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강정영 대영레데코 부대표의 아버지 고 강용길 씨

"아들도 아닌 딸인데…'아버지 사랑합니다' 하고 한번 안아드리지도 못했어요"

아버지는 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습니다. 희생적이고 부지런하며 뭐하나 못하는 게 없는 엄마 덕분에 아버지는 대통령보다 더 대접받으며 사셨지요. 그래도 절대 기죽는 일 없고 큰소리치며 사셨고, 엄마가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해주셨습니다.

엄마가 "집 앞에 첩을 얻어 살아도 아프다고만 안 하면 좋겠다"라고 하실 만큼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병치레가 많았습니다. 병원은 물론이고 민간요법까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던 엄마 덕분에 아버지는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건강해지셨지요. 무뚝뚝하면서 건강하지도 못한 아버지 덕분에 가계는 엄마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했고, 엄마는 늘 바빴습니다.

아버지가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내가 고2때 명퇴를 하고 고향으로 오셨는데 아이들이 줄줄이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니 뭔가를 해야 했죠. 부모님은 이리저리 알아보시다가 통닭집을 시작하기로 하셨습니다. 엄마는 대구까지 오가며 통닭 요리를 배워 요리는 엄마가 맡고 아버지는 배달을 맡았습니다.

딸이 셋이라 술 먹는 홀 장사는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의 단호함으로 배달 전문 통닭집을 운영하셨지요. 엄마의 좋은 솜씨 덕분에 장사는 생각보다 잘됐고, 통닭집 운영으로 아들 하나 딸 셋 모두 교육하고 시집·장가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천식이 있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셨는데 칠십이 넘어 큰아버지를 폐암으로 잃고 스스로 담배를 끊으셨지요. 그 덕분에 그 후에는 많이 건강해지셨습니다. 팔십일곱 되시던 해에 새해부터 엄마가 '아버지가 좀 안좋다' 하시더니 3월에 입원하셨고 그해 5월에 짧은 병원 생활로 자식들 고생 별로 안 시키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늘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시고 엄마 고생만 시키는 사람으로 여겨서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별로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꿈에도 한 번 오시지 않아서 '아버지도 내가 그립지 않은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거래처에서 마음상하는 일을 겪고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를 운전해 오는데 라디오에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트로트가 흘러나왔어요. 문득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멨습니다. '늘 엄마만 고생한다고 생각했지, 나고 자란 고향에서 40대 후반의 남자가 오토바이 타고 통닭 배달을 어떤 마음으로 했을까?' 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미안해서 휴게소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딸들에게 험한 모습 안 보이려고 기꺼이 홀 장사를 포기하면서 딸자식을 곱게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 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육군 장교 출신에 세상 무뚝뚝한 아버지는 1등 상을 받아와도 '잘했다' 칭찬 한마디 할 줄 모르시고 그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상장 위에 올려주는 게 최고의 칭찬이었지요. 그런 아버지였지만 따뜻한 정도 많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가 장사하느라 바빠서 아침에 머리 묶어줄 시간 없다고 컷트를 하자고 하시니 아버지가 '예쁜 데 와 자르노?' 하시면서 아침마다 제 머리를 묶어주셨지요.

대학 시절에는 대구에 자취하면서 주말에 엄마가 마련해준 반찬들 들고 청도역까지 오토바이로 데려다주시면서 청도역 앞에서 "엄마한테 말하지 말고 비상금으로 쓰라"며 꼬깃꼬깃 접은 5천 원짜리 신권을 제 주민등록증 뒤에 끼워주셨지요.

모자를 좋아하셔서 백화점에서 비싼 모자를 하나 사드렸더니 저한테는 고맙단 말은 안 하시고 "쓸데없이 비싼 거 사 왔다"고 핀잔을 주시더니, 보물 모시듯 걸어놓고 동네 나들이 갈 때마다 쓰고 나가서 딸이 사줬다고, 비싼 거라고, 자랑하셨나 봅니다.

엄마는 지금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수고했다", "고맙다" 한마디 안 하고 가셨다고 원망하십니다. 무뚝뚝한 아버지…. 그래도 엄마한테 그런 마음은 갖고 계시지요?

나이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문득문득 그립습니다. 표현하지 않아도 사랑이 다 넘쳐 흘렀을 것을…. 철없는 이 딸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나 봅니다. 아들도 아닌 딸인데…. "아버지 사랑합니다"하고 한번 안아드리지도 못했어요. 어떡해요, 아버지…. 꿈에라도 한번 오셔요, 제가 꼭 한번 안아드릴게요. 그리고 엄마한테도 꿈에 한 번 오셔서 "수고했다. 고맙다." 한마디 해주셔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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