의 헬기 이야기] 하늘을 나는 택시, 어떻게 강대국의 무기가 되었나?

    미국은 2026년 1월 3일 베네수엘라를, 2월 28일 이란을 공습하며 '불량 국가의 독재자'를 정밀 타격하는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했다. 누군가에겐 부당하겠지만, 전쟁 상관관계 프로젝트 데이터에 의하면 1816년부터 1965년까지 발생한 전쟁 93건 중 대부분이 강대국이 참여한 전쟁이었다. 이는 국제정치에서 반복되는 역사적 패턴으로 보인다. 강대국의 전쟁성과 승률 분석은 더더욱 놀랍다. 전쟁성은 전쟁 참여 빈도, 전투 사망자, 전쟁 규모 등을 종합한 지표인데, 이 기준에서 강대국은 단연코 1등이다. 전쟁 승률도 강대국이 높고, 특히 약소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에는 선제공격을 한 강대국의 승률이 압도적이었다. 한마디로 강대국을 정의하면 전쟁을 아주 잘하는 국가다. 결국 강대국이 되려면 전쟁에 대비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선제공격을 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은 끊임없이 더 새롭고, 더 효과적이며, 더 위협적인 무기체계를 필요로 한다. 헬기도 그러한 요구의 산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하늘을 나는 택시'로 상상을 자극하던 아이디어가 실제로 전장에 등장하게 된 이유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헬기라 불린 '에어리얼 스크루(aerial screw)'는 당시 밀라노 공국의 군사 기술자로서 전쟁 억지와 방어력 과시를 위한 설계 활동의 일환으로 그려졌다. 이후 영국의 헬기 모형 제작(1796년), 프랑스의 최초 유인 헬기 제작(1907년), 스페인의 최초 실험용 오토자이로 비행 성공(1923년), 이탈리아의 최초 헬기 비행 기록(1930년) 등을 거쳐 최초의 진정한 헬기는 독일에서 개발(1936년)이 된다. 독일은 FL-282(일명 콜리브리) 헬기를 해군에 실전 배치하고, 1,000대를 주문했지만 실제 완성된 기체는 20 여대 정도로 생산능력은 형편없었다. '세계 최초의 실질적 양산형 군용 헬기'라는 의미는 컸지만 실험적 전력으로 2차 세계대전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다. 현대 헬기의 시조는 미국이다. 1939년 이고르 시콜스키가 개발한 VS-300은 주 로터에서 발생하는 토크를 상쇄하기 위해 꼬리 로터를 사용한 최초의 헬기였다. 이 방식은 오늘날 대부분 헬기에서 적용하고 있지만 VS-300은 기술 실험을 위한 실험용 헬기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과 해군, 해안경비대에서 헬기를 도입해 수색·구조·관측·해상 비상 구조 등에 시험 운용했다.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헬기를 단순한 수송·연락 수단에서, 전쟁 양상을 바꾸는 핵심 전력으로 탈바꿈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헬기는 본격적으로 전장에 투입된다. 산악지형이 대부분인 한국 전선에서 부상병 후송과 연락·관측·제한적 보급 임무 등을 위해 대규모·실전적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헬기는 손실을 줄이고 작전 유연성을 높이는 보조 수단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였으며 헬기를 이용한 공중기동 개념의 운용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1960년 미 육군항공 검토위원회에서 미래의 국지전·저강도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항공 헬기 전력을 대폭 증강할 것을 권고했고, UH-1H를 주력 플랫폼으로 하는 공중기동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헬기로 병력을 전장 어디든 신속히 투입·철수시키고 화력·보급·지휘 통제까지 공중으로 올린다는 새로운 교리가 마련된다. 1961년 베트남전쟁에서 헬기는 전술·작전의 중심축으로, 공중기동 개념의 핵심 수단으로 등장한다. 헬기는 보병을 싣고 정글·산악·저지대·습지 어디든 상륙·투입시키는 수단이 되었고, 공중강습작전이 미 육군 전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하늘을 나는 택시'가 미래 전장의 핵심이 되도록 싸우는 방법을 개발하고, 기술 개발에 투자해 왔다. 현재 미군의 헬기 전력은 5,737대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양적 우위뿐 아니라, 공중기동 교리와 운용 경험 축적은 넘사벽 차원의 핵심역량이다. 미국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선제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으로 존재한다. 하대성 전 육군 헬기부대 대장·정치학 박사

