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성의 헬기 이야기] 하늘을 나는 택시, 어떻게 강대국의 무기가 되었나?
미국은 2026년 1월 3일 베네수엘라를, 2월 28일 이란을 공습하며 '불량 국가의 독재자'를 정밀 타격하는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했다. 누군가에겐 부당하겠지만, 전쟁 상관관계 프로젝트 데이터에 의하면 1816년부터 1965년까지 발생한 전쟁 93건 중 대부분이 강대국이 참여한 전쟁이었다. 이는 국제정치에서 반복되는 역사적 패턴으로 보인다. 강대국의 전쟁성과 승률 분석은 더더욱 놀랍다. 전쟁성은 전쟁 참여 빈도, 전투 사망자, 전쟁 규모 등을 종합한 지표인데, 이 기준에서 강대국은 단연코 1등이다. 전쟁 승률도 강대국이 높고, 특히 약소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에는 선제공격을 한 강대국의 승률이 압도적이었다. 한마디로 강대국을 정의하면 전쟁을 아주 잘하는 국가다. 결국 강대국이 되려면 전쟁에 대비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선제공격을 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은 끊임없이 더 새롭고, 더 효과적이며, 더 위협적인 무기체계를 필요로 한다. 헬기도 그러한 요구의 산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하늘을 나는 택시'로 상상을 자극하던 아이디어가 실제로 전장에 등장하게 된 이유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헬기라 불린 '에어리얼 스크루(aerial screw)'는 당시 밀라노 공국의 군사 기술자로서 전쟁 억지와 방어력 과시를 위한 설계 활동의 일환으로 그려졌다. 이후 영국의 헬기 모형 제작(1796년), 프랑스의 최초 유인 헬기 제작(1907년), 스페인의 최초 실험용 오토자이로 비행 성공(1923년), 이탈리아의 최초 헬기 비행 기록(1930년) 등을 거쳐 최초의 진정한 헬기는 독일에서 개발(1936년)이 된다. 독일은 FL-282(일명 콜리브리) 헬기를 해군에 실전 배치하고, 1,000대를 주문했지만 실제 완성된 기체는 20 여대 정도로 생산능력은 형편없었다. '세계 최초의 실질적 양산형 군용 헬기'라는 의미는 컸지만 실험적 전력으로 2차 세계대전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다. 현대 헬기의 시조는 미국이다. 1939년 이고르 시콜스키가 개발한 VS-300은 주 로터에서 발생하는 토크를 상쇄하기 위해 꼬리 로터를 사용한 최초의 헬기였다. 이 방식은 오늘날 대부분 헬기에서 적용하고 있지만 VS-300은 기술 실험을 위한 실험용 헬기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과 해군, 해안경비대에서 헬기를 도입해 수색·구조·관측·해상 비상 구조 등에 시험 운용했다.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헬기를 단순한 수송·연락 수단에서, 전쟁 양상을 바꾸는 핵심 전력으로 탈바꿈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헬기는 본격적으로 전장에 투입된다. 산악지형이 대부분인 한국 전선에서 부상병 후송과 연락·관측·제한적 보급 임무 등을 위해 대규모·실전적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헬기는 손실을 줄이고 작전 유연성을 높이는 보조 수단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였으며 헬기를 이용한 공중기동 개념의 운용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1960년 미 육군항공 검토위원회에서 미래의 국지전·저강도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항공 헬기 전력을 대폭 증강할 것을 권고했고, UH-1H를 주력 플랫폼으로 하는 공중기동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헬기로 병력을 전장 어디든 신속히 투입·철수시키고 화력·보급·지휘 통제까지 공중으로 올린다는 새로운 교리가 마련된다. 1961년 베트남전쟁에서 헬기는 전술·작전의 중심축으로, 공중기동 개념의 핵심 수단으로 등장한다. 헬기는 보병을 싣고 정글·산악·저지대·습지 어디든 상륙·투입시키는 수단이 되었고, 공중강습작전이 미 육군 전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하늘을 나는 택시'가 미래 전장의 핵심이 되도록 싸우는 방법을 개발하고, 기술 개발에 투자해 왔다. 현재 미군의 헬기 전력은 5,737대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양적 우위뿐 아니라, 공중기동 교리와 운용 경험 축적은 넘사벽 차원의 핵심역량이다. 미국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선제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으로 존재한다. 하대성 전 육군 헬기부대 대장·정치학 박사
2026-03-05 12:01:00
잔뇨감에 시달리는 중년의 사내가 모처럼 치르는 정사(情事) 중에 여전히 남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곧추세운 자신의 남성미를 격렬히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존 부어맨 감독의 〈엑스컬리버〉를 감상하면 된다. 집단적인 발기부전 증상을 숨기기라도 하는 양, 번쩍이는 크롬 도금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One Land, One King"이란 진지하고 엄숙한 대의를 부르짖으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광경이 분명 어리석어 보이지만 자못 눈부시기까지 하기도 하다. 고대 켈트 신화의 대표격인 '아서왕 이야기'는 하나의 원작으로 존재치 않았다. 켈트족은 한 곳에 정착하기보단 방대한 지역을 유랑했기 때문에, 아서왕 이야기는 여러 민족 사이에서 비슷하지만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며 구전되어 내려왔다. 게다가 켈트족은 기록 남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중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자로 쓰이기 시작했다. 〈아발론 연대기〉의 저자 '장 마르칼'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유럽 각지의 중세 작가들이 쓴 아서왕과 성배 전설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는 작업을 한 다음, 40년에 걸친 집필을 통해 마법사 멀린과 아서왕의 탄생, 원탁의 기사들이 펼치는 모험, 성배를 찾는 고난, 랜슬롯과 귀네비어의 금지된 사랑 등을 담은 대서사시를 완성해낸다. 중세 유럽의 기사 모험담은 대부분 민담의 색채가 짙었다. 그렇지만 〈아발론 연대기〉는 서술방식에 있어 궤를 달리하며, 신화적인 성격을 강하게 부여한다. 용기와 절제, 그리고 희생을 통해 인간의 위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사들의 모습은 영웅 신화의 전형을 답사한다. 그런데 이런 영웅담은 식상하다며, 신화적 아우라에 마침표를 찍는 영화가 등장했으니, 그 이름하여 〈엑스컬리버〉. 아서왕의 전설을 기괴하게 재해석한 이 영화는 마치 주술에 걸린 흑마술의 광기에 휩싸여 있는데다, 과장된 허세와 요란한 미장센을 끊임없이 보여주기에 지켜보기가 다소 황당할 수도 있다. 심지어 1970년대 에로 영화가 애용했던 과장된 미스트 필터의 남용이 선사하는 미적 감각을 보고 있노라면, 행여 이 영화가 고전 예술로 가장한 소프트 포르노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순수한 영화적인 경험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둘러싼 황당한 무용담이 다소 유치하다손 치더라도, 잠시라도 눈을 뗄 지루함이나 산만함의 구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매혹적인 구라와 부조리한 욕망이 주는 자극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부하지만 노골적인 향락에 기꺼이 항복하는 관찰자로 남을 수 있다. 중년의 나이에 때늦은 호르몬이 폭발을 주체하지 못해서, 과장된 멜로드라마를 꿈꾸는 고개 숙인 남성들의 판타지는 위험한 동시에 애틋하다.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와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이 가슴 속에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한들, 약주 거나하게 걸치고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음악은 트로트 몇 곡이 전부인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수컷의 삶을 감내하는 이상, 누구든 엑스컬리버 한 자루를 은밀히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칼날을 얼마나 벼려왔건 간에. 비록 낡고 녹이 슬어 오랫동안 납도(納刀)해두었던 칼일지언정, 발도(拔刀)를 꿈꾸지 않는 칼이 어디 있으랴. 서슬푸른 날이 아닐지언정, 꼿꼿이 쳐들고 싶지 않은 발기(勃起)가 또 어디 있으랴.
