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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도건축기행]  경남 고성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팔도건축기행] 경남 고성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경남 고성군 대가면 대가연꽃테마공원. 굽이치는 대가저수지의 잔잔한 물결과 수변의 생태가 어우러진 이곳 한편에, 주변의 푸른 자연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면서도 기묘하게 조화로운 붉은빛의 철제 건물 두 채가 서 있다. 수면 위로 붉은 박공지붕의 실루엣이 비치는 풍경은 건축물이 자연을 온전히 품어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자라나는 '숲'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본래 나무가 부족했던 공원 부지에 비교적 생장이 빠른 백합나무 100여그루를 심어 작은 숲을 조성했다. 건물이 살아 변하면서 점차 이곳이 울창한 숲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판단이 담겼다. 승효상 건축가는 이를 두고 "제정구 선생의 집이 아니라 제정구 선생의 숲을 설계했다고 해도 된다"고 표현했다. 이곳은 평생을 철거민과 도시 빈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헌신하며 '빈민의 아버지'로 불렸던 고(故) 제정구 선생(1944~1999)을 기리는 공간, '제정구 커뮤니티센터(이하 기념관)'다. 선생의 고향인 고성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일반적인 위인들의 기념관이 띠는 거대한 위용을 철저히 배제했다.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비워내는 건축적 문법을 통해 선생의 삶의 철학을 물리적 공간에 구현해 냈다. ◆ '빈민의 아버지'와 '빈자의 미학'의 만남 기념관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정구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1944년 고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1970년대 청계천 판자촌을 시작으로 양평동, 묵동 등지에서 빈민 운동에 투신했다. 1986년 정일우(존 데일리) 신부와 함께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공동 수상했으며, 이후 제14·15대 국회의원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가 평생을 관통하며 강조한 가치는 "가짐 없는 큰 자유"였다. 이러한 선생의 철학을 공간으로 빚어낸 이는 '빈자의 미학'을 주창해 온 승효상 건축가다. 가난한 이들의 삶의 공간에서 발견한 연대와 나눔의 가치를 건축의 핵심으로 삼아온 건축가에게, 제정구 선생의 삶은 곧 자신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이 공간은 한 인물을 우상화하는 거대한 덩어리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교류하는 '커뮤니티센터'라는 이름으로 2021년 문을 열었다. ◆박공지붕과 '정자'가 있는 마당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적 특징은 공간의 분할이다. 웅장함을 과시하는 대신,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집의 형태인 박공지붕 건물 두 채를 나란히 배치했다. 선생이 천착했던 인간 내면의 존엄성을 기억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건축이어야 한다고 여긴 결과다. 두 채의 건물 내부는 전시실, 교육실(강의실), 강당, 북카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건물을 분리함으로써 그 사이로 대가저수지의 풍경이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들어오게 되며, 이는 전보다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건축적 장치다. 건물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비워진 마당'과 '골목길'이 생겨났다. 이는 선생이 평생 호흡했던 판자촌의 골목길, 그리고 빈민들의 끈끈한 공동체적 연대를 은유한다. 특히 마당 한가운데에는 사람들을 늘 환대했던 선생의 성품을 기려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정자'를 배치해 모든 이들이 선생과 함께 머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했다. ◆ 시간이 빚어내는 외장재 기념관 외관을 감싸고 있는 붉은 금속 재료는 승효상 건축가의 시그니처 재료이기도 한 '내후성 강판(코르텐강)'이다. 대기에 노출된 초기에는 붉은 녹이 슬지만, 약 5년의 시간이 지나면 표면에 형성된 녹이 치밀하고 단단한 산화 피막으로 변모해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한다. 인위적인 마감이나 치장을 거부하고 자연의 비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이 재료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굳건했던 선생의 삶을 닮았다. 10년, 20년의 세월이 흐르며 표면이 짙은 암적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건축물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하며, 결국 이 암적색의 외벽은 주변 숲과 동화되어 선생을 기억하는 묵직한 장치로 남게 된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경남신문 박준영 기자,사진=김승권 기자

    2026-03-26 12:00:00

  • [임무출의 낱말 맞히기]<제13회>

    [임무출의 낱말 맞히기]<제13회>

    〈strong〉◆가로 풀이〈/strong〉 1. 어쩌다가 가끔. '가끔가다가'의 준말. 나는 ○○○○ 네 꿈을 꾼다. 3. 가마우짓과의 물새. 가마우짓과에 속하는 새의 총칭. 이것의 준말은 '우지'이지요. 7. 위험이나 곤란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하여 줌. =구재.구조 8. 원둘레의 반과 지름으로 이루어지는 반원처럼 생긴 모양. 9. 글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 네 동생은 ○○가 밝아서 커서 훌륭한 학자가 될 것이다. 12. 어떤 일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꾀함. 친목을 ○○하다. 13. 한 되 한 되. 따로따로의 한 되. 너무나 가난하여 쌀을 ○○로 사 먹다. 17. 조금도 허술한 데가 없음. =만반. 안전사고 예방에 ○○을 기하다. 18. 어느 단체나 정당에도 속하여 있지 않음. 그는 ○○○ 의원이다. 19. 주로 자동차만 다니게 마련한 길. =차도. ○○로 걸으면 위험하다. 22. 다락처럼 높게 만들어 놓은 마루. 23. 비가 섞여 내리는 눈. ↔ 마른눈. 〈strong〉◆세로 풀이〈/strong〉 1. 소총의 가늠자 위쪽에 뚫어 놓은 작은 구멍. 2. 말이나 행동을 속마음과는 달리 거짓으로 꾸밈. =가면. ○○이 없는 인품을 지녔다. 4. 석벽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새김. 그들은 ○○석불을 찾아 나섰다. 5. (새, 특히 작은 새가) 자꾸 소리 내어 울다. 산새들이 ○○○○. 6. 모든 빛깔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기본적인 색. 색의 ○○○, 빛의 ○○○ 등이 있지요. 10. 상업 활동에서 지켜야 할 도덕. =상도의. 11. 말이나 되로 곡식 따위를 되는 일. 14. 하던 일을 그치고 아니하다. 직장을 ○○○○. 15. 가진 것이 없음. 법정 스님은 ○○○의 삶을 사셨다. 16. 옷감 따위를 가로로 잰 길이. =횡폭. 이 비단의 ○○○○는 얼마쯤 될까? 20. 말을 탐. 그녀는 ○○ 대회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21. 손이나 발에 생기는, 사마귀 비슷한 굳은살. 발가락의 ○○만큼도 안 여긴다.(속담) 〈strong〉◆11회 정답〈/strong〉 〈응모요령〉 ▶낱말맞히기 정답 공모(이름·휴대폰 번호·주소를 반드시 기재) ①우편엽서 ②이메일: mincho@imaeil.com ▶당첨자는 지면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 ▶보내실 곳: 대구시 중구 서성로 20 매일신문 주간본부(우편번호 41933) ▶당첨자는 본지 지면 발표

    2026-03-26 11:30:00

  •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4290년(1957년) 3월 26일/27일/28일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4290년(1957년) 3월 26일/27일/28일

    ◆3월 26일 화요일 맑음아침에 일찍 일어나 오늘 고향에 가려고 모든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조금 있다가 집을 떠났다. 나 혼자서 심심하였지만, 이 생각 저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하였다. 집에 오니 형님께서 와 있었다. 형님과 놀다가 점심을 먹고 읍실 큰집으로 왔다. 큰집에서 미술(美術/그림)을 곱게 벽에 붙이고 작은집을 방문한 뒤 집에 내려와 어머니께서 나를 위해 새로 사 온 옷을 입혀주며 기뻐하셨다. 이것저것 하다가 저녁을 먹은 후 공부를 조금 하고 내일 예천(醴泉) 갈 준비를 다 마친 뒤 고등학교(⾼等學校) 강의록(講義錄)을 보다가 잤다. ◆3월 27일 수요일 맑음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천(醴泉) 갈 준비(準備)를 하고 세수를 한 뒤 아침을 먹고 어머니와 길을 떠났다.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오는 사이에 어느덧 우마이(위만리) 외사촌 누님댁에 도착하였다. 누님네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어머니와 같이 목적지(⽬的地/외갓집)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조그마한 재(고개)가 많아서 매우 지루하였다. 있는 힘을 다하여 걸어 목적지에 다다랐다. 외삼촌님 댁에가 인사드리고 조금 있다가 저녁을 먹은 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잤다. ◆3월 28일 목요일 맑음아침에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외가(外家) 대소가(⼤⼩家) 신동 외 종조 할아버지 집을 방문 점심을 먹은 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외갓집에 돌아왔다. 조금 있다가 작은 외갓집으로 가서 놀면서 세완(世完)형님을 따라 들판으로 나무 지러 가면서 많은 우시게(유모어)를 하며 다녀 왔었다. 외갓집에서 놀다가 저녁을 먹은 후 옥이네(외사촌 여동생) 집에 가서 "카드"놀이를 하다가 집에 돌아와 조금 놀다가 꿈나라로 갔다.