    2026-03-05 12:01:00

  • [문학을 품은 영화] 엑스컬리버

    [문학을 품은 영화] 엑스컬리버

    잔뇨감에 시달리는 중년의 사내가 모처럼 치르는 정사(情事) 중에 여전히 남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곧추세운 자신의 남성미를 격렬히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존 부어맨 감독의 〈엑스컬리버〉를 감상하면 된다. 집단적인 발기부전 증상을 숨기기라도 하는 양, 번쩍이는 크롬 도금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One Land, One King"이란 진지하고 엄숙한 대의를 부르짖으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광경이 분명 어리석어 보이지만 자못 눈부시기까지 하기도 하다. 고대 켈트 신화의 대표격인 '아서왕 이야기'는 하나의 원작으로 존재치 않았다. 켈트족은 한 곳에 정착하기보단 방대한 지역을 유랑했기 때문에, 아서왕 이야기는 여러 민족 사이에서 비슷하지만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며 구전되어 내려왔다. 게다가 켈트족은 기록 남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중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자로 쓰이기 시작했다. 〈아발론 연대기〉의 저자 '장 마르칼'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유럽 각지의 중세 작가들이 쓴 아서왕과 성배 전설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는 작업을 한 다음, 40년에 걸친 집필을 통해 마법사 멀린과 아서왕의 탄생, 원탁의 기사들이 펼치는 모험, 성배를 찾는 고난, 랜슬롯과 귀네비어의 금지된 사랑 등을 담은 대서사시를 완성해낸다. 중세 유럽의 기사 모험담은 대부분 민담의 색채가 짙었다. 그렇지만 〈아발론 연대기〉는 서술방식에 있어 궤를 달리하며, 신화적인 성격을 강하게 부여한다. 용기와 절제, 그리고 희생을 통해 인간의 위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사들의 모습은 영웅 신화의 전형을 답사한다. 그런데 이런 영웅담은 식상하다며, 신화적 아우라에 마침표를 찍는 영화가 등장했으니, 그 이름하여 〈엑스컬리버〉. 아서왕의 전설을 기괴하게 재해석한 이 영화는 마치 주술에 걸린 흑마술의 광기에 휩싸여 있는데다, 과장된 허세와 요란한 미장센을 끊임없이 보여주기에 지켜보기가 다소 황당할 수도 있다. 심지어 1970년대 에로 영화가 애용했던 과장된 미스트 필터의 남용이 선사하는 미적 감각을 보고 있노라면, 행여 이 영화가 고전 예술로 가장한 소프트 포르노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순수한 영화적인 경험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둘러싼 황당한 무용담이 다소 유치하다손 치더라도, 잠시라도 눈을 뗄 지루함이나 산만함의 구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매혹적인 구라와 부조리한 욕망이 주는 자극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부하지만 노골적인 향락에 기꺼이 항복하는 관찰자로 남을 수 있다. 중년의 나이에 때늦은 호르몬이 폭발을 주체하지 못해서, 과장된 멜로드라마를 꿈꾸는 고개 숙인 남성들의 판타지는 위험한 동시에 애틋하다.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와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이 가슴 속에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한들, 약주 거나하게 걸치고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음악은 트로트 몇 곡이 전부인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수컷의 삶을 감내하는 이상, 누구든 엑스컬리버 한 자루를 은밀히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칼날을 얼마나 벼려왔건 간에. 비록 낡고 녹이 슬어 오랫동안 납도(納刀)해두었던 칼일지언정, 발도(拔刀)를 꿈꾸지 않는 칼이 어디 있으랴. 서슬푸른 날이 아닐지언정, 꼿꼿이 쳐들고 싶지 않은 발기(勃起)가 또 어디 있으랴.

