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지도자, 탄소중립 실천과 생태환경 보전을 위한 EM 흙공 던지기
새마을지도자대구시협의회(회장 김수현)와 대구시새마을부녀회(회장 박명숙) 회원들은 지난 24일, 수성못 일원에서 '탄소중립 실천과 생태환경 보전을 위한 EM 흙공 던지기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기후위기와 수질오염 등 환경문제에 대응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탄소중립 생활실천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유용미생물(EM) 발효액과 황토를 이용해 만든 EM 흙공을 수성못에 투척하여 수질 개선과 악취 저감에 힘을 보탰으며, 행사 후에는 수성못 일원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줍깅 활동을 전개해 깨끗한 도시환경 조성과 생태환경 보전에 앞장섰다. 대구시새마을부녀회 박명숙 회장은 "EM 흙공은 작은 실천이지만 수질 개선과 환경보전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 활동"이라며 "앞으로도 EM 활용 교육과 탄소중립 생활실천 운동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시민들과 함께 깨끗한 대구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새마을지도자대구시협의회 김수현 회장은 "환경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며 "새마을지도자들이 앞장서 시민과 함께 탄소중립 실천과 ESG 가치 확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26-07-27 15:53:07
새마을문고 대구시지부,2026 아이들과 함께하는 글그림대회 개최
새마을문고 대구시지부(회장 이승로. 수성고량주 대표)는 지난 24일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에서 "새마을문고 2026 아이들과 함께하는 글그림대회" 전시회 개막식을 개최했다. 이날 개막행사에는 임인환 대구시의회 의장 , 이재화 전 대구시의회 부의장, 이우열 과학대교수, 김윤희 민간어린집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어린이들에게 책과 문화를 통한 창의력 함양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도서관주간을 맞아 마련됐으며, 대회에서 뽑힌 작품들은 한 달간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 전시된다. '나라사랑 독도사랑'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글그림대회는 어린이집 원아 부문,중·고등학교 학생 미술 부문 총 2,00여 명이 참가했다.참가한 어린이들은 나라사랑 독도사랑 국채보상운동을 담은 다양한 그림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순수한 시선으로 표현한 나라사랑 메시지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했다. 전시행사와 함께 열린 '독후감 편지글 북토크'에서는 학부모들이 작성한 300여 편의 독후감과 편지가 공유되며 서로의 공감과 소통의 장이 펼쳐졌다. 이승로 새마을문고 대구시지부 회장은 "새마을문고는 책 읽는 도시 대구, 교육문화예술 중심도시 대구를 만들기 위해 국민독서진흥운동을 이어오고 있다"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함께해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공동체 사업을 확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7-26 11:15:10
[부음]홍자 한국보험금융 다온지사 대표·매탑7기 회원 25일 부친상
▶홍종환 씨 25일 별세. 홍인덕·인식·원희·명희·자(매탑 7기 회원· 한국보험금융 다온지사 대표) 씨 부친상. 빈소=모레아장례식장 103호. 발인=27일(월)오전 6시. 장지=청구공원.
2026-07-26 08:09:30
[문학을 품은 영화] 오만과 편견…인간적 결함 속에 피어나는 로맨스
영화 〈오만과 편견〉은 표면적으로는 영국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배경으로 한 쌍의 남녀가 혐오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느린 호흡의 로맨스를 그린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시대를 초월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본질적인 이유는, 19세기 초 영국 사회가 지닌 모순과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가혹한 생존 조건을 날카롭고도 현실적인 시선으로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이 원작에서 위트있게 꼬집었듯, 당시 영국 사회는 여성에게 자립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여성이 재산을 상속받거나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구조 속에서, 결혼은 로맨스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억압적 토대 위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한다. '엘리자베스'는 흔히 말하는 '걸 보스'의 원형이자,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순응하지 않는 주체적 인물이다. 마차를 타는 대신 진흙탕 길을 걷고, 사교계의 가식적인 대화 대신 독서를 즐기며, 사랑이 없는 결혼은 가차 없이 거부한다. 그녀는 관계의 기반이 단순한 신분이나 재산이 아니라, 깊은 신뢰와 우정, 그리고 진정한 애정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엘리자베스의 독립적인 태도는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강력한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던지며 관객에게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는 인물들을 완벽한 영웅이나 악인으로 그리지 않고, 철저히 결함이 있는 인간들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오만(Pride)'과 '편견(Prejudice)'은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이시'가 극복해야 할 내면의 장애물이다. 엘리자베스는 당차고 매력적인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첫 인상에만 의존해 타인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치명적인 편견의 소유자다. 그녀는 미스터 다이시의 서툰 태도를 오만함으로 단정 짓고 그를 밀어내며, 가식적인 위컴의 말에 쉽게 현혹된다. 반면 미스터 다이시는 막대한 부와 높은 신분 뒤에 극심한 사회적 서투름과 내성적인 성격을 숨긴 인물이다. 그의 무뚝뚝하고 거만한 태도는 사실 감정 표현에 미숙한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두른 방어벽에 가깝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관찰과 갈등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의 결함을 깨닫고 자아 성찰의 단계로 나아간다. 나아가 영화는 인물들의 도덕적 딜레마를 심도 있게 다룬다. 엘리자베스가 콜린스의 청혼을 거절하며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지킬 때, 그것이 개인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베넷 가문 전체를 경제적 파멸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이기적인 선택일 수도 있음을 영화는 은연중에 드러낸다. 리디아의 야반도주 사건 역시 당시 사회에서 평판의 추락이 한 가족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로맨스라는 환상 속에 안주하지 않고, 인물들이 발을 딛고 선 거친 현실의 무게를 잊지 않는다. 2005년작 〈오만과 편견〉은 철저한 고증 위에 현대적인 영화적 문법을 결합하여, 고전 원작 변주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남았다. 거친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자신만의 존엄과 사랑을 지키려 했던 불완전한 인간들의 이야기는, 세련된 비주얼과 탁월한 연출을 통해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화려한 영상미와 영리한 텍스트 분석이 결합된 이 영화는,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회자될 진정한 시네마틱 마스터피스다.