2026-03-05 12:00:00
◆M발레단 창작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3월 12일 오후 7시30분 대구오페라하우스 입장료 3만원~5만원 문의 070-8027-4451 안중근 의사의 애국 정신과 평화의 가치를 담아낸 작품이다. 한국 창작 발레를 꾸준히 선보여온 M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대한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오"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모티프로 그의 신념과 삶을 발레로 풀어냈다. 故 문병남 명예 예술감독이 안무를 맡고, 양영은 단장이 대본과 연출을 맡았다. ◆대덕문화전당 기획 초청뮤지컬 〈난쟁이들〉 3월 13일 오후 7시30분, 3월 14일 오후 3시·7시 대덕문화전당 드림홀 입장료 6만원 문의 053-664-3118 대덕문화전당이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 지역유통 지원사업으로 초청한 작품이다. 2015년 초연 이후 대학로에서 꾸준히 공연된 창작 뮤지컬로, 동화 속 조연이던 난쟁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어른이를 위한 동화'라는 작품 콘셉트 아래 현실을 풍자하는 유머와 코미디적 설정으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지현이 대본과 작사를, 황미나가 작곡을 맡았다. ◆국제현대작가협회 국제교류展 '불확실성 이후 공존의 조건' 3월 10일~3월 15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8-13전시실 문의 010-3814-1375 국제현대작가협회가 2022년부터 지속해 온 '불확실성'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인 '불확실성 이후 공존의 조건'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중국, 러시아 등 4개국 작가 170여 명의 회화, 조각, 설치 등 시각예술 작품 50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 기간에는 리홍재 작가의 타묵 퍼포먼스를 비롯해 국제 학술 세미나 등 시민들이 예술로 소통하고 치유 받을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다. (최영조 作) ◆배봉규 개인展 '고요의 숨결 A Serene Breath' 3월 17일~3월 22일 수성아트피아 2전시실 문의 053-668-1840 배봉규 작가는 달항아리와 들꽃이라는 한국적 오브제를 중심으로 자연과 사물에 깃든 고요한 정서와 내면의 평온을 회화로 풀어낸다. 달항아리는 비움과 기다림의 상징으로 자리하며, 그 위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들은 소소하지만 단단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자연의 질서와 균형,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사유와 고요의 순간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작품 18점을 선보인다.
2026-03-05 12:00:00
[과학으로 보는 세상] 내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관건은 시냅스 연결!
시험장이나 중요한 발표 자리에서 알고 있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진땀을 뺀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던 흑역사일 것이다. 머릿속 어딘가에 분명히 정보가 있는데, 마치 잠긴 문 뒤에 있는 것처럼 꺼낼 수 없는 답답함. 우리는 흔히 이를 '건망증'이라 부르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자신의 기억력을 탓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 뇌 속 기억은 컴퓨터 속 파일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기억이 형성될 때 함께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의 집단, 이른바 '엔그램 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룬다. 그리고 이 세포들을 잇는 다리가 바로 '시냅스'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은 엔그램 세포 사이 시냅스 연결이 충분히 강화되지 않으면, 저장된 기억이라도 회상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그것을 찾아오는 '회상'은 별개의 메커니즘이라는 뜻이다. ◆단백질 합성 막으면 기억도 막힌다 IBS 연구팀은 공포 기억을 학습시킨 쥐를 대상으로 시냅스 변화를 직접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쥐에게 공포 반응을 학습시킨 뒤, 뇌 속에서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한 것이다. 우리 뇌가 시냅스 연결을 강화하려면 새로운 단백질이 필요한데, 이 재료 공급을 차단해 본 것이다. 실험 결과, 단백질 합성이 억제된 쥐들은 시냅스 강화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 공포 기억을 자연스럽게 회상하지 못했다. 분명히 공포에 대한 정보는 뇌에 입력됐지만, 엔그램 세포들을 이어주는 다리(시냅스)가 부실한 탓에 기억을 불러오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이어서 연구팀이 엔그램 세포를 인위적으로 자극해 기억을 강제로 재활성화한 결과, 쥐들은 잊었던 기억을 즉시 되살려냈다. 즉 시냅스 강화가 안 돼 자연스러운 회상은 불가능했지만, 기억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것이다. ◆'숨은 기억'과 '사라진 기억'의 차이 연구팀은 건망증과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의 차이점도 관찰했다. 약물을 적게 투여해 '시냅스 연결 강도'만 약해진 경우, 외부 자극으로 기억을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백질 합성을 장기간, 강하게 억제했을 땐 상황이 달랐다. 이때는 엔그램 세포 간 '시냅스 연결 개수' 자체가 줄어들었다. 연결 통로가 단순히 좁아진 것이 아니라 아예 끊어진 셈이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엔그램 세포를 자극해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기억을 끄집어내는 회상 능력은 시냅스 '연결 강도'에, 기억을 뇌 속에 붙잡아 두는 저장 능력은 시냅스 '연결 개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불러오는 메커니즘이 시냅스의 서로 다른 구조적 특징에 영향받는다는 뜻이다. ◆기억 치료의 새로운 이정표 이 연구 결과는 건망증, 치매, 트라우마 치료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우리가 흔히 겪는 건망증이나 초기 인지 기능 저하가 '시냅스 연결 강화 과정이 일시적으로 원활하지 않은 상태'와 관련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만약 약해진 시냅스 연결을 다시 강화해 주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어떨까? 숨어 있는 기억을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특정 기억과 연관된 시냅스 연결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새로운 방식의 트라우마 치료법이 등장할 수도 있다. "아, 그게 뭐였더라?"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순간, 우리 뇌 속 엔그램 세포들은 끊어진 다리가 아니라 잠시 좁아진 길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기억은 생각보다 끈질기게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다. 단지 그 문을 여는 열쇠인 시냅스가 잠시 헐거워졌을 뿐이다. [용어 풀이]1) 시냅스: 신경세포 사이에서 전기적·화학적 신호가 전달되는 접합 구조로, 신경 회로를 구성하는 기본 연결 단위다.2) 엔그램 세포 : 특정 경험이 뇌에 남긴 기억의 흔적을 엔그램이라고 하며, 뇌 속 기억을 담당하는 세포들의 무리를 엔그램 세포라고 칭한다. KISTI의 과학향기 김청한 과학칼럼니스트
2026-03-05 12:00:00
"첫째, 나라의 일은 모두 사람이 하니 인재를 잘 골라 쓰시되 나랏일의 안팎은 거칠부가 믿음직하니 믿고 맡겨도 될 만합니다. 아울러 노리부와 같이 가야에서 온 신하도 충성스럽고 사람됨이 견실하니 중용하시기 바랍니다. 새로 신라 땅으로 만든 지역의 사람을 서라벌 사람 못지 않게 후대하여, 그들이 신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해야 하옵니다." 〈삼국지2/이사부·2 중원의 쟁투(爭鬪), 302쪽〉 신라 장군 이사부가 81세 때 진흥왕에게 다섯 가지 국가정책 중 첫째를 엎드려 간곡히 건의하는 대목이다. 나머지 건의들도 이어진다. 둘째, 화랑은 인재를 길러내는 큰 그릇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한수와 동해를 지켜야 한다. 넷째, 부지런히 신라의 강역을 순수(巡狩.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해야 한다. 다섯째, 불법(佛法)을 더 융성하게 하여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고 부처의 왕이 되어야 한다. 대구출신 문학평론가 하응백의 신간 '사국지'에서 이런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사국지'는 고구려·백제·신라, 그리고 가야를 포함한 '사국(四國)'의 쟁투와 융합을 다룬 전5권의 대하 역사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역사서나 다름없다. 철저한 고증과 절제된 상상력이 돋보인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명제의 역사가에 딱 부합한 작가가 바로 하응백이다. 