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장애 갖고 평생 사셨던 아버지…"예술가의 삶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사)한울림 대표 정철원 씨의 아버지 고(故) 정한태 씨

2012년 부산 해동용궁사로 가족여행가서 찍은 기념사진. 왼쪽이 아버지 고(故) 정한태 씨, 오른쪽이 정철원 씨. 정철원 씨 제공
2012년 부산 해동용궁사로 가족여행가서 찍은 기념사진. 왼쪽이 아버지 고(故) 정한태 씨, 오른쪽이 정철원 씨. 정철원 씨 제공

2020년 2월 12일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과 이별을 하셨습니다. 1930년생으로 만 90세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살 만큼 살았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장수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을 안고 가셨습니다. 똑바로 말을 못하고 똑바로 듣지 못하는 청각과 언어장애를 갖고 평생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도 한마디 말을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며 하염없는 이별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버지와의 옛 추억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아버지 생전에는 '아버지와 네 번의 눈물'이라는 사연을 신문에 낸 적도 있습니다. 이런다고 나의 불효함을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굉장히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시골에는 병원도 없었고 교통도 굉장히 불편해 이동 수단이라야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먼 거리를 아버지는 나를 업고 걸어갔고 난 아파 정신이 몽롱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땀 냄새를 맡으며 울다 잠이 들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사춘기 때에는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들과 길을 가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묘한 음성과 손짓으로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친구들이 누구냐고 묻자 나도 모르게 "옆집 아저씨"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나 스스로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지 몰라 친구들에게는 먼저 간다고 하고 도망치듯 달렸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죄송함과 먹먹함이 나를 짓눌러 그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몫까지 세상에 다 표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술가의 길을 들어선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고(故) 정한태(가운데) 씨 85세 생신날, 생신상 차려놓고 생일축하 노래 부르는 모습(어머니, 나, 형, 매형들). 정철원 씨 제공
아버지 고(故) 정한태(가운데) 씨 85세 생신날, 생신상 차려놓고 생일축하 노래 부르는 모습(어머니, 나, 형, 매형들). 정철원 씨 제공

아버지에 대한 아픈 마음은 또 있습니다. 아버지 회갑연 때 나를 제외한 모든 자식들은 결혼해 쌍쌍이 절을 했습니다. 막내인 내 차례가 되어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하면서 엎드린 순간 왠지 모를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옆에 앉아계신 어머니와 누나들마저 울어 눈물바다가 되어 버렸죠.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멀뚱히 우릴 보고 계셨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고, 어머니의 한을 묵시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겠죠.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아버지 나이 90세를 바라볼 때 어머니가 뒷바라지하기가 힘이 들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아버지를 안아 드리며 "아버지 잘 계세요"했더니 아버지는 걱정 말라는 듯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그것이 또 얼마나 인생사 서러운지 돌아서는 순간, 눈물 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삶의 끝의 여정을 보내기 위해 오는 곳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3년이 지난 후 아버지는 영면하셨고 나는 마지막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딱지를 치고 연을 날리고 춤을 추고 여행을 다니면서 재롱도 많이 피웠지요. 이제 제 나이도 어느덧 50세 중반을 넘고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를 가지고 보니 새삼 더욱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기에 나는 예술가의 길을 갈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았고, 현재도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현듯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생각나는 군요. '영감쟁이 저세상에서는 말문이 탁 트여라.'

어머니 또한, 연로하시어 곧 저희 곁을 떠나시겠죠. 아버지 생각을 하며 어머니께 달려가야겠습니다.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면서 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제가 원망스럽군요. 아버지 저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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