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인간 너머 존재들을 위한 법학-지구법학

지구법학회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게도 법적 권리가 있는가. 나무와 돌고래, 숲과 강은 어떻게 법적·정치적 주체가 되고, 이처럼 동식물과 자연이 참여하는 새 정치체제와 거버넌스는 어떻게 가능한가.

지난달 13일, 제주특별자치도는 기자회견을 통해 개체 수가 120여 마리 수준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국내 생태법인 제1호가 된다면, 남방큰돌고래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소송에 나서 법적 다툼을 벌일 수 있게 된다.

이보다 앞서 국회 사무처는 '평화, 환경, 생태의 상징으로서 DMZ 보전을 위한 입법안 연구' 보고서에서 "DMZ는 장소와 공간이 아니라 비인간 생명 존재와 숲·습지 등 자연생태계로 어우러진 살아 있는 생명공동체로 볼 것을 제안한다"며 'DMZ의 법적 실체(legal entity)로서 법인격 보유'를 입법안으로 제안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자연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했을 때, 이때 이들의 권리는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어떤 절차로 행사될 수 있을까?

문학과지성사와 재단법인 '지구와사람'이 내놓은 '지구법학-자연의 권리선언과 정치 참여'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새로이 떠오른 질문들을 마주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대안적 시스템으로서 '지구법학'을 소개한다. 헌법학과 법철학, 정치학, 사회학, 정치생태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에서 지구법학을 논한 10편의 글을 사회학자 김왕배 연세대 교수가 엮은 모음집이다.

지구법학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 생태계와 자연까지 법적 주체로 삼는 법사상 혹은 법체계의 학문이다. 즉 인간이나 기업, 선박 등에만 주어지던 법인격이 자연에도 주어진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철학적 논의를 펼쳐 보이는 한편, 석호나 국립공원처럼 구체적 대상을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등 실정법 차원의 실천 행위까지 포함한다.

이런 움직임은 지구 곳곳에서 감지되는 기후위기와 '여섯번째 대멸종'의 원인이 무분별한 인간 활동에 있다는 위기의식과 더불어,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망이 더욱더 촘촘해지고 있다는 신유물론적 인식을 저변에 깔고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한다. 478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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