500여 권의 역사서와 1,000편이 넘는 논문을 섭렵하고, 삼국시대 격전지를 수십 차례 답사하면서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하응백이 "사실 이 소설은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일종의 교양 성장 소설"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하응백은 소설가로서 역사가이다. '사국지'에서 오늘의 영남에 소환돼야 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일독한 소감으로는 '포용'이다. '사국지4/문무대왕·2개국(開國)' 308-309쪽에 나온다. 김춘추의 아들로 백제와 고구려를 합치고 당나라군을 물리친 신라 왕 법민(문무왕)이 죽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공이 있으면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상을 주었고 벼슬을 나누었다. 백성에게는 세금을 줄이고 부역을 덜어 집집마다 넉넉하게 살게 하였다. 백성은 평안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었다. 곳간에는 곡식이 산처럼 가득 찼고, 감옥에는 사람이 없어 잡초가 무성했다." 실제로 하응백은 조용호 KPI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폐쇄적인 골품제 국가였던 신라가 가야계를 받아들이고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흡수하여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이루었다"면서 "이 과정이야말로 인구 소멸과 다문화 시대를 맞이한 21세기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역설했다. "신라가 가야를 포용해 삼국통일을 이루었듯이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포용적인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16장에서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지상용 용내공 공내왕)"이라고 말했다. "늘 그러한 이치를 알면 포용하게 되고, 포용력이 있으면 공평하게 되고, 공평하게 되면 왕 노릇하게 된다"라는 뜻이다. 이는 '포용은 곧 공평·공정이며, 이는 곧 시민성(Citizenship)을 지향한다'는 의미와 같다. '포용'은 힘이 있는 강자가 힘이 없는 약자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양보나 타협의 산물도 아니다. 조직과 예산을 기여도·성과에 따라 한쪽에 치우치지 않되 비례적으로 고르게 배분하는 것이다. 과정이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균(均)'이다. '포용'은 삼국통일후 신라가 문화시대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됐다. 하응백은 이렇게 '후기(後記)에서 이렇게 밝혔다.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표현되는 화평원융(和平圓融)의 세계가, 처용이 노래하는 향가(鄕歌)의 세계가, 원효의 사상으로 구현되는 화엄(華嚴)의 세계가 활짝 열렸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에서도 '포용'이 키워드다. 대구가 경북을 포용하고 경북이 포용하면 완전한 행정통합이 이뤄진다. 포용이 이뤄지면 '민주적 시민성'은 저절로 굳건해지고 성장과 번영을 이룬다. 대구·경북 모든 시민들이 '왕 노릇'을 하게 된다.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2026-03-05 11:45:00
[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경칩 즈음, 설렁탕과 들나물
노란 꽃더미 속으로 두 남녀가 쓰러졌다. 알싸한 동백꽃(생강나무) 향기가 산기슭을 휘감는 소설 속 계절은 경칩 무렵이었다. 혹한을 견딘 땅 밑 뿌리는 생성의 기지개를 켜고, 몸 사리며 고요히 동안거에 들었던 양서류는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난다. '경칩(驚蟄)'은 원래 '계칩(啓蟄)'이었다. 중국 전한의 6대 황제 휘자(諱字)가 '계(啓)'였다. 전통에 따라 황제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야 했으므로 '열릴 계(啓)'자를 '놀랄 경(驚)'자로 바꾸게 된 거였다. 경칩에는 농사의 기초를 다지는 행사가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농사를 처음 가르쳤다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선농제(先農祭)이다. 임금은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친경'을 하였고 음식을 나누었다. 선농제에 올렸던 소를 잡아 가마솥에서 푹 끓여낸 탕을 백성에게 나누었는데 그것이 '선농탕'이고,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 문헌에 선농탕은 언급되지 않는다. 후대에 스토리텔링된 조리서의 사료 가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소고기의 단백질은 '양' 보다는 '질'에서 차이를 보인다. 소고기의 필수아미노산은 근육 단백질을 합성한다. 한방 관점에서 보면 맛은 달고 성질은 따듯하여 비토(脾土)를 보한다. '비위(脾胃)를 보하면 보해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몸을 보하고 기운을 돋우는 데 소고기를 우선했다. 고기 위주로 푹 끓여 국물이 맑은 것은 곰탕이고, 뼈를 함께 우려내어 국물이 뽀얀 것은 설렁탕이다. 봄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은 단연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을 꼽는다. 점순이와 성례를 시켜달라고 조르니 '키가 덜 자라서 안 된다'는 장인과 '나'는 기어이 싸움이 벌어진다. 상대방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켜잡고 잡아채는 장면이 우스꽝스럽다. 언 땅이 녹으면서 흙냄새가 번지고, 봄날의 생식 본능이 물씬거리는 작품 속 배경은 경칩 즈음이었다. 생강나무가 노랗게 눈을 뜨면 들판으로부터 봄이 온다. 겨우내 땅에 바짝 엎드렸던 냉이가 고개를 치켜든다. 경칩에 고로쇠 물을 마시기도 하지만 식탁에는 단연 들판에서 캔 봄나물이 주인공이다. 특히 노지에서 캔 냉이는 인삼보다 명약이라 하였다. 15세기 고문헌 '구급방언해'에 냉이를 '나시'라고 표기했다. 땅에서 벌어지는 모양의 '나(羅)'와 일찍 솟아난다는 '생(生)'의 어근과 접미사가 결합한 거로 추정한다. 지방에 따라서 나생이, 나싱이, 나숭개 등으로 불리고 있다. 냉이의 한자어는 '제(薺)'인데, '제채(薺菜)'는 '냉이 나물'을 말한다. 다른 채소보다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한 냉이는 약선으로 볼 때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해 오장을 조화롭게 하고 간에 쌓인 독소를 풀어준다. 냉이는 약재이며 식재였기에 일상에서 국을 끓이고 죽을 쑤어먹으며 몸을 보했다. 중국에서는 만두와 춘권을 빚을 때 냉이를 넣어 양기를 보충했고, 일본에서는 봄맞이 칠종채(七種菜)에 냉이가 자리한다. 경칩 무렵에 설렁탕 한 뚝배기로 기운을 돋우고, 들나물 무침 한 접시로 상을 차리면 그야말로 신선이 부럽지 않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 멧비둘기 소리 나니 버들 빛 새로와라 -중략-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2월령 부분
2026-03-05 11:45:00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65년 11회>금상 강해용 작 대독(代讀)
햇볕이 쨍쨍내리는 여름날 오후.할머니는 우체부가 대문 앞에 던져두고 간 편지봉투 하나를 손에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했지만 그 편지가 단박에 월남전에 참전한 작은 아들이 보낸 군사우편임을 직감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글을 배우지 못했다. 배움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는 채 가방도 내려놓기 전,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끌려 마당 한구석 담벼락 아래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 삼촌이 보낸 편지예요." 손녀는 봉투를 뜯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어머니, 저는 잘 있습니다…"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손녀의 목소리는 아직 앳되었지만, 단단함이 묻어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겉봉투를 보다가 손녀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날이 많이 덥습니다. 하지만 저는 건강합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된장과 고추장이 큰 힘이 됩니다…" 할머니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된장을 담그던 날, 혹여 상할까 염려하며 항아리 뚜껑을 몇 번이나 열어보았던 기억이 스쳤다. 전쟁이란 것이 총과 포성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도 장맛이 아들을 살리고 있다니, 그제야 숨이 조금 놓였다.손녀가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 그 소리는 단순한 글자가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화가 빗발치는 정글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머니 이름을 부르는 아들의 생생한 목소리였다. 손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읽었다. "밤이 되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꼭 돌아가 효도하겠습니다." 그 대목에서 할머니의 눈물이 툭, 무릎 위로 떨어졌다. 효도라는 말이 이토록 먼 약속처럼 들린 적이 있었을까. 살아 돌아오는 것, 그것 하나면 족했다. 효도는 그 다음의 일이었다. "할머니… 삼촌이 금방 온대요.".할머니는 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 거칠고 마른 손과 아직 살결이 보드라운 손이 포개졌다. 강해용 작 '대독(代讀)'에서 글자를 아는 손녀와, 오직 자식 걱정뿐인 어머니가 만나 비로소 아들의 '무사함'이라는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2026-03-05 11:40:00