    2026-03-05 12:00:00

  • [금주의 공연,전시]

    [금주의 공연,전시]

    ◆M발레단 창작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3월 12일 오후 7시30분 대구오페라하우스 입장료 3만원~5만원 문의 070-8027-4451 ​안중근 의사의 애국 정신과 평화의 가치를 담아낸 작품이다. 한국 창작 발레를 꾸준히 선보여온 M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대한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오"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모티프로 그의 신념과 삶을 발레로 풀어냈다. 故 문병남 명예 예술감독이 안무를 맡고, 양영은 단장이 대본과 연출을 맡았다. ◆대덕문화전당 기획 초청뮤지컬 〈난쟁이들〉 ​3월 13일 오후 7시30분, 3월 14일 오후 3시·7시 대덕문화전당 드림홀 입장료 6만원 문의 053-664-3118 ​대덕문화전당이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 지역유통 지원사업으로 초청한 작품이다. 2015년 초연 이후 대학로에서 꾸준히 공연된 창작 뮤지컬로, 동화 속 조연이던 난쟁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어른이를 위한 동화'라는 작품 콘셉트 아래 현실을 풍자하는 유머와 코미디적 설정으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지현이 대본과 작사를, 황미나가 작곡을 맡았다. ◆국제현대작가협회 국제교류展 '불확실성 이후 공존의 조건' ​3월 10일~3월 15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8-13전시실 문의 010-3814-1375 ​국제현대작가협회가 2022년부터 지속해 온 '불확실성'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인 '불확실성 이후 공존의 조건'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중국, 러시아 등 4개국 작가 170여 명의 회화, 조각, 설치 등 시각예술 작품 50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 기간에는 리홍재 작가의 타묵 퍼포먼스를 비롯해 국제 학술 세미나 등 시민들이 예술로 소통하고 치유 받을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다. (최영조 作) ◆배봉규 개인展 '고요의 숨결 A Serene Breath' ​3월 17일~3월 22일 수성아트피아 2전시실 문의 053-668-1840 ​배봉규 작가는 달항아리와 들꽃이라는 한국적 오브제를 중심으로 자연과 사물에 깃든 고요한 정서와 내면의 평온을 회화로 풀어낸다. 달항아리는 비움과 기다림의 상징으로 자리하며, 그 위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들은 소소하지만 단단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자연의 질서와 균형,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사유와 고요의 순간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작품 18점을 선보인다.

    2026-03-05 12:00:00

  • [과학으로 보는 세상] 내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관건은 시냅스 연결!

    [과학으로 보는 세상] 내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관건은 시냅스 연결!