    2026-03-26 11:30:00

  • [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7>순정의 고백 '알뜰한 당신'

    [소야의 대중가요 문학을 품다]<7>순정의 고백 '알뜰한 당신'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서정시인 김영랑의 '내 마음 아실 이'는 먼저 자신의 속마음을 잘 이해하고 함께 해 줄 임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김영랑 시인이 그리워한 그런 사람이 있을까. 내 마음도 종잡을 수 없는 얄궂은 세태에 하물며 사랑도 모를 내 혼자 마음을 꿈에라도 아실 이 있을까. 그래서 시인은 현실적으로 그런 임이 존재하지 않는데 따른 설움과 고뇌를 토로하고 있다. 이렇게 네 마음의 결을 내가 담지 못하고, 내 이슬같은 마음을 너에게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절의 아픔을 가수 황금심은 '알뜰한 당신'으로 변주한다.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설운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 알뜰한 당신은 알뜰한 당신은, 무슨 까닭에 모른 척하십니까요'. '알뜰한 당신'(1938)의 정조(情調)는 김영랑의 시적 감성과 일맥상통한다. 깊은 밤, 향 맑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알뜰한 마음을 당신은 왜 몰라주는 것인가. 왜 모른 척하는 것인가. 그러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눈물로 호소하는 예스러운 모습이 사뭇 가슴을 적신다. 동시대의 작품인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풍경은 고백하지 못한 사랑이어서 더 가슴 깊이 자리한 그리움이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된 여인들의 수절과부 정신이 미덕으로 찬양되는 봉건적 공기 속에서 서로에 대한 연모의 정을 숨기며 앓기만 하다가 결국 헤어지는 사정이 가슴 아프다. 내 마음을 아실 알뜰한 당신이지만 유교적 인습의 벽을 넘지는 못한 것이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사랑방까지 다가왔다가 고개 너머 기차를 타고 떠나버린 알뜰한 사랑. 그 정서는 광복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격랑을 거친 1955년 송민도의 노래로 부활한다. '나 하나의 사랑'은 나 혼자만이 그대의 가슴 속 깊이 다가서고 싶다는 간절한 호소이다. 내 마음을 나와 같이 알아주는 그대의 사랑을 오로지 차지하고 싶은 꾸밈없는 순정의 물결은 20년 후 하춘화의 '알고 계세요'로 이어진다. '알고 계세요 당신만 사랑한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당신만 알고 계세요, 세월이 변한다고 변치 마세요, 그 누가 뭐라 해도 변치 말아요, 한평생 사랑한다고 당신만 알고 계세요'. 애틋한 연정을 담은 순정 트로트 곡이다. 사랑은 멀어질수록 애틋하지만, 가까워지면 시뜻해지기 마련이다. 나도 모를 얄궂은 심사이다. 황금심은 연상의 띠동갑인 고복수와 연예인 부부 제1호이다. 집안의 반대로 숱한 곡절을 겪으면서 결혼했고 잉꼬 부부로 잘 살았다. 하지만 남편 고복수가 해방 후 잇단 사업 실패로 심신의 아픔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홀로 가정을 지켜야 했다. 파란 속의 순정한 삶이다. 김영랑의 '내 마음 아실 이'는 내면에 충만한 사랑의 마음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한 안타까움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내 마음 아시는 알뜰한 당신과 더불어 한평생 변함없는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영랑의 시가 기대와 좌절의 갈등 구도를 드러내는 까닭이다. 그 누구도 오롯이 알아주지 못하는 마음을 지닌 인간의 고독, 그래서 순정한 사랑은 더 그리운 것인가. 대중문화평론가

    2026-03-26 11:30:00

  • [법도 문학도 아닌]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

    [법도 문학도 아닌]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

    의자 모양 형틀에 묶인 채 몽둥이로 매질을 당한 후 목칼 형틀을 쓴 채 옥에 갇힌 춘향.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의 전형적 고난 장면이다. 그런데 '쇠가 박힌 대나무 몽둥이가 그녀의 작고 여린 발바닥을 부서트렸다.' 폴란드 여류시인 쉼보르스카가 읽은 춘향은 이러했다. 춘향의 가녀린 목에 걸린 커다란 형틀에 시각적으로 제압당한 우리와 달리 그녀는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을 끝까지 기억하고 연민의 끈을 놓지 않는다. 과연 춘향의 발꿈치 뼈는 아무런 흉터도 남기지 않고 잘 아물었을까?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잘 생긴 배우자 옆에서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첫날 밤 원앙이 수 놓인 이불을 덮어 자신의 뒤틀린 두 발을 애써 가리지 않아도 되었던 것일까? 염려한다.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은 폴란드에서 10대를 보냈고, 전쟁이 끝나자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인 공산주의 시대를 온몸으로 지나왔던 쉼보르스카에게 춘향은 으깨어진 두 발의 현실에도 당최 항복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동화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된 훈련을 못 이겨 집단탈출을 감행한 까까머리 아이들. 가난으로 혹은 무책임으로 돈 몇 푼에 제 부모가 팔아넘긴 아이들이 기껏 경극학교를 탈출하고도 또 경극을 본다. 모두가 웃고 박수 치고 환호하는 가운데 그 아이들은 연신 두 볼을 훔쳐가며 철철 운다. '얼마나 맞았으면 저렇게 할까…' 하면서…. 이 장면에서 극장의 관객들은 그 아이들의 능청스러운 우는 연기에 모두 박장대소했었다. 영화 〈패왕별희〉하면 모르긴 해도 아마도 다들 두꺼운 분장 속에서도 소름 돋도록 처절했던 장국영의 눈빛 연기를, 그리고 결국 우희처럼, 데이처럼, 자신을 보낸 배우 장국영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패왕별희〉는 내게 오래도록 그 아이들의 '얼마나 맞았으면…'이라는 울먹임으로 남았다. 극장 안 관객들이 모두 그 아이들의 눈물을 보고 웃었을 때 나는 그 아이들을 따라 울고 말았기 때문이다. 경극을 보러 온 관객들은 눈앞에 보이는 몸짓 하나, 소리 하나에 그저 감탄하고 웃으면 그뿐이지만 그 아이들은 똑같은 몸짓에서 수많은 상처와 고통의 시간을 보았기에, 볼 수밖에 없었기에 그 상처와 고통에 공감하여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나는 그 공감의 필연성에 공감하느라 울었던 듯하다. 신참 변호사 시절 '내 일처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정말 내 일처럼 빠져들어 가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분발의 다짐보다는 슬몃 열패의 기운에 휩쓸리곤 했던 게 사실이다. 가슴으로는 상대방에 공감하면서 머리로는 냉철한 판단을 하면 된다는 것쯤은 익히 알지만 부닥치는 현실은 매번 그렇게 녹록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부모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가 바깥에서 성폭행을 당했는데, 부모는 그저 합의금을 받아 챙기는 데 급급한 상황에서 분노와 무력감 이외에 피해자 국선변호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많지 않았다. 13살 여자아이에게 '조두순'과 같은 끔찍한 짓을 저질러놓고도 자기 집 강아지에게 밥을 주기 위해, 그리고 주말이면 자신이 자원봉사하러 가는 보육원이며 양로원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구속적부심을 청구한다고 당당히 얘기하는 피의자의 국선변호인이었을 때는 차마 '불구속'이니 '선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이너스 통장에, 대출까지 받아서 돈을 빌려준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변제를 해야 양형에 도움이 된다고 했더니 '그럼 우리 애들은 길바닥에 나앉으라는 거냐'며 버럭 화를 내는 피고인을 마주하고서는 피해자를 대신해 울분을 토하고픈 마음을 애써 억눌러야 했던 국선변호인이기도 했다. 쉼보르스카는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을 알아차리고 공감하고 연민하지만, 그렇다고 리얼리즘에 매몰되어 이에 대한 언급 없이 매우 강렬한 해피엔딩을 맞는 것을 두고 이를 미학적으로 일종의 죄악으로 치부하거나 개연성에 위배된 요소라고 배척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동화는 틈만 나면 훨씬 나은 자신만의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현실을 난처하게 만든다고.