〈strong〉〈가로 풀이〉〈/strong〉 1. 물 따위에 떠 있거나 섞여 있는 것이 바닥으로 내려앉다. ↔ 뜨다. 3.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두다. =놓아두다. 꽃병을 제자리에 ○○○○. 7. 널리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 가곡이 아님. 노래방에 가서 ○○ 몇 곡을 불렀다. 8. 식물이 2년 이상 생존하는 일. 또는 그런 식물. =여러해살이. 9. (꿀이나 사탕처럼) 당분이 있는 것의 맛. =감미. ○○ 쓴맛 다 보았다.(속담) 12. 힘이 모자라서 복종함. =굴종. 그들은 탄압에 ○○하지 않았다. 13. 삼실로 짠 피륙. =마포. 17. 껍질을 벗기기 위하여 닥나무를 넣고 찌는 구덩이나 솥. 18. 셋 이상의 직선으로 둘러싸인 평면 도형. =다변체. 19. 물건이나 재화 따위를 모아서 간수함. =갈무리. 비축. 22. 때나 먼지 따위가 많이 끼어 있는 모양. 큰말은 '덕지덕지' 23. 돼지를 가두어 기르는 곳. =돈사. ○○○○에 주석 자물쇠.(속담) 〈strong〉〈세로 풀이〉〈/strong〉 1. 숨이 거의 끊어질듯 하면서 가늘게 남아 있는 소리 또는 그 모양. 2.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앉으라는 구령. 제자리에 ○○! 4. 매우 먼 옛날. 그들에게는 ○○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이 있다. 5. 다시마를 넣고 끓인 국. =곤포탕. 아침상에는 ○○○○과 고기볶음 한 접시가 올라왔다. 6. 여러 해 동안. 우리 선생님은 고대사를 ○○○ 연구하신 분이다. 10. 생긴 얼굴에 어울리는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인물값. 제발 ○○○ 좀 하십시오. 11. 환자의 체온을 조절을 하기 위하여 찬물, 얼음물, 더운물 등을 넣어 쓰는 고무나 방수포 베개. 14.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모양. 그녀는 머리를 ○○○○ 나누어서 땋아 내렸다. 15. =다양화. 그 회사는 수출 품목의 ○○○에 힘쓰고 있다. 16. 둘레나 끝에 해당되는 부분. 그는 침대 ○○○○에 걸터앉았다. 20. 물체의 밑 부분. =밑. 밑면. 그녀는 부엌 ○○에 신문지를 깔고 나물을 다듬었다. 21. 사람의 두 팔과 두 다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 =팔다리. 그는 ○○가 멀쩡한 사람이다. ◆〈strong〉8회 정답〈/strong〉 〈strong〉〈응모요령〉〈/strong〉 ▶낱말맞히기 정답 공모(이름·휴대폰 번호·주소를 반드시 기재) ①우편엽서 ②이메일: mincho@imaeil.com ▶당첨자는 지면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 ▶보내실 곳: 대구시 중구 서성로 20 매일신문 주간본부(우편번호 41933) ▶당첨자는 본지 지면 발표
2026-03-05 11:30:00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1957년 3월5일,6일 맑음
단기 4290년(1957년) 3월 5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공부 때문에 청소만 하고 세수를 하지 못하고 학교로 왔다. 오늘은 우리 학교 선생님께서 각 학교에 파견 가시어 돌아오시지 않아서 공부는 하지 않고 청소를 깨끗이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올 적에 무궁화사진관(無窮花寫眞館)을 거쳐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 "앨범"을 만들다가 점심을 먹고 이발관(理髮館)에서 여러 가지 우스운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재미있게 놀다가 집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소죽을 끓였다. 소죽을 끓인 후 공부 조금 하다가 저녁을 먹고 태욱이네 집에 가려고 모든 준비하던 차에 태욱이와 정용이와 화욱이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재미있게 놀다가 그들은 집으로 가고 나는 오늘 그렇게 노는 바람에 공부하지 않아서 오늘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잤다. 단기 4290년(1957년) 3월 6일 수요일 맑음 오늘은 특별(特別)히 일찍 일어나 어저께 완수하지 못한 공부 다 마치고 세수하고 아침 청소한 뒤 아침을 먹었다. 공부 조금 하다가 태욱(泰煜)이네 집에 가서 공부를 한 시간 하고 뒷마을에 놀러 갔었다. 뒷마을에 가서 얼마쯤 놀다가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은 뒤 뒷마을에서 권투, 발차기 등을 하면서 재미있게 놀다가 "불알"을 정용(正龍)이 에게 차여서 한동안 아프게 되었다. 집에 와서 공부하다가 저녁을 먹은 후 공부하고 또 뒷마을로 놀러 갔다가 빨리 집에 돌아와 오늘 할 일을 완수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2026-03-05 11:30:00
[뉴스로보는 고사성어]<10>좌고우면(左顧右眄),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한다"
"좌고우면한 신규 원전…건설 절차 다잡아야; 경찰…좌고우면 않고 진실 밝힐 것" 등등, 사회에서 직무의 기강과 방향이 흔들릴 때 많이 쓰는 사자성어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은, "왼 좌, 돌아볼 고, 오른 우, 곁눈질할 면"으로,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한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태도를 비유한다. 원래는 좌우를 살펴봐도 "이만한 게 없지?"라는 식으로 자신만만한 태도를 뜻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앞뒤를 재며 망설이는, 결단력 없는 우유부단함을 비판할 때 사용한다. 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曹操)가 낳은 가장 똑똑한 아들 조식(曹植, 192~232, 자는 자건(子建))의 글을 모은 『조자건집』(曹子建集)에 나온다. 즉 조식이 박학다식했던 오질(吳質, ?∼230, 자는 계중(季重))에게 보낸 편지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 이렇게 있다. "한고조의 명신인 소하(蕭何)와 조참(曹參)도 그대에 미치지 못하고, 한무제의 명장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도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하여도(左顧右眄)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니, 어찌 군자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 글은 『문선』(文選)에도 실려있다. 이후 '좌고우면'이란 말은 송대 홍매(洪邁, 1123∼1202)가 지방관으로 다니면서 수집하고 들은 이야기를 모은 『이견지』(夷堅志)의 「정지(丁志)・6/사치보(奢侈報)」에도 나온다. 그런데, 좌고우면은, '면' 대신에 '반' 자를 써서, '좌고우반'(左顧右盼)으로 하기도 한다. 즉 당나라 때의 이백의 시 '주필증독고부마'(走筆贈獨孤駙馬: 빨리 흘려 써서 독고 부마에게 주다)나,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의 영향을 입은 이지(李贄, 1527~1602년)의 『분서(焚書)』나 풍몽룡(馮夢龍, 1574∼1646)의 『경세통언』(警世通言)에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좌고우면은 뇌과학이나 심리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살필 고(考)'는 보통 긍정적, 중립적인 말인데 '곁눈질할 면(眄)'은 특별한 감정을 담아 슬쩍 '흘겨보는' 것으로, 서로 대비된다. 면과 유사한 말로는 '반(盼), 혜(盻), 예(睨)' 등이 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옆으로 흘겨보는 눈을 흔히 '가자미눈'이라고 한다. 특히 오른쪽 눈으로 흘겨보는 행동은 심리학적, 관상학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풀이된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옆으로 움직여 쳐다보는 행동은 호기심이나 의심, 심리적 경계나 불신, 비꼼이나 경멸, 비판적인 태도를 나타내며 사이드 아이(side-eye)라고도 한다. 상대방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믿지 못할 때 보이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우리나라 지폐의 초상화나 사당에 그려진 인물상에는 대개 왼쪽 어깨를 더 많이 드러낸 왼쪽 측면상이다. 화가들은 무의식중에 오른쪽보다는 왼쪽 측면상을 그린단다. 이것은 우뇌와 오른손잡이의 합작품이다. 다시 말해서 좌고우면의 '좌고'는 좌뇌와 관련돼 '추리-이성적-분석적 능력'을, '우면'은 우뇌와 관련돼 '직관-추상적-감성적 능력'을 알려준다고 본다. 어쨌든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하며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말고, 다들 제자리에서 당당하게 앞만 똑바로 보고 가면, 어딜 가든 문제 될 게 없다.