2026-07-24 14:30:00
◆7월 22일 월요일 맑음/미술작품 출품 셋째 시간 끝마치고 나는 주번(主番) 선생님의 눈을 피하며 점심 밥을 먹었다. 거의 다 도시락은 말끔하게 하려할 때 나의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귀를 쳐들고 보았더니 박찬욱(朴贊旭)이었다. 왜 그러니? "저 말이여 미술(美術)선생님이 너 부른다"라고 하였다. 나는 무슨 일인지 매우 궁금하였다. 넷째 시간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오전 수업을 하기때문에, 종회(終會)를 마치고 곧 선생님한테 갔었다. 무슨 말씀하실지 매우 궁금하였다. 선생님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우리 학교에 특별(特別) 활동 시간 때 각부(各部)에서 이번 방학을 통해 한가지 작품을 보낸다는데 우리 미술부(美術部)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 "응 너 하나 내거라" 하시기에 "예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재료가 없어서" 하였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사 줄 터이니 하나 내어라" 하시면서 내일(來⽇) 다시 토의하자 하시었다. 그래서 나는 무슨 큰일인 줄 알고 약간 떨었으나 이제야 휴 우! 생 땀이 자르르~ ◆7월 23일 화요일 맑음/소 풀먹이기오늘은 오후에도 소를 몰고 앞 동산 위에 갔다. 이놈의 소가 방정맞게 나를 놀리는지 잘 풀을 먹지 않고 자꾸 어디로인지 달아 날려고 하였다. 나는 억지로 먹게 하였으나 황소만 보고 음~무 음~무 소리만 질렀다. 나는 매우 얄미웠다. 그래서 황소가 안 보이고 해서 풀 많은 곳으로 갔다. 그곳에 가서도 여전히 목만 쳐들고 소리만 지를 뿐,아무튼 이득이 없어서 소를 꼭 붙잡고 몇 차례 우겨주었더니 코피가 조금씩 나고 그제 서야 풀에 입 되었다. 한편 코피가 나는 것 보고 약간 안타까운 감은 나지만 한편 힘이 났었다. 정말 "금수는 때려야 말을 듣는다더니" 정말 그 꼴을 하고 있네! 그러나 소는 입은 되었으나 냄새만 맞고 먹는지 마는지 뜯는 것 처럼 하고 있었다.
2026-07-24 14:28:00
[쉽고 재미있는 사투리]<2>소나기는 왜 '소나기'가 되었을까?
여름이면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천둥이 치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질 때가 있다. 우산을 펼칠 틈도 없이 흠뻑 젖게 만드는 비, 바로 소나기다. 그런데 '소나기'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 주변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함경도에서는 소나기를 '소내기'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에 얽힌 일화가 있다. 옛날 두 농부가 소를 몰고 들에 나가다가 날씨를 두고 말다툼을 벌였다. "오늘은 반드시 비가 온다." "아니다. 비는 안 온다." 서로 고집을 꺾지 않던 두 사람은 결국 소 한 마리를 걸고 내기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내기에 진 사람은 약속대로 소를 넘겨주었고, 사람들은 이런 비를 '소를 내기로 걸었던 비', 즉 '소내기'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이야기지만, 이는 실제 어원이 아니라 민간에서 만들어진 민간어원이다. 옛사람들이 말의 유래를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전해 온 이야기인 셈이다.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철광산에 폭우가 쏟아지면 흙이 씻겨 내려가 숨어 있던 쇠가 드러난다고 해서 '쇠나기'라는 말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이 역시 널리 알려진 민간어원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언어학에서는 소나기의 어원을 어떻게 설명할까? 학자들은 '쇠'가 '매우' 또는 '심하게'라는 뜻을 가진 옛말이고, 여기에 '나-(동사, 出)'와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기'가 붙어 '쇠나기'가 되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매우 세차게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문헌을 보면 '쇠나기'는 1481년 간행된 『두시언해』에 나타나며,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오늘날의 '소나기'가 되었다. 하지만 전국을 둘러보면 소나기를 부르는 이름은 훨씬 다양하다. 제주에서는 쒜네기라고 부르고, 전남에서는 쏘낙때기라는 말이 쓰인다.쏘나기에 접미사 –때기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충북과 경북, 전북에서는 소낙비라는 표현도 흔하다. 평안북도에는 와달비라는 멋진 말이 있다. 와달비는 작달(막대기)에 비가 결합한 것으로,마치 굵은 막대기를 쏟아붓듯 장대비가 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작달비〉악달비〉왁달비〉와달비'로 변화되었다. 경북에는 꼬지래기라는 독특한 말이 있다. 하늘에서 비가 땅으로 내리꽂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빗줄기의 기세가 느껴진다. 제주에는 더욱 정겨운 표현들이 남아 있다. 겁비는 겁이 날 만큼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말하고, 더럭비는 제주 지역에 나타나는데 '갑자기'라는 뜻의 '더럭'에서 나온 말이다. 또 넘어가는비는 지나가듯 잠깐 내리는 비를 가리킨다. 이름만 들어도 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처럼 같은 소나기라도 쇠나기, 쒜네기, 쏘낙때기, 소낙비, 와달비, 꼬지래기, 겁비, 더럭비처럼 지역에 따라 이름이 제각각인 이유는 사람마다 비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비의 세기를, 어떤 곳은 내리는 모습을, 또 어떤 곳은 갑작스러운 성격을 이름에 담았다. 사투리는 단순히 표준어와 다른 말이 아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자연, 감각과 생각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만들어 낸 문화의 기록이다. 언어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다. 표준어도 소중하지만, 지역마다 전해 내려오는 사투리 역시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다. 문학 작품에서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쓰고 필요한 곳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면, 독자들은 더 다양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신승원 한국방언연구소 소장 sinswon5@hanmil.net
2026-07-24 14:22:00