    2026-03-26 11:30:00

  •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13>  패가망신(敗家亡身),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13> 패가망신(敗家亡身), "집안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망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을 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라고 발언했다.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에도 "공직을 이용해 돈을 벌면 반드시 패가망신한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패가망신(敗家亡身)'은, "무너뜨릴 패, 집 가, 망칠 망, 자신 신"으로, "집안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망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집안의 재산을 다 써 없애고 자기 몸까지 망친다는 데에 주목하나 권력이나 주색잡기 관련 등의 맥락에서도 사용된다. 이 말은, 중국의 "패가(敗家), 가파신망(家破身亡), 상신(喪身)" 같은 상용어에 근거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쓴 말이다. 중국의 동진 때 환온(桓溫)이 쓴 『천초원언표(薦譙元彦表)』에는 자기 몸을 죽인다는 '망신(亡身)'이, 당나라 초기 온대아(溫大雅)가 쓴 『대당창업기거주(大唐創業起居注)』, 원나라 때의 『어초한화(漁樵閑話)』 등에는 "집안은 무너지고, 자신은 죽다"라는 '가파신망(家破身亡)'이 보인다. 이후 명대의 『삼국지연의』에는 '상신(喪身)'이란 말이 있고, 이에 근거한 '상신패가(喪身敗家)'란 말도 만들어진다. 사실 이런 말들은, 거슬러 오르면, 전국시대 맹자의 "망국패가(亡國敗家)"에 가 닿는다. 『맹자』 「이루장구 상」에서, 맹자가 말했다. "어질지 않은 사람은 더불어 올바른 이치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위태로운 것을 편안히 여기고, 재앙을 이로운 것으로 여기고, 망하는 것을 즐겁게 여긴다. 어질지 않지만 더불어 올바른 이치를 말할 수만 있다면, 어찌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무너뜨릴(亡國敗家) 일이 있겠는가?" 아울러 맹자는 "인민을 너무 난폭하게 대하면, (군주) 자신은 시해당하고 나라는 망하게 된다(身弑國亡)"라는 '신시국망'을 경고한다. 그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천하・국가'인데 "천하의 근본은 나라(國)에, 나라의 근본은 집안(家)에, 집안의 근본은 나 자신(身)에게 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가-집안-나 자신'이라는 세 축은 일단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기본 틀 속에서 고려하면 된다. 현재는 이런 맥락을 다 잃어버리고, 예를 들어 '가(家)'의 경우에 당초의 '대부가 다스리는 행정구역'이라는 뜻이 아닌 '집안, 가정' 정도로 사용한다. 어쨌든 이런저런 중국의 고전 지식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패가망신'이란 사자성어를 만들어 쓴다. 조선시대에는 윤기의 『무명자집』이나 『국조보감』, 유중교의 『성재집』 등에 보인다. 구한말 및 일제강점기의 각종 자료에도 패가망신이란 말이 속출한다. 예를 들어, 1897년 3월 18일자 『독립신문』에는 "각도 각군에 폐지한 기녀들이 다시 생겨, 자제를 유인 패가망신케 하는 중에 평양기녀들이 더욱 심하다", 1908년 7월 13일 발행 『노동야학독본』에는 "패가망신하는 자는 만석꾼의 자손이 많으니라"라고 했다. 1926년 4월 30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유아사 구라헤이(湯淺倉平)가 외무차관 데부치 가츠지(出淵勝次)에게 보낸 〈대구에 있어서 북미장로파 내홍에 관한 건〉(大邱ニ於ケル北米長老派內訌ニ關スル件)에서는, 이렇게 권고한다. "술을 좋아하는 사회는 퇴보하고 타락하며, 금주하는 사회는 진보하고 향상한다. 사랑하는 동포여! 형제여! 자매여! 독과 해가 있는 술을, 패가망신하는 술을, 마시지 말라(毒ト害アル酒ヲ敗家亡身スル酒ヲ呑ム勿レ)" 패가망신이란 말이 자주 나도는 건 실제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말 대신 '자수성가'나 '수신제가'라는 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26-03-26 11:30:00

  • [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 데미안 허스트가 던지는 미학적 질문들

    [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 데미안 허스트가 던지는 미학적 질문들

    박제된 생명체의 시체를 전시해 세계를 경악에 빠트린 작가. 예술의 자유와 윤리적 경계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데미안 허스트. 그는 1980년대 후반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 YBA(Young British Artist)의 중심 인물로, 동시대 미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실험해 온 작가이다. 허스트의 작업에서 가장 강렬하게 부각되는 주제는 단연 '죽음'이다. 그러나 그가 다루는 죽음은 단순한 재현이나 상징의 차원을 넘어선다.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잠긴 상어와 소 등 동물의 사체를 활용한 그의 작업은 예술 창작의 자유와 생명 윤리에 대한 첨예한 논쟁을 촉발해왔다. 이 작품들은 죽음을 눈앞에 직접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을 경험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부패는 중단되고 시간은 정지된 채, 죽음은 하나의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끝없이 유예되는 상태로 제시된다. 이와 같이 허스트의 작업은 죽음을 극도로 가시화하는 동시에, 그것의 본질적 접근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이중적 구조를 지닌다. 우리는 분명히 죽은 생명체를 보고 있지만, 결코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죽음은 눈앞에 현존하지만, 끝내 체험될 수 없는 것이다. 미술가가 선택한 투명한 유리 수조는 단순한 보존 장치가 아니라 중요한 조형적 장치이다. 그것은 과학적 표본 진열 방식과 미니멀리즘의 기하학적 형식을 결합하며, 죽음을 감정의 대상이 아닌 관찰 가능한 객체로 전환한다. 생명체의 시체는 더 이상 애도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과 응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전환은 죽음을 둘러싼 전통적 감각을 해체하고, 그것을 현대적 시선 속에 재배치한다. 허스트는 또한 현대 사회가 종교적 구원 대신 과학과 의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약품 캐비닛과 스폿 페인팅은 질병을 통제하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시각화한다. 정교하게 배열된 알약과 반복되는 색점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생명이 관리되고 통제되는 현대적 조건을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업은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의 시각적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과학 기술에 의해 생존이 연장되는 대상으로 변화한다. 허스트의 작업은 예술과 자본의 관계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해골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죽음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극단적인 사치와 결합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지니는 가치의 이중성을 폭로한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비판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스튜디오 중심의 분어베 체계를 통한 대량 생산, 경매 시장의 적극적 활용 등은 그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깊이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 생산장의 구조 속에서, 비판과 공모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허스트의 예술은 단순한 충격이나 스캔들로 환원하기에는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의 작업은 죽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을 정지시키며,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끝없이 유예한다. 이러한 '정지된 죽음'과 '유예된 죽음'의 상태 속에서 관람자는 죽음을 직면하는 듯하지만, 끝내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에 머물게 된다. 바로 이 간극에서 그의 작업은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을 드러낸다. 우리는 죽음을 인식할 수밖에 없지만,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허스트는 이 불가능성 자체를 가장 노골적이면서도 정교한 방식으로 전시하는 작가이다.