2026-03-05 11:30:00
재단법인 해강대성장학회(이사장 김영대, 대성 회장)는 26일 대성산업 대구사옥에서 2026년도 제26기 장학증서 및 장학금 수여식을 갖고, 29명에게 1억 8백여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해강대성장학회는 고(故) 김수근 대성 명예회장이 2000년 12월에 설립하여 대구지역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지난해까지 1,543명에게 장학금 29억여원을 지급한 바 있다.
2026-02-26 16:54:14
〈strong〉〈가로 풀이〉〈/strong〉 1. 낳은 정보다 ○○ ○이 더 크다: 길러 준 정이 낳은 정보다 크고 소중함. 5. 백정이 ○○ ○○를 하면 개가 짖는다: 겉모양을 잘 꾸미어도 본색은 감추기 어려움. 7. 남편 복 없는 여자는(년은) ○○ ○도 없다. 9. 개똥참외도 ○○가 있다: 어떤 물건이든 다 임자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0. 도둑질을 하더라도 ○○ 바람에 거드럭거린다. 13. 과부가 ○○에 곯는다.홀몸이라고 먹는 것을 부실하게 하여 허약해진 과부가 많다는 말. 14. 동네마다 ○○아들 하나씩 있다: 많은 것 가운데는 좋은 것도 있지만 나쁜 것도 있다. 16. 남의 집 ○○○ 않는 군자 없다. 19. ○○ ○ 먹고 파장 간다: 때를 놓치고 늦게야 행동을 시작함. =식전에 조양이라. 21. 달아나는 노루 ○○ ○○ 토끼를 놓았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도리어 손해를 봄. 22. 꽃이리에 ○○○ 핀다: 꽃들이 한창 피어나는 봄철에 바람이 몹시 부는 것. 23. 귀신은 경으로 ○○ 도깨비는 방망이로 뗀다. 〈strong〉〈세로 풀이〉〈/strong〉 1. 낫 놓고 ○○ ○도 모른다: 사람이 글자를 모르거나 아주 무식함. 2. ○○ 밥 먹고 열네 닢으로 사정한다. 남에게 으레 주어야 할 것을 조금이라도 덜 주려고 몹시 비굴하게 군다는 말. 3. 개도 ○○한다: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음. 4.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 ○○ 떡 한 개 더 준다. 6. 남의 다리에 ○○ 친다: 기껏 한 일이 결국 남 좋은 일이 됨. =남의 발에 감발한다. 8. 남의 더운 밥이 내 ○○ ○만 못하다. 11. 거지는 ○○○에 살찐다: 아무리 어려운 사람이라도 무언가 한 가지는 사는 재미가 있다. 12. 금강산 구경도 ○○○이라. =나룻이 석 자라도 먹어야 샌님. 13. 남의 잔치 상에 ○○을 끼얹는다: 남의 좋은 일에 심술궂게 방해함. 15. 기생 ○○ 넋: 다 낡아 못 쓰게 되었어도 아직 볼품은 있음. 17. ○○ ○○ 쐐기를 깎아라. =이불깃 봐 가며 발 편다. 18. 고양이 간 골에 ○ ○○ ○: 겁이 나거나 놀라서 숨을 죽이고 꼼짝 못하는 모양. 19. ○○○이 용마름을 벗긴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 20. 거지가 ○○이나 먹게(뜨게) 되면 거지 밥 한 술 안 준다. ◆〈strong〉7회 정답 〈/strong〉 〈응모요령〉 ▶낱말맞히기 정답 공모(이름·휴대폰 번호·주소를 반드시 기재) ①우편엽서 ②이메일: mincho@imaeil.com ▶당첨자는 지면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 ▶보내실 곳: 대구시 중구 서성로 20 매일신문 주간본부(우편번호 41933) ▶당첨자는 본지 지면 발표
2026-02-26 12:30:00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2월 18일 월요일 맑음후 눈
〈strong〉단기 4290년(1957년) 2월 18일 월요일 맑음후 눈〈/strong〉 요사이는 웬일인지 그렇게 일찍 깨어지지 않았다. 오늘도 늦잠을 자고 밖을 내다보니 눈이 솔솔 뿌리고 있었다. 청소하고 "스크랩 북"을 보려고 할 때 아침상이 들어 와 세수도 하지 못하고 학교(學校)로 왔다. 학교에 오는 도중 불이 잔디에 붙어 타고 있어 추운데 불도 끌 겸해서 쬐다가 불을 끄고 학교에 왔다. 학교에 와서 난로에 손을 녹여서 변강정(邊康政)의 만화책을 보았다. 만화책을 보고 조회한 뒤 공부시간으로 들어와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오늘 조회 시에 담임선생님께서 "오늘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극장 구경 간다"고 하여 오전 수업을 마치자 극장으로 빨리 와 극장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밖에는 보스락보스락 눈이 내리고 있다. 극장에 들어간 뒤 몇 시간 후에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제일 많이 들어왔다. 영화(마이태자)를 본 후 극장 밖을 나왔을 때 눈은 오지 않고 햇님이 구름 속에서 뽀죽이 내밀었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하여 태욱이와 같이 빨리 집으로 와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 공부 조금 하다가 경식(敬植)이네 집으로 가서 재미있게 놀다가 집에 돌아와 오늘 할 일을 완수하고 잤다.