〈strong〉◆가로 풀이〈/strong〉 1. 갈모 ○○라: 아우가 형보다 나은 경우. 3. ○○○ 놈이 송사한다.제일 급하고 일이 필요한 사람이 그 일을 서둘러 하게 되어 있다는 말. 5. ○○의 입에서 독이 나온다: 본바탕이 악한 사람은 결국 악한 행동만 함. 6. 감출 줄은 ○○○ 훔칠 줄만 안다:사물의 한쪽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해 융통성이 없고 미련하다. 7. 갓 마흔에 ○ 버선: 오래 기다리던 일을 마침내 이루게 됨. 10. 도깨비도 ○○이 있어야 모인다: 무슨 일이든 의지할 곳이 있어야 이루어짐. 11. 누지 못하는 똥을 으드득 ○○ ○○: 되지 않을 것을 억지로 졸라 하게 함. 13. ○○ ○이 없으면 망건 꼴이 나쁘다. 15. ○○○○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도 낫다.여러 사람의 지혜가 어떤 뛰어난 한 사람의 지혜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9. 남의 ○○ ○ ○이 굵어 보인다.물건이나 일은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인다는 뜻 22. ○○ 무거워 소 드러누울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남의 일에 부질없이 걱정함. 23. 거둥길 닦아 놓으니까 ○○○가 먼저 지나간다. 24. 개를 ○○○ 다리를 물렸다.은혜를 베푼 사람에게서 큰 화를 입거나 배신을 당했다는 뜻 25. 글 잘하는 자식 ○○ 말고 말 잘하는 자식 낳으랬다.학문·지식에 능한 사람보다 언변이 좋은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유리하다는 뜻 〈strong〉◆세로 풀이〈/strong〉 1. 눈치는 ○○다: 눈치가 빨라 말을 하지 않아도 남의 경우를 잘 알아차리는 사람. 2. 돈 모아 줄 생각 말고 자식 글 ○○○○. 4. 늙어서 고적한 것은 죽음보다 세 ○○ 무겁다. 5. ○○○○○는 독만 깨뜨린다: 실현성이 없는 허황된 계산은 도리어 손해만 가져온다. 8. ○○○ 보아도 마름: 별다른 진보가 없이 같은 일만 되풀이함. 9. 금 판 돈도 돈이고 ○ ○ ○도 돈이다.형식이나 방법이 달라도 본질적으로 결과가 같다는 의미 12. ○○을 메고 매 맞으러 간다: 공연한 일을 하여 스스로 화를 자초함. 14. 개가 제 주인을 보고 짖게 되어야 농사가 풍년 ○○. 16. 거지 베 ○○○○ 해 입힌 셈 친다: 대가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자비를 베풀어 줌. 17. 달아나면 ○○ ○○: 일이 어렵게 되면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 18. 남이야 삼승 버선을 신고 못자리를 ○○ 말든. 20. 눈에 ○○○가 씌었다: 앞이 가리어 사물을 정확하게 보지 못함. 21. 나그네 말죽 ○○○: 일을 건성건성 해치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strong〉◆28회 정답〈/strong〉 〈응모요령〉 ▶낱말맞히기 정답 공모(이름·휴대폰 번호·주소를 반드시 기재) ①우편엽서 ②이메일: mincho@imaeil.com ▶당첨자는 지면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 ▶보내실 곳: 대구시 중구 서성로 20 매일신문 주간본부(우편번호 41933) ▶당첨자는 본지 지면 발표
2026-07-24 13:30:00
[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한여름 열기를 다스려주는 '오리'
집 앞 개울에 오리가 자맥질하며 궁둥이를 치켜들었다. 그 요란한 몸놀림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 집에는 닭이 많았는데, 국희네는 궁둥이를 삐딱빼딱 거리며 뒤뚱거리는 오리를 키웠다. 가끔 개울가 풀숲에서 오리 알을 주우면 국희네 할매한테 고스란히 갖다 드렸다. 오리 알을 받아든 할매는 눈을 부릅뜬 채 일장 훈시를 하였다. '오리 알은 약이라서 어린애들은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약은 쓴맛이라는 생각에 오리 알을 극구 꺼렸다. 오리가 한바탕 훑고 지나간 개울에는 골부리며 징거미새우가 남아나질 않았다. 그즈음부터 물놀이 재미가 사라졌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물과 밀접한 생활을 하는 오리는 신성한 동물로 숭배받았다. 마을 입구의 오리 조각 '솟대'는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는 '원앙'은 오릿과 조류이다. 수컷은 '원', 암컷은 '앙'으로 칭하다가 '원앙'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름 보양식으로 이열치열(以熱治熱) 삼계탕을 떠올린다. 하지만 선조들은 닭 못지않게 오리를 귀히 여겼다. 닭고기가 따뜻한 성질이라면, 오리는 서늘한(涼) 성질을 가지고 있어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사용했다. 오리는 단순히 열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열기를 다스려 열독을 풀고, 오장육부를 편안하게 하여 신장(腎臟), 순환기, 호흡기, 소화기에 이로움을 주는 전천후 보양식이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오리는 맛이 달고 성질은 냉하다. 허한 것을 보하고 객열을 제거하며 장부를 조화롭게 하고 수도(水道)를 통하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닭은 잔치 음식으로 사용되고 제사상에도 올랐다. 그러나 오리는 연회나 제사상에 올리지 않았다. 옛사람들은 오리를 귀하게는 보았으되, 중한 자리의 식재료로는 정결하게 보지 않았다. 물에 사는 짐승의 기운은 습(濕)하고, 오리가 진흙을 파헤치는 습성을 부정하다고 여겨 조상 숭배의 격식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사육 환경이나 특유의 냄새로 인해 대중적인 조리법이 정착되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오리는 식품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약'의 범주에 가까웠다. 기력이 떨어진 사람을 보하거나, 혈액 순환을 돕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평가했다. 언젠가부터 오리고기 음식점이 늘어났다. 어린 날 '약'이라는 언질 때문에 꺼렸던 오리를 지인들에게 끌려가 먹게 되었다. 닭고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서늘한 성질의 오리에 따뜻한 성질의 부추와 마늘을 곁들이면 음식 배합 면에서 좋다. 닭고기의 따뜻한 성질과 찹쌀의 따뜻한 성질은 과하여 궁합이 맞지 않으나, 오리와 찹쌀은 서로 보완하는 작용을 한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은 잘 잡수시는 편이다. 찾아뵐 때마다 음식을 준비해 가는데, 날이 좋으면 꽃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날이 궂으면 면회실 탁자에 음식을 펼친다. 오리에 약재를 넣어 푹 고았다. 찹쌀에 좁쌀을 섞어 밥을 짓고, 녹두는 압력솥에 두 번 돌려 뭉그러지게 삶았다. 시동생 부부도 같이 와서 오리탕을 먹자고 연락을 넣었다. 지난번에 돔배기 반찬을 준비하여 갔더니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비우셨다. 이번에는 기력 돋우라고 오리탕을 준비했다. 국물 몇 수저를 입에 떠넣어 드렸는데 무언가…. 예전하고 달랐다. 시동생들한테 어머님 보내드릴 준비를 하자고 했다. 그때가 유월 말경이었다. 그리고, 보름여 만에 어머님은 천주님 곁으로 가셨다. 오리탕은 둘째 며느리가 어머님께 드린 마지막 식사였다.
