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수용] 공유, 구독과 자본주의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중년층 이상이 기억하는 학창 시절 가정환경 조사는 얼마나 잘 사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집에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거짓말이지만 기죽기 싫어서 쭈뼛쭈뼛 손을 드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 있는 집, 손 들어 보라"면 눈치 볼 것도 없이 조용했다.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보급이 급증하기 전까지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었다. 물론 지금도 최고급 수입차는 부유층의 전유물(專有物)로 인식되고 있지만 자동차 자체는 가전제품처럼 대수롭지 않은 시대가 됐다. 특히 20, 30대의 자동차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이들의 신차 등록 점유율이 10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10년 전 신차 등록 대수(자가용 기준) 중 20, 30대의 점유율이 35%에 달했으나 올해는 25%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60, 70대 점유율은 12%대에서 약 23%까지 높아졌다.

20, 30대는 더 이상 차를 필수 소유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신차 가격은 갈수록 비싸지는데 굳이 세금과 유지비까지 떠안으며 구매할 필요를 못 느낀다. 차량 공유(共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싼값에 빌려 탈 수 있어서다. 이런 추세는 꽤 오래됐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반전(反轉)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 공포 탓에 대중교통을 기피하면서 2020년엔 2030세대의 신차 구매가 반짝 증가했다. 2015년 이후 꾸준히 감소세였는데 갑자기 20, 30대 신차 구매가 전년 대비 15~18% 늘어난 것이다.

요즘은 차량도 구독(購讀)하는 시대다. 월 단위로 빌리고, 보험·세금·정비비와 보증금 부담 없이 새 차를 이용한다. 한 달에 두 번까지 차를 바꿀 수 있다. 글로벌 조사업체에 따르면, 세계 자동차 구독 시장은 지난해 50억달러(약 7조원)에 달했다. 2032년까지 매년 평균 35% 성장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2천600만 대를 넘어섰고, 올해 5월 기준 약 2천638만 대에 이른다. 인구 1.94명당 차량 1대를 보유한 셈이다. 소유에서 공유와 구독의 시대가 되면 이런 성장세가 지속될 수 있을까. 혹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떠받드는 자본주의의 종말까지 예언하지만 공유와 구독이 인간의 물욕(物慾)을 대체할지는 의문이다.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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