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진짜 서민은 법정에 있다

최주희 변호사

최주희 변호사
최주희 변호사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정당들 모두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해결 과제로 민생, 경기 회복을 손에 꼽고 있으며, 지난 10년 중 현재가 가장 최악의 경기인 것은 사실이다. 모 당의 대표는 이번 설 명절의 과일값을 예로 들며 "최악의 경기"라 진단하였으나, 올해 설의 과일값 상승은 전년도 이상기후로 인한 수확량 부족에 따른 것이지 '최악의 경기'를 단순히 과일값 하나로 진단하거나 분석할 수는 없다.

2024년 서민들의 삶을 법원 사건 수 기준으로 살펴보면, 2020년 코로나19를 거치며 2021년 이후 개인파산·회생 신청은 역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법인파산 역시 해마다 느는 추세이다. 게다가 부동산 경매 신청 사건은 2020년 6월 17일 부동산 정책 당시 임대차3법 개정으로 전세난을 겪으며 패닉 바잉(공포 매수)했던 영끌족들이 장기화하는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고금리를 견디지 못해 경매에 넘겨지는 바람에 2022년 대비 61% 급증한 10만1천150건을 기록했다. 이는 2018년의 금리 인상과 2019년 1월 2일 자 공시지가 현실화로 인한 세금 부담 여파로 경매 신청 사건이 1만4천417건이었던 2019년 이후 최고치이며, 올해 경매 사건 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대구지방법원에서 파산관재인으로 다수의 파산 신청 사건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는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침체로 소상공인 대출로도 버틸 수 없던 서민들이 다수 파산을 신청하였고,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침체는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대출에 대출을 쌓아 이자를 견디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파산 신청 이유 중 주거지 안정을 위한 전세대출의 이자, 영끌족의 이자 감당이 어려운 사례 역시 2022년 즈음부터 출현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경매 신청 사건 수의 폭증은 그동안 어떻게든 버텨내던 서민들이 장기화하는 부동산 경기를 비롯한 경기 침체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듯 법원에 사건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지난 2018년부터 현재까지 개인파산·회생을 신청한 국민의 누적 수는 144만6천391명에 육박하고, 이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 대비 2.79%에 해당하는 수치로 인구 100명 중 약 3명 정도가 파산, 회생을 한 신용불량의 지경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정부와 정당들이 민생 현장을 찾을 때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마주하는 모습은 흔하다. 그러나 진짜 무너지는 서민들은 이처럼 법정에 있다. 시장에 있는 상인들도 침체한 경기와 인상된 물가에 고될 것이나 최악의 경기에 쓰러져가는 진짜 서민들은, 생존을 지킬 마지막 보루로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을 하는 법정에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 대한민국의 민생은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인 부동산 시장 침체의 장기화와 지난 정부에서 비롯된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들의 여파로 실수요자는 급등한 부동산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나마 대출을 끌어안고 내 집 마련의 꿈을 꾼 영끌족들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생계가 피폐해지고 있는 것이다. 의식주 가운데 가장 큰 재산이자 생활의 터전인 주(住), 부동산이 불안정하니 나머지 내수시장에 지출할 여유가 없어지고 시장은 전체적으로 더욱 소비심리가 경색되며 경기 침체가 악순환되는 형국이다.

이렇게 최악의 경기라는 것은 정부의 특별한 정책 시행이 아닌 이상,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누적된 시장 침체와 경제적 진단 오류로 인한 정책의 실패, 그리고 그렇게 망가지는 사이 꼬일 대로 꼬여 버린 상황에 대한 분석과 접근의 난해함이 현재 대한민국을 최악의 경기로 만든 것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