2026-07-24 13:30:00
[조한규 칼럼] 영남, '행동하는 유림' 재건에 앞장서자
한국 유학의 본향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영남 유림(儒林)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행동으로 시대를 구해왔다. 그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대표적으로 '영남만인소'와 '파리장서운동'을 꼽을 수 있다. '영남만인소'는 '만 사람의 뜻이 곧 천하의 뜻'이라는 취지로 1만명 안팎의 영남 유림이 연명해 올린 집단 상소다. 첫 만인소는 1792년 영남 유림 1만57명이 연명해 사도세자의 신원(伸冤)을 청한 상소였다. 2차는 1823년 서얼차별 철폐 만인소, 3차는 1855년 장헌세자 추존 만인소, 4차는 1871년 서원철폐 반대 만인소, 5차는 1875년 흥선대원군 봉환 만인소, 6차는 1881년 이황의 후손 이만손(李晩孫)이 소수(疏首)를 맡아 올린, 가장 널리 알려진 위정척사(衛正斥邪) 만인소다. 7차는 1884년 갑신 의제개혁 반대 만인소로,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142년 만인 2026년 2월 11일, 영남 유림은 석주 이상룡, 일송 김동삼 등 독립유공자 20인에 대한 서훈 재평가와 등급 상향을 촉구하는 상소문 형식의 청원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른바 8차 영남만인소인 셈이다.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3·1운동 직후 영남의 심산 김창숙, 면우 곽종석 등이 주도해 유림 대표 137명의 이름으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며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파리장서)를 보낸 항일 독립운동이다. 당시 파리장서엔 영남 유림 120명, 호서(충청) 유림 17명이 서명했다. 곽종석과 교류하던 간재 전우를 중심으로 한 호남 유림도 처음엔 참여를 결정하고 초안까지 준비했으나, '왕정복고냐 민주공화정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다가 시기를 놓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파리장서운동은 사실상 영남 유림이 주도한 독립운동으로 평가된다. 영남 유림은 퇴계학의 전통을 이어 서원과 문중을 중심으로 한 강한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의리와 절개를 중시하는 학풍이었기에 식민지 현실 앞에서 침묵보다 항거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에 유림이 참여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려는 의지 또한 강했기에 파리장서운동을 적극 주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반 국민이 기억하는 영남 유림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고풍스러운 도포를 입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등 문화유산 전승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전통문화 교육 프로그램, 유교 학술 및 인문 프로그램, 한옥 체험 숙박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유림 문화를 보존·계승하고 있어 다행이다. 반면 다른 지역의 유림은 유명무실해 거론하기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영남 유림은 현실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위기 극복과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실천 유학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학문은 박제에 불과하다. 원래 영남의 퇴계학은 순수한 도학(道學)과 심학(心學)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퇴계학을 계승한 영남 선비들은 인간의 존엄을 바탕으로 인간의 도리와 사회적 책임의 실천을 강조했다. 학문을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백성과 사회를 이롭게 하려는 실천으로 이해한 것이다. 가령 갈암 이현일과 그 후예들이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국가 재정과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200여년에 걸쳐 '홍범연의'를 편찬한 사실이 실천 유학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아울러 조선 후기 7차에 걸친 영남만인소는 영남 유림이 '박제된 유림'이 아닌 '행동하는 유림'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렇다면 '행동하는 유림'이 되기 위해 영남 유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퇴계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체계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단순히 '도덕적 유산'을 계승하는 차원을 넘어, AI시대의 언어로 재구성해 '살아 있는 사상 체계'로 복원해야 한다. 둘째, 영남 유림은 8차 영남만인소의 차원을 뛰어넘어 현실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구경북행정통합과 같은 현안에 대해 차원 높은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언적·이황·이현일 등 영남 도학자들이 지녔던 '영성(靈性)'을 바탕으로, AI시대를 주도할 '새로운 영성'을 계발해야 한다. 퇴계가 청량산으로 오르며 수행했던 심신수련법을 2030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체계로 재구성하는 현대화를 시도해 볼만하다.
2026-07-24 12:24:00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82년 28회>노력상 윤혜숙 작 "동심"
1982년 여름, 대구 칠성동의 한 공터. 장마가 막 지나간 오후였다. 줄무늬 천막 아래 손수레에 실린 리어카 목마가 덜커덩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았다. 손수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골목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목마 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이 달려왔다. 미숙이는 빨간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며 제일 먼저 줄을 섰다. 영숙이는 두 갈래 머리를 흔들며 "오늘은 흰 말 탈 거야." 하고 싱글벙글 웃었다. 철수는 혹시라도 친구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목마의 고삐를 꼭 붙잡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만덕이는 친구들을 놀리며 "나는 두 번 탈 거다!" 하고 큰소리를 쳤다. 막내 명수는 형들 뒤에 숨어 목마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목마는 아무나 탈 수 없었다. 한 번에 50원. "과자 사 먹을까, 목마를 탈까." 시장에서 장을 보던 부모님이 손을 잡아 이끌며 "오늘은 한 번 타 봐라." 하고 50원짜리 동전을 손에 쥐여 주는 날은 작은 축제였다. 그 동전 하나를 꼭 쥔 아이는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몇 번이고 주머니를 확인하며 목마 앞으로 달려갔다. 가끔은 할머니가 손주 손을 꼭 잡고 "우리 강아지, 이거 타라." 하며 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던 50원짜리 동전을 꺼내 주기도 했다. 그 동전은 단순한 용돈이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엄마가 50원 줬다." 철수가 손바닥을 펴 보이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나도 있~다." 미숙이도 주머니 속 동전을 흔들었다. 그러나 영숙이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대현이도 빈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만덕이는 씩씩한 척했지만 사실은 오늘도 돈이 없었다. 명수는 형들이 타는 모습만 바라보다가 나무 꼬챙이로 흙바닥을 긁고 있었다. 잠시 후 음악이 울리며 빨간 말, 흰 말, 검은 말이 위 아래로 콩콩콩 움직였다. 미숙이와 철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었고,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영숙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며 함께 말을 타는 흉내를 냈다. "다음에는 나도 탈 거야." 그 한마디에는 어린아이의 소박한 꿈이 담겨 있었다. 목마가 멈추자 대현이가 먼저 달려가 철수를 향해 물었다. "재미있었나?" "응!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모두 웃었다. 탄 아이도, 못 탄 아이도 함께 웃었다. 지금 아이들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화려한 놀이기구가 가득한 실내 놀이터를 찾고,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수많은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50원짜리 동전 하나를 꼭 쥐고 차례를 기다리던 설렘은 찾아보기 어렵다.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다. 50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꿈을 잠시 실어 나르던 작은 티켓이었고,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타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다음에는 꼭 타야지."라는 희망이었다.