    2026-03-26 11:30:00

  • [금주의 공연,전시]

    [금주의 공연,전시]

    ◆대구연극협회 주최 제5회 더파란연극제 극단 라포.​연극 〈테레즈〉 우전소극장 입장료 3만원 문의 053-255-2555​ 극단 라포는 2024년 결성한 비정형연극각성집단이다.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적 연극으로 관객의 감각과 문제의식을 깨우며 인간 내면의 깊고 어두운 감정과 본능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번 작품 〈테레즈〉는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각색한 연극이다. 원작의 배경인 파리 잡화점 대신 낡고 음침한 서점을 무대 삼아 인물들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카미유'는 몸이 불편한 인물로 설정해 '테레즈'가 느끼는 압박과 짐 같은 감정을 더 선명하게 강조했다. 원작의 큰 흐름을 유지하며 보편적 비극을 현대적 미장센과 결합해 욕망과 죄책감이 틀어지는 순간을 더 가까이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숙정 초대 개인展 '당신은 나의 봄' 3월 30일~4월 9일 환갤러리 문의 053-710-5998 ​부귀와 영화의 뜻을 품은 '모란'을 작가만의 조형 언어로 새롭게 해석, 배치해 상징적인 이미지로 활용해 온 김숙정 작가의 개인전이다. 그의 회화에는 모란이 핀 풍경 속에 다양한 생물들이 등장하고, 황홀하고 산뜻한 풍경을 누리는 의인화된 캐릭터들이 나온다. 이번 전시에서는 곧 다가올 봄과 어울리는 경쾌하고 행복한 풍경화를 선보인다.​ ◆수성아트피아 기획 A-ARTIST Ⅱ. 이기철展 '토끼시대-우리시대의 보물' ​3월 26일~4월 12일 수성아트피아 2전시실 문의 053-668-1840 ​이기철 작가는 가상 서사 '토끼시대'를 바탕으로, 개인의 상상과 욕망이 반복과 기록을 통해 하나의 믿음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다룬다.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놓인 토끼를 신화적 존재로 전환한 작품들은,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 어떻게 숭배의 형상으로 구축되는지를 박물관적 형식으로 제시한다. '토끼시대의 미술'을 주제로, 토끼를 바라본 인간의 예술적 흔적을 유물처럼 배치하며 하나의 시대를 기록한다. 이를 통해 미술작품을 넘어 신앙과 기억의 구조로 확장된 허구의 세계를 조명하고, 반복된 상상과 믿음이 오늘의 현실로 이어지는 지점을 사유하게 한다. ​ ​

    2026-03-26 11:30:00

  • 대구 남구 통합돌봄서비스, 일상생활돌봄 수행기관 업무 협약 체결

    대구 남구 통합돌봄서비스, 일상생활돌봄 수행기관 업무 협약 체결

    대구 남구(구청장 조재구)는 24일 의료요양통합돌봄 사업의 일환으로 가사, 동행, 방문운동을 수행할 지역 내 기관 4곳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날 협약식에는 참좋은 재가노인돌봄센터(대표 이영미), 햇빛 재가노인돌봄센터(대표 안창배)와 방문운동 수행기관 물리치료사회 대구시회(대표 장권욱), 위캔방문운동센터(대표 김동우)가 참석했다. 협약에 따라 각 기관에서는 통합돌봄대상가구를 방문하여 가사지원과 의료기관, 관공서 등의 동행 방문,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남구청은 기관 간 연계⸱협력하며 사업을 총괄한다. 조재구 남구청장은 "통합돌봄 대상자의 일상에서 가사와 동행을 돕고, 방문운동을 지원한다면 어르신과 장애인 생활의 작은 변화로 대상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26-03-24 17:40:03

  • 전국 최초 6년 연속 자원봉사 우수도시 대구, '2026 세계자원봉사자의 해' 비전 선포

    전국 최초 6년 연속 자원봉사 우수도시 대구, '2026 세계자원봉사자의 해' 비전 선포

    대구시는지난 23일, iM뱅크 제2본점에서 대구광역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2026년 세계자원봉사자의 해 대구비전 선포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번 선포식은 유엔(UN)이 2001년 이후 25년 만에 다시 지정한 '2026 세계자원봉사자의 해'를 맞아 대구만의 차별화된 자원봉사 모델을 구축하고 새로운 도약을 선언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6년 연속 자원봉사 우수도시로 선정되는 등 자원봉사 선도도시로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전국 최초로 설립된 대구시자원봉사센터가 개소 3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로, 지난 성과를 돌아보고 미래 30년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날 행사에는 안중곤 대구시 행정국장, 윤영애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위원장, 홍정우 행정안전부 민간협력공동체과장을 비롯해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등 100여 개 유관기관 관계자와 자원봉사자 35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홍보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개회식 ▷비전 선언문 낭독 ▷선포 퍼포먼스 순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선언문을 함께 낭독하며 자원봉사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대구시는 이날 현장에서 대구 자원봉사 비전과 9대 실행전략을 공표하고, 시민 누구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 체계 구축에 본격 나선다. 9대 실행전략은 ▷참여문화 확산을 위한 인식 개선 ▷자원봉사자 예우·지원 강화 ▷대구 자원봉사 30년 기록 아카이브 구축 ▷상생형 문제해결 모델 확립 ▷재난돌봄체계 구축 ▷시민참여형 환경위기 대응 ▷디지털 플랫폼 고도화 ▷미래형 인재 양성 ▷민·관·산·학 초협력 네트워크 강화 등으로, 이는 자원봉사를 통해 기후위기, 재난, 초고령사회, 사회적 고립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에 대응하고자 마련됐다. 대구시는 자원봉사를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시민이 함께하는 생활문화로 정착시키고, 단순 참여를 넘어 지역사회 문제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안중곤 대구시 행정국장은 "자원봉사는 단순한 선행을 넘어 대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동력"이라며 "이번 비전 선포가 대구 자원봉사의 새로운 30년을 여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하며, 일상의 나눔이 사회적 가치로 이어지도록 정책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6-03-24 16:04:54

  • [하대성의 헬기 이야기] 드론과 헬기, 미래 전장의 하늘은 누구의 것인가?

    [하대성의 헬기 이야기] 드론과 헬기, 미래 전장의 하늘은 누구의 것인가?

