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99>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권정민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어린이자료실에서 근무하면 그림책을 접할 기회가 많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적의 근무 환경이다. 특히 새로 나온 그림책을 빨리,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큰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신간 도서가 들어오는 날은 내 취향의 그림책을 찾는 작업을 하는 날이다. 이날은 북 트럭 앞에 서서 표지, 그림체 등 나를 사로잡는 그림책을 선정해 내용까지 꼼꼼히 읽어본다. 이렇게 나의 '최애 도서 목록'에 들어온 책이 권정민 작가의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이다.

제목 속 '우리'는 이름이 있지만 불리지 않으며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인간)를 지켜보는 존재. 바로 '식물'들이다. 책은 이 무해한 관찰자의 시점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업식에 배송된 화분들은 우리를 위해 축하 리본을 견뎌주고, 요가원의 식물들은 호흡을 응원해주며, 카페의 식물들은 우리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 식물들의 관찰일지가 마냥 귀엽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 당신에게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적성에 맞지 않는 곳이라도 조금은 버텨봐야 한다는 것.

- 당신은 때로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러 갑니다. 우린 당신을 따라 빛도 바람도 없는 세계로 내려가야 하죠.

처음 책을 읽을 땐 눈치채지 못했었다. 이 관찰일지의 진짜 대상은 우리(인간)가 아니라 '우리(식물)'라는 것을. 우리가 적성에 맞지 않은 일을 하기도 하는 사무실이란 공간은 햇빛과 바람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적성에도 맞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조용하고 안락한 분위기가 '우리'에게는 감옥과도 같은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화장실에서 사색(과 본래의 목적)을 할 때조차 '우리'를 필요로 하는 우리들에게 그들은 이야기한다.

이다영 영주선비도서관 사
이다영 영주선비도서관 사

- 미안하지만 이런 건 혼자 하면 안 될까요?

이런 식물들의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는 색연필 채색의 부드러운 삽화와 대비되어 잔혹동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어쩌면 처음 글을 읽을 땐 삽화의 따뜻함에 속아(?) 마냥 귀여운 관찰일지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정하면서도 서늘한 이 관찰기를 읽으며 나는 '관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관계는 언제나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야기 속 인간과 식물처럼 한쪽만 배려하고 이해한다면 그 관계는 시들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상대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진 않더라도, 누군가 나를 그 자체로 이해하고 받아 주었을 때 나 역시 그 사람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내내, 그리고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까지 책상 오른편에선 '몬스테라'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몬스테라는 나의 인사이동 축하를 위해 분홍색 리본을 달고 와준 잎이 넓은 식물이다. 이 초록색 관찰자는 그동안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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