2026-07-24 11:55:00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30회>발본색원(拔本塞源), "뿌리를 뽑고 원천을 막는다"
"중앙선관위의 문제점 '발본색원'해야 할 때…".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나라에서 어떻게 투표용지 부족이? 참담하다. 2030 젊은이들이 참정권을 지키기 위해 서울의 잠실 올림픽 공원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투표 수개표"를 외쳐댄다. 이참에 패악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추악한 짓거리의 근원을 틀어막아야 한다. 발본색원(拔本塞源)은, "뽑을 발, 뿌리 본, 막을 색, 물 근원 원"으로 (좋지 않은 일의) 뿌리를 뽑고, (문제가 생기는) 원천을 막는다는 뜻이다. 발(拔)은 '나무를 양손으로 잡아 뽑는 것'을, 본(本)은 '나무의 뿌리'를, 색(塞)은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꽉 막아놓은 구축물(=요새)'을, 원(源)은 '물의 근원(=水源)'을 말한다. 다만 '원(源)' 자가 아닌 '근원 원(原)' 자를 쓰는 경우가 있지만, 의미엔 별 차이가 없다. 발본색원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사자성어이다. '발본색원'은 두 가지로 풀이된다.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 의미이다. 현재 통용되는 것은 후자이다. 먼저, 부정적인 의미로, '근원 원(原)' 자를 쓴 경우이다. 이것은 춘추 시대 말기 노나라의 역사가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9년」 조에서다. 『춘추좌씨전』은 줄여서 『좌전』이라고도 하는데, 공자의 편찬이라 전하는 역사서 『춘추(春秋)』의 대표적인 주석서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천자국인 주나라의 경왕(景王)은, 오랑캐(융적)를 끌어들여 주나라를 위협한, 제후국 진나라 평공(平公)을 꾸짖는다. "내가 백부(伯父)에게 있어서는 마치 옷에 갓이나 면류관을 갖춘 것과 같소. 나무와 물에 뿌리와 근원이 있어야 하듯, 백성에겐 (통치의) 계책을 내는 주인[謀主]이 있어야 하오.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고,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며(拔本塞原]), 계책을 내는 주인을 제 맘대로 버린다면, 비록 오랑캐일지라도 그 어찌 '나 한 사람만'을 남겨두겠소(백부 또한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항렬을 따지자면 진나라 평공은 주나라 경왕의 백부뻘 되는 제후였다. 그는 나라가 강성해지자 배은망덕하게도 오랑캐와 함께 자신을 제후로 임명한 천자국 주나라를 공격해온 것이다. 이에 경왕은 분노하여, 명분을 내세워서 평공을 문책한다. 이때 쓰인 발본색원은 "근본을 망친다"는 부정적인 뜻이다. 다음으로, '물 근원 원(源)' 자를 쓴 경우이다. 이것은 명대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 1472∼1529)의 『전습록』(중) 「답고동교서(答顧東橋書)」 속에 나온다. 즉 왕수인은, 고동교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이란 긴 글을 붙여두었다. 그 이유는, 왕수인이 '성의(誠意: 뜻을 참되게 함)'를 강조한 데 대해 고동교가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왕수인은 '성의'가 공자 문하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공부론의 핵심임을 주장하며 - 앞서 설명한 『좌전』의 내용과 달리 - '발본색원'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한다. "사사로운 탐욕의 마음을 뿌리 뽑고, 그 근원을 틀어막아야…한마음으로 소통하는 큰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역사는 왜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가. 한마디로 '권력욕' 때문이다. 권력은 무슨 짓거리든 하려 한다. 이에 국민은 합리적이고, 투명하고, 냉정하게 이를 감시해야 한다. 우선 공정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그것을 관리할 인간의 자격을 따져 물어야 한다.
2026-07-24 11:30:00
2026-07-24 10:30:00
◆박인주 제10회 개인전 《바라보다 – TIME》 전시기간 : 2026년 7월 1일 ~ 8월 31일 전시장소 : 돌담갤러리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이어온 '바라보다'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시간과 기억, 그리고 감정의 흔적을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 순간 마음에 남은 빛과 공기 그리고 감정의 울림을 화폭에 옮기며 관람객에게 자신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여백을 제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유년 시절 시골에서 마주했던 자연의 기억과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던 늦겨울 저녁길의 노을 등 삶 속에서 스쳐 지나간 순간들이 깊은 감성으로 녹아 있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의 형상과 번져가는 빛은 지나온 시간과 기억의 깊이를 상징하며 화면의 여백은 관람객 각자의 추억과 감정이 머무는 공간이 된다. 작가는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바라보는 나의 시간과 감정은 매 순간 달라진다. 《바라보다 – TIME》은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남겨진 시간의 인상을 담아낸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자연과 시간, 그리고 기억을 매개로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조용한 사유의 시간을 선사하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마주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은지 바이올린 독주회 'The Tension' 7월 26일 오후 5시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 입장료 1만원 문의 053-623-0684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지의 독주회다. 이번 공연에서는 음악 속 긴장(Tension)의 흐름을 주제로 연주를 들려준다. 제미니아니, 슈베르트,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까지 네 작곡가의 소나타를 통해 다양한 시대와 양식 속 긴장과 균형의 미학을 감상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김은찬이 함께한다. 김은지는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와 마인츠 국립음대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트리오 베아트리체와 앙상블 블랑슈 멤버로 활동 중이다. ◆작곡가박태준기념사업회 제16회 작곡가 박태준 기념 동요·한국가곡 콩쿠르 7월 25일 오전 9시~오후 5시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입장료 무료 문의 010-9651-6166 작곡가 박태준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고 동요와 한국가곡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마련된 콩쿠르다. 동요, 아마추어 한국가곡, 전공자 한국가곡 부문으로 나뉘어 열린다.