    현대 전쟁은 초단 기간에 승패가 갈리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미군이 최근 수행한 '에픽 퓨리(Epic Fury)' 작전에서, 작전 개시 첫 100시간 만에 2,000여 개 군사 목표가 타격되고 군함 30여 척이 격침됐다. 위성과 정찰 자산,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휘체계, 정밀 유도무기가 한 몸처럼 작동한 결과다. 위성과 드론, 레이더 등 다양한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목표를 식별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미사일과 드론, 전투기가 거의 동시에 정밀 타격을 가하는 방식이다. 소요 시간은 몇 분 수준이다. 그러나 화려한 연출 뒤에는 냉혹한 계산서가 붙는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첫 100시간 동안 비용이 37억 달러(5조 4,79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밀유도미사일과 방공요격탄 등 첨단 탄약 비용만 31억 달러(4조 5,762억 원) 수준이다. 불과 며칠 사이 수조 원이 사라지는 전장이 된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먼저 바닥나는 것은 병력이 아니라 예산이다. 미국이 단기전을 선호하고, 압도적 군사력을 짧은 기간에 집중해 전쟁의 흐름을 결정짓는 이유다. 1991년 걸프전의 대규모 공습 전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이러한 환경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는 작은 무인기, 드론이다. 값비싼 전투기와 헬기만이 하늘을 지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론은 정찰과 공격 임무에서 예상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하며 전쟁 양식을 바꾸고 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손실 부담도 적기 때문이다. 수천만 원짜리 드론이 수십억 원짜리 장비를 위협하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싸고 많이'라는 새로운 계산법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다고 미래 전장의 하늘을 드론이 일방적으로 지배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드론은 전파·GPS 교란에 취약하고, 탑재 중량과 기상 조건의 제약이 크다. 복잡한 전장 상황에서 인간 조종사처럼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도 아직 쉽지 않다. 반대로 헬기는 기체 가격이 높고 격추될 경우 인명과 장비 손실이 막대하며, 저고도로 접근해야 하는 임무 특성상 대공무기와 드론 공격에 취약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헬기가 갖는 강점은 분명하다. 병력과 장비를 빠르게 이동시키고, 부상자를 후송하며, 지휘관이 탑승해 이동 지휘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산악과 도시가 뒤섞인 복잡한 지형에서 숙련된 조종사의 판단과 기술은 여전히 전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요소다.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직접 판단하면서 유연하게 기동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헬기의 강점이다. 결국 쟁점은 "드론이냐, 헬기냐"의 선택이 아니다. 미래 전장에서는 두 수단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야 한다. 드론이 먼저 전장에 들어가 적의 위치와 위협을 탐지하고, 필요하면 선제공격을 수행해 통로를 연다. 그 뒤를 헬기가 따라가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고, 부상자를 후송하며, 지휘관이 현장을 직접 확인하면서 작전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한반도 작전환경에서는 이러한 결합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는 서해와 동해의 해상 지역, 대도시와 접경 지역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 전장이다. 서해·동해 상공에서의 해상 감시·탐색구조 임무, DMZ 인근 정찰, 독도와 같은 상징적 영토의 긴급 수송과 구조 임무는 드론과 헬기의 장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한국군이 드론·헬기·지상전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교리와 운용 체계를 얼마나 준비했는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통합 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값싼 드론 몇 대를 가진 상대에게도 전략적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 현대전은 점점 더 빠르고 정밀해질수록 막대한 비용을 요구한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다양한 전력을 얼마나 지능적으로 결합하고 운용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 전장의 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특정 플랫폼이 아니다. 값싼 드론이든 고가의 헬기든, 두 수단을 어떻게 결합하고 운용하느냐를 아는 국가가 결국 하늘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하대성 전 육군헬기부대 대장, 정치학 박사

    2026-03-19 12:00:00

  •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단기 4290년(1957년) 3월 18일 월요일/3월 20일 수요일 맑음

    [임무상의 1957 그림일기]단기 4290년(1957년) 3월 18일 월요일/3월 20일 수요일 맑음

    〈strong〉3월 18일 월요일 맑은 후 흐림〈/strong〉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읍실로 왔다. 아이들은 먼저 산마루에 올라 있었다. 나는 빨리 산길을 올랐다. 아침 공기는 참 맑았다. 나의 마음이 언제나 오늘 아침 공기와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우리는 학교로 왔다. 아이들은 많이 와 있었으며 그러나 우리는 지각 하지 않았다. 오늘은 군청(郡廳)에서 일본(⽇本)을 반대한다는 목적으로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우리는 의식을 마치고 시가행진(市街⾏進)을 한 뒤 학교로 돌아왔다. 공부를 한 시간 한 후 오후에는 체조연습을 하고 종회를 마치고 집으로 빨리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공부를 시작했다. 얼마쯤 있다가 저녁을 먹고 뒷마을에 가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공부하고 일기(⽇記) 쓰고 잤다. 〈strong〉3월 20일 수요일 맑음〈/strong〉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아침 과제(課題)를 마친 후 아침 조반을 먹고 학교로 빨리 왔다. 학교에 와서 담임선생님 심부름 즉 학급일지(學級⽇誌)를 썼다. 그래서 조회(朝會)를 하지 못하였다. 공부시간이 되어 공부를 네시간을 하였는데 열심히 공부하였다. 시간을 다 마친 후 빨리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어저께 그리던 미술을 완성하고 저녁을 먹은뒤 태욱이네 집에 가서 공부하다가 집으로 와 잠을 잤다.

    2026-03-19 12:00:00

  • [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지조 있는 조개, 꼬막

    [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지조 있는 조개, 꼬막

    꼬막은 11월~3월이 제철이다. 겨울의 묵직한 맛을 꼬막으로 본다면 봄의 새초롬한 맛은 봄나물일 거다. 막바지 맛이 아쉬워 꼬막에 달래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보았다. '바다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꼬막과 봄나물의 비타민은 쫄깃쫄깃 아삭하게 입맛을 돋운다. 국수에 비벼 먹거나 밥에 비벼 먹어도 좋은 메뉴이다. 겨울을 떠나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중간의 적절한 맛이다. '꼬막'은 '작은 조개'를 뜻한다. '꼬'는 '꼬마', '꼬투리'처럼 작은 사물을 지칭하고, '막'은 '오두막', '움막' 등에 사용되는 말이다. 즉 꼬막은 '작은 집에 사는' 것을 지칭한다. 고문헌의 꼬막은 껍데기가 기와지붕의 부챗살마루 같다고 해서 '와룡자(瓦龍子)', 줄무늬가 기러기가 줄지어 가는 모양과 같아서 '안항조(雁行鳥)'라 하였다. 옛사람들은 기러기와 꼬막이 본래 하나라고 보았다. 찬바람을 피해 바다로 숨어 들은 기러기들이 갯벌을 뒤집어써서 딱딱한 껍데기의 꼬막이 되었다는 것이다. 꼬막을 먹으면 기러기처럼 멀리까지 날아갈 힘이 솟는다고 해서 '벌교 가서 힘자랑하지 마라' 하였다. 반면 일제강점기에 포구에서 농산물 반출하는 일본인을 벌교 사람이 패주곤 했는데, 그 주먹이 무서워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얘기가 생겼다고 전한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 의하면 전남 여자만의 목포, 하대진포 등지에서 꼬막을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육지로 둘러싸였으나 외따로 떨어져 고립된 섬, 사람들은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야 했다. 그 여자도(汝自島)를 품은 바다가 여자만(汝自灣)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만 꼬막을 최고 상품으로 치는 이유는, 그곳이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미네랄이 풍부한 찰진 갯벌이기 때문이다. 꼬막은 껍데기를 꽉 다물고 입을 열지 않아 '지조 있는 조개'로 여겼다.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는 전라도 특산물이었고, 패각에 털이 없어 제사상에 의젓하게 자리한 '제사 꼬막'이었다. 꼬막의 다른 이름은 '안다미 조개'로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라는 '안다미로'에서 따온 순우리말이다. 고조리서에는 '음식이 곧 약이다'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원리를 따른다. 꼬막 역시 약이며 음식인 '약선(藥膳)'이었다. 꼬막의 본초명은 감(蚶)이며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다. 본초강목에 '오장을 튼튼하게 하고 소화를 도우며 역기(逆氣)를 내린다'고 하였다. 현시점에서도 꼬막은 슈퍼푸드에 가깝다. 철분과 헤모글로빈이 풍부하여 빈혈 예방에 좋고, 타우린(Taurine) 성분은 간의 해독 작용을 돕는다. '꼬막' 하면, 소설 속 배경 무대가 떠오른다. 빨치산 강동식의 아내인 외서 댁은 청년단장 염상구에게 겁탈당해 아이를 갖게 된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 과정을 견뎌내기가 두려웠던 기구한 여인은 힘없는 민족의 상실감을 보여준다. 꼬막의 간간하고, 쫄깃하고, 알큰하고, 배릿한 맛은 성적 묘사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검은 뻘에서 캐낸 그것은 각자의 닳고 닳은 지문이고 끈기였다. 태백산맥문학관과 순천만을 둘러본 후 그다음으로 으레 꼬막 정식을 먹는다. 거기에 보태 꼬막의 생산지 여자만(汝自灣)을 둘러보는 기행도 의미 있으리라 본다. 춘분(春分)이다. 빛과 어둠이 정확히 반을 나누는 시점으로 이후 낮이 더 길어지기 시작한다. 달려가는 계절 앞에 줄다리기하듯 팽팽한 마음이지만 속수무책이다. 나이 든 사람 기력 쇠하는 것이 하룻밤 새 다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보기(補氣) ·보혈(補血)하는 꼬막요리로 건강을 돋울 일이다. Tip : 꼬막의 익힘은 '데치는' 정도로 해야 한다. 너무 오래 익히면 질겨지니 주의한다.

