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대 표심 앞에 길 잃은 '균형발전'…기약 없는 지역맞춤 SOC

한동훈·이재명 이틀새 철도 지하화로 표심 경쟁, 지방은 들러리
GTX 등 수도권 맞춤형 구상에 비수도권은 끼워 맞추기 비판
선거 앞둔 남은 기간 국토균형발전, 지방시대 구호 뒷전 안 돼

서울 용산역 인근 철도 위로 전철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역 인근 철도 위로 전철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수도권 공화국이다."

4·10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자 '수도권 공화국'이란 조어(造語)가 실감이 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수도권 표심에 구애하는 정책 및 공약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저출생,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토균형발전이 중요한 어젠다로 부상하고, 지방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구호도 등장했지만 선거 앞에선 무용지물이란 반응도 나온다.

◆쏟아진 장밋빛 공약

수도권 표심을 향한 구애는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정책 구상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전국 광역급행철도(GTX) 시대 구상을 공개하며 '수도권 출퇴근 30분 시대'를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추진 중인 수도권 GTX-A·B·C 노선을 예정대로 착공·개통하는 것은 물론 D·E·F 노선을 신설해 수도권 남북·동서를 가로지르는 생활권을 구축하려는 복안이다.

여야 정치권은 철도 지하화를 키워드로 수도권 표를 얻으려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호탄은 여당이 먼저 쏘아 올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 장안구를 방문해 전국 주요 도시 철도를 지하화하고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통합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튿날 철도·GTX·도시철도 도심 구간을 지하화하고 그 부지에 용적률·건폐율 특례를 적용해 주거복합 시설을 개발하는 등 내용의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여야는 지난달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도 지하화를 위한 특별법도 통과시켜 근거도 마련해 둔 상태다. 특별법은 정부가 국유재산인 지상 철도 부지를 부동산 개발업체에 현물 출자하면 개발업체가 지상을 개발한 수익으로 지하에 철도를 건설할 수 있도록 했다.

◆들러리 전락한 비수도권

정부의 전국 GTX 구상과 여야 정치권의 철도 지하화 공약을 두고 지방을 들러리로 세우고 있다는 비판의 시선이 적잖다. 대전, 대구, 부산 등 지방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한 GTX 노선 도입 구상도 함께 발표했지만 이미 기존에 구상됐던 것을 반복하거나 조금 더 구체화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정부 발표에서 수도권을 거미줄처럼 잇는 GTX 노선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면서 "6개 GTX 노선이 서울, 경기권을 잇는 시대가 도래하면 지방엔 남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철도 지하화 공약에 대해서도 회의적 반응이 주를 이룬다. 철도 지하화 역시 대전, 대구, 부산 등 경부선이 지나는 도시를 중심으로 십수 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여서 새로울 게 없는 데다 정부의 재정 투입이 아닌 민자 유치에 방점이 찍혀 있는 탓이다.

앞서 여야 정치권이 철도 지하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때도 비수도권 지방정부 안팎에선 '서울, 수도권을 위한 법'이란 평가가 주를 이뤘다.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비수도권도 포함하는 식으로 구색을 갖췄으나 민자 유치 방식으론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서울 등 수도권과 비교해 땅값이 저렴한 비수도권에서 막대한 지하화 비용을 부담하며 지방부 개발에 나설 민간 업체를 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또 다른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전국 부동산 업계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법 역시 수도권 1기 신도시 등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니냐"면서 "정부가 특혜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수도권 계획도시의 규제도 함께 풀어주겠다고 나섰지만 개발 심리만 자극하는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맞춤공약 언제?

대구경북(TK) 정치권에선 얼마 남지 않은 총선 선거 국면에서 국가균형발전, 지방소멸위기 극복의 목소리가 뒷전으로 밀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TK 정치권 한 인사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수도권 맞춤형 SOC 공약을 잇따라 내놓는 것은 영남권은 물론 호남권 역시 '어차피 잡아놓은 물고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천만 하면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는 TK, 호남 맞춤형 공약을 벌써부터 내놓는 건 선거 전략상 있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TK 신공항, 달빛철도 건설 등 기존에 나왔던 SOC 공약 외 획기적인 지역 맞춤형 공약을 선제로 제안할 필요도 있다는 전략도 제시된다. 지역 선거구 출마자들이 개별로 내놓는 공약에 기댈 게 아니라 지방정부, 전문가 그룹 등에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에선 이번 총선을 위해 공약개발본부를 출범시켜 지역공약개발에도 매진하고 있다. 현재는 선거 전략상 수도권 중심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순차로 공약이 제시될 것"이라며 "TK 발전을 위한 맞춤형 공약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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