2026-07-24 10:30:00
[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15>여로(旅路)의 쉼표 '번지 없는 주막'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酒幕), 그 수없이 많은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행운유수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저녁나절과 인생길의 한순간이 낡은 영상처럼 겹치는 정경이다. 어차피 주막집 들르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왔다 가는 인생이다. 해질녘 주막에서 낡은 사발로 마시는 막걸리 맛에 나그네의 서정이 물씬 풍긴다. 무겁든 가볍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고, 노을 지는 아득한 언덕 너머로 남은 길이 있다면 또 걸어가야 한다. 김용호 시인의 '주막에서'는 무상한 세월 속에 계속되는 소박한 서민의 여정과 애환을 관조적으로 노래한 서정시이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이 밤이 애절구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애절구려,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일제강점기 유랑가요의 고전인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1940)은 시 작품 속 '주막'보다 이별의 감성이 더 짙게 스며있다. 능수버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무르익은 봄날의 저물녘, 궂은비가 문풍지를 적시니 나그네의 시름도 물기가 흠뻑 배었다. 봉놋방에 둘러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주고받는 술잔, 저마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사연들도 밤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하물며 가물거리는 초롱불 밑에 기약없는 이별주 한 잔을 두고 마주앉은 사람들의 모습이야....나그네의 수심(愁心)이 어둠살 위로 표류한다. '번지 없는 주막'은 식민지 근대인의 떠돌이 삶을 보듬어 주던 상징적 공간이다. 분단과 전쟁이 낳은 이산의 아픔과 산업화에 따른 이촌향도의 물결, 경제적 불안정과 불평등이 빚어낸 서민적 상실감의 서정은 오랜 세월 '번지 없는 주막'의 유랑 서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시대, 나그네 인생의 애환을 노래한 서정시와 가요는 그래서 같은 무늬를 띠고 있다. '주막'이란 한잔 술이 떠오르는 이름이다. 옛 정취를 간직한 주막일수록 그럴 것이다. 길 위에 선 나그네나 장꾼들이 다리쉼을 하거나 하룻밤을 묵어가던 곳. 삶이라는 이름으로 주모의 풍상과 행인의 정한이 술잔 속에 어른거리던 곳. 지친 다리를 도닥거려주고, 마른 목을 적셔주던 주막들은 모두 전설의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 '번지 없는 주막'에 쉬어가던 '나그네 설움'도 노래 속에나 남아 있다. 강석관 시인은 '겨울 주막'이란 시에서 '...마지막 밤 마지막 잔을, 이별의 절차처럼 마신, 겨울 주막에서, 그가 놓고 간 술잔 속에, 웃음 한 점이 외롭게 남아 있다. 겨울보다 더 추운 모습을 하고'라고 읊었다. 그 주막에 가면 못내 겨워 울던 사람이 있을까. 술잔 속에 떠 있던 그 사람의 얼룩진 눈물이 남아 있을까. '번지 없는 주막'은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의 처연한 내면 풍경이기도 했다. 필자가 대학 시절 문학 강의를 들었던 이기철 시인은 '주막' 시에서 '...酒幕은 으슬으슬 해가 기울어야 제격이다, 번지수가 없어 읍에서 오던 하가키(葉書)가, 대추나무 돌담에 소지(燒紙)처럼 끼어 있어야 제격이다...'라고 했다. 팍팍한 여로(旅路)에 쉼표마저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지친 걸음을 쉬어갈 주막은 어디에 있는가. 번지가 없어도 좋다. 여수(旅愁)가 스민 그 주막에 가고 싶다. 대중문화평론가
2026-07-17 14:00:00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81년 27회>노력상 이병인 작 "심술쟁이"
1981년 1월, 경북 의성의 한 작은 시골마을.밤새 내린 서리가 아직 녹지 않은 흙길 위로 겨울 햇살이 길게 내려앉았다. 돌담은 차가운 바람을 묵묵히 막아주고 있었고,한겨울 시골집 특유의 훈훈한 삶의 냄새가 풍겨오는 듯하다. 태호는 어린 동생 민호를 세발자전거 뒷좌석에 태우고 골목길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형의 손에 맡겨진 작은 여행이었다. 민호에게 세발자전거는 자동차였고, 태호는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운전사였다. 하지만 두 형제의 평화로운 골목길 자전거 여행은 오래가지 않았다.돌담길 모퉁이에서 장난기 많은 동네 친구 진성이와 영길이가 기다렸다는 듯 길을 막아섰다. 영길이는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아 끌고, 또 다른 친구인 진성이는 앞에서 핸들을 잡은 채 길을 내주지 않는다.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어디 가노?", "못 지나간다!" 하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오는 듯하다. 태호는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보지만 세발자전거는 꼼짝하지 않는다. 민호는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형의 품을 바라보고, 심술꾸러기 친구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웃음을 터뜨린다. 지금이라면 괴롭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 시절 시골 아이들의 심술은 오래 가지 않았다. 몇 번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금세 웃음으로 끝났고, 잠시 뒤에는 모두 함께 자전거를 밀어주며 마을 끝까지 달려가곤 했다. 세발자전거 한 대만 있어도 하루 종일 웃을 수 있었고, 돌담길 하나만 있어도 최고의 놀이터가 되었다. 사진 속 아이들의 볼은 겨울바람에 빨갛게 익어 있다. 두툼한 솜점퍼와 털 달린 외투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말해주지만, 아이들의 표정만큼은 세상 어느 부잣집 아이들보다 환하다. 세월은 어느덧 40여 년이 흘렀다.돌담은 허물어지고, 흙길은 아스팔트가 되었으며, 아이들이 뛰놀던 골목은 자동차가 차지했다. 세발자전거 대신 전동 킥보드가 생겼고, 아이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함께 부딪히며 웃던 골목놀이는 화면 속 게임으로 바뀌었고, 친구를 기다리던 시간은 온라인 접속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변했다. 그래도 이 사진은 말을 걸어 준다.행복은 풍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겨울바람에 손이 시리고 무릎에 흙이 묻어도, 친구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웃던 그 순간이야말로 어린 시절 가장 따뜻한 기억이었다는 것을. 태호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살고 있을까. 동생 민호는 형이 자신을 태워주던 그 겨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길을 막으며 장난을 치던 친구들은 사진을 보는 순간 "그때는 참 재미있었지." 하며 웃을 수 있을까. 한 장의 사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이병인 작 '심술쟁이' 사진은 잊고 살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다시 불러내고,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시대를 조용히 증언한다.그 위에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 우정과 형제애,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겨울 골목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달리고 있다.