    2026-03-19 12:00:00

  •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1960년대 중반 초가을. 경산시장 장터 한쪽 빈터에 임시 공연장이 세워졌다. 해가 기울 무렵 유랑극단이 온다는 소식에 마을주민들은 하나둘 모여들었고, 천막 안에서는 노랗고 붉은 전등 불빛이 흔들렸다.'유랑 극단'이 가져온 그 천막은 그시절 어른들에게는 고단한 삶을 잊게 해주는 마법의 공간이며, 동네 아이들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철수를 비롯한 동네아이들도 해가 지기 전부터 공연장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동전 한 닢 나오지 않았다. 입장료는 철수에겐 너무 큰 돈이었다. 입구 앞까지 갔다가도 괜히 표 검사하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까 싶어 몇 번이나 돌아섰다. 공연이 시작되고 천막 안에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악단의 아코디언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이의 발걸음은 저절로 천막 뒤쪽으로 향했다.천막은 두꺼운 천이었지만 군데군데 느슨해진 틈이 있었다. 철수는 그 틈 하나를 찾아냈다. 두 손으로 천막을 살짝 벌리자 안쪽의 환한 불빛이 실처럼 새어 나왔다.철수의 눈이 그 틈 사이로 빼꼼히 들어갔다. 사회자가 "눈물없이는 볼 수없는 이수일과 심순애를 올리겠다!"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아이고…" 하는 탄식같은 소리가 나왔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또다시 그 이야기를 보고 싶어했다. 무대에는 가난한 청년 이수일이 등장했다. 허름한 양복에 낡은 구두, 그러나 마음만은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 심순애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가난은 사랑보다 더 큰 벽이었다. 이수일이 말한다. "순애야… 지금은 내가 가난하지만 반드시 성공해서 너를 행복하게 해 줄게." 심순애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돈이 없어도 괜찮아요. 당신만 있으면 돼요." 그 장면에서 객석의 아주머니들은 눈물을 훌쩍이며 손수건을 꺼냈다.〈중략〉 공연이 끝나자 무대 위의 배우 한 사람이 객석 쪽을 힐끗 보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자, 지금부터는 어른들만 보는 시간이야!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순간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고 천막 뒤 틈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철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자기들을 보고 하는 말인가 싶어 몸을 움찔했다.배우겸 약장수는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돌며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시작되는 현란한 언변으로 회충약이나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던 정체불명의 연고를 파는 시간이었다. 은상 김태연 작 '공짜 구경'에서 비록 "애들은 가라!"는 타박을 들으며 쫓겨나던 처지였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 악극단 천막은 결코 포기할 수 없던 '한 뼘의 극장'이었다.

    2026-03-19 12:00:00

  • [과학으로 보는 세상] 운동하는 예비 아빠, 튼튼한 아들 낳는다!

    [과학으로 보는 세상] 운동하는 예비 아빠, 튼튼한 아들 낳는다!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처럼 운동선수 아빠에게서 운동선수인 아들이 태어나는 경우를 더러 본다. 유전자를 통해 국가대표급의 운동 재능을 물려주지 않더라도,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자녀의 신체적 체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실제로 예비 아빠의 규칙적인 운동이 미래 태어날 아들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운동 흙수저' 아빠, '운동 금수저' 자녀 얻어 시 첸 중국 난징대 교수팀은 규칙적으로 운동한 수컷 생쥐가 새롭게 얻은 체력을 수컷 자손에게 전달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DNA를 통해 유전자를 직접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운동에 의해 변형된 RNA 조각을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10월 6일 국제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게재됐다. 대부분의 유전 형질은 유전자 속 DNA를 통해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달된다. 가령, 폐활량이 큰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은 달리기에 더 유리한 식이다. 그런데 '맛있는 김치찌개 끓이는 비법'처럼 삶 속에서 경험하거나 학습한 것은 DNA에 기록되지 않는다. 대신 DNA의 화학적 포장 방식을 변화시켜 자손의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이를 후성유전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매개체로 '마이크로RNA(microRNA, miRNA)'가 주목받고 있다. 식단, 스트레스, 운동 등 생활 반경이 miRNA 구성을 바꾸면 이 변화가 정자나 난자에 전달돼 수정란의 발달과 자손의 대사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된다. 제1 저자인 신 인 중국 난징대 연구원은 "운동선수들의 자녀가 운동을 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을 것일 수도 있지만, '선수들이 쌓아온 훈련과 시간이 자녀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이번 연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정자 miRNA를 통해 배아에 운동 능력 전달 지금까지 엄마의 신체 활동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임신 전과 임신 중의 신체 활동이 후생유전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녀의 대사 건강, 인지 기능, 신체 수행력과 활동력 등을 향상시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빠의 신체 활동이 정자를 통해 자손에게 후생유전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진은 우선 수컷 생쥐에게 2주 동안 트레드밀 달리기를 시켰다. 운동한 수컷 쥐와 운동하지 않은 암컷을 교배시켜 얻은 수컷 자손은 운동하지 않은 수컷 쥐의 자손보다 더 오래 달리는 등 운동 능력이 뛰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조건도 좋아졌다. 근육량은 높고 지방량은 낮았으며, 고지방 식이에 노출되었을 때도 비만이나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낮았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가 관찰되는 것일까?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PGC-1α(감마 공동활성화 단백질 1-알파) 단백질이 증가한다. 이는 미토콘드리아를 만드는 유전자를 켜는 단백질로, 지구력과 대사력이 증가한다. 연구진은 정자와 수정란의 RNA를 분석해 운동으로 인해 증가한 10종의 miRNA를 찾아냈다. 그중에서도 'miR-148a-3p'라는 miRNA가 NCoR1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 중심 역할을 했다. 즉, 운동을 하면 PGC-1α가 증가하는 동시에 miR-148a-3p가 NCoR1를 억제하는 셈이다. 이에 배아에서 우리 몸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를 더 활발하게 돌아가게 해, 자손의 대사와 근육 기능을 향상시키게 된다. 이는 실제 운동과 유전자적 PGC-1α 활성화가 동일한 형태의 후성유전적 변화를 유발함을 의미한다. 운동으로 인한 miRNA 변화는 사람의 정자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남성 8명과 운동하지 않은 남성 24명의 정자를 수집해 분석했다. 생쥐에서 발견한 10개의 miRNA 중 7개가 운동하는 남성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타고난 '유전적 재산'이 없더라도, 아버지의 운동 습관 변화가 miRNA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연구라는 의미가 있다. 재니스 베일리 캐나다 라발대 교수는 "임신 전 아버지의 운동이 미래 세대의 건강을 개선하고, 비만, 만성질환의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평가했다. KISTI의 과학향기 권예슬 과학칼럼니스트

    2026-03-19 12:00:00

  •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12> 사필귀정(事必歸正),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12>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른 이치로 돌아간다"