2026-02-26 12:00:00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오, 사랑하라! 사랑할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시간이 오리니, 시간이 오리니/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피아노곡 '사랑의 꿈(Liebestraum)'으로 더 익숙한 이 작품은 원래 가곡으로 리스트가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리스트는 이 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연인인 카롤리네에게 연주해주었다고 한다. 카롤리네는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3만 명이 넘는 일꾼을 거느린 대농장 소유주의 무남독녀로, 재물로는 남부러울 게 없었으나 귀족 칭호에 목말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 되었다. 리스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공작부인이었던 그녀는 그와 함께 사랑의 꿈을 이루고자 이혼절차에 돌입한다. 정확히는 혼인무효소송. 로마가톨릭교회는 혼인을 '성사(聖事)'로 보기에 '첫 결혼의 무효 선언'이 있어야 재혼할 수 있었다. 당시 혼인 무효 사유로 주장되었던 것은 '폭력과 위협'으로 카롤리네는 남편인 공작과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협박했던 일과 자신의 주임신부가 아닌 신부를 내세워 결혼을 성사시킨 일을 들어 혼인 무효를 주장했다. 교구청은 혼인 무효를 인정했으나 이러한 1심판결은 관할 문제로 추인이 필요했고, 카롤리네가 외국인인 리스트와 결혼함으로써 그녀가 가진 막대한 재산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에 반감을 품은 러시아 황제의 압력 등이 작용하면서 추인은 수차례 거절되었다. 자신의 부(富)가 걸림돌이 되자 그녀는 사실상 모든 재산을 포기하는 것으로 무려 12년에 걸친 소송을 끝내고 로마에 있는 성당에서 리스트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그런데 가톨릭 결혼식에서는 일정 기간 결혼에 관한 공지를 해야 하고 그 기간에는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 이의를 제기한 이는 자신의 결혼을 앞둔 그녀의 딸이었다. 공작부인의 혼인 무효는 딸의 재산권까지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그녀는 결국 소송을 포기했고, 그것으로 리스트의 인생에 결혼은 영영 없는 일이 되었다. 최근 그 빈도가 줄었다고는 하나 국내 취업을 위한 국제결혼은 사회 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의 합치가 없다는 점에서 무효이다. 외국인의 국내 취업 이외에도 가족수당 수령, 해외 이주 등 혼인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편에 불과한 경우 그러한 가장혼인은 무효이다. 반면 IMF 구제금융 당시 강제집행을 면하고자 혼인생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부부들의 경우 이러한 가장이혼은 유효하다. 혼인의 의사가 없는 혼인은 무효인데, 이혼의 의사가 없는 이혼은 무효가 아니다. 채무 회피, 세금 경감, 한부모 자녀 혜택 등 현실에서 가장이혼의 사유는 다양하다. 조금 결이 다른 얘기지만 혼인의사도 있고 혼인생활도 실질적으로 있는데 혼인신고만 하지 않은 경우가 사실혼이다. 최근 언론에서 '위장미혼'이라고 떠들썩했던 그것. 결혼식도 올리고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는데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를 법률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실혼이라고 한다. 대출 특례니 청약가점을 위한 경우도 있고 혼인연령이 늦어지면서 각자 보유한 집 한 채가 합쳐질 경우 당장 감당해야 할 세금을 피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혼인신고만 하지 않은 사실혼의 경우 생전의 재산분할청구는 가능하지만, 법적 배우자가 아니므로 상속권이 없다. 가장혼인이 무효인 것은 혼인을 통해 주어지는 상속권 등 법적 권리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스스로 법적 보호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경우라면 법이 나서서 막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가장이혼은 유효하다. 국제결혼으로 입국 후 공항에서 사라진 며느리가 아들 사망 소식을 듣고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할 때 혼인이 무효가 되지 않으면 부모는 생면부지의 며느리에게 아들의 목숨값이기도 할 상속재산 3/5을 빼앗기고 만다. 14년을 연인으로, 그중 12년의 지난한 혼인무효소송을 함께 했고 모든 재산을 사실상 포기한 그녀와 행복한 결혼식을 꿈꾸었던 50세의 리스트. 딸을 위한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 그는 사제가 되었고, 그녀는 수녀원에 거처를 마련했다. 아마도 이들은 그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던 듯하다.
2026-02-26 12:00:00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64년 10회>장려상 이창원 작 '아프다'
1960년대, 치과병원이 흔치도 않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시절, 대구경북 각 가정에는 치과 의사보다 더 무서운 '실'과 '문고리'가 있었다.햇살이 잘 드는 툇마루는 집안의 작은 수술실이다. 철수가 밥을 먹다 "아얏" 소리를 내며 입속에 치아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눈치를 챈 어머니는 철수를 불러 앉히고는 실 한 가닥을 길게 뽑아낸다.치아를 뽑는 도구는 소독된 의료기기가 아니라 어머니의 반짇고리에 있던 튼튼한 무명실이었다.그러고는 혀로 자꾸만 밀어내고 싶은 그 작은 치아의 밑동에 실을 단단히 옭아맨다.철수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듯 그렁그렁 맺힌다. 공포에 질려 몸은 석상처럼 굳어 꼼짝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있다. "하나도 안 아파, 금방 끝날 거야"라는 엄마의 거짓말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싶지만 가장 믿기 힘든 말이었다. 엄마는 실의 한쪽 끝은 치아에, 나머지 한쪽 끝은 방문의 낡은 문고리에 묶는다. 철수는 문 앞에 뻣뻣하게 굳어 서 있고, 어머니나 아버지는 방문 너머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철수야, 저기 하늘에 까치 봐라!" 시선을 돌리는 찰나,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힌다. 잠시 뒤 입안에서 느껴지는 찝찔한 피맛과 함께, 문고리에는 방금까지 내 몸의 일부였던 하얀 치아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아픔은 잠시, "다 뽑았다!"는 성취감과 함께 입안엔 솜 뭉치가 훈장처럼 꽉 채워진다."잘했다." 그 한마디가 상처 위에 덮이는 반창고였다. 어머니는 철수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 뽑힌 치아를 낡은 초가나 기와지붕 위로 던지게 했다."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이창원 작가의 '아프다'의 작품은 당시 아이들이 느꼈던 공포와 긴장감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으며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26-02-26 12:00:00
[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악질 제국주의와 저질 제국주의
덴마크 국왕이 자치령 그린란드를 방문했다. 트럼프의 편입 욕구를 견제하고 단결과 통합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는데 글쎄다. 덴마크가 이 섬에 대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국주의라는 단어는 대략 1945년을 전후로 사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후에도 옛날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패악을 일삼은 두 나라가 있으니 프랑스와 덴마크다. 프랑스는 악착같이 식민지를 내려놓지 않고 버티던 나라다. 결국 알제리와 베트남에서 추한 꼴을 보이고 철수했다. 반면 저항력이 떨어지는 서북부 아프리카의 전(前) 식민지 14개국은 현재도 여전히 반(半)식민지 상태로 관리하고 있다. 이들 아프리카 각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의 최소 65%를 프랑스 재무부 '운영 계정'에 보관해야 한다. 프랑스 재무부는 이 돈을 제 것처럼 파리 증권거래소에 투자해 이익을 챙긴다. 반대로 아프리카 나라들은 자기 돈을 쓰는데도 프랑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풀이 개를 뜯을 소리다. 프랑스의 자유는 아프리카 인민들의 피로 굴러간다. 프랑스는 내가 아는 동서고금 가장 악질적인 제국주의 국가다. ◆〈strong〉그린과는 1도 관계없는 그린란드의 역사〈/strong〉 프랑스가 제국이었던 것은 알겠는데 덴마크가 왜 제국이냐 물으실 수 있겠다. 바이킹 시대 덴마크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쥐락펴락하며 북해제국을 건설했다. 가톨릭과 신교가 충돌했던 독일 30년 전쟁에서 심각한 패전을 겪기 전까지 유럽 강대국의 당당한 일원이었으며 19세기에도 인도 일부와 인도네시아 일부를 식민 지배했다. 인구가 적다는 단점 때문에 마음껏 욕심을 실현하지 못하고 소규모에 머물렀지만 제국 맞다. 일단 덴마크와 그린란드 관계부터 보자. 그린란드의 역사는 살인자 부자(父子)에서 시작된다. 노르웨이 바이킹 토르발트는 사람을 죽이고 아이슬란드로 도망친다. 얼마 안 가 이번에는 아들이 또 사람을 때려죽이고 3년 추방을 선고받는다. 그 유명한 '빨강 머리 에이리크'다. 에이리크는 북동풍이 부는 바다 서쪽으로 800킬로미터를 항해한 끝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된 땅을 발견한다. 이게 그린란드다. 세 번의 겨울을 나고 아이슬란드로 돌아온 에이리크는 자신이 있던 곳을 그린란드라고 소개한다. 아이슬란드 바이킹들은 이름에 속아 대거 그린란드로 이주한다. 원주민인 에스키모가 있었지만 피차 서로 뺏어먹을 게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관심한 평화는 이어졌다. 15세기 무렵 날씨가 더 추워졌고 아이슬란드 바이킹이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원주민인 에스키모만 남게 된다. 18세기 중반 노르웨이는 덴마크 왕과의 동군(同君)연합인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이었고 덴마크 왕이 노르웨이 왕을 겸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그린란드는 덴마크령으로 넘어간다. 현재 덴마크 정부와 그린란드 자치 정부 역시 동일한 국왕을 군주로 모시는 동군연합 형태다. 그러나 말이 좋아 동군연합이지 사실상 종속국이다. 그린란드는 외교권이 없다. ◆〈strong〉이런 사실을 알고도 덴마크를 지지할 수 있을까〈/strong〉 1950년대 초 덴마크는 그린란드 원주민을 상대로 끔찍한 실험을 한다. 원주민 아이들 22명을 데려와 완전 덴마크식으로 양육한 사회실험이었는데 목적은 '덴마크화된 엘리트' 양성이었다. 참담한 실패였다. 아이들은 정체성을 잃고 방황했고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망가졌다. 이건 다음에 덴마크가 벌인 일에 비하면 약소하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덴마크는 원주민들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건강, 사회비용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동의도 없이 그린란드 여성들의 자궁에 피임장치를 삽입하거나 호르몬 피임을 시행했다. 전체 가임 여성의 절반인 4,500여 명이 이 짓을 당했다. 피해자 중에는 12세 소녀까지 있었다. 오지의 미개 집단도 아니고 무려 복지국가 덴마크가 벌인 만행이다. 덴마크는 내가 아는 동서고금 가장 저질스런 제국주의 국가다.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의사에 대해 국제적인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찬성하는 현지인들은 덴마크가 자기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안다면 세계 여론이 바뀔 거라 말한다. 매우 동의한다. 이참에 한 번 갈아타는 것, 충분히 고려해 볼만 하지 않을까.