    시험장이나 중요한 발표 자리에서 알고 있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진땀을 뺀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던 흑역사일 것이다. 머릿속 어딘가에 분명히 정보가 있는데, 마치 잠긴 문 뒤에 있는 것처럼 꺼낼 수 없는 답답함. 우리는 흔히 이를 '건망증'이라 부르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자신의 기억력을 탓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 뇌 속 기억은 컴퓨터 속 파일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기억이 형성될 때 함께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의 집단, 이른바 '엔그램 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룬다. 그리고 이 세포들을 잇는 다리가 바로 '시냅스'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은 엔그램 세포 사이 시냅스 연결이 충분히 강화되지 않으면, 저장된 기억이라도 회상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그것을 찾아오는 '회상'은 별개의 메커니즘이라는 뜻이다. ◆단백질 합성 막으면 기억도 막힌다 IBS 연구팀은 공포 기억을 학습시킨 쥐를 대상으로 시냅스 변화를 직접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쥐에게 공포 반응을 학습시킨 뒤, 뇌 속에서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한 것이다. 우리 뇌가 시냅스 연결을 강화하려면 새로운 단백질이 필요한데, 이 재료 공급을 차단해 본 것이다. 실험 결과, 단백질 합성이 억제된 쥐들은 시냅스 강화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 공포 기억을 자연스럽게 회상하지 못했다. 분명히 공포에 대한 정보는 뇌에 입력됐지만, 엔그램 세포들을 이어주는 다리(시냅스)가 부실한 탓에 기억을 불러오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이어서 연구팀이 엔그램 세포를 인위적으로 자극해 기억을 강제로 재활성화한 결과, 쥐들은 잊었던 기억을 즉시 되살려냈다. 즉 시냅스 강화가 안 돼 자연스러운 회상은 불가능했지만, 기억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것이다. ◆'숨은 기억'과 '사라진 기억'의 차이 연구팀은 건망증과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의 차이점도 관찰했다. 약물을 적게 투여해 '시냅스 연결 강도'만 약해진 경우, 외부 자극으로 기억을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백질 합성을 장기간, 강하게 억제했을 땐 상황이 달랐다. 이때는 엔그램 세포 간 '시냅스 연결 개수' 자체가 줄어들었다. 연결 통로가 단순히 좁아진 것이 아니라 아예 끊어진 셈이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엔그램 세포를 자극해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기억을 끄집어내는 회상 능력은 시냅스 '연결 강도'에, 기억을 뇌 속에 붙잡아 두는 저장 능력은 시냅스 '연결 개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불러오는 메커니즘이 시냅스의 서로 다른 구조적 특징에 영향받는다는 뜻이다. ◆기억 치료의 새로운 이정표 이 연구 결과는 건망증, 치매, 트라우마 치료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우리가 흔히 겪는 건망증이나 초기 인지 기능 저하가 '시냅스 연결 강화 과정이 일시적으로 원활하지 않은 상태'와 관련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만약 약해진 시냅스 연결을 다시 강화해 주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어떨까? 숨어 있는 기억을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특정 기억과 연관된 시냅스 연결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새로운 방식의 트라우마 치료법이 등장할 수도 있다. "아, 그게 뭐였더라?"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순간, 우리 뇌 속 엔그램 세포들은 끊어진 다리가 아니라 잠시 좁아진 길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기억은 생각보다 끈질기게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다. 단지 그 문을 여는 열쇠인 시냅스가 잠시 헐거워졌을 뿐이다. [용어 풀이]1) 시냅스: 신경세포 사이에서 전기적·화학적 신호가 전달되는 접합 구조로, 신경 회로를 구성하는 기본 연결 단위다.2) 엔그램 세포 : 특정 경험이 뇌에 남긴 기억의 흔적을 엔그램이라고 하며, 뇌 속 기억을 담당하는 세포들의 무리를 엔그램 세포라고 칭한다. KISTI의 과학향기 김청한 과학칼럼니스트