    2026년 1월 13일 자 뉴스에는 〈민주당, 윤석열 사형 구형에 "사필귀정…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결론"; 與, 尹 사형 구형에 "사필귀정…헌정 파괴에 준엄한 심판" 등, 사필귀정이란 말이 다수 등장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은, 〈일 사(事), 반드시 필(必), 돌아갈 귀(歸), 바를 정(正)〉으로,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른 이치로 돌아간다"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귀결되며, 잘못된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가끔 "일(事)은 반드시(必) 돌아와서(歸) 바르게 된다(正)"라는 식으로 읽는 수가 있으나 '귀정'에 대한 옳은 해석이 아니다. 사필귀정이란 사자성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주로 한국에서만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때는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의 『건재문집』(健齋文集)에, 이후 효산(曉山) 이수형(李壽瀅, 1837~1908)의 『효산집』에 보인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근대기에 걸쳐 신문・잡지나 관공문서 등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에는 '사필'이 빠진 '귀정'(歸正)이란 표현만이 『후한서』, 『진서』, 아울러 송대 조승(趙升)의 『조야유요』(朝野類要)나 명대의 『수호전』 등에 보인다. '정(正)'은 "하나(一)밖에 없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서(止) 살핀다"라는 뜻이 합해져, '성을 향해서 정복하러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정벌하다, 바로 잡으러 가다'의 '정(征)' 자와도 통하게 된다.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올바른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은 '바르다, 정당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어 - '공정'(公正), '정의'(正義)'에서 알 수 있듯이 - 공(公)이나 의(義) 자와도 결합한다. 정치의 공정성은 '올바름'에서 출발한다. 즉 대의명분을 확보해야 그 생명력을 얻는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는 "정치[政]란 바르게 한다[正]는 것"이라 대답했다. 권력의 올바름은 통치자의 사리사욕[私]이 아닌 '사회적 올바름'(=의리)이라는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요즘같이 법적 정의가 흔들리고 파당적 이권에 골몰하는 세상에서는 '공평, 공정'이란 말을 쓰기란 좀 어색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든 일이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노자』(왕필본) 79장에는 "하늘의 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을 편든다"(天道無親, 常與善人)라는 말이 있다. 사필귀정이란 도리를 시사한다. 과연 그런가. 일찍이 사마천은 이 말을 의심했다. 그는 『사기』 「백이열전」에서, 올바르게 살던 많은 사람이 화를 입는 경우를 거론하며, "천도라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天道, 是邪非邪)라고 물은 바 있다.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공자의 뛰어난 제자 안회는 가끔 쌀 뒤주가 비어 있었고,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어찌 된 셈인가?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 고기를 회 쳐서 먹으며 포악한 짓을 멋대로 저지르고 수천 명의 패거리를 모아 천하를 마구 휘젓고 다녔으나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사마천의 이러한 물음은 여전히 타당하다. 과연 사필귀정이란 말은 믿을만 한가? 각자 이렇게 물으며, 어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려 노력할 때, 좋은 세상도 화답해 오리라 본다.

    2026-03-19 11:45:00

  • [임무출의 낱말 맞히기]<제12회>

    [임무출의 낱말 맞히기]<제12회>

    〈strong〉◆가로 풀이〈/strong〉 1. 꽃이라도 ○○○이 되면 오던 봉접도 아니 온다. 3. 닫는 말에 채질한다고 경상도까지 하루에 ○ ○○○. 5. 내 탓 네 탓 ○○ ○: 자기의 잘못을 환경의 탓으로 돌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9. ○○○ 월천꾼 즐기듯: 누구를 만나 반갑게 맞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0. 당나귀 ○○○○고 한다: 귀머거리의 판단 능력을 조롱하는 말. 12. 검은 구름에 백로 ○○○○:어떤 일을 해도 그 자취가 남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4. 겨울이 지나지 않고 ○이 오랴. 15. 노루 ○○ 막대기: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6. 굶은 ○ 부엌 들여다보듯: 치사스럽게 남의 것을 바라는 모양을 욕으로 이르는 말. 17. 닭의 부리가 될지라도 소의 ○○는 되지 마라. 19. ○○ 없는 털이 있을까: 바탕이 있어야 그 위에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 20. 닭 잡아 겪을 ○○○ ○ 잡아 겪는다. 23. 겉 다르고 ○ 다르다. 〈strong〉◆세로 풀이〈/strong〉 1. 공술 한 잔 보고 ○ ○ 간다. 2. 구 년 ○○에 볕 기다리듯: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거나 기다리는 모양. 3. 길은 ○ ○ 말은 할 탓: 같은 말이라도 하기에 따라서 상대편에게 주는 영향이 다름. 4. 광에서 ○○ ○○: 제 살림이 넉넉하고 윤택하여야 남을 동정하게 됨. 6. 노는 입에 ○○○○: 아무 하는 일 없이 그저 노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하는 것이 나음. 7. 고양이가 알 낳을 ○○○: 터무니 없는 거짓말 같은 일이라는 말. 8. 노루 꼬리가 길면 ○○○ 길까: 보잘것없는 재주를 지나치게 믿음을 비웃는 말. 11. 남의 아이 ○ ○ ○○○ 열 번 때리나 때렸다는 소리 듣기는 마찬가지다. 12. 겨울은 ○○ ○○○ 봄 그리운 줄 안다. 13. 늙은이 ○○ ○○○: 늙은이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잘 치름. 18. ○○ 쉬파리 모여들 듯: 음식을 하였을 때 사람들이 떼거리로 모여드는 모양. 21. 달이 둥글면 이지러지고 ○○이 차면 넘친다. 22. 남의 집 ○○은 쓸어나 보는데, 우리 집 ○○은 쓸어도 못 본다. ◆〈strong〉10회 정답〈/strong〉 〈응모요령〉 ▶낱말맞히기 정답 공모(이름·휴대폰 번호·주소를 반드시 기재) ①우편엽서 ②이메일: mincho@imaeil.com ▶당첨자는 지면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 ▶보내실 곳: 대구시 중구 서성로 20 매일신문 주간본부(우편번호 41933) ▶당첨자는 본지 지면 발표

