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45>영화 ‘미션’, 가브리엘의 오보에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영화
영화 '미션'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 네이버 캡처.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테나 여신이 피리를 처음 발명했다. 여신은 최초의 피리 아울로스를 만들었다. 아울로스를 부느라 여신의 볼은 부풀고 눈은 튀어나올 듯하며 호흡을 조절하느라 얼굴은 달아올랐다. 여신은 강물에 비친 자신의 흉한 모습을 보고는 갈대숲에 피리를 던져버렸다. 이것을 강의 신 마르시아스가 주웠다. 마르시아스는 연습에 익숙해지자 기고만장해져서 리라의 대가 아폴론에게 시합을 제의했다. 아폴론은 패자에게 무슨 벌이든 내릴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 시합에 응했다. 관악기와 현악기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지고 아폴론이 승리했다. 승자의 복수는 잔인했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를 소나무에 매달아 거세하고 산 채로 가죽을 벗겼다.

리라가 질서와 조화를 존중하는 아폴론의 악기라면 관악기 아울로스는 흥분하고 도취시키는 디오니소스의 악기였다. 현악기가 엄격하고 정신적인 음악을 추구한다면 관악기는 광란의 축제에서 육체를 자극하는 음악을 추구했다. 아폴론이 승리한 사건의 배경에는 당대의 이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반기독교적인 사고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 기독교적 가치와 이념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명망 높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영화 '미션'(1986)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닐까 한다. 로버트 드 니로,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한 '미션'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1750년 예수회 선교사 가브리엘은 선교를 위해 이미 전임자가 순교한 아마존으로 들어간다. 그는 밀림이 우거진 폭포에서 무장한 원주민 전사들과 맞닥뜨린다. 절체절명의 순간 신부는 운명을 신의 뜻에 맡기고 오보에를 꺼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음악을 연주한다. 청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밀림을 뚫고 하늘 높이 울러퍼진다. 문명의 예술을 모르는 원주민들도 경계를 늦추고 피리 소리에 빨려 들어가 어느새 전의를 잊고 가브리엘을 받아들인다.

오보에 소리는 밀도가 높아 다른 소리들을 뚫고 멀리 날아간다. 소리의 밀도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는 오보에가 기음을 맞춘다. 영화에서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카메라 앵글이 소리가 퍼져나가는 정글 숲과 하늘을 비춘다. '미션'에는 이런 흥미로운 대사가 있다. "오케스트라만 있었다면 예수회가 대륙 전체를 손에 넣었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도 "신학이란 음악이 이끌어 가는 곳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그만큼 종교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음악은 영혼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사람의 근본을 움직이고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영화 '미션'의 ost는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했다.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미를 이 한 곡에 다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음악으로 영화 '미션'은 한결 깊고 풍요롭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리의 이미지도 부드럽게 바뀌었다. 영화 '미션'이 소위 '선교'를 통해 원주민 고유의 종교와 문화를 무시하고 백인의 종교와 문화를 주입하는 백인 우월주의적 입장을 고수한다는 것과, 가브리엘 신부가 진정한 백인의 대표자로 그려지며 백인을 미화하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하지만 요한복음 1장 5절('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이 흐르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예수회의 위대한 미션에 관객은 기독교적 이념을 떠나 종교의 진정한 의미와 사랑, 희생을 되새기며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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