2026-02-26 12:00:00
▶세계 명작 인형극 〈잭과 콩나무〉 1월 28일~3월 2일 화~금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 토~일요일·공휴일 오전 11시30분·오후 1시30분 ·3시30분 대백프라자 5층 레오문화홀 입장료 6천원~1만원 / 문의 053-420-8050 명작동화 『잭과 콩나무』를 인형극으로 풀어낸 가족 공연이다. 가난한 소년 잭이 마법의 콩으로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통해서 용기와 선택의 의미를 전한다. 손인형과 오브제 인형, 자이언트 인형 등 다양한 인형이 등장한다. ▶아양아트센터 기획 경북도립국악단 신춘 국악 콘서트 '동풍' 2월 27일 오후 7시30분 아양아트센터 아양홀 입장료 1만원 / 문의 053-230-3311 아양아트센터가 초청한 경북도립국악단이 박경현의 지휘 아래 신춘 국악 콘서트를 연다. 국악관현악 '우리비나리', 양금 연주자 박봄이가 협연하는 '시나위', 국악단 무용팀의 작품과 소리꾼 김산옥의 무대가 이어진다. 국악관현악 '신모듬 3악장-놀이'를 사물 협연으로 마무리한다. 성악 앙상블 로만짜도 함께한다.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기획기증작 특별展 '이음' 2월 12일~3월 29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스페이스하이브 1-3전시실 문의 053-430-7682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이 2025년 기증자들의 사회적 공헌을 기리는 '기증작 특별전: 이음'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인 기증자 김영길(전 영진전문대학교 교수), 박은미(천석 박근술 유족)를 비롯해 신준민, 이재호(2025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청년작가)의 기증작, 기관 기증자 리안갤러리의 기증품을 함께 소개하며 회화·사진·서예 등 65여 점이 전시된다. 1전시실에서는 한국 수채화의 거목 이경희 작품을 중심으로 강운섭, 권영호 등 지역 미술의 폭과 층위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전시실에서는 영남 서화의 계보가 한눈에 이어진다. 석재(石齋) 서병오, 긍석(肯石) 김진만, 죽농(竹農) 서동균, 천석(千石) 박근술의 작품을 전시한다. 3전시실은 동시대 미술의 장르적 확장과 감각을 제안한다. 리사 루이터(Lisa Ruyter), 러셀 영(Russell Young), 고명근, 김두진, 차규선, 곽승용, 류현욱, 신준민, 이재호의 작품을 소개한다.
2026-02-26 12:00:00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건축의 거장 안토니 가우디(1985~1926)는 이처럼 자연을 건축의 교본으로 삼았다. 자연을 이상적인 건축으로 추앙했던 셈이다. 이같은 면에서 포천에 세워진 '포천아트밸리'는 참 아이러니한 건축이다. 인간의 손으로 파괴한 자연을 인간의 손으로 재건했다는 게 묘한 뒷맛을 남긴다. 하지만 가우디의 말처럼 최고의 건축은 자연인지라, 비록 흉터는 있지만 원래 자연이었던 이곳은 지금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포천아트밸리의 탄생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포천은 중생대 화산폭발의 흔적이 남아 예로부터 질 좋은 화강석 생산지로 유명했다. 일명 '포천석'이라 불리우는 화강석은 고급 건축 마감재로 쓰였다. 포천석 생산지 중에서도 신북면은 특히 최상품 산지로 인정을 받은 덕에 1980년대 말까지 포천석 채굴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며 채굴량이 급격히 줄고 저가 중국산이 물밀듯 수입되면서 점차 사양길을 걷게 됐다. 이 때문에 신북면 일대는 화강석을 캐다가 버려 두고 간 폐석산으로 황폐화되다시피 변해갔다. 여기저기 깎여나간 산들은 흉측한 생채기를 드러낸 채 버려져 주변 경관을 망쳐 놓는다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문제 해결을 고민하던 포천시는 차라리 폐석산을 문화공간으로 개조하자는 역발상을 하면서 각종 문화시설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2009년 그렇게 포천아트밸리가 탄생하게 된다. ◆상처 난 자연도 훌륭한 건축이 된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완벽히 복구할 수 없다. 신의 창조물이기에 감히 불가능한 일이다. 포천아트밸리 역시 복구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모방에 가깝다. 포천아트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천주호'는 인공호수다. 화강석을 캐다 생긴 울퉁불퉁 대형 구덩이가 모티브가 됐다. 이곳에 물을 담으면 호수처럼 보일 것이란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실제로 구덩이를 다듬어 지하수와 빗물을 채우니 멋진 호수가 만들어졌다. 마치 원래 있던 호수처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호수는 채굴로 산자락이 깎여나간 수직 절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생각지 못한 자연미를 뿜어낸다. 사실 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원래 계곡이 있었던 건 아니다. 채굴 기계의 고강도 칼날에 산이 깎여나가며 생긴 자국으로 알고 보면 깊은 상처다. 인공적이지만 인공적으로 보이지 않는 게 의아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어쩌면 아트밸리에 건축의 미학을 집약했다고 볼 수 있다. 포천아트밸리의 또 다른 아이러니라면 건축자재를 생산하던 곳이 건축으로 재탄생한 사실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처 난 자연을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비롯된 우연의 결과다. 천주호 주변에 조성된 조각공원과 각종 공연장은 인공호수와 석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공연장에서 바라보면 천주호와 석벽은 멋진 배경이 될 뿐 아니라 음향장치가 된다. 시 관계자는 "공연장은 석벽에 의한 음향효과를 고려해 설계됐다"며 "이곳에서는 독특한 울림 현상이 나타나 더 큰 호소력을 만들어낸다"고 귀띔했다. ◆건축에 숨은 '치유의 힘' 건축가와 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이른바 '그린 디자인' 효과로, 녹색 식물과 자연음, 개방적 공간, 유기적 형태, 자연 색상 등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포천아트밸리는 설계 때부터 이런 점들이 고려됐다. 시 관계자는 "기획 단계에서 100여 명의 자문위원을 두고 공익성을 논의했는데 이때 나온 안이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치유의 시간을 누리는 공간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곳은 자연물에 인공물을 덧댄 구조다. 석산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놔둔 채 필요한 문화시설을 군데군데 조화롭게 배치해 놓은 느낌이다. 어디서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게 이곳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인공물인 문화시설도 대부분 목재가 쓰였고 색상도 눈에 피로감을 덜 주도록 고려됐다. 많은 전문가의 자문이 설계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에 한번 더 치유를 받는다. 포천아트밸리의 탄생비화는 '건축의 화룡정점'이라 할 말만큼 힘을 가진다.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투성이 폐석산이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이야기는 이곳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왜 한 해 수십만 명이 이곳을 찾아 위로받고 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포천아트밸리 관계자는 "많은 관람객이 이곳의 풍경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곳이 조성되게 된 뒷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전했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경인일보 최재훈기자
2026-02-26 11:30:00