    2026-03-19 11:30:00

  • [이정식의 시대의 창]AI 시대, 청년의 첫 계단을 다시 놓아야

    [이정식의 시대의 창]AI 시대, 청년의 첫 계단을 다시 놓아야

    AI가 청년 일자리의 첫 계단을 흔들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6년 1월 청년 취업자는 전년 같은 달보다 17만 5천 명 줄었고, 청년 고용률은 43.6%로 2024년 5월 이후 21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반면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경기 둔화, 글로벌 테크 업종의 투자 위축, 고금리 장기화 등 복합 요인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심상치 않은 구조적 신호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종별 고용 통계를 보면, 20대 초반 청년 개발자 고용은 최근 2년간 뚜렷한 감소세를 보인 반면, 30대 이상 숙련 개발자 고용은 안정적이거나 소폭 증가했다. OECD·WEF 등 국제기구는 회계·법무·컨설팅·소프트웨어 개발 등 이른바 'AI 고(高)노출 직무'에서 단순·반복적인 초급 업무가 먼저 자동화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다. 이 두 흐름은 공통의 원인을 가리킨다. AI가 숙련자의 '보완재'로 기능하는 반면, 신입의 '대체재'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연공 편향적 고용 재편'이라 부를 수 있다. '직무 분리' 이론에 따르면, 자동화는 직무 전체를 대체하기보다 직무 내의 특정 단계를 먼저 흡수한다. 신입이 수행하던 초급 단계가 먼저 흡수될 때, 기업의 채용 수요는 줄지만 숙련자의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이는 기술 전환기에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이다. 일자리 통계의 단기 변동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장기 경로 효과다. 노동경제학은 경기침체기나 구조 전환기에 입직이 지연된 세대가 경기 회복 이후에도 임금과 승진 속도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현상을 '초기 경력 충격'이라 개념화한다. 첫 단추가 꿰어지지 않으면 이후의 단추를 맞추기가 훨씬 어렵다는 의미다. AI 전환기의 청년 고용 절벽이 이 충격으로 이어진다면, 현재 청년세대는 단지 취업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체의 소득 곡선과 경력 곡선이 낮아지는 구조적 불이익을 안게 된다. 현재 정부의 청년고용 대책은 구직활동 장려금, 직업훈련 확대, 취업 매칭 서비스 등 공급 측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청년의 의욕이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첫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가 마른 시장에서 공급만 늘리는 것은 물이 없는 강에 배를 띄우라는 격이다. 그렇다고 AI 도입을 억제하면 생산성 경쟁에서 뒤처지고, 결국 더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혁신의 속도가 아니라 그 충격을 흡수할 제도의 설계다. KDI는 AI 확산이 과도한 자동화와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하며, 사회안전망 강화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다만 '유연성'이 언제나 해고 용이화로 오해되는 현실에서, 진정한 유연성은 해고의 편의가 아니라 진입 기회의 다양성—단기 프로젝트 채용, 직무 기반 수습 경로, 공공-민간 연계 수련제 등—에서 찾아야 한다. AI 도입 기업에 대한 청년 신규 채용 유지 인센티브를 제도화하고, 직업훈련 체계를 '경력 미보유자 우선' 원칙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AI 고용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여 분기별로 업종·연령·직무 수준별 고용 변동을 AI 노출도와 교차 분석하여 공개하고, 특정 임계치에 도달하면 집중 지원 프로그램이 자동 발동되는 정책 트리거 연계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또 AI가 창출하는 신규 직무를 공식 직무로 새롭게 정의하고, 청년이 먼저 진입할 수 있도록 교육과 채용 체계를 선제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시각을 바꿀 때다. 신입 채용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바라보지 않으면, 3~5년 후 기업은 후속 인재 풀을 잃게 된다. 숙련자 중심으로 기술의 이익이 집중되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역량 격차와 소득 격차는 장기 고착화되고 '디지털 불평등'이 '세대 불평등'으로 번진다. 정부는 제도를 설계하고, 기업은 채용의 문을 열고, 사회는 그 첫걸음을 함께 받쳐야 한다. 청년이 AI 시대에 공정하게 설 수 있는 첫 계단을 놓아야 할 때다.

    2026-03-19 11:30:00

  • [문학을 품은 영화] 박쥐

    [문학을 품은 영화] 박쥐

    가톨릭 사제인 상현은 헌신적인 봉사와 도덕적인 삶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 이면에는 신앙에 대한 깊은 회의와 의문을 품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그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더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슬픔과 자기 회의에 시달리다 치명적인 바이러스 백신 개발 실험에 참여한다. 실험은 실패하고 모든 자원자들이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사망하지만, 상현만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유일하게 완치된다. 그의 신도들은 그를 기적의 치유자로 칭송하며 떼를 지어 몰려들기 시작하고, 이 소식은 그의 어린 시절 친구인 강우와 그의 가족에게까지 퍼져나간다. 강우는 상현을 마작 모임에 초대하고, 상현은 강우의 아내 태주를 만나 연모의 감정을 품는다. 그리고 상현은 다시 병이 재발하여 햇빛을 볼 수 없는 흡혈귀로 깨어난다. 그는 불멸의 삶을 얻은 듯하지만, 사람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존재의 조건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상현은 태주와의 만남을 통해 평생 도망쳐왔던 강렬한 육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라시오 키로가'의 〈내 손으로 만든 지옥〉에서 서술된 문장이 떠오른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려면 비정상적인 삶을 살면서 쾌락에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족하지요. 기이한 방식으로 쾌락을 얻을수록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두 사람은 그 즉시 하나가 되기 마련입니다. 단둘이 꾸민 낙원에서 행복에 취해 살기 위해 다른 생각은 일절 안 할 테니까요." 상현이 구원의 갈증 안에서 시달리던 상상력은 하늘에서 꽃비처럼 흩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염되고 질척거리며 후끈거리는 지하에서 부화하여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상현에게 진정한 불안은 죽은 뒤 천국의 문에 대한 확신보다는, 정말로 살아있었던가 하는 불확실성에 있기 때문이었다. 구원은 안정적인 삶을 담보하면서 존재를 포기하는 일이며, 기약 없는 신적 사랑은 매력 없는 친절한 얼굴이다. 명확한 답이 없는 구원은 결국 닫힌 문과 같다. 닫힌 문에 갇혀서 창백해진 사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를 뿐이다. 성직자와 신도들은 평범한 일상의 굴레에 빠지고, 체념하면서 늙어가고, 신앙과 믿음 사이에 지켜야 할 임무라는 늪에 빠져서, 생이 주는 열정을 하나씩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이미 늙어버리고, 무료한 운명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육체는, 혹시나 일전에 경험했었던 쾌락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혹은 몰래 갈망했으나 위로받지 못했던 결핍 때문에 폭식의 대상을 갈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연이 갑자기 맺어준 연인과 온갖 난잡한 행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만든 망상의 세계에 둘러싸여 안온하게 쾌락을 나눈다. 마치 새가 지저귀고, 시냇물이 흐르듯이. 더 이상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 없는 완벽한 타락을 함께 학습하면서. 누구도 상대방을 혼미스럽게 취하도록 마시고 먹어본 적이 없다면,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제 불가능의 욕망으로 연인의 몸을 복종시키지 않았다면, 그건 진정 사랑한 게 아니지 않을까. 비밀과 탈선을 함께 공모하며 황홀경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광기의 열정이고, 금지된 사랑으로 가는 무한한 도취이다. 지금 너의 혀를 타고 내려오는 비릿하고 더운 피가 한없이 달콤하다. 그 짜릿한 감미로움이 나의 갈증을 영원토록 목마르게 한다.

    2026-03-19 11:30:00

  • [금주의 공연,전시]

    [금주의 공연,전시]

    ◆대구시립교향악단 체임버 시리즈Ⅰ. 프랑스 목관의 흐름 3월 25일 오후 7시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 입장료 무료 문의 053-430-7765 대구시립교향악단의 단원들이 고품격 실내악을 들려주는 '체임버 시리즈'의 무대다. 셴유칭(플루트), 최규연(오보에), 이성규(클라리넷), 윤주훈(바순), 정승원(피아노)이 참여해 생상스의 '타란텔라, Op.6', 풀랑크의 '오보에,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3중주, FP 43', 프랑세의 '목관 4중주' 등 프랑스 작곡가의 목관 중심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주재범 사진전 '존재의 형태(Shape of Being)' ​2월 21일(토)~3월 28일(토) 사진 전문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053-766-3570 사진작가 주재범의 사진 속 식물들은 말라가면서도 흔들리고, 노래하듯 유려한 선을 그린다. 가녀린 형상과 자연스럽게 드리워진 선들은 인위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를 드러낸다. 그는 시들어가는 줄기와 꽃, 꽃잎을 촬영하며 소멸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형태에 주목한다.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만들어내는 시간을 기다린 흑백 사진은 생(生)과 사(死), 현존과 부재의 경계에 놓인 순간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사라지면서도 남겨지는 형상을 따라가며, 존재는 반드시 '살아 있음'으로만 증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미술평론가 김웅기는 작품 비평에서 '시간 속에서 현존하는 대상을 통해 부재를 증명하고, 부재를 통해 공간 속 현존을 드러내는 이율배반적 맥락의 배치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존재의 형태를 주재범은 자신만의 사진 언어로 제시한다.'라고 썼다. ​ ◆20주년 특별기획 화우반세기회 정기展 '삶과 예술의 진화' ​3월 24일~3월 29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6-8전시실 문의 010-3814-1375 ​화우반세기회(회장 윤백만)의 창립 20주년 특별기획전이다. 고찬용, 유재희, 정귀순, 윤정혁, 김장환, 박정숙, 박명숙, 구두리, 곽계연, 진성수, 윤백만, 정삼이, 천수연 등 약 1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예술적 기록에 의한 삶'(6전시실), '꿈과 비전의 전개'(7전시실), '환상과 상상의 혼재'(8전시실)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동시대 대구 미술의 진화된 작품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고찬용 作) ​

    2026-03-19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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