2026-07-17 13:36:00
[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인지 감수성이라는 모호하고 무서운 시대
성인지 감수성은 일상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알아차리는 감지력을 말한다. 2018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데 말이 참 어렵다. 이거 계도하고 다니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략 이렇다. 우리는 대화중에, 내자를 가리켜 안사람, 집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반대로 남편은 바깥양반이라고 부르는 데 이게 바로 성인지 감수성 위반 사례가 된다. 무조건 배우자라고 써야 한다고 한다. 또 자주 예로 등장하는 게 유모차다. 가운데에 어미 모(母)자를 씀으로써 은연중에 마치 아이의 양육은 여성 담당이라는 무의식적인 인식을 준다. 해서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로 불러야 한다는 얘기다. 슬슬 어지럽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굳어진 말투와 언어를 바꾸라고 해서가 아니다. 아예 말을 말라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말난 김에 그럼 유아차에서 이 차(車)는 정당하게 쓰이고 있는가. 도로교통법 제 2조 제 17호에 따르면 차는 '도로에서 운전되는 모든 교통수단'을 말한다. 도로를 운행하는 유모차(꿋꿋하게 이 표현 버티련다) 보신 적 있는가. 오히려 유모차 끌고 도로 진입했다가는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유모차는 차가 아닌 것이다. 그 외에도 처녀작, 효자 종목 같은 단어들이 자주 도마에 오른다. 첫 작품, 효도종목이라고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어를 다 바꾸자는 말로 들린다. 이럴 경우 피해를 보는 단어들도 있다. 모성애가 그것이다. 아마도 부모애로 바꾸어야 한다고 할 것 같은데 부모애에는 모성애가 가진 아름다움과 감동과 절박함이 완전히 휘발되고 없다. 그저 자녀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건조한 시각만 남게 된다. 새로운 조어도 필요하다. 부전자전 대신 모전여전 혹은 부모전자녀전이라고 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왜 북한의 가슴띠, 살물결 같은 단어가 떠오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느낌은 그렇다. ◇스타벅스 사태와 5.18 인지 감수성 등장 불안감 최근 배재고 스타벅스 사태를 보면서 이러다가는 '5.18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 감수성의 또 다른 문제가 그 정의와 범위가 모호하다는 것인데 가령 5.18을 두고 "광주 사람들 참 대단해" 말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5.18인지 감수성 부족이다. 어미를 올리고 내리는 억양에 따라 슬쩍 비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람에게 "5월인데 고향 안 가?" 라고 물어도 인지 감수성 위반이 될 수 있다. 마치 광주의 도시절(都市節)처럼 5.18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지역 차별이라는 뉘앙스가 들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5.18 영화를 보다가 웃어도 인지 감수성 부족이다. 5.18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안 따라 불러도 인지 감수성 부족이다. 이러다가는 소급해서 5.18 전날 룸 가라오케에서 여성들 옆에 끼고 노래를 불렀어도 감수성 부족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하여간 일어날 수 있는 경우를 들다보면 끝도 없다. ◇사고를 막기 위해 광주를 배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계속 그런 식으로 가면 결국 '광주'라는 단어 자체를 입 밖으로 내기 꺼려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범위와 정의가 불투명하니 광주를 언급하는 모든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가령 무단 횡단하는 충청도 사람에게 "뭐여? 다 산 겨?" 하면 조크지만 전라도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하면 5.18 연상 모욕적인 말로 들릴 수 있다. 왜?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라면 어떨까. 이 경우 인사 담당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예 그 지역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 편이 들여놨다가 대형사고 터지는 것보다 100배 낫다. 광주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배재고 스타벅스 사태에서 '어른' 광주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지난 6일 교복을 입고 버스에서 내린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 전원과 학부모, 교사 등 80여 명은 광주일고 학생 선수 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배재고 학생들 고개 들어요. 다음에 저희 일고 학생들 만날 때 정말 당당하게 서로 있는 기량 마음껏 펼치면서 멋진 승부를 펼쳐주는 것, 그것이 여러분이 용서를 구하는 가장 멋진 모습"이라며 쿨하게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런 상식적인 모습조차 미담이 되니 폐해가 얼마나 크고 끔찍할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2026-07-17 13:20:00
[캐나다를 거쳐 본 한국] 어느 날 날아 든 수표 한 장
◇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필자는 사람들의 삶이 참 궁금하다. 한 사회에서 나고 자라다 보면, 그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가 자연스레 몸에 밴다. 내게 주어진 이 삶, 이 환경,이것을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만 해도 되는 것인가. 그 질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다른 사회의 일상을 기웃거리고, 낯선 문화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려 했던 것이.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필자가 정작 보고 싶었던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였다. 그들을 더 많이 알고, 그 눈을 빌려 우리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삶을, 이 환경을 그리 어렵지 않게 나아지게 할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그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14년 전, 짐을 싸서 캐나다로 떠났다. 행정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에 더더욱 캐나다 사람들의 일상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가에 눈이 갔다. 도로 위에서, 공사 현장에서, 졸업식장에서 겉으로는 작은 것들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작은 것들 안에서 계속 같은 종류의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 지난 14년 동안 내가 가장 낯설게 경험한 것은 캐나다의 자연경관도,복지 수준도,어떤 거창한 사건이나 획기적인 정책도 아니었다. 일상의 아주 작은 장면들 안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내가 규칙을 지키면 그들도 지켰다. 내가 약속을 따르면 그들도 따랐다. 그렇게 사회라는 것이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사회라는 틀 안에서, 나도 그 일부로 살아 있는 존재라는 자각. 말이 서툴러도 그 느낌은 분명했다. 내가 그 사회에서 투명인간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한국에서도 그것을 원한다. 그것이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다. ◇ 어느 날 날아든 수표 한 장 십여 년 전 10월의 어느 날. 우편함에 캐나다 연방정부 발신의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열어보니 수표였다.1천100달러. 한참을 들여다보았다.신청한 기억이 없었다.한국에서의 우편함에는 거의 언제나 돈을 내야 하는 고지서들이 빼곡했던 기억이다. 그 수표의 사연인즉,교사 파업 관련 보상금이었다.주 정부와 교원 노조 간 분쟁으로 학교 수업이 중단되면서 아이를 집에서 돌봐야 했기에 직장을 빠져야 했던 사람도,사설 돌봄기관에 비용을 써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파업은 정부와 노조 사이의 일이었지만,그 손실은 아이를 가진 가정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정부는 그 손실을 계산했다.해당 가정을 찾아냈다.그리고 먼저 찾아왔다. 나는 한참 멍했다.행정 현장에서 십 수 년을 보낸 사람으로서,이 수표 한 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국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세금을 납부하는 재원으로서, 선거철이 돌아오면 표를 던지는 유권자로서,혹은 일이 터졌을 때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 하는 민원인으로서가 아니라,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회가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냥 보통 사람들이 시스템 안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감각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 낯섦이 오래 남았다. ◇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것들 이 칼럼은 캐나다 예찬이 아니다.캐나다도 지금 많이 흔들리고 있다.주거비 폭등,의료 시스템 과부하,이민 정책 혼란.나는 그 사회의 문제들을 가까이서 보며 살고 있고, 캐나다가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가 쓰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다.그 수표 한 장이 내게 물어온 것 ,이 사회는 나를, 개인을 어떤 존재로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이 14년 동안 계속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공사 현장의 STOP 사인, 매일 마주치는 교차로, 다섯 시간이 넘는 고등학교 졸업식,태어나서부터 만 18세까지 매월 지급되는 지원금 등에서. 그 수표 한 장이 처음 던졌던 질문의 결국은 이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조건과 처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대하고 있는가.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엄을 그만큼 존중하고 있는가.이 글은 정답을 내놓는 글이 아니다. 독자와 함께 들여다보는 글이다. 우리가 그 질문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가 먼저다. 묻지 않은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쌓인다.