[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5>항구의 이별시 '목포의 눈물'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애창곡이었다. 그것은 암울한 시절의 체념적 희망가이자 저항적 위안가이기도 했다. 한국 문학사와 대중가요사에서 '목포항'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이별,상실,유랑,그리움의 정서가 얼룩진 근대사의 시린 상처가 응축된 상징 공간이다. '목포의 눈물'은 그렇게 정한의 미학과 절제된 비감을 머금은 일제강점기 서정시의 감성을 대중가요로 변주한 것이다. 한반도에 본격적인 트로트 전성시대를 개막한 '목포의 눈물'은 가사의 탄생부터가 특별했다. 1935년 발표한 '목포의 눈물' 가사는 공모작이다. 오케레코드사와 조선일보의 향토색이 담긴 노래 보급을 위한 가사 모집 공고에서 장원을 차지한 사람은 목포의 문학 청년 문일석이었다. '새악시' '아롱진 옷자락'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등의 문학적 수사가 뛰어난 노랫말이 그렇게 탄생했다. 일제 수탈의 상징적 항구인 목포를 망국의 설움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은유한 것이다. 18세의 목포 여인 이난영의 노래가 망국민의 가슴에 봇물처럼 스며드는데 일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2절 가사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구절을 문제 삼았다. 임진왜란의 참상과 구원(舊怨)을 뜻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으로 가사를 바꾸는 촌극을 벌였다. '삼백연 바람이 편안하게 분다'는 뜻이라고 둘러댄 것이다. 그래도 노래는 '삼백년 원한 품은'으로 통하며 민족사의 원한을 재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임 그려 우는 마음'은 한 여인의 애정 어린 감성을 넘어 조국 광복의 열망을 시사한 것이다. 게다가 이난영의 처연한 음색이 가슴 속 켜켜이 쌓인 식민지 대중의 설움을 위무했다. 목포는 군산과 함께 식민지 강탈의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그래서 '목포의 눈물'은 곧 민족의 정한과 설움의 토로였다. 1930년대 말 모더니스트 시인 김기림은 일제강점기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바다와 나비'라는 시로 읊었다. 수심을 알 수가 없는 바다를 청무우밭으로 여기고 내려갔던 흰나비가 날개가 절어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시퍼런 바다는 일본 제국주의이고 흰나비는 가녀린 식민지 조선의 백성이었다. 광복의 이상을 품고는 있지만 거대한 식민권력 앞에 무력한 지식인의 고뇌와 한계의 토로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감,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처절한 괴리감이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는 표현을 넣은 것이다. '목포의 눈물' 속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이 '시린 나비의 허리'로 변용된 것이다. 조명암이 노랫말을 쓴 이난영의 노래 '목포는 항구다'(1942) 역시 '목포의 눈물'이 지닌 망국과 망향의 정서가 일렁인다. 남인수와 더불어 초창기 대중가요계의 트로트 전성시대를 풍미했던 불멸의 가인 이난영의 삶도 노랫말 그대로 '아롱젖은 옷자락'이었다. '애달픈 정조'였다.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남편 김해송이 납북되었고, 첫사랑 남인수와의 재회도 오래가지 못했다. 쓸쓸한 여생에 드리워진 처연한 실루엣. 근현대사의 격랑에 휩쓸렸던 민중의 삶 모두가 '목포의 눈물이었다. 대중문화평론가
2026-02-26 11:30:00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9> 혼비백산(魂飛魄散), "넋이 날아가고 얼이 흩어지다"
"거대 고드름 추락에 혼비백산…78도 술 마시고 혼비백산" 등등, 요즘 자주 쓰이는 말이 혼비백산이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은, '넋 혼, 날 비, 얼 백, 흩어질 산'으로, "넋이 날아가고 얼이 흩어지다"라는 뜻이다. 몹시 놀라거나 두려워서 정신을 못 차리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를 나타낸다.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에서는 사람의 몸이 '하나의 기운' 즉 '일기'(一氣)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일기는 소극적 활동의 물질적 에너지인 음기(陰氣)='백(魄)'과 적극적 활동의 정신적 에너지인 양기(陽氣)='혼(魂)'으로 결합해 있다고 보았다. 혼과 백이 조화를 이루면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이루며, 부조화되거나 분리해 버리면 병이 나거나 죽게 된다고 보았다.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 백은 '얼'로, 혼은 '넋'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얼'은 무겁고 비활동적이기에 지상으로 흩어져서 가라앉는 성질을, '넋'은 가볍고 활동적이라 천상으로 떠올라 날아다니는 성질을 갖는다. 그래서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진다는 '혼비백산'이란 말이 생겨났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춘추좌씨전』에 '혼백'이란 말이 보이긴 하나 이즈음에 '혼비백산'이란 사자성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처음 혼비백산이란 말이 등장하는 것은 –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 당나라 초기의 한의학자인 손사막(孫思邈, 541~682)의 『천금요방』(千金要方)에서다. 이후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율곡집』, 『여유당전서』 등에도 등장한다. 물론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는,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 일찍이 사람이 죽으면 "혼(=넋)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얼)은 땅으로 흩어진다"라는 암묵지를 갖고 있었다.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보자. "백골이 진토(塵土)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라 하지 않던가. 그리고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이 하늘로 날아가고 백이 황천에 떨어져서…"(人之死也 魂飛於天, 魄落於泉…)라고 하였다. 이 혼비백산을 근거로 제사나 명당의 원리가 설명된다. 동아시아에서는 인간의 의식을, '양-음' 배열로 3층의 구조로 나눈다. 즉 표층에 〈의(意)-지(志)〉가, 중간층에 〈혼-백〉이, 최저층에 〈신(神)-정(精)〉이 위치한다. 먼저, 표층인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의(意)', 소극적으로 숨어 움직이는 지(志)가 있다. 다음으로, 이들의 근저에다 혼-백을 둔다. 마지막으로, 이(혼백) 밑바닥에 신(神)-정(精)을 설정한다. 흔히 '정, 기, 신'이란 3종 세트를 언급한다. '정'이란 글자는 '쌀 미(米)' 자와 '푸를 청(靑)' 자가 결합해 있다. 미는 쌀알인데, 청은 이 쌀알의 배아(胚芽) 부분 즉 '쌀눈'에 해당한다. 쌀눈에는 곡식의 에너지(정기)가 모여 있다. 이것이 떨어져 나가면 심어도 싹이 돋지 않는다. 한 마디로 정은 에너지의 응집체이다. 기는 이 정에 속한다. 정이란 것은, 호흡으로 하늘의 기운을, 음식으로 땅의 기운을 모아서 생긴다. 기는 이 정을 바탕으로 한다. 정력이 신체활동의 근원이므로, 정이 없으면 신(神)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정을 '등유'(燈油)라 한다면, 기는 '심지'이고, 신은 '촉광'(燭光) 즉 나아갈 방향을 잡는 불빛이다. 북송의 사상가 정이는 "정은 신을 위해서 써야 한다"라고 했다. 사람이나 사회의 정력은 바른 정신머리를 위해 쓰여야 한다. 혼비백산 말고, 정신 줄 꽉 부여잡고 살아야 한다.
2026-02-26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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