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4·10 총선'은 가짜뉴스와의 전쟁이다

김우석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김우석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민주사회에서 선거는 총칼 없는 전쟁이다. 여야는 모두 승리를 위해 다양한 전략·전술을 사용한다. 문제는 "그 전쟁수단이 '정의'로우냐"다. '정의'의 판단 기준은 '국가와 국민에게 유익한가'이다. 대표적으로 부정의한 수단이 '가짜 뉴스'다. 국민에게 큰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마타도어'가 유행할 때가 있었다. '마타도어'는 기만술로 소를 유인해 죽이는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메타도르'(matador)에서 유래한 용어다. 국민 여론을 유인해 민주사회를 죽인다는 의미에서 요즘 말하는 '가짜 뉴스'와 다르지 않다.

차이라면, 과거 마타도어는 음지에서 정보지나 마이너 매체를 통해 암암리에 전파됐지만, 요즘은 공영방송 등 신뢰도 높은 레거시 미디어와 전파력 강한 SNS를 통해 더욱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 AI와 딥페이크(deepfake) 같은 최첨단기술이 더해지니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가공할 힘을 갖게 됐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매일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심의한다. K-팝 아이돌 스타의 딥페이크 영상물도 포함되는데, 최근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능욕 영상'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딥페이크 영상을 매일 봐야 하기 때문에 기술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2022년까지는 진위를 금방 구분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실제 영상과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2022년 챗GPT 등 생성형 AI(generative AI)가 등장하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 정교한 가짜 영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일본의 기시다 총리 등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영상들이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됐다.

딥페이크 기술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악의적 정치세력이 이 기술을 활용해 분별이 불가능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 선거 직전에 미디어와 SNS를 통해 배포한다면, 선거 민심을 완전히 왜곡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같아질 것이다.

지난해 말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조작 사건'이 큰 이슈가 됐다. 이 사건은 '실패한 도박'이 아니다. 대선 3일 전 터져 나온 이 사건은 전문가들도 깜짝 놀랐던 '근소한 표차'의 핵심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지난 정부 때 급성장한 신생 언론사 뉴스타파가 '조작된 탐사보도'를 만들어냈고, 대표 공영방송 MBC가 이를 대서특필했다. 다른 언론들도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없이 속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SNS를 통해 급속히 전파된 가짜 뉴스는 순식간에 민심을 흔들어 놨다. 그렇게 '박빙의 승부'가 된 것이다. 대선 패배 이후 야당은 이를 '대선 불복성 대여 공세'의 명분으로까지 삼았다. 향후 선거에서 딥페이크와 AI가 본격적으로 활용된다면, 번거롭게 녹취록을 조작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딥페이크로 조작된 영상과 AI가 만들어낸 거짓 논리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 등장의 일등 공신 김대업과 문재인 정부 일등 공신 김경수를 기억한다. 불법 조작 선거로 역사의 물꼬를 바꾼 그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지금도 밖에서 활보하고 있다. 효과는 엄청난데 비용과 리스크가 이 정도라면 언제든지 다시 시도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집권 후 1년이 넘어서야 심각성을 인지하는 것 같다. 타이밍을 놓치니 힘은 배로 들고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정권교체 전에는 '가짜 뉴스를 척결하겠다'고 다짐하며 법안을 주도하더니, 대선 패배 이후 법안도 방치한 채 슬그머니 '표현의 자유' 맹신론자로 변했다. 그러다가 최근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 불리한 온라인 콘텐츠들이 돌자 '가짜 뉴스'라며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단다. '내로남불' 행태가 여기서도 발휘된다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후보자의 딥페이크 영상을 선거일 90일 전인 이달 11일부터는 쓰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가짜 뉴스를 막을 수 없다. 선거가 임박해 제도 개선이 힘들다면, 적어도 "가짜 뉴스를 활용하지 않겠다. 만약 활용한다면 김경수, 김대업에 비교되지 않는 엄벌을 자청하겠다"는 정도의 대국민 약속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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