    2026-03-05 12:00:00

  • [조한규 칼럼]'사국지'로 본 삼한일통의 교훈

    [조한규 칼럼]'사국지'로 본 삼한일통의 교훈

    "첫째, 나라의 일은 모두 사람이 하니 인재를 잘 골라 쓰시되 나랏일의 안팎은 거칠부가 믿음직하니 믿고 맡겨도 될 만합니다. 아울러 노리부와 같이 가야에서 온 신하도 충성스럽고 사람됨이 견실하니 중용하시기 바랍니다. 새로 신라 땅으로 만든 지역의 사람을 서라벌 사람 못지 않게 후대하여, 그들이 신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해야 하옵니다." 〈삼국지2/이사부·2 중원의 쟁투(爭鬪), 302쪽〉 신라 장군 이사부가 81세 때 진흥왕에게 다섯 가지 국가정책 중 첫째를 엎드려 간곡히 건의하는 대목이다. 나머지 건의들도 이어진다. 둘째, 화랑은 인재를 길러내는 큰 그릇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한수와 동해를 지켜야 한다. 넷째, 부지런히 신라의 강역을 순수(巡狩.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해야 한다. 다섯째, 불법(佛法)을 더 융성하게 하여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고 부처의 왕이 되어야 한다. 대구출신 문학평론가 하응백의 신간 '사국지'에서 이런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사국지'는 고구려·백제·신라, 그리고 가야를 포함한 '사국(四國)'의 쟁투와 융합을 다룬 전5권의 대하 역사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역사서나 다름없다. 철저한 고증과 절제된 상상력이 돋보인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명제의 역사가에 딱 부합한 작가가 바로 하응백이다. 500여 권의 역사서와 1,000편이 넘는 논문을 섭렵하고, 삼국시대 격전지를 수십 차례 답사하면서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하응백이 "사실 이 소설은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일종의 교양 성장 소설"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하응백은 소설가로서 역사가이다. '사국지'에서 오늘의 영남에 소환돼야 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일독한 소감으로는 '포용'이다. '사국지4/문무대왕·2개국(開國)' 308-309쪽에 나온다. 김춘추의 아들로 백제와 고구려를 합치고 당나라군을 물리친 신라 왕 법민(문무왕)이 죽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공이 있으면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상을 주었고 벼슬을 나누었다. 백성에게는 세금을 줄이고 부역을 덜어 집집마다 넉넉하게 살게 하였다. 백성은 평안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었다. 곳간에는 곡식이 산처럼 가득 찼고, 감옥에는 사람이 없어 잡초가 무성했다." 실제로 하응백은 조용호 KPI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폐쇄적인 골품제 국가였던 신라가 가야계를 받아들이고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흡수하여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이루었다"면서 "이 과정이야말로 인구 소멸과 다문화 시대를 맞이한 21세기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역설했다. "신라가 가야를 포용해 삼국통일을 이루었듯이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포용적인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16장에서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지상용 용내공 공내왕)"이라고 말했다. "늘 그러한 이치를 알면 포용하게 되고, 포용력이 있으면 공평하게 되고, 공평하게 되면 왕 노릇하게 된다"라는 뜻이다. 이는 '포용은 곧 공평·공정이며, 이는 곧 시민성(Citizenship)을 지향한다'는 의미와 같다. '포용'은 힘이 있는 강자가 힘이 없는 약자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양보나 타협의 산물도 아니다. 조직과 예산을 기여도·성과에 따라 한쪽에 치우치지 않되 비례적으로 고르게 배분하는 것이다. 과정이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균(均)'이다. '포용'은 삼국통일후 신라가 문화시대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됐다. 하응백은 이렇게 '후기(後記)에서 이렇게 밝혔다.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표현되는 화평원융(和平圓融)의 세계가, 처용이 노래하는 향가(鄕歌)의 세계가, 원효의 사상으로 구현되는 화엄(華嚴)의 세계가 활짝 열렸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에서도 '포용'이 키워드다. 대구가 경북을 포용하고 경북이 포용하면 완전한 행정통합이 이뤄진다. 포용이 이뤄지면 '민주적 시민성'은 저절로 굳건해지고 성장과 번영을 이룬다. 대구·경북 모든 시민들이 '왕 노릇'을 하게 된다.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2026-03-05 11:45:00