2026-07-17 13:13:00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29>파란만장(波瀾萬丈), "물결이 만 길 높이로 인다"
"파란만장 '반도체 38년'; '파란만장' K원전 일대기; 류현진 파란만장 200승…"처럼, 최근 뉴스는 바람 잘 날 없지만 더러 극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은 '물결 파, 물결 란, 일만 만, 길 장'으로 "물결이 만 길 높이로 인다"라는 뜻이다. 삶이나 일의 진행에 우여곡절, 시련, 변화가 심할 때 쓴다. 한국과 일본에서 애용하는 사자성어이다. '파(波)'는 바람으로 수면이 울퉁불퉁한 상태 즉 '잔물결과 큰 물결'을 다 일컫는다. '파'자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북송 때 왕안석이 『자설(字說)』에서 파(波) 자를 '물의 껍질(水之皮)'이라 풀이하자, 이에 소식이 "그럼 '활(滑)' 자는 '물의 뼈(水之骨)'가 되겠구먼!"하고, 뼈 있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파는 '음파・전파'처럼 에너지를 가진 물결인데, 뒤에 오는 글자 여하로 그 내용이 정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의 과학·기상학적 개념을 참고한다. 먼저, 바람 때문에 생기는 바다의 모든 물결을 '파랑(波浪)'이라 한다. 다음으로, 파랑 가운데 눈에 띄게 출렁이는 큰 물결을 '파도(波濤)'라 한다. 파도에는, 바람이 불고 있는 해역에서 생기는 '풍랑', 먼바다에서 발생한 파도가 다른 지역으로 밀려오는 '너울', 지진・화산 폭발 등으로 생기는 거대 물결인 '해일(쓰나미)'의 세 가지가 있다. 파란의 '란(瀾)'은 큰 물결 즉 파도이다. 그래서 가끔 어지러울 '란(亂)' 자로 바꿔, 파란만장(波亂萬丈)이라 쓰기도 한다. 만장의 '장(丈)'은 길이의 단위이다. 즉 중국 고대에는 성인 남자의 키를 기준 삼아 10척(尺)을 '1장(一丈)'으로 하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할 때의 '한 길'로, 어른 기준의 몸길이다. 중국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 길'은 약 2.25m(고대)~3.33m(현대) 사이에서 증감해왔다. 따라서 만장은 2만∼3만 미터로, 파도의 높이를 과장한 것이다. 중국의 허풍은 세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날 듯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삼천 척)"이나 "붕정만리(鵬程萬里: 붕새의 여정이 만 리)"를 보라. 이런 인문적 허세가 문학・예술의 규모를 부풀리고, 세상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낸다. "운우분분작회명(雲雨紛紛作晦明: 구름 비 수시로 흐렸다 갰다가)…파란만장일부생(波瀾萬丈一浮生: 물결 만 길 속 한낱 덧없는 삶이여)" 『동문선』에 실린 이첨(李詹, 1345~1405)의 시 일부다. 파란만장에 휘둘리는 삶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1924년 1월 1일 자 《개벽》 제43호에 문일평은 〈갑자(甲子) 이후 육십 년간의 조선〉이라는 글을 실었다. "60년 전 갑자는 실로 조선사상에 중요한 위치를 점유…이같이 단기간에 대격변이 됨은 물론 외압적 관계도 지대하거니와 내발적 난인(亂因)도 진실로 많으니 외압적 관계의 대부분은 일・청・로(日淸露) 3국의 간섭이오, 내발적 난인의 대부분은 대원군, 명성황후 양파의 알력이다. 그런데 양파의 알력이 매양 3국에게 이용되어…파란만장…처절참절(悽絶慘絶)한 많은 희극 비극을 연출하였다." 아울러 1939년 9월 5일 자 《동아일보》 기사는 〈주식시장에 노도(怒濤), 대전(大戰) 경기로 파란만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 꼴은 비슷하다. 삶이란 바다 위엔 전쟁과 권력과 돈과 욕망의 파랑주의보로 가득. 파란만장이 없다면 삶이 너무 밋밋하여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맹탕이 될까 봐 그런가.
2026-07-17 12:24:00
[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모네의 "인상, 해돋이"…탈서사적 전회와 순수한 시각 경험
인상, 해돋이는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작품이다. 흔히 인상주의를 '빛을 그린 미술'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빛을 그리지 않은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라바조도 빛을 그렸고, 렘브란트도 빛을 그렸다. 미술사의 차이는 빛의 유무가 아니라, 빛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에서 부터 19세기 초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 회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었다. 성서와 신화, 역사와 영웅담, 초상화와 풍속화까지 그림은 인간과 세계의 사건을 전달하는 서사적 매체였다. 빛과 색채, 원근법과 구도는 모두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회화는 무엇보다 읽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1874년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회화의 존재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화면에는 항구와 바다, 안개와 태양만이 있을 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건도 인물도 없다. 그림은 더 이상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세계가 인간의 눈앞에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준다. 관람자는 그림 속 서사를 해석하는 대신, 빛과 색채, 대기와 시간의 흐름을 직접 경험한다. 이 순간 회화는 서사를 전달하는 예술에서 순수한 시각 경험을 조직하는 예술로 전환되었으며, 이것이 근대미술의 탈서사적 전회를 알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사진의 등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진은 현실을 이전보다 훨씬 정확하고 신속하게 기록할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 매체였다. 그 결과 회화는 더 이상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일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삼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대신 화가들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볼 것인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세계를 객관적으로 복제하는 대신, 세계가 인간의 의식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경험되는지를 화면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모네가 그린 것은 항구가 아니라 항구를 바라보는 의식이었고, 풍경이 아니라 '본다는 행위'였다. 이 순간 회화는 재현의 예술에서 지각의 예술로 전환되었다. 모네가 열어준 새로운 길을 따라 근대미술은 더욱 멀리 나아간다. 폴 세잔은 자연을 원통과 구, 원뿔이라는 기하학적 구조로 분석하며 보는 방식의 구조를 탐구했고, 파블로 피카소는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해체하여 복수의 시각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냈다. 나아가 추상회화는 대상을 재현해야 한다는 오랜 전제를 완전히 내려놓고 색과 선, 형태 자체를 회화의 주제로 삼았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에는 회화를 서사로부터 해방시키고, 재현의 예술에서 지각의 예술로 전환시킨 모네의 혁신이 자리하고 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의 위대함은 빛을 아름답게 그렸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회화는 무엇을 재현해야 하는가라는 오랜 질문을 회화는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었다. 그림은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는 매체가 아니라, 세계를 본다는 행위자체를 탐구하는 매체가 되었다. 이 탈서사적 전회는 회화를 재현의 예술에서 지각의 예술로 전환시킨 결정적 사건이었으며, 이후 모더니즘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26-07-17 12:23:00
2026-07-17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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