  • [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경칩 즈음, 설렁탕과 들나물

    [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경칩 즈음, 설렁탕과 들나물

    노란 꽃더미 속으로 두 남녀가 쓰러졌다. 알싸한 동백꽃(생강나무) 향기가 산기슭을 휘감는 소설 속 계절은 경칩 무렵이었다. 혹한을 견딘 땅 밑 뿌리는 생성의 기지개를 켜고, 몸 사리며 고요히 동안거에 들었던 양서류는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난다. '경칩(驚蟄)'은 원래 '계칩(啓蟄)'이었다. 중국 전한의 6대 황제 휘자(諱字)가 '계(啓)'였다. 전통에 따라 황제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야 했으므로 '열릴 계(啓)'자를 '놀랄 경(驚)'자로 바꾸게 된 거였다. 경칩에는 농사의 기초를 다지는 행사가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농사를 처음 가르쳤다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선농제(先農祭)이다. 임금은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친경'을 하였고 음식을 나누었다. 선농제에 올렸던 소를 잡아 가마솥에서 푹 끓여낸 탕을 백성에게 나누었는데 그것이 '선농탕'이고,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 문헌에 선농탕은 언급되지 않는다. 후대에 스토리텔링된 조리서의 사료 가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소고기의 단백질은 '양' 보다는 '질'에서 차이를 보인다. 소고기의 필수아미노산은 근육 단백질을 합성한다. 한방 관점에서 보면 맛은 달고 성질은 따듯하여 비토(脾土)를 보한다. '비위(脾胃)를 보하면 보해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몸을 보하고 기운을 돋우는 데 소고기를 우선했다. 고기 위주로 푹 끓여 국물이 맑은 것은 곰탕이고, 뼈를 함께 우려내어 국물이 뽀얀 것은 설렁탕이다. 봄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은 단연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을 꼽는다. 점순이와 성례를 시켜달라고 조르니 '키가 덜 자라서 안 된다'는 장인과 '나'는 기어이 싸움이 벌어진다. 상대방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켜잡고 잡아채는 장면이 우스꽝스럽다. 언 땅이 녹으면서 흙냄새가 번지고, 봄날의 생식 본능이 물씬거리는 작품 속 배경은 경칩 즈음이었다. 생강나무가 노랗게 눈을 뜨면 들판으로부터 봄이 온다. 겨우내 땅에 바짝 엎드렸던 냉이가 고개를 치켜든다. 경칩에 고로쇠 물을 마시기도 하지만 식탁에는 단연 들판에서 캔 봄나물이 주인공이다. 특히 노지에서 캔 냉이는 인삼보다 명약이라 하였다. 15세기 고문헌 '구급방언해'에 냉이를 '나시'라고 표기했다. 땅에서 벌어지는 모양의 '나(羅)'와 일찍 솟아난다는 '생(生)'의 어근과 접미사가 결합한 거로 추정한다. 지방에 따라서 나생이, 나싱이, 나숭개 등으로 불리고 있다. 냉이의 한자어는 '제(薺)'인데, '제채(薺菜)'는 '냉이 나물'을 말한다. 다른 채소보다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한 냉이는 약선으로 볼 때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해 오장을 조화롭게 하고 간에 쌓인 독소를 풀어준다. 냉이는 약재이며 식재였기에 일상에서 국을 끓이고 죽을 쑤어먹으며 몸을 보했다. 중국에서는 만두와 춘권을 빚을 때 냉이를 넣어 양기를 보충했고, 일본에서는 봄맞이 칠종채(七種菜)에 냉이가 자리한다. 경칩 무렵에 설렁탕 한 뚝배기로 기운을 돋우고, 들나물 무침 한 접시로 상을 차리면 그야말로 신선이 부럽지 않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 멧비둘기 소리 나니 버들 빛 새로와라 -중략-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2월령 부분

    2026-03-05 11:45:00

  •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65년 11회>금상 강해용 작 대독(代讀)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65년 11회>금상 강해용 작 대독(代讀)

    햇볕이 쨍쨍내리는 여름날 오후.할머니는 우체부가 대문 앞에 던져두고 간 편지봉투 하나를 손에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했지만 그 편지가 단박에 월남전에 참전한 작은 아들이 보낸 군사우편임을 직감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글을 배우지 못했다. 배움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는 채 가방도 내려놓기 전,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끌려 마당 한구석 담벼락 아래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 삼촌이 보낸 편지예요." 손녀는 봉투를 뜯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어머니, 저는 잘 있습니다…"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손녀의 목소리는 아직 앳되었지만, 단단함이 묻어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겉봉투를 보다가 손녀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날이 많이 덥습니다. 하지만 저는 건강합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된장과 고추장이 큰 힘이 됩니다…" 할머니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된장을 담그던 날, 혹여 상할까 염려하며 항아리 뚜껑을 몇 번이나 열어보았던 기억이 스쳤다. 전쟁이란 것이 총과 포성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도 장맛이 아들을 살리고 있다니, 그제야 숨이 조금 놓였다.손녀가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 그 소리는 단순한 글자가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화가 빗발치는 정글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머니 이름을 부르는 아들의 생생한 목소리였다. 손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읽었다. "밤이 되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꼭 돌아가 효도하겠습니다." 그 대목에서 할머니의 눈물이 툭, 무릎 위로 떨어졌다. 효도라는 말이 이토록 먼 약속처럼 들린 적이 있었을까. 살아 돌아오는 것, 그것 하나면 족했다. 효도는 그 다음의 일이었다. "할머니… 삼촌이 금방 온대요.".할머니는 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 거칠고 마른 손과 아직 살결이 보드라운 손이 포개졌다. 강해용 작 '대독(代讀)'에서 글자를 아는 손녀와, 오직 자식 걱정뿐인 어머니가 만나 비로소 아들의 '무사함'이라는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